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찌어다(계20:9.)

은혜와 진리의 말씀

791강, 내 신음하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윤주만목사 2021. 1. 25. 06:30

791강, 내 신음하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시편22:1-3절을 보면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옵시며 내 신음하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치 아니하오나 응답지 아니하시나이다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성경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에게 성경을 주셨습니다. 왜 성경을 우리에게 주셨는가 하면 이 성경을 보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얻게 하기 위해서 성경을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 믿음으로 역사를 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입니다

다른 것 없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주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저 자기들의 종교 안에 있는 것을 보고 그 안에서 하는 행위를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늘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를 믿는다는 것은 그에 대해서 아주 잘 알고 있다는 말과 같습니다. 만약에 그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믿는다고 하면 결국에는 그에게 이용을 당하게 되고 사기를 당해서 육체적으로 엄청난 고통이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저 역시 인생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말을 쉽게 믿고 있습니다. 지금은 잘 안 믿고 있는 편이지만 예전에는 가능한 사람의 말을 믿으려고 했던 것으로 기억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맹목적인 믿음을 좋은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었고 그래서 정말 큰 해를 입게 되었고 인간적으로는 제가 그런 일을 겪고 난 후에 제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인생입니다

너무 쉽게 생각을 하면서 믿는다고 하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인생과 인생과의 관계에서만 그치면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잠시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와 같은 인생이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생의 문제입니다

우주의 빅뱅입니다 138억년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창조에 속한 것을 과학자들이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창조에 속하지 않은 하나님의 나라는 사실 시간적 개념으로 이야기를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도 하나님에 대해서 알파와 오메가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시작과 끝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입니다

예수 안에 있는 그러니까 태초에 있는 생명을 얻는 일이라고 성경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생명을 얻는 일에 있어서 속고 있다면 그는 너무도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성경의 예표를 보아서 잘 알고 있듯이 바다 모래 같은 많은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만 남은 자만 구원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생들은 애써 그런 말씀들을 무시를 하고 있고 아예 보려고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안 믿었다는 것을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방인들은 유대인들은 그랬어도 자기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고 너무도 순진하게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을 봅니다.

그러면 우리는 성경에서 가능한 할 수 있는데 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아야 합니다. 분명히 모세의 율법에서 그리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방의 종교인들은 유대인들과 같이 전혀 그렇게 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우리는 인생입니다

다 안다고 해도 사실 믿는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설령 성경의 모든 비밀을 다 안다고 해도 우리 인생의 이성적 지식으로는 믿을 수 없다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시고 있고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게 하고 있고 믿음으로 역사를 하게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방의 종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성경에서 전혀 증거를 받지 않고 있으면서도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들이 무엇을 믿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저 역시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기 전에는 그들과 같은 본성을 따라 살아가고 있었던 사람이라는 것에 있어서는 부정하고 싶지 않습니다.

 

종교입니다

저 역시 종교인으로 오랜 세월을 살았습니다. 그것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할 말이 없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 역시 그가 바리새인으로 살았던 것을 고백을 하는 것을 성경에서 볼 수 있습니다. 당시 하나님을 가장 잘 믿는다고 자타가 인정을 하고 있고 당시 지성이라고 할 수 있는 사도 바울도 본성에 따라 종교 안에서 살았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인생입니다

그리고 종교는 너무도 거대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성경에는 이방의 종교에서 대해서는 거의 말씀을 하지 않고 있고 비유로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종교에 대해서 거의 개념이 없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유대교를 통해서 종교에 대해서 우리에게 충분하게 말씀을 하고 있지만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사람에게는 없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자기가 종교인이라는 것을 아주 자랑스럽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종교인이 아닙니다. 물론 성경에서 그리스도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종교인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종교인이라고 하는 것은 유대인들이 유대교인들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방의 종교입니다

그것과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그리스도인, 그리스도의 사람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가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것을 그러니까 종교인이라고 하는 것을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을 하고 있고 그 종교인이 되는 것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조차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종교는 교리가 있습니다.

그것을 성경에서는 바리새인과 사도개인의 교훈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누룩이라고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의 사람은 그런 교훈을 가지고 있지 않고 우리는 오직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을 증거를 받고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이해가 안 됩니까?

말장난을 하는 것과 같이 생각이 됩니까? 그러나 우리는 반드시 종교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왜 종교인이 되어서는 안 되는가 하면 그들은 자기들의 교리가 있습니다. 그 교리에 따라 성경을 보기 때문에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을 수 없고 그러면 그는 평생을 주여 주여 하면서 살았다 해도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구원입니다

너무도 중요합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우리 피조물들을 창조하신 목적을 우리는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이 구원이 없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 피조물을 창조하시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종교인들은 주님의 말씀과 같이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이 오셨을 때입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종교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유대교인들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이스라엘에 오셨지만 그들은 주님을 영접하지도 않았고 도리어 대적을 하고 핍박을 하다가 결국에는 자기 땅에 오신 하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악을 행하고 말았다는 것을 성경에서 우리가 보고 있습니다.

 

종교인들입니다

그들에게는 구원이 없다는 것을 이미 마태복음에서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성경을 그저 문자적으로만 보고 당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만 하는 말씀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은 신약 성경을 아예 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면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누구에게 하는 말씀인가를 쉽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그저 종교 안에 들어가서 믿는다고 하는 것으로 다수의 사람들이 가고 있는 것을 보고 자기도 믿는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려면 반드시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를 받는 성도만이 믿음으로 역사를 할 수 있습니다.

 

1절,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옵시며 내 신음하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다윗입니다

그가 누구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굳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라고 해도 이 시대는 그 정도의 지식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다윗이 쓴 시편을 보면서 다윗을 아는 것과 같이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그저 이 세상초등학문에 빠져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비유입니다

그리고 예표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윗에 대해서는 굳이 제가 말씀을 안 드려도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를 하는 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정도도 모르고 성경을 본다면 그는 차라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22:16절을 보면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거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하시더라”

 

다윗입니다

이스라엘의 왕이었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를 하는 왕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다윗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 보여주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실제 우리가 다윗의 시편을 보면 거의 다 예수 그리스도를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이방의 종교인들은 다윗이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를 하는 왕이라는 것까지는 인정을 하고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입니다. 그러면 다윗이 쓴 시편이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는데 전혀 그렇게 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나는 다윗의 뿌리라고 말씀합니다.

그 말씀은 다윗과 같은 왕으로 오셨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다윗은 예수 그리스도를 비유로 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성경을 보고 깨달아야 합니다. 그렇게 다윗의 기록한 시편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아야 하는데 전혀 그렇게 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물론 몇 가지는 봅니다.

그것도 성경에 인용을 한 말씀과 신학자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각주를 달라 놓은 것을 그렇게 보고 있고 다른 말씀에 대해서는 전혀 그렇게 보고 있지를 않는 것이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럼으로 해서 아무리 성경을 보아도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지 못하고 있고 증거를 받지 못해서 알지 못하니까 믿음으로 역사를 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인간 다윗입니까?

그가 물론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인간 다윗을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그 다윗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아야 합니다. 그럼으로 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는데 전혀 그렇게 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입니다

거의 마지막 말씀이라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거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하시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정도의 말씀을 보았으면 다윗이 기록한 시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나타내 보이시는 말씀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시편의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과 인간 다윗에 대한 말씀이 같이 있다는 것을 우리가 성경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시편22편은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실 때를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누구라도 쉽게 알 수 있는 말씀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주님께서는 우리와 같은 종의 형체를 입고 오셨습니다. 그 종의 형체를 입고 오신 것을 말씀을 하기도 하고 있고 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저희가 나를 주목하여 보고 내 겉옷을 나누며 내 속옷을 제비 뽑는다는 이 말씀 그대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우리가 신약 성경에서 보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다윗과 같은 왕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부활을 하시고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을 말씀을 하시면서 만왕의 왕이심을 요한계시록에서 사도 요한에게 환상으로 보여 주시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시편은 우리와 같은 인생의 형체를 입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요한복음20:17절을 보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신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유일하신 하나님이심을 우리는 요한복음에서 충분히 증거를 받고 있고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동등됨으로 취하시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동등됨으로 취하시지 않았는가 하면 우리 창조에 속한 세상에 오셨을 때는 하나님으로 불리 우시는 것을 하지 않았습니다.

 

요한복음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요한복음 강해를 하면서 충분히 말씀을 할 예정이기 때문에 굳이 여기서 다시 말씀을 할 필요성은 없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분이 유일하신 하나님이심을 믿으면 되고 또 그분은 우리 종의 형체를 입고 오셨을 때는 하나님이라고 하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말씀은 주님이 부활하시고 난 후에 일이지만 마르다에게 종의 형체를 입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로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분명히 유일하신 하나님이심을 모든 성경에서 증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이 종의 형체를 입고 오셨을 때는 그분도 우리와 같이 하나님이라고 부르신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시편을 통해서도 그것을 그대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이 성경말씀을 보아야 합니다.

 

그분은 예표입니다

우리는 정말 성경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분은 우리 종의 형체를 입고 오셔서 하나님으로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일을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우리 인생들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에 대해서 그 모형을 그러니까 천국에 들어가는 길을 보여주셨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두 가지의 모형입니다

인생의 입장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한 가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종의 형체를 입고 오셔서 우리에게 생명을 얻게 하시는 모든 구속의 일을 이루시는 일에 있어서 모형으로 보여주시고 있다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내 하나님이여

시편에서 내 하나님이여 반복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앞에서 이미 말씀을 했지만 시편22편은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달리시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종의 형체를 입고 오셔서 구속의 일을 이루시는 입장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분명히 하나님의 본체십니다. 그러나 종의 형체를 입고 오셔서 구속을 이루실 때는 우리 인생으로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인생으로 오셔서 구속을 이루실 때를 아들이라고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고 우리 역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15:34절을 보면

“제 구 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본입니다

우리는 이 본을 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시편의 말씀을 보면서도 이 본에 대해서 애써 무시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니 자기들이 하나님을 믿으면 모든 것에 있어서 하나님이 도와주시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종의 형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하셨습니까? 우리는 성경에서 증거를 받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달리셔서 로마의 병사들이 겉옷을 나누고 그 속옷을 제비 뽑을 때 하나님께서 주님을 버리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인생입니다

아니 종의 형체입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도와주십니까? 우리는 성경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죄가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도 버리신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이방에 복음이 전해지고 난 후에 성도들이 죽임을 당할 때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육체를 버리셨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 시대를 보시기 바랍니다. 육체의 생명이 달린 문제에서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냥 버리셨는데 아무 것도 아닌 자기들의 육체의 문제를 버리지 않고 응답을 해 주신다고 믿고 있습니다. 아니 그런 간증을 하고 있고 그런 일에 있으면 기도 응답을 받아야 믿음이 있는 성도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입니다

주님도 버리셨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왜 주님도 버리셨는가 하면 종의 형체를 입고 오신 주님이시라 할지라도 그 종의 형체는 거룩하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기 위해서 버리셨다는 말씀입니다.

 

주님만 버리셨습니까?

세례 요한도 버리셨습니다. 그리고 사도들도 거의 다 버리셨습니다. 초기 이방에 복음이 전해지고 난 후에 믿은 성도들 역시 그 육체가 죽임을 당할 때 버리셨습니다. 왜 버리셨는가 하면 우리 피조물은 헛것이기 때문에 버리시고 참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서 버리셨고 주님을 버리심으로 해서 태초에 있는 생명을 우리 피조물들이 얻을 수 있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겨우 육체의 일입니까?

육체의 생명도 버리신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 종교인들은 자기들의 육체의 일을 하나님께서 버리지 않고 도와주신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육체까지도 버리신 하나님께서 우리 헛것과 같은 인생의 일에 관여를 하신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아니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영의 일을 전혀 모르고 하나님 나라를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지금의 종교입니다.

그들이 얼마나 많은 간증이라는 것을 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기도 응답을 받았다고 하면서 자랑을 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과연 성경적이라고 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우리는 정말 깊이 생각을 해야 합니다. 주님의 육체의 생명도 버리신 하나님께서 이 시대 종교인들의 육체의 일을 버리시지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모순된 일인가를 알아야 하는데 그저 탐욕에 찌들어 있습니다.

 

마가복음14:36절을 보면

“가라사대 아바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겟세마네 동산입니다

주님께서 기도를 하시던 곳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주님께서 모든 구속의 일을 이루시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시고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아무리 하나님이시라 해도 역시 우리 종의 형체를 입고 오셨기 때문에 우리와 같은 고통을 당하신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기도를 하십니다.

가라사대 아바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라고 기도를 하시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주님을 멀리 하여 돕지 아니하셨습니다.

 

왜 돕지 않으셨습니까?

주님께서는 모든 구속의 일을 이루셔야 우리가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만약에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이 세상 죄를 지고 가시지 않고 그리고 하나님으로 부활을 하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도 구원을 받을 수 없고 그러면 태초에 창조하신 목적대로 하나님 나라를 이루실 수 없기 때문에 돕지 않으셨다는 말씀입니다.

 

계속 말씀합니다.

주님만 돕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초기 이방에 복음이 전해지고 그들이 얼마나 많이 죽임을 당했는가를 잘 알고 있습니다. 사자와 맹수의 밥이 되고 그리고 십자가에서 화형을 당하는 일이 있었지만 다니엘과 그 친구들과 같이 돕지 않으셨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돕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주님을 통해서 돕지 않으신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 종교인들은 자기들의 아주 사소한 문제까지 하나님께서 도와주신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성경말씀과는 전혀 반대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을 마치 세상의 무당을 믿는 것과 같이 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실 때 왜 창조를 하셨는가 하면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기 위해서 창조하셨습니다. 그 나라를 이루시려면 주님의 육체를 도와주시면 안 됩니다. 아니 주님을 통해서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고 우리 피조물이 헛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시고 있고 도와주시지 않는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종교입니다

기도 응답을 받아야 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야 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비 성경적인가를 알아야 하는데 그저 눈앞에 있는 떡이 맛있게 보이는 인생들은 내세의 일을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22:44절을 보면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 방울같이 되더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유일하신 하나님입니다. 우리는 그분을 통해서 그분이 가신 길을 그대로 따라가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물론 우리가 십자가형을 받으라는 말씀이 아니라 주님께서 이루신 일을 믿음으로 따라가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기도입니다

누가복음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 방울같이 되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이 같이 기도를 해 본 사람이 있습니까? 저 역시 예전에 종교 안에 있을 때는 밤을 세워가면서 기도를 해 보았지만 이 정도까지는 못 했습니다

 

십자가의 고통입니다

정말 이 고통을 주님께서는 인간적으로는 피하고 싶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땀이 핏방울이 되어서 떨어질 정도로 기도를 하셨지만 하나님께서는 창조하신 목적대로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기 위해서 주님의 신음소리를 듣지 않으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도응답입니까?

주님의 육체의 일입니다. 그 기도를 땀이 피가 되어 땅에 떨어질 정도로 기도를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주님의 신음하시는 소리를 듣지 않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이렇게 하라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이고 우리는 믿음으로 역사를 함으로 해서 주님과 같이 생명으로 부활을 한다는 말씀입니다.

 

종교인들입니다

그들이 얼마나 모순된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 하는 기도가 다 불의 삯을 위해서 기도를 하고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고 그런 그들의 기도를 사단이 들어주고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육체의 일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는다는 것을 주님을 통해서 우리는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기도를 들어주십니까?

다 바알의 사상에서 나온 생각이라는 것을 우리는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영의 일을 깨닫고 하나님 나라를 믿는 성도라면 우리 인생들의 일을 하나님께서는 전혀 관여를 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지만 종교는 마치 무당들과 같이 그런 기도를 하고 있고 응답을 받았다고 하면서 간증까지 하고 있고 그런 것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예표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이 가야 하는 길을 이 세상에 오셔서 구속의 일을 이루시면서 그대로 보여주시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물론 우리는 주님께서 가신 그대로 육체대로 가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서 증거를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함으로 해서 영생을 얻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왜 길이라고 말씀을 하는가 하면 바로 이런 말씀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생을 얻는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그것을 우리가 육체로 그분을 따라 할 수는 없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역사를 함으로 해서 내 안에 예수의 생명을 얻은 자가 되고 구원을 받는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성경을 보면서도 도무지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습니까? 아니 심지어는 이런 말씀을 보고 자기들도 이렇게 주님과 같이 기도를 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실제 많은 사람들이 주님과 같이 40일 금식 기도를 하고 있고 그런 기도를 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2절,“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치 아니하오나 응답지 아니하시나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충분히 증거를 받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도 우리 종의 형체를 입고 오셨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으로 해서 이 잔을 피할 수 있으면 그렇게 하기를 원하셨지만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해 달라고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육체입니다

주님의 육체입니다. 우리는 그 육체가 어떻게 되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럼으로 해서 우리는 영의 생명을 깨달을 수 있고 그 영의 생명을 얻은 자 되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의 본을 보여주시는 것을 다윗이 시편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3:18절을 보면

“그리스도께서도 한 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독생하신 하나님이라고 사도 요한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분이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 피조물들에게 생명을 얻게 하는 모든 구속의 일을 보여주셨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구원을 받는 본을 보여주셨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고 믿음으로 역사를 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육체입니다

인생은 이 육체의 혈과 정에 매여 있습니다. 그래서 이방의 종교인들 역시 자기들의 신체가 구원을 받는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 모든 종교가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고 종교가 없는 사람들 역시 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입니다

이 신체는 죽으면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티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먼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먼지와 같은 형체를 입고 오신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깨달아야 하고 그분을 통해서 우리 육체가 어떻게 되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시편의 말씀입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치 아니하오나 응답지 아니하시나이다.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시편22편은 뒤에 있는 말씀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누구나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앞에 있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의 말씀이라는 것을 사람들이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주님도 인생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 육체는 죽임을 당하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시편에서는 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치 아니하오나 응답지 아니하시나이다. 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사도 베드로는 그리스도께서도 한 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입니까?

그 어느 문제도 응답지 아니하신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육체의 생명도 응답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데 이 시대 종교인들은 자기들의 사소한 문제도 응답을 해 주신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어리석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를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응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으로 해서 영으로 살리심을 받았는데 이 영이 생명이라는 말씀이고 태초에 있는 생명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이제 주님께서 부활을 하심으로 해서 하나님으로 되셨다는 것을 요한계시록에서 충분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영의 일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주님도 응답지 아니하셨습니다.

 

3절,“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정말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육체의 생명도 응답지 아니하셨습니다. 주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초기 복음을 듣고 믿은 이방인들 역시 응답지 아니하셨다는 것을 요한계시록에서 목 베임을 받은 자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종교인들은 자기들의 육체의 일을 응답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응답지 아니하셨습니다.

그리고 시편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 이스라엘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표면적 유대인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면적 유대인 그러니까 영의 생명을 얻은 자들을 이스라엘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영의 생명입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응답지 아니하셨습니다. 그럼으로 해서 주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 지낸 뒤 삼일 만에 영으로 그러니까 태초에 있는 생명으로 부활을 하셨다는 말씀이고 그것을 시편에서는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다.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입니다

예수의 생명을 얻는 자가 가는 하나님 나라를 사도 요한이 환상으로 보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거룩하신 하나님으로 부활을 하셨다는 것을 시편에서 이미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런 말씀을 보고도 도무지 무슨 말씀인가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4:8절을 보면

“네 생물이 각각 여섯 날개가 있고 그 안과 주위에 눈이 가득하더라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 하고”

 

거룩하신 하나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고 하늘에 올라가셨습니다. 사도 요한이 환상으로 보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네 생물이 각각 여섯 날개가 있고 그 안과 주위에 눈이 가득하더라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장차 오실 자입니다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 요한은 환상으로 보고 있는 하나님이 장차 오실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시편은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를 해 주고 있지만 사람들이 성경을 보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이 이 세상에 우리 종의 형체를 입고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구원하시는 구속의 일을 이루셨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이런 모든 말씀에서 증거를 받음으로 해서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을 얻어 거룩하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본으로 우리에게 보여주시고 있다는 것을 믿어 구원을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