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4강, 영생의 소망을 따라 후사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디도서3:1-7절을 보면
“너는 저희로 하여금 정사와 권세 잡은 자들에게 복종하며 순종하며 모든 선한 일 행하기를 예비하게 하며 아무도 훼방하지 말며 다투지 말며 관용하며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낼 것을 기억하게 하라 우리도 전에는 어리석은 자요 순종치 아니한 자요 속은 자요 각색 정욕과 행락에 종 노릇 한 자요 악독과 투기로 지낸 자요 가증스러운 자요 피차 미워한 자이었으나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을 나타내실 때에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성령을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 주사 우리로 저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후사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영생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고 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단 한 가지의 목적이 있다면 영생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이 영생이 얼마나 소중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이 영생에 대해서 바로 아는 사람이 지극히 적다는 것이 심각한 문제입니다
이 시대는 거꾸로 입니다.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과 거꾸로 해도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나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 그런데도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고 또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씀을 드려서 성경의 어느 말씀 한 가지도 바로 해석하는 말씀이 없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스라엘이 주님으로부터 저주를 받았습니까?
그리고 그들이 주님이 오셨을 때 훼방을 했습니까? 그러면 만약 이 시대 주님이 오시면 어떨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저는 이스라엘보다 더 심할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시대는 이스라엘보다 더 진리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그랬던 것과 같이 자기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고 있다고 하지만 사실 이스라엘보다 더 타락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교리에 묶여 있습니다,
그 교리들이 바로 된 것이 있는가 하면 거의 다 성경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제가 모든 교리가 잘 못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너무도 중요한 교리들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거의 다 라고 표현을 해도 틀리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의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심령이 가난한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는 부자만 있습니다. 그들은 육적으로도 부자가 되어 있고 영적으로도 부자가 되어 있습니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 교회는 부자가 되기 위해서 서로 경쟁을 하고 있고 그 부자를 칭찬해 주고 있습니다.
성경은 교회 안에 있는 일입니다
나쁜 의미로 기록이 되어 있는 모든 말씀은 이 시대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 나쁜 의미가 사람의 이성에는 아주 좋게 보여 지다 보니까 사람들은 그것을 하는 것을 좋아하고 있고 교회 안에서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는 안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문자적으로 나쁜 의미로 기록이 되어 있는 말씀을 보면서 그것을 자기들은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것이 교회 안에서 사람의 이성에는 다 좋게 보여 지고 있고 그것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이 시대 모든 교인들이 다 그렇게 하고 있고 그것으로 인하여 자기들이 저주를 받는다는 것은 꿈에도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은 비유입니다
그 비유를 성경에서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비유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성경에서 깨닫지를 못하면 율법주의가 되고 만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시대 거의 모든 사람들이 율법주의에 빠져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율법주의라는 것조차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저주를 받습니다.
이스라엘이 율법주의에 빠져 저주를 받았습니다. 이방의 교회 역시 이스라엘과 같이 율법주의에 빠져 저주를 받고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같이 완전한 율법주의는 아닐지라도 어느 한 가지라도 율법을 지키면 율법주의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영생을 취하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율법의 행위를 버려야 가능한 일입니다.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생을 얻는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율법을 어느 한 가지라도 지키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교회가 세상에 주인이 되었습니다.
그것 하나만 보아도 교회는 이미 진리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느 교회가 세상의 주인이 되었습니까? 하지만 이 시대는 아니 이방의 교회는 태동부터가 세상의 주인이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교회가 아니라 짐승이 되었다는 증거입니다. 그 짐승에 의해서 세상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것이 이 시대 교회입니다.
성도는 나그네입니다
그리고 어느 초대 교회가 세상에 나타났습니까?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게 그들은 교회를 감추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정말 영생을 사모하는 성도들이 주의 만찬을 나누는 교제를 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교회 안에 종교의 행위가 가득 차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절, “너는 저희로 하여금 정사와 권세 잡은 자들에게 복종하며 순종하며 모든 선한 일 행하기를 예비하게 하며”
공동번역입니다.
“통치자들과 지배자들에게 복종하고 순종하며 언제나 착한 일을 할 수 있는 백성이 되라고 교우들에게 깨우쳐주시오.”
디도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방에 복음을 전하고 나서 제자들을 삼았습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디모데와 디도입니다. 초대 교회입니다. 복음은 유대인으로부터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사도 바울이 이방에 복음을 전함으로 해서 복음을 듣고 믿는 성도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다도서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디모데나 디도는 장로회에서 안수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지금으로 말을 하면 노회나 총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지금의 노회나 총회가 정당하다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예를 들어서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디모데서와 디도서는 목회 서신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장로회에서 안수를 받은 디모데나 디도가 사도 바울이 떠나 있는 교회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디모데나 디도는 지금과 같은 신학을 공부한 것이 아니라 사도 바울로부터 복음을 듣고 장로회에서 안수를 받고 장로로 부른 사람이고 그들이 각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상황입니다
유대인들 중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또한 이방인들도 믿었습니다. 우리가 로마서를 보아서 잘 알고 있지만 사도 바울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차별이 없이 미치는 하나님의 의를 전했고 그것이 복음입니다.
우리가 보는 성경입니다.
장로회에서 안수를 받은 사람은 디모데나 디도만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대표적인 사람이고 아마도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장로회에서 안수를 받았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 안수를 받는 사람들은 복음이 있는 성도입니다. 당시에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고 있었고 그 사람이 복음이 있는지 없는지를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믿음입니다.
물론 마음에 있기 때문에 때로는 그것이 감추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나 당시 사도들은 그 사람과 대화를 해 보면 그가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를 쉽게 알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과 같이 신학을 공부했다고 해서 아무나 안수를 주는 것이 아니라 분명히 믿음에 서 있는 장로들에게 안수를 주었습니다.
에베소서3:10절을 보겠습니다.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서 정사와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성경입니다
저 역시도 사람입니다. 조금만 쉽게 성경을 보면 전혀 다르게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볼 때는 늘 집중을 하고 정말 지혜를 구하면서 보아야 한다는 것을 다시 깨닫고 있습니다. 저 역시도 매너리즘에 빠져 성경을 볼 때가 있는 것 같이 다시 한 번 내 연약함에 대해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너는 저희로 하여금...
누구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까? 2장에 있는 말씀을 연결을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늙은 남자입니다. 늙은 여자입니다. 젊은 여자입니다. 젊은 남자입니다. 그리고 종입니다. 사도 바울이 교회 안에서 있는 일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를 디도에게 서신으로 보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디도서는 목회서신입니다.
그러니까 교회 안에서 장로가 된 사람이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과 같은 목회를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이 전해지고 있는 교회에서 당시 장로인 디도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교회입니다
장로가 있고 성도가 있습니다. 물론 그것이 지금과 같이 니골라당의 형태를 보여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분명히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성도가 있고 가르치는 자는 사도 바울이 디모데나 디도에게 말씀을 한 것과 같이 성경을 따라 행해야 합니다.
저희입니다.
교회 안에서 디도에게서 가르침을 받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 중에서는 늙은 남자도 있고 늙은 여자도 있고 젊음 여자도 있고 젊은 남자도 있고 종도 있습니다. 그들에게 있고 디도는 정사와 권세를 잡은 자들이라고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를 알아야 합니다.
지금과 같은 니골라당의 교회가 아닙니다. 담임 목사의 전권이 행해지는 교회가 아닙니다. 사도 바울이 장로를 세우고 다른 지방으로 가서 복음을 전할 때는 그 지역에 장로를 하나만 세운 것이 아니라 다수를 세워서 교회에서 복음을 전하게 했습니다. 디도에게 서신을 보냈다고 해서 디도가 있는 그 교회에 디도 혼자 있던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 명이 있었습니다.
지금 이 시대 교회는 완전히 니골라당의 교회입니다. 우리가 이 디도서를 보아도 여러 명이 있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너는 저희로 하여금 정사와 권세 잡은 자들에게 복종하며 순종하며 모든 선한 일 행하기를 예비하게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정사와 권세 잡은 자가 여러 명이 있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에베소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서 정사와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교회를 통해서 하늘에서 정사와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사와 권세 잡은 자입니다
이 세상에 정사와 권세를 잡은 자가 아니라 교회 안에서 복음을 듣고 하늘의 각종 지혜를 알고 있는 사람들을 정사와 권세를 잡은 자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디도와 같이 장로회에서 안수를 받는 사람을 사도 바울이 정사와 권세를 잡은 자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초대 교회는 사도 바울로부터 복음을 듣고 디도와 같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교회입니다
어느 한 사람이 치리를 하고 있지 않습니다. 아무리 작은 교회라 해도 하늘의 각종 지혜를 알고 있는 정사와 권세를 잡은 자들이 여러 명이 있었고 그들이 교회 안에서 복음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배우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배우고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들로부터 안수를 받은 장로들에게 가르침을 받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복종하며 순종하며 모든 선한 일 행하기를 예비를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사와 권세 잡은 자입니다
에베소서에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서 정사와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신 자입니다. 그가 디모데고 디도입니다. 성경에는 기록이 안 되어 있지만 초대 교회에 그런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이 복음을 가르쳤습니다. 그들이 복음을 가르칠 때 정사와 권세 잡은 자들에게 복종하고 순종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간적인 일이 아닙니다.
그들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반드시 그들에게 복종하고 순종을 해야 합니다. 그들에 가르치는 복음에 복종하고 순종해야 모든 선한 일을 할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후서2:17절을 보면
“너희 마음을 위로하시고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모든 선한 일입니다
우리 인생은 선을 행할 수 없습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내가 선을 행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선을 어떻게 행할 수 있는가 하면 정사와 권세를 잡은 자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앎으로 해서 모든 선한 일을 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복종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정사와 권세를 잡은 자들이 가르치는 복음에 그렇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함으로 해서 모든 선한 일 행하기를 예비를 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 모든 선한 일을 누가 하셨는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셨습니다.
그것을 데살로니가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하신 선한 일의 말씀을 듣고 굳게 믿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을 디도서에서는 모든 선한 일 행하기를 예비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성경을 바로 알지 못하면 이런 말씀을 자의적으로 해석해서 자기들이 선한 일을 하려고 하다가 그것이 도리어 악한 일이 되어서 사망의 길로 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선한 일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내가 하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선한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아니 선한 일을 하려고 하는 순간에 그것이 악한 일이 되고 만다는 것을 명심하고 있어야 합니다. 선한 일을 할 수 있는 방법은 교회 안에서 정사와 권세를 잡은 자들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복종하고 순종해야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를 예비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 시대는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얻은 자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얻은 자가 있어서 그들이 복음을 전해야 그 말씀에 복종하고 순종함으로 해서 선한 일을 행하기를 예비할 수 있는데 이 시대는 전혀 그런 사람이 없다는 것이 불행한 일입니다
선한 일입니다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시대는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얻은 정사와 권세를 잡은 자가 없어서 복음이 전해지지가 않고 있습니다. 복음을 들어야 그 말씀에 복종하고 순종할 수 있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고 있습니다.
선한 일을 행하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얻은 자에게서 복음을 들어야 합니다. 아무 말이나 복종하고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정사와 권세를 잡은 자들의 말씀을 듣고 복종하고 순종해야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를 예비를 할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2절, “아무도 훼방하지 말며 다투지 말며 관용하며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낼 것을 기억하게 하라”
새번역입니다,
“또, 아무도 비방하지 말고, 싸우지 말고, 관용하게 하며, 언제나 모든 사람에게 온유하게 대하게 하십시오.”
모든 선한 일을 예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반드시 모든 선한 일을 행해야 합니다. 어떤 선한 일을 행해야 하는가 하면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들어서 우리가 영생을 얻을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복음에서 나타나는 그 의를 믿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아무도 훼방하지 말며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얻은 자입니다. 그들을 정사와 권세를 잡은 자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교회 안에서 복음을 전할 때 아무도 훼방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누군가 하면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복음을 전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말씀입니다.
성령의 감동입니다
아무도 훼방을 해서는 안 됩니다. 이 시대는 누가 성령의 감동을 받은 자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도리어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복음을 전하면 훼방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정사와 권세를 잡은 자들이 전하는 말씀은 성령의 감동을 받아 전하는 복음이기 때문에 아무도 훼방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투지 말고 관용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다툽니까? 아마 이 시대 기독교인들에게 그리스도편지가 전해지면 다투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지키는 율법의 행위가 악한 일이라는 말씀을 들으면 반드시 다투게 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런 율법주의에 있는 사람들에게 다투지 말고 관용하면서 받아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을 훼방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누가 성령을 훼방하는가 하면 율법을 가지고 다투고 있는 사람들이 성령을 훼방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얻어서 성령의 감동으로 전하고 있는 정사와 권세를 잡은 자들의 말씀에 그렇게 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한글개역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저 역시도 이 말씀을 보면서 다른 성경을 봄으로 해서 도리어 잘못 해석을 하고 말았습니다. 정말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한글개역성경은 우리가 구원을 받는데 부족함이 없는 성경이라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영생을 얻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자라는 것을 잊지 마시고 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정사와 권세 잡은 자들입니다.
교회 안에서 다투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복음이 훼방을 받게 해서도 안 됩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그들이 전하는 말씀에 온유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이것도 복음을 전하는 자가 해야 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시대는 그런 자가 없어서 복음을 듣고 싶어도 들을 수 없습니다.
3절, “우리도 전에는 어리석은 자요 순종치 아니한 자요 속은 자요 각색 정욕과 행락에 종 노릇 한 자요 악독과 투기로 지낸 자요 가증스러운 자요 피차 미워한 자이었으나”
새번역입니다.
“우리도 전에는 어리석고, 순종하지 아니하고, 미혹을 당하고, 온갖 정욕과 향락에 종노릇 하고, 악의와 시기심을 가지고 살고, 남에게 미움을 받고, 서로 미워하면서 살았습니다.”
성도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복음을 깨닫고 태어난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은 태생적으로 율법주의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가르쳐서 아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체질이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 율법주의자는 어리석어서 하나님을 모르고 있습니다.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물론 우리도 전에는 어리석은 자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 이방인들은 어리석은 자였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 주셔서 구속을 이루시고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 성도들이 이제는 율법의 다툼에서 벗어나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있습니다.
어리석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 중에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됩니까? 율법을 한 가지라도 지키고 있는 사람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다투고 있는 사람은 하나님을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순종치 않았습니다.
순종치 않았다고 하니까 죄를 많이 진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복음에 순종치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저 역시 모태신앙이라고 하지만 이 복음을 깨닫기 까지는 복음에 순종치 않은 삶을 살았습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오시기까지는 어느 누구도 자기 지혜로는 복음에 순종치 않고 살아간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복음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율법에 순종하는 자는 미련한 자입니다. 성도는 그 율법을 이제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순종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율법에는 그렇게 잘 순종하면서도 복음에는 순종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것이 자기들을 저주받게 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도리어 자랑을 하고 있습니다.
속았습니다.
무엇에 속았습니까? 율법에 의해서 스스로 속임을 당한 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단이 율법의 의를 우리에게 보여 주면서 그것을 지키게 만들고 있습니다. 내가 한 가지라도 율법을 지키고 있다면 진리에 대해서 속고 사는 자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각색 정욕과 행락에 종노릇한 자입니다.
이 정욕이 무엇입니까? 교회 안에서 믿지 않고 행위에 열심을 내고 그것을 더 잘하려고 하는 모든 행위가 각색 정욕에 종노릇 하는 사람입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율법에 종노릇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스스로 종이 되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누가 더 종으로서 잘살아가는가를 간증까지 하고 있습니다.
악독과 투기입니다.
율법을 더 많이 지키고 싶어 합니다. 아니 율법을 잘 지키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계속해서 이 율법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지혜가 없어서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남이 율법을 지키면 투기를 하고 자기는 더 잘 지키고 싶어 합니다.
가증스러운 자입니다
우상의 제물을 먹고 있는 자라는 말씀입니다. 우상의 제물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우상의 제물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교회 안에서 아주 맛있게 먹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게 하는 것이 우상의 제물이라고 고린도전서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행위가 가증스럽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4절,“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을 나타내실 때에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새번역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구주이신 하나님께서 그 인자하심과 사랑하심을 나타내셔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그분이 그렇게 하신 것은, 우리가 행한 의로운 일 때문이 아니라, 그분의 자비하심을 따라 거듭나게 씻어주심과 성령으로 새롭게 해 주심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구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구원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구원을 어떻게 받는가 하면 우리의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이 새롭게 하심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새롭게 하심입니다.
우리 육체를 새롭게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말씀들을 오해하고 도리어 율법주의에 빠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성령이 오셔서 우리 육체를 새롭게 한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거의 모든 사람이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성경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우리 육체는 썩습니다. 그 썩는 것을 새롭게 한다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런데도 거의 모든 사람이 그렇게 알고 마치 성령이 오셔서 자기를 새롭게 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교회 안에서 경건의 모양을 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성령의 새롭게 하심이라는 말씀은 성령이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에게 성령으로 난 영이 있는데 그 영이 새롭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 있는 지나가는 썩는 그런 것이 아니라 새것이라는 말씀이며 영원히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행위가 아닙니다.
그런데도 교회 안에서 수많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성도가 구원을 받는 것은 행위가 아닙니다.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는데도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든지 율법을 지키려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아니라 성령이 우리 안에 오셔서 내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는 역사가 있는데 그것이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이라는 말씀입니다.
육체입니다.
그것은 반드시 썩어 없어집니다. 그것의 어느 한 가지도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 지구에서 썩어 없어집니다. 그것이 아니라 성령이 오셔서 난 영이 우리 안에 거하게 되고 그 영이 새로운 것이고 주님께서 오실 때 하늘의 신령한 몸을 입는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6절, “성령을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 주사”
새번역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성령을 우리의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풍성하게 부어 주셨습니다.”
공동번역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성령을 우리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풍성하게 부어주셨습니다.”
킹 제임스입니다,
“이 성령을 예수 그리스도 우리 구주를 통하여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 주셨느니라”
성령입니다.
이 시대 삼위일체 교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하나님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성령이 하나님입니까? 하나님이 하나님을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 주셨습니까? 이것이 말이 된다고 생각합니까? 이 시대 성령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다른 신을 섬기고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아타나시우스에 의해서 채택이 된 그 교리를 모든 교회가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무슨 질량입니까?
마치 물과 같은 질량이라서 그것을 우리에게 부어 줄 수 있습니까? 성령을 하나님이라고 하는 사람은 정말 이상한 사람들입니다. 성경을 조금만 주의 깊게 보아도 성령을 하나님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 시대는 나 이외에 다른 신 삼위일체를 섬기고 있으면서도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어떻게 하나님입니까?
사단에 의해서 미혹이 된 아타나시우스가 채택한 그 교리를 어느 누구도 반박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 주실 수 있는지 설명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무슨 질량과 같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령은 진리의 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주신다는 표현이 맞습니다. 진리의 영이기 때문에 진리를 아는 지혜를 풍성히 부어 주셔서 우리가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함을 받아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탄생이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입니다
진리의 영입니다. 그것 이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성령을 하나님이라고 하는 사람은 십계명의 제일 계명인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는 자라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이방의 교회는 이 삼위일체에 의해서 모두가 사망의 길로 가고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단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누가 무슨 말을 한다 해도 저는 성령을 하나님이라고 인정할 수 없습니다. 성경 어디에도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는 근거가 없습니다. 성령은 말씀 그대로 진리의 영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볼 때 진리를 알 수 있게 인도해 주는 영이라는 말씀입니다. 성령을 하나님이라고 하는 사람은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유일하신 하나님입니다
저는 오직 유일하신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 이것에 반하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다 거짓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아타나시우스가 성경을 보고 억지로 하나님을 만들었습니다. 그 한 사람으로 인하여 이방의 교회는 다른 유일하신 하나님이 아니라 삼위일체를 믿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7절, “우리로 저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후사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새번역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의 은혜로 의롭게 되어서, 영원한 생명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입니다.
우리로 저의 은혜로 힘입어서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후사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의로운 행위가 아니라 우리는 반드시 저주를 받아 죽어야 하는 자인데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말미암아 그의 은혜로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받아 영생의 소망을 따라 천국을 유업으로 받았습니다.
은혜입니다.
거저 주는 것을 은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이 세상이 오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구원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은혜라는 말씀입니다. 다른 방법이 있다면 은혜가 안 되지만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속을 이루심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은혜가 없다면 우리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율법의 의로운 행위가 아니라 오직 주님의 은혜입니다. 성도는 이 선한 일을 믿고 있습니다. 주님이 오셔서 우리를 구원해 주신 선한 일을 믿고 있습니다. 이 선한 일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아 천국에서 모든 축복을 누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은혜와 진리의 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666강,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이 두루마리 책에 있나이다 (0) | 2020.09.22 |
---|---|
665강,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0) | 2020.09.21 |
663강, 묵은 누룩을 내어 버리라 (0) | 2020.09.19 |
662강,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0) | 2020.09.18 |
661강,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0) | 2020.09.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