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은혜와 진리의 말씀

878강, 나의 부르짖음이 그 귀에 들렸도다

윤주만목사 2022. 2. 27. 07:49

시편18:1-6절을 보면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내가 찬송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으리로다 사망의 줄이 나를 얽고 불의의 창수가 나를 두렵게 하였으며 음부의 줄이 나를 두르고 사망의 올무가 내게 이르렀도다 내가 환난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저가 그 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그 앞에서 나의 부르짖음이 그 귀에 들렸도다”

 

시편입니다.

다윗이 기록한 말씀이 가장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인간 다윗이 기록했을지라도 모든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이라는 것을 알고 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싶어도 믿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의 문자입니다.

그것을 아는 것으로 내가 성경을 안다고 하는 것이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를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특히 우리나라 같은 경우에는 교육열이 높고 거의 모든 사람이 대학을 나오다 보니까 지적인 수준이 높을 수밖에 없고 그런 자기의 이성적 지식으로 성경을 보면서 인생의 본성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비록 이 말씀이 선지자들을 통해서 기록하게 하셨을지라도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에 있어서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는 사람보다는 그저 자기들의 지식의 수준으로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성경을 어려서부터 보았습니다. 그런 그들이 자기 땅에 오신 하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악을 행하고 말았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자부를 하면서 산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죽이는 악을 행했다는 것을 성경을 단 한 반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알 수 있습니다.

 

그들만 그렇게 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이방의 종교인들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종교 재판이라는 미명아래서 자기들의 교리와 다르게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을 상상하기도 힘든 고문과 방법으로 죽였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도를 죽이는 일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는 것과 같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종교의 속성입니다.

아니 사람들은 종교에 대해서 너무 관대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자기가 다니고 있는 그 종교 안에서 행해진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런 일에 대해서 스스로 합리화를 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하는 것이 그들이 왜 그런 일을 했는가 하면 그들에게는 성령이 오시지 않아서 복음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유대인들과 같이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성경을 보면 뭐 합니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깨닫지를 못하고 있다면 그는 차라리 성경을 안 보는 것이 더 유익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그들이 깨달았다면 수많은 사람들을 종교재판을 해서 죽이지를 않았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기쁜 소식입니다.

그런데 그 기쁜 소식을 전한다고 하는 그들이 자기들의 이성적 지식으로 재판을 해서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그들에게 만약에 복음이 있었다면 절대로 그러한 일은 없었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복음을 모르는 사람들은 성경의 문자를 보고 자기들에게 좋은 쪽으로 해석을 하고 있고 그런 그들이 그런 끔찍한 일을 했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그런 그들이 종교재판을 한다는 것이 말이 된다고 생각을 합니까? 주님께서 우리에게 사람을 죽이라고 하셨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제자들에게 도리어 종교가 되어 있는 세상이 너희를 죽일 때가 온다는 것을 말씀을 하시면서 그때가 오면 내가 한 말을 기억하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자기들의 교리 때문에 사람을 죽인 종교는 절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보는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는 성도라면 절대로 종교에서 행하는 그런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들은 사람을 죽이면서도 도리어 더 당당하게 이것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생각을 하면서 열심을 내서 죽였고 그 종교에서 이제까지 내려오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인생의 이성적 지식입니다.

성경을 보는 인생들이 종교가 돼서 하는 일이라는 것을 우리가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사람을 죽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아무리 하나님에 대해서 저주의 말을 한다고 해서 우리는 심판자가 아니기 때문에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종교는 아무 거리낌이 없이 행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보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으면 절대로 그런 종교에 속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물론 그 일 역시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셔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내가 어떤 행위를 할 때는 그것이 옳은가 틀린가를 지혜를 구하는 성도가 지혜롭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시편18장입니다.

아마도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잘 알고 있는 말씀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지금은 종교 안에서 부르고 있는 노래를 전혀 부르지 않고 있어서 잘 모르지만 예전에는 이 말씀으로 노래를 했던 것으로 기억을 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종교 안에 있을 때는 이 말씀으로 노래를 부르면서 인간적으로 마음에서 감동을 받았던 적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치 내 삶에 대한 노래를 하는 것과 같았고 때로는 눈물이 울컥할 때도 있었다는 것을 말 합니다.

 

얼마나 무지합니까?

다윗과 같은 믿음이 있기를 바라면서 정말 간절한 마음으로 이 노래를 불렀던 것으로 기억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노래를 부르지 않은지가 십년이 넘다보니까 이제는 곡조까지도 다 잃어버리고 있지만 시편의 말씀을 보면 그때 제가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모르고 노래를 부르면서 인간적인 감동에 그것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인생입니다.

아니 구더기 같은 인생입니다. 그런 저를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겨주심으로서 성령을 보내주시고 이제 그 말씀의 의미를 깨닫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게 해 주심으로서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영생을 얻은 자가 되었다고 말씀을 드립니다.

 

저 역시 같은 인생입니다.

그 본성이 다 같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보이기 시작을 했고 지금까지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렇게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기 전에는 알지 못했던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고 나니까 그때 믿는다고 했던 제가 얼마나 부끄러운 일을 했는가를 새삼 기억하고 있습니다.

 

인생은 다 같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과 같이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릅니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것과 같이 성령으로 난 자는 다 그러하다는 주님의 말씀이 가슴에 깊이 새겨지고 있습니다. 저 역시 신학을 졸업을 할 때까지도 거듭남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이제는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이 거하신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성경말씀입니다.

가끔 유튜브를 보면 너무도 쉽게 성경말씀을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아픕니다. 그저 문자적인 것을 안다고 하면서 이야기를 하는 그들을 볼 때 차라리 하지 않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들은 자기들의 열심히 더 열심을 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열심히 오히려 복음에 장해가 된다는 것조차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다윗 왕입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를 하는 왕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늘 말씀을 하지만 시편의 말씀을 보고 다윗이라는 인생 개인의 신앙을 기록했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역시 선지자이고 그가 기록한 말씀은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인생 다윗 왕입니다.

그가 대단한 사람입니까?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다윗의 믿음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아야 합니다. 시편의 말씀 역시 다윗은 선지자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하기 위해서 기록했다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시편의 말씀을 보면서 사람들은 다윗과 같은 믿음을 가지려고 하고 있습니다. 자기도 다윗이 기록한 성경을 보면서 그런 마음으로 하나님을 믿겠다고 하는 생각으로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는 기초가 되어 있지 않다보니까 인생들의 이성적 지식으로 성경을 보고 다윗이라는 인물의 신앙인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1절,“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우리는 인생입니다.

그리고 다윗도 역시 같은 인생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시편의 말씀은 다윗이라는 인생이 기록한 말씀이 아니라 다윗이라는 선지자가 기록한 말씀이라고 선지자들은 누구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는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다윗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를 하는 왕입니다. 그의 신앙의 고백이 아니라 주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의 모형이라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와 같은 종의 형체를 입고 이 세상에 오셨고 그 종으로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구속의 일을 이루시고 또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예표로 나타내 주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고린도후서13:4절을 보면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으셨으니 우리도 저의 안에서 약하나 너희를 향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저와 함께 살리라”

 

성경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를 하고 있습니다. 시편의 말씀 역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우리 인생과 같은 종의 형체를 입고 오셔서 보여주시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 인생으로 오신 주님께서 다윗이 기록한 시편의 말씀과 같이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인생입니다.

주님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종의 육체를 입고 오셨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반드시 한번 죽으셔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분명히 유일하신 하나님이시지만 사도 바울의 말씀과 같이 동등 됨으로 취하시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동등 됨으로 취하시지 않았는가 하면 바로 우리에게 영생을 보여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결론부터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주님께서도 역시 종의 형체를 입고 오셨기 때문에 죽으셔야 한다는 것을 성경에서 증거를 하고 있고 그런 주님이시기 때문에 인간으로서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말씀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으셨으니 우리도 저의 안에서 약하나 너희를 향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저와 함께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주님은 우리 종이 어떻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가에 대해서 모형으로 보여주셨다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이 약하십니까? 그분은 유일하신 하나님입니다. 그러나 동등 됨으로 취하시지 않음으로 약하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이제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어떻게 부활을 하시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시는가를 우리를 위해서 보여주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인생입니다.

한번 죽어야 하는 인생입니다. 그래서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삼위일체를 믿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해가 안 되는 말씀이지만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믿는 우리 성도는 충분히 깨달을 수 있는 말씀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주님께서도 인생으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는 하나님을 부르셨다는 것을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오셨을 때는 주님은 분명히 하나님이시지만 동등하심으로 취하시지 않았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래서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15:10절을 보면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사랑입니다.

우리는 이 사랑에 대해서 바로 알아야 합니다. 마치 인생들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것과 같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아니 종교 안에서 온갖 미사여구를 써가면서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한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도 요한입니다.

그가 요한일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기초입니다.

이런 기초의 말씀으로 우리는 든든히 세워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저 사랑이라는 단어를 보고 자기들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 시편의 말씀을 보면서 자기들도 다윗과 같은 신앙을 갔겠다고 하면서 노래까지 만들어서 부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노래를 부릅니까?

그렇다고 해서 그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할 수 있습니까? 인생들은 너무 감정에 쉽게 빠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시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시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고 주님께서 종의 형체로 오셔서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하시는가에 대해서 다윗이 시편에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말씀합니다.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어떤 계명을 지키셨습니까? 주님께서는 아들로 이 세상에 오셔서 모든 구속의 일을 이루시고 이제 하나님의 능력으로 영으로 부활을 하심으로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시는 것을 말씀을 하면서 그것이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말로만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인생들은 너무 감성주의에 빠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의미를 전혀 모르고 그저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의 단어를 아는 것으로 자기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사랑하는 것입니까?

주님께서 아버지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사랑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우리 인생의 형체를 입고 오셨습니다. 그러나 구속의 모든 일을 이루시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영으로 부활하시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주님이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그렇게 하나님을 사랑하심으로 우리 역시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영생을 얻는 자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말씀이 아니라 주님께서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이 다윗이라는 선지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면서 기록한 시편의 말씀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피조물과 창조주라는 것을 생각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사랑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면 누구라도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말씀입니다. 마치 다윗이라는 인생이 하나님을 사랑한 것으로 그리고 그 다윗과 같이 내가 신앙이 좋아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2절,“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사무엘하22:1-3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다윗을 모든 대적의 손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신 그 날에 다윗이 이 노래의 말씀으로 여호와께 아뢰어 가로되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오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높은 망대시요 나의 피난처시요 나의 구원자시라 나를 흉악에서 구원하셨도다”

 

다윗 왕입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를 하는 왕이라는 것은 누구라도 쉽게 알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아무리 성경에서 인용을 하지 못하고 비유의 말씀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해도 이 정도는 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마저 부인을 하면 더 이상 대화를 할 수 없고 그런 사람과는 논쟁만 된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합니다.

 

사울 왕입니다.

그는 사단을 예표를 하는 왕입니다. 이스라엘에 두 왕이 있었는데 이제 사울 왕이 죽고 난 후에 다윗이 기록한 말씀입니다. 성경은 영의 일을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고 사울과 다윗과의 싸움은 예수 그리스도와 사단과의 싸움에서 주님께서 이기시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윗 왕의 고백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시는 영의 일이라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그 일을 이루시는데 있어서도 주님께서는 철저하게 종의 형체로 오신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입장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분명히 유일하신 하나님이심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됩니다. 분명히 그렇게 믿는 성도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다만 동등하심으로 취하시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 인생들에게 구원의 모형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안 됩니다.

우리에게 믿음이 있습니까? 우리에게 지식이 있습니까? 우리에게 능력이 있습니까?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이 세상에 다윗과 같은 왕으로 오셔서 이렇게 구속을 이루심으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아 믿음으로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반석입니다.

한 가지만 말씀을 합니다. 사도 베드로가 경에 기록하였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롭고 요긴한 모퉁이 돌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의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또한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 되었다 하니라 저희가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저희를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는 반석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어떻게 했는가 하면 그들이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므로 넘어진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우리 인생은 순종할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이 정하신 것이라고 말씀을 하면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이루신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새입니다.

나를 건지시는 자입니다. 나의 하나님입니다. 나의 피할 바위입니다. 나의 방패입니다. 나의 구원의 뿔입니다. 나의 산성입니다. 이것을 하나하나 말씀을 한다는 것은 시간 낭비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말씀에서 이미 충분히 말씀을 했다고 생각을 하고 있고 또 이제 우리 성도는 이 정도는 성경에서 충분히 인용을 할 수 있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다 무슨 말씀입니까?

구원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종의 형체를 입고 오셨습니다. 물론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그리스도로 오셨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그럴지라도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영으로 부활하시는 일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입니다.

그러나 인생의 형체로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마리아의 몸을 빌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 구원을 인생으로 보여주시고자 하는 모형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런 면에서 지금 다윗의 말씀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해 주고 있고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씀합니다.

인생 다윗 왕의 신앙 고백으로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가 사울과의 전쟁에서 이기고 난 후에 기록한 말씀으로만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 말씀이 아니라 다윗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를 하는 왕이고 그 다윗은 선지자로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원의 모형을 보여주시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첫 사람 아담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아담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우리를 살려 주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종의 형체를 입고 오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인생으로서 하나님을 이렇게 의지를 함으로 구원을 얻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3절,“내가 찬송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으리로다”

 

시편18장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사무엘하22장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다윗은 왕이 될 수 없는 처지에 있었지만 하나님의 힘으로 그가 왕이 되는 것을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 역시 약하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리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해 주고 있습니다. 물론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구속의 일을 이루시는 것을 증거를 해 주시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으로 오셔서 구원을 받는 것을 모형으로 보여주시고 있고 그것을 우리가 믿음으로 주님의 길을 따라간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래서 주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모형입니다.

시편18장의 말씀은 그 모형을 보여주시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우리가 그 길을 따라가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까지를 우리 인생의 입장에서 구원을 받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우리 역시 이대로 따라가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주님과 같아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19:27절을 보면

“그리고 나의 왕 됨을 원치 아니하던 저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 하였느니라”

 

원수들입니다.

누가 원수들입니까? 종교 안에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원수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영으로 부활하시고 하늘에 올라 하나님이 되시는 것을 원치 아니하는 자들이 원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유일하신 하나님입니다. 그러나 인생의 형체를 입고 오셔서 시편의 말씀과 같이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하심으로 구원을 받으셨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합니다.

그들이 다 마귀의 자식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들이 원수가 되어 하나님이심을 믿지 않고 있다는 것을 누가복음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원수가 많지만 주님께서는 영으로 부활하시고 사십일 동안 제자들에게 보이시다가 하늘에 올라 가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인생입니다.

주님께서 요한복음에서 유대인들에게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에게만 하는 말씀이 아니라 우리 이방인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본성이 다릅니다.

그래서 주님을 원수로 여길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 인생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마귀의 자식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은 성도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해서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 믿어 영생을 얻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피조물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창조주이십니다. 우리 인생으로는 아무리 지혜가 있다고 하면서 성경을 본다고 해도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런 원수들이 있는 이 세상에 오셔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우리 또한 그렇게 산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인생들에게 길을 보여주시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받아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가에 대해서 그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는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그대로 믿음으로 그 길을 따라간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4절,“사망의 줄이 나를 얽고 불의의 창수가 나를 두렵게 하였으며”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죽음의 사슬이 나를 휘감고 죽음의 물살이 나를 덮쳤으며,”

 

사망의 줄입니다.

주님만이 이 세상에 오셔서 죽는 것이 아닙니다. 아니 주님께서는 죽으실 필요가 없는 분이라는 것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에게 길이라는 말씀을 알고 이 말씀을 보아야 합니다. 그 길을 보여주시고자 하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사망의 줄이 나를 얽고 불의의 창수가 나를 두렵게 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도 한번 죽는 것은 정해져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런 인생들을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먼저 죽으시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영으로 부활하시고 제자들에게 보이시다가 하늘에 올라가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전쟁입니다.

처음에는 사울에게 도망을 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후에는 다윗이 점점 강해짐으로 해서 사울을 이길 수 있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말씀이 다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로서 구원을 보여주시고자 하는 말씀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길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고 그럼으로 우리가 믿어 영생을 얻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를 하고 있지만 인생 다윗의 신앙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5절,“음부의 줄이 나를 두르고 사망의 올무가 내게 이르렀도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다시 말씀을 하지만 주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지 않아도 되는 분이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죄가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이성으로 성경을 보려고 하지 마시고 성경에서 그렇다고 하면 그렇게 받아들이는 성도가 지혜롭습니다.

 

고린도전서15:3절을 보면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사망입니다.

주님께서는 죄가 없으신 분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죄가 없다면 당연히 죽으시면 안 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에게 부활의 모형과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길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우리를 위해서 죽으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입니다.

그저 우리를 대신해서 죽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에 문자로 기록이 된 것을 아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길을 보여주시고자 죽으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들은 죽음에 대해서 두려워하고 있지만 주님께서는 그 사망의 올무가 임하였지만 그것을 통해 영으로 부활을 하신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주님께서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길을 보여 주셨기 때문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방의 종교인들은 주님께서 죽으시고 육체로 부활을 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창조된 것입니다.

종의 형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제 영으로 부활을 하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은 하나님으로 부활을 하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생명을 얻음으로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길을 보여주셨고 우리의 믿음이 역사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6절,“내가 환난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저가 그 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그 앞에서 나의 부르짖음이 그 귀에 들렸도다“

 

인생입니다.

우리는 한번 죽어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 인생에게는 환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주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서 죽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 만에 영으로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산 소망이 생겼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부르짖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부르짖으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마태는 그것을 제 구 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죽음에 대해서 초월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물론 자기 신념에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보통의 사람이라면 다 죽음에 대해서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가신 길을 알고 믿음으로 역사를 하는 우리 성도는 이제는 하나님께 부르짖을 필요가 없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죽음이 두렵습니까?

저는 하나도 두렵지 않습니다. 예전에는 약간의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깨닫고 난 후에는 주님께서 가신 길을 내가 그대로 따라 간다는 것을 믿기 때문에 사망의 줄이 나를 얽고 불의의 창수가 나를 두렵게 하였으며 음부의 줄이 나를 두르고 사망의 올무가 내게 이른다 해도 두렵지가 않습니다.

 

성경입니다.

영생의 말씀이라는 것을 알고 보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성경에서 증거를 받으면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영생을 얻는 우리 성도는 죽음에 대해서 두려워하지를 않고 담대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 시편18편의 말씀은 주님께서 먼저 가신 길을 우리에게 보여주시고 있습니다. 인생 다윗이 기록한 성경이지만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하고 있고 믿음으로 역사를 하는 성도는 주님과 같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부활의 영광에 참예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