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강, 요한복음1:33절을 보겠습니다. (신 143쪽)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주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세례 요한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보내셔서 물로 세례를 주라고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세례 요한은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서 주의 길을 곧게 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라는 것을 알고 그에게 나와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주라 하신 이
세례 요한은 자기가 그냥 세례를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보내셔서 물로 세례를 주라고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물로 세례를 주라고 하셨는가 하면 그를 이스라엘에게 나타내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례를 주는 이유입니다.
요한이 물로 세례를 주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를 앞서 보내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의 말씀 그대로 세례 요한은 주님 앞에 와서 이렇게 세례를 주면서 그에 대해서 증거를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례 요한을 보내셔서는 물로 세례를 주라고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세례 요한은 성령으로 세례를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이가 자기 뒤에 오시는데 먼저 물로 세례를 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세례입니다
성령 세례를 예표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례 요한을 통해서 먼저 물로 세례를 주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세례 요한에게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이인 줄 알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합니다.
우리 인생은 성령으로 세례를 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과 같이 세례 요한을 보내셨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물로 세례를 주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어느 누구도 성령으로 세례를 줄 수 없다는 것을 세례 요한을 통해서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시대입니다
성령 받으라고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느 목사들은 성령 집회를 하면서 성령을 받으라고 큰 소리를 지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 해서 성령 세례를 받을 수 있는 것과 같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우리는 성령 세례에 대해서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는 그저 목사들이 성령 세례를 받으라고 하면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성령이 우리 안에 오신다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물세례입니다.
그리고 성령 세례입니다 이 둘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앞에서 말씀을 드렸지만 이제 우리는 세례 요한이 주던 물세례를 더 이상 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 받을 필요가 없는가는 앞에서 말씀을 드린 것과 같이 요한의 물세례는 예수 그리스도를 이스라엘에게 나타내게 하기 위해서 세례 요한이 베풀었던 세례입니다
아직 주님이 오시지 않았습니다.
아니 주님은 오셨지만 아직 주님께서 구속의 사역을 하시지 않고 있는 때입니다 그때에 세례 요한을 하나님께서 보내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스라엘에게 나타내게 하기 위해서 물세례를 주게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성경이 다 기록이 되어 있고 예수 그리스도가 성경에 다 나타나 있습니다.
물세례를 줄 필요가 있습니까?
이미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물세례를 받아야 볼 수 있습니까? 그것이 아닙니다. 물세례는 쉽게 말을 해서 하나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이스라엘에게 나타내게 하기 위해서 베풀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것으로 끝입니다.
물론 예수님의 제자들도 물세례를 주었고 빌립도 물세례를 주었고 사도 바울도 물세례를 주었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성령 세례를 받지 못해서 성령 세례에 대해서 몰랐기 때문에 주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필요가 없습니다.
아니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물세례는 이제는 아무 의미가 없는 세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기독교라는 종교는 그것을 의식화해서 만들어서 교회 안에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물세례를 주고 침례를 주고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쉽게 말씀을 드립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이 세상 죄를 지고 가시기 전입니다. 그때는 이스라엘은 세상에서 죄를 지면 어떻게 해야 했는가 하면 성경에 문자로 기록이 되어 있는 그대로 양을 잡아서 제사장에게 가서 안수를 하고 나서 번제단에서 번제로 드림으로 해서 죄사함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우리가 지금 죄를 지었습니다. 똑같이 양을 잡아 가지고 가서 번제단에서 번제로 드려야 합니까? 어느 누구도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왜 하지 않는가 하면 세례 요한의 말씀과 같이 주님께서는 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오셔서 이 세상 죄를 다 지고 가셨기 때문에 우리가 더 이상 그런 의식을 할 필요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세례 요한이 주었던 물세례라는 것도 그렇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물세례를 할 필요도 없고 해서도 안 됩니다 왜 그런가 하면 이제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이가 우리에게 오셨고 그가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셔서 사십일 동안 제자들에게 보이시다가 하늘에 올라가셨습니다.
그러고 어떻게 하셨습니까?
오순절이 이르매 성령이 제자들에게 임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주님의 부활까지 다 보았고 또 주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말씀까지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 나타나 계시는데 우리가 물세례를 받을 이유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행전19:4절을 보겠습니다. (신 220쪽)
“바울이 가로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요한의 물세례입니다
우리는 이 물세례에 대해서 바로 알아야 합니다. 물세례가 무엇인가 그리고 성령세례가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물세례도 모르고 있고 성령 세례도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어떤 세례를 받아야 하는 줄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입니다
물세례를 받고 있습니다. 앞에서 말씀을 드린 대로 복음을 전하는 그러니까 성령 세례를 받은 사람 역시도 물세례를 주었다는 것을 우리가 성경에서 보고 있습니다. 그런 성경의 문자를 보고 사람들은 더욱 더 물세례를 받는 것에 있어서 너무도 당연한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앞에서 말씀을 드셨습니다.
우리가 죄를 지어도 이제는 더 이상 번제를 드리지 않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물세례 역시 교회 안에서 더 이상 어느 누구도 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하지만 사람들은 물세례를 받고 있습니다. 저 역시 아무 것도 모르고 있을 때는 그저 다수의 종교인이 시키는 대로 받아야 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그들의 의식에 의해서 물세례를 받았습니다.
물세례가 무엇입니까?
그것을 사도 바울이 사도행전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요한이 물세례를 준 것은 이제 회개를 하고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고 하면서 세례를 주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회개입니다
이스라엘을 우리는 잘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었습니까? 그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철저하게 율법주의에 빠져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율법을 지키고 있는 그들에게 주님께서는 마귀의 자식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가 누구십니까?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성경을 바로 풀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제까지 요한복음에서 계속해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말씀을 했습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1장1절입니다.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8절에서도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직접적으로도 말씀을 하고 있고 비유적으로도 하나님이라고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전능하신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믿는 유일하신 하나님입니다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그분 안에 생명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받을 영의 생명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영의 생명이 사람들의 빛이라고 말씀을 하면서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참 빛으로 우리 각 사람에게 비취기 위해서 오셨지만 빛이 비취매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사도 요한은 그들이 하나님을 안 믿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알지도 못했고 알지를 못하니까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 이스라엘에게 세례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면서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너희가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서 회개의 세례를 베풀면서 이제 하나님을 믿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이 주는 물세례를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 이스라엘에게 물세례를 주면서 이제 회개를 하고 내 뒤에 오시는 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하나님을 믿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물세례입니다
요한의 세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에 나와서 학습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 물세례를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지 않고 살아가는 이스라엘에게 회개를 하고 이제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면서 물세례를 주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세례를 왜 주었습니까?
하나님을 믿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 이스라엘에게 이제 회개를 하고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기 위해서 세례를 주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 기독교는 교회에 나와서 일정 기간 학습을 받아서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고백을 하게 되면 그때 물세례를 주고 있습니다.
물세례를 받으면 어떻게 됩니까?
자기들이 구원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제 세상에서 살다가 하나님의 성도가 되어서 구원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의 물세례는 전혀 그런 뜻이 아닌데 이 시대 기독교라는 종교는 세례 요한의 물세례를 주면서 마치 구원을 받은 것으로 생각을 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회개를 하라는 세례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모두가 율법주의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세례 요한은 물세례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스라엘에게 나타나게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를 보고 회개를 하고 하나님을 믿으라고 물세례를 주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3:3절을 보겠습니다. (신 91쪽)
“요한이 요단 강 부근 각처에 와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사도행전2:38절을 보겠습니다. (신 190쪽)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요한이 물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많이 와서 세례를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절기 때에는 이방에 사는 사람들이 와서 세례 요한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라고 하면서 그에게 와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가 왜 세례를 베풀었는가를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물세례를 주었습니다.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 시대 물세례를 받는 사람들의 생각에는 무엇이 자리하고 있는가 하면 자기가 받은 물세례로 인하여 죄 사함을 받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세례를 받음으로 해서 죄 사함이 이루어져서 구원을 받은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절대 아닙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이 받는 물세례는 그저 그들의 의식에 불과하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누군가에 의해서 의식으로 만들어졌고 그것을 기독교라는 종교는 교리로 만들어서 이제는 교회법으로 자리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치 그 물세례를 받아야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는 것과 같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입니다
요단 강 부근에서 세례를 주었습니다. 그 세례를 주면서 무엇을 증거를 했는가 하면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를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이 주는 물세례가 죄 사함을 받는다는 말씀이 아니라 요한은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이스라엘에게 나타내기 위해서 물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그가 베푸는 물세례가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의 세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물세례를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무엇을 증거를 했습니까? 죄 사함을 받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요한복음에서는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이인 줄 알라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세례입니다
그것으로 우리가 죄 사함을 받을 수 있습니까? 절대 아닙니다. 이제 요한의 물세례는 그림자로서 지나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제는 더 이상 물세례를 주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물세례를 교회법으로 만들어서 의식적으로 주고 있고 그 세례를 받음으로 해서 구원을 받은 성도가 되는 것으로 생각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죄 사함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씀입니다 죄 사함이라는 말씀은 죄가 없어진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 베드로가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죄 사함
회개, 믿음, 성령 세례 등 이 모든 것은 구원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일어나는 역사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떤 순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해서 이 모든 것이 동시에 일어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죄 사함을 어떻게 받습니까?
물세례를 받음으로 해서 죄 사함을 받을 수 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회개를 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해서 나에게 성령이 오심으로 해서 성령으로 난 영이 내 안에 거하시는 역사를 죄 사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시는 일입니다
그것을 성령 세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심으로 해서 우리가 죄 사함을 받을 수 있게 되고 그 죄 사함을 받는다는 것은 내 안에 성령으로 난 영이 거하시는 역사가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오해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 육체가 아닙니다.
죄 사함이라고 하니까 이 시대 자기 육체가 죄 사함을 받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물론 우리 육체가 지은 죄에 대해서 사함을 받습니다. 그 결과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죄 사함을 받는다고 해서 우리 육체가 깨끗해지는 것이 절대로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느 교회입니다
죄 사함을 받으면 자기 육체가 깨끗해지는 것으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영의 일을 말씀을 하는 것이지 육체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죄 사함을 받습니다. 우리는 죄인이기 때문에 어떻게 해도 사함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오셔서 죄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 심판에 대해서 책망을 하심으로 해서 우리가 죄 사함을 받습니다.
그렇게 성령이 오십니다.
우리 안에 성령이 오시는 역사가 성령 세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해서 성령이 우리 안에 오신다고 해서 내 육체의 죄가 사함을 받아서 내 육체가 깨끗해지는 것으로 오해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결과입니다
성령이 오심으로 해서 우리 안에 거룩하신 이의 영이 거하시게 되고 그 영이 거하시는 역사를 믿고 죄 사함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거룩하신 이의 영이 거하시는 역사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하면 성령이 우리에게 오심으로 해서 이루어지고 있고 그것을 성령 세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 세례입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오시는 것을 성령 세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오는 역사는 우리의 의지나 우리의 이성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하나님께서 우리 각 사람에게 성령을 보내주셔야 성령을 받을 수 있고 그렇게 성령이 임하시는 역사를 성령 세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1:5절을 보겠습니다. (신 189쪽)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성령 세례
성령이 우리에게 오시는 역사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인생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는 모든 구속의 일을 이루셨습니다. 그것을 생명의 빛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빛을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신 구속의 일을 통해서 나타내 주시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빛이 어두움에 비추매 어두움에 깨닫지 못하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인생입니다 그러니까 육체입니다 이 육체의 이성으로는 영의 일을 아무리 보아서 깨달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정말 평생을 성경만 보고 산다고 해도 이 성경에서 영의 생명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를 깨달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정의입니다
빛이 어두움에 비추매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고 말씀을 했으면 우리는 어떻게 해도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을 인정을 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깨달을 수 없으면 어떻게 됩니까? 우리 인생은 어느 누구도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독생하신 하나님입니다 그분이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모든 구속의 일을 이루셨습니다. 그것을 우리 인생들의 생명의 빛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빛이 우리 눈으로 이성으로 볼 수 있는 빛이 아니라 반드시 진리로 인도함을 받아야 하는 빛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모든 일을 다 이루셨다고 해도 우리는 스스로가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아니 성경을 사람의 이성으로 보고 그것을 깨닫고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삼년 반 동안 제자들과 함께 하시면서 복음을 전파를 하셨습니다. 천국 복음에 대해서 전파를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천국복음이 사람의 이성으로는 도무지 깨달을 수 없어서 제자들이 듣고도 너무 어렵다고 말을 하면서 이것을 누가 깨달을 수 있겠느냐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도 영생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먼저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 인생의 이성적 지식으로는 그가 아무리 신학을 공부를 하고 평생을 성경만 연구를 한다 해도 이 영의 생명에 대해서 그리고 내세의 일에 대해서 깨달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습니까?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에서 삼년 반 동안 제자들과 함께 하시면서 복음을 전파를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 말씀을 들은 제자들 역시 이것이 영의 일이다보니까 도무지 깨달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했습니까?
주님께서는 그들이 깨닫든지 말든지 계속해서 삼년 반 동안 제자들과 함께 하시면서 천국복음을 전파를 해 주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는가 하면 성령이 오시면 반드시 생각이 난다는 것을 알고 계셨고 성령이 진리 가운데로 인도를 하신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에 그들이 비록 지금은 알아듣지를 못하더라도 복음을 전파를 하셨습니다.
그것을 무엇이라고 합니까?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유월절을 먹이셨습니다. 그러니까 무교병과 쓴 나물과 어린양을 삼년 반 동안 함께 다니시면서 먹이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이제 구속의 일을 다 이루시고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유월절 예비일에 제자들과 함께 만찬을 드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념을 하셨습니다.
무엇에 대해서 기념을 하셨습니까?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제자들에게 유월절을 다 먹이신 일을 기념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유월절 예비일에 만찬을 드시고 나서 유월절에 세례 요한이 말씀을 한 것과 같이 세상 죄를 지고 가신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서 십자가를 지시고 다 이루었다고 하시고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부활을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말씀을 하신 그대로 삼일 만에 영으로 부활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사십일 동안 제자들에게 보이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영으로 부활을 하심으로 해서 여러 가지 형상으로 나타나셨고 제자들은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다고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하늘로 올라가시기 전입니다
제자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시고 이제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주님께서 영으로 부활하시고 사십일을 이 세상에 계시다가 하늘에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 오순절이 임했습니다.
주님께서 기다리라고 하신 그대로 120여 문도가 주님께서 말씀을 하신 그대로 성령 세례를 받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었고 오순절이 임하매 성령이 오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성령이 제자들에게 임하는 역사를 성령 세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 세례입니다
다른 말로 성령이 임하시는 역사입니다 우리 안에 성령이 오시는 역사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성령 세례가 처음에는 어떻게 오셨는가 하면 정말 이스라엘의 절기 오순절이 임하매 성령이 오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유월절 어린 양으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성도들에게는 반드시 유월절을 먹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절기입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의 절기에 대해서 바로 알아야 합니다. 물론 정확한 날짜로 정해진 절기는 이제 폐하여 졌습니다. 그것을 다시 날짜에 맞춰서 지키는 것은 역시 그림자를 행하는 일이기 때문에 구원을 받을 수 없고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3대 절기입니다.
유월절입니다. 그리고 맥추절입니다. 오순절이라고도 합니다. 그리고 수장절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절기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시간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이 차례대로 우리가 그 의미를 알고 지켜져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유월절입니다
이제 모든 절기는 개인이 의미적으로 지켜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절기는 이제 이스라엘에게 정해진 날짜에 지키는 것이 아니라 의미로 우리가 알고 행해야 합니다. 성경에서 반드시 유월절을 먹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오셨습니다.
그리고 유월절 예비일에 만찬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기념을 하셨습니다. 왜 기념을 하셨는가 하면 이제 주님이 오셔서 제자들에게 유월절을 다 먹이셨기 때문에 기념을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역시 성경에서 말씀을 보고 유월절을 먹어야 합니다.
성령 세례입니다
이 시대는 너무 성경을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맥추절이라고도 하고 오순절이라고도 하고 있습니다. 유월절이 지나지 않았는데 오순절이 올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순절이 임하려면 그러니까 성령 세례를 받으려면 반드시 유월절이 우리에게서 지나가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유월절을 먹어야 한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유월절을 안 먹었습니다.
그가 성령 세례를 받을 수 있습니까? 절대로 그런 일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반드시 유월절을 먹어야 그 다음 절기인 오순절이 우리에게 임함으로 해서 성령 세례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주님께서 사도행전에서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유월절을 먹은 제자들에게 몇 날이 못 되어 성령 세례를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 세례를 받았습니까?
그는 먼저 유월절을 먹은 자가 되어야 합니다. 성경에서 무교병과 쓴 나물과 어린 양을 지팡이를 짚고 급히 먹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유월절을 먹은 성도들에게 그 다음 절기인 오순절이 오게 되어 있고 그 날에 성령이 오시는 것을 성령 세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5:7-8절을 보겠습니다. (신 268쪽)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 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도 말고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도 말고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떡으로 하자”
성령 세례입니다
반드시 유월절을 먹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성령을 받을 때까지 그러니까 성령 세례를 받을 때까지 유월절을 먹어야 한다는 것을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유월절을 먹지를 않고 있습니다.
유월절을 먹었습니까?
이 시대 기독교 안에 유월절을 먹은 사람이 있습니까? 성령 세례를 받으려면 반드시 유월절을 먹어야 합니다. 유월절을 먹지 않고 성령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절기는 반드시 차례대로 오고 있습니다. 오순절이 먼저 올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수장절이 먼저 올 수도 없습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성령 세례도 받지도 않은 사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수장절이 온다는 것은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을 의미를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오심으로 해서 우리가 부활의 영광에 참여를 함으로 해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의 모형이 수장절입니다 그런데 성령이 오시지 않은 사람에게 수장절이 올 수 있습니까?
개인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개인적인 죽음을 맞이하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죽었습니다. 그가 구원을 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까? 반드시 그가 오순절이 임해서 성령 세례를 받았다고 해야 구원을 받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절기는 반드시 차례대로 온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오순절입니다
주님께서도 영으로 부활하시고 이제 하늘에 올라가시면서 제자들에게 몇 날을 기다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기다리라고 하셨는가 하면 제자들에게 유월절을 먹이셨기 때문에 몇 날을 기다리면 오순절이 임하고 성령 세례를 받을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룩입니다
우리는 누룩이 없는 자입니다 내가 성령 세례를 받았습니까? 아니 유월절을 먹은 자입니까? 반드시 누룩 없는 자만 유월절을 먹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에게 누룩이 있으면서도 성령 세례를 받았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스스로 속고 있는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 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도 말고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도 말고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떡으로 하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룩이 무엇입니까?
성경에 누룩이라는 말씀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누룩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다면 그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주님께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두개인의 누룩과 바리새인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바리새인이 누구입니까?
율법주의입니다
그들이 먹고 있는 말씀이 누룩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전하고 있는 모든 말이 다 누룩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은 묵은 누룩도 말고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도 말고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떡으로 하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기독교입니다
누룩 없는 떡으로 하는 교회가 있습니까? 율법을 지키지 않은 교회가 있습니까?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누룩이 있으면 그는 유월절을 먹는 자가 아닙니다. 유월절을 먹지 않았으면 그에게는 성령 세례가 절대로 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령 세례를 받았습니까?
나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먼저 내가 유월절을 먹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묵은 누룩도 말고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도 말고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떡으로 하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단 한 가지라도 지키고 있으면 그는 절대로 성령 세례를 받은 자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령 세례입니다
성경의 문자를 아는 것으로 그리고 받았다는 말씀을 보고 자기가 마치 성령 세례를 받은 것으로 오해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성령 세례를 누가 받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다 성령 세례를 받은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무지한 자들입니다
그것도 수십만 명이 다니고 있는 교회의 목사입니다 그들이 어떻게 말을 하고 있습니까? 오늘도 성령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전에도 성령 세례를 받았는데 오늘도 집회를 통해서 성령 세례를 받을 수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 세례입니다
성령이 내 안에 오시는 역사입니다. 일회성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도 성령 세례를 받고 내일도 성령 세례를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런 종교의 집회를 통해서 성령 세례가 임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온갖 누룩 투성이입니다.
그런데 성령 세례를 받을 수 있습니까? 그 집회에 온갖 율법이 지켜지고 있는데 성령 세례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목사들이 이야기를 하면 그런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자기에게 누룩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그저 목사가 성령 세례를 받았다고 하면 받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종교적인 외식을 하고 있습니까? 그런 것이 있는 상태에서 성령 세례를 받았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분명히 우리는 누룩이 없는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적은 누룩 한 덩어리가 온 덩이를 퍼지가 만들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3:2절을 보겠습니다. (신 304쪽)
“내가 너희에게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
성령 세례입니다
쉽게 말씀을 드리면 성령을 받은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우리 구원을 받는 성도들에게 성령을 보내 주시는데 성령을 받았느냐 하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치 물로 세례를 받는 것과 같이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는 역사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가장 기본입니다
이 사람이 성령을 받았는가 아니면 그저 자기 입으로 성령을 받았다고 하는 사람인가를 알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성경적인 근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에서 말씀을 한 그대로 누룩에 대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 누룩이 있다면 그는 그가 아무리 성령을 받았다고 주장을 한다고 해서 성경적으로 볼 때 성령 세례를 받은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똑같은 말씀을 갈라디아에서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성도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복음을 듣고 성령을 받았고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다른 곳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그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유대로부터 온 거짓 형제가 들어와서 다른 복음을 전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복음이 무엇인가를 서신으로 보낸 것이 바로 갈라디아서라고 말씀을 할 수 있습니다. 그 유대로부터 온 거짓 형제가 와서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있는 성도들에게 율법을 지키게 했고 그것을 사도 바울은 다른 복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할례입니다
이 시대는 갈라디아서를 보면서 사도 바울이 할례에 대해서 말씀을 하니까 자기들이 할례를 받지 않은 것으로 마치 갈라디아서는 자기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는데 늘 말씀을 드리지만 율법의 대표성을 갖는 것이 바로 할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할례를 받았습니다.
그것은 율법을 지켰다는 말씀과 같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성도들에게 묻고 있지 않습니까?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그러니까 성령 세례를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서냐고 묻고 있습니다.
성령을 받은 것입니다
그것은 다른 말로 하면 성령 세례를 받았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있는 성도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복음을 전할 때 너희가 어떻게 성령을 받았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그때 너희는 율법을 지키지 않았고 내가 전한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해서 성령 세례를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입니다
사도 바울이 처음 복음을 전할 때는 이방인들에게 율법을 지키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에 있는 문자로 기록이 되어 있는 율법을 보고 그대로 행위로 하는 것을 하지 않고 사도 바울은 그 율법에서 의미를 알아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습니다. 그런데 유대로부터 온 거짓 형제들이 오면서부터 율법을 지키기 시작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단 하나의 누룩이 나에게 있습니까? 그것이 무엇이든지 상관이 없습니다. 지금 사도 바울은 비교법을 써가면서 너희가 성령을 어떻게 받았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지키면 성령을 받을 수 없고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해서 성령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비교법입니다
이 시대는 목사들이 성경을 보면서 국어를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헬라어를 본다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분명히 비교법으로 사도 바울은 둘을 비교를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비교법으로 할 때는 둘을 같이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느 한 가지입니다
그럼 어느 한 가지는 할 수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해서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성령을 받았습니다. 율법의 행위를 해서 성령을 받았든지 아니면 복음을 듣고 성령을 받든지 둘 중에 하나로 성령을 받습니다. 율법을 지키면서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성령을 받았다는 말은 성립이 될 수 없는 문장이라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성경에는 비교법이 많이 있습니다.
이렇게 비교법으로 말씀을 할 때는 어느 한 가지를 하면 어느 한 가지는 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두 가지를 다 하면서 성령을 받았다고 하는 것은 그는 문법 자체를 모르는 무식한 사람이라는 것을 먼저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국어 국문과를 나와서 목사를 한다는 그 사람도 성경을 볼 때는 이상하게도 이 비교법에 대해서 모르고 있습니다.
정말 이해가 안 됩니다
자기가 국어 국문과를 나왔습니다. 그리고 헬라어를 전공을 했습니다. 그러면 이 말씀이 비교법으로 기록이 되어 있다는 것을 초보라도 알 수 있는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비교법을 생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계속해서 말씀을 드리지만 그들은 이미 신학을 공부를 하면서 종교에 의해서 세뇌가 되어 있기 때문에 자기가 배우고 알고 있는 그것을 뒤집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령 세례를 받았습니까?
묵은 누룩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이 있어서도 안 됩니다 이것이 다 무엇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는가 하면 율법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서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을 받았습니까?
성령은 말씀 그대로 진리의 영입니다 영에 대해서는 늘 말씀을 하고 있지만 우리가 볼 수도 없고 느낄 수도 없고 감정적으로 교감을 할 수도 없고 정말 무색무취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 시대는 이 성령에 대해서 자기들이 받았다고 하면 받은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누구도 인정을 해 줄 수 없습니다.
겉으로 나타나는 것으로는 어느 누구도 이 사람이 성령을 받았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가 성경을 많이 알고 있고 신학을 공부를 해서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안다고 해서 성령을 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까? 성경은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자기들이 성령을 받았다고 하면 받은 것이 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다수가 자기들이 받았다고 하면 받은 것이 되고 또 이제 교회에 들어온 사람도 먼저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받았다고 하면 받은 것이 되고 있습니다. 보이지도 않고 느끼지도 않고 그렇다고 사람의 이성으로 증명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성령에 대해서 그렇게 말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씀을 해 주고 있습니다.
성령이 영이기 때문에 사람의 이성으로는 감정으로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성령을 받은 사람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말씀을 하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이 의미를 하고 있는 뜻을 모르기 때문에 자기들이 성령을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를 전혀 모르고 있고 종교에 의해서 사람들은 교회 안에만 들어가면 다 받은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말씀입니다
먼저 율법을 지키지 않은 것이 그 증거가 되고 있습니다. 그것을 이제 요한복음에서는 어두움에 거하는 것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또 죄를 범하는 것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죄를 범한다고 하니까 사람들이 도덕적인 죄로 오해를 하고 있는데 그것이 아니라 성경에서 율법을 문자로 보고 그 문자 그대로 행위로 하는 것을 죄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증거가 되고 있습니다.
교회에 나와서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그러니까 율법을 지키지 않고 무교병을 먹고 있습니까? 그러면 그 사람이 성령을 받았으면 율법의 행위를 하지 않고 외식을 하지 않고 종교적인 행위를 그러니까 내 육체로 행위를 하지 않는 것으로 내가 성령을 받았다는 것이 증거가 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입니다
갈라디아서를 보시기 바랍니다. 사도 베드로가 외식을 했습니다. 그것을 보고 사도 바울이 문책을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성령을 받은 사람도 모든 것을 다 알 수 없기 때문에 외식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누군가 그것에 대해서 문책을 하면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외식을 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고린도전서에서 그리스보와 가이오에게 물세례를 주었습니다. 그런데 복음을 깨닫고 나니까 자기가 주고 있던 물세례가 요한의 세례로 그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라고 주었던 세례라는 것을 알고 더 이상 물세례를 주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성령을 받은 사람들은 설령 자기가 육체의 정욕에 따라 행위를 했어도 성령이 인도하심에 따라 깨달은 후부터는 더 이상 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5:4-5절를 보겠습니다. (신 290쪽)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 진 것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게 하려 함이라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성령 세례입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시는 역사를 성령 세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요한의 물세례와 성령 세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요한의 물세례는 요한이 하나님으로 보내심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기 위해서 베푼 세례입니다
그것은 모형입니다
그리고 이제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하늘에 올라가셨습니다. 왜 우리가 성령 세례를 받아야 하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인생입니다 그리고 진토라는 것을 말씀을 했습니다. 이 진토는 죽으면 썩어 없어진다는 것을 성경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선악과를 따 먹은 후에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 인생은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 나고 성경은 한번 죽는 것은 누구에게나 정해진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태초에 있는 생명에 대해서 모르니까 이 성령 세례의 의미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죽습니다.
그것을 헛것 같고 지나가는 그림자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의 형제 야고보는 잠시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그렇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사람들까지도 이 세상 사람들이 생각을 하는 내세를 그대로 생각을 하다보니까 자기들의 육체가 죽은 후에 어떻게 되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입니다
그래서 성령 세례에 대해서 쉽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왜 반드시 성령 세례를 받아야 하고 우리에게 성령이 반드시 오셔야 하는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 인생이 가지고 있는 생각으로 성경을 보다보니까 성경에서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지를 도무지 모르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의 물세례입니다
그리고 세례 요한이 내 뒤에 오시는 이가 있는데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이인 줄 알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그런 말씀을 보고도 너무 쉽게 그래 주님이 오셔서 이제 성령 세례를 주시는구나 하는 정도로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왜 받아야 합니까?
그것을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장막이 무너진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을 해서 죽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죽으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이 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인생인 우리가 너무도 허무하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입니다
이 육체의 생명은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인생에게 소망을 주셨습니다. 바로 태초에 있는 생명을 얻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은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 진 것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영의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성경을 보면서도 영에 생명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육체의 생명만을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 샤머니즘에 빠져 그 육체가 죽은 후에 다시 영과 결합을 해서 영화에서 보던 것과 같이 그런 형상으로 구원을 받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다릅니다.
육체는 반드시 죽습니다. 그리고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 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요한복음3장에 가면 주님께서 니고데모에게 거듭남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두 번 나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날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거듭남입니다.
육체의 생명이 어떻게 거듭나는 것이 아니라 두 번 나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태초에 생명이 주어지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는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 나고 썩어 없어지지만 우리에게는 이 거듭난 생명이 있어서 주님이 다시 오실 때 그 생명으로 부활을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생명을 얻는 일입니다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 진 것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육체를 사도 바울은 장막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장막은 죽으면 무너진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너지면 어떻게 됩니까?
끝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이 장막이 무너지는 것을 탄식하는 것은 오직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거듭나는 생명이 우리에게 거하시는 역사고 이 생명은 우리 육체의 생명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태초의 생명이라는 말씀입니다
성령을 보내주십니다.
왜 보내주시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태초의 생명으로 거듭나는 것을 이루시는 것을 성령이 오심으로 해서 보증을 해 주고 있다는 말씀은 진리의 성령이 오심으로 해서 이 생명에 대해서 삼킨바 될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 세례입니다
바로 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게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령이 우리에게 오셔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태초의 생명이 거하시는 것은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주심으로 해서 마치 보증을 서는 것과 같이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장막입니다
반드시 무너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죽으면 끝이 난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아는 성도는 사도 바울의 말씀과 같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를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태초의 생명으로 거듭나는 것을 간절히 사모를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모합니다.
그럼으로 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해서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태초의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서 보증으로 성령을 주신 이는 하나님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입니다
그가 무엇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주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이인 줄 알라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굳이 말씀을 하지 않아도 우리는 다 알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이 말씀을 하고 있는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이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는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가 있는데 그는 성령으로 세례를 주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을 누가 주십니까?
그것을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에서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 진 것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이 지금 무슨 말씀을 합니까?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주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이인 줄 알라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누군가 하면 하나님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세례 요한의 말씀과 사도 바울이 고린도후서에서 말씀을 하는 것을 같이 보면 너무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세례 요한은 성령이 그 위에 머무는 그 이가 누군가 하면 바로 이스라엘이 믿고 있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분이 육신을 입고 우리와 같은 모습으로 오신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입니다
이 시대는 하나님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기독교라는 종교는 하나님을 모르면서도 사람들의 이성으로 하나님을 자기들이 성경을 보고 정의를 내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삼위일체를 만들어 놓고 하나님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성령을 주시는 이입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에서 하나님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창조주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같은 분이 성령을 주시고 있다고 성경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도 성령을 보내주십니다.
하나님도 성령을 보내주십니다. 그럼 같은 분 아닙니까? 한분 하나님 아닙니까? 성경이 이렇게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는데도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믿지 않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 있지도 않은 삼위일체라는 신을 만들어서 믿고 있습니다.
성령이 하나님입니까?
그 하나님이 주님도 보내주시고 있고 하나님도 보내주시고 있습니까? 말이 안 되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성령을 왜 보내주시는가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시는가 하면 생명에게 삼킨바 되게 하려고 성령을 보내주시고 성령이 오심으로 해서 우리가 마치 보증을 받는 것과 같이 믿을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씀합니다.
우리는 육체를 보면 낙심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모든 구속의 일을 이루심으로 해서 우리가 낙심하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잠깐 보이는 것을 보고 경한 것을 보고 우리는 낙심하지 않고 생명에게 삼킨바 되려고 하늘로부터 오는 처소를 덧입기를 위해서 간절히 사모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이입니다
쉽게 말을 해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는 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세례요한은 주님이 주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그분이 바로 하나님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일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으면 우리는 그대로 믿어야 합니다.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왜 우리가 성령을 받아야 하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오직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게 하려 함이라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을 주셔야 받는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이 시대는 성령을 하나님이라고 부르면서 교회 안에 있으면 당연히 성령을 받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입니다 우리는 믿습니다. 믿음의 대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성령은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유일하신 하나님이시고 그분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모든 일을 이루셨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다. 그분이 우리를 구원하신 일을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은 믿음의 대상이 아닙니다.
반드시 받아야 합니다. 왜 받아야 하는가 하면 우리에게 태초에 생명에 대해서 진리로 인도를 하기 때문에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것을 하나님이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럼 구약에서 지혜도 받는다고 하는데 그 지혜도 하나님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고린도전서6:11절을 보겠습니다. (신 269쪽)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성령 세례입니다
왜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에게 성령 세례를 주시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모든 구속의 일을 이루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는 모든 일입니다 그런데 그 일이 다 영의 일이고 우리 인생의 지혜로는 도무지 깨달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세례 요한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주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이인 줄 알라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성령을 보내주셔야지 만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말씀을 하십니다.
구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은 반드시 구해서 받아야 한다는 것을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하지 않고 받는 것이 아니라 구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생명에 대해서 사모하는 성도는 반드시 구하게 되어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말씀을 합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성령을 구하면 하나님께서 구하는 자에게 주신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구해야 합니까?
하나님 나라에 가려면 구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도 성령이 오셔야 거듭날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지혜로는 아무리 성경을 보아도 깨달을 수 없고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없기 때문에 반드시 성령이 오심으로 해서 진리로 인도함을 받아서 생명의 빛을 보게 함으로 해서 대초에 있는 생명에 대해서 믿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령입니다
이제 뒤에서 다시 말씀을 하겠지만 진리의 영이라고 주님께서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인생으로는 진리를 알 수 없습니다. 성경을 아무리 본다고 해도 성령이 오시지 않으면 진리를 알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진리의 영을 보내주심으로 해서 생명에 대해서 진리로 인도함을 받게 역사를 하고 있고 태초에 있는 생명을 믿을 수 있게 인도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고린도전서의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이 불의한 자는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 알지 못하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인생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영생을 얻고자 해서 성경을 보고 있지만 어떻게 하고 있는가 하면 불의를 행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미혹을 받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음란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 미혹을 받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 무엇입니까?
율법과 행위를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본성이 그렇기 때문에 율법을 지키게 되어 있고 행위를 하게 되어 있는데 그것을 비유로 해서 여러 가지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미혹을 받는 자는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미혹을 받습니까?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모든 사람이 다 미혹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 일부의 사람이 미혹을 받아서 사도 바울이 이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다 이렇게 미혹을 받기 때문에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 중에 이 같은 자들이 있더라고 말씀을 합니다.
초대교회입니다 그리고 종교가 되어 있는 기독교입니다 같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초대교회는 주님의 제자들이 있었고 그들은 복음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도 이러한 자들이 교회 안에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입니다
다 이 같은 자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초대교회는 그래도 사도들이 있어서 복음을 전했기 때문에 이 같은 자들이 적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가 되어 있는 종교는 다 율법을 지키고 있고 교회 안에서 온갖 행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십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백성을 구원을 해 주시는 모든 구속의 일을 이루셨습니다. 그 이름과 우리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성령의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다 이루셨습니다.
우리는 구원하시는 모든 일을 다 이루셨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은 이 영의 일을 깨달을 수 없고 믿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해서 씻는다는 것은 물로 씻는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은 우리가 성경을 볼 때 진리의 말씀으로 인도하심을 받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진리로 인도함을 받았습니다.
그럼으로 해서 우리에게 거룩하신 이의 영이 거하신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진리로 인도함을 받아서 주님으로부터 꾸어서 부요하게 되는 것을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율법을 보고 우리가 꿀 수 있는 것은 반드시 진리의 성령의 인도하심이 있기 때문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입니다
진리의 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다 어두움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진리의 영을 보내주심으로 해서 우리가 참 빛을 볼 수 있게 하시고 있고 생명의 빛에 비췸을 받아 생명을 얻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1:34절을 보겠습니다. (신 143쪽)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였노라 하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런데 나는 그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분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증언하였습니다."”
세례 요한입니다
그가 주님에 대해서 증거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자기에게 오시자 그의 위에 성령이 머무는 것을 보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성령이 머무는 것을 보고 그가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이인 줄 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왜 성령으로 세례를 줍니까?
바로 생명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영의 생명에 대해서 도무지 이해할 수도 없고 깨달을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우리에게 오심으로 해서 우리가 이 영의 생명에 대해서 믿을 수 있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이 믿음이 실상이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실상이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받아야 합니다.
이 시대는 교회 안에 있으면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를 보고 자기들이 성령 세례를 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 세례를 누가 받는가를 분명히 성경이 말씀을 해 주고 있습니다. 내가 받았다고 해서 받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대로 되어야 성령 세례를 받은 성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구원을 받았습니까?
성령 세례를 받지 못한 사람은 구원을 받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가 아무리 교회 안에서 평생을 신앙생활을 했다고 해도 성령 세례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특히 율법을 단 한 가지라도 지키는 사람은 절대로 성령 세례를 받은 사람이 될 수 없고 그 사람에는 생명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세례 요한이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세례 요한 역시 우리 인생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를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저 성경의 문자만을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보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사야9장6절의 말씀을 생각을 하면서 보아야 합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는 이 말씀을 생각을 하고 보아야 합니다.
누구입니까?
전능하신 하나님입니다 영존하시는 아버지입니다. 비록 세례 요한은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을 했다고 해도 우리는 이사야9장6절의 말씀을 생각을 하면서 보아야 합니다. 세례 요한은 그가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고 영존하시는 아버지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그저 문자만을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계시고 아들이 계시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상이 헬라 사람들에게 지식으로 이해를 하려고 하다보니까 삼위일체라는 신을 만들어 놓고서 기독교의 교리로 삼고 하나님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아니라 유일하신 하나님으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으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우리 성도가 믿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우리 성도입니다
유일하신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도 그런 의미에서 이사야9장6절의 말씀을 알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증거를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우리를 구원하신 유일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ne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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