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너희는 귀를 기울리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

07강,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윤주만목사 2021. 6. 23. 19:32

요한계시록3:14-22절을 보면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라오디게아 교회입니다

주님께서 사도 요한에게 보여주시는 환상에서 마지막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하지만 이 말씀은 환상이라는 것을 알고 보아야 합니다. 환상은 실제가 아니라 비유입니다. 더구나 이 교회들은 실제 교회를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환상이라는 것을 알고 우리에게 이 환상의 교회를 보고 성령이 하시는 말씀을 듣고 구원을 받으라는 말씀입니다.

 

이방인들입니다

그들은 종교가 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래도 교회 안에는 구원을 받을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13장에서 말씀을 하는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구원을 받을 사람이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왜 환상을 보여주시면서 종교를 말씀을 하지 않고 교회라고 하는지를 생각을 하고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교회입니다

그래도 교회 안에는 복음이 전해지고 있고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어서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교회들이 지금이 시대 건물로 세워져 있는 교회를 말씀을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도들입니다

교회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장소는 절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교회라는 건물을 지어 놓고 있고 또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교회의 이름까지 붙이고 자기들이 부르고 있습니다. 성경을 모르면 자기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아무 감각이 없이 그저 종교에서 시키는 대로 하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일곱 교회입니다.

이 교회는 다 환상입니다. 우리는 이 교회들을 보아야 합니다. 그들이 무엇을 잘못했고 또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는가를 교회들을 통해서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저 성경의 문자를 아는 것으로 좋은 교회는 자기들의 교회를 비유로 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고 나쁜 교회는 자기들이 이단이라고 하는 교회를 비유로 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일곱 교회입니다.

우리는 이 교회들을 통해서 주님께서 사도 요한에게 보여주시는 것을 바로 깨달아서 영생을 얻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씀을 하지만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지 말고 반드시 그 말씀에 대해서 근거를 찾아 말씀을 해야 합니다.

 

이방인들입니다.

교회는 없고 종교만 있다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실제 이 시대를 보아도 종교만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신학교를 졸업하고 종교에 속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종교가 짐승이라는 것을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깨닫게 되고 거기서 나오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제가 지혜가 있어서도 아니고 남들보다 더 공부를 많이 해서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심으로 해서 성령을 보내주시고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게 하심으로 해서 교회와 음녀 그리고 짐승에 대해서 분별할 수 있게 해 주심으로 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생을 얻는 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피조물입니다.

나 자신에 대해서 먼저 철저할 정도로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대단한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인생들의 본성이 그렇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다른 종교보다 더 심하다는 것을 그들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나를 먼저 아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우리 인생을 어떻게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알고 그 말씀을 철저하게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나는 아니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나를 벌레라고 하면 나는 벌레입니다. 그리고 구더기 같다고 말씀을 하면 구더기라는 것을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가난한 자입니다.

그리고 고아입니다, 과부입니다, 나그네입니다. 성경에서 이런 말씀을 하면 내가 바로 그렇다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내가 남자고 내 부인이 살아 있는데 내가 무슨 과부라고 하느냐고 하면 그는 차라리 성경을 안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안 믿는 것이 더 유익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내 부모가 살아 있습니까?

아니 부모가 죽을 때까지 살아 있었습니까? 그래서 나는 고아가 아닙니까? 그렇게 성경을 볼 것 같으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실언을 하시는 분이 되고 그런 하나님을 믿을 이유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을 믿겠다고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정신이 이상한 사람이라고 저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말씀입니다.

다 나에게 하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죄인이라고 하면 내가 죄인이고 악한 자라고 하면 내가 악한 자이고 어두움에 있다고 하면 내가 어두움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먼저 인정을 해야 그 다음에 그러면 내가 왜 죄인가를 그리고 왜 악한 자인가를 그리고 어두움에 있는가에 대해서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게 되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일곱 교회의 사자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이 말씀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 귀 있는 자가 되어서 성령이 하시는 말씀을 듣고 영생을 얻으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우상을 숭배하고 있고 우상의 제물을 먹고 있고 아세라와 음행을 하고 있다는 것을 주님께서 사도 요한에게 환상으로 보여주시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런 환상의 말씀을 보면서도 남의 집에 불구경 하듯이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와는 아무 상관이 없고 자기는 그저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종교는 그래도 이 일곱 교회 정도만 되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 일곱 교회에서 나쁜 의미의 말씀이 지금 종교 안에서 다 행해지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영생을 얻는 일입니다.

성경에서 얼마나 많은 예표로 보여주시고 있습니까? 그것이 그렇게 쉽다면 굳이 이렇게 성경을 두껍게 기록할 필요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를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는데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저 종교 안에서 자기들이 하는 행위를 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좋은 의미입니까?

그렇게 행하는 교회는 거의 없습니다. 나쁜 의미입니까? 거의 모든 교회가 다 그렇게 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경계로 주님께서 사도 요한에게 환상으로 보여주시면서 우리에게 영생을 얻게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전혀 듣지를 않고 있습니다.

 

14,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가라사대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입니다.

헬라어의 뜻입니다. 아멘, 진실로, 그러하도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곱 번째 교회입니다. 이 모든 일이 진실이라는 말씀이고 이 세상의 교회가 주님께서 사도 요한에서 보여 주신 그대로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환상이지만 이러한 형태의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입니다.

그분이 그렇다고 하면 그런 것입니다. 성경은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부터 요한계시록의 하나님 나라까지 모든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창조주께서는 이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고 그분의 말씀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인생의 이성으로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 피조물들을 어떻게 구원을 하시는가에 대해서 정확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해가 안 되는 사람들이 많이 있겠지만 마치 게임의 프로그래머가 만들어 놓은 것과 같이 그가 게임의 모든 것을 다 아는 것과 같이 창조물 역시 그렇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아멘입니다.

주님께서 일곱 교회의 사자에게 보내는 편지를 사도 요한에게 환상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마치 예언을 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언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지는 말씀이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말씀에 아멘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너무 모릅니다.

그리고 창조주 하나님에 대해서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그렇다고 하면 그런 것입니다. 마치 무엇과 같은가 하면 다시 말씀을 하지만 게임의 프로그래머는 다 알고 있는 것과 같이 주님께서는 창조주시기 때문에 다 알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래서 아멘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이 환상이 진실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사야49:6절을 보면

그가 가라사대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며 이스라엘 중에 보전된 자를 돌아오게 할 것은 오히려 경한 일이라 내가 또 너로 이방의 빛을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오.

주님에 대해서 사도 요한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 피조물들을 구원하시는 구속의 일을 이루셨습니다. 분명히 그분은 하나님이 맞습니다. 그러나 우리 피조물의 형체를 입고 오셨을 때는 아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의 말씀과 같이 왕으로, 종으로, 사람으로, 그리고 하나님으로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을 각각의 성경의 저자가 기록을 했습니다. 주님을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라는 말씀은 종으로서 일을 이루셨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시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가라사대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며 이스라엘 중에 보전된 자를 돌아오게 할 것은 오히려 경한 일이라 내가 또 너로 이방의 빛을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마치 충성된 종과 같이 이 모든 일을 이루셨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참된 증인입니다.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이방에 빛을 비춰주심으로 해서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우리 피조물이 태초에 있는 생명을 얻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충성된 종과 같이 이 모든 일을 이루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을 이루시는데 있어서 참된 증인과 같이 하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으로 취하시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방의 종교인들은 성경에서 이렇게 증거를 하고 있어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창조주라는 말씀을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다만 우리 피조물로 오셨을 때는 동등됨을 취하시지 않았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고 우리는 그렇게 믿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방인들은 자기들의 종교의 교리를 만들어서 하나님과 동등됨으로 믿지를 않고 있고 자기들이 만든 삼위일체라는 신을 믿고 있습니다.

 

15,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갈라디아서3:12절을 보면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라 이를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

 

로마서1:17절을 보면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행위입니다.

참 사람들의 생각이 너무 단순합니다. 특히 성경을 보는 종교인들의 생각이 너무 경직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늘 이런 말씀을 드릴 때마다 안타깝게 생각을 하고 있지만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아무리 말씀을 해도 안 들린다는 것이 심각한 문제입니다.

 

단순합니다.

왜 행위라고 하면 자기 육체로만 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는지 저는 이해가 되지 않고 있습니다. 자기 육체로 하는 것은 행위라고 하고 있고 자기 마음으로 하는 것은 믿음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주의 형제 야고보는 그 믿음을 행함이 있는 믿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믿음이라는 것도 행위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마음으로 믿는 것 역시 행위라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주의 형제 야고보가 행함이 있는 믿음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믿음이 있다 하고 행함이 없으면 그것은 죽은 믿음이라고까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입니다.

주님께서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도 행위에 대해서 두 가지가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차가운 행위가 있는 것과 같이 더운 행위도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해가 됩니까?

행위가 차다는 것이 그리고 행위가 더웁다는 것이 우리 인생의 이성으로 이해가 되는 말씀입니까? 계속 말씀을 하지만 사도 요한에게 환상으로 보여주고 있는 말씀이며 사도 요한이 기록할 때 역시 영의 일은 다 비유적으로 기록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성경을 보어야 합니다.

 

두 가지 행위가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와 로마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라 이를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 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도 행위입니다.

그리고 믿음 역시 행위입니다. 율법은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 그대로를 자기 육체로 행하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신 구속의 일을 내가 마음으로 믿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는 내가 한 것을 말씀하고 있고 믿음의 행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둘 다 행위입니다

우리가 믿는다고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가 살 수 있게 모든 구속의 일을 이루신 것을 믿는 것이고 그 믿음은 결국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행위를 한 것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이렇게 주님께서 이루신 일을 성경에서 증거를 받아 믿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합니다.

율법도 이를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다는 말씀은 주님께서 율법을 완전케 하신 의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같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은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내가 지키는 것은 율법의 행위가 되는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키신 것은 내가 그것을 믿음으로 해서 자유하게 하는 율법을 가지는 것이고 그것을 주의 형제 야고보는 행함이 있는 믿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차든지,

더웁든지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지키려면 다 지켜서 살고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신 하나님의 의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어 살든지 둘 중에 하나를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도무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사는 방법입니다.

율법을 지켜서 살든지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살든지 둘 중에 하나를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의 행위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을 같이 할 수는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후사이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폐하여졌느니라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무 중요합니다.

우리가 사느냐 죽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그러나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종교 안에서 온갖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두 가지를 하는 것을 성경은 두 남편을 섬기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런 자를 음행을 하는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16,“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미지근합니다.

우리가 물을 먹어서 잘 알고 있습니다. 미지근한 물을 먹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찬 물과 더운 물을 섞어서 먹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교회 안에 율법의 행위도 하고 예수 그리스도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을 보고 주님께서 미지근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은 말씀을 의미합니다.

성경의 문자를 보고 율법의 행위를 하는 것도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성경에서 빌립과 나다나엘과 같이 모세의 율법에서 그리고 여러 선지자의 글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아 믿는 것을 행함이 있는 믿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지만 반드시 행함이 따라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이 행함은 율법을 지키지 않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입니다.

미지근한 물을 좋아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영생을 얻으려면 반드시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의미를 알고 그대로 행해야 합니다. 지금 주님께서는 율법을 지키려면 다 지켜서 그 의로 살든지 아니면 나를 믿어서 내가 지킨 율법의 의, 하나님의 의를 믿어서 살든지 하라는 말씀입니다.

 

두 가지를 함께 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도 믿고 율법도 잘 지키고 하는 것이 사람의 이성에는 너무도 좋게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의 이성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서 우리에게 어떻게 말씀하는 가를 깨닫고 믿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이방의 종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만 율법을 거의 다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이 율법을 지킨다는 것도 모르고 있고 주님의 말씀과 같이 미지근하다는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런 물을 안 드시고 토하여 내치시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온갖 율법을 행위로 하고 있습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우리 성도는 사도 바울의 말씀과 같이 복음을 듣고 있고 그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고 있고 그 의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율법을 완전케 하신 의를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의를 우리 성도는 오직 믿음으로 해서 산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합니다.

주님께서 마태복음에서도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율법을 지키지 말라고 말씀을 하시면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신명기의 율법에서와 같이 주님께 꾸어서 의로운 자가 되어 영생을 얻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17,“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구약의 바알입니다.

풍요의 신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이스라엘이 이 바알을 섬겼다는 것을 우리가 성경에서 보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신약에 와서는 그 바알을 부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부자에 대해서는 주님께서 비유로 많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부자입니다.

재물의 부자를 말씀을 합니까? 그렇다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거부였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다윗 왕과 솔로몬 왕도 그렇습니다. 그들의 구원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습니까? 그런데도 이방의 종교인들은 부자가 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물질로도 부자가 되기를 원하고 있고 율법의 행위로도 부자가 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율법의 행위로 부자가 되어 있는 이방의 종교인들을 대표를 해서 주님께서 한 부자와 거지 나사로를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그 부자가 음부의 고통 중에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한 부자입니다.

이방의 종교인을 대표하는 인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라오디게아 교회에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라오디게아 교회는 율법을 지키는 교회였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가 나는 부자로 하고 있고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말을 하고 있고 그 말은 나는 율법을 잘 지키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어 영생을 얻은 자라고 한다는 말씀입니다.

 

누구입니까?

바로 누가복음에서 말씀을 하는 한 부자입니다. 그리고 주님 앞에 찾아온 청년과 같이 자기가 어려서부터 십계명을 다 지켰다고 하면서 더 부족한 것이 있느냐고 주님께 묻고 근심하여 떠나갔습니다. 그런 그를 보고 주님께서는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 보다 더 어렵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부자는 어떻습니까?

나는 부족한 것이 없다고 말을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자기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고 율법도 잘 지키니까 구원을 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그에게 주님께서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벌거벗었습니다.

구원의 옷을 입지 못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설교에서 말씀을 했기 때문에 굳이 여기서 말씀할 필요가 없습니다. 벌거벗었다는 그 말씀 하나로 그는 구원의 옷을 입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율법을 지킵니까?

교회 안에서 부자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율법을 지키면서 부자가 되어 있는 그들에게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라고 말씀을 하면서 구원의 옷을 입지 못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방의 종교인들은 거의 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18,“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요한복음10:10절을 보면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요한계시록7:13절을 보면

장로 중에 하나가 응답하여 내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뇨

 

요한복음1:9절을 보면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영생입니다.

주님께서는 지금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서 율법주의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영생을 얻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라는 말씀은 금은 생명을 비유로 하는 말씀이고 생명을 얻으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 영생의 말씀입니다.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해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거저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가 구원의 옷을 입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참 빛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생명의 빛으로 오셨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어두움에 있어서 깨닫지를 못해서 영접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이방인들 역시 율법을 지키는 어두움에 있어서 깨닫지를 못해서 참 빛을 성경에서 증거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영생을 얻으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라오디게아 교회를 통해서 이방의 교회가 어떻게 되는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가능성이라도 있지만 종교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그래서 종교를 말씀을 하지 않고 교회를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방인들은 다 종교에 속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생명입니다.

구원의 옷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참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아 영생을 얻으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비유의 말씀을 보면서도 도무지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지를 모르고 있고 이방의 종교는 라오디게아 교회와 같은 모습을 보이면서도 주님께서 말씀을 하시고 성령이 귀 있는 자들에 하시는 말씀을 전혀 들으려 하지 않고 있습니다.

 

부자가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물질적으로 부자를 말씀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교회 안에서 율법의 행위를 함으로 해서 그 의로 부자가 되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단 한 가지라도 율법을 지키는 사람은 전혀 율법을 지키지 않는 거지 나사로에 비해서 부자라는 것을 우리는 바로 깨닫고 주의 형제 야고보의 말씀과 같이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19,“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히브리서12:6절을 보면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사랑하는 자입니다.

주님께서 사랑하는 자는 징계를 하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징계를 받으면 내가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가를 지혜를 구하는 성도가 되어서 회개를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가 징계를 받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징계입니다.

사람마다 다 다르게 받을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징계를 받았기 때문에 지금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겨주심으로 해서 진리의 성령을 보내주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런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이제는 율법을 지키지 않고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실행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회개입니다.

그저 눈물을 흘리면서 도덕적인 죄를 생각을 하면서 회개를 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지금 주님께서 말씀을 하시는 것은 부자가 되어 그러니까 율법을 지킴으로 해서 영생을 얻지 못하는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귀 있는 자가 되어서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듣고 회개를 하라는 말씀이고 그렇게 회개를 한 자는 더 이상 율법을 지키지 않습니다.

 

20,“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요한복음10:3절을 보면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주님의 양입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요한계시록에서는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도입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 양들에게 생명을 얻게 하고 있습니다. 그 생명은 그저 문자적인 생명이 아니라 태초에 있는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방의 종교는 이 생명에 대해서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고 듣지도 않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더불어 먹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보리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시고 유대인들에게 내 살은 생명을 위한 양식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먹어야 하는가 하면 무교병을 먹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은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를 받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렇게 무교병을 먹은 성도에게 성령이 오심으로 생명에 대해서 믿음으로 역사를 한다는 말씀입니다

 

21,“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22,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이기는 그입니다.

계속해서 우리의 이김은 믿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믿음으로 역사를 하는 성도에게는 주님께서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 보좌입니다.

저도 내세의 일은 모릅니다.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적인 표현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우리는 피조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을 얻어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부활의 영광에 참예를 하면 주님께서 아버지 보좌에 앉는 것과 같이 우리도 그 보좌에 앉게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보좌입니다.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저도 잘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창조주 하나님께서 앉으신 보좌에 우리 생명을 얻어 부활에 참예를 하는 성도들도 앉게 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지 말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이 영광의 보좌에 앉는 성도가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