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너희는 귀를 기울리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로마서 강해 - 구원론

로마서 강해 160강,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윤주만목사 2019. 3. 24. 21:39


로마서 16:12절을 보겠습니다. (261)

주 안에서 수고한 드루배나와 드루보사에게 문안하라 주 안에서 많이 수고하고 사랑하는 버시에게 문안하라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이 시대는 얼마나 복음을 듣기가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습니까? 사실 지금보다 더 좋은 시대는 없었던 것으로 생각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복음의 역사를 살펴보아도 복음을 듣는다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그 이유만으로 많은 사람들이 고난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 시대는 너무도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중에 누가 종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지금은 로마와 같은 시대가 아닙니다. 그들은 종으로 살면서도 이 복음을 전하는 일에 수고를 했습니다. 그런 환경에 비하면 우리는 너무도 좋은 환경에서 복음 안에서 교제를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습니다.

 

저도 늘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과연 로마와 같은 시대면 내가 이렇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겠는가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솔직한 생각입니다. 그들과 같은 환경과 처지였다면 저는 복음을 전하지 못했을 수 있습니다. 그것에 비하면 저는 너무도 편하게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당시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들이 종이었다는 것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복음 안에서 사실 고민할 것이 별로 없습니다. 그때와 지금은 너무도 다른 환경이고 지금은 너무도 평안한 시대입니다. 사실 그것을 생각하면 복음을 전하는 일 듣는 일에 대해서 우리는 아무 할 말이 없습니다.

 

저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초대교회에 사도들이 얼마나 수고를 했는가를 성경에서 잘 말씀을 해 주고 있습니다. 물론 당시 사도들과 저는 전혀 다른 사람입니다 그럴지라도 복음을 전하면서 얼마나 수고를 했는가를 알고 있습니다. 그것을 생각하면 제가 조금 육체적으로 어렵더라도 다시 힘을 내고 있습니다.

 

멀어서 복음을 듣기가 어렵습니까?

여러 가지 환경적 어려움 때문에 복음을 듣는 것이 장애가 되고 있고 복음을 전할 수 없습니까? 그런 것은 다 핑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 아무리 극한 상황에 있다 해도 로마 시대에 종으로 사는 것보다는 낫다는 것을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드루배나와 드루보사 그리고 버시에게 문안을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당시에는 거의 모든 사람이 어려웠습니다. 그럴지라도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자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종으로 살면서도 복음을 전하는 일에 협력해서 수고를 했습니다.

 

이들의 믿음입니다.

물론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와 동일하다는 것에 조금도 의심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극한 환경에서도 복음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주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당하고 있는 것에 비하면 그들은 감당할 수 없는 가운데서도 믿음이 있었다는 것을 늘 생각하고 다시 마음을 다잡았으면 좋겠습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주님 안에서 수고한 드루배나와 드루보사에게 문안하여 주십시오. 주님 안에서 수고를 많이 한 사랑하는 버시에게 문안하여 주십시오.”

 

드루배나와 드루보사입니다.

로마 왕족의 종이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초대교회는 다시 말씀드리지만 종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특히 유명한 가문의 종들은 포로가 될 당시 그 나라에서 영향력이 있었고 지적인 능력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시대적 아픔입니다.

그 당시에는 전쟁이 많이 있었고 또 포로도 넘쳐나고 있었습니다. 그 포로들은 거의 종으로 살았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드루배나와 드루보사도 마찬가지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바랄 수 있는 것은 어쩌면 내세에 대한 소망이었을 수 있습니다.

 

강철 로마입니다

당시 로마는 무너지지 않을 나라였습니다. 그런 나라에 포로가 되어서 종이 되었다는 것은 죽을 때까지 평생 아니 자기 자손 대대로 종으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그들이 복음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고 그들은 내세에 대한 간절한 소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생에서는 이미 소망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평생을 종으로 살아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더구나 그들이 지적인 능력이 있다면 그 고뇌와 갈등은 너무도 컸을 것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복음이 전파가 된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절박했습니다.

그들이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어쩌면 주님이 이 세상에 빨리 오셔서 주님의 나라를 만들어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데살로니가 서를 보아도 알겠지만 사도 바울이 위로의 글을 쓰면서 내세에 대해서 말씀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누구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에 우리 중에 누군가가 포로가 되어서 노예가 되었다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내세에 대해서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면 그것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만큼 쉬울 수밖에 없습니다. 초대 교회에 노예들이 많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내세를 생각했고 주님이 빨리 오시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 두 사람이 복음을 전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12절에서 세 여자의 이름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습니다. 이들이 여자라서가 아니라 이미 앞에서 복음을 전하면서 수고를 한 사람들에 대해서 사도 바울이 말씀을 했습니다.

 

초대교회입니다.

저도 그 당시 사도 바울이 어떻게 복음을 전했는지는 정확하게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행위에 대해서는 반대를 했습니다. 그러나 이 두 자매는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데 있어서 함께 수고를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이름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복음을 전하는 일에 대해서 수고를 했으면 성경에 이름이 기록이 되었겠습니까? 정확하게는 어떠한 일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찌되었던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아니 초대 교회에서 복음이 전해질 때 이 두 자매는 여러 가지로 수고를 했던 것으로 생각이 되어 있습니다.

 

버시입니다

역시 종이었을 가능성이 많은 사람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고대의 비문에서 흔하게 이런 이름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죽으면 당시에는 그 종들의 이름도 비문에 적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버시 역시 로마의 어느 귀족 가문의 종이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물론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주 안에서 많이 수고했습니다.

드루배나와 드루보사와 마찬가지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 시대에 종이었지만 이들은 복음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데 있어서 헌신적으로 수고를 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로마서를 마치면서 이 두 사람에게 수고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버시도 역시 마찬가지로 수고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초기 기독교입니다.

지난 시간에도 잠깐 말씀을 드렸지만 종이나 여자들에게 대해서는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미 종교가 되기 시작한 그들에게는 종이나 여자가 복음을 전하는 일에 수고를 했다는 사도 바울의 말씀에 대해서 굳이 더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것으로 생각이 되고 있습니다.

 

로마서16:13절을 보겠습니다. (261)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주님 안에서 택하심을 받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여 주십시오.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이기도 합니다.”

 

주 안에서 택하심을 받은 루포와 그 어머니입니다

루포라는 이름은 유대 로마의 한 군대 장관의 이름으로 나와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 가문의 자손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실 성경에 단 한 번 기록이 되어 있는 사람들은 명확하지가 않습니다. 거의 다 추정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 것은 중요하지가 않습니다.

그가 세상에서 어떤 지위를 가지고 있었고 어떤 가문의 사람이었는가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가 어떻게 구원을 받은 사람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구원에 대해서 말씀을 하기 때문에 그 인물에 대해서는 거의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로마서 9장에서 이미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선택이라는 교리가 왜 잘못 되었는가를 우리는 충분히 알았습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이 택하심을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아니 자기들의 육체를 보면서 하나님께서 택하셨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 대한 말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택하심을 입었습니다.

어떻게 택하심을 입었습니까?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육의 일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러나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이 말씀을 거의 육의 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막연하게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택하셨다고 하면서 무사안일주의에 빠져 있습니다. 아니 자기들이 택하심을 받았으니까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9장을 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잘 기억하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우리 영의 일에 대한 말씀이기 때문에 이 택하심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로마서 9장을 말씀할 때 분명히 영의 일이라는 것을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니까 에서와 야곱을 비유로 해서 영의 일이라는 것을 말씀했습니다.

 

이삭입니다

이삭은 육신의 자녀가 아니라 약속의 씨라고 말씀을 했습니다. 그 약속의 씨가 복음을 전하고 있는 리브가의 교회를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리브가의 교회 안에 아직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하고 복음을 듣고 있는 두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입니다.

우리는 이 택하심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삭이 복음을 전하는 리브가의 교회 안에서 아직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선이 무엇인지 악이 무엇인지를 배우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그것을 행하지 않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때 택하심입니다.

행위로 말미암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직 어떤 행위도 하지 않은 그때에 하나님께서 부르셔서 그를 택하시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를 어떻게 부르시고 있습니까? 하늘의 별들의 이름을 부르시는 것과 같이 부르시고 있습니다.

 

누구를 부르십니까?

야곱을 부르십니까? 그것이 아니라 하늘의 뭇 별들을 부르시는 것과 같이 부르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의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영을 부르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육적인 야곱을 부르시는 것이 아니라 야곱의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영의 이름을 부르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냥 부르십니까?

그것이 아닙니다.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구를 부르시는가 하면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면서 부르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불쌍합니까?

부자가 불쌍합니까? 거지가 불쌍합니까? 약속의 자녀인 이삭이 복음을 전하는 교회 안에서 복음을 듣고 있습니다. 그들은 아직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누구를 부르시고 있는가 하면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면서 부르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누가 불쌍한 자입니까?

그것을 에서와 야곱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에서는 장자로 태어난 자입니다. 그리고 육신의 아버지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는 자입니다. 그리고 그는 의가 있는 자라는 것을 우리가 창세기를 보아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그를 부르시지 않고 야곱과 같이 장자의 명분이 없는 자를 부르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듣습니다.

리브가의 교회 안에서 복음을 듣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안에는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길 자가 있습니다. 그리고 불쌍히 여길 자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를 부르는 것을 사도 바울은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은혜입니다

우리는 이 선택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듣고 있는 리브가의 교회 안에 있는 사람 중에서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십니다. 그리고 그를 하나님께서 내가 야곱을 사랑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루포입니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입니다. 그 두 사람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9장에서 말씀한 택하심에 대해서 다시 우리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1:2절을 보겠습니다. (377)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루포와 그의 어머니입니다

사도 바울은 택하심을 입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냥 사도 바울이 택하심을 입었다고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택하심을 입은 것이 무엇인가를 바로 알고 이 말씀을 보아야 합니다. 이 시대 목사들은 성경의 문자를 아는 것으로 택하심을 입었다고 하면 그런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늘 말씀드립니다.

성경의 문자를 아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로마서 9장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택하심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이 말씀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그저 성경의 문자를 아는 것으로 자기들이 택하심을 입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그리고 교회에 나와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겨우 그런 것으로 마치 자기들이 루포와 그의 어머니가 된 것으로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말씀의 문자를 이성적으로 안다고 해서 마치 자기들이 택하심을 입은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셔야 합니다.

내가 택하심을 받은 자인가를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라고 하니까 육체의 자기를 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우리 육체가 아닙니다. 우리 육체는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 육체를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거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영이 거하시고 있고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이 있는 자를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영이 어떻게 거하고 있습니까?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거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오셔서 거룩함에 대해서 말씀을 하심으로 해서 우리에게 거룩하신 이의 영이 거하시는 역사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주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역사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루포와 그의 어머니입니다

택하심을 입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택하심을 입은 성도를 문안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루포와 그의 어머니가 복음을 전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택하심을 입은 그 자체만으로도 문안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시편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땅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 자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저희에게 있도다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가 얼마나 존귀한가를 시편을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성도로 살아가고 있는 루포와 그의 어머니를 문안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존귀한 자입니다.

당연히 문안을 해야 합니다. 로마서에 있는 형제들에게 사도 바울은 성도로 살아가고 있는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을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루포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루포의 어머니는 사도 바울을 어머니와 같이 살펴 주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 어머니입니다

이 한 마디의 말씀만으로도 그녀가 얼마나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하는데 있어서 수고를 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어머니가 될 정도로 루포의 어머니는 수고를 했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루포의 어머니 역시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성도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사도 바울 혼자서의 수고로는 안 됩니다 이렇게 주변에서 많은 사람이 수고를 했기 때문에 초대교회에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 역시 정말 이 일을 위해서 수고를 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의 부탁입니다.

한 시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너무 편안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 않나 늘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저 부터가 너무도 편안하게 복음을 전하고 있는 것 같이 때로는 스스로를 채찍하고 있습니다. 로마서에서 말씀하고 있는 이런 사람들이 많아야 복음이 전파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로마서 16:14-15절을 보겠습니다. (261)

아순그리도와 블레곤과 허메와 바드로바와 허마와 저희와 함께 있는 형제들에게 문안하라 빌롤로고와 율리아와 또 네레오와 그 자매와 올름바와 저희와 함께 있는 모든 성도에게 문안하라

 

택하심을 입은 성도입니다

구원을 받은 성도들을 일일이 열거를 하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있는 형제들에게도 문안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들과 함께 있는 성도들에게도 문안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라는 그 자체만으로서 우리는 서로 문안을 해야 합니다.

 

이들이 무슨 일을 했는지는 명확하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형제들이고 성도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왜 사도 바울이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한 성령 안에서 구원을 받은 우리 성도들에게 서로 문안을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이렇게 서로 문안할 수 있는 사람이 지극히 적습니다.

 

안타깝습니다.

로마서 16장을 보면서 더욱 그렇습니다. 그때보다 더 좋은 환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만 문안할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비록 그때는 환경은 좋지 않았지만 문안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시대는 문안을 하고 싶어도 문안할 수 없습니다.

 

어제도 잠시 SNS를 보았습니다.

정말 열심을 다 해서 복음을 전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고 말을 하고 있고 율법에 대해서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혹시나 해서 주일은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라고 질문을 했습니다. 그 질문에 답이 오기를 잘 지키고 있습니다. 라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그런 그가 잠시 후에 율법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겠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입니다

거의 알려져 있는 것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그들의 행적에 대해서 우리가 전승으로라도 알 수 있다면 좋겠지만 초기 기독교는 사도 바울이 이렇게 로마서에 일일이 그 이름을 열거를 한 사람들의 행적을 전혀 남겨 놓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자기들의 이성으로 대단한 지성이 있었고 영향력이 있었다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로마서 16:16절을 보겠습니다. (262)

너희가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가 다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거룩한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십시오.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가 여러분에게 문안합니다.”

 

성도와 성도입니다

구원을 받은 모든 사람을 성도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제까지 로마서 16장을 통해서 함께 동역을 했던 사람들과 그리고 구원을 받은 사람들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모든 사람의 이름을 말씀을 하고 난 후에 성도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입맞춤에 대해서 많은 곳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여러 가지 상황에서 이 입맞춤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일일이 다 여기서 열거를 해서 말씀을 한다는 것은 시간 낭비인 것 같습니다. 로마서에 해당이 되는 말씀의 의미를 알고 말씀을 나누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입맞추다

제가 성경대백과사전을 보았습니다. 거기에서는 여러 가지로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로마서에 적절한 말을 말씀을 하겠습니다. 사랑하다, 좋아하다, 존경하다, 서로 붙들어 매다. 라고 말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마도 거의 다 비슷한 의미의 말인 것 같습니다. 지금 로마서는 구원을 받은 성도들끼리 입맞춤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창세기부터 이 입맞춤은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근동 지방에서는 이 입맞춤을 아주 친숙하게 행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을 해 줄때 그가 야곱을 에서로 알고 나서 입맞춤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다 의미가 있는 입맞춤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잠언24:26절을 보겠습니다. (938)

적당한 말로 대답함은 입맞춤과 같으니라

 

현대인의 성경을 보겠습니다.

정직한 대답은 입을 맞추는 것과 같다.”

 

요엘 2:23절을 보겠습니다. (1272)

시온의 자녀들아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그가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리시되 이른 비를 너희에게 적당하게 주시리니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전과 같을 것이라

 

입맞춤입니다.

그것을 잠언에서는 적당한 말로 대답함은 입맞춤과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입을 맞추는 행위를 한다는 것은 적당한 말로 대답을 하는 것과 같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현대인의 성경에서는 정직한 대답은 입을 맞추는 것과 같다고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적당한 말입니다

그것이 무슨 말입니까? 너무 막연하게 적당한 말이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막연한 것을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보고도 사람들은 막연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적당한 말에 대해서 요엘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엘 선지자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시온의 자녀들아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그가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리시되 이른 비를 너희에게 적당하게 주시리니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전과 같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비를 너희에게 적당히 주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은혜를 적당히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비를 내려주시는 것과 같이 은혜를 적당히 주심으로 해서 너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요엘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은 너희가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은혜를 받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은 성도라는 것을 서로 인정을 하면서 문안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성도라는 것을 서로 인정을 하면서 입맞춤으로 문안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입맞춤을 해야 합니다.

실제 입맞춤을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 이 입맞춤이 기록이 되어 있고 또 이것이 하나의 문화와 관습으로 내려오다 보니까 중동 지방과 서구의 사람들은 당연하게 입맞춤을 하고 있습니다. 행위로 하고 있는 것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행위입니다.

그런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실제 우리 성도들에게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을 하라고 말씀을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 의미의 뜻을 알고 서로 인사를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입니다

사람들이 너무 형식과 행위에 빠져 들어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이러한 행위를 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실제 어느 교회에서는 친근감을 나타내기 위해서 프리허그(Free hug)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런 것은 아무 의미가 없는 행위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도입니다

그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나 역시도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구원을 받은 성도들끼리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을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적당한 말로 대답을 하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까?

그러면 저 역시도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다고 대답을 하면 그것이 입맞춤과 같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행위가 아니라 반드시 그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적당한 말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구원을 받았습니다.

어떻게 구원을 받았습니까? 라고 상대방이 질문을 한다면 그것에 가장 적당한 대답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바로 이렇게 하는 것이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는 것이라고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입니다

우리는 이제까지 구원에 대한 모든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받았는가를 알고 있고 믿고 있습니다. 복음의 모든 비밀을 알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런 성도들끼리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모릅니까?

그들이 어떻게 적당한 말로 입맞춤을 할 수 있습니까? 그들은 구원에 대한 질문에 적당한 말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는 로마서를 통해서 이제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알았습니다. 그러면 서로 거룩하게 적당한 말로 입맞춤을 하며 문안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행위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고 말씀을 하니까 서로 형식적인 이야기를 하면서 인사를 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반드시 적당한 말을 해야 하고 그 적당한 말이 무엇인가 하면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알고 믿어서 구원을 받았다는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적당한 말입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아는 말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통해서 이제까지 말씀을 했습니다. 그것을 알고 서로 대답을 하는 것이 입맞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입맞춤으로 문안하시기 바랍니다.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도로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도가 어떻게 구원을 받았습니까?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구속의 일을 이루시고 그 일을 믿음으로 해서 우리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 거룩하신 이의 영이 거하시고 있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거룩한 자입니다

나도 거룩한 자입니다. 역시 성도도 거룩하신 이의 영이 거하시고 있는 자입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시고 있습니다. 이 영은 거룩하신 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를 통해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있는 성도들에게 사도 바울은 너희가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거룩함을 인정해야 합니다.

내 안에 거룩하신 이의 영이 거하시고 있습니다. 그러면 복음을 듣고 믿는다고 하는 형제 역시 거룩하신 이의 영이 거하시고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거룩하신 이의 영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존경의 표시입니다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아니 하나님께 그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주셔서 우리를 위해서 모든 구속의 일을 이루셨습니다. 그렇게 구원을 받은 우리 성도는 서로에게 존경을 나타내야 하고 그것을 문안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골로새서 1:24절을 보겠습니다. (325)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입니다.

이 시대 교회입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교회들이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에 속하고 있습니까? 교회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교회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자기들이 건물을 지어 놓고 그 건물에 이름을 짓고서 그것을 교회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교회입니까?

그것은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먼저 그리스도에 대한 정의가 서 있지가 않습니다. 이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가 누군지도 모르고 그저 교회에 나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입니다.

그분은 분명히 하나님이라고 이사야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먼저 정의를 하고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믿어야 이 교회에 대해서 바른 정의를 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이라고 믿지 않고 삼위일체라는 신을 믿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에서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라를 비유로 해서 위에 있는 예루살렘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이 세상에 있지 않습니다. 물론 우리 성도들의 모임을 교회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늘로부터 난 자들이 있는 모임을 교회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어머니입니다.

사라는 우리의 어머니입니다. 그 어머니로부터 우리가 났습니다. 그리고 그 교회는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늘로부터 난 자들이 있는 성도들의 모임을 교회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빌레몬서에서는 아킵보와 네 집에 있는 교회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사야서에서 그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아버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교회는 어떻게 되는가 하면 하나님의 아내가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아버지의 아내를 교회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아내를 비유로 해서 사라라고 하고 있고 사라를 우리의 어머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라입니다

이 시대 교회가 사라의 교회입니까? 이 시대 이름을 지어 놓는 교회들이 사라의 교회입니까? 아니 그리스도의 교회입니까? 그것은 자기들의 교회지 사라의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아니 그리스도의 교회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입니다

초대 교회에 어느 교회가 이름을 지어서 불렀습니까? 성경에 그런 교회가 있으면 이야기를 해 보시기 바랍니다. 다만 우리가 알아듣기 쉽게 그 지명을 따서 교회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름이 아니라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게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가 아닙니다.

그 안에서 아무리 주여, 주여 하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른다 해도 그것은 교회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도 아닌 곳에 들어가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온갖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그의 몸된 교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아버지입니다. 에베소서에서는 남편과 아내에 대해서 말씀을 하면서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해서 말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교회는 주님의 아내라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면 하나님의 아내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누가 자기 어머니의 이름을 짓고 그 이름을 부르고 있습니까? 계속해서 교회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씀을 드려도 교회에 이름을 짓고 그 이름을 부르고 있다면 어쩔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아내의 이름을 짓고 그 이름을 부르고 있는 사람을 구원해 주시겠는가를 스스로가 생각해 보면 됩니다.

 

그의 몸 된 교회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아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에베소서에서도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해서 말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는 성경을 보면서도 전혀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교회가 되시기 바랍니다.

내 교회가 되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내 교회는 내가 이름을 짓고 부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교회는 내가 이름을 지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의 교회라고 하면서 내가 그 이름을 짓고 부른다면 그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입니다

그 교회는 성도들의 모임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가 다 너희에게 문안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성도에게 문안을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시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육체입니까?

그 육체를 보고 겸손의 모양을 나타내기 위해서 지금 사도 바울이 서로 문안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육체에 대해서는 계속해서 말씀을 드리지만 우리는 문안을 받을 만한 육체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시기 때문에 서로 문안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겸손의 모양입니다

그런 모양을 나타내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 역시 성화주의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물론 성도가 육적으로도 인사를 해야 하겠지만 너무 겸손의 모양을 나타내는 것도 바르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교회 안에서 너무 겸손의 모양을 나타내는 사람들이 있고 특히 목사들이 그렇게 함으로 해서 교인들에게 칭찬을 받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육체입니다

지렁이 같은 야곱입니다 벌레 같은 인생입니다 그런 인생이 무슨 서로 문안을 하고 말 것이 있습니까? 잠시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와 같은 인생이 뭐 볼 것이 있다고 서로 문안을 합니까? 그런 행위 자체가 외식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육체를 보고 서로 문안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시기 때문에 문안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행위로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겸손의 모양을 나타내면서 세상 사람들과 같이 문안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외식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 문안이 아니라 거룩하게 입맞춤을 하라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성도는 서로 육체적으로 문안을 하고 문안을 받고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입니다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입니다 우리의 교회로 만들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는 모두가 자기들의 교회가 되어 있습니다. 그런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되어 있는 성도들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로마서 16:17절을 보겠습니다. (262)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교훈을 거스려 분쟁을 일으키고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저희에게서 떠나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여러분이 배운 교훈을 거슬러서, 분열을 일으키며, 올무를 놓는 사람들을 경계하고, 멀리하십시오.”

 

형제들아

사도 바울이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되어 있는 성도들에게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누군지를 모르고 있는 사람은 어리석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그저 성경을 문자적으로 보면서 마치 자기들이 구원을 받은 성도나 된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에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시대는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에 있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모두가 사람이 만들어 놓고 그 이름을 지은 교회 안에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그 안에서 온갖 음행의 일을 하고 있고 우상을 숭배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입니다

그들은 모두가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에 속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불과 한 세대가 지나기도 전에 타락의 길로 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2세기가 될 때 벌써 교회는 건물을 짓기 시작을 했고 그 이름을 붙이기 시작했다는 것을 우리가 교회사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형제입니까?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로마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형제입니까? 그들은 형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다고 해서 그 성경을 본다고 해서 자기들이 마치 형제나 된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것은 큰 착각입니다

 

교회는 타락의 길로 갔습니다.

아니 그리스도의 교회는 이미 사라진지가 오래 되었습니다. 초대 교회를 잠시 제외하고는 교회는 사라졌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물론 그 이후에도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교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교회는 기독교의 교회가 아니기 때문에 기독교 교회사에서 보이지가 않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형제라고 합니다.

로마서를 보고 있다고 해서 마치 사도 바울의 형제나 되는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는 기독교라는 종교가 생겨나면서부터 사라지기 시작을 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너무 오래 동안 당연하게 교회라고 불렀기 때문에 이제는 어느 누구도 그것을 부인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권하고 있습니다.

초대 교회에 벌써 사도 바울이 전한 교훈을 거스리는 자들이 나타났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에 이런 일들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어떻습니까? 지금은 사도 바울이 전하는 교훈에 대해서 알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왜 권하고 있습니까?

벌써 교훈을 거스려 분쟁을 일으키는 자들이 교회 안에 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자기들이 어떤 교훈을 받고 있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은 여러 가지 교훈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일일이 말씀할 필요성은 없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신 구속의 일을 믿어야 합니다. 이렇게 오직 주님이 이루신 일을 믿음으로 해서 구원을 받는 것이 우리가 받은 교훈입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시작하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교훈을 받아 율법을 지키는 자들이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고 나서 사도 바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받은 교훈은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2:11절을 보겠습니다. (379)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거스르다

따르지 않고 그에 반대되는 태도를 취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 안에 벌써 이러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 시대는 누가 거스르고 있는지도 모르고 그저 성경의 문자를 보고 자기들에게 불리한 말을 하면 거스른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거스릅니까?

내가 말하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이 거스릅니까? 그것이 아니라 성경에서 말씀하는 교훈에 대해서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바른 교훈이 무엇인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도리어 거스르는 말을 하면서도 바른 교훈을 말씀하면 거스른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입니다

이 세상과 교회를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서 거스려 분쟁을 일으키는 자들이 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누가 거스르는 말을 하는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을 아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자기들의 이성을 따라 거스리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영혼 구원을 받는 것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이 교회 안에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육체의 정욕이 무엇인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 안에 있는 자기들은 영혼의 구원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교회 밖입니다. 그 사람들은 무조건 영혼을 거스려 육체의 정욕으로 싸우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늘 교회 안에 있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자기들은 잘하고 있고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이 육체의 정욕으로 싸우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입니다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의 다수가 육체의 정욕으로 싸우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육체의 정욕이 무엇이라는 것을 몰라서 아니 자기들은 하나님을 잘 믿고 있어서 육체의 정욕대로 행하지 않는다고 생각을 하는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육체의 정욕입니다

누가 육체의 정욕대로 행하고 있는가 하면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정욕이라는 것은 육체가 하고 싶어하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 육체가 예배를 잘 드리고 싶습니까? 내 육체가 찬양을 잘 부르고 있습니까? 내 육체가 하나님을 위해서 일을 하고 싶습니까?

 

다 육체의 정욕입니다

왜 육체의 정욕인가 하면 영혼의 구원은 그런 육체의 정욕으로는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습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 그런 정욕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그것에 반대가 되는 일은 육체의 정욕입니다 교회 안에서 내 육체가 하나님을 잘 믿고 싶어서 하고 있는 모든 일이 다 육체의 정욕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육체의 정욕이 영혼을 거스려 싸우고 있다고 사도 베드로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그런 육체의 정욕을 행함이 있는 믿음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교회 안에 가라지입니다 교회 안에서 육체의 정욕으로 영혼을 거스려 싸우고 있습니다. 그것을 바리새인의 행위를 통해서 우리에게 충분히 가르쳐 주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교훈을 거스르지 마시기 바랍니다.

무엇으로 거스르고 있는가 하면 육체의 정욕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시대는 육체의 정욕이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정욕이라는 나쁜 의미의 단어 때문에 자기들이 하고 있는 하나님을 위하는 모든 행위는 육체의 정욕이 아닌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성경을 보는 눈이 모두가 소경이 되어 있습니다. 영혼을 거스르면서 육체의 정욕에 빠져 있으면서도 그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전혀 모르면서 도리어 더 육체의 일에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구원에 대해서 얼마나 자기들이 거스리고 있는가를 모르고 도리어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3:3절을 보겠습니다. (265)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분쟁을 일으킵니다.

누가 분쟁을 일으키고 있습니까? 지금과 같은 교회가 아니라는 것을 먼저 생각을 하고 있어야 합니다. 초대교회입니다 그 교회는 이제까지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통해서 바른 교훈을 가르쳤습니다. 그 바른 교훈을 듣고 있는 교회 안에서 분쟁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교회입니다

앞에서 말씀을 드렸지만 교회라고 할 수 없습니다.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교회도 아니고 또 바른 교훈을 전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사실 분쟁을 일으키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물론 이단이라고는 하고 있지만 사실 모두가 율법을 지키고 있는 것을 보면 그들의 주장도 설득력이 없습니다.

 

교회 안입니다

복음이 전해지고 있는 교회 안에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와 같이 주님의 교회가 아니라 자기들의 교회가 되어 있는 곳에서는 사실 이 말씀이 해당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 교회에서의 분쟁은 서로 정욕으로 지나쳐 하고 있는 분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육신에 속한 자입니다.

그런 자들이 교회 안에서 분쟁을 일으키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 안에 있는 육신에 속한 자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신에 속한 자들이 시기와 분쟁을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고 있는가 하면 나는 아벨로에게서 배웠고 나는 바울에게서 배웠다고 분쟁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육신에 속한 자들입니다

복음이 전파가 되고 있는 교회 안에는 이렇게 육신에 속한 자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분쟁을 일으키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의 일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보면서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바울에게 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육신에 속한 자입니다

반드시 육신을 보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육신을 보지 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 육신을 잘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육신을 보고 판단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육신에 속한 자는 육신을 보면서 분쟁을 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신을 보면 어떻게 됩니까?

반드시 거스려 분쟁을 하게 되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역시 육신을 보는 순간 거스려 분쟁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감동을 받고 있는 성도는 오직 영혼 구원만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육신에 속해서 바른 교훈을 거스려 분쟁을 일으키는 자가 되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거치게 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는 육신에 속해서 거치게 하는 자들이 반드시 있게 마련입니다. 복음이 전해지고 있는 교회 안에서 그렇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는 교회의 일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고 있는 교회 안에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거치게 합니다.

누가 거치게 하고 있습니까?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에서 형제들아 내가 지금까지 할례를 전하면 어찌하여 지금까지 핍박을 받으리요 그리하였으면 십자가의 거치는 것이 그쳤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지켰으면 자기가 받고 있는 핍박이 그쳤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입니다

반드시 이런 사람이 있기 마련입니다. 아직 우리 그리스도편지 안에서 교제를 하는 성도들에게서는 안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나타나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늘 경계를 하면서 구원을 끝까지 붙잡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데살로니가후서3:6절을 보겠습니다. (335)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명하노니 규모 없이 행하고 우리에게 받은 유전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

 

떠나라

율법주의자가 교회 안에 들어옵니까? 그들을 내 쫓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단의 사상을 가진 자가 들어옵니까? 그들과 싸워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복음 안에서 교제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솔직히 말씀을 드려서 제가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고 또 교회 안에 어떤 사람들이 들어올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사람이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와 같이 율법을 지키게 하면 모두가 미혹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믿습니다.

지금 우리 성도들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까지 복음을 들었고 이제는 믿음에 든든히 서서 단단한 식물을 먹고 있기 때문에 절대로 그런 일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약한 사람은 반드시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내 쫓을 수 있습니까?

우리는 성경을 잘 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편지에도 이단의 사상을 가진 자가 들어와서 미혹을 하기 시작을 하면 반드시 넘어지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실제 성경에서 그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한 교회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는데 지금은 말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내 쫓지 못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 사람을 이기려고 하지 말고 저희에게서 떠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떠나야 합니다. 혹시라도 제가 없을 때 이런 일이 있다면 여러분은 반드시 떠나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데살로니가에서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규모 없이 행하고 우리에게 받은 유전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사도 바울이 굳이 복음이 있는 우리 성도들에게 떠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제가 늘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진리입니다.

진리와 비진리가 같이 있으면 진리가 되는 것이 아니라 비 진리가 된다고 말씀을 했습니다. 사도 바울도 이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자들이 있으면 떠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이길 수 있을 것 같으면 이렇게 말씀을 하지 않습니다.

 

이기지 못 합니다.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도 이기지 못해서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에게 가서 율법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있는 가운데서 율법에 대해서 정의를 내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누구입니까?

그도 율법주의자와 일대일로 싸우니까 안 되었습니다. 그것을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것을 여러분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가운데 율법주의자가 있으면 싸움이 안 된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착각합니다.

진리를 가지고 있으면 율법주의자와 싸워서 이길 수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와 계속 싸우다보면 자기가 이길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도리어 율법주의가 되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떠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떠나시기 바랍니다.

교훈을 거스려 분쟁을 일으키고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저희에게서 떠나시기 바랍니다. 아직까지는 우리에게서 그런 사람이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아니 그들이 먼저 떠났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이러한 자들이 나타난다는 것을 기억하시고 떠나시기 바랍니다.

 

로마서 16:18절을 보겠습니다. (262)

이 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의 배만 섬기나니 공교하고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자기네 배를 섬기는 것이며, 그럴 듯한 말과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사람들의 마음을 속이는 것입니다.”

 

이 같은 자들입니다

누구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교회 안에는 늘 이단의 사상을 가지고 들어오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가만히 들어와서 사람들을 미혹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그가 복음을 들었다 해도 역시 율법주의자가 들어오면 넘어지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교훈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습니다. 그러나 이 교훈을 거스리고 분쟁을 일으키고 거치게 하는 자들이 교회 안에 있습니다. 어느 교회 안에 있는가 하면 복음이 전해지고 있는 교회 안에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그리스도편지에는 없는 것 같이 보인다고 해서 안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안심하면 안 됩니다

성경이 있다고 하면 반드시 있게 됩니다. 지금은 겉으로 드러나지를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때가 되면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제가 우리 성도님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러한 자들이 들어오게 되면 그렇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때입니다

교회 안에 이단이 들어오면 우리는 그들에게서 떠나야 합니다. 그들과 논쟁을 하면 그들을 복음 안으로 인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율법주의가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떠나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섬기는 자입니까?

구원을 받은 성도가 섬기는 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섬긴다고 할 수 있습니까? 반드시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이단에 속한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섬긴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배만 섬긴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골로새서 2:3-4절을 보겠습니다. (319)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내가 이것을 말함은 아무도 공교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

 

시편 5:9절을 보겠습니다. (806)

저희 입에 신실함이 없고 저희 심중이 심히 악하며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 같고 저희 혀로는 아첨하나이다

 

공교하다

재치 있고 교묘하다. 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아첨하다. 마음에 들려고 비위를 맞추면서 알랑거리다. 라고 사전에서 말을 하고 있습니다. 공교하고 아첨하다는 말의 의미가 다 나쁜 의미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쁘게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해서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 구원을 받은 성도는 아무리 재치 있고 교묘하게 말을 하는 사람이 미혹을 해도 넘어가지를 않습니다.

 

성경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정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을 많이 알아야 합니다. 한 가지라도 더 아는 성도만이 믿음에 든든히 설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하면 공교한 말로 속임을 당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기독교인입니다

정말 그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자기들이 어떻게 속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속이고 있는 목사도 자기가 속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교묘하게 속이고 있는 목사도 자기가 얼마나 교묘한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일입니다.

누가 그것을 나쁘다고 하겠습니까? 우리가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사실 공교하고 말 것도 없습니다. 재치 있고 교묘하게 말을 하지 않아도 사람의 이성은 그것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율법에 대한 타당성만 이야기를 해도 모든 사람이 율법을 지키게 되어 있습니다.

 

공교한 말로 속이고 있습니다.

이 시대 교회는 속이고 말 것도 없이 모두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이 전해지고 있는 교회도 쉽게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공교한 말을 하는 자가 있어서 미혹을 하면 쉽게 속게 되어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안 속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것을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시작하면서부터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에 대해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대해서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성경을 보아도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아니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누가 공교한 말로 속이기도 전에 스스로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종교가 되어 있습니다.

지금 사도 바울이 이 기독교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초대교회와 같이 복음을 전하고 있는 교회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교회 안에 이단들이 들어와서 공교한 말로 속이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그렇다고 하면 그런 것입니다 우리는 늘 성경을 보고 경계를 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성경에서 이런 말씀을 해도 애써 무시를 하고 있습니다.

 

아첨하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아첨하는 말을 하고 있습니까? 시편에서 다윗은 이스라엘을 가르쳐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모두가 저희 입에 신실함이 없고 저희 심중이 심히 악하며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 같고 저희 혀로는 아첨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가 되어 있는 교회가 이렇다는 것을 우리는 늘 경계를 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다윗입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를 하는 왕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 이스라엘이 어떻게 할 것인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 그대로 이스라엘의 입에는 신실함이 없었고 저의 심중은 심히 악하였고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과 같아서 그들이 하는 모든 말이 악한 말이었고 그것이 아첨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입니다.

시편의 말씀 그대로 그들이 행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악한 말만 했습니다. 그들은 계속해서 율법을 가지고 주님의 말씀을 대적을 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 기독교인들 역시 율법을 지키라는 악한 말만 하고 있습니다.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복음을 전하고 있는 교회라고 안전하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이 시대 우리에게 있을 일들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있지도 않을 일을 왜 말씀을 하겠습니까? 복음을 전하고 있는 교회 안에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의 배만 섬기나니 공교하고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순진한 자들입니다

아직 믿음에 든든히 서지 못하고 있는 사람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아직 복음의 깊은 비밀을 다 알지 못하고 있는 사람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아니 우리 그리스도편지도 그럴 수 있다는 것을 늘 생각하시고 경계하시기를 바랍니다.

 

고린도후서 11:3절을 보겠습니다. (297)

뱀이 그 간계로 이와를 미혹케 한 것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순진한 자들입니다

교회 안에는 이제 들어와서 하나님을 믿고 복음을 듣기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아직 믿음에 든든히 서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구원을 받기 원해서 계속해서 복음을 듣고 있을 때 교훈을 거스리고 분쟁을 일으키며 거치게 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미혹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복음을 듣고 있습니까?

그 교회 안에 이러한 자들이 있다는 것을 늘 경계를 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있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그렇다고 하면 그런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자기의 배만 섬기면서 공교하고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경계하시기를 바랍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성경이 그렇다고 하면 그런 것입니다 제가 아무리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어도 이러한 자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늘 경계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성경말씀과 같이 반드시 순진한 자들은 그 마음이 미혹을 당하게 되어 있다는 것을 또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시작하면서 복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이 복음을 알고 있는 성도는 미혹 당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모르는 사람은 미혹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성도 모두가 구원을 받기를 원하시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일까지도 우리에게 말씀을 하면서 경계를 하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미혹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성경을 늘 묵상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야 합니다. 그 지혜가 있음으로 해서 이러한 자들이 와도 미혹 당하지 않을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