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너희는 귀를 기울리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로마서 강해 - 구원론

로마서 강해 155강, 사도 바울입니다

윤주만목사 2019. 2. 17. 19:31


로마서15:17절을 보겠습니다. (26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자랑하는 것이 있거니와

 

사도 바울입니다

그는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의 일군이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우리가 성경을 보아서 잘 알고 있지만 신약 성경의 거의 대부분을 사도 바울이 기록을 했습니다. 이 모든 성경이 우리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그리고 이방인들에게 서신을 보내는 것으로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방에 복음이 전파 되었습니다.

물론 주님은 우리 이방에 빛을 비춰주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주님이 이제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셔서 하늘에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사도들을 부르시고 그들로 하여금 이방에 복음을 전하게 하심으로 해서 우리가 지금 이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입니다

처음부터 우리 이방인들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뜻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이 세상에 보내 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하여 할례의 수종자가 되셔서 율법을 지키심으로 해서 우리 이방인들이 율법을 지키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게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하지만 어떻습니까? 로마서 15장을 이제까지 수많은 신학자들이 보았지만 그것을 바로 풀고 있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자기들이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자기들의 행위로 영광을 돌리면 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로마서 158절을 모르면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 수 없습니다. 영광을 돌리는 것은 고사하고 교회 안에서 평생을 악만 행하다가 저주를 받고 만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성경을 전혀 모르면서도 자기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고 구원을 받았다고 자신 있게 대답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면 안 됩니다

우리 이방인은 율법을 지키면 안 됩니다 왜 율법을 지키면 안 되는가를 사도 바울이 로마서 158절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바로 푸는 사람이 없어서 이 시대 이방인들이 모두가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안 믿는 사람입니다

주님께서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하여 할례의 수종자가 되셨다는 것도 모르는 그들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습니까? 아니 믿고 싶어도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는 그들은 입으로는 주여 주여 하고 있지만 실상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아니라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은혜라고 말씀합니다.

무엇이 은혜라는 것입니까? 그저 입에 바른 말로 은혜라고 합니까? 그것이 아니라 우리 이방인들을 위해서 주님이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하여 할례의 수종자가 되셔서 율법을 완전케 하심으로 우리가 율법을 지키지 않고도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은혜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 시대는 이 은혜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무슨 은혜를 받았는지도 모르는 그들이 그저 입으로는 은혜라는 말을 달고 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나에게 은혜를 주신 자가 어떤 은혜를 주셨는지도 모르고 은혜라고 하는 것은 그를 멸시하는 말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우리 이방인들이 율법을 지키지 않고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의 어느 종교도 이것에 대해서 말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고 있는 유일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이렇게 구원을 해 주시고 있습니다. 우리가 한 일이 하나도 없이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구속을 이루심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그는 이방의 제사장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군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그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심직 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일군입니다

그가 어떻게 이방에 복음을 전했는가를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정말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잘 행해서 이 시대 우리가 성경을 보고 그 안에서 복음을 보고 깨달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영의 생명을 가진 자로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이방인입니다

우리는 제물로 드려져야 합니다. 어떤 제물로 드려지고 있는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서 죽어야 합니다. 그렇게 죽은 성도에게 성령이 오셔서 그가 진리 가운데로 인도를 하심으로 해서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것을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받으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도 받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 이방인들 받으시겠습니까? 이 시대는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구원에 대해서 너무도 무지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치 자기들을 받으시는 것과 같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아니 자기들의 행위를 받으시는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예배를 거룩하게 드리고 있습니다. 누가 보아도 하나님이 받으시는 것과 같이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정성껏 준비한 헌금을 하고 있습니다. 그 헌금을 교회에 하고 있으면서도 하나님이 받으신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것들을 받으시지 않습니다. 반드시 거룩하게 된 것만을 받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육체는 어떻게 해도 거룩하게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것으로 거룩하다고 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영입니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영입니다 그 영을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거룩하게 된 영을 받으시는 것이지 우리의 육체를 받으시는 것이 절대로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영의 일을 모르면 자기 육체를 가지고 하려다가 모두가 사망에 이른다는 것을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이 영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육체는 더럽습니다. 그래서 반드시 죽어서 썩어 없어진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우리에게 오심으로 진리로 인도함을 받아서 우리 안에 거룩하신 영이 거하시고 있습니다. 이 영을 하나님께서 받으시겠다고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자기가 어떻게 그리스도의 일군이 되어서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행하고 있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제사장 직무를 행함으로 해서 우리 이방인들을 제물로 드리고 있습니다. 그 제물로 드리는 일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심직 하게 하려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직분입니다

그는 이방인의 제사장으로서 일을 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 해서 이방인들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하나님께서 받으심직 하게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일을 함으로 해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자랑할 것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의 제사장입니다

그 일을 함으로 해서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고 있습니다. 그 일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가를 사도 바울 스스로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한 영혼이 구원을 받는 그 일을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일군이 된 사도 바울은 자기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한 영혼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기적과는 같은 일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이 시대 목사입니다

로마서 15장을 보고 또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이라고 하니까 자기들이 하고 있는 종교인의 로서의 삶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고 복음을 전한다고 하면서 그 일을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알아야 합니다.

복음을 모르면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오해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단순하게 오해를 하는 것으로 끝이 나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그 일로 인하여 자기 생명이 죽고 그리고 다른 사람들까지 죽이는 일을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일이 무엇인가 하면 하나님의 일이라고 생각을 하는 그 일로 발생이 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6:29절을 보겠습니다. (15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아버지의 일입니다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혹시라도 잊을 수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계속해서 이 말씀에 대해서 상기를 해야 합니다. 우리는 인생인지라 영의 일을 아주 쉽게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중요한 말씀은 계속해서 상기를 함으로 해서 잊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아버지의 일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의 일군이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사도 바울이 이방인의 사도가 되어서 하나님의 일을 한 것은 분명히 맞습니다. 그러나 이방인들이 아버지의 일을 모르고 있다면 아니 이방인들이 아버지의 일을 하지 않고 있다면 사도 바울이 한 모든 일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했습니다.

그것을 아버지의 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우리 이방인이 하나님의 일을 모르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있다면 사도 바울이 한 모든 일은 그저 인간적인 수고 밖에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입니다 그 분이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모든 일을 믿는 것이 아버지의 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기본을 모르고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그들은 말 합니다

자기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말을 들어보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일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로마서158절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하여 할례의 수종자가 되셨다는 그 말씀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성도만이 이 시대도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목사라고 하면서 자기들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목사입니까?

그가 교회 안에서 성경을 보고 말씀을 전한다고 해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하여 할례의 수종자가 되셨다는 뜻도 모르는 그들이 어떻게 예수 안에 있을 수 있고 그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일을 알아서 할 수 있겠습니까?

 

아마도 그럴 것입니다

제가 모든 사람이 쓴 로마서 강해를 본 것이 아니지만 로마서 158절을 바로 풀고 있는 사람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말씀만 바로 풀어도 그는 율법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시대는 그런 목사가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안에 있습니다.

어떻게 예수 안에 있는가 하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하여 할례의 수종자가 되셨다는 것을 알고 믿고 있습니다. 그것을 알고 있는 사도 바울이기 때문에 갈라디아서를 통해서 율법에 대해서 아주 강하게 말씀을 할 수 있습니다. 너희가 성령을 받는 것이 율법의 행위로서냐 듣고 믿음으로서냐고 묻고 있습니다.

 

예수 안에 있습니까?

먼저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신 구속의 일을 알고 믿어야 예수 안에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가 이 세상에 오셔서 무슨 일을 하셨는가를 전혀 모르고 그저 성경의 문자를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고 자기들이 종교 생활을 하는 것을 보고 예수 안에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목사입니까?

먼저 하나님의 일을 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성도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합니다. 그것은 먼저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일입니다 그리고 우리 복음을 가지고 있는 성도들은 이 복음을 전해서 다른 이방인들도 제물로 드려지게 해서 그가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서 하나님께서 받으심직 하게 해야 합니다.

 

빌립보서 2:16절을 보겠습니다. (320)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도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나로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

 

자랑하는 것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가 복음의 제사장으로서 한 일에 대해서 자랑할 것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인간적으로 자랑을 하겠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그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심직 하게 한 그 일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자랑할 것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서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날에 나로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한다고 말씀을 하니까 마치 사도 바울이 신체의 구원에 대해서 말씀을 하는 것으로 오해를 해서는 안 됩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성경에서 영의 일에 대해서 먼저 기초를 세우고 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이런 말씀을 보더라도 우리는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독려의 말씀입니다.

빌립보에 있는 성도들에게 구원을 받으라고 하는 말씀을 하면서 독려를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너희가 구원을 받으면 좋겠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가정으로 해서 너희가 구원을 받으면 나의 달음질도 헛되지 않고 나의 수고도 헛되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헛된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빌립보에 있는 성도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구원을 받은 성도들에게 너희가 내가 전하는 생명의 말씀을 듣고 구원을 받으면 내가 자랑할 것이 있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간적으로 지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솔직한 심정으로 나의 달음질도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나로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가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에 있는 성도들에게 강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너희가 구원을 이룸으로 해서 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에 자랑할 것이 있으면 좋겠다는 의미의 말씀입니다 실제 그리스도 예수의 날에 자랑한다는 말씀이 아니라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가정의 말씀입니다

 

성경은 영의 일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구원은 분명히 영이 구원을 받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빌립보에 있는 성도들에게 마치 육체가 구원을 받는 것과 같이 말씀을 하면서 그리스도 예수의 날에 내가 자랑을 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빌립보에 있는 성도들이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룸으로 해서 가정을 해서 그렇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방인의 구원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 일에 대해서 자랑할 것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빌립보서에서는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도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나로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입니다

우리 이방인이 구원을 받은 것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우리 이방인의 제사장의 되어서 우리를 제물로 드려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고 그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심직하게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일에 대해서 자랑하는 것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자랑한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 이방인들이 복음을 듣고 하나님께 제물로 드려져서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그것을 자랑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는 그것에 대해서 가정을 해서 자랑을 했으면 좋겠다는 의미의 말씀입니다

 

격려입니다

그리고 빌립보서는 구원을 이루라는 의미의 말씀입니다 너희가 구원을 받으면 마치 그리스도 예수의 날에 내가 살아서 자랑할 것이 있는 것과 같이 기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는 것에 대해서 인간적으로는 이 정도로 자랑을 삼았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구원입니다 이 복음을 누가 들어서 구원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주님의 말씀과 같이 한 영혼이 천하보다 더 귀합니다. 그런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을 보면서 사도 바울은 자랑을 하고 싶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자기가 자랑할 것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어떠한 구원을 받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런 성도만이 사도 바울과 같은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정말 우리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는 그 일에 대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일군으로서 인간적으로도 자랑스럽게 일을 했습니다.

 

잘 알아야 합니다.

지금 기독교는 사람이 넘쳐 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하는 말씀이 실감이 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영혼이 천하보다 더 귀하다는 것을 알고 그 한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 얼마나 어렵다는 것을 알면 사도 바울과 같은 마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만 명 중에 하나입니다

아니 십만 명 중에 하나가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자랑을 하고 싶지 않겠습니까? 아니 자랑할 것이 있지 않겠습니까? 사람들은 초대 교회를 생각하고 이 시대 기독교를 생각하다보니까 이 말씀이 실감이 나지를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자기가 어떻게 복음을 전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자랑할 것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의 마음입니다

사도 바울이 자기가 그리스도의 일군으로 일을 해서 우리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은 것이 있어서 자랑을 하겠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인간의 마음을 가정으로 해서 자랑을 했으면 좋겠다는 말씀입니다 자랑할 것이 있지만 사도 바울은 자랑을 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알기 때문에 자랑할 수 없었습니다.

 

로마서 15:18절을 보겠습니다. (260)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케 하기 위하여 나로 말미암아 말과 일이며 표적과 기사의 능력이며 성령의 능력으로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공동번역을 보겠습니다.

이방인들을 하나님께 복종시키신 분은 그리스도이시고 나는 다만 그분의 일꾼 노릇을 했을 따름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이방인의 구원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방의 제사장으로 하나님의 일을 함으로 해서 이방인들을 제물로 드려서 그들이 거룩하게 되어 받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일에 대해서 가정을 해서 자랑하고 싶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이성이 아니라 그렇게 했으면 좋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사도 바울이 누구입니까? 그리고 그가 어떻게 이방에 복음을 전했습니까? 우리는 성경에서 그가 어떻게 이방에 복음을 전했는가를 보아서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그가 사도로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일을 한 것에 대해서는 자랑할 것이 있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도 그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자기를 자랑하고 싶어서 하고 있는 말씀이 아니라 이제 이 복음이 이방에 전해지고 나면 또 사도 바울과 같은 사람이 나와서 이방에 계속해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인간적입니다

그는 분명히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있어서 자랑할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이제 다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인간적으로는 한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 자랑할 것이 있는데 영적으로는 이방인들을 하나님께 복종시키신 분은 그리스도이시고 나는 다만 그분의 일꾼 노릇을 했을 따름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그는 분명히 인간적으로는 자랑할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이방인들이 어떻게 구원을 받았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이방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게 복종시키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가 사도로서 일을 했습니다. 그것은 분명히 자랑할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방인이 구원을 받은 것은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의 일군으로서 일을 해서 그들이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 이방인들을 순종케 해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입니다

우리는 복음에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가 복음에 순종할 수 있었던 것은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해서가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간적으로는 사도 바울이 사도로서 일을 하는 것으로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자랑할 것이 있다고 말씀을 하면서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우리 이방인들을 순종케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그 복음에 순종케 하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해서 이방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받는 그 일에 있어서는 인간적으로는 자랑할 것이 있지만 만약에 주님께서 우리 이방인들을 순종케 하지 않았다면 사도 바울의 일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합니다.

분명히 인간적으로는 자랑할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복음에 순종케 하신 그 일로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그 일 외에는 아무 것도 자랑치 않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역사하신 것 외에는 감히 말하지 않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자랑할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자랑하지 않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어떻게 복음을 전하는 가를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분명히 인간적으로는 자랑할 것이 있지만 우리 이방인들이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를 알고 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케 하기 위하여 나로 말미암아 말과 일이며 표적과 기사의 능력이며 성령의 능력으로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한다고 말씀합니다.

 

에베소서 3:7절을 보겠습니다. (312)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꾼이 되었노라

 

사도 바울입니다

그는 이방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인간적으로는 그가 어떻게 수고 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구원에 있어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라는 것을 한 시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분명히 인간적으로는 사도 바울이 자랑할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말씀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케 하기 위하여 나로 말미암아 말과 일이며 표적과 기사의 능력이며 성령의 능력으로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우리가 복음을 전한다 해도 인간적인 마음이 아니라 사도 바울과 같이 감히 말하지 않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구원입니다

물론 복음을 전하는 자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복음을 전하는 자도 그의 능력이 역사를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또한 듣는 자도 성령이 오셔서 역사를 하지 않으면 복음에 순종할 수 없습니다. 이 모든 일이 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다는 것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말씀합니다.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꾼이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로마서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케 하기 위하여 나로 말미암아 말과 일이며 표적과 기사의 능력이며 성령의 능력으로 역사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입니다

그것에 대해서 에베소서와 로마서를 통해서 말씀을 해 주고 있습니다. 내가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된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리고 내가 복음을 전해서 이방인이 구원을 받는 것 역시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역사하신 것 외에는 말하지 않겠다고 말씀합니다.

 

인간적입니다

자랑할 것이 있습니까? 그럴지라도 우리는 자랑을 해서는 안 됩니다 왜 안 되는가 하면 내가 복음의 일군이 된 것도 그리스도께서 역사를 하셔서 하나님의 은혜로 복음의 일군이 되었고 그리고 내가 복음을 전함으로 해서 누군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해도 역시 그에게 성령을 보내주셔서 역사를 하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누가 말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감히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인간적으로 말을 하고 싶습니까? 그럴지라도 우리는 말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왜 말을 해서는 안 되는가 하는 것을 에베소서와 로마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입니까?

늘 말씀을 드리지만 아무 것도 아닙니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꾼이 되게 하시지 않았다면 누가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까? 어느 누구도 복음을 전할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자기를 소개하는 말씀이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당시 인텔리에 속해 있었습니다. 성경도 많이 알고 있었고 외국어도 많이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을 정도로 도덕적으로도 아주 잘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만약에 주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아니 주님께서 그를 부르시지 않았다면 그는 복음을 전하는 자로 사는 것이 아니라 바리새인으로서 평생 교회 안에서 악만 행하다가 죽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의 말대로 그는 죄인 중에 괴수로 살다가 죽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주님이 그를 부르시고 만나 주신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성경에서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사도 바울이기 때문에 인간적으로는 분명히 이방의 제사장으로 일을 해서 그들의 구원을 받는 것을 보면 자랑할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알기 때문에 그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입니까?

복음을 전하는 자로부터 복음을 들었습니까? 우리는 할 말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복음을 전하는 자로 살아도 그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고 또 그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긍휼하심을 입었어도 역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내가 감히 말하지 않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입니다

우리는 죽은 자라는 것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 죽은 자는 감히 말할 수 없다는 것을 늘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내가 비록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꾼이 되었다 해도 우리는 감히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이 복음의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은 더욱 그렇습니다.

 

자랑할 것이 있습니까?

그럴지라도 감히 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분명히 인간적으로는 자랑할 것이 있습니다. 인간적으로는 그것이 나쁘지 않습니다. 그것은 실제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복음을 전하는 자는 우리가 어떻게 은혜를 입었는가를 알고 있기 때문에 감히 말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말씀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케 하기 위하여 나로 말미암아 말과 일이며 표적과 기사의 능력이며 성령의 능력으로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복음을 전하지도 않는 자들이 자기가 한 일에 대해서 자랑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는 자랑하지 않습니다.

자랑할 것이 있어도 자랑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복음을 전하지도 않는 자들이 여러 가지 모양으로 자기가 한 일에 대해서 자랑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도 바울도 자랑할 것이 있지만 감히 말하지 않겠다고 말씀을 하는데 이 시대는 목사들이 간증을 더 많이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그 외에는 아무 것도 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설령 내가 복음을 전한다 해도 우리가 한 일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됩니다 왜 안 되는가 하면 그것 역시 우리의 의가 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역사하지 않았다면 할 수 없는 일을 하고 나서 마치 내가 한 일과 같이 이야기를 하는 것이 모순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로마서 15:19절을 보겠습니다. (260)

이 일로 인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

 

공동번역을 보겠습니다.

나는 그분에게서 기적과 놀라운 일을 할 수 있는 힘 곧 성령의 힘을 받아 예루살렘에서 일리리쿰에 이르기까지 두루 다니면서 말과 활동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남김없이 전파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그는 이방의 사도입니다 그는 그것을 로마서에서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군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그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심직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일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그는 인간적으로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있어서 자랑할 것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일이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케 하기 위하여 나로 말미암아 말과 일이며 표적과 기사와 능력이며 성령의 능력으로 역사하셔서 한 일이기 때문에 내가 감히 말하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주님이 역사하신 것만 말을 하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케 하기 위하여 나로 말미암아 말과 일이며 표적과 기사의 능력이며 성령의 능력으로 역사하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일로 인하여

그러니까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케 하기 위하여 나로 말미암아 말과 일이며 표적과 기사의 능력이며 성령의 능력으로 역사하신 것으로 말미암아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방인들을 순종케 하시고 있습니다.

누가 그렇게 하시고 있는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순종케 하시기 위해서 사도 바울로 말과 일이며 기사와 능력이며 성령으로 역사를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역사를 하심으로 복음을 전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내가 그냥 깨달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3장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14장부터 해서 이제 성도들의 삶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렇게 복음을 깨달은 것은 성령의 능력으로 역사를 하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 시대 역시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 로마서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이제까지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로마서를 바로 풀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로마서의 시작입니다

사도 바울이 어떻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이 복음은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로마서 13장까지 이 복음에 대해서 계속해서 여러 가지 비유를 통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이 시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자가 있습니까? 아니 이제까지 기독교사를 보더라도 복음을 전하는 자가 있었습니까? 사도 바울은 이 일로 인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입니다

그리고 다른 복음입니다 이 시대는 복음이 무엇인가 다른 복음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로마서를 강해를 하면서 계속해서 복음과 다른 복음에 대해서 말씀을 했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남김이 없이 전했다는 말씀입니다

모든 복음을 다 전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시대는 복음을 전하는 자가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일로 인하여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는 복음이 아니라 모두가 다른 복음을 전하면서 자기들이 복음을 전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미 이 로마서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로마서를 보면서도 복음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다 알아서 전해야 하는데 복음의 근처에도 오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어떻게 전해야 하는가 하면 편만하게 전해야 합니다. 우리는 할 수 있는 대로 지혜를 구하면서 이 복음을 알아서 사도 바울의 말씀과 같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방의 교회는 사도들이 죽고 난 후에 급속하게 종교가 되어서 다른 복음을 전하고 있고 복음은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편만하게

성경의 각주를 보면 채웠다고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그냥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다는 말씀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복음을 남김이 없이 전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부 전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전부 전했기 때문에 이방인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부럽습니다.

솔직히 말씀을 드려서 초대 교회에 있는 성도들이 부럽습니다. 저는 늘 말씀을 드리지만 많이 부족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도 사도 바울과 같은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더욱 깊은 복음의 비밀을 깨달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듣습니다.

그보다 더 큰 은혜가 어디 있겠습니까? 제가 복음을 전한다고 하지만 늘 이 부분을 생각할 때마다 우리 성도님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조금 더 편만하게 복음을 전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을 생각할 때마다 마음에 짐이 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복음을 편만하게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저는 늘 말씀을 드리지만 저 보다 더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싶습니다. 아니 저 역시도 그 사람에게서 복음을 듣고 싶습니다.

 

구원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 일에 대해서 모든 것을 들을 수 있다면 그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복음에 대해서 어느 정도 구원을 받을 수 있을 정도를 들었기 때문에 더욱 더 그렇다는 것을 모두가 느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늘 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보면서 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찾기를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다 할 수 없을지라도 성도님들이 지혜를 구하면 하나님께서는 주실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저는 정말 이렇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우리에게 편만하게 전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행복할 것 같습니다.

 

로마서 15:20절을 보겠습니다. (260)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로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나는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이름이 알려진 곳 말고, 알려지지 않은 곳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을 명예로 삼았습니다. 나는 남이 닦아 놓은 터 위에다가 집을 짓지 않으려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그는 이방에 복음을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일군으로서 예루살렘으로부터 해서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정말 한 곳에 가서도 오래 머물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복음입니다

우리는 구원을 받을 정도까지 복음을 들어야 합니다. 아니 이 세상을 살면서 계속해서 복음을 듣기를 사모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 역시도 이 복음을 알기를 사모 했습니다. 구원을 사모하고 영생을 바라고 있는 성도는 당연히 그렇게 하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말씀합니다.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로 힘썼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복음을 전하는 일만 생각을 하면서 살았다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그는 이방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후로 순교를 당할 때까지 이 일에 힘써 왔습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로마서 1013절 말씀입니다 우리가 이 말씀에 대해서는 이미 강해를 통해서 알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단순하게 주의 이름을 부른다고 해서 그가 주의 이름을 부른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누구라는 것을 알고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영원한 생명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바로 이 영생을 얻기 위해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영생의 문제 외에 다른 것을 가지고 주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아니라 그것을 주는 자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씀을 했습니다.

 

영생입니다

이것을 얻기 위해서 우리는 주의 이름을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가라지들은 영생을 얻기 위해서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에게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서 주의 이름을 부르고 있습니다. 실제는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주는 자의 이름을 부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복음이 전해진 곳입니다

그곳에서는 주의 이름을 부르고 있습니다. 왜 주의 이름을 부르고 있는가 하면 주의 이름의 뜻이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시기 때문에 부르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분명히 이렇게 주의 이름을 부르고 있습니다. 이렇게 부를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복음을 듣고 믿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씀을 했습니다.

 

복음이 전해진 곳입니다

그곳에서는 주의 이름을 부르고 있습니다. 영생을 얻기 위해서 주의 이름을 부르고 있습니다. 이미 주의 이름을 부르고 있는 곳에서는 굳이 복음을 전할 필요성이 없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로 힘썼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 목사들이 자기 의를 드러내려고 이 말씀을 인용을 해서 말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주의 이름을 부르고 있는 곳에서는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도 모르는 그들이 그런 말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곳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영생을 위해서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그저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것으로 자기들이 주의 이름을 부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실상은 복음에 복종치도 않으면서 주의 이름을 부른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그가 복음을 전하는 때는 초대교회입니다 이제 막 이방에 복음이 전파가 되던 때입니다 예루살렘교회가 핍박을 받은 후로는 사도들이 이방에 가서 복음을 전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다른 사도들이 복음을 전함으로 해서 주의 이름을 부르고 있는 곳에서는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지 않겠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잘 이해를 해야 합니다.

정말 그때는 한 성령 안에서 역사를 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아서도 잘 알고 있습니다. 신약 성경을 쓴 모든 사도들이나 선지자들이 다 한 성령 안에서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한 성령 안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기 때문에 굳이 다른 사람이 복음을 전해서 주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서 또 복음을 전하면서 시간을 낭비할 필요성이 없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그가 더 많은 이방에 가서 복음을 전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런 그가 이미 복음이 전해진 곳에 다시 가겠습니까? 지금과 같이 다른 복음이 성행을 하는 시대가 아니라 사도들이 한 성령 안에서 역사를 해서 복음이 전해지고 있는 시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떻습니까?

주의 이름을 부르는 곳이 없습니다. 아니 주의 이름을 부르는 곳은 많이 있지만 실상은 주의 이름을 부르는 곳이 아닙니다. 입술로는 분명히 주의 이름을 부르고는 있지만 그들은 주님이 주시는 것을 모르고 사단이 주는 것을 받기 위해 주의 이름을 부르면서 구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사단이 주는 것을 구하기 위해서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실상은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잘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주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 굳이 복음을 전할 필요성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주의 이름을 부르는 곳이 없다는 것을 또한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에 대해서는 이미 로마서 10장에서 말씀을 했습니다.

 

복음을 들었습니다.

반드시 복음을 들은 성도들만이 주의 이름을 부를 수 있습니다. 영생에 대해서만 주의 이름을 부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주의 이름을 부르면서 사단이 주는 것을 구하고 있고 그렇게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실상은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사단의 이름을 부르는 것과 같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목사들입니다

이 세상 말로 하면 상도의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사도 바울은 주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서는 복음을 전하지 않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곳을 가보면 심지어는 같은 건물에 교회가 둘씩이나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세상 적으로 생각을 해도 상도의가 없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어떻습니까?

조금 깨어 있는 목사들은 어떻습니까? 아니 자기의 의를 나타내고 싶어하는 목사들은 어떻습니까? 이 말씀을 생각하면서 자기는 다른 사람이 복음을 전한 곳에서는 복음을 전하지 않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말을 하고 있습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곳이 있습니까?

이 시대는 주의 이름을 부르는 곳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또 복음을 전하는 자가 있습니까? 복음을 전하는 자도 없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생각합니까? 로마서 15장을 보면서 자기들이 다 주의 이름을 부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고 복음을 전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절대 아닙니다.

우리는 이제까지 로마서 15장까지 강해를 들었습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곳도 없고 복음을 전하는 사람도 없다는 것을 아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들이 주의 이름을 부르고 있고 복음을 전하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5:20절 공동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리고 나는 남이 닦아놓은 터전에는 집을 짓지 않으려고 그리스도의 이름이 아직 알려지지 않은 곳에서만 복음을 전하려고 애써 왔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그는 평생을 이방에 복음을 전하면서 살았습니다. 그 일을 마치고는 순교의 제물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정말 잘 보아야 합니다. 당시는 초대교회입니다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고 있었지만 주님의 말씀과 같이 추수할 때가 되었지만 추수할 일군이 적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의 설교입니다

삼천 명이 회개를 하는 역사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실상 이방에 가서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았습니다. 또 사도들이 이방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 있지만 디모데나 디도 같은 사람이 하루아침에 나올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구원은 단회적입니다.

그러나 그 구원을 받기 까지 우리는 복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에베소 교회의 예를 들면 사도 바울이 삼년 동안 밤낮으로 눈물로서 훈계를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가르쳤지만 사도 바울이 가고 난 후에 어떻게 될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군가 구원을 받는 것도 그렇게 힘이 듭니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에서 내가 해산의 수고를 다시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물며 구원을 받는 일도 그런데 그 사람이 복음을 전할 정도가 되려면 어떻겠습니까? 물론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해서 듣고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하나님께서 역사를 하시면 바로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로마서 15장의 말씀을 잘 이해를 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내가 주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서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로 힘썼다고 말씀을 하니까 마치 이 시대를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때는 이제 막 복음을 전하는 때였고 또 이 시대와 같이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가 많았던 것도 아닙니다.

 

공동번역이 잘 번역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사도 바울은 정말 이방에 많은 곳으로 가서 복음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공동번역과 같이 그리스도의 이름이 아직 알려지지 않은 곳에서만 복음을 전하려고 애써 왔다는 말씀이 더 맞는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성경에 쓴 말씀만 보아도 이 말씀이 더 현실적이지 않나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남의 터입니까?

이제 이방에 복음이 전파가 되었던 때입니다 지금과 같은 시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제 막 복음이 전파가 되었기 때문에 더 많은 곳으로 가서 그러니까 그리스도의 이름이 알려지지가 않은 곳에 가서 복음을 전하려고 했던 것이 더 맞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지금과 같은 때가 아닙니다. 그때는 사도들이 모두가 한 성령 안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방에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많은 사람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성령 안에서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그런 때입니다

사도 바울이 굳이 다른 사람이 복음을 전하고 있는 곳에 가서 복음을 전할 필요성이 없었습니다. 지금과 같이 목사마다 서로 이야기를 하는 것이 다 다르다면 사도 바울은 다른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어도 반드시 그곳에서 다시 복음을 전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다릅니다.

그때는 모두가 복음을 전했습니다. 사도들도 복음을 전했고 집사들도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들이 모두가 성령을 받아서 사도가 전하는 복음이나 집사가 전하는 복음이나 같은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이 말씀을 할 수 있습니다. 지금과 같이 목사의 이성에 따라 성경을 보고 전하는 시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더 많은 곳에 복음을 전하고자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남이 복음을 전한 곳에 가서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로 힘썼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복음을 전하는 자가 없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가 없는데도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을 하는가 하면 자기들이 다 복음을 전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복음이 전해지고 있는 곳이 없습니다. 이 로마서의 말씀을 보고 오해를 해서는 안 됩니다 마치 모든 교회가 복음을 전하는 것으로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복음을 가진 자는 아니 주님으로부터 은사를 받은 자는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래도 얼마나 감사합니까?

저는 이 시대가 감사하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옛날과 같이 사람을 마주보면서 복음을 전하지 않아도 됩니다. 인터넷이라는 미디어가 있어서 우리는 마음 놓고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복음을 전하는 자가 없는 이 시대에 우리는 복음을 전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남의 터입니까?

이 시대 남의 터가 있습니까? 누가 복음을 전했습니까? 그 생각을 하면 우리는 정말 힘써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 당시에 있었던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에서 이방에 이제 막 복음이 전파가 되었던 때에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이름이 아직 알려지지 않은 곳에서만 복음을 전하려고 애써 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5:21절을 보겠습니다. (260)

기록된 바 주의 소식을 받지 못한 자들이 볼 것이요 듣지 못한 자들이 깨달으리라 함과 같으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성경에 이렇게 기록한 바, "그의 일을 알지 못하던 사람들이 보게 될 것이요, 듣지 못하던 사람들이 깨닫게 될 것이다" 한 것과 같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그가 얼마나 우리 이방인들을 위해서 복음을 전하기를 힘썼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당시에 할 수만 있다면 더 많은 곳으로 가서 복음을 전하려고 했습니다. 배를 타고 또 걸어서 여러 가지 위험을 무릅쓰고 사도 바울은 정말 이방의 사도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일군으로 일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그렇게 수고를 하면서 힘써 복음을 전했는데 이방의 교회는 유대교인들과 같이 기독교라는 종교를 만들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사도 바울이 쓴 성경을 보면서도 그 안에서 복음을 전혀 못 보고 있습니다. 아니 모두가 종교의 거대한 포승에 묶여서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끌려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의 수고입니다

그리고 초대 교회의 수많은 사람들의 순교입니다 그것의 터 위에 우리에게 성경이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이 성경을 거의 모든 사람이 왜곡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복음을 보는 것이 아니라 너무도 쉽게 다른 복음으로 만들어서 그것을 전하고 있습니다.

 

복음입니다

그리고 다른 복음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율법을 지키는 일을 다른 복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교회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율법을 지키면서 그저 문자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알고 부른다고 하면서 자기들이 복음을 듣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유대교입니다

이스라엘이 모두가 유대교에 깊이 빠져서 나오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이방의 교회는 기독교를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들이 다른 신을 섬긴 것과 같이 이 시대 기독교는 삼위일체라는 신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들이 우상을 숭배한 것과 같이 이 시대 기독교인들이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통탄할 일입니다

사도들이 어떻게 이방에 복음을 전했습니까? 그리고 초대교회의 수많은 순교자들이 어떻게 믿었습니까? 그런데 이 시대는 모두가 종교가 되어서 그 포승에 묶여서 끌려가고 있습니다. 사도들이 기록한 성경을 보고 있지만 그 성경을 이상하게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방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는 할 수만 있다면 더 많은 곳으로 가서 복음을 전하려고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군가 복음을 전하고 있다면 다른 곳으로 가서 복음을 전하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불과 300년도 안 되어서 이방의 교회는 기독교라는 종교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사야 52:15절을 보겠습니다. (1033)

후에는 그가 열방을 놀랠 것이며 열왕은 그를 인하여 입을 봉하리니 이는 그들이 아직 전파되지 않은 것을 볼 것이요 아직 듣지 못한 것을 깨달을 것임이라 하시니라

 

이방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이방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성경에 이미 약속을 해 주셨습니다. 말씀을 드리지만 이스라엘은 하나의 예표와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이방에 빛을 비춰주시기 위한 예표와 그림자입니다

 

성경을 잘 보아야 합니다.

성경을 보면서 마치 이스라엘의 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아니 거의 모든 목사들까지도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한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일을 위해서 이스라엘은 예표와 그림자로서 필요했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유대인입니다

그들이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방인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이방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누군가를 예표와 비유로 세우실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 일에 있어서 이스라엘이 그렇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성경을 보면서 이스라엘이 주가 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왜 오셨습니까? 그를 비유로 해서 이방에 빛을 비추기 위해서 오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우리 이방인들 구원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사야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아니 성경의 거의 대부분이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이방인들에게 구원의 빛을 비춰주시기를 원하시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방인들은 복음을 듣지를 못 했습니다 왜 듣지를 못했는가 하면 이스라엘은 자기들만이 하나님을 믿는 백성으로 알았습니다.

 

우리 이방인입니다

주의 소식을 받지 못한 자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상은 주의 소식을 받아야 하는데 이스라엘은 자기들만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알았습니다. 더구나 주님이 오셨을 때는 이스라엘 안에 순혈주의까지 등장을 해서 이방에 침략을 받아서 어쩔 수 없이 혼혈이 되었던 사마리아 사람들을 개로 취급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소식을 받을 수 있습니까?

우리 이방인들이 복음을 받을 수 있습니까? 이스라엘도 복음을 듣지를 못했는데 어떻게 우리 이방인들이 복음을 받을 수 있습니까? 이 복음이라는 단어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 마태복음입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말씀을 하시는 것을 천국복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도 받지 못 했습니다.

하물며 우리 이방인이겠습니까? 그러나 사도 바울이 이사야의 말씀을 인용을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이 말씀을 하고 있는가 하면 자기가 이방의 사도라는 것을 말씀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사야 말씀을 인용을 해서 주의 소식을 받지 못한 자들이 볼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입니다

이스라엘은 조상 대대로 성경을 보았지만 어느 누구도 복음을 전하는 자가 없었습니다. 심지어는 자기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는 악한 일을 하면서도 도무지 깨닫지를 못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의 소식을 받지 못한 자들이 볼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이방인들이 복음을 볼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에게는 아직 복음이 전파가 되지 않았습니다. 주님이 오셔서 천국복음을 전파하셨지만 그들은 듣지를 않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셔서 천국에 올라가시고 성령을 보내 주심으로 해서 사도들이 이 복음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유대교입니다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들은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오심으로 해서 이제 사도들이 성경에서 복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유대인의 탄압에서 벗어난 사도들과 여러 사람들이 이방에 가서 자연스럽게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봤습니다.

무엇을 보았습니까? 주님은 이방에 빛으로 오셨습니다. 요한복음에서 빛이 어두움을 비추매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이 세상에 참 빛으로 오셨습니다. 그러나 어두움에 있던 이스라엘은 복음을 듣고도 그것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이제 주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하늘에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이 오시기 시작했습니다. 사도들이 그 빛으로 인도함을 받아서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사도들이 먼저 예루살렘에서 복음을 전했지만 물론 그 중에는 회개를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핍박을 하기 시작을 함으로 해서 흩어졌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방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이방에 가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자 주의 소식을 받지 못하던 이방인들이 참 빛을 보기 시작을 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사야 말씀을 인용을 해서 자기가 이방에 복음을 전하니까 이제 이방인들이 참 빛을 보게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우리 이방인들의 구원을 위해서 기록하셨습니다. 이사야 말씀 그대로 주의 소식을 받지 못하던 열방이 이제 주의 소식을 보게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놀랍게도 선지자들의 예언 그대로 이루시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그가 이방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왜 믿을 수 있는가를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을 인용을 해서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이렇게 이방에 복음을 전해서 잠시 동안은 이방이 참 빛을 보았지만 이제는 다시 이스라엘과 같이 어두움에 거하고 있습니다.

 

주의 소식입니다

그것은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복음입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시기 전까지는 이방에 이 소식이 전해지지가 않았습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주님이 오심으로 해서 우리가 이 소식을 받는 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이방인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는 좋은 소식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 시대 좋은 소식을 받는 자가 없습니다. 인쇄술이 발달을 해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성경을 보고 있지만 좋은 소식을 받지 못해서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좋은 소식을 못 보고 있습니다. 못 보는 정도가 아니라 이스라엘과 같이 어두움에 거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참 빛입니다

어두움에 있는 사람은 이 빛을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습니다. 이 시대도 이스라엘과 같이 율법을 지키면서 어두움에 있는 사람은 절대로 이 복음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사야 말씀이 무색할 정도가 되어서 다시 이방의 교회는 좋은 소식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잠언 2:5절을 보겠습니다. (912)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으며 하나님을 알게 되리니

사도 바울입니다

그는 이방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이 서신을 보내면서 복음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이방인들이 하나님을 믿는 이유의 타당성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이방인들이 믿는 근거를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을 인용을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오실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이방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후에는 그가 열방을 놀랠 것이며 열왕은 그를 인하여 입을 봉하리니 이는 그들이 아직 전파되지 않은 것을 볼 것이요 아직 듣지 못한 것을 깨달을 것임이라 하시니라는 이 말씀 그대로 사도들이 이방에 복음을 전하니까 그들이 복음을 듣고 믿었고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았습니다.

 

주의 소식을 받지 못한 자들이 볼 것이요

듣지 못한 자들이 깨달으리라 함과 같으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이방인이 어떻게 복음을 받을 수 있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비록 이스라엘에 의해서 듣지는 못했을지라도 우리 이방인들이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을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놀랍습니다.

이 시대를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주의 소식을 받지 못했지만 성경을 통해서 참 빛을 보고 있습니다. 놀랍게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가 복음을 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듣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듣지 못한 우리가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아서 이 시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이방인들을 구원하시는 놀라운 은혜가 성경 그대로 이 시대 우리에게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그냥 믿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예언을 하신 그대로 우리에게 역사를 하심으로 해서 이 시대 우리가 믿을 수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기록된 바 주의 소식을 받지 못한 자들이 볼 것이요 듣지 못한 자들이 깨달으리라 함과 같으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