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너희는 귀를 기울리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로마서 강해 - 구원론

로마서 강해 159강,부부입니다

윤주만목사 2019. 3. 18. 17:50


2, 로마서 16:6절을 보겠습니다. (261)

너희를 위하여 많이 수고한 마리아에게 문안하라

 

브리스가와 아굴라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들을 동역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에 대해서 기록이 되어 있는 글을 보면 이들은 사도 바울로부터 복음을 들은 것이 아니라 사도 바울이 오기 전에 이미 복음을 들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 후에 사도 바울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이 하는 모든 사역에 동역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브리스가는 로마의 귀족 출신의 집안이라서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고 그의 집이 커서 사람들이 모여서 예배하기가 좋았고 그래서 그들의 집에서 모이는 사람들을 교회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부부입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은 모두가 복음을 전하는 자로 살았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시대는 신학이라는 종교의 산물이 있어서 그곳에서 공부를 해야 목사 안수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목사 안수를 받은 사람이 교회에서 말씀을 가르칠 수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솔직한 이야기입니다

저는 이 목사라는 것도 사실 버리고 싶습니다. 제가 아직 성경적으로 충분히 깨달아지지가 않아서 그렇지 언젠가는 버려야 한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다만 목사라는 의미가 가르치는 자이기 때문에 은사적인 측면에서 그대로 사용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보시기 바랍니다.

당시 초대 교회에 누가 신학을 공부를 했습니까? 자매 뵈뵈가 신학을 공부를 했겠습니까? 브리스가와 아굴라가 공부를 했겠습니까? 물론 당시에 신학이 있었다면 혹시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공부를 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먼저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의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해서 성령을 받고 은사에 따라 복음을 전했던 것으로 보여지고 있습니다. 또 사실이 그렇다는 것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제 생각입니다

우리 모임에서만이라도 이 목사라는 것을 없앨 수 있다면 좋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이 목사라는 것도 종교의 산물인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 의미가 나쁘지는 않지만 역시 기독교라는 종교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솔직한 마음에 편하지가 않습니다.

 

이 문제는 조금 더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혜를 주실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저 역시도 늘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언젠가는 이 문제에 대해서 명확하게 결론을 내릴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다만 앞에서도 말씀을 드렸듯이 이 목사라는 말이 의미적으로 볼 때는 가르치는 자이기 때문에 그냥 사용하고 딱히 어떤 적당한 호칭이 생각이 나지 않고 있습니다.

 

자매 뵈뵈와 같은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동역자가 있어야 합니다. 왜 이 사람들이 있었는가 하면 사도 바울은 이방에 복음을 전하러 계속해서 다른 지역으로 갔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통해서 복음이 계속해서 전파가 되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는 이러한 하나님의 역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고 있습니다.

 

저는 감사합니다.

초대교회와는 같지 않을지라도 이 시대 역시 우리가 이렇게 모여서 예배를 할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지금은 당시와는 많이 다르기 때문에 이 시대에 맞게 하나님께서 역사를 하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여기 대방동에 있는 교회를 통해서 복음을 전파하게 하시고 있고 또 인터넷이라는 미디어를 통해서 복음을 전하게 하고 있습니다.

 

교회입니다

우리는 이 교회에 대해서 바로 정의를 해야 합니다. 보이는 건물이 교회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이제는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또 그 교회에 이름을 지어서도 안 된다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배를 하는 교회에 대한 정의가 바로 서지 못하면 그는 아무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해도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집입니다

이 시대는 건물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가 아닙니다. 그 안에 있는 성도들의 모임을 교회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편지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지만 그것은 하나의 이름이지 교회의 이름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너희는 그리스도 편지라고 말씀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리스도편지라고 하는 것이지 우리 교회의 이름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설득하기 힘들다 해서 성경적이지 않은 것을 해서는 안 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 교회에 대한 정의를 바로 세우면 그래도 반은 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 교회로 인하여 모두가 음행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시대입니다

너무 종교화가 되어 있습니다. 종교화가 되어 있으면서도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요한계시록의 환상과 같이 모두가 두 짐승에게 경배를 하고 있지만 자기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유대교와 기독교라는 두 짐승에게 붙잡힌바 되어 있지만 사람들은 성경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많이 있었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들이 복음을 전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가르치고 떠나면 이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우리 역시 이렇게 동역자들이 많아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이 시대 복음이 어떻게 전해질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로마서를 바로 볼 수 있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대방동에 있는 교회를 통해서 복음이 전파가 되게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가를 늘 생각하고 있습니다.

 

문안하라고 말씀을 합니다.

사도 바울이 사람들의 이름을 일일이 열거를 하면서 문안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문안을 하라고 하는가 하면 물론 인사적인 측면도 있습니다. 이들이 먼저 복음을 깨달은 성도이기 때문에 문안하라고 하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러나 알아야 합니다.

이들은 복음을 듣고 믿어 영생을 얻은 자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문안하라고 하는 말씀은 그들이 전하는 복음을 들어도 된다는 뜻으로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각 지역에서 복음을 전할 때 그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말씀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통해서 문안하라고 하는 말씀을 보게 되면 사람들이 그들에게 복음을 들어도 된다고 믿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여러분을 위하여 수고를 많이 한 마리아에게 문안하여 주십시오.”

 

로마서입니다

성경의 중심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이제까지 거의 모든 목사들이 이 로마서를 강해를 하는 것을 큰 자랑으로 삼았을 정도입니다 실제 로마서는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모든 복음의 말씀을 기록했다고 해도 틀리지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이 기록한 로마서는 시작부터가 복음이 무엇인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로마서를 마쳤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일일이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소개를 하는 말씀을 사람들이 많이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방에 전도를 하는데 있어 육체적으로 많이 도움을 준 사람들로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거의 모든 목사들이 그렇게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마치 사도 바울만 복음을 전한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알아야 합니다.

이 사람들은 동역자라는 것을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실제 브리스가와 아굴라는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것이 아니라 그 이전에 복음을 듣고 믿었습니다. 그 후에 사도 바울이 이방에 복음을 전하러 와서 만난 후에 사도 바울과 함께 복음을 전하는 일에 있어서 동역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우리에게 육적인 일을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지금 로마서 16장도 그렇게 보아야 합니다. 이들이 복음을 위해서 어떠한 일을 했는가를 알아야 하는데 목사들이 그저 성경의 문자를 사람의 이성에 따라 보고 있습니다.

 

당시 복음을 전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렇게 보지를 않고 있습니다. 이 시대 목사라는 직분이 있다 보니까 더욱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로마서 16장에 기록이 되어 있는 사람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어느 직분을 이야기를 하지 않고 거의 이름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동역자라는 정도만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시대입니다

교회 안에 여러 가지 직분이 있습니다. 사실 이 직분에 대해서는 우리가 생각을 해 보아야 합니다. 앞에서 말씀을 드렸지만 저 역시도 목사라는 직분을 다시 생각을 하려고 합니다. 로마서 16장에 기록이 되어 있는 사람들은 모두가 복음을 전했던 사람들이지만 그들에게 어떠한 직분의 호칭도 사용하지 않고 동역자라는 정도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잠언10:16절을 보겠습니다. (921)

의인의 수고는 생명에 이르고 악인의 소득은 죄에 이르느니라

 

마리아입니다.

성경에는 6명의 마리아가 기록이 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 것을 우리가 일일이 알 필요가 없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복음이지 그런 사람에 대해서 알 필요가 없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마리아에 대해서 일일이 열거를 하면서 자기들이 알고 있는 성경적인 지식을 자랑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의 마리아입니다

추정입니다. 정확한 기록이 성경에도 나와 있지가 않고 로마서 16장에만 기록이 되어 있는 마리아입니다 이름으로 보았을 때는 유대인으로 추정이 되고 로마로 이주를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이상의 어떤 기록도 남아 있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씀합니다.

너희를 위하여 많이 수고한 마리아에게 문안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6장에 기록이 되어 있는 사람들은 단순하게 사도 바울이 전도 여행을 하는데 있어서 육적으로 도움을 주었던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성경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앞에서도 말씀을 드렸지만 불과 100여 전 까지만 해도 여자가 목사 안수를 받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일부 교단에서는 목사 안수를 주었지만 거의 모든 교단에서는 여자를 안수하지 않았고 그들이 복음을 전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보시기 바랍니다.

로마서 16장에 벌써 여자가 3명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이들이 그저 지금의 교회 안에 집사들처럼 사도 바울을 도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들은 사도 바울과 마찬가지로 복음을 전했던 사람들입니다 어떻게 복음을 전했는지는 자세하게 기록이 되어 있지 않지만 복음을 전했던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마리아입니다

그녀가 어떤 수고를 했습니까? 사도 바울은 너희를 위하여 많이 수고한 마리아에게 문안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리아가 어떤 수고를 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저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집사들과 같이 수고를 했다는 말씀이 절대로 아닙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집사입니다

그들은 사실 영적인 일로 수고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육적인 정욕을 위해서 수고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 수고는 악인의 소득이 되어 죄에 이르고 있지만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 자기들이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의인의 수고입니다

마리아는 의인으로서 수고를 했습니다. 그가 수고를 함으로 해서 생명에 이르렀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를 위하여 많이 수고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로마에 있는 형제들을 위하여 마리아가 많이 수고를 해서 그들이 생명에 이르렀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자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생리적으로 여자냐 남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시대 우리에게도 마리아와 같은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그녀가 로마에 있는 교회를 위해서 얼마나 수고를 했는가를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를 위하여 많이 수고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수고해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사도 바울이 말씀하고 있는 너희가 생명에 이르렀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에 기록이 되어 있는 마리아는 복음을 전하는 일로 수고를 해서 그들이 복음을 듣고 생명에 이르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당시에 사도 바울의 곁에는 이렇게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던 것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부럽습니다.

솔직한 말씀입니다 마리아와 같은 사람이 있다는 것이 정말 부럽습니다. 마리아가 수고를 함으로 해서 너희가 생명에 이르렀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 가운데서도 이런 사람들이 많이 나오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습니다.

 

혼자입니까?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저 혼자서 전합니까? 저는 절대로 그렇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솔직히 그런 욕심은 없습니다. 제가 비록 이 시대 성경을 해석하고 있고 복음을 전하고 있지만 이 모든 것을 저 혼자 하고 싶은 마음은 절대로 없습니다.

 

그리스도편지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편지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 개인이 아니라 복음을 위해서 사시기 바랍니다. 정말 그런 분들이 많이 나오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습니다. 여자면 어떻고 남자면 어떻습니까? 그가 복음을 전할 수 있다면 저는 만족합니다.

 

지난 시간에도 잠깐 말씀을 했습니다.

지금과 같이 교통이 발달한 시대가 아닙니다. 그리고 사람을 찾아가서 복음을 전하려면 많은 사람이 필요했고 그들은 일일이 먼 길을 걸어서 찾아가서 복음을 전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시대적 배경을 알고 우리는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할 말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정도만 하겠습니다. 저는 이 자리에 계시는 모든 분들이 저와 같아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우리는 한 형제입니다 그리고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영생을 얻은 성도입니다 그런 성도는 다른 것 생각하지 말고 이 복음을 전하는 일만 생각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의인의 수고는 생명에 이릅니다.

마리아의 수고로 인하여 로마에 있는 너희가 생명을 얻었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안에는 이렇게 생명을 위해서 수고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저는 늘 이런 것을 생각할 때마다 답답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의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수고를 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보다 더 소중한 일이 어디 있습니까? 저는 하나님께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시대 인터넷이라는 매체가 있어서 자유롭게 복음을 전할 수 있다는 것은 너무도 큰 은혜입니다 우리 성도님들도 마리아와 같이 수고를 해서 많은 사람들을 생명으로 인도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수고입니다

사전에서는 일을 하는데 힘들이고 애쓰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 교회 안에서 육체적으로 힘들이고 애쓰는 것을 가지고 수고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는 일을 수고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수고가 아니라 육신의 정욕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성도는 수고를 해야 합니다.

어떤 수고를 해야 하는가 하면 복음을 전하는 일에 있어서 수고를 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함으로 해서 한 사람이라도 그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영생을 얻었다면 그는 정말로 수고를 한 성도입니다 천하보다 더 귀한 한 영혼을 구원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4:11절을 보겠습니다. (306)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

 

사도 바울입니다

그가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를 위해서 수고를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어떤 수고를 했습니까?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있는 형제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복음입니다

그리고 다른 복음입니다 이 둘은 주님이 오실 때까지 서로 반목을 할 것이 분명합니다. 교회 안에서 수고를 해서 복음을 전해도 그 교회에 다른 복음이 얼마나 쉽게 들어오는가를 우리가 갈라디아서 강해를 통해서 이미 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에 다른 복음을 가진 자들이 들어와서 사도 바울이 수고한 것을 헛되게 만들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우리가 한 사람에게 복음을 전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정말 한 사람이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보통 수고를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해산의 수고입니다

마치 어머니가 해산을 하는 것과 같은 수고를 해야 그가 생명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수고를 해서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복음을 전했지만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한 그 교회에도 다른 복음을 가진 자들이 들어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마리아입니다

그녀가 로마에 있는 형제들을 위해서 많이 수고를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로마에 있는 마리아는 너무도 큰일을 했습니다. 초대 교회에는 이렇게 복음을 가진 자들이 많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고 있습니다. 그들이 수고를 함으로 해서 다른 복음에 빠지지 않고 생명으로 인도를 할 수 있었습니다.

 

문안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문안, 윗 사람에게 안부를 묻는 인사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로마에 있는 형제들에게 마리아를 선생으로서 인사를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000전의 일이라면 사실 상상이 안 되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런 자들을 높이 세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녀에게 복음을 들었던 사람들 중에는 남자도 있었을 것이고 나이가 많은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로마에 있는 형제들에게 마리아를 문안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리아입니다

그녀가 얼마나 큰일을 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서 집사라고 하는 사람들이 하는 일을 말씀하는 것이 절대로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도리어 율법을 지키는 악한 일입니다. 그녀는 복음을 전했고 그럼으로 해서 생명을 얻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그녀에게 문안을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입니다

가르치는 자들입니다 남자나 여자나 차별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라는 종교는 거의 2000년 동안 차별을 두었습니다. 거의 모든 교회는 여자가 가르치는 것을 금지하면서 살아왔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다 종교의 산물입니다. 종교가 되어 있는 기독교가 성경을 문자적으로 보면서 나타난 산물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수고했습니다.

마리아는 복음을 전하는 일에 있어서 수고를 했습니다. 이 시대 전도를 하면서 그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세요 하는 정도를 가지고 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마리아는 사도 바울과 같이 한 성령 안에서 복음을 전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복음을 전해서 생명을 얻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마리아에게 문안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이것은 하나의 종교에 불과합니다. 그들이 얼마나 비성경적인가를 이것 한 가지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고 있는 마리아에게 로마에 있는 교회에 있는 형제들에게 문안을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기독교라는 종교는 여자가 복음을 전하는 것을 철저하게 막았습니다.

 

천주교를 보시기 바랍니다.

여자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여자는 신부가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비성경적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신부니 수녀니 하는 것도 물론 종교의 산물이지만 남자와 여자를 차별하는 것이 얼마나 비성경적인가를 그들은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설령 누군가 깨달아도 거대한 종교의 반대에 부딪쳐서 이야기도 꺼내지 못합니다.

 

문안하시기 바랍니다.

인간적으로 선생을 대하듯이 문안을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를 먼저 복음을 안자로 인사를 하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마리아는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사람으로서 인사를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기독교는 조금 나아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자 목사들이 복음적이라는 것은 절대로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참으로 이상하게도 여자가 목사가 되면 더 율법주의 성향이 강해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배우라는 뜻입니다

마리아에게 문안을 하라는 말씀은 마리아에게서 복음을 듣고 믿으면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마리아는 복음을 전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이며 이 말씀 그대로 로마에 있는 사람들은 마리아로부터 복음을 들었을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많이 수고했습니다.

아마도 마리아는 복음을 위해서 살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녀가 많이 수고를 했다면 거의 이 일만 했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마치 이 시대 목사와 같이 교회 안에서 복음을 전하는 일을 했습니다. 물론 당시와 지금은 많은 시대적인 차이가 있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수고하시기 바랍니다.

무엇을 위해서 수고를 합니까? 복음을 위해서 수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일은 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 곁에는 이런 사람들이 참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마치면서 일일이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16:7절을 보겠습니다. (261)

내 친척이요 나와 함께 갇혔던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에게 문안하라 저희는 사도에게 유명히 여김을 받고 또한 나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나의 친척이며 한 때 나와 함께 갇혔던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에게 문안하여 주십시오. 그들은 사도들에게 좋은 평을 받고 있고, 나보다 먼저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들입니다.”

 

내 친척이요

사도 바울이 안드로니고와 유니아를 친척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가까운 친척일 수도 있고 아니면 베냐민 지파의 사람일 수도 있는 것으로 추정이 되고 있습니다. 그 인물에 대해서 아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설이 있습니다.

둘 다 남자라는 말도 있고 부부일수도 있고 아니면 오누이 일수도 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을 합니다. 사도 바울이 그런 것이 중요했으면 성경에 기록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 인물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인물입니까?

그가 누구인가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인생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라고 해서 그 역시 인생이 죽음으로 해서 썩어 없어졌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인물보다는 그를 통해서 말씀을 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6장입니다

사도 바울이 지금 인물들을 소개를 하고 있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들을 통해서 그들이 초대 교회 안에서 어떠한 일을 했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는 전혀 모르고 인물에 대해서만 알려고 하는 것이 이 시대 사람들이고 심지어는 그 이름의 뜻을 헬라어로 이야기를 하는 것이 마치 무슨 지식이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가르치는 자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안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이들이 가르치는 자가 아니라면 굳이 문안을 하라고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이들이 복음을 가르치는 자라는 것을 말씀하기 위해서 문안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나와 함께 갇혔다고 말씀을 합니다.

어디에 갇혔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도 그냥 자기와 수고를 하면서 함께 감옥에 갇힌 일이 있다는 정도로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와 함께 복음을 전하다가 갇혔던 일이 있었던 것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초대 교회에서는 아주 흔하게 있었던 일이라는 것을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초대교회입니다

사실 직분이 필요가 없는 때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어떻습니까? 저 역시도 목사 안수를 받기 전에는 수도 없이 들어왔던 말이 있습니다. 제가 인터넷에 글을 올리면 목사냐고 물어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목사가 아니라고 하면 그들이 목사도 아닌데 왜 이런 일을 하느냐고 하면서 이상하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 시대는 너무 종교가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세상 사람들까지도 교회 안에 있는 직분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목사가 아닌 사람이 복음을 전한다고 하면 이상하게 생각을 하고 있고 더 이상 들으려고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안수를 받았습니다.

안수를 받을 때도 사실은 그렇게 기쁜 마음으로 받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목사 안수를 받고 나서 복음을 전하니까 사람들이 대하는 것이 달라지기 시작을 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하시면 되겠지만 이 그리스도편지의 모임도 제가 안수를 받지 않았으면 시작도 되지 않았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초대 교회는 그런 직분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로마서 16장에 기록이 되어 있는 거의 모든 사람이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었지만 직분을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제가 직분을 사용하지 않으면 아마도 그리스도편지에 오는 것조차 방해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것도 인간적인 생각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복음입니다

그가 어떤 사람인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남자인가 여자인가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또 그가 얼마나 배웠는가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 주시면 고린도전서에 있는 말씀과 같이 미련한 자들을 택하사 세상에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신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2:2절을 보겠습니다. (303)

계시를 인하여 올라가 내가 이방 가운데서 전파하는 복음을 저희에게 제출하되 유명한 자들에게 사사로이 한 것은 내가 달음질하는 것이나 달음질한 것이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사도입니다

그들은 특별한 직분을 받았던 사람입니다 이 사도는 친히 주님께서 부르셔서 사도로 삼았습니다. 사도 바울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주님과 함께 삼년 반 동안 동고동락을 했던 사람들이며 주님으로부터 복음을 들었던 사람들입니다. 그 직분이 얼마나 특별한가는 굳이 말씀을 안 드려도 잘 알고 있습니다.

 

요즘 신사도 운동이 일고 있습니다.

마치 새로운 사도가 있는 것으로 말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니 어느 사도의 계승자가 된 것과 같이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부르셔서 사도가 된 사람이외에 어느 누구도 사도라고 부르지를 않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아들과 같이 생각하고 있는 디모데나 디도도 사도라고 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말을 합니다.

그들을 속사도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사실 그 명칭도 바르지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장로라고 하는 말씀은 있어도 속사도라고 하는 말씀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디모데는 장로가 맞습니다. 사도들은 주님이 택하신 열두 사도로 끝이 났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에서 그 성에 성곽은 열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 어린 양의 십이 사도의 열두 이름이 있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사도입니까?

누가 신사도가 될 수 있습니까? 그것은 다 종교가 만들어 내고 있는 산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들이 사도와 같은 직분으로 일을 한다고 하면서 신사도라고 하는데 절대 더 이상의 사도는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도입니다

그들은 주님의 제자입니다. 단 열두 명 만이 주님의 제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당시 초대교회에만 있었던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요한이 죽은 후에는 다시 사도는 있을 수 없습니다. 사도 요한으로 끝이 났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어야 합니다.

 

주님의 제자입니다

그들은 성령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주님으로부터 부탁을 받은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들은 권위가 있습니다. 그 권위에 대해서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안드로니고와 유니아는 사도에게 유명히 여김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그는 주님이 살아계실 때는 사도가 아니었습니다. 그런 그가 주님의 부르심으로 사도가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이방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고 이방에 복음을 전하러 가서도 그가 어떻게 했는가 하면 내가 이방 가운데서 전파하는 복음을 저희에게 제출하되 유명한 자들에게 사사로이 한 것은 내가 달음질하는 것이나 달음질한 것이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들에게 제출을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것을 그냥 사사로이 하는 것이 아니라 사도들에게 제출을 하고 복음을 전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시고 난 후에 이제 하늘에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런데 사도들이 먼저 성령을 받았습니다.

 

당시입니다

우리가 갈라디아서를 보아서도 잘 알고 있지만 벌써 다른 복음이 교회 안에 들어왔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내가 전하고 있는 것이 복음인가 다른 복음인가를 판단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주님의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모두가 오순절에 성령을 받았기 때문에 그것을 판단할 수 있는 성령의 감동을 받고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초대교회는 좋습니다.

주님의 제자들이 살아 있고 그들이 모두 오순절에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인정을 하면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아니 그들이 인정을 하면 그가 복음을 가진 자라는 것을 누구라도 인정을 할 수 있었던 그런 시대였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사도에게 유명히 여김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도들이 안드로니고와 유니아가 전하는 복음을 듣고 인정을 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안드로니고와 유니아는 참 복음을 전했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대신해서 말씀을 해 주고 있습니다.

 

로마에 있는 형제들입니다

당시에도 다른 복음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때 사도들에게 유명히 여김을 받았다는 것은 그 자체로 그가 복음이 있으니까 그에게서 가르침을 받아도 된다는 보증을 해 주는 말씀입니다 사도들이 살아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참 좋습니다.

지금도 이런 사도들이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내가 전하는 복음에 대해서 보증을 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닙니다. 이제 사도들은 없고 단지 성령의 감동하심에 따라 스스로가 판단을 해야 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종교가 되어 있는 이 시대 이방의 교회를 보면서 너무도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도에게 유명히 여김을 받고

우리가 전하고 있는 이 복음을 누군가 인정을 해 준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시대가 아닙니다. 이 시대는 각자가 성령을 구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유명히 여김을 줄 사람은 없을지라도 분명히 성령을 받은 사람들은 한 성령 안에서 교제를 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그도 역시 사도들에게 제출을 했습니다. 왜 그렇게 했는가 하면 자기가 하는 일이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참 이렇게 누군가 증명을 해 줄 수 있다면 좋겠는데 이 시대는 누가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이 있습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은 한 성령 안에서 교제를 하고 있습니다. 그가 참 복음을 전하고 있는가 아니면 다른 복음을 전하고 있는가를 알 수 있게 하나님께서 성령을 우리 각자에게 보내주시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우리는 반드시 성령을 구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교회에만 나오면 성령을 받은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15:22절을 보겠습니다. (28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입니다.

사도 바울의 친척이라고 합니다. 또 사도 바울과 사역을 하다가 감옥에 함께 갇히기도 했던 사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은 복음을 가르치는 사람이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로마에 있는 형제들에게 문안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에게 유명히 여김을 받았습니다.

안드로니고와 유니아는 참 복음을 전했기 때문에 사도들로부터 인정을 받았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해 주고 있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복음을 전했는가를 이 짧은 글에서 우리는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초대교회는 이런 사람들이 많이 있었고 로마에 있는 형제들에게 일일이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또한 나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철저하게 바리새인으로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을 잡으려고 다메섹으로 가던 도중에 주님께서 그를 부르셔서 이방의 사도로 삼으셨습니다.

 

그전에 이미 예루살렘 교회에 수많은 사람들이 믿었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교회가 박해를 받자 그들이 이방으로 흩어져서 복음을 전파를 했습니다. 아마도 이 두 사람은 이미 예루살렘에서 사도들로부터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던 것으로 보여지고 있습니다. 단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믿기만 한 것이 아니라 이들은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말씀합니다.

안드로니고와 유니아를 나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하니까 이 시대 기독교인들이 자기들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담 안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입니다 우리 육체는 모두가 아담 안에 있습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았다 해도 역시 내 육체는 아담 안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육체는 죽으면 썩어 없어진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아담 안에 있는 육체는 그래서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입니다

삶을 얻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같은 생명이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생명이 있는 성도는 삶을 얻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입니까?

그것을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절대로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반드시 살 수 있는 생명이 있는 성도만이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안드로니고와 유니아는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보다 먼저 구원을 받은 성도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입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후에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사도의 직분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아야 합니다. 또한 사도 바울은 비록 늦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구원을 받았을지라도 주님께서 그를 이방의 사도로 부르셔서 많은 일을 하게 하셨습니다. 특히 이 로마서를 기록하게 하시면서 사도로서의 권위를 갖게 하셨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말씀은 생명이 있다는 말씀이며 구원을 받았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이 거의 없으면서도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입니다

영생을 얻는 성도만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 목사들은 이 영생에 대해서 바로 설명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이단보다도 더 영생에 대해서 설명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다보니까 이단이 교회 안에 들어오면 무너지고 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시기 바랍니다.

영생을 얻으시라는 말씀입니다 내 안에 생명에 있는 가를 확증하라는 말씀입니다 그저 교회 안에 있다고 해서 영생을 얻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성경에서 영생에 대해서 확증을 해야 합니다. 다수가 이끄는 종교를 따라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오셔서 말씀으로 그것이 확증되어야 그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교회에 있습니까?

그러나 교회 안에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이 지극히 적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실제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가 어떻게 사는지도 모르면서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어떻게 영생을 얻는지도 모르고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하나님의 영입니다 그 영이 여러분에게 거하지 않고 있다면 그는 아무리 교회 안에서 주여 주여 하고 있을지라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내 안에 생명이 없다면 그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구원을 받았습니까?

이제까지 로마서 강해를 했습니다. 누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인가를 우리 성도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저 막연하게 교회 안에 있다고 해서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서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해서 내 안에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어서 주님이 오시는 날에 부활을 하는 그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로마서16:8절을 보겠습니다. (261)

또 주 안에서 내 사랑하는 암블리아에게 문안하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주님 안에 있는 나의 사랑하는 암블리아에게 문안하여 주십시오.”

 

주 안에서

주님 안에 있는 나의 사랑하는 암블리아에게 문안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6장에 기록이 되어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은 복음을 가르치는 자였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단순하게 문안하라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복음을 가르쳤던 자였기 때문에 문안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암블리아

노예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내 사랑하는 암블리아에게 문안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비록 노예의 신분이었지만 암블리아는 성경을 가르칠 정도로 지식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고 있습니다. 사실 상식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노예입니다

우리나라 조선 시대만 해도 그렇습니다. 종이 누구를 가르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조선 시대 종보다도 더 낮은 계층이 로마에 있는 노예 신분이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물론 그들이 전쟁의 포로가 되어서 노예가 되었던 사람들도 많이 있었고 그들은 충분히 지적인 능력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당시 사회입니다

로마의 시민이라는 계층이 있었습니다. 사실 로마의 시민만 되어도 모든 신분이 보장이 되는 삶을 살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일반 시민들이 있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맨 하층민으로서 노예들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입니다

로마시대라는 특수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노예들이 복음을 많이 들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사실 노예가 한번 되면 그는 이 세상에서 소망이 없는 사람이라고 해도 틀리지가 않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복음은 정말 그들이 의지할 수 있는 탈출구라 해도 틀리지가 않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비록 노예의 신분이지만 복음을 들을 수 있게 역사를 하셨습니다. 당시에는 이렇게 노예들이 복음을 많이 들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들은 오직 소망을 천국에 두고 살았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 중에 한 사람이 암블리아입니다 그는 단지 복음을 듣고 믿은 것 뿐 아니라 복음을 전하면서 살았습니다.

 

신분이 없었습니다.

사회적 계급도 교회 안에서는 없었던 것으로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노예들이 많이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것만 보아도 초대교회는 오직 복음 안에서 한 형제로 살았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의 교회보다 더 진보적인 삶을 살았던 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사회입니다

특수성이 있기 때문에 노예들이 복음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들이 비록 노예의 신분이었지만 교회 안에서는 그런 차별이 없었던 것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노예에게 문안하라고 말씀을 하는 것을 보면 그가 얼마나 복음을 잘 가르쳤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입니다

목사도 박사가 되지 않으면 명함도 못 내미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초대교회는 심지어는 노예까지도 복음을 가르쳤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세상의 이성적 지식이라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성령을 보내 주시고 또 성령의 은사를 따라 가르쳤던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입니다

차별이 없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차별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교회를 보시기 바랍니다. 사실 보이지 않게 교회 안에서 얼마나 차별이 있습니까? 차별이 없는 것과 같이 하고 있지만 실상은 교회 안에서 차별을 두고 있고 자기들의 이성적 기준에 충족되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장로가 되는데 최소한 1000만원이 넘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권사가 되는데 300만원이 넘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그렇다고 한다면 암블리아 같은 경우에는 성경에 기록이 되지도 않았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초대교회는 비록 종이었지만 그가 성령을 받아 가르치는 은사가 있으면 교회 안에서 가르치는 자가 되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차별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니 차별을 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당시에는 사도들이 있어서 누가 복음을 전할 수 있는가를 판단을 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사도들이 없다보니까 아무나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실체를 모르다보니까 아무나 성령을 받았다고 하면 교회 안에서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복음입니다

이 세상의 이성적 지식이 아닙니다. 또 이 세상의 지식이 있는 자라고 해서 전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반드시 성령이 오셔야 하고 또 은사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복음을 모르다보니까 신학을 공부를 하고 목사 안수를 받아야 교회에서 말씀을 전할 수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로마서 16:9절을 보겠습니다. (261)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동역자인 우르바노와 나의 사랑하는 스다구에게 문안하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동역자인 우르바노와 나의 사랑하는 스다구에게 문안하여 주십시오.”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말씀은 영생을 얻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 안에서 라고 말씀을 할 때는 동역자인 우르바노와 스다구가 영생을 얻은 성도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는 성도만이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동역자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단순한 동역자가 아닙니다. 이 두 사람도 역시 복음을 전했던 사람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우르바노와 스다구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것이 없습니다. 사실 우리가 인물을 알아야 할 필요성도 없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누군지도 모릅니다.

그런데도 사도 바울은 이 두 사람을 말씀을 하면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동역자인 우르바노와 나의 사랑하는 스다구에게 문안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이 어떤 위치에 있었던 사람인가는 이 말씀으로 충분히 알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가르치는 일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가를 여러분이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두 사람은 성경에서도 로마서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 외에 서적에서도 이들이 누군지를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사도 바울은 이 두 사람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에 있는 교회입니다.

그 안에서 복음을 가르쳤던 사람들을 일일이 열거를 하면서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소개를 한다는 자체가 이들이 한 일이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사도 바울의 사역을 도운 동역자가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동역자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 이름입니다.

실명이 기록이 되어 있는 사람들은 구원을 받은 사람입니다 로마서 16장에서 이름이 기록이 되어 있는 사람은 단지 구원을 받은 사람이 아니라 사도 바울이 이제까지 로마서를 통해서 말씀을 하고 있는 복음을 다 깨닫고 그것을 전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도 복음 안에서 교제를 하고 있습니다. 정말 이런 사람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들이 얼마나 복음 안에서 헌신을 하고 수고를 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로마서에 이름이 기록이 되어서 사도 바울이 인사를 한다는 그 자체가 복음의 모든 비밀을 알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로마에 있는 교회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정말 자기 생명을 아까워하지 않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순교자들이 나왔습니다. 그들이 이 모든 복음의 비밀을 알고 있었고 그것을 그대로 전할 수 있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그들에 대해서 일일이 열거를 하면서 인사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시기 바랍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우리도 이런 사람이 많아야 합니다. 물론 이 시대 우리도 각자의 직분을 맡은 대로 수고를 하고 있습니다. 그 일이 있기 때문에 그 수고를 통해서 복음이 전파가 되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우리 성도님들이 더욱 더 복음을 알기를 사모해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동역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저는 여기에 계시는 모든 분들이 동역자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습니다. 그것은 정말 변함이 없는 제 마음입니다 이 시대 우리 대방동에 있는 교회에서 교제를 하고 있는 성도님들을 통해서 초대교회와 같이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로마서16:10절을 보겠습니다. (261)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함을 받은 아벨레에게 문안하라 아리스도불로의 권속에게 문안하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을 받는 아벨레에게 문안하여 주십시오. 아리스도불로의 가족에게 문안하여 주십시오.”

 

아벨레에게 문안하라

로마서 16장에서 딱 한번 기록이 되어 있는 사람들은 거의 로마에 있는 교회에 있는 사람들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들이 누군지 정확하게 가르쳐 주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사도 바울이 그들의 이름을 열거를 하는 것으로 보았을 때 로마에 있는 교회 안에서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보여지고 있습니다.

 

가르치는 자입니다

가르치는 자로서 문안을 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고 단순히 문안하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을 한 번에 기록을 하다 보니까 우리가 잘 모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성경을 보면 아벨레까지는 가르치는 자로 보이고 있습니다.

 

물론 뒤에도 가르치는 자가 나오는 것으로 보이고 있습니다.

물론 순전히 제 생각입니다. 여러분이 성경을 다르게 본다고 해도 별로 틀리지 않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인사를 하라는 의미에서 문안과 가르치는 자로서의 문안은 다르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구별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시편1:6절을 보겠습니다. (805)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함을 받은 아벨레입니다

그러니까 아벨레는 하나님께서 인정을 하는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그가 어떻게 인정을 받았는가 하면 의인으로서 인정을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시편에서는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의인입니다

어떻게 의인이 됩니까? 사도 바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복음을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복음을 믿음으로 해서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로마서를 통해서 계속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아벨레입니다

그가 누군가를 쉽게 알 수 있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아벨레는 로마서에 있는 복음의 말씀을 다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습니다. 그런 그를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함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의롭다 하심을 받은 성도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정함을 받아야 합니다.

왜 이 말씀을 기록하고 있습니까? 우리 역시 아벨레와 같이 인정함을 받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함을 받은 사람이 누군가 하면 의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함을 받아야 하는 줄을 이 시대는 잘 모르고 있습니다.

 

의인의 길을 인정하십니다.

그 의인이 어떻게 의인이 될 수 있는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성경에서 말씀을 풀어가야 하는데 이 시대는 아벨레가 어떻게 인정함을 받았는지를 모르고 그저 막연하게 자기들이 인정함을 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아벨레가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함을 받았습니다. 그럼 반드시 그것을 성경적으로 증명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막연하게 자기들이 인정함을 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성경에서 복음을 보고 그것을 성령의 감동을 받아 내 안에서 믿음으로 역사를 해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시작하면서 복음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말씀을 하면서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보고도 사람들은 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이 되셨는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막연하게 성경의 단어만을 보고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이 되셨다고 말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 로마서를 시작하면서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을 인정하기 위해서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사야 선지자가 한 말씀을 생각하면서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이 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이사야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입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아들이 오시는데 그가 인정을 받으면 하나님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는 예언의 말씀입니다

 

인정이라는 것이 이렇습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구속을 이루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것을 로마서1장에서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면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이 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이 되셨다고 하는가 하면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인정이 되셨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반드시 아들로 인정이 되시는 분만이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이 응하게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인정을 합니까?

성경이 인정을 해 주고 있습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함을 받은 아벨레에게 문안하라고 하는 말씀도 같습니다. 그가 왜 인정함을 받았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는 사도 바울로부터 복음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복음을 듣고 믿었습니다. 그렇게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해서 의롭다 하심을 받아서 의인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아벨레입니다

그런 아벨레를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함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해서 아벨레와 같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서 인정함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정함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인정함을 받은 아벨레에게 로마에 있는 형제들이 문안을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의롭다 하심을 받은 성도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를 알 수 있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도 우리 성도를 귀하게 보시기 때문에 사도 바울을 통해서 로마에 있는 형제들에게 문안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10:18절을 보겠습니다. (296)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니라

 

아벨레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를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함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는가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아무리 사도 바울이지만 이런 말씀을 쉽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아벨레를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함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있는 성도입니다

의인의 길을 가고 있는 성도라는 말씀입니다 그런 아벨레이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말씀을 사도 바울이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아벨레가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믿었는가를 알 수 있는 말씀입니다

 

믿음이 있는 성도입니다

그런 성도를 사도 바울은 로마에 있는 형제들에게 문안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직접 복음을 가르쳤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가 믿음에 든든히 서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아니 그가 어떠한 믿음을 가졌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알고 있기 때문에 로마에 있는 형제들에게 문안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벨레는 분명히 의인입니다

어떻게 의인이 되었는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 의인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이 그의 믿음을 굉장히 높이 산 것 같습니다. 제가 믿음이 다르다는 것이 아니라 아벨레는 인정을 받을 정도로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문안해야 합니다.

성도를 하나님께서 얼마나 귀하게 보시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시편에서 땅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 자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저에게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벨레는 성도로서 하나님의 모든 즐거움이 그에게 있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로마에 있는 형제들에게 문안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정함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누구를 칭찬하시는가 하면 믿음이 있는 성도를 구원을 받은 성도를 칭찬하신다고 믿고 있습니다. 바로 아벨레가 그런 사람이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리스도불로의 권속입니다

그에 대해서는 헤롯 왕가의 사람이라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로마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아리스도불로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것이 없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그가 누군가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입니다

복음의 모든 말씀이 있는 로마서에 그 이름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들의 이름을 일일이 열거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함을 받은 아벨레에게 문안을 하라고 말씀을 하면서 아리스도불로의 권속에게도 문안을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도 잘 모릅니다.

아니 사실 이 로마서 16장의 인물들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것이 없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아리스도불로의 권속에서 문안하라고 하는 말씀은 아벨레와 거의 같은 의미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이 되고 있습니다.

 

아벨레가 인정함을 받았습니다.

아마도 아리스도불로의 권속도 인정함을 받지 않았나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의 말씀이기 때문에 아벨레를 말씀을 하면서 바로 이어서 아리스도불로에 대해서 말씀을 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의인이 되어야 합니다.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 자 되어야 한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름을 아는 것은 사실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는 말씀은 이미 로마서 14장까지에서 다 말씀을 했습니다. 15장과 16장의 말씀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이 말씀을 보게 하고 있습니다. 중요하지는 않지만 이 사람들이 왜 기록이 되었는가를 알아 가면 좋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6:11절을 보겠습니다. (261)

내 친척 헤로디온에게 문안하라 나깃수의 권속 중 주 안에 있는 자들에게 문안하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나의 친척인 헤로디온에게 문안하여 주십시오. 주님 안에 있는 나깃수의 가족에게 문안하여 주십시오

 

내 친척 헤로디온입니다

그가 사도 바울의 가까운 친척이었는지는 정확하지가 않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전승이 내려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확한 근거는 없는 것으로 생각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가능한 성경을 근거로 해서 말씀을 해야 합니다.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아무리 우리에게 좋은 말이 된다고 해도 근거가 명확하지 않은 말을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아니 성경에 없는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사실은 잘못된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전승에 그가 순교를 했다고 하는데 충분히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순교 시기가 로마서의 기록 연대와 맞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가능한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참고로 하는 책은 정말 참고만 하시기를 바랍니다. 저도 몇 가지 책을 참고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순전히 참고만 하고 있습니다. 성경과 일치가 되지 않으면 가능한 말을 하지 않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런 말을 좋아하고 있습니다.

 

특히 순교입니다

누가 순교를 했다고 하면 마치 그가 믿음이 대단한 것으로 생각이 되기 때문에 더욱 사람들은 그런 전승을 미화시키려고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실 로마서 16장에 나오는 인물들은 거의 누군지를 알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앞에서도 말씀을 드렸습니다.

전승에는 브리스가와 아굴라가 성찬을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사실 전혀 성경적이지 않은데도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미화를 시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성경적 지식으로는 그들이 성찬을 했을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그런 미화가 된 전승으로 사람들은 브리스가와 아굴라가 성찬을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사람들이 성찬을 했으니까 자기들이 성찬을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의 전승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헤로디온도 마치 순교를 한 것으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사실 초대교회를 생각하면 그가 순교했을 가능성이 아주 큽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지 않은 것을 우리가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런 전승으로 기록이 되어 있는 글을 마치 진실인 것과 같이 믿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친척입니다

11절은 10절부터의 연결이 되어 있는 말씀이라고 저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다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함을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로서 사도 바울은 충분히 그들이 문안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나깃수의 권속 중에 주 안에 있는 자들에게 문안하라고 말씀합니다.

사도 바울은 10절에서부터 같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나깃수의 권속 중에 주 안에 있는 자들에게 문안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 역시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함을 받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사람이라고 저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