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찌어다(계20:9.)

은혜와 진리의 말씀 (음성)

48강, 요4;42, 영생입니다.

윤주만목사 2020. 3. 23. 10:35

 

48, 요한복음 4:42절을 보겠습니다. (149)

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을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니라 하였더라

 

영생입니다.

누가 노력을 해서 우리가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이 시대는 오직 예수, 오직 믿음, 오직 은혜라고는 말을 하고 있지만, 그 말과는 전혀 다르게 또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니 그들은 종교에서 자기들의 하는 말과는 전혀 다르게 행동을 하는 이중적인 면을 보이고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내가 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내가 하는 행위가 같아야 합니다. 세상에서도 말과 행동이 같아야 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말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고 하고 있지만 실상 그들의 행위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거절하는 일을 교회 안에서 너무 많이 행하고 있으면서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입니다.

우리가 노력한 것이 하나도 없어야 합니다. 만약에 자기가 노력한 것이 있다고 한다면 그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아니 자기가 한 행위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주님께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온갖 행위에 빠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마리아 여자와 예배를 하고 난 후에 앞으로 성령을 보내주실 것을 말씀하시면서 눈을 들어 밭을 보라 추수하게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구속의 일을 다 이루시고 우리가 영생을 얻을 수 있는 모든 일을 수고하심으로 이루시고 하늘에 올라가시고 이제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서 추수하게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먼저 노력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계속해서 선지자들을 보내주심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들이 노력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제자들에게 참예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입니다.

창세기에서 이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담과 하와를 지으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범죄를 함으로 영생을 할 수 없게 되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만세 전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예정하시고 우리 인생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노력을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구원을 받았습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모든 선지자들은 우리 이방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예표와 그림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의 수고가 있었고, 그리고 사도들이 참예를 함으로 이 시대 우리가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영원한 생명은 우리가 더 이상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이 어쩌면 안타까운 일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생명이 우리의 언어로 표현이 안 되기 때문에 이렇게 노력하게 하시고 그것을 알게 하심으로 생명에 대해서 믿을 수 있게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믿음으로 역사를 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모릅니다.

이방의 교회는 기독교라는 종교가 됨으로 이 생명에 대해서 영생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언어적인 문자만 알고 그것으로 영생을 얻는다고 말을 하고 있고 그것은 이 세상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내세와 별로 다르지 않지만, 사람들은 성경을 상고할 생각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사마리아 여자입니다.

수가라 하는 동네로 들어가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만나 예배를 한 그 분이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냐고 하면서 와 보라고 하니까 사마리아인들이 예수께 와서 자기들과 함께 유하기를 청함으로 주님께서 그 마을에 들어가셔서 복음을 전파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주님께서는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다고 누가복음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육체적으로 가난한 자가 아니라 영적으로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파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을 누가복음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마리아인들입니다

그들은 유대인들로부터 멸시를 받아왔습니다. 더구나 바리새인들과 제사장들로부터는 심한 멸시를 받았습니다. 그들은 예배를 하러 예루살렘 성전에 가고 싶어도 그들이 얼굴을 마주 하는 것으로도 부정하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갈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싶습니다.

그들도 혼혈이 되었지만 어찌되었든 이스라엘의 자손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고 싶어도 당시 유대교에 있었던 사람들이 철저한 율법주의자가 되었기 때문에 혼혈이 되어 있었던 사마리아 사람들로서는 생각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가난한 자들입니다.

영적으로 가난한 자들이었기 때문에 당시 메시야가 왔다는 소문이 온 이스라엘에 이미 퍼져 있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사마리아 여자가 증거 하니까 와서 주님께 유하기를 청해서 말씀을 듣고자 했고 그 말씀을 듣고 많이 믿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가난해야 합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부자가 되는 순간 우리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 부자가 무엇으로 부자가 되는가 하면 유대인들과 같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행위로 부자가 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부자들은 주님께서 복음을 전파하실 때 반대를 했던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기독교인은 부자가 되기 위해서 교회 안에서 엄청나게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하는 행위들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매일 새벽에 일어나 예배를 드리고 기도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있고 과부의 두 렙돈이 아니라 자기 전 재산까지도 아까워하지 않고 교회에 헌금하고 있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행위에 열심을 내서 부자가 되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부자입니다.

그들에게 복음이 전파가 될 수 있습니까? 그들은 절대로 듣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 앞에 온 청년이 어떻게 했습니까? 근심하며 돌아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미 율법의 의로 부자가 되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싶어도 믿을 수 없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마리아인들입니다.

그들은 종교적으로 가난한 자들이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서 찾아오셨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시니까 그들이 더욱 많이 믿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파하시기 위해서 오셔서 그 일을 보여주시고 있습니다.

 

새 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들은 그 여자에게 말하였다. "우리가 믿는 것은, 이제 당신의 말 때문만은 아니오. 우리가 그 말씀을 직접 들어보고, 이분이 참으로 세상의 구주이심을 알았기 때문이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이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일 가운데 하나를 지난 시간에 누가복음에 말씀을 인용해서 말씀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 말씀 그대로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습니다.

 

복음입니다.

주님께서 사마리아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그리고 은혜의 해를 전파해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이제 은혜의 해가 되었다는 것을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믿는 자가 더욱 많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마리아인들입니다.

그들이 복음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을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니라 하였더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39절에서 그들이 예수를 믿는지라 하는 그 말씀은 실제 믿음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마리아 여자의 말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제가 이 시대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을 무시하고자 하는 말씀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러나 사마리아 여자가 전한 말은 쉽게 말을 하면 그저 교회에 나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천국에 간다고 하는 말을 듣고 믿은 말과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메시야입니다.

사마리아 사람들도 이스라엘의 자손이었기 때문에 늘 하나님을 믿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시대적 배경을 보면 그들은 하나님을 믿고 싶어도 믿을 수 없었고 제사를 드리러 예루살렘 성전에 간다고 해서 바리새인들과 제사장들이 그들을 이방인들보다 더 멸시했기 때문에 감히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 사마리아 여자가 그리스도를 보았고 증거를 하고 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사람들이 예수를 믿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주님께서 사마리아인들과 이틀을 유하시면서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마리아인들이 그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여자에게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을 인함이 아니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처음에 그들은 이스라엘 자손이기 때문에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었고 사마리아 여자가 말하는 것을 듣고 예수를 믿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누가복음의 말씀과 같이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시고 은혜의 해를 전하심으로 이제 주님의 말씀을 듣고 우리가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39절에서 사마리아인들이 예수를 믿었습니다. 그 믿음이라는 것은 쉽게 말을 해서 이 시대 모든 사람들이 교회를 다니지 않더라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 죄를 지고 가셨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말을 일반 사람들도 다 알고 있습니다.

 

알고는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그들이 아직 복음을 듣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중에서는 교회에 가서 설교를 듣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교회는 가난한 사람들이 있는 곳이 아니라 부자가 있는 곳이기 때문에 복음을 들을 수 없고 복음이 전해지지도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복음을 들었습니다.

누군가가 전하는 복음을 들었습니다. 그러면 그 복음을 들은 사람이 어떻게 말을 하겠습니까?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을 인함이 아니라 내가 복음을 들었기 때문에 믿는다고 말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 사마리아인들이 그렇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이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단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한다고 해서 그것을 듣는 것으로 믿는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복음을 들어야 합니다. 어느 복음을 들어야 하는가 하면 주님과 같이 가난한 자에게 전해지고 있는 복음을 들어야 합니다. 그 복음을 듣고 이제 사마리아인들이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61:1-2절을 보겠습니다. (1042)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누가복음의 말씀입니다.

누가는 주님께서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을 그대로 인용을 해서 말씀하는 것을 그대로 기록했습니다. 성경에서 성경을 인용했기 때문에 이 말씀은 누구나 성경을 인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인용했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 말씀대로 주님께서 오셔서 이스라엘에게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틀입니다.

물론 아주 짧은 시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게 복음을 전파하셨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사마리아인들에게 후에 성령을 보내주시는 것을 우리가 사도행전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믿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사마리아 여자가 전하는 말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까? 아니 누군가로부터 전도를 받고 천국에 가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면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까?

 

예수를 믿는 것을 잘 알아야 합니다.

먼저 가난한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주님이 오셔서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이 전해진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부자가 되어 있는 사람은 이 아름다운 소식을 그러니까 복음을 듣고 싶어도 들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마리아인들입니다.

이들은 가난한 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육체적으로 가난한 자가 아니라 영적으로 가난한 자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그들이 가난한 자인가 하면 당시 유대인들로부터 멸시를 받았습니다. 어느 정도로 멸시를 받았는가 하면 이방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에 가서 제사를 드릴 수 있어도 사마리아 인들은 할 수 없었습니다.

 

성경입니다.

우리는 성경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성경 말씀에 대해서 인정을 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안타깝게도 성경을 성경으로 보고 있지를 않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주님에 대한 예언이 되어 있으면 그 예언대로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에 오셨을 때도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파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시대 역시 내가 가난한 자인가 부자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가난한 자가 누군가를 알아야 합니다, 내가 가난한 자가 되어야 반드시 복음이 전파가 되고 그 말씀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그냥 기록이 된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선지자들이 예언하고 그 예언이 되어 있는 그대로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이스라엘에 오셔서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셨다면 이 시대 역시 가난한 자에게만 복음이 전파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가난한 자입니다

이제까지 그리스도편지를 통해서 많이 말씀드렸습니다. 율법의 의가 없는 사람을 가난한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에서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를 보아도 주님께서 부자는 음부의 고통 중에 있고 거지 나사로는 아브라함 품에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그러나 교회 안에는 가난한 자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이 오셨을 때도 이스라엘에는 가난한 자보다는 부자가 더 많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사마리아인들은 유대인들의 멸시 때문에 하나님을 믿고 싶어도 믿을 수 없었고 그들은 예루살렘 성전에 가서 제사를 드리고 싶어도 드릴 수 없어서 자연스럽게 가난한 자가 되었고 그런 그들에게 주님께서 찾아오셔서 말씀을 전하시니까 그들이 믿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강조를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씀하고 있으면 우리는 가난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 가난한 자가 이 세상에서 재물로 가난한 자를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율법의 의가 없어서 가난한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은 가난한 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서 찾아오셨고 그들이 주님의 말씀을 들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앞에서 말씀한 것과 같이 이제는 여자가 전하는 그 말을 듣고 믿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알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39절입니다.

사마리아 여자의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님으로부터 친히 듣고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지금은 주님께서 이 세상에 계시지 않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영으로 부활하시고 하늘에 올라가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 이 시대도 성령을 보내주시고 있습니다.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예언의 은사를 받은 사람이 성경을 풀어서 복음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때 누가 들을 수 있는가 하면 가난한 자들이 복음을 듣는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되고 그들이 듣고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으로 세상의 구주인 줄 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그렇다고 해서 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먼저 스스로가 가난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복음을 들어야 합니다. 먼저 가난한 자가 되지 않으면 설령 복음을 전하는 자의 말을 듣는다 해도 듣고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마리아인들입니다.

그들은 예배할 수 없었습니다. 아니 제사를 드리고 싶어도 드릴 수 없었습니다. 그런 그들은 가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난한 그들에게 주님께서 친히 복음을 전파하시니까 그들이 듣고 믿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듣고 믿음으로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고 이제 성령이 오심으로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입니다.

우리는 친히 들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시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심으로서 우리가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심을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에서 너희가 성령을 받는 것이 율법의 행위로서냐 듣고 믿음으로서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4:13절을 보겠습니다. (3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우리가 믿는 것입니다

사마리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어떻게 믿고 있는가 하면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을 인함이 아니라고 분명하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네가 처음 말할 때는 그저 그리스도라는 것을 들었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때 믿음입니다.

그리고 이제 주님으로부터 말씀을 들은 이후의 믿음은 조금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그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해서 믿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마치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조상 대대로 믿어 와서 자기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믿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는 복음을 듣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왜 복음을 듣지를 못하고 있는가 하면 먼저 복음을 전하는 자가 없는 것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령을 받아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심을 받는 자가 없습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는 가난한 자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물론 주님께서 사마리아인들에게 이틀을 유하시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성경을 알고 있던 사람들이고 그런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기 때문에 그리고 주님께서는 가난한 자들에게 말씀만 하셨기 때문에 그들이 친히 말씀을 듣고 믿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이방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우리가 사도행전을 보아서 잘 알고 있지만, 주님과 같이 하루 이틀을 전한 것이 아닙니다. 에베소 교회에 사도 바울이 삼년을 밤낮으로 눈물로 훈계를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복음을 전했는데도 사도 바울이 그들과 이별을 할 때 내가 가면 흉악한 이리가 와서 너희를 아끼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사도 바울이 에베소교회에 있는 성도들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알아야 합니다.

복음을 듣고 알아야 합니다. 성경의 문자를 아는 것은 이 세상 초등학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성경의 문자를 조금 아는 것으로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는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교회에 하고 있는 말씀은 그런 정도의 아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천국 복음을 전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복음입니다.

그것을 이사야 선지자가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소식을 전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아름다운 소식은 누가 듣는가 하면 가난한 자가 듣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의 믿음이라는 것은 먼저 가난한 자가 되어야 하고 그리고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러야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 종교냐고 묻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불교를 믿는다 기독교를 믿는다 천주교를 믿는다 또 때로는 샤머니즘 같은 것을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그 안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으면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의 믿음은 그런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야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알아야 합니까?

빌립과 나다나엘과 같이 성경을 보고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을 받은 성도만이 믿음이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마리아인들에게 주님께서 이틀을 유하시면서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그들은 이틀 동안에 천국복음을 들은 것을 가지고 믿는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마리아인들이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알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후에 이들에게 성령이 오심으로서 에베소서의 말씀과 같이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렀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 시대입니다.

사마리아인과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까? 하나님을 믿고 싶어도 예배를 할 수 없는 사람이 있습니까? 아마도 제가 생각할 때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굳이 어느 교회에서 자기들을 오지 말라고 해도 그들은 자기들끼리라도 모여서 예배를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왜 사마리아 여자와 예배를 하셨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여자가 수가 성이라는 동네로 들어가서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고 전할 수 있게 하시고 사람들이 나와서 예수께 자기들과 함께 유하기를 청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배할 수 없는 가난한 자들이기 때문에 주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었고 복음을 듣고 믿을 수 있었다는 것을 사도 요한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친히 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친히 들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아름다운 소식을 들을 수 있게 하고 있습니다. 이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의 구주가 되심을 알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8:14-17절을 보겠습니다. (200)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 그들이 내려가서 저희를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러라 이에 두 사도가 저희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사도행전 7장입니다.

스데반 집사의 설교와 그리고 그의 죽음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고 나서 예루살렘 교회가 많은 핍박을 받은 것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81절에서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졌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오셨을 때입니다.

분명히 사도 요한은 주님께서 사마리아인들과 이틀을 유하시면서 복음을 전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마리아인들이 예수님과 예배를 한 여자에게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을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니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구원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분명히 이들이 지금 주님으로부터 아름다운 소식을 듣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아직 살아 계실 때 이기 때문에 그들은 성령을 받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영생을 얻는 것은 오직 믿음입니다. 그리고 영생은 성령이 오심으로서 성령으로 난 영이 있어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마리아인들입니다.

주님으로부터 말씀을 듣고 믿었습니다. 그들은 분명히 주님께서 전하시는 아름다운 소식을 듣고 그 말씀을 믿었습니다. 비록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오지시는 않았지만, 사마리아인들은 분명히 주님으로부터 아름다운 소식을 듣고 믿었습니다.

 

요한복음 3장입니다.

주님께서 니고데모와 거듭남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니고데모에게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을 하시고 또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영이 생명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정말 잘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사마리아인들에게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마리아인들이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가 세상의 구주신 줄 알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구주되심을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을 얻었습니까?

주님께서 친히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주의 아름다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참으로 세상에 구주신 줄 알았다고 말을 하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적으로는 아직 그들에게는 성령이 오시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믿는다는 것입니다

물론 성령이 오시는 역사와 같이 임하고 있습니다. 믿음, 성령의 임재, 영생 모든 것이 동시에 일어나는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을 우리는 부정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성령이 오시기 전에 믿는다고 하는 것 역시 복음을 듣고 믿는다고 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행전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스데반 집사가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교회에 큰 핍박이 났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유대와 사마리아로 피신을 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그들이 다시 그곳에 가서 복음을 전했을 것이고 말씀을 전하다 보니까 그들이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았고 아직 성령을 받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물로 세례를 받았다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사도들이 사도 요한과 베드로를 보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하고 나서 너희가 성령을 받았느냐고 물으니까 아직 한 사람도 성령을 받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사도 요한과 베드로가 그들에게 안수하니 성령이 임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4장의 사마리아인입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8장의 사마리아인들입니다. 그들은 주님이 오셨을 때 말씀을 들었던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또 스데반 집사가 죽임을 당하고 나서 성도들이 사마리아로 피해서 가서 복음을 전해서 듣고 세례를 받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같습니다.

주님으로부터 말씀을 들었어도 그들에게는 아직 성령이 오시지 않았습니다. 또 핍박을 피하여 간 성도들로부터 복음을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어도 아직 성령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사도 요한과 베드로를 보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가서 복음을 전하고 성령을 받게 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입니다.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믿음으로 분명히 우리가 삽니다. 영생을 얻는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시지 않았지만, 그 믿음이라는 것도 복음의 말씀을 듣고 믿은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친히 주님으로부터 듣고 믿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알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가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시고 가셨지만, 아직 성령이 오시지 않았어도 제자들이 와서 후에 다시 말씀을 전하고 성령을 받게 할 줄을 아셨다고 믿어야 합니다.

 

사마리아 인들입니다.

그들은 주님으로부터 친히 복음의 말씀을 듣고 그가 이 세상에 구주신 줄 알고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믿음이라는 것은 분명히 주님께서 전하시는 말씀을 듣고 믿은 것입니다. 그리고 당시 사마리아 사람들은 복음을 듣고 있었고 이 믿음도 역시 주님을 이 세상에 구주신 줄 알고 믿었기 때문에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비록 아직 성령이 오시지 않았지만 주님으로부터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과 같이 아름다운 소식을 듣고 믿었습니다. 그들은 가난한 자이고 그래서 주님께서 전파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말씀을 듣고 믿을 수 있었습니다.

 

그 믿음입니다.

주님으로부터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알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아직 사마리아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성령이 오시지 않았습니다. 비록 성령이 오시지 않았지만, 그들은 분명히 주님으로부터 말씀을 듣고 믿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뭐만 했습니까?

예수의 이름으로 물세례만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서 자기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고 하면서 물세례를 받은 것으로 마치 구원을 받았다고 오해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것이 아니라 그저 물세례를 종교의 의식에 따라 행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령이 오셔야 합니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는 120여 문도에게 성령이 임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베드로가 설교를 하자 3000명이 회개를 하는 역사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교회가 태동하고 그 안에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스데반 집사가 죽임을 당하면서 교회가 핍박을 받아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졌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때 사마리아입니다.

그들은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서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세상의 구주신 줄 믿고 자기들에게 오실 메시야로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성령이 오시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과 베드로입니다.

저희를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막 주님이 부활 승천하시고 난 후입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 있는 120여 문도에게 처음으로 성령이 임하는 역사가 있었습니다. 당연히 주님께서 말씀을 전한 사마리아인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시기로 작정이 되었기 때문에 사도들이 사마리아로 가서 성령을 받게 안수를 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8:27절을 보겠습니다. (250)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요한복음 6:40절을 보겠습니다. (154)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믿음,

영생, 성령세례 동시에 일어나는 사건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왜 믿음을 말씀을 하고 있고 성령을 말씀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분명히 믿으면 구원을 받습니다. 또한 성령이 오시면 구원을 받는 것 역시 맞습니다.

 

성경은 영생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 영생에 대한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입니다. 우리는 이 생명을 얻어야 합니다. 그것을 주님께서 요한복음에서 성령으로 난 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다시 영이요 생명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 요한복음의 말씀입니다.

분명히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친히 듣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주신 줄 믿고 있습니다. 그들이 말씀을 듣고 알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 주님이 부활하시기 전이기 때문에 어느 누구에게도 성령이 오시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이 사람들의 믿음을 부정할 수 있습니까?

저는 절대 아니라고 믿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물세례까지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들에게 구원을 받은 믿음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의심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인생입니다.

아직까지 육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분명히 사마리아 사람들은 구원을 받을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다고 사도 요한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 인생들이 영생을 받기를 원하시고 있습니다. 어떻게 영생을 받기를 원하시고 있는가 하면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시고 있고 마지막 날에 이를 살리시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사마리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말씀을 듣고 믿은 것은 인생의 마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구원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한번 받은 구원은 절대로 변하지 않습니다. 생명이 탄생이 되면 다시 죽을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인생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아무리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친히 말씀을 들었어도 그래서 그분이 이 세상의 구주신 것을 알았다 해도 그것을 우리 인생으로는 지킬 수 없다는 것을 또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내가 복음을 듣고 믿으면 된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론적으로나 성경적으로도 맞는 말씀입니다. 저도 이것에 대해서 부정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은 이 믿음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것을 또한 바로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친히 말씀을 들었습니까?

제가 사마리아 사람들의 믿음이 변질이 되었다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들은 분명히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주님께서 이 세상의 구주신 줄 알고 믿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지킬 수 있는 힘은 우리 인생에게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성령이 오심으로서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게 하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믿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친히 예수 그리스도부터 말씀을 들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인생의 능력으로는 아버지의 뜻대로 아들을 보고 그러니까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지킬 수 있느냐는 말씀입니다. 그것이 안 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보내주심으로서 성령이 우리 가운데 오셔서 아버지의 뜻대로 성도를 위해서 진리로 인도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마리아인들입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에 대해서 의심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 인생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인간 스스로가 그 믿음을 끝까지 지킬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아버지의 뜻대로 행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심으로서 우리 성도를 위해서 간구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영생을 너무 쉽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아셔야 합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이렇게까지 하시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성령이 오심으로서 우리가 이런 모든 것을 알게 됨으로 믿음에 더욱 견고히 설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의 말씀입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인용을 했습니다.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부정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뜻도 아들을 보고 그러니까 복음을 듣고 믿는 자에게 영생을 주시고 그를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시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믿음입니다.

우리는 인생이라서 믿음조차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복음의 말씀을 들었지만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다. 그것으로도 충분히 우리가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으로 우리가 믿음이 더욱 든든히 설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십니다.

그가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를 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복음을 듣고 믿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구원을 받는데 있어서 부족하다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보내주심으로서 그 믿음까지도 더욱 견고해지도록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를 위해서 간구해 주시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구원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구원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역사를 하시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경의 문자만을 보고 그저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하면 그런 것으로 알고 있고 그것이 맹목적인 믿음으로 변질이 되어서 사망의 길로 가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주님께서 사마리아 여자와 예배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마리아인들이 주님과 함께 유하기를 청해서 주님으로부터 이사야의 말씀과 같이 아름다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들은 가난한 자이기 때문에 복음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듣고 주님을 이 세상의 구주신 줄 알고 믿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때 이들의 믿음은 예수님을 구주로 믿었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아직 어느 누구에게도 성령이 오시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모든 구속의 일을 이루시고 죽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능력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영으로 부활을 시키셨습니다. 그리고 사십일 동안 제자들에게 보이시다가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오순절이 임하매 성령이 오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처음 성령이 오시는 역사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마리아인들은 주님으로부터 복음을 들었지만 주 예수의 이름으로 물세례를 받았지만, 성령이 아직 오시지 않았습니다. 그때 스데반 집사가 예루살렘에서 죽임을 당하고 나서 교회가 핍박을 받자 유대와 사마리아까지 흩어졌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때 사마리아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것으로 알고 사도 요한과 베드로가 와서 그들이 성령 받기를 위해서 기도를 하니까 이제 성령이 오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것을 로마서에서 사도 바울이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인생으로는 안 되지만 성령이 오심으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절대로 변할 수 없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인생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복음을 듣고 믿어서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물론 가능할 수 있습니다. 성경적 이론으로는 가능합니다. 그러나 성령이 오시지 않으면 우리 인생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진리로 인도함을 받게도 하시고 있고 하나님의 뜻대로 간구하게 하심으로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믿음입니다.

분명히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는 말씀이 맞습니다. 우리는 그 믿음을 의심을 해서는 안 됩니다. 왜 그런가 하면 주님과 같이 십자가에서 죽은 한편 강도 역시 주님을 믿음으로 아직 성령이 오시지 않았지만, 구원을 받았습니다.

 

믿는다는 말씀입니다

물론 성령이 바로 오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마리아 사람들과 같이 후에 성령이 오실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듣다 보면 바로 성령을 받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고 복음을 듣고 믿는다고 하고 있지만, 성령이 후에 오실 수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지금 요한복음에서 사마리아인들이 복음을 듣고 믿은 것을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비밀입니다.

이 비밀을 모르면 어느 누구도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믿는지 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구원을 받았다고 하고 있고 은혜를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모르면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게 되어 있습니다.

 

요한복음 4:43-44절을 보겠습니다. (149)

이틀이 지나매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 갈릴리로 가시며 친히 증거하시기를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높임을 받지 못한다 하시고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이틀 뒤에 예수께서는 거기를 떠나서 갈릴리로 가셨다. (예수께서 친히 밝히시기를 "예언자는 자기 고향에서는 존경을 받지 못한다" 하셨다.)”

 

복음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내가 듣고 있는 말씀이 복음인가를 알 수 있는 가장 기초가 무엇인가 하면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 그대로 복음은 가난한 자에게 전파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복음이 전파가 되어도 부자는 절대로 복종치 아니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무엇으로 가난합니까?

주님께서 누가복음에서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율법주의가 되어 있는 이스라엘을 한 부자로 해서 말씀을 하시고 있고 그들을 따르는 자들을 개라고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절대로 부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 보다 더 어렵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습니까?

교회 안에서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기도 하고 있고 외식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종교적인 의식을 따라 행하기도 하고 있습니다. 그런 행위를 하는 것을 부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인생이 하는 행위를 주님께서는 부자라고 하시고 거지 나사로는 그런 행위가 없어서 거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의에 싸움입니다.

이 싸움에서 지는 자는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부자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계속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는 부자가 누군지를 가난한 자가 누군지를 전혀 모르고 부자가 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뭐 합니까?

내가 목사가 되고 신학자가 되면 뭐 합니까? 성경을 달달 외울 정도로 알면 뭐 합니까? 그리고 히브리어를 알고 헬라어를 알면 뭐 합니까? 그것이 오히려 더 부자로 만들고 있지만, 사람들은 행위로도 부자가 되기를 원하고 있고 지식으로도 부자가 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잘 지킵니다.

그리고 율법을 잘 못 지킵니다. 어떻게 되기를 원하겠습니까?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기를 원하겠습니까?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은 다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하면서 부자가 되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하나님께서 자기를 어떻게 구원해 주시는 줄을 전혀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마리아인들입니다.

그들은 가난한 자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마리아 여자와의 예배에서도 우리가 말씀을 보았지만, 유대인들이 사마리아인들과 상종도 하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감히 예루살렘 성전에 가서 예배를 할 수 있고 제사를 드릴 수 있습니까?

 

사마리아 여자가 말합니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를 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예배하고 싶었지만, 유대인들이 상종도 하지 않아서 예배할 수 없었고 그래서 그들은 율법을 지키지 못했고 가난한 자로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주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으로 이 세상에 구주신 줄을 믿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주님께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시고 후에 제자들이 추수하러 가서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을 수 있었습니다. 사도 요한과 베드로가 가서 성령을 받게 기도를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마리아에서 이틀을 유하셨습니다.

그리고 이틀이 지나매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 갈릴리로 가시며 친히 증거 하시기를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높임을 받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시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복음을 전하시는 일로는 선지자로 오셨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에스겔 33:30-31절을 보겠습니다. (1203)

인자야 네 민족이 담 곁에서와 집 문에서 너를 의논하며 각각 그 형제로 더불어 말하여 이르기를 자, 가서 여호와께로부터 무슨 말씀이 나오는가 들어보자 하고 백성이 모이는 것같이 네게 나아오며 내 백성처럼 네 앞에 앉아서 네 말을 들으나 그대로 행치 아니하니 이는 그 입으로는 사랑을 나타내어도 마음은 이욕을 좇음이라

 

고향

나고 자란 곳을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갈릴리로 가시면서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높임을 받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틀 전에 사마리아에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주님의 말씀을 듣고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알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갈릴리 사람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을 보아서 잘 알고 있듯이 주님께서는 예루살렘의 베들레헴에서 나셨습니다. 지금 그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선지자로도 오셨습니다. 그리고 천국 복음에 대해서 이스라엘에게 전파를 하셨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물론 요한복음에서는 이제 주님의 사역이 시작이 되었지만 주님께서는 이미 가나 혼인에서 물로 된 포도주를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성전에서 표적을 행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표적을 보고 니고데모가 밤에 찾아와서 주님으로부터 거듭남에 대해서 말씀을 들었습니다.

 

영접을 했어야 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 주님이 오셨을 때 그들은 주님을 영접을 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표적을 보고 주님께서 소와 양과 비둘기파는 자들과 돈 바꾸는 자들을 채찍을 만들어서 내어 쫓으시는 것을 보고도 또한 표적을 보고도 영접을 하지 않았습니다.

 

갈릴리입니다.

그곳은 주님께서 자라신 곳입니다. 그러나 나신 곳은 베들레헴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복음서에서 말씀하신 것과 지금 요한복음에서 말씀하신 것은 조금 다르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요한복음에서는 갈릴리를 지칭하기 보다는 이스라엘 전체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에스겔 선지자입니다.

인자라는 말씀을 많이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른 선지자와는 조금 다르게 물론 다른 선지자들로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하는 선지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사야나 예레미야 선지자와는 다르게 에스겔 선지자는 거의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를 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에스겔 선지자가 예언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그대로 이 세상에 오셔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자야 네 민족이 담 곁에서와 집 문에서 너를 의논하며 각각 그 형제로 더불어 말하여 이르기를 자, 가서 여호와께로부터 무슨 말씀이 나오는가 들어보자 하고 백성이 모이는 것같이 네게 나아오며 내 백성처럼 네 앞에 앉아서 네 말을 들으나 그대로 행치 아니하니 이는 그 입으로는 사랑을 나타내어도 마음은 이욕을 좇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오셔서 하실 일입니다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에 오셔서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천국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주님께로 나와서 여호와께로부터 무슨 말씀이 나오는가 들어보자고 하고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으나 그대로 행치 아니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욕을 좇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사로운 이익을 탐하는 것을 좇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주님을 보내주셨고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셨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이스라엘의 유대인들은 사사로운 이익을 좇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만약에 이스라엘이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천국 복음을 듣고 믿었다면 주님을 영접하고 높이셨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에스겔 선지자의 말씀과 같이 주님께로 와서 여호와께로부터 무슨 말씀이 나오는가 들어보자 하고 백성이 모이는 것같이 네게 나아오며 내 백성처럼 네 앞에 앉아서 네 말을 들으나 그대로 행치 아니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영생을 받게 하기 위해서 주님을 보내주셨고 주님께서는 선지자로서 이스라엘에게 천국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주님의 말씀을 듣기는 들었으나 영생을 얻는 일을 하지 않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높임을 받지 못하셨습니까?

이스라엘은 스스로가 높아지려고 했습니다. 상석에 앉는 것을 좋아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율법을 잘 지킨 이유는 바로 이렇게 높임을 받기 위해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스스로 높아지니까 주님을 높일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지금은 주님께서 하늘에 올라가셨습니다. 이 세상에 계시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높이고 싶어도 높일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 앞에서 낮추어야 하는데 이 시대는 주 앞에서 높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 앞에서입니다

교회 안에서 자기를 낮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자기를 낮추어야 하는가 하면 내가 가난한 자가 되어야 자기를 낮출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역시 율법을 지킴으로서 이욕을 좇고 있고 자기를 높이고 있습니다.

 

말로는 합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무엇인가 행위를 하고 나서 주님을 높인다고 하면서 주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말은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행위는 다 자기들을 높이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렇게 율법의 행위로 자기를 높이면서 말로는 주님을 높인다고 하면서 영광을 돌린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기다리던 메시야가 오셨습니다. 당연히 주님을 영접하고 주님을 높이셔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영의 일을 모르고 육의 모습만을 보면서 주님을 영접하지도 않았고 도리어 주님을 대적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에스겔 선지자 말씀 그대로입니다

그 말씀을 주님께서는 아시고 지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선지자로 오셔서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고 있지만 그렇게 하면 당연히 이스라엘은 주님을 맞이하고 영접을 해야 하는데 그렇지를 않다는 것을 에스겔 선지자의 말씀을 인용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 말씀입니다.

이 시대를 보더라도 그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에스겔 선지자의 말씀과 같이 가서 여호와께로부터 무슨 말씀이 나오는가 들어보자 하고 백성이 모이는 것같이 네게 나아오며 내 백성처럼 네 앞에 앉아서 네 말을 들으나 그대로 행치 아니하니 이는 그 입으로는 사랑을 나타내어도 마음은 이욕을 좇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입니다.

아들을 보고 믿는 자에게 영생을 주시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주님께서 이 세상에 선지자로 오셔서 말씀하고 있지만, 아들을 보고 믿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이욕을 좇아가면서 율법의 행위에 더욱 깊이 빠져 들어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꼭 주님이 아니더라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아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선지자들을 보내주셨지만, 이스라엘은 어떻게 했습니까? 그들을 때로는 죽이기도 했고 심지어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를 하고 있는 선지자에게 선포하지 말라고 하면서 계속 하면 너를 죽이겠다고 말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입입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들어오시기 바랍니다. 그들보다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은 없을 정도로 말로는 청산유수와 같이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행위는 이욕을 좇음으로서 영생에서 점점 더 멀어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4:45절을 보겠습니다. (149)

갈릴리에 이르시매 갈릴리인들이 그를 영접하니 이는 자기들도 명절에 갔다가 예수께서 명절 중 예루살렘에서 하신 모든 일을 보았음이더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갈릴리에 도착하시니, 갈릴리 사람들이 예수를 환영하였다. 그들도 명절을 지키러 예루살렘에 갔다가, 예수께서 거기서 하신 모든 일을 보았기 때문이다.”

 

갈릴리로 가셨습니다.

우리는 성경의 단어를 보아서는 안 됩니다. 저는 늘 말씀을 드리고 있지만, 성경의 문장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독해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성경은 비유와 은유로 되어 있고 감추어져 있다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성경을 너무 쉽게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상고를 하지 않고 있다 보니까 성경을 거의 거꾸로 해석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성경을 기록할 때는 우리가 그냥 보아서 알 수 있게 기록하지 않았다는 것을 늘 생각을 하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사람들은 자기들의 이성으로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아니 이상하게도 목사가 돼서 성경을 보는 사람들은 거의 독해력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국어를 전공한 국문과 출신들도 목사가 되어서 성경을 볼 때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물론 이유가 있습니다.

그들이 너무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맹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글 개역성경을 폄하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성경을 거의 모든 목사들이 잘못 번역이 되어 있다고 생각을 하니까 깊이 상고를 하지 않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갈릴리에 오셨습니다.

주님께서 사셨던 고향이기도 합니다. 그들이 주님을 영접을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보고 앞에서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마치 상반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선지자가 고향에서 높임을 받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갈릴리로 가셨습니다.

그런데 사도 요한이 어떻게 말씀을 하고 있는가 하면 갈릴리에 이르시매 갈릴리인들이 그를 영접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접했다고 하니까 앞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반대가 되는 것으로 알고 사람들이 성경을 보면서도 혼란을 겪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이 왜 영접을 했습니까?

어떻게 영접을 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 영접한 것은 자기들도 명절에 갔다가 예수께서 명절 중 예루살렘에서 하신 모든 일을 보았기 때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유월절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행하신 일을 보고 영접을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영생의 일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갈릴리 사람들이 주님을 왜 영접을 하고 있습니까? 주님께서 유월절에 예루살렘 성전에 가셔서 소와 양과 비둘기파는 자들과 돈을 바꾸는 자들을 채찍을 만들어서 내어 쫓으시면서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고 하시고 또 성전에서 표적을 보이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주님께서 행하시는데도 제사장이나 바리새인들이 주님을 막지 못했습니다

.

영접을 했습니다.

갈릴리 사람들이 왜 주님을 영접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들 역시 메시야 사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미 세례 요한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주면서 메시야가 오실 것을 전파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유월절에 성전에 가셔서 그런 일을 하신 것을 보고 감히 어느 누구도 막지 못하니까 주님을 영접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신 모든 일입니다

갈릴리 사람들이 왜 주님을 영접하고 있는가 하면 주님께서 하신 일을 보고 영접을 하고 있다고 사도 요한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영접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영접하는 자 그 이름을 믿는 자는 영생을 얻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지금 갈릴리 사람들이 이 말씀과 같이 영접을 하고 있습니까?

 

신명기 29:2-4절을 보겠습니다. (308)

모세가 온 이스라엘을 소집하고 그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너희 목전에 바로와 그 모든 신하와 그 온 땅에 행하신 모든 일을 너희가 보았나니 곧 그 큰 시험과 이적과 큰 기사를 네가 목도하였느니라 그러나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는 오늘날까지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셨느니라

 

갈릴리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왜 주님을 영접했는가 하면 예수님께서 명절에 예루살렘에서 하신 일을 보았기 때문에 영접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치 이 영접이라는 단어를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들이 구원을 받은 것으로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앞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높임을 받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사도 요한의 말씀을 깊이 상고를 해야 합니다. 갈릴리 사람들이 구원을 받는 영접을 했다면 주님께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주님으로부터 말씀을 들어서 천국 복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갈릴리 사람들은 주님을 영접만 했습니다. 거의 모든 다른 번역에서는 환영했다고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한글개역성경 만 영접이라고 번역이 되고 있고 다른 번역은 환영이라고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저 역시 이 말씀은 환영이라는 번역이 더 맞는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헬라어를 보더라도 환영하다 환대하다 라는 의미가 더 강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미 말씀을 하셨습니다.

친히 증거 하시기를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높임을 받지 못한다고 앞에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런 영접이 아니라 지금 갈릴리 사람들은 주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서 행하신 모든 일을 보고 환영을 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신 모든 일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영접을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영생에 대해서 바로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신 일을 본 것으로 영접을 하는 것이 주님을 믿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앞에서 사마리아인들이 어떻게 했습니까?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사마리아인들입니다.

그들은 주님께 나와서 유하시기를 청해서 주님께서 이틀을 계시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친히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갈릴리 사람들이 주님을 영접하는 것은 주님께서 명절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행하신 모든 일을 보고 영접을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행하신 모든 일을 보았습니다.

그들이 사마리아인들과 같이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알고 있습니까?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 주님께서 앞에서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높임을 받지 못한다고 하셨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지금 갈릴리 사람들은 사마리아인들과 같이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알고 영접을 한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신 모든 일을 보고 영접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높이고 있습니까?

그것을 신명기에서도 모세가 이스라엘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너희 목전에 바로와 그 모든 신하와 그 온 땅에 행하신 모든 일을 너희가 보았나니 곧 그 큰 시험과 이적과 큰 기사를 네가 목도 하였느니라, 그러나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는 오늘날까지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행하신 모든 일입니다

그것을 이제 가나안을 목전에 두고 있는 이스라엘이 다 보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호와께서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는 오늘날까지 주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갈릴리 사람들이 주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서 행하신 모든 일을 보고 영접을 하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들이 주님을 진짜 높이고 영접을 했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주님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사마리아인들과 같이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알고 믿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해야 높임을 받는 것이 된다는 것을 지금 주님께서 말씀하시고 계시고 사도 요한도 그렇게 성경을 기록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선지자로도 오셨습니다.

그러면 갈릴리 사람들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사마리아인들과 같이 주님께 함께 유하시기를 청해서 아름다운 소식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알고 믿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고향 사람인 갈릴리 사람들은 주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서 행하신 모든 일을 보고 나서도 주님의 말씀을 듣기를 원하지 않고 그저 환영만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아직 갈릴리 사람들에게는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를 주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주님을 인간적으로 환영을 하는 것은 주님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가 이 세상에 오신 자기들의 구세주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