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너희는 귀를 기울리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로마서 강해 - 구원론

로마서 강해 154강, 영의 일입니다

윤주만목사 2019. 2. 10. 22:00


로마서 15:14절을 보겠습니다. (260)

내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차서 능히 서로 권하는 자임을 나도 확신하노라

 

구원입니다

영의 일을 알고 이 구원이 믿음으로 역사를 하는 성도들은 사람들이 모르는 기쁨이 있습니다. 비록 우리 감정으로 느낄 수는 없지만 성령의 역사로 우리에게는 분명한 기쁨이 있습니다. 저도 이 기쁨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를 모르겠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그래서 솔직하게 말씀을 드리면 그 기쁨이라는 것을 전혀 느끼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다만 성령이 제 안에서 역사를 하고 있고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천국의 소망이 있기 때문에 아니 이 영의 일이 믿어지기 때문에 말할 수 없는 기쁨이 제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종교인이 아닙니다.

그들과 같이 외식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이 기쁨이라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이 기쁨을 자기 육체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감언이설로 이 기쁨을 표현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종교는 영의 일도 외식으로 치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령의 감동을 받고 있지만 그렇게 외적으로 나타내지를 않고 있습니다.

 

다만 믿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말로는 표현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우리에게는 기쁨이 있습니다. 그 기쁨은 이 세상과 같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정말 영의 일이라는 것이 이렇다는 것을 말씀을 드릴 때마다 저 역시도 답답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합니까?

그렇지 않은 것을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 역시 종교인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늘 이런 것에 대해서 주의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종교인들과 같이 그렇게 외식을 하지 않을지라도 우리에게는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외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 표현조차도 우리는 주의를 해야 합니다. 제가 이렇게 말씀을 드릴 때 마다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합니까? 우리는 분명한 소망이 있는 성도입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우리 안에서 역사를 하고 있다는 것이 믿어지고 있습니다.

 

영의 일은 믿음입니다.

이 믿음을 모르면 어느 누구도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 말씀을 깨달은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도 사실 이 말씀을 표현한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기쁨입니다.

그리고 평강입니다 이것이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기쁨을 느낄 수 있습니까? 평강을 누릴 수 있습니까? 우리 사람의 감성으로 이성으로 이것을 느낄 수 있다는 말씀입니까?

 

그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이 지금 그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에 우리가 그것을 느끼고 감정적으로 알 수 있다면 사도 바울은 믿음 안에서 충만하게 하신다는 그 말씀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조차도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해가 됩니까?

저도 많이 부족합니다. 사실 이런 말씀을 성도님들에게 말씀을 한다는 것 자체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우리가 깨닫고 있는 이 복음은 영의 일입니다 이 영의 일은 기쁨조차도 평강조차도 믿음 안에서 충만케 하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믿어진다는 말씀입니다

기쁨이 믿어진다는 것이 이해가 됩니까? 평강이 믿어진다는 것이 이해가 됩니까? 사람들은 제가 이상한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 기쁨에 대해서 그리고 평강에 대해서 말씀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아는 성도는 이 일이 믿어짐으로 해서 역사를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영의 일입니다

제가 늘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정말 우리 인생들에게는 너무도 무색무취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시는 성도들은 이 모든 일이 믿음 안에서 충만케 하시는 역사가 믿어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믿음이 있습니다.

그런 성도들은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고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가 소망을 가진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인생의 이성으로는 이 영의 일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소망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능력으로 이 소망이 우리 안에서 넘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참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깨닫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한 성령 안에서 역사를 하기 때문에 제가 조금 부족하게 말씀을 드려도 충분히 깨닫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이성으로 소망이 넘친다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해가 안 됩니다

성령을 받지 못한 사람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한 성령 안에서 교제를 하고 있는 우리 성도들은 이 말씀이 한 성령 안에서 능력으로 역사를 하기 때문에 믿어지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영의 일은 성령이 오셔서 역사를 하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깨달을 수 없습니다.

 

소망입니다

인간적인 지식으로 알고 있는 소망이 아닙니다. 영의 일은 우리 인생의 이성으로는 깨달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믿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믿음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소망을 가질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긍휼히 여길 자에게 이렇게 성령을 보내주셔서 역사하게 하고 있습니다.

 

소망이 있습니까?

소망이 넘치고 있습니까? 우리 인생의 이성으로 알고 있는 그런 소망을 가지고 소망이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영의 일은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나는, 여러분 마음에 선함이 가득하고, 온갖 지식이 넘쳐서, 서로 권면할 능력이 있음을 확신합니다.”

 

내 형제들아

사도 바울이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이 편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로마서는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쓴 서신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 로마서를 다 기록을 하고 난 후에 이 말씀을 다 본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내 형제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이 로마서는 정말 복음 중에서 복음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복음을 기록해서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보냈습니다. 그들이 이 말씀을 보고 바른 믿음을 가지고 구원을 받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형제가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다 하나에게 났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방인과 유대인은 형제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로마에 있는 이방인들에게 형제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이 말씀을 할 수 있는가 하면 로마서 158절부터의 말씀에서 이미 다 했습니다.

 

성경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저 성경의 문자를 본다고 해서 형제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주님께서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하여 할례의 수종자가 되셨다는 말씀의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 이방인들을 위해서 할례의 수종자가 되심으로 해서 우리가 영으로 역시 할례의 수종자가 되어서 비록 이방인이지만 이제 소망을 갖게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과 형제가 되시기 바랍니다.

성경의 문자를 아는 것으로 형제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성령을 받은 자가 거의 없습니다. 아니 성령을 받았다고 하지만 그들은 모두가 종교적인 샤머니즘에 빠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그 일에 있어서 사도 바울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내 형제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사도 바울이 말씀한 영의 일을 깨달은 성도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이 로마서를 바로 보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성경을 너무 모릅니다.

종교에 빠져 있는 그들은 죽을 때까지도 성경을 모르다 죽을 것이 분명합니다. 사도 바울이 이렇게 우리 영의 일에 대해서 자세하게 쓴 성경을 보면서도 이 성경을 거의 문자적으로 보면서 복음과 다르게 해석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제 바로 뒤에서 자기가 이방의 사도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이제 로마서를 마치면서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너희가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이 전해졌습니다.

아마도 누군가에 의해서 이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복음이 전해졌을 것이 분명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가 이방의 사도로서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전하지 않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너희가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칭찬입니다

누구에게서 복음을 들었다고는 말씀을 하고 있지 않지만 로마에 있는 성도들이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선하신 이를 믿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사도 바울은 선함이 가득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0:11절을 보겠습니다.(163)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로마에 있는 형제들입니다

사도 바울이 그들에게 이 로마서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에 있는 형제들에게 누가 복음을 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도 바울은 그들이 복음을 듣고 믿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너희가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문자적으로 보는 사람들에게는 이 선함도 그저 육체의 선함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알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초대 교회입니다 이제 막 복음이 전파가 되었던 때입니다 지금과 같이 종교가 성행을 하는 시대가 아닙니다. 당시 로마가 어떠했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당시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자기 육체의 생명을 내 놓을 수 있는 각오가 있어야 가능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입니다

그런데도 초대 교회는 로마에 있는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많이 알고 있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들에 대해서 듣고 그들이 복음을 알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너희가 선함이 가득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복음입니다 그분이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선하신 일을 하셨습니다. 그 일을 아는 것을 아니 믿는 것을 보면서 사도 바울이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너희 스스로가 선함이 가득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막 복음이 전파가 되었던 때이기 때문에 어찌 보면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주님의 부활입니다

그 일이 있은 후 불과 30년도 안 되는 때에 이 로마서가 기록이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때에도 물론 율법주의가 교회 안에 있었지만 그래도 복음을 들었던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도 알고 있기 때문에 로마서 있는 성도들에게 너희가 선함이 가득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선한 목자입니다 그분은 이 세상에 오셔서 모든 선한 일을 하셨습니다. 그분이 하신 일을 알고 그 분을 믿고 있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사도들이 있었던 그때를 제외하고는 복음이 사라졌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감사해야 합니다.

이 시대 누가 선함이 가득한 사람이 있습니까? 복음에 대해서 거의 무지에 가깝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에게 은혜를 주시고 있습니다. 물론 초대교회와 같이 복음의 깊은 비밀을 다 알지는 못할지라도 그래도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정도로 우리에게 선함이 가득하게 하고 있습니다.

 

구원을 받고 싶습니까?

우리 안에 선함이 가득해야 합니다. 그 말씀은 선하신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으로 가득차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성경에서 복음을 많이 알면 알수록 믿음에 든든히 설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에 성도들이 이렇게 선함이 가득할 수 있었습니다.

 

이때가 서기 60년이 채 안 된 때입니다

그때는 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복음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같은 성경을 보고 있지만 이 시대는 선함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선한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주님은 선한 목자입니다

로마서를 시작하면서 이 복음은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기록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로마서를 통해서 그의 아들에 관하여 계속해서 말씀을 했습니다. 이 모든 말씀을 알고 있는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너희가 선함이 가득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선함이 가득해야 합니다.

선하신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으로 가득해야 한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선함이 가득한 것이 아니라 악독이 가득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으로 우리 안에 가득해야 하는 줄을 모르고 그저 교회 안에서 마약에 취한 자들과 같이 주의 이름을 부르면서 구원을 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로마에 있는 형제들에게 너희가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들이 영생을 얻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선하신 일을 하셨습니다. 우리는 그 일을 성경에서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그 일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자기들이 알고 있다고 하지만 실상은 이스라엘의 바리새인들과 같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성도입니다

우리도 역시 로마에 있는 성도들과 마찬가지로 선함이 가득해야 합니다. 어떻게 가득해야 하는가 하면 성경을 보고 그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속의 일을 알아야 합니다. 그 일을 많이 알면 알수록 선함이 가득하게 되고 그런 성도들에게 영생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게으르지 마시기 바랍니다.

영생을 얻고자 하는 성도는 이 일에 힘써 행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영생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 기본도 모르는 그들이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고 자기들이 영생을 얻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런 문자를 아는 것으로 마치 자기들도 선함이 가득한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선한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속의 일을 전혀 모르는 그들이 겨우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으로 선함이 가득하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선함이 가득한 것이 아니라 모든 악독이 가득한 것입니다

 

골로새서 2:2-3절을 보겠습니다. (325)

이는 저희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원만한 이해의 모든 부요에 이르러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라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느니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솔직히 그리스도편지와 복음과 율법을 보시기 바랍니다. 누가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있다면 그들은 율법을 지키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하여 할례의 수종자가 되셨다는 것을 알면 절대로 율법을 지키지 않습니다.

 

이 한 가지입니다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는 그것만 보아도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이라고 밖에 말씀을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말씀을 드리는 저를 그들이 욕을 한다 해도 아니 이단이라고 한다 해도 저는 그렇게 밖에 말씀을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을 왜 봅니까?

율법의 행위를 하기 위해서 봅니까? 아니 예수 그리스도도 믿고 율법의 행위도 잘하기 위해서 봅니까? 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하여 할례의 수종자가 되셨다는 의미를 전혀 모르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없는 구원을 받지 못한 자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을 성경에서 보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보화를 캔다고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저 문자로 나타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으로 자기들이 보화를 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너무 단순하게 보고 있고 성경에서 복음을 전혀 볼 생각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이 이 시대 기독교인들입니다

 

그 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모든 지혜와 지식과 보화가 감추어져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지혜와 지식과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사도 바울이 모든 지식이 차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을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행위를 하는 것을 보고 구원을 받았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모든 지식이 차 있어야 합니다. 성경에서 선한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신 구속의 일을 알아야 한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식으로 채우시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성경의 문자를 아는 것으로 지식이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골로새서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지혜와 지식과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그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아야 한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입니까?

구원을 적당하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적당하게 알아서 구원을 받을 것 같으면 이렇게 두꺼운 그리고 어려운 성경을 우리에게 주시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저 이 시대 기독교인들의 수준에 맞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하면 됩니다. 굳이 여러 가지 말씀을 성경에 기록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식을 적당히 알면 안 됩니다

제가 말씀을 드리지만 우리는 죽을 때까지 성경에서 이 보화를 캐는 일을 해야 합니다.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가야 한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그들이 사람의 이성적 지식을 가지고 자랑을 하고 있습니다.

 

이성적 지식입니까?

그것은 절에 있는 스님이 성경을 보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솔직히 이 시대 목사들은 절에 있는 스님이 보는 정도의 지식을 가지고 있으면서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하나도 없는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소망을 가지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지식입니다

어느 지식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이제까지 로마서를 강해를 하면서 율법에 대해서 많은 말씀을 했습니다. 그 율법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일을 알게 되었습니다. 최소한 그 정도의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이 시대는 아예 깜깜한 가운데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달달 외웁니까?

그것으로 지식이 찼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느 목사는 설교를 하는데 히브리어와 헬라어가 줄줄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 세상의 지식을 가지고 마치 모든 지식이 차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해서는 안 됩니다 그 정도는 언어적 능력이 있는 사람은 이 시대도 몇 개 국어를 하고 있는 그런 지식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지식이 아닙니다.

이 세상 초등학문입니다 누구나 공부를 많이 하면 알 수 있는 그런 정도의 지식은 이 세상 초등학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식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저 세상적으로 머리가 좋아서 암기를 잘하는 것으로 자기들이 지식이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으로 차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그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으로 차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이 일에 한시도 게으르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영생입니다

다른 것 다 못해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없다면 그는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모든 지식으로 차 있지도 않으면서 교회 안에서 행위에 열심을 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행위를 잘하는 것으로 자기들이 지식이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감추어져 있습니다.

성경을 본다고 해서 모두가 볼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성경은 분명히 감추어져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그 감추어져 있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을 얻기 위해서 지금도 성경을 보고 있고 그 안에서 보화를 캐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그렇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5:8-9절을 보겠습니다. (308)

그 권면이 너희를 부르신 이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느니라

 

로마에 있는 형제들입니다

그들이 복음에 바로 서 있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씀을 보고 이 시대 종교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마치 자기들이 로마에 있는 성도들과 같은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선함도 모르고 지식도 모르는 그들이 로마에 있는 성도들이나 된 것과 같이 이 말씀을 보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시대적인 배경을 잘 알아야 합니다. 그때는 이제 막 복음이 이방에 전파가 되었던 때입니다 이 시대와 같다고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아니 이 시대는 복음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기록한 성경을 보고 있지만 거의 거꾸로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교회 안에 있다고 해서 받았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제 로마서 강해를 거의 마치려고 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이 시대 기독교인들이 이 로마서를 보면 아마도 새로운 이단이 나온 것으로 생각할 것이 분명합니다. 아니 영의 일을 몰라서 처음 들어서 너무 어렵다고 할 것이 분명합니다.

 

복음을 들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이 로마서를 시작하면서부터 복음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복음에 대해서 전혀 듣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이 로마에 있는 성도들과 자기들이 같은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저 교회에 나와서 성경을 본다는 것으로 같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어떻게 합니까?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하고 있습니다. 복음도 모르는 그들이 선함도 없는 그들이 지식도 없는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권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생명이 없는 자가 복음이라고 전하면 그것은 재앙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선함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도 전혀 없습니다. 그런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하고 있다면 그것을 듣는 사람에게는 재앙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 로마서를 보고 자기들이 마치 로마에 있는 성도들이나 된 것으로 생각하고 권하고 있습니다.

 

교회입니다

축복만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재앙도 함께 있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축복만을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악인에 대해서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악인에 대해서 악한 자에 대해서 얼마나 많이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성경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런데도 남의 일로만 치부를 하고 있습니다.

 

권면입니다

누가 해야 합니까? 반드시 선함이 가득해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지식으로 차 있어야 합니다. 그런 성도만이 서로 권할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그런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아무도 없으면서도 이 권하는 일에 아주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의인이 열심을 내면 축복입니다 그러나 악인이 열심을 내면 재앙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불행하게도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의인이 누군지 악인지 누군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권하는 일에 열심을 내고 있고 그것이 이 시대 많은 사람들에게 재앙이 되고 있지만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권면입니다

그 권면이 너희를 부르신 이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권면을 하는 사람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그가 하나님에게서 나서 부른 자인가를 알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이렇게 가르쳐 주고 있지만 성경을 볼 생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누룩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일입니다 교회 안에서 단 한 가지라도 율법을 지키고 있다면 그는 하나님에게서 나서 권면하는 자가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누구에게서 나서 권면을 하고 있습니까? 율법을 단 한 가지라도 지키고 있다면 그는 마귀에게서 나서 권면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 교회입니다

율법을 지키지 않는 교회가 있습니까? 저는 성경에 있는 말씀 그대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권하는 자로서 합당하다고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한다고 해서 마치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그렇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로마에 있는 성도입니다

그들은 주님께서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하여 할례의 수종자가 되셨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율법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런 그들이 권하는 것을 사도 바울이 내가 너희를 인정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입니다

율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까? 저는 아직까지 율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을 못 보았습니다. 만약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모두가 율법을 지키고 있고 그런 그들이 종교적인 열심으로 사람들에게 권하고 있습니다.

 

적은 누룩입니다

단 한 가지의 율법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고 있습니까? 그 사람은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그런 사람들이 권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목사들은 그렇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 교인들은 너무 맹목적입니다 목사들이 자기 종교를 위해서 성경을 가지고 이용을 하면 거의 맹목적으로 그 일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무 것도 모르는 그들이 마치 자기들이 지식을 아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그 일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종교에 빠져 있습니까?

사람들은 거의 혼수상태에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마치 마약에 취한 것과 같이 그들이 시키는 대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 생각도 없이 아니 겁도 없이 악한 일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성경은 그들을 악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성적 지식이 있다고 하는 그들이 성경을 보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로마에 있는 성도들입니다

사도 바울이 그들을 칭찬하고 있습니다. 마치 이 시대 성경을 보고 있는 사람들을 칭찬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 이 시대는 로마에 있는 성도들과는 전혀 다른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하여 할례의 수종자가 되셨다는 것을 믿고 율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로마서 15:15절을 보겠습니다. (260)

그러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를 인하여 더욱 담대히 대강 너희에게 썼노니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러나 내가 몇 가지 점에 대해서 매우 담대하게 쓴 것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를 힘입어서, 여러분의 기억을 새롭게 하려고 한 것입니다.”

 

로마에 있는 형제들입니다

너희가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차서 능히 서로 권하는 자임을 나도 확신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에 있는 형제들이 구원을 받은 것에 대해서 확신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확신하는가 하면 그들은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으로 차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로마서입니다

모든 성경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베드로후서에서 사도 베드로는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다고 말씀을 하면서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억지로 풀다가 멸망의 길로 가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는 것이 아니라 많이 있다는 것을 알고 정말 지혜를 구하고 성령을 구해야 합니다.

 

사람의 이성입니까?

그것을 가지고 지혜가 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인생은 영생에 있어서 무식한 자들입니다 그리고 믿음의 비밀을 모르는 굳세지 못한 자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자들이 이 시대도 성경을 억지로 풀다가 사망에 이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로마에 있는 형제들입니다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믿고 있습니다. 그들이 어느 정도로 성경에서 복음을 들었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으로 차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에 있는 성도들은 사도 바울의 말씀과 같이 구원을 받는데 있어서 부족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 그들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 로마서를 왜 써서 보내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에 있는 성도들이 선함이 가득합니다. 그리고 모든 지식으로 차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미 충분히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사도 바울은 로마서를 써서 보내고 그들로 다시 복음이 생각나게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입니다

한번 듣는 것으로 끝을 내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정말 우리는 죽을 때까지 이 복음을 보고 또 보아야 합니다. 그런 성도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도 로마에 있는 형제들이 이미 구원을 받을 만한 선함이 가득 있고 모든 지식으로 차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로마서를 보내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우리는 죽을 때까지 복음을 보고 또 보아야 합니다. 물론 우리의 구원은 단회적인 사건입니다 제가 그것을 부정하고자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러나 구원을 받은 성도는 보고 또 보면서 자기 안에서 확신을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생각나게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에 있는 성도들은 이미 복음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어느 정도로 들었는가 하면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으로 차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런 그들에게 다시 이 로마서를 보내고 있습니다. 왜 로마서를 다시 보내는가 하면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 보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입니다

아무리 기억력이 있다고 해도 잊어버립니다. 물론 성령의 감동을 받고 있다는 것을 제가 무시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진리로 인도함을 받고 있지만 역시 우리는 육체를 입고 있기 때문에 자꾸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그런 우리들에게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 이 로마서를 보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를 보았습니까?

한번 보고 모든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까? 솔직히 말씀을 드립니다. 제가 이 모든 글을 썼습니다. 그러나 저 역시도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설교를 작성하다보면 그 말씀을 어떻게 섰는가를 잊어버려서 다시 찾아보는 일이 자주 있습니다.

 

보아야 합니다.

정말 계속해서 보아야 합니다. 내가 한번 본 것으로 모든 것을 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모든 지식이 내 안에 있어서 영생을 얻기 까지는 계속해서 보아야 합니다. 물론 영생을 얻었다 해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이 영생의 일을 계속해서 보아야 합니다.

 

빌립보서 3:12-14절을 보겠습니다. (321)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구원입니다

우리 성도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 사실에 대해서 우리는 조금도 의심을 해서는 안 됩니다 사도 바울도 그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다시 생각나게 한다는 말씀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그들이 복음을 몰라서가 아닙니다. 또 그들이 구원을 못 받았다는 의미도 전혀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에 있는 성도들이 구원을 받은 것에 대해서 확신을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도 마찬가집니다 우리 그리스도편지에서 교제를 하고 있는 성도님들 역시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조금도 의심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이 로마서를 보내면서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빌립보서에서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간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입니다

이것에 대해서 의심을 하라고 하는 말씀이 절대로 아닙니다. 우리는 분명히 구원을 받은 성도입니다 그러나 구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물론 우리의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을 믿고 있습니다. 그 실상은 바로 우리가 성경에서 알고 있는 영의 일입니다

 

아직 입니다.

우리는 아직 육체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분명히 영의 일로는 구원을 받은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영이 부활을 하지 않았고 육체를 입고 있습니다. 그런 우리이기 때문에 빌립보서의 말씀과 같이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육체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늘 생각하고 있어야합니다. 그런 우리 인생이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간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믿음이 없습니까?

그가 영의 일을 몰라서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 역시 육신을 입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그가 얼마나 구원을 바라는가를 알게 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로마서에서 역시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으로 차 있는 성도들에게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 이 로마서를 보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입니다

우리는 구원을 붙잡으려고 쫓아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못 받아서가 아닙니다. 그런 뜻에서가 아니라 아직 육신을 입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복음의 말씀을 계속해서 봄으로 해서 우리가 바라는 소망을 끝까지 붙잡으려고 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특히 이 시대 성경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하고 있는 성경공부를 마치면 마치 더 이상 알 것이 없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그 성경공부라는 것이 그저 성경의 문자를 아는 것에 불과한데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로마에 있는 형제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로마서를 너희에게 보내는 이유는 너희가 들은 그 복음이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과 같이 계속해서 생각이 나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빌립보서의 말씀과 같이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야 합니다.

 

성도와 가라지의 차이입니다

가라지는 교회 안에서 자기들이 문자적으로 알고 있는 성경을 다 아는 것으로 생각하고 이제 행위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내가 알고 있는 복음을 계속해서 다시 생각나게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지식으로 차게 하려고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분명한 것은 구원은 이미 받았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해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분명하게 단회적인 사건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육체를 입고 있다는 것을 늘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 영이 주님의 날에 부활을 할 때까지 우리는 이 구원을 잡으려고 좇아가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성도는 이렇게 살아갑니다.

내가 복음을 다 들었습니까? 그것으로 끝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제 로마서 강해를 거의 마치고 있습니다. 사실 이 로마서 강해를 전부 듣고 깨닫고 있는 성도님들은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도님들은 이제 더 이상 듣지 않아도 성경을 스스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구원은 받았습니다.

그럴지라도 우리는 육신을 입고 있다는 것을 늘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계속해서 들어야 합니다. 이렇게 생각나게 함으로 해서 우리는 더욱 든든히 믿음에 설 수 있습니다. 육체의 고난이 오더라도 우리는 믿음으로 든든히 서 있으면서 소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도 빌립보서를 통해서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분명하게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고 있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복음을 들었습니까? 그리고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까? 저도 성도님들이 그렇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어떻게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구원의 확신이 있을지라도 우리는 푯대를 향하여 계속해서 가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렇다면 우리는 그대로 따라가야 합니다.

 

사도행전 19:8절을 보겠습니다. (220)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

 

복음입니다

아무나 이 복음을 전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은 종교의 자유가 있어서 마치 아무나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편지에서 교제를 해서 너무도 잘 알고 있듯이 이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지극히 적습니다.

 

배짱이 있어야 합니다.

정말 자기 마음에서 조금이라도 요동을 하고 있다면 그는 복음을 전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확신이 없이는 어느 누구도 복음을 전할 수 없습니다. 어느 정도 확신이 있어야 하는가 하면 자기 목에 칼이 들어와도 복음이 옳다는 것을 전해야 합니다.

 

지금은 너무도 평안한 때입니다

그러나 초대교회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때였습니다. 그때는 우리가 역사나 성경을 통해서 너무 잘 알고 있듯이 많은 사람들이 이 복음을 전한다는 그 이유만으로 죽임을 당했습니다. 하나님부터가 이 세상에 오셔서 이 복음을 전하다가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를 인하여 더욱 담대히 대강 너희에게 썼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도 바울에게 주신 은혜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은 것이 은혜입니다 그 은혜를 받은 사도 바울이 더욱 담대히 대강 너희에게 쓴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전쟁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일은 영적인 전쟁입니다 그 전쟁에서 우리는 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으로는 분명히 우리가 구원을 받지만 육체적으로는 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충분히 깨닫고 있습니다.

 

안 믿습니다.

누가 믿을 수 있습니까? 사도 바울이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이 서신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래도 그때는 사도들이 있어서 복음을 바로 전하는 자들이 있어서 로마에 있는 성도들이 복음을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사실 이 복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말씀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제까지 로마서 말씀을 들었지만 사실 우리의 이성으로는 어렵습니다.

 

사람들이 이해합니까?

절대로 이해하지도 않고 깨닫지도 못 합니다. 사실 이 복음을 전해보시기 바랍니다. 별 미친놈이 다 있다고 말할 것이 분명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저에게 그렇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모든 목사들이 다 틀렸고 너만 맞는다고 이야기를 하느냐고 웃기지 말라고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가 이제까지 들은 복음입니다 이 시대 목사들이 말하는 것과는 전혀 반대의 말씀이라는 것을 우리가 들었습니다. 당연히 이 말씀을 기독교단체에서 보면 이단이라고 공격을 할 것이 분명합니다. 구원의 확신이 없이는 이 복음을 전할 수 없습니다.

 

선함이 가득해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지식으로 차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전하고 싶어도 전할 수 없는 것이 복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도 알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를 인하여 더욱 담대히 대강 너희에게 쓴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사실 이제 복음이 막 전해지고 있는 때입니다 이제까지 어느 누구도 말하지 않았던 복음입니다 이 영의 일을 전할 때 과연 몇 사람이나 받아들일 수 있습니까? 사람의 이성으로는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율법주의입니다

누가 법을 안 지켜도 된다는 우리말에 수긍을 할 수 있습니까? 담대하지 않고는 전할 수 없는 것이 복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았다고 하면서 그 은혜로 인하여 더욱 담대히 대강 너희에게 쓴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쉽게 받아들입니까?

모든 사람이 받아들일 수 있습니까? 복음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주 극소수위 사람만이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내가 더욱 담대히 대강 너희에게 쓴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타협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아주 작은 것으로 타협을 하는 순간 우리는 복음에서 멀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저 역시도 비난을 받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어느 사람은 전화를 해서 너만 복음을 아느냐고 따지고 있습니다. 저라고 왜 그들이 좋아하는 말을 하고 싶지 않겠습니까?

 

세상이 반대를 합니다.

어느 세상이 반대를 하는가 하면 먼저 교회라는 세상이 반대를 하고 또 진짜 세상도 반대를 합니다. 그것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담대하지 않으면 이 복음을 전할 수 없습니다. 사실 이 시대는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했던 때보다 더 상황이 안 좋습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때는 로마라는 강대국에 의해서 고난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자기 생명까지도 잃었습니다. 그러나 복음에 대해서 이단이라고 할 사람은 거의 없었던 때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당시 유대교 이상으로 종교가 되어서 우리가 전하는 복음을 어느 누구도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목사 만 명입니다.

그 중에 한 사람이라도 이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있다면 담대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들은 모두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분명히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하여 할례의 수종자가 되셨다는 말씀을 보고도 율법을 지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담대해야 합니다.

담대하지 않고 이 복음을 전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솔직히 사람의 말로는 우리가 백번 지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을 가지고 서로 의견이 충돌이 되면 지게 되어 있습니다. 저 역시도 그들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때로는 화가 나지만 그래도 참으면서 이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문자입니다

성경에 있는 문자를 가지고 계속해서 집요하게 이야기를 하면 더 이상 할 말이 없게 됩니다. 성경에 있는 문자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는데 무슨 할 말이 있습니까? 그러나 우리에게는 선함이 가득하고 또 모든 지식이 있기 때문에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사실 선지자들이 복음을 전할 때 이스라엘이 어떻게 했습니까? 속된 말로 하면 선지자들은 한 마디로 또라이 입니다. 그런 복음을 전하려면 담대하지 않고는 안 됩니다 누가 들었습니까? 한 사람도 듣지를 않았다고 성경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을 우리가 알고 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선지자들이 어떻게 이 성경을 기록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정말 편하게 이 복음을 듣고 있습니다. 그러나 선지자들은 이 성경을 쓰면서 한 마디로 미친놈이라는 말을 들을 각오를 하면서 성경을 기록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사도 바울이기에 내가 담대히 대강 너희에게 썼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교제한 로마서입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들에게는 한 마디로 미친놈이라는 소리를 듣게 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이 로마서를 보면서 도무지 무슨 말인 줄도 모르게 되어 있습니다. 저 역시도 그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담대하게 이 로마서 강해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 마음까지도 하나님께서 역사를 하신다고 믿고 있습니다.

로마서 15:16절을 보겠습니다. (260)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군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그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심직하게 하려 하심이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은혜를 내게 주신 것은, 나로 하여금 이방 사람에게 보내심을 받은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게 하여,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방 사람들로 하여금 성령으로 거룩하게 되게 하여, 하나님께서 기쁨으로 받으실 제물이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그는 은혜를 입은 자라고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은혜를 입은 자입니까?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하여 할례의 수종자가 되심으로 해서 자기 조상들에게 하신 약속을 견고케 하심으로 구원을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사도 바울이 구원을 받음으로 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었고 또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가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신 은혜로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그가 이 로마서를 써서 보내는 이유에 대해서 아니 타당성에 대해서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에 있는 성도들이 사도 바울이 보내는 편지를 받을 때 그 정통성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가 이방인들을 위하여 그리스도의 일군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행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일군입니다

이 시대 목사들이 모두가 다 자기들은 그리스도의 일군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성경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설교를 한다고 해서 그가 그리스도의 일군이 된 것으로 생각을 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성경입니다

복음과 율법의 싸움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사람은 복음에 복종치 아니하고 복음에 복종하는 성도는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는 것을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이 율법과 복음에 대해서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입니다

두 일군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일군이 있고 사단의 일군이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이성으로는 이 두 일군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사단의 일군을 보고 그리스도의 일군으로 오해를 하고 있고 그를 따라가다가 사망에 이르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종입니다

율법의 종이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있습니다. 마귀의 종이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 이 두 종이 있다는 것을 성경에서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자기들의 이성으로 생각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그래서 그가 예수 그리스도의 종입니까? 귀신도 하나님은 한 분이라고 떠들고 있습니다. 거듭 말씀을 드리지만 교회 안에서 율법을 단 한 가지라도 지키고 있다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일군이 아니라 사단의 일군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모두가 율법을 지키면서 자기들이 그리스도의 일군으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11:4절을 보겠습니다. (297)

만일 누가 가서 우리가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

 

사단의 일군이 있습니다.

그리고 의의 일군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사단의 일군이 누군지 그리고 의의 일군이 누군지를 가르쳐 주고 있지만 성경을 보면서도 그들의 눈이 가려져 도무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왜 깨닫지 못하는가 하면 사람의 이성에는 사단의 일군이 의의 일군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일군입니다

주인이 시키는 일을 합니다. 우리가 회사를 들어갑니다. 그리고 그 회사에서 월급을 받습니다. 일군으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일군으로 일을 하고 있습니까? 사장이 시키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사장이 시키는 일을 하지 않을 때는 그 일군을 내어 쫓아 버리게 되어 있습니다.

 

고린도후서의 말씀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문자적으로는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그들이 누가 사단의 일군인지 그리고 누가 의의 일군인지는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앞에서 이렇게 다 가르쳐 주고 있는데도 누가 사단의 일군이라는 것을 모르고 그저 정통이라고 하는 교회 안에 있으면 의의 일군인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단의 일군입니다

사도 바울이 전파하지 않은 다른 예수를 전파하는 자입니다 너희가 받지 않은 다른 영을 전하면 사단의 일군입니다 다른 예수를 전파하는 자는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영에 대해서는 사실 거의 모른다 해도 틀리지가 않습니다. 한 가지는 분명하지만 다른 한 가지는 솔직히 말씀을 드려서 분명하지가 않습니다.

 

그 다음입니다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다른 복음만 바로 알아도 누구 사단의 일군인가를 아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갈라디아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다른 복음을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할례입니다

그것을 받게 하는 것을 다른 복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할례가 율법을 대표하는 율법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613가지 율법을 대표하는 율법이 할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율법입니다

율법을 지키게 하는 것이 바로 다른 복음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율법을 지키게 하고 있다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일군이 아니라 사단의 일군이라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이것이 깨달아지지가 않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그들 모두가 사단의 종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그는 다른 복음을 전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다른 복음을 전하고 있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일군이 아니라 사단의 일군이라고 고린도후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성경에서 다 가르쳐 주고 있지만 소경이 되어서 성경이 안 보이고 있습니다. 아니 율법의 종이 되어서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른 복음입니다

율법 613가지 중에 어느 한 가지라도 지키고 있다면 그는 다른 복음을 전하고 있는 사단의 일군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율법을 지키면서 의의 일군으로 가장을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이성에는 율법을 지키는 것이 옳기 때문에 이 사단의 일군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일군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면 그는 율법을 지키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율법주의가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 안에 들어오자 사도 바울은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가서 그 문제를 가지고 결론을 냈습니다. 그리고 우리 이방인들이 율법을 지키는 것이 옳지 않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의 제사장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를 시작하면서부터 이 복음에 대해서만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쓴 성경을 보는 사람들이 다른 복음으로 만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는 갈라디아서를 보면서도 다른 복음이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고 율법을 지키라고 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2:5절을 보겠습니다. (378)

너희도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제사장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를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의 일군으로 하는 제사장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제사장이 되어서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그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심직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제사장이 아닌 복음의 제사장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제사장입니다

우리가 구약을 보아서 잘 알고 있습니다. 제사장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성전을 섬기는 일을 하는 사람을 제사장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전에서 하나님께서 정하신 제사를 하는 사람을 제사장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말씀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를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제사장은 성전을 섬기는 일을 했습니다. 그러면 복음의 제사장은 무슨 일을 합니까?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서 그 복음을 전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제사장은 제사를 드립니다.

구약의 제사장들은 이스라엘백성들이 제물을 가지고 오면 그 제물을 가지고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 제사들은 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시는 일에 대한 예표입니다 모든 제사에서 제물이 있는데 그 제물을 드릴 때 주님의 구속의 일을 의미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레위 인을 제사장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들이 성전에서 제사를 드릴 때 하는 모든 일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그 제사의 모형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제사를 드리면서도 그것을 행위로만 했지 실제 그 안에 담겨져 있는 뜻을 전혀 몰랐습니다.

 

그래서 호세아 선지자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제사장은 제사를 드리면서 그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원치 아니하시는 제사에만 열심을 냈습니다.

 

그래서 말씀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를 복음의 제사장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성전에서 드리는 제사에만 열심을 냈습니다. 그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전혀 발견하지 못 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런 제사장이 아니라 성전을 알고 있는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있는 제사장이라는 말씀입니다

 

구약의 제사입니다

그리고 신약의 예배입니다 무엇이 다르다고 생각을 합니까? 이 시대 모든 교회가 예배에 얼마나 열심을 내고 있습니까? 그러나 그 예배를 어떻게 드리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들을 찾고 계시는데 이 시대 예배는 종교의 틀에 의해서 드려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복음이 전해져야 합니다.

그 복음이 전해짐으로 해서 이방인인 우리가 하나님께 제물로 드려져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십자가에서 죽을 때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신령한 제사입니다

우리는 구약의 이스라엘과 같은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이 아닙니다. 신령한 제사라고 하니까 이 시대 예배를 자기들의 이성으로 아주 거룩하게 드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것을 가지고 신령한 제사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신령과 진정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예배를 하고 있는 성도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 일에 있어서 제사장으로서 우리 이방인들을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제사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그저 모든 것을 사람의 이성에 좋은 대로 하고 있고 성경을 문자적으로 보면서 예배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셔야 합니다.

우리 인생들을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십니까? 절대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는 신령한 제사를 드리라고 하니까 자기들이 육체로 예배를 거룩하게 하는 것으로 마치 신령한 제사를 드리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이 드리는 그런 제사는 하나님께서 받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말은 참 잘 합니다.

자기들이 예배를 드리고 나서 하나님께서 기쁘시게 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그렇게 말을 한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기쁘시게 받느냐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자기들이 그렇게 말을 한다고 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신령한 제사입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진리로 인도함을 받는 제사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성령의 감동을 받고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면 갈라디아에서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서냐고 묻고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는 사람은 성령의 감동을 받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육체입니까?

그것으로 하는 모든 종교적인 행위는 하나님께서 받으시지 않습니다. 썩어 없어질 것을 하나님께서 왜 받으십니까? 반드시 우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고 그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서 받으심직 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가 제물로 드려져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면 성령이 우리에게 오시고 성령의 임도하심에 따라 우리 안에 거룩한 영이 탄생이 되고 그 영을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영의 일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영의 일에 있어서 자기를 복음의 제사장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예수 그리스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는 제물이 되게 하고 있습니다. 그것으로 말미암아 성령이 우리 안에 오시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 영이 탄생이 됩니다. 그 영을 하나님께서 받으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