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2강, 집을 정리하고 스스로 목매어 죽으매
사무엘하17:21-23절을 보면
“저희가 간 후에 두 사람이 우물에서 올라와서 다윗 왕에게 이르러 고하여 가로되 당신들은 일어나 빨리 물을 건너가소서 아히도벨이 당신들을 해하려고 여차여차히 모략을 베풀었나이다 다윗이 일어나 모든 백성과 함께 요단을 건널쌔 새벽에 미쳐서 한 사람도 요단을 건너지 못한 자가 없었더라 아히도벨이 자기 모략이 시행되지 못함을 보고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서 자기 집에 이르러 집을 정리하고 스스로 목매어 죽으매 그 아비 묘에 장사되니라”
성경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들의 언어로 성경이 기록이 되어 있다 보니까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너무 쉽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을 인생들이 자기들의 이성적 지식으로 보려고 하고 있고 그런 그들이 종교가 되어 사망의 길로 가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저는 성경을 볼 때 단 한 번도 제 이성적 지식으로 보려고 하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저 역시 종교 안에 있을 때는 그렇게 성경을 보았지만 이제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시고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은 후부터는 제 이성적 지식은 다 버리고 오직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보고 있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입니다.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면 너만 특별하느냐고 할 사람도 있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아니 너만 성령을 받았고 다른 사람들은 성령을 받지 않았느냐고 말할 사람이 있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성령을 어떻게 받는가 하는 것에 대해서는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서냐 믿음으로서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습니까?
아니 쉽게 말을 해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어떤 행위를 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는 율법을 지키는 사람이고 성령을 받은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저는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것을 그대로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지 제 개인의 주장이 아니라는 것을 갈라디아서를 보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입니다
그들이 율법주의에 있는 것을 사도 요한은 주님이 오신 것을 말씀을 하면서 참 빛이 세상에 오셨는데 사람들이 어두움에 있어 깨닫지 못하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만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이방의 종교인들 역시 거의 다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율법을 지키면서도 자기들이 하는 행위를 율법으로 생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참 안타깝습니다.
분명히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으면서도 유대인들이 하는 행위는 율법이라고 하는 그들이 자기들이 종교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하는 행위는 율법이 아니라 믿음이라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고 있고, 다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 평생을 교회 안에서 율법의 행위를 하면서 복음에 복종치 아니하고 있습니다.
빛과 어두움입니다.
우리 성도는 성경에서 이 빛에 대해서 증거를 받고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는 하지만 참 빛을 보는 것이 아니라 율법의 행위를 하면서 어두움에 거하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모든 성경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참 빛에 대해서 증거를 받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은 아무리 성경을 보아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종교 안에서 아무리 믿는다고 해 보아야 그것은 거짓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믿음입니다.
사도 바울은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믿음은 종교적인 믿음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자기들의 종교 안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행위를 보고 그저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세상에서 무당을 믿는 것과 다른 사상을 믿는다고 하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자기가 기록한 성경을 마치면서 마지막으로 하는 말씀이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저에게 있을지어다.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 까지 자라가야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영혼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방의 종교는 이 아는 것에 자라가는 것을 원천적으로 막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신학교에 가면 교회사를 배우는데 그 교회사에서 초기 성도들이 모세의 율법에서 그리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을 알레고리하다고 말을 하고 있고 그런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 까지 자라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누구입니까?
율법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그리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하고 있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저는 이 시대 아니 이제까지 이방의 종교에서 문서로 전해 내려오고 있는 글에서 못 보았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은 영생을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성경을 왜 기록했는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요한복음 5장에서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 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성경이 구약 성경이라는 것을 성경을 보면서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모든 성경은 이 영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영생을 얻을 수 있는가 하면 모든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를 받음으로 해서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의 말씀과 같이 저를 아는 지식에 까지 자라가야 그 아는 것이 든든히 믿음으로 역사를 한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을 왜 봅니까?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보시기 바랍니다. 다른 것 없습니다. 오직 우리는 영생을 얻기 위해서 보고 있습니다. 그 영생이 무엇인가 하면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요한복음 17장3절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종교입니다
그저 자기들의 종교 안에만 있으면 영생을 얻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을 어떻게 얻는지도 모르고 영생을 얻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생을 얻는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지만 이 생명에 대해서도 모르는 그들이 영생을 얻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모르면 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성령을 구하면 하나님께서는 좋은 것으로 주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종교 안에 있는 것으로 자기가 지혜가 있는 것으로 그리고 성령을 받은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실상은 다 이 세상초등학문에 빠져 있으면서도 그것을 아는 것으로 지혜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인물입니다
우리는 그 인물을 보면 안 됩니다. 물론 그 인물을 통해서 말씀을 하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이 비유라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아는 지식이 쌓이고 쌓여 믿음으로 든든히 서서 역사를 하게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인생들입니다.
그저 성경의 문자를 보고 그 인물을 보고 그 인물이 무슨 일을 했는가를 아는 것으로 자기들이 지혜가 있다고 하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다 피조물입니다. 그러니까 유대인들이나 우리 이방인들이나 다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이스라엘을 통해서 우리 이방인들에게 경계로 하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21절,“저희가 간 후에 두 사람이 우물에서 올라와서 다윗 왕에게 이르러 고하여 가로되 당신들은 일어나 빨리 물을 건너가소서 아히도벨이 당신들을 해하려고 여차여차히 모략을 베풀었나이다”
성경을 봤습니까?
사실 성경을 몇 번만 읽어도 충분이 알 수 있는 말씀입니다. 다윗이 이스라엘 왕으로 있을 때의 일입니다. 그의 아들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켜서 다윗 왕을 죽이고 왕이 되려고 하는 것을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씀을 보고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을 하는가 하면 성경을 마치 이스라엘의 역사서나 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것이 이스라엘의 역사를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까? 아니 우리가 이스라엘의 역사를 배워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왜 우리에게 성경을 주셨는가를 모르고 있고 성경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도 모르기 때문에 이런 말씀을 보고 이스라엘의 역사를 하는 것으로 성경을 보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다윗을 알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아니 다윗이 어떻게 살았는가를 알고 또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켜서 결국에는 어떻게 되었는가를 알고 세상에서 우리가 다윗과 같이 살고 압살롬과 같이 살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아니 성경이 그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기록을 했습니까?
정말 이해가 안 됩니다.
그 똑똑하고 지혜가 있다고 하는 사람들이 성경을 그렇게 밖에 못 본다는 것이 저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 세상의 지혜로 성경을 보려고 하다가 모두가 사망의 길로 가고 있지만 사람들은 점점 더 그렇게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10:11절을 보면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
저희에게 당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보내시고 이스라엘을 광야로 인도하시고 그 조상들에게 약속을 하신 그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을 주시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을 보아서 너무도 잘 알고 있듯이 애굽에서 나온 20세 이상 중에서 여호수아와 갈렙 외에는 아무도 천국을 모형으로 하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0장의 말씀입니다.
광야에 나온 이스라엘입니다. 우상숭배를 했습니다. 그들이 간음을 했습니다. 그리고 주를 시험을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이들이 하나님을 원망하다가 멸망을 당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도 다 문자 그대로 보고 있습니다. 우상숭배가 무엇이라는 것도 모르고 그저 이 세상의 조각이 된 형상을 보고 숭배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자기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들입니다.
이미 그리스도편지와 복음과 율법에서 사이트에 설교로 올려드렸습니다. 그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왜 멸망을 당했는가를 쉽게 깨달을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뭐 합니까? 이스라엘도 그렇고 이방의 종교인들도 모두가 그저 성경에서 문자를 자기들의 지식으로 아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고 자기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씀합니다.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또 어떻게 생각을 하고 있는가 하면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와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그러니까 천국을 모형으로 하는 땅에 들어가지 못한 것만 경계로 삼았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경계입니다.
그러나 전혀 경계가 되지 않고 있습니다. 우상숭배가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악을 즐겨하는 자가 무엇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고 간음을 하는 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고 원망을 하고 주를 시험하는 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알아야 경계가 되는 것이지 그 영적인 의미를 모르면 경계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또 중요한 의미입니다.
고린도전서 10장의 말씀을 기록한 것이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행한 것만을 경계로 삼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은 우리 이방인들을 위한 경계라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은 예표와 비유와 그리고 경계를 주기 위해서 그들을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으로 삼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우상숭배가 무엇을 비유로 하는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간음을 하는 것이 무엇을 비유로 하는 말씀인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어떻게 경계가 될 수 있습니까? 저희에게 당한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에게 경계로 기록이 되었다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하는데 이방의 종교인들은 전혀 그렇게 성경을 보고 있지 않습니다.
거울입니다.
비춰서 보라는 말씀입니다. 무슨 말씀인가 하면 이스라엘이 그렇게 했으면 이방인들도 역시 그렇게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고 받아들이라는 사람이 거울로 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거울이라는 의미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말세입니다.
우리 인생들은 다 말세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경계가 되게 하기 위해서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스라엘은 그렇게 했어도 자기들은 성경의 문자를 아는 것으로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성경을 보면 소경이 될 수밖에 없고 이스라엘의 바리새인들과 같이 어두움에 있는 사람들이 되고 만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시편49:4절을 보면
“내가 비유에 내 귀를 기울이고 수금으로 나의 오묘한 말을 풀리로다”
성경입니다.
다시 말씀을 하지만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성경을 보는 우리는 피조물입니다. 성경이 피조물의 문자로 기록이 되어 있다고 해서 그것을 우리가 알 수 있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알 수 있을 것 같으면 성경에서 지혜를 구하라고 말씀을 하지도 않고 또 성령을 구하라고 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오묘한 말씀입니다.
우리 인생들로서는 알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사전적인 뜻도 심오하고 미묘하다고 말을 하고 있고 신의 섭리는 오묘하다. 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피조물로서는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그 의미를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을 먼저 인정을 하는 사람만이 하나님께 성령을 구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비유입니다.
시편의 말씀만 비유가 아니라 거의 모든 말씀이 우리 피조물의 언어로 기록이 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은 비유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언어라면 그대로 비유가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언어는 우리가 알 수도 없고 그래서 피조물의 언어로 기록을 하게 하셨지만 그 말씀이 다 비유라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비유를 모릅니까?
이런 단어 하나하나를 다 사전에서 찾아 말씀을 언제까지 해야 합니까? 물론 우리 성도님들은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편지에서 이 말씀을 처음 보는 사람들은 전혀 이 비유라는 말씀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학문적으로 깊은 책을 보면 그것도 의미를 알기 위해서 노력하는 그들이 이상하게도 성경만 보면 어린아이가 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 인생에게는 깨달을 수 없는 말씀이라는 것을 먼저 알고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문자를 아는 것으로 이 세상 책을 보듯이 성경을 보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어떻게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할 수 있습니까?
다윗 왕입니다
그는 누구를 비유로 하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비유로 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너무도 흔히 있을 일을 지금 다윗과 그의 아들 압살롬을 통해서 우리에게 경계로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윗입니다.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를 하는 왕이라는 말씀을 이제는 굳이 인용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만왕의 왕이시라는 것을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인 다윗은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비유로 하고 있다는 것을 제가 굳이 말씀을 하지 않아도 종교인들까지도 다 알고 있습니다.
그 아들입니다.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키고 있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아들로 오셨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피조물을 아들이라는 의미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압살롬이 왜 반란을 일으켰는가는 성경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것까지 굳이 말씀을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잠언1:32절을 보면
“어리석은 자의 퇴보는 자기를 죽이며 미련한 자의 안일은 자기를 멸망시키려니와”
아히도벨입니다.
그가 누구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는 다윗의 모사 중에 하나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해서 사무엘하16장23절에서 아히도벨이 베푸는 모략은 하나님께 물어 받은 말씀과 일반이라 저의 모든 모략은 다윗과 압살롬에게 이와 같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다윗이 밧세바를 취했습니다. 그럼으로 해서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를 보내셔서 예언을 하게 하셨습니다. 너는 은밀히 이 일을 행하였거니와 네 대적이 일어나 백주에 네 후궁들과 동침하리라는 예언을 하게 하셨고 실제 아히도벨이 압살롬의 반란이 성공을 하는 것과 같으니까 그와 같이 하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예언입니다
그 말씀 그대로 그러니까 문자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저의 모든 모략은 다윗에게나 압살롬에게 하나님께 물어 받은 말씀과 일반으로 생각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만큼 아히도벨의 모략은 대단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알아야 합니다.
아히도벨 그 이름의 뜻이 무엇입니까? 그 이름의 뜻은 우리가 히브리어를 보면알 수 있듯이 나의 형제는 어리석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히도벨은 인간적으로 보면 그가 베푸는 모략은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것과 같지만 실상은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어리석습니까?
계속해서 말씀을 하지만 다윗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를 하는 왕입니다. 그런데 그 왕의 모사 중에 한 사람이었던 아히도벨이 다윗 왕을 배반을 하고 압살롬에게 가서 그의 모사가 되었다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형제라는 그 이름의 뜻과 같다는 말씀입니다.
지금 그가 베푸는 모략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다윗을 죽이려고 하는 모략입니다. 만약에 압살롬이 그의 모략을 따랐다면 다윗은 죽고 말았을 것입니다. 물론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겠지만 그는 그 이름의 뜻과 같이 가장 중요한 왕을 섬기는 일에 있어서 누구를 섬겨야 하는지를 몰랐다는 그 자체가 어리석은 형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을 해할 수 있습니까?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로 하는 왕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예표하는 만왕의 왕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누가 다윗을 해할 수 있고 그 모략을 이룰 수 있습니까? 그런데 아히도벨은 영의 일을 몰랐기 때문에 압살롬에게 가서 자기 어리석음을 나타내다가 결국에는 죽고 말았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을 잘 알아야 합니다.
성경이 그저 이스라엘의 역사인 것으로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우리 영의 일을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성경에 아히도벨과 같은 인물을 말씀을 하고 있는가 하면 이 시대도 역시 니골라당이 있어서 반역을 해서 교회 안에서 왕이 되어 있는 사람들이 있고 또 왕을 만들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다윗 왕이 아닙니다.
그는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를 하는 왕이라는 것을 우리는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저 이스라엘의 왕으로 보고 있고 이 말씀도 그저 인생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아닙니다.
아히도벨은 어리석은 형제입니다. 그러니까 왕이 누구인가를 알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잠언에서는 어리석은 자의 퇴보는 자기를 죽이며 미련한 자의 안일은 자기를 멸망시킨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실제 이 말씀과 같이 아히도벨은 자기 모략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보고 스스로 목을 매어 죽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을 섬겼던 사람입니다.
그러면서도 자기의 왕이 누군지를 모르는 어리석음에 빠져 있습니다. 아무리 그의 아들 압살롬이라고 해도 그는 다윗 왕을 대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서 피조물들은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할 수 없는데 아히도벨은 어리석은 자가 되어서 자기가 섬기던 왕인 다윗을 배신을 했습니다.
그것은 퇴보입니다.
그런 자의 모략은 자기를 죽인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왕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가 교회 안에서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왕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인생들은 어리석어서 이 시대도 니골라당이 되어 있고 그를 따르는 자들이 그러니까 아히도벨과 같이 모략을 베풀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어리석은 자입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 어리석은 자가 얼마나 많이 있는가를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말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왕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실상은 압살롬과 같은 자를 섬기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교회 안에서 지혜가 있다고 하지만 실상은 어리석은 자라는 말씀입니다.
“다윗이 일어나 모든 백성과 함께 요단을 건널쌔 새벽에 미쳐서 한 사람도 요단을 건너지 못한 자가 없었더라”
비유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그 비유의 말씀을 잘 보아야 합니다. 다윗은 죽을 수 없는 왕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아니 다윗 왕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를 하고 있고 그래서 비유적으로 새벽에 미쳐서 한 사람도 요단을 건너지 못한 자는 없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구와 함께 있어야 합니까?
우리는 다윗과 함께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에서 복음에 대적을 하는 자들이 나온다 해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는 한 사람도 죽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적으로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다윗이 아닌 그 누구도 왕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성경에서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압살롬입니다.
그리고 아히도벨입니다. 그가 아무리 압살롬에게 모략을 베푼다 해도 다윗에게 속한 자를 죽일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비유를 통해서 우리가 예수 안에 있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이런 비유의 말씀을 보아도 도무지 무슨 말씀을 하는지를 모르고 그저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는 것 같이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왕입니다.
그 외에는 어느 누구도 왕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우리 영의 일에 있어서 왕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분이시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런 말씀을 보고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22:16절을 보면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거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하시더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광명한 새벽 별을 의미를 하고 있다는 것을 요한계시록에서 사도 요한이 환상으로 보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마치면서 마지막으로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고 사무엘하에서도 그것을 의미를 해서 새벽에 미쳐서 한 사람도 요단을 건너지 못한 자가 없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의미입니다.
우리 성도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를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고 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 역시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만 다윗에게 속한 자로 있기 보다는 율법의 행위에 속한 자가 더 많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히도벨입니다.
그의 모략은 실행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의 행위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을 받는데 있어서 우리에게는 다윗 왕과 같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고 또 율법의 행위 아래 있는 자가 있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새벽입니다
호세아 선지자도 우리에게 거의 비슷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분명히 유일하신 하나님입니다 그분에게 속한 자만이 죽지 않고 살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왕을 세우려고 하는 자는 다 죽는다는 것을 압살롬의 반역을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지만 이방인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다른 왕이 무엇인가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압살롬입니까?
분명히 그가 이기는 싸움이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아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사단 역시 유대인들을 감동을 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에서 죽이면 그것으로 끝이 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하나님께서는 영으로 부활을 하심으로 해서 우리에게 그 영의 생명을 얻게 하시는 놀라운 비밀을 감추어 주셨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잘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이스라엘은 교회를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윗도 하나님을 믿는 왕이고 압살롬 역시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 그렇게 교회 안에서 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고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다는 것을 우리가 바로 분별해야 합니다. 분명히 교회 안에는 다윗에 속한 자가 있고 압살롬에게 속한 자가 있습니다.
23절,“아히도벨이 자기 모략이 시행되지 못함을 보고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서 자기 집에 이르러 집을 정리하고 스스로 목매어 죽으매 그 아비 묘에 장사되니라”
아히도벨입니다.
그는 그 이름의 뜻에서 이미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어리석은 형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아히도벨의 이름 자체도 그렇지만 다윗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를 하는 왕이기 때문에 아무리 아히도벨의 모략이 뛰어나다 해도 그것이 실행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왕입니다.
우리는 이 왕의 의미를 잘 알아야 합니다. 아무나 왕이 될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만왕의 왕이시고 평강의 왕이심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왕이 있는데 다른 왕이 세워질 수 있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윗이 질 수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질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미 창세 전부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예정을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은 사도 요한에게 환상으로 보여 주신 요한계시록의 말씀까지 다 이루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 이루셨습니다.
그분은 오직 이스라엘의 왕이심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는 왕과 같은 자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모략을 베푸는 자들은 반드시 망하게 된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잠언21:30절을 보면
“지혜로도, 명철로도, 모략으로도 여호와를 당치 못하느니라”
그가 아히도벨과 같습니까?
아니 이 시대 정말 지혜 있는 자와 같이 보이는 사람이 있습니까? 우리는 그런 것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종교 안에 들어가는 소자들은 사람의 지혜에 명철에 그리고 모략에 다 속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에서 니골라당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니골라는 백성의 지배자라는 뜻이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 종교 안에서는 정말 왕과 같이 행세를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소자들은 그런 왕과 같은 자들의 말에 그대로 굴복을 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그들은 소자고 종교의 세력은 너무도 거대하기 때문입니다
아히도벨의 모략입니다.
앞에서 16장의 말씀을 했습니다. 그의 모략은 다윗에게나 압살롬에게나 하나님께 물어 받은 모략과 일반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그럴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믿는 유일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어느 모략도 당치 못한다는 것을 잠언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모략이 실행이 됩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아히도벨을 통해서 그리고 압살롬이라는 왕을 통해서 어느 누가 교회 안에서 왕이 되려고 한다 해도 그것이 실행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이 말씀을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만이 왕이라는 것을 다윗을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방의 종교 안에는 니골라당과 같은 자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이 왕과 같이 행세를 하는 것은 마치 아히도벨의 모략을 받아서 압살롬이 왕이 되려고 하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러나 그들이 아무리 세상에서 왕 노릇한다고 해도 그것은 스스로를 죽이는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요한일서5:12절을 보면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성경입니다.
영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왕이 된다는 것은 이 영생을 얻는 것을 의미를 한다고 말씀을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두 가지를 통해서 영생을 얻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윗 왕은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입니다.
그리고 아히도벨은 우리 인생의 본성에 따르는 모략입니다. 그 모략이 무엇인가 하면 율법을 지켜서 의롭다 하심을 받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교회 안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 성도가 있고 아히도벨의 모략을 따르는 것과 같이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압살롬입니다.
그가 왕이 되지 못한다는 것은 생명을 얻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를 하고 있습니다. 아히도벨의 모략을 받아 들였다면 그러니까 율법을 다 지켰다면 생명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히도벨의 모약은 처음부터 실행이 되지 못하는 모략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압살롬이 왕이 되지 못하니까 아히도벨은 자기가 영생을 얻지 못한 것을 알고 스스로 목매어 죽으매 그 아비 묘에 장사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고향으로 돌아가서,
우리 고향이 어디입니까? 우리는 흙으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아히도벨은 다윗의 편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가 아무리 모략을 잘 베풀었다고 해도 그것은 시행이 되지 못 합니다. 처음부터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우리 성도들을 예정을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이 없습니까?
그는 어차피 흙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아히도벨이 목매어 죽어 그 아비의 묘에 장사가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알아야 하는 말씀입니다.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이 없다면 그는 어차피 죽어서 흙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른 왕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왕입니다. 그 왕에 대해서 사도 요한은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생명을 얻으려면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하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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