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2강,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사도행전 17:10-15절을 보면
“밤에 형제들이 곧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보내니 저희가 이르러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니라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들이 바울이 하나님 말씀을 베뢰아에서도 전하는 줄을 알고 거기도 가서 무리를 움직여 소동케 하거늘 형제들이 곧 바울을 내어 보내어 바다까지 가게 하되 실라와 디모데는 아직 거기 유하더라 바울을 인도하는 사람들이 데리고 아덴까지 이르러 바울에게서 실라와 디모데를 자기에게로 속히 오게 하라는 명을 받고 떠나니라”
복음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인생들에게 복된 분입니다, 만약에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지 않았다면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태어나지도 않고 어둠속으로 묻혀 버리고 말았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을 사랑하셔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속의 은혜로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시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입니다,
그보다 더 귀한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기독교라는 종교가 태동하면서 교회는 더 이상 진리를 전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미 초대 교회를 지나오면서 교회는 타락의 길로 들어갔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그 타락한 교회가 교리를 만들고 그들이 만든 신학이 이제까지 발전을 하고 계승을 하다 보니까 지금 이 시대는 진리에서 완전히 벗어났습니다,
복음이 있습니까?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시대는 교인들이 복음이 무엇인지 다른 복음이 무엇인지도 분별이 안 되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듣고 있다고 하는 그 복음이 다른 복음이라는 것을 모르고 그저 복음이라고 하면 그런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종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너무도 거대한 세력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이제 이 세상 어느 누구도 교회에 대해서 함부로 말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닙니다, 공산주의국가가 아니고 민주주의 국가라고 하는 이 세상의 모든 나라는 교회의 눈치를 보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너무도 거대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교회가 정통이라고 하다 보니까 이제는 어느 누구도 이 교회에 대해서 함부로 이야기를 할 수 없게 되었고 그런 교회는 더욱 타락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만 보아도 교회가 정치까지도 좌지우지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약자가 아니라 강한 자의 편에 서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초대 교회를 보시기 바랍니다,
아니 이제까지 성경에서 이스라엘을 보시기 바랍니다. 진리를 가지고 있는 선지자들이 언제 강자의 편에 서 있었는가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지만, 교회는 점점 더 강해지려고 그 세력을 키우는데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 있는 교인들이 너무도 거대한 교회의 세력을 보면서 감히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까?
이미 이 시대는 성경도 필요 없는 시대가 되었다고 해도 별로 틀리지 않습니다, 그저 자기들의 종교를 위해서 필요한 것이지 만약에 모두가 합의만 된다면 성경도 언제든지 버릴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설령 성경에 대해서 가르친다 해도 이스라엘의 바리새인과 다를 것이 없이 그저 성경의 문자를 보고 이해하려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안 봅니다,
설령 그들이 성경을 본다 해도 아무 의미가 없게 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어려서부터 성경을 보고 외울 정도로 알았지만, 그들은 성경에서 진리를 안 것이 아니라 다른 복음에 미혹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다른 복음을 들으면서도 그것을 진리로 알고 있습니다,
성경을 배우면 뭐 합니까?
그 성경에서 문자를 아는 것은 그저 이 세상의 초등학문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학력이 높아지다 보니까 교인들도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배우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원어의 뜻을 안다고 하면서 그것을 배우면서 도리어 이 세상 지식으로 부자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겸손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히브리어나 헬라어를 거의 안 보고 있습니다, 물론 필요할 때는 그 단어의 뜻을 알려고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주어진 한글개역성경만 보아도 충분히 성경에서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영생을 얻기 위해서 본다면 얼마든지 영생을 얻을 수 있지만, 이 시대는 그것이 자기들의 지식이 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는 성경을 성경으로 보고 있지를 않습니다, 성경을 자기 이성적 지식에 맞추어서 보고 있습니다, 목사들부터가 성경을 성경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신학교에서 배운 것에 맞추어서 성경을 보기 때문에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목사만 그렇습니까?
교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가 이제까지 교회 안에서 배워온 성경적 지식을 가지고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무모한 일인가를 모르고 자기 영혼이 어디로 가고 있는 줄을 모르고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특히 이 시대 편찬이 되고 있는 성경에는 관주가 달려 있고 성경에 제목이 있어서 그것을 마치 성경처럼 보고 있어서 더 문제가 심각합니다,
베드로후서 3:16절을 보면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굳세지 못한 상태에서 성경을 보다 보니까 이것이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무엇에 굳세어야 하는가 하면 믿음에 굳세게 서 있어야 하는데 이 시대는 믿음이 무엇이라는 것조차 모르고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성경은 믿음에 굳세게 서게 가르쳐 주고 있지만 믿음을 모르다 보니까 억지로 성경을 풀고 있습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이 믿음의 비밀을 모르고 성경을 보는 사람은 다 굳세지 못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누가 굳세지 못한 사람인가 하면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이 굳세지 못하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율법 중에 어느 한 가지라도 지키고 있다면 그는 억지로 성경을 풀고 있는 사람입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지 있지 않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것이라도 삼가 지키고 있는 것이 있다면 그는 성경을 억지로 풀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내가 성경을 바로 보고 있는가 아니면 억지로 보고 있는가를 알 수 있는 가장 기초가 무엇인가 하면 율법을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을 주의 깊게 보시기 바랍니다,
베드로후서에서 멸망당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밖에 있는 사람이 멸망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멸망을 당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 밖에 있는 사람은 성경을 풀려고도 하지 않고 보지도 않고 있습니다,
종입니다,
율법의 어느 한 가지 행위라도 지키고 있다면 그는 종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고 왜 율법을 지키고 있는가 하면 성경을 억지로 풀고 있기 때문에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믿음에 굳세게 서지 못하고 있는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다 율법을 지키고 있다고 보면 맞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성경을 보면서 율법의 행위에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억지로 풀지 마시기 바랍니다,
믿음이 아닌 율법의 행위로 성경을 보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믿음을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성경을 보고 율법의 행위에 빠져 들어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시대 율법을 지키지 않는 교회가 하나도 없다는 것만 보아도 사람들이 성경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신학에서 율법을 지켜야 하는 것으로 배웠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가르치는 말을 수십 년째 들으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상에 이미 머릿속에 세뇌가 되어 있고 그 사람이 성경을 본다면 100% 율법을 지키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보면 뭐 합니까?
이미 그들의 머릿속에서는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는 아무리 성경을 많이 본다고 해도 역시 율법을 지킬 수밖에 없습니다, 수십 년 아니 수백 년 아니 이방의 교회에 복음을 전했을 때부터 2000년 가까이 교회는 율법을 지키는 것을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왜 율법을 지켰습니까?
그들이 성경을 보고 율법을 지켰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도 역시 성경을 보고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율법을 지키지 말아야 하는데 모든 사람은 성경을 보고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믿음을 모르다 보니까 굳세게 서지 못해서 율법의 종이 되어서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을 바로 보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자기 조상의 유전을 따라 율법을 지킨 것과 같이 이 시대 이방의 교회도 교회의 교리를 따라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주님 앞에서도 당당했던 것과 같이 이방의 교회도 역시 율법을 지키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고 하나님을 믿는 성도의 행위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10절, “밤에 형제들이 곧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보내니 저희가 이르러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니라”
새번역입니다,
“신도들은 곧 바로 그날 밤으로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보냈다. 두 사람은 거기에 이르러서, 유대 사람의 회당으로 들어갔다.”
사도 바울입니다.
이방의 교회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가장 반대를 했던 사람들이 유대인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방에 복음을 전하러 가서 그곳에 있는 유대인의 회당에 먼저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래도 유대인들이 성경을 알고 있기 때문에 복음을 전하는 것이 이방인들 보다는 더 쉬웠을 것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이 쉽지가 않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쉽지 안을 수 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성경을 보고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쉬운 일입니다,
사도 바울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방에 갔을 때 가장 먼저 찾은 곳이 바로 유대인의 회당이었습니다, 그들은 성경을 보고 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그 성경에서 말씀을 전하면 받아들이는 이 세상 흔히 하는 말로 맨땅에 헤딩하는 것보다는 더 쉬웠을 것이 분명합니다, 구약 성경을 보고 그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면 그들이 받아들이기가 쉬웠습니다,
그래서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갔습니다,
유대인들은 그래도 성경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이제까지 율법을 보고 문자 그대로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문자가 그림자라는 것을 가르치면서 그 안에 담겨져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전하면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22:5절을 보면
“사람이 밭에서나 포도원에서 먹이다가 그 짐승을 놓아서 남의 밭에서 먹게 하면 자기 밭의 제일 좋은 것과 자기 포도원의 제일 좋은 것으로 배상할지니라”
유대인들이 알고 있는 율법입니다,
이방인들은 성경은 안 보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율법이 있는지도 모르고 또 사실 이런 율법을 보면 너무 율법이 답답하다는 생각까지 하게 됩니다, 남의 밭의 것을 먹었어도 좋은 이웃이라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문제를 굳이 이렇게까지 법으로 정할 필요성이 있는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이 율법이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의미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이 율법은 이미 그리스도편지 설교에 올려 드렸기 때문에 간단하게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여기서 사람은 사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짐승은 종교가 되어 있는 교회를 말씀하고 있고 남의 밭은 주님의 밭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을 사단의 짐승이 먹으면 제일 좋은 것으로 주님께 배상하라는 율법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 율법의 의미를 모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율법의 문자는 알고 있습니다, 그런 유대인들에게 이 율법이 사단과 예수 그리스도와의 싸움이라는 것을 말씀하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할 사람도 있지만, 그 중에 어느 사람은 아! 정말 그런 뜻이 있구나 하면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유대인입니다,
그들은 율법을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알고 있는 율법은 문자 그대로를 알고 있고 그 안에 담겨져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성경을 바로 풀어서 말씀을 하면 성경을 전혀 모르는 사람보다는 그래도 성경을 알고 있는 사람이 이해가 쉽게 될 수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사도 바울이 아무리 율법을 바로 풀어서 가르친다 해도 하나님께서 역사를 하지 않으면 절대로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아마 이 시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이 율법을 제가 풀어서 말씀을 드려도 역시 받아들이는 사람이 아주 적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성경을 보는 사람이 낫습니다,
성경을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이 율법이 그림자라고 하면서 말해 보아야 잘 이해가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왜 성경을 보아야 하는가 하면 이렇게 복음을 전하는 자가 왔을 때 성경에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면 그래도 받아들이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성도는 성경을 1년에 일독은 해야 합니다, 사람이 전하는 말만 듣는 사람은 너무 어리석은 사람이고 자기 영생에 대해서 전혀 마음을 쓰고 있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 사람의 말이 틀리면 자기 영혼이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하는데 이스라엘보다 이 시대는 성경을 안 보고 있습니다,
복음은 거의 없습니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다른 복음이 전해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 기독교라는 종교에서 복음이 전해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말하는 저를 비난해도 좋지만 자기 영혼의 구원을 생각한다면 스스로가 성경을 보고 내가 듣고 있는 이 말씀은 성경과 맞는가를 스스로 지혜를 구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목사도 사람입니다,
그가 아무리 뛰어나고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인정을 하는 목사라 해도 그것이 복음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솔직히 이 시대 기독교라는 종교는 자기들이 만든 교리를 성경에 짜 맞추어서 가르치고 있는 종교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에 없는 것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마치 성경에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지금 성경에 없는 말이 몇 가지 대표적인 것이 있습니다, 주일이라는 날도 성경에 없습니다, 추수감사절도 성경에 없습니다, 삼위일체도 성경에 없습니다. 그리고 휴거도 성경에 없습니다, 이것 뿐 아니라 성경에 없는 말을 사용하고 있고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교인들입니다,
성경에 없습니다,
그런데도 마치 성경에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과연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저는 절대로 불가하다고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자기들이 성경을 조금만 주의 깊게 보았다면 그런 말들이 성경에 없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당연하게 받아들입니다,
여러분이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에 없는 것을 받아들이면 반드시 멸망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에 있는 말씀도 제대로 풀지 못해서 억지로 풀다가 사망에 이르고 있는데 성경에 없는 것을 받아들이면서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14절,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새번역입니다,
“베뢰아의 유대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의 유대 사람들보다 더 고상한 사람들이어서, 아주 기꺼이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것이 사실인지 알아보려고,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였다.”
같은 유대인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방에 복음을 전하러 가서 먼저 유대인의 회당이 있으면 그곳에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앞서서 말씀을 드렸듯이 그래도 성경을 보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쉬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똑같이 성경을 보고 있었지만,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들과 베뢰아에 있었던 유대인들은 달랐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편지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제가 많은 사람들로부터 그런 말을 듣고 있습니다, 아니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리스도편지의 말씀을 보면 어떻게 하고 있는가 하면 자기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 그리스도편지에 있는 말씀이 진리인가를 알아보고 있습니다, 정말 안타깝습니다,
얼마 전에도 전화를 받았습니다,
네이버에 있는 기독교 카페에 운영자가 전화가 왔습니다, 그래서 받았더니 교단이 어디냐 그리고 노회가 어디냐 그리고 교회가 어디에 있고 어떻게 사역을 하느냐 다 묻고 있습니다, 왜 그 사람이 저에게 전화를 해서 물었는가 하면 누군가 그 카페 게시판에 그리스도편지가 어느 교단에 속해 있고 이단이 아닌가를 물어보려고 했습니다,
안타깝습니다,
자기가 말씀에 감동을 받았으면, 그 말씀이 성경을 보면서 그러한가를 알려고 하지 않고 다수의 사람들이 있는 카페에 글을 올려서 물어보고 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행위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더구나 그것은 목사가 운영하는 카페도 아니고 평신도들이 운영하면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그런 곳입니다,
비단 이 일만이 아닙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리스도편지의 말씀을 보면서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알고 있는 성경적 지식에 비추어보면 분명히 그리스도편지에서 전하는 말씀이 맞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감동을 받았으면 이제 자기가 성경을 보면서 이 말씀이 그러한가를 알기 위해서 지혜를 구해야 하는데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베뢰아 사람들이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물론 유대인의 회당이니까 회당장도 있었을 것이고 또 나름 그 안에서는 성경적 지식이 있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베뢰아 사람들은 사람에게 묻지를 않았습니다,
이 시대는 너무 안타깝습니다,
신앙생활을 1-2년 했다면 그래도 이해가 됩니다, 수십 년을 했다는 사람들이 그리스도편지를 통해서 복음을 들었고 마음에 감동을 받았다면, 그것을 스스로 성경을 보고 그러한가를 구해야 하는데 그리스도편지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 묻고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일입니다,
분명히 복음을 전하면 이러한 일이 있을 것을 하나님께서는 아시고 사도 바울을 통해서 베뢰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했고 그 사람들이 어떻게 했는가를 성경에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성경을 안 보고 있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베뢰아 사람은 신사적이어서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을 듣고서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성경을 날마다 상고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상고 했습니다,
이들에게도 회당장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지식이 있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베뢰아 사람들은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니까 마음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자기들이 율법으로 알고 있었던 그것을 풀어서 복음을 전하니까 그들은 다른 사람에게 물어본 것이 아니라 성경을 상고하면서 이것이 그러한가를 알려고 했습니다,
이 시대는 못 합니다,
솔직히 그리스도편지를 통해서 복음을 전하고 있지만, 이 말씀을 보고 스스로 성경을 보고 이 말씀이 성경과 그러한가를 알려고 하지도 않고 있고 그 정도로 성경도 읽지도 않아서 아주 편하게 자기 주변에 그래도 자기보다 성경을 많이 안다고 하는 사람에게 물어보고 그가 그렇다 하면 받아들이고 그가 아니라고 하면 받아들이지를 않고 있습니다,
생명입니다,
이 생명이 얼마나 귀한가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전혀 간절하지가 않고 있습니다, 그저 종교에 나가서 그들이 하는 그대로를 하면서 인간적인 마음의 위로를 받고 있고 그런 행위를 보면서 마치 자기가 구원을 받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베뢰아 사람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자 그 말씀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성고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구에게 물어보고 간단하게 끝을 낸 것이 아니라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이 진짜 성경에서 말씀하는 것과 같은가를 자기들 스스로가 알려고 성경을 보고 상고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어떻습니까?
신앙생활이 짧다고 하면 그래도 이해가 됩니다, 어려서부터 신앙생활을 수십 년을 한 그 사람들이 복음을 받고 마음에 감동을 받았는데도 그것을 성경을 보고 알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물어보고 있고 그 사람의 대답에 따라 결정을 하는 어리석은 우를 범하고 있습니다,
시편146:3절을 보면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누구나 성경을 보고 복음을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분명히 사도 바울과 같이 성경을 보고 지혜를 깨닫는 사람이 있고 그 말씀을 듣고 구원을 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경이 어렵다 보니까 그래도 신학을 공부한 사람을 의지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가 하면 방백을 의지하지 말며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목사입니다,
그를 의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를 의지하는 자는 반드시 멸망의 길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성도는 목사가 전하는 복음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사람의 말이 진리인 것으로 받아들이지 마시기 바랍니다, 자기 스스로 하나님께 구하지 않는 사람은 반드시 망하는 길로 간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설교를 듣습니다,
거기까지는 일반 교인들이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 영혼을 생각한다면 스스로 성경을 보고 그 목사가 전하는 설교가 성경과 그러한가를 알기 위해서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면서 지혜를 구해야 한다는 것을 사도행전을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그리스도편지를 통해서 마음에 감동을 받으면 뭐 합니까? 그리스도편지에 있는 말씀을 가지고 사람에게 물어보고 있습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이 시대 복음을 전하는 목사가 있다면 저는 이 일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진리를 알고 바로 전하는 목사가 단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저는 그분의 말씀을 들으면서 조금 편하게 살고 싶습니다,
안타깝습니다,
왜 성경에서 이렇게 가르쳐 주고 있는데도 사람을 의지하고 있고 방백을 의지하고 있습니까? 내 스스로 성경을 보고 이 말씀이 성경과 그러한가를 알려고 지혜를 구할 정도가 되어야 하는데 신앙생활을 수십 년을 했어도 어린아이가 되어서 주변 사람들을 의지하다가 복음을 버리는 우를 범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편지의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말 구원을 받는 성도라면 저는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여기에 올려 있는 말씀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보고 정말 성경과 그러한가를 자기 스스로 지혜를 구하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그렇게 하는 사람이 너무 적습니다, 복음을 보고도 그것을 사람을 의지하다가 멸망의 길로 가는 것을 보면 정말 안타깝기만 합니다,
요한복음5:39절을 보면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영생을 얻고 싶습니까?
그런데 성경을 안 보고 있습니까? 그 사람은 영생을 얻고자 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영생을 얻기 위해서 성경을 보는 사람도 영생을 얻지 못하고 있는데 성경도 안 보면서 어떻게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물론 사도 바울과 같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말씀만 듣고서도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그런 사람이 없습니다, 이미 교회는 기독교라는 종교가 되어서 요한계시록에서 말씀하는 두 짐승 중에 한 짐승이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목사가 전하는 말을 듣고서 영생을 얻는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목사는 전하는 자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받아들이고 안 받아들이고는 여러분의 몫입니다, 여러분이 성경을 보고 날마다 상고하면서 영생을 구해야 합니다, 그것을 사람에게 묻는 것이 아니라 정말 어느 말씀이 감동을 받았으면, 그 말씀이 성경과 그러한가를 스스로 성경을 보면서 지혜를 구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베뢰아 사람을 왜 성경에 기록했습니까? 베뢰아 사람과 같이 간절한 마음으로 성경을 보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내가 말씀을 들었으면 성경을 보고 그 말씀이 성경과 그러한가를 알려고 했다면 이 시대 교회가 진리에서 이렇게까지 벗어나 있지 않을 수 있고 교인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끌려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여러분이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까? 그것은 단 한 가지 영생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내가 어떤 말씀을 들었으면 영생을 원한다면 그 말씀이 성경과 그러한가를 성경을 보면서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그런 성도만이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목사도 사람입니다,
그가 신학을 공부했습니까? 아니 박사라고 합니까? 그럴지라도 그 역시도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에게 물어본다는 것은 그를 의지하는 사람입니다, 성도는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내가 어느 말씀을 듣고 감동을 받았다면 이제 성경을 보고 그 말씀이 성경과 그러한가를 간절히 보는 성도가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12절,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
새번역입니다,
“따라서, 그들 가운데서 믿게 된 사람이 많이 생겼다. 또 지체가 높은 그리스 여자들과 남자들 가운데서도 믿게 된 사람이 적지 않았다.”
영생을 얻기 위해서 성경을 상고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전하는 복음의 말씀을 듣고 성경을 상고 했습니다, 그런 사람들 중에 믿는 사람이 많게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을 듣고 성경을 상고하면서 영생을 구한 성도들에게 믿음이 주어졌다는 말씀입니다.
누가 믿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을 듣고도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어디서 전했는가를 아시기 바랍니다, 유대인의 회당에서 전했습니다, 지금의 교회에서 전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베뢰아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신사적이어서 성경을 보고 그러한가를 상고했습니다,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이 있는 성도는 다르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대단히 죄송스럽지만, 이 시대는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마치 그것이 진리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성경을 볼 생각도 하지 않고 그것이 그러한가를 고민도 하지 않고 있는 시대라고 보면 맞습니다, 구원을 받을 성도가 거의 없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을 드립니다,
베뢰아 사람과 같이 하면 압니다,
자기가 듣고 있는 것이 복음인가 아니면 다른 복음인가를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신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다른 복음을 듣고 있으면서도 방백을 의지하고 사람을 의지하면서 멸망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영생을 얻는 성도는 자기가 어떤 말씀을 듣고 있는가를 늘 성경을 보면서 지혜를 구하고 있습니다,
13절,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들이 바울이 하나님 말씀을 베뢰아에서도 전하는 줄을 알고 거기도 가서 무리를 움직여 소동케 하거늘 형제들이 곧 바울을 내어 보내어 바다까지 가게 하되 실라와 디모데는 아직 거기 유하더라 바울을 인도하는 사람들이 데리고 아덴까지 이르러 바울에게서 실라와 디모데를 자기에게로 속히 오게 하라는 명을 받고 떠나니라”
새번역입니다,
“데살로니가의 유대 사람들은, 바울이 베뢰아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을 알고서, 거기에도 가서, 무리를 선동하여 소동을 벌였다. 그 때에 신도들이 곧바로 바울을 바닷가로 떠나보냈다. 그러나 실라와 디모데는 거기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바울을 안내하는 사람들이 바울을 아테네까지 인도하였다. 그들은 바울에게서, 실라와 디모데가 할 수 있는 대로 빨리 그에게로 와야 한다는 지시를 받아 가지고, 베뢰아로 떠나갔다.”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입니다,
그들은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니까 무조건 반대를 했습니다, 그 말씀이 성경과 그러한가를 알려고 하지 않고 반대를 하다가 사도 바울이 베뢰아에서 복음을 전한다는 말을 듣고 베뢰아에 까지 와서 소동을 일으켰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인간적인 지식으로 무조건 반대를 했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성경을 보면서 그러한가를 알려고 했다면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셨을 텐데도 그들은 아예 복음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역시 성경을 안 보는 사람은 다른 복음에 미혹이 되어서 무조건 반대를 하고 있습니다, 자기 생명이 걸린 문제인데도 성경을 안 보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지혜를 늘 구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영생에 이르는 지혜를 주고 있습니다, 영생의 문제입니다, 그것을 소홀히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핑계 될 일이 아니라고 믿고 있습니다. 복음의 말씀을 들었으면 성경을 상고하면서 지혜를 구해서 영생을 얻는 성도가 되어서 천국에서 모든 축복을 누리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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