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너희는 귀를 기울리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로마서 강해 - 구원론

로마서 강해 161강, 경계입니다

윤주만목사 2019. 4. 1. 01:16

 

로마서 16:19절을 보겠습니다. (262)

너희 순종함이 모든 사람에게 들리는지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를 인하여 기뻐하노니 너희가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하기를 원하노라

 

경계입니다.

사도 바울은 끝까지 경계를 늦추지 않았습니다. 한 영혼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아니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든 인생들이 구원을 받기를 원하시고 있지만 교회 안에는 늘 이렇게 이단들이 들어오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떠나라고 말씀합니다.

이단과 싸우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교훈을 거슬려 분쟁을 일으키고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그들에게서 떠나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율법주의자들을 설득시키려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대립을 하고 있다면 반드시 떠나야 합니다.

 

교회 안입니다.

사도 바울은 초대 교회 뿐 아니라 이 시대 우리 교회 안에도 이러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지금 우리 그리스도 편지에 있는 성도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러한 자들은 언제든지 우리 곁으로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섬기지 않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 믿지를 않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다만 자기 배만 섬기고 있다고 말씀을 하면서 공교하고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서 믿어야 하는데 겉으로는 그런 것과 같이 보이지만 자기 배만 위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그 안에 있는 모든 지혜와 지식으로 충만해 져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알기를 싫어하고 있습니다. 아니 어느 정도 알고 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가 다 된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자들이 율법주의에 미혹이 되면 답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복음을 듣습니까?

그런데 그가 율법주의로 가고 있습니까? 그 사람이 더 무섭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그런 자가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통해서 이 말씀을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성경의 모든 말씀을 경계로 삼아야 합니다.

 

순진한 자들입니다

누가 순진한 자들입니까? 지혜롭지 못한 사람이 순진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슬기로워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사람이 교회 안에 있으면 마음이 미혹을 당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늘 경계를 하고 또 해서 마음이 미혹을 당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성경입니다

우리 영혼의 구원에 대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렇게 보지를 않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그저 쉽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자들이 모두가 미혹을 당하고 있습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여러분의 순종은 모든 사람에게 소문이 났습니다. 나는 여러분의 일로 기뻐합니다. 나는 여러분이 선한 일에는 슬기롭고, 악한 일에는 순진하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에 있는 형제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로마서를 보면서 끝까지 경계를 늦춰서는 안 됩니다 어떠한 사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받은 교훈에 거치게 하는 자들이 우리 안에 혹시라도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여러분의 순종입니다

로마에 있는 교회에 성도들이 순종을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비록 사도 바울이 아직 복음을 전하지 않았지만 이제 그들을 만나러 가기 위해서 이 서신을 보내고 있지만 그들의 믿음이 어떠한가를 잘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너희 순종함입니다.

로마에 있는 성도들은 순종했습니다. 이 순종이라는 말도 많은 사람들이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마치 자기들의 말을 잘 들으면 순종을 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행위를 잘 하는 것으로 순종을 한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들립니다.

이 시대는 초대교회보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교회도 거의 보이지가 않고 있습니다. 제가 볼 때는 아직까지는 그런 교회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초대 교회는 각처에 복음이 전해지고 있는 교회가 많이 있었던 것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입니다

이제 우리도 복음이 전해지기 시작을 했습니다. 로마서 16장을 통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초대교회와 같은 하나님의 역사가 있기를 위해서 우리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을 하기 위해서 우리는 주님께서 부탁하신 그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그래서 들려져야 합니다.

초대 교회와 같이 순종하고 있는 사람들의 소식이 들려져야 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시대 수많은 교회가 있지만 그리스도의 교회가 없어서 그 소식이 들려지지가 않고 있습니다. 교회의 수는 초대교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있지만 그리스도의 교회가 아니라 모두가 자기들의 교회가 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순종하지 않고 있습니다.

로마에 있는 교회와 같이 순종함이 들려져야 하는데 그런 교회가 전혀 들려지지가 않고 있습니다. 천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지만 순종하고 있는 사람들의 소식이 전혀 들려지지가 않고 있습니다.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복음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모두가 율법에 순종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무엇에 순종하느냐에 따라 순종하는 것에 종이 된다는 것을 모르고 율법을 지키는 일에 열심을 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정말 이 시대도 초대 교회와 같이 순종하는 사람들의 소식이 들려지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6:12절을 보겠습니다. (342)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하였도다

 

고린도전서 14:20절을 보겠습니다. (280)

형제들아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아이가 되라 지혜에 장성한 사람이 되라

 

복음에 순종하고 있습니다.

로마에 있는 형제들이 복음에 순종하는 것이 모든 사람에게 들려짐으로 해서 내가 너희를 인하여 기뻐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에 있는 성도들이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것이 들려지는 것으로 내가 기뻐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말씀을 합니다.

너희가 선한 데 지혜롭기를 원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선한 것이 무엇인가를 잘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의 문자를 알고 그것을 이성의 지식으로 알고 자기들이 생각하는 선한 것이면 그것을 행하는 것을 보고 지혜롭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선한데 지혜로운 것이 무엇입니까?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생을 얻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데 미련하기를 원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선한데 지혜로운 것은 영생을 얻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그들이 선한데 지혜롭지가 않고 있습니다. 아니 선한 데 지혜로운 것이 무엇인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이 세상을 착하게 사는 것이 선한데 지혜로운 것으로 생각을 하고 착하게만 살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구원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세상 지식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구원을 받은데 있어서입니다.

그것에서 우리는 지혜로워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 기독교인들을 보면 선한 데는 전혀 지혜롭지가 못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이 선한 일에 지혜로워서 구원을 받고 있습니다. 내가 무엇에 지혜롭고 무엇에 미련해야 하는가를 알아야 하는데 이 시대는 성경을 거의 거꾸로 보고 있습니다.

 

선한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신 구속의 일입니다. 그 일에는 우리가 지혜로워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우리에게 너희가 선한데 지혜롭고 악한데 미련하기를 원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로마서에서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지만 선한 것이 무엇인지 악한 것이 무엇인지를 몰라서 거꾸로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선한 데 지혜로워야 구원을 받을 수 있는데 이 시대는 거꾸로 악한 데 지혜로워서 온갖 악을 행하는 일에 열심을 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악한데 미련하기를 원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악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악은 우리가 행하는 모든 행위가 다 악합니다. 그러니까 이 악을 행하는데 있어서는 율법주의자들이 볼 때 정말 미련하게 보여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정말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그것을 고린도전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아이가 되라 지혜에 장성한 사람이 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을 거의 똑같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에서는 율법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고린도전서에서는 은사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주의입니다

그리고 은사주의가 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 둘을 다 경계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시대는 율법주의와 은사주의가 만연을 하고 있습니다.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아이가 되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지혜에는 어린 아이가 되고 악에게는 어른이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끝까지 율법주의를 경계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성도들에게 선한 데 지혜로우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선한데 지혜로우라는 말씀은 선한 것을 아는 지혜로 가득하라는 말씀입니다 정말 우리는 죽을 때까지 이 선한 것을 알기를 힘써야 합니다.

 

복음을 들었습니까?

복음을 알고 있습니까? 자고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늘 부족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아는데 힘써야 합니다. 이 일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혜입니다

하루아침에 주어진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복음을 보고 또 보고 할 때 우리 안에 지혜가 주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복음을 조금 안다고 해서 교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물론 우리 성도님들이 이제 구원을 받을 정도로 충분히 복음을 깨닫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지혜가 있다고 믿습니다.

그럴지라도 우리는 늘 성경에 있는 말씀을 보고 경계를 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왜 로마서를 다 마치면서 이 말씀을 하겠습니까? 어느 정도 자기가 복음을 안다고 하는 사람들이 선한 것을 다 알았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선한 것을 찾아서 지혜를 구라하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악한 것입니다

미련하시기 바랍니다. 아니 악한 일에 대해서는 지혜를 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알려고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상하게도 성경을 보는 사람들이 악한 것에 대해서 더 알려고 하는 호기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악한 것에 대해서는 굳이 알려고 할 필요성이 없습니다.

 

스스로의 꾀에 사로잡힙니다.

이것이 악이라고 하면 더 이상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분명히 성경은 우리 인생이 하고 있는 모든 행위가 다 악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그 악한 데 지혜로우려고 하고 있습니다. 아니 그것을 계속해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연구를 하다가 결국에는 율법에게 미혹을 당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의 행위입니다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모든 행위입니다 그것이 악하다는 것을 이제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면 더 이상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정의를 내리고 사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그것이 왜 악한가를 생각하게 되는 순간 사망의 길로 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미련해도 됩니다.

사람의 행위가 악하다는 것을 알면 그 행위에 대해서는 미련해도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 행위를 해도 되는가 안 해도 되는가를 계속해서 지혜를 구하려고 하는 사람은 그것에 미혹을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그것을 경계를 하면서 너희가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하기를 원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원하지 않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성경에서 원한다고 말씀을 하면 원하지 않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원한다고 말씀을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렇게 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로마서 16:20절을 보겠습니다. (262)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단을 너희 발아래서 상하게 하시리라 우리 주 예수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찌어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평화의 하나님께서 곧 사탄을 쳐부수셔서 여러분의 발 밑에 짓밟히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의 은혜가 여러분과 함께 있기를 빕니다.”

 

초대교회입니다

그들은 박해를 받았던 사람들입니다. 왜 사도 바울이 이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초대교회는 유대인들에게 그리고 로마에 의해서 고난을 받았습니다. 그런 그들이 빨리 구원을 받고 싶은 마음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그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고난을 받고 있는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주님이 빨리 오시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앞에서 말씀을 드렸듯이 성도들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당시에 종이었습니다. 그 종들은 정말 이 세상에서는 소망이 없는 사람들과 같이 살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빨리 주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바랐고 그것을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고대하겠습니까?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와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그들은 사는 것이 정말 고난이었던 사람들입니다. 더구나 당시에는 로마라는 강대국에 의해서 탄압을 받고 있었던 때입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다는 것은 꿈과 같은 일입니다

 

종말론입니다

이 시대만 있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미 초대교회부터 종말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더구나 로마에 있는 교회에 성도들은 많이 순교를 당했습니다. 그런 그들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속히 사단을 발아래서 상하게 해 주시는 것을 바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종말을 말씀을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평강의 하나님께서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로마에 있는 형제들을 안심시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이 시대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는 평강을 주시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평강을 주시지 않고 있다면 우리가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습니까? 굳이 초대교회를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 시대를 보시기 바랍니다. 천만 명이라고 하는 기독교인들이 모두가 율법을 지키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입니다

불과 10명이 되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율법을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우리는 평강을 누릴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복음에는 능력이 나타나서 비록 율법을 지키지 않고 있지만 아무런 위협을 느끼지 않고 있습니다. 아니 불안하지가 않고 있습니다.

 

도리어 어떻습니까?

더욱 안심이 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사람들은 심리적으로 불안하게 되어 있는데 우리는 더욱 더 안심이 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평강을 주시지 않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냥 말로만 평강의 하나님이 아니라 이 시대 역시 우리 안에서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다릅니다.

천만 명과 우리는 다릅니다. 그런데도 하나도 불안하지가 않습니다. 도리어 더 마음이 평안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마음에 평강을 주시지 않으면 도무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로마에 있는 형제들에게 평강의 하나님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렇습니다.

물론 여기 계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같을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제가 오늘 밤에 죽는다 해도 하나도 걱정이 없습니다. 아니 저에게 어떤 위험한 일이 다가온다고 해도 별로 걱정이 없습니다. 걱정이 없기 때문에 이렇게 강하게 복음을 전파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걱정이나 탈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무슨 걱정이나 탈이 있을 것이 있습니까? 우리는 육체를 보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시고 있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우리 육체라면 혹시 있을지 모를 걱정을 할 수 있지만 그리스도의 영을 믿고 있는 우리는 정말 아무 걱정이 없습니다.

 

창세기 3:15절을 보겠습니다. (4)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주님이 창세기에 예언이 된 그대로 이 세상에 오셔서 사단의 머리를 상하게 하셨습니다. 물론 사단이 완전히 죽은 것은 아닙니다. 사단의 권세를 이기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사단이 우리를 죽일 수 없게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오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다시 하늘에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오시는 주님을 초대교회에 성도들은 바라고 있었습니다. 지금 그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발아래서 사단을 상하게 하신다는 말씀은 주님이 오셔서 주님의 나라를 이루시겠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속히입니다.

그런데 2천년이 지났습니다. 하나님께서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거짓말을 하시고 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기를 원하시고 있습니다.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차기 까지를 기다리고 계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도 모릅니다.

이 속히가 언제쯤이 될 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아직까지 때가 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 우리 성도가 아직은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주님이 오실 때가 되면 이 세상에는 성도가 없습니다.

 

우리 때는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믿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속히 오신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앞으로 천년이 될지 오천년이 될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점점 때가 가까이 오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이 시대 교회를 보더라도 율법주의로 향해 가고 있습니다. 아니 거의 율법주의가 되었지만 주님은 때를 기다리시고 있습니다.

 

구원을 받을 성도입니다

그 성도를 다 구원을 하실 때가 되면 주님은 반드시 우리 발 아래서 사단을 상하게 하실 것입니다 처음 오셨을 때는 사단의 머리를 상하게 하셨지만 다시 오실 때는 사단을 완전히 상하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가는 천국은 사단이라는 존재는 있지도 않은 곳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28절을 보겠습니다. (33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사도 바울입니다

그 마침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라고 마치고 있습니다. 이 은혜가 우리에게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냥 성경을 보고 사도 바울이 그렇게 기록을 했다고 해서 우리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있습니까?

 

그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이제까지 복음을 전했습니다. 로마서 1장부터 해서 계속해서 복음을 말씀을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해서 구원을 얻었습니다. 이렇게 복음을 듣고 있는 우리 성도들에게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이 시대 교회가 그리스도의 교회입니까? 절대로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이 로마서 강해를 보고 저를 비난한다고 해도 저는 그렇게 말씀을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아니 그들이 저를 이단이라고 해도 마찬가지고 또 저에게 어떤 위해를 가한다 해도 저는 똑같은 말씀을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이 시대 기독교라는 종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말씀을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절대로 아닙니다. 성경은 교회 안에 있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로마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 안에 있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에 오기까지 기독교라는 종교는 그렇게 성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교회와 세상과의 관계로 성경을 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습니다.

 

은혜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입니다 그 은혜를 이제까지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제까지 기독교라는 종교의 목사들이 로마서를 강해를 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로마서를 강해를 하면서 글로 남기고 책으로도 남겼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그들이 쓴 로마서 강해와 제가 쓴 로마서 강해는 전혀 다릅니다. 그들이 쓴 로마서 강해는 거의 비슷합니다. 그러나 제가 쓴 로마서 강해는 거의 반대로 풀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틀리든지 아니면 그들이 모두가 틀리든지 둘 중에 하나입니다

 

그들은 율법의 제3용도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율법을 지켜서는 안 된다는 것을 처음부터 시작해서 끝까지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분명히 누군가 하나는 틀렸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율법을 단 한 가지라도 지켜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씀을 했고 그들은 율법에 대해서 어느 것은 지켜야 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지혜가 있어서입니까?

제가 그들보다 더 똑똑한 사람입니까? 저는 절대로 제 자신을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율법에 대해서 서로 반대로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저는 분명히 말씀을 드립니다. 행위를 한 사람에게는 은혜가 은혜 될 수 없다고 말씀을 드립니다.

 

율법을 지키지 않습니다.

저는 그것을 알 수 있게 성령의 인도를 받은 것이 은혜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율법을 하나도 지키지 않고도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라고 믿고 있습니다. 이 글을 보고 있는 사람들이 믿고 안 믿고는 그들의 자유입니다.

 

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아니 우리 주 예수의 은혜가 있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단 한 가지입니다 성경에서 복음을 보고 듣고 믿어서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이제까지 사도 바울이 말씀을 했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무슨 봉창두드리는 말을 하느냐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그들은 은혜를 따라 행하는 자가 아니라 행위로 말미암은 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단 한 가지의 행위입니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은혜되지 못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는 교회 안에서 너무 많은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마치 문둥병자와 같이 아무 감각이 없이 행위에 열심을 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자기 손이 떨어져 나가고 자기 발이 떨어져 나가도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감각이 없습니다.

 

은혜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성도는 아무 걱정이나 탈이 없습니다. 이 은혜가 성도님들에게도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습니다. 지혜로운 자가 되어서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는가를 성경을 보면서 베뢰아에 있었던 성도들과 같이 상고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믿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아니라고 해도 저는 믿습니다. 이 세상에서 저 혼자가 된다고 해도 저는 이 복음을 믿습니다. 그리고 율법을 절대로 지키지 않습니다. 아니 제가 저주를 받는다 해도 율법을 지킬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저를 저주를 한다 해도 율법을 지킬 수 없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저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그가 말로만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있는가를 이제까지 아주 자세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눈이 소경이 되어서 이 복음을 못 보고 있습니다.

 

감격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도 구원을 받을 수 없는 인생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율법을 보고 그것을 깨닫는 성도만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율법의 행위로 인하여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가슴이 벅찹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저와 같은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입게 하셨습니다. 그럼으로 해서 내가 구원을 받은 성도로 살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복음이 계시가 된 그것이 너무도 가슴 벅차기만 하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종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기적과도 같이 그 안에 있던 저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게 하셨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기적이라고 밖에는 말씀을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정말 이 로마서 강해를 보시고 이 기적에 함께 참예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진심으로 부탁드립니다.

 

로마서 16:21절을 보겠습니다. (262)

나의 동역자 디모데와 나의 친척 누기오와 야손과 소시바더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나의 동역자 디모데와 나의 친척 루기오와 야손과 소시바더가 여러분에게 문안합니다.”

 

나의 동역자 디모데입니다

이 디모데에 대해서는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내 아들이라고 할 정도로 이 디모데는 사도 바울로부터 복음을 듣고 복음을 전하는 일로 살았던 사람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이 디모데는 복음을 가르치는 자로 살았고 그것을 사도 바울이 디모데전후서를 통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우리는 모든 근거를 성경에서 찾아야 합니다. 이 디모데에 대해서도 많이 기록이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성경대백과사전에서도 이 디모데를 기독교의 1세대 주교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디모데가 기독교인입니까?

 

절대 아닙니다.

모든 기록물들이 다 기독교의 관점에서 기록이 되다 보니까 사람들이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전혀 성경적이지도 않은 것을 마치 성경적인 것으로 사람들이 받아들이게 사전에서도 그렇게 기록이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만 보시기 바랍니다.

다른 모든 글들은 참고만 할 뿐입니다. 마치 그런 글들이 정설이나 되는 것으로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백과사전에 기록이 되어 있다 해도 안 됩니다 성경과 다르다면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고 받아들여서도 안 됩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디모데를 어떻게 부르고 있습니까? 속사도라고 부르고 있고 교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또 주교라고도 부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어떻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사도 바울이 디모데를 장로회에서 안수를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아는 디모데입니다

그는 장로회에서 안수를 받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그대로 그의 외조모 루이스와 어머니 유니게를 알고 있습니다. 그의 아버지에 대해서는 말이 없고 헬라인이었다는 것 정도입니다. 그리고 어머니는 유대인으로 알고 있습니다.

 

동역자입니다

정말 디모데는 사도 바울의 동역자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디모데전후서를 보아서도 잘 알고 있지만 장로와 그리고 집사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 가를 말씀을 해 주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서 장로에 대해서 그리고 집사에 대해서 자세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사를 하고 있습니다.

앞에서 말씀을 하는 문안은 로마에 있는 형제들에게 그들을 보고 문안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이제부터는 문안을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첫 번째 이름이 바로 디모데입니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를 얼마나 생각하고 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참 아들입니다

우리가 디모데전후서를 보아서 잘 알고 있지만 참 아들이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동역자로서 로마에 있는 형제들에게 문안을 하고 있습니다. 21-23절에 기록이 되어 있는 사람들은 로마에 있는 형제들에게 문안을 하고 있습니다.

 

나의 친척입니다

누기오와 야손과 소시바더가 너희에게 문안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에 있는 형제들을 얼마나 생각하고 있는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자기와 동역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다 소개를 하고 있고 또 그들로 문안을 하게하고 있습니다.

 

친척입니다.

저도 이 사람들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굳이 이 인물들에 대해서는 알 필요성은 없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사도 바울의 친척으로서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데 있어서 많은 도움을 주었던 사람들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로마서 16:22-23절을 보겠습니다. (262)

이 편지를 대서하는 나 더디오도 주 안에서 너희에게 문안하노라 나와 온 교회 식주인 가이오도 너희에게 문안하고 이 성의 재무 에라스도와 형제 구아도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이 편지를 받아쓰는 나 더디오도 주님 안에서 여러분에게 문안합니다. 나와 온 교회를 잘 돌보아주는 가이오도 여러분에게 문안합니다. 이 도시의 재무관인 에라스도와 형제 구아도도 여러분에게 문안합니다.”

 

더디오입니다.

이 인물도 로마서에서 단 한번 언급이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누군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니 굳이 알 필요성이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아무리 사도 바울을 대신해서 로마서를 대서했다고 해도 그의 역할은 그것까지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거의 모든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의 눈이 나빴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성경을 보더라도 사도 바울이 얼마나 눈이 나빴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개인 서기와 같이 이 더디오가 곁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이 되고 있습니다. 어찌되었든 이 로마서를 대서 했다는 것만으로도 그는 로마서에 기록이 되었습니다.

 

인간적으로는 영광입니다

그러나 구원을 받는 것이 더 영광이라는 것을 우리는 늘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더디오라는 인물이 이 로마서를 대서한 것보다 더 큰 영광은 그가 구원을 받은 성도라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더 영광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우리는 늘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주 안에서 너희에게 문안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부터는 모두가 로마에 있는 형제들에게 문안을 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런 것 같습니다. 앞에 기록이 되어 있는 사람들은 로마에 있는 형제들을 만날 수 있으니까 그들이 문안을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뒤에 기록이 되어 있는 사람들은 로마에 있는 형제들을 만날 수 없으니까 문안 인사를 하고 있습니다.

 

가이오입니다

현대인의 성경에는 자기 집을 교회로 제공하여 나와 성도들을 접대한 가이오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당시 초대교회는 이렇게 자기 집을 제공해서 예배를 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가이오도 그 중에 한 사람으로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화려한 건물이 아닙니다. 그리고 좋은 건물도 아닙니다. 초대교회는 거의 모든 교회가 집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런 장소가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복음이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장소가 좋으면 뭐 합니까?

그 안에 복음이 전해지지가 않고 있다면 그보다 더 불행한 일은 없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반드시 복음이 전해져야 합니다. 그 장소가 어떤 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실 이 시대는 너무 교회가 사치스럽기만 합니다. 그런 교회에서 종교가 되어 있는 교회에서는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대접을 했습니다.

실제 음식을 대접을 했는지 아니면 그가 복음을 전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가 자기 집을 교회로 제공을 했다면 복음을 전했을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초대 교회에 이런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할 수 있었고 또 구원을 받은 성도들이 그 안에 많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고 있습니다.

 

이 가이오입니다

고린도전서에서도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세례에 대해서 말씀을 하면서 그리스보와 가이오 외에는 너희 중 아무에게도 내가 세례를 주지 아니한 것을 감사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세례를 주었을 정도면 그는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가장 초기에 복음을 듣고 믿었던 사람으로 보입니다.

 

세례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보와 가이오 외에는 아무에게도 세례를 주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세례를 주지 않았는가 하면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보내심은 세례를 주게 하려 하심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성의 재무 에라스도와 형제 구아도입니다.

이들도 역시 사도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들었고 당시 초대 교회에 복음을 전하는 자로 살았을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로 보여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제까지 로마서 16장에 기록이 되어 있는 인물들을 보았습니다.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하나입니다

 

직분입니다

어느 누구도 직분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디모데에게도 동역자라고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디모데는 장로회의에서 안수를 받은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사도 바울은 장로라고 하지 않고 동역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고민하겠습니다.

아직까지는 이 목사라는 호칭에 대해서 딱히 말씀을 드릴 수 없습니다. 제가 목사라서가 아니라 이 호칭이 잘못 되었다고 할 만한 성경적 근거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르치는 자의 의미로는 목사라고 부르는 것은 타당하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입니다

계속해서 저 역시도 고민을 해 보겠습니다. 혹시라도 성경적 근거를 말씀하실 수 있는 분이 있다면 이야기를 해 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목사라고 부른다 해도 큰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을 합니다. 다만 종교적인 산물이라서 그것이 마음에 걸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장로의 호칭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가정 교회에서는 장로로 부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장로라는 것도 딱히 옳다고 말씀을 드리기가 어렵습니다. 아무튼 조금 더 생각을 하면서 목사에 대한 호칭을 사용하지 않을 것인가를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로마서 16:25절을 보겠습니다. (262)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영세 전부터 감취었다가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전하는 복음 곧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선포로 여러분을 능히 튼튼히 세워주십니다. 그는 오랜 세월 동안 감추어 두셨던 비밀을 계시해 주셨습니다.”

 

복음

사전에서는 그리스도가 죽음으로서 인류를 구원한다는 기쁜 소식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복음은 말 그대로 기쁜 소식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이 복음에 대해서 이 시대 기독교 안에서는 여러 가지 말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복음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를 시작하면서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 복음이라는 말씀입니다

 

나의 복음입니다

그것을 새번역에서는 내가 전하는 복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에 대해서 여러 가지 말이 있을 수 있으나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복음을 우리는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의견이 있을 수는 있으나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이라는 것은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고 그것을 사도 바울은 자기가 받은 은혜대로 전하면서 나의 복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입니다

이 로마서는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전한 복음이라고 해도 별로 틀리지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성경에서 선지자들이 말씀을 하고 있는 모든 복음을 다 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로마서를 통해서 복음을 전파를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의 시작입니다

복음으로 시작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로마서를 마치면서 사도 바울은 나의 복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을 보고 사도 바울이 감동을 받은 것을 로마서를 통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을 나의 복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복음입니다

우리는 이 복음에 대해서 바로 알아야 합니다. 물론 우리가 보고 있는 성경은 모두가 복음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과 같이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게 이 복음에 대해서 체계적으로 말씀을 하고 있는 선지자는 없는 것 같습니다.

 

저는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전하는 복음입니다 그는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을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게 말씀을 한 것이 로마서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는 복음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복음입니다

그리고 다른 복음이 있습니다. 다른 복음에 대해서는 이미 갈라디아서 강해를 통해서 말씀을 했습니다. 우리는 다른 복음이 무엇이라는 것을 이제는 명확하게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로마서를 통해서 복음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복음이 무엇입니까?

저는 한 마디로 정의를 하면 율법을 지키지 말고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일을 아는 것이 복음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를 통해서 이것에 대해서 자세하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렇게 우리를 구원하는 복음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나서 사도 바울은 나의 복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전하는 복음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다고 로마서를 시작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도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말씀하는 것이 바로 이 로마서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까지 이 복음에 대해서 들어왔고 이제 그것을 믿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전하는 복음입니다

로마서를 보고도 그것을 모르고 있다면 그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로마서만 보고도 우리는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있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 정도로 사도 바울은 우리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성경 전체를 인용을 하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 시대는 복음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사도 바울이 전하고 있는 복음을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제까지 수많은 신학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이 로마서를 보면서 강해를 썼지만 그들의 글에는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는 복음이 전혀 보이지가 않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구원의 확신이 없다면 아니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을 모르고 있다면 그는 복음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사도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모르고 있습니다. 복음을 모르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지키는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입니다

율법에 대해서 명확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율법에 대해서 어느 누구도 정의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복음은 율법을 지키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서 믿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2:8절을 보겠습니다. (344)

나의 복음과 같이 다윗의 씨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라

 

나의 복음입니다

사도 바울이 아들과 같은 디모데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나의 복음과 같이 다윗의 씨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사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복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어떻게 다시 사셨는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것을 기억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주님께서 육체로 사셨다는 성경과 반대가 되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는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왜 죽으셨는가 하면 우리를 위해서 내어 줌이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없어서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온전히 지키심으로 해서 우리가 할 수 없는 그것을 다 이루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사셨습니다.

어떻게 다시 살으셨습니까? 이것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성경은 분명히 영으로 살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육체의 부활을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아니 신학에서 배우고 있는 기본 교리의 책이 그렇게 가르치고 있고 목사들이 그 책으로 교리를 배우고 있습니다.

 

영으로 사셨습니다.

왜 영으로 사셨습니까? 우리에게 그와 같은 영을 주시기 위해서 다시 사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주님이 영으로 다시 사심으로 해서 우리 안에 그의 영이 거하시는 것이 그리스도의 복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이 복음에 대해서 듣고 있고 이 사실에 대해서 믿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라

우리는 다른 것을 기억할 필요성이 없습니다. 주님이 왜 이 세상에 오셨고 주님이 오셔서 무슨 일을 이루셨고 주님이 어떻게 다시 사셨는가를 알고 그것이 우리와 무슨 관계가 있는가를 알아야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전하고 있는 복음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그것에 대해서 하나도 모르고 있습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완전케 하셨다는 것을 성경에서 문자적으로는 알고 있지만 그것이 자기들에게 어떻게 되는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지키셨습니다. 우리가 로마서를 통해서 많은 율법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율법을 주님이 어떻게 지키셨는가를 이제는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율법이 우리에게 어떻게 작용을 하는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다 무엇인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이 전하는 복음입니다

이 시대는 그 복음에서 너무 비껴나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니 사도 바울이 전하는 복음과는 반대가 되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기들이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는 복음을 알고 있는 것과 같이 복음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성경을 보면 그분이 보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 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저 막연하게 성경에 문자로 기록이 되어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그 분이 나를 어떻게 구원하셨는가를 알아서 기억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거의 모든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까지 기독교사를 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를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안다고 하면서 기억하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말이 얼마나 막연함을 주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영으로 살으셨습니다.

이 문제는 너무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시대는 영으로 살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영으로 사셔야지만 우리 역시 영으로 살 수 있는데도 구원의 기초가 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으신 것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전하는 복음입니다

그것을 로마서 8장부터 해서 영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만일이라는 부사를 쓰면서 정말 기적과도 같은 일이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89절에서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입니다

너무도 중요한 복음입니다 그러나 이 하나님의 영에 대해서 어느 누구도 명확하게 말씀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저 막연하게 하나님의 영이라고 문자를 보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사심으로 해서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그 영이 부활을 해서 천국에 간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지만 아무도 이 복음에 대해서 모르고 있습니다.

 

골로새서3:3절을 보겠습니다. (327)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 생명이 감춰져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 로마서를 말씀을 하기 전까지는 이 생명에 대해서 어느 누구도 말씀을 하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 물론 어느 정도 말씀을 하셨지만 그 감춰졌던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한 사람은 바로 사도 바울입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구약을 보고 생명에 대해서 알 수 있습니까? 아니 어느 성경을 보고 이 생명에 대해서 알 수 있습니까? 정말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을 통해서 이 로마서를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영세 전에 감춰졌던 이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입니다.

어느 누가 이것에 대해서 명확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사도 요한이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또 사도 바울은 로마서를 마치면서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영세 전부터 감춰졌던 것을 이제는 나타내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입니다

이 영의 일을 누가 말할 수 있습니까? 이 로마서가 없다면 우리는 이 영의 일을 알고 싶어도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내가 전하는 복음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고 있고 그것에서 영세 전에 감춰졌던 비밀을 밝히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누가 이 영의 비밀을 알고 있습니까? 하나님 안에 감취어져 있는 생명에 대해서 누가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로마서를 통해서 우리가 이 비밀을 명확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전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서 이 영의 비밀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입니다

이 생명에 대해서 누가 알고 있습니까? 물론 성경을 기록한 모든 선지자들이 다 알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이 생명에 대해서는 물론 더 자세하게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도 바울 역시 영의 생명에 대해서 영세 전부터 감춰졌던 것을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참으로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이 영의 비밀을 은혜로 주시고 있습니다. 이것을 사람의 이성으로 알게 하신 것이 아니라 사람의 이성으로는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로 만드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봅니까?

아니 성경에 이 영의 일이 다 기록이 되어 있습니까? 그러나 실상은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 사람의 이성을 가지고 이것을 볼 수 있게 하신 것이 아니라 반드시 성령을 보내 주시고 그가 진리 가운데로 인도를 하심으로 해서 이 영의 일을 밝히 볼 수 있게 역사를 하시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복음을 나타냈습니다.

그러나 이제까지도 그것을 보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 로마서를 기록하면서 영세 전부터 감추어져 있는 것을 이제는 나타냈지만 사람들이 성경을 사람의 이성을 가지고 보려하다가 역시 복음을 못 보고 있습니다.

 

누구나 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복음의 비밀을 모든 사람이 볼 수 있게 하시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는가 하면 그것은 은혜가 되게 하기 위해서라고 믿고 있습니다. 사람의 이성으로 이것을 볼 수 있으면 그것은 은혜가 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 주시면 그것은 은혜가 될 수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영세 전부터 감추어졌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제 사람의 이성으로 볼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럴 것 같았으면 사도 바울이 굳이 이 로마서를 기록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성경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입니다

주님께서 이제 하늘에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보혜사를 보내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실제 이 시대도 역시 이 보혜사를 받은 성도들에게 이 감추어졌던 것이 밝히 보이고 있습니다. 영세 전부터 감추어졌던 것이 보이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영의 생명입니다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는 영의 생명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영의 생명을 우리가 이제는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영의 생명을 믿음으로 해서 우리가 굳세게 서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영의 생명을 믿고 있는 성도만이 굳세게 서서 흔들리지 않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6:26절을 보겠습니다. (262)

이제는 나타내신바 되었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좇아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으로 믿어 순종케 하시려고 알게 하신 바 그 비밀의 계시를 좇아 된 것이니 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케 하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 비밀이 지금은 예언자들의 글로 환히 공개되고,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따라 모든 이방 사람들에게 알려져서, 그들이 믿고 순종하게 되었습니다.”

 

이 생명입니다.

육체를 가지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분명히 영의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가 영원히 산다는 것은 어느 종교도 다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내세를 가면 어느 종교를 막론하고 다 영원히 산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뭐가 다릅니까?

불교에서 말하는 것이나 우리가 복음을 듣고 믿는 것이나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육체가 부활을 해서 영원히 산다고 하는 것은 사실 다른 종교를 믿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비밀이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비밀입니까?

육체가 다시 다는 것이 비밀입니까? 사람이 죽으면 그 육체가 다시 산다는 것은 비밀이 아닙니다. 그것을 비밀이라고 하는 사람은 정말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우리가 세상 종교를 조금만이라도 알고 있다면 그런 말을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뭐가 나타난바 되었습니까?

영세 전에 감추어 져 있는 것 중에 무엇이 나타났다는 말씀입니까?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이 구원을 받자 육체가 다시 사는 것이 감추었던 비밀이라고 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성경을 굳이 안 보더라도 그것은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영입니다

이제까지 로마서 강해를 하면서 이 영의 일에 대해서 말씀을 했습니다. 아마도 기독교에서 수십 년을 신앙생활을 했던 사람도 처음 듣는 이야기라고 할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사도 바울을 통해서 밝히 나타내셨지만 아직까지 사람들이 세상 초등학문에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나타난바 되었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참으로 불행하게도 아직까지도 나타난바 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성령을 받지도 않은 그들이 성령을 받았다고 하면서 성경을 사람의 이성을 가지고 억지로 풀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일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모든 민족이 순종을 하게 하시려고 알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기독교라는 종교가 탄생이 됨으로 해서 그 기본 교리를 신체의 부활로 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을 통해서 이 모든 것을 나타내신바 되었는데 사람들은 다시 기독교라는 종교가 되어서 그들의 교리를 만들고 말았습니다.

 

모든 민족입니다

지금 이 시대 이방에 복음이 전파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어떻습니까? 표면적으로는 분명히 모든 민족이 믿어 순종을 하는 것과 같이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기독교는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유대교가 되어서 모두가 율법주의가 되어서 우상을 숭배함으로 해서 이 복음에 순종을 하지 않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알게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을 통해서 이 로마서를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다시 종교가 되면서 성령의 인도를 받지 않고 사람의 이성으로 이스라엘과 같이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믿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복음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과 같이 율법에 순종을 하고 있습니다.

 

알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이 시대는 아무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이 로마서를 보고 있지만 아무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사실 이것을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아픕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성경을 주셨지만 성경을 성경으로 보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경을 성경으로 보면 이 시대는 알레고리하다고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그 답을 찾아야 하는데 그렇게 성경에서 그 답을 찾는 것을 도리어 알레고리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어디서부터 나왔는가 하면 바로 이 시대 목사들이 배우고 있는 교회사를 통해서 그런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어 더욱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만 보시기 바랍니다.

다른 모든 책은 참고만 하시기 바랍니다. 아니 솔직히 교회사라는 책은 참고의 가치도 없습니다. 도리어 복음을 철저하게 방해를 하고 있는 것이 이 시대 목사들이 배우고 있는 교회사라는 책입니다 그런 책들로 하여금 더욱 더 종교가 되어 가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5:26절을 보겠습니다. (175)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사도 바울입니다

그가 우리보다 더 특별한 지혜가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를 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전파할 수 있었습니까? 사람들이 성경을 자기들이 보고 싶은 대로 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그가 아무리 성경을 많이 기록했다고 해도 그가 이 세상의 지혜가 있어서 기록한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사도 바울도 역시 성령을 받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을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진리의 성령입니다.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마치면서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다른 사람보다 지혜가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했다는 것이 아니라 그 역시도 성령을 받았기 때문에 주님의 말씀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할 수 있었습니다.

 

성령입니다

사도 바울이 성령을 받았기 때문에 영세 전에 감추었다가 이제는 나타난 바 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사도 바울이 나의 복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이방인들을 순종케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통해서 이 복음의 비밀을 알게 하셔서 밝히 보이게 하셨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보고 있습니까? 사도 바울이 쓴 성경을 보면서 그와 같은 복음을 보고 있습니까? 역시 성령이 오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령이 오시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세상에서 지혜가 있다는 사람도 이 성경을 볼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 시대는 성령이 어떻게 오시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자기에게 성령이 오신 줄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종교의 샤머니즘에 빠져 그저 자기들이 성령을 받았다면 받은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복음에 순종을 하지 않고 율법을 지킴으로 해서 복음에서 멀어져 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를 했습니다.

그가 가말리엘 문하에서 학문을 하고 당시 인텔리라서 전파를 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만약에 성령이 오시지 않았다면 그는 절대로 이 복음을 전파할 수 없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도 역시 성령이 오셨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쓴 로마서를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복음을 보면서 순종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로마서 16:27절을 보겠습니다. (262)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찌어다 아멘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오직 한 분이신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영원무궁 하도록 있기를 빕니다. 아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이 로마서는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해서 명확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결론으로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세 전부터 감추었다가 이제는 나타난바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죽으시고 이제 영으로 부활하셔서 우리에게 그와 같은 영이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역사가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놀라운 비밀입니다. 이제까지 어느 누구도 알지 못하고 있었던 비밀입니다. 그것을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을 통해서 이제는 나타난바 되게 하셨고 우리가 이제 이 로마서를 보고 이 영의 일을 믿음으로 해서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시고 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사도 바울이 그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찌어다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상상도 못하는 지혜를 이제 밝히 나타내심으로 해서 우리가 영의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우리 인생의 지혜로 이야기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인생은 육체의 부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 모든 종교가 그것에 대해서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에 대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지키지 말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럼 영으로 부활을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영이 주님이 오시는 날에 부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우리가 듣고 있는 복음입니다 (end)

로마서 강해를 모두 마쳤습니다

                               다음으로는 생명에 대한 요한복음 강해를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