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복음과 율법

남은 조각을 열 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윤주만목사 2019. 1. 12. 07:40


남은 조각을 열 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마태복음14:13-21절을 보면

예수께서 들으시고 배를 타고 떠나사 따로 빈들에 가시니 무리가 듣고 여러 고을로부터 걸어서 좇아간지라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인을 고쳐 주시니라 저녁이 되매 제자들이 나아와 가로되 이 곳은 빈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 무리를 보내어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 먹게 하소서 예수께서 가라사대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제자들이 가로되 여기 우리에게 있는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이니이다 가라사대 그것을 내게 가져오라 하시고 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히시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 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먹은 사람은 여자와 아이 외에 오천 명이나 되었더라

 

예수 그리스도

성경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서 오셔서 행하신 이적들이 많이 있습니다, 병자를 고치시고 또 오늘 말씀과 같이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신 일들을 보면서 사람들은 이런 이적들의 표면적인 것만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표적을 바라고 있습니다.

성경은 그런 표면적인 기적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자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런 표적들을 이 시대도 보고 있고 그것을 보면서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영의 일을 가르쳐 주고 있지만 사람들은 다 육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육의 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구약만 그림자가 아니라 신약에서 주님이 하신 모든 일도 실상은 다 영의 일을 가르쳐주고 있는 일이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도 역시 사람들은 이런 말씀들을 보면서 거의 육적으로 생각하고 있고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치셨다고 하니까 자기들도 그런 일을 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병자를 고치는 곳입니까?

물론 주님께서 병자들을 많이 고치셨습니다, 그리고 사도들 역시도 병자를 고쳤다는 말씀이 성경에 많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들은 다 표면적인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이면에 담겨 있는 뜻을 모르고 있다면 도리어 그런 일을 행하는 그것으로 말미암아 사망을 당하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육의 사람이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의 문자는 늘 말씀을 드리고 있지만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 문자를 알고 그런 표적이 나타나는 것으로 마치 그 교회가 진리를 전하는 곳으로 생각하고 있다면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어떻습니까?

이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를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왜 모르는가 하면 첫 번째가 율법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구약을 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해야 하는데 사람들은 거의 문자적으로 성경을 보고 있어서 도무지 발견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생명의 말씀입니까?

물론 분명히 생명을 얻을 수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문자를 아는 것으로는 절대로 생명을 얻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성경을 어려서부터 보았지만 성경에서 생명을 얻지 못 했습니다, 왜 생명을 얻지 못했는가 하면 그 성경에 있는 율법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 보다는 그것을 보고 자기 육체로 행하려고 하다가 도리어 저주를 받고 말았습니다,

 

해석이 안 됩니다,

율법을 모르고 성경을 본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를 알아야 하는데 이 시대는 율법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문자적으로 아는 율법을 가지고 마치 자기들이 율법을 아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사도 바울이 율법에 대해서 말씀을 했지만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로마서3:20절을 보면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나라,

며칠 전에도 사람을 만나서 대화를 했습니다, 그 사람에게 율법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율법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말했더니 당연히 지켜야 한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그럼 십계명의 계명 중에 어느 계명을 지켰냐고 물었습니다,

 

잘 대답을 하지 못 합니다,

그래도 양심은 있는지 아니면 잘 몰라서 그런지 십계명을 자신 있게 지켰다고는 말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것을 보면서 그러면 살인을 하지 말라는 그 계명을 지켰느냐고 말을 했습니다, 역시 머뭇거리면서 이웃을 미워하는 마음이 있으면 살인을 한 것이 아니냐고 말을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웃을 미워했으니까 살인한 것이라는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그 정도로 율법을 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아는 사람이 아니라 율법을 전혀 모르는 사람입니다, 율법을 안다면 로마서에서 사도 바울이 말씀한 그대로 율법을 알았다면 자기가 살인한 자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진짜 살인한 자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하는데 그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살인한 자입니다.

고의로 살인은 하지 않았어도 그릇 살인한 자라는 것을 성경에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율법을 보고 내가 그릇 살인한 자라는 것을 아는 성도는 빨리 도피성으로 피해서 보수자가 따라 와서 나를 죽이려고 할 때 목숨을 건져야 합니다,

 

우리는 그릇 살인한 자입니다,

율법을 아는 성도는 내가 그릇 살인한 자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을 모르는 사람은 율법을 보고도 자기가 그릇 살인한 자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자기가 그릇 살인한 자라는 것을 아는 사람과 자기가 살인한 자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 중에 누가 예수 그리스도께로 피할 수 있습니까?

 

도피성이 있으면 뭐 합니까?

자기가 살인한 자라는 것을 알아야 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율법을 보고도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는 하지만 실상은 예수를 믿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그가 믿는다고 하면 반드시 도피성으로 피해야 하는데 교회 안에 있으면서도 피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신약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구약을 모르고 이 신약 성경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이 구약 성경을 보고도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이 시대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고는 하지만 구약을 전혀 모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창세기에서 요한계시록의 모든 말씀이 서로 연결이 되어 있고 서로가 답을 해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연결을 시켜서 성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 문장의 성경을 보고 그것을 해석하려고 하다보니까 성경과는 전혀 다르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하시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고 그 문장만을 보다가는 성경이 도무지 무슨 말씀을 하는 줄을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이 시대 역시 진리에서 완전하게 벗어나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문장을 보고 자기들의 생각을 따라 해석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을 보시기 바랍니다.

애굽에서 나와서 광야라는 교회에서 그들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수많은 기적을 보고도 믿지를 않았습니다, 그런 기적들로는 우리가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잘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 교회 안에서 샤머니즘적인 행위들을 하면서 마치 그것이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이루어지는 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병자를 고치셨습니다,

이 시대 역시 동일한 일이 있다고 생각합니까? 물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병자를 고치는 일은 다 사단의 역사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 그대로를 사단이 행하게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영의 말씀입니다,

그것을 육체의 일로 만들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단은 성경에 있는 말씀을 그대로 자기들의 육체로 하게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구약에 율법을 이스라엘이 자기들이 육체로 행했습니다, 그런 이스라엘을 주님께서 마귀의 자식들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누가 마귀의 자식입니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이스라엘이 마귀의 자식입니다, 그들이 왜 마귀의 자식이 되었는가 하면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율법을 보고 그것을 자기 육체로 행함으로 해서 마귀의 자식이 되었습니다, 이 시대 역시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것을 이스라엘과 같이 자기들의 육체로 행하고 있다면 다 마귀의 자식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주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이방의 교회는 주님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마음이 거짓이고 이 시대 교인의 마음이 진심이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어떤 마음을 가졌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성경을 보고 그것을 육체의 일로 만들고 있다면 다 마귀의 자식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육체의 일을 하면서도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배를 타고 떠나사 따로 빈들에 가시니 무리가 듣고 여러 고을로부터 걸어서 좇아간지라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인을 고쳐 주시니라

 

새번역입니다.

예수께서 그 말을 들으시고, 거기에서 배를 타고, 따로 외딴 곳으로 물러가셨다. 이 소문이 퍼지니, 무리가 여러 동네에서 몰려 나와서, 걸어서 예수를 따라왔다. 예수께서 배에서 내려서, 큰 무리를 보시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들 가운데서 앓는 사람들을 고쳐 주셨다.”


마태복음14장 말씀입니다,

이 말씀의 배경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이 말씀의 배경을 어느 누구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율법을 보고 그 말씀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기 때문에 이 말씀의 배경이 무엇인가를 도무지 모를 수밖에 없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이라고 합니다,

이 말씀이 마태복음에만 기록이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에도 같이 기록이 되어 있다는 것을 성경을 본 사람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이 어디에 근거를 해서 예수님께서 이런 기적을 나타내셨는가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신명기28:1-6절을 보면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지난 설교입니다.

이 설교를 다시 일일이 할 필요성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편지에 지난 설교로 올려 드렸기 때문에 그 설교를 보신 분들은 다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신명기의 이 말씀을 이 시대 목사들이 전혀 모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저 성경에 복을 말씀하니까 자기들이 복을 받으려고 율법의 행위에 열심을 내다가 도리어 저주를 받고 있습니다,

 

누가 하셨습니까?

지난 시간에 이 말씀을 설교를 하면서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시는 일이라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보고 주님이 하실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거의 없는 것이 아니라 이제까지 모든 목사들이 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이 신명기의 말씀대로 해서 사람들이 받는 복으로 설교를 했습니다,


주님이 하셨습니다,

이 세상에 오셔서 주님이 이렇게 복을 받는다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정망 성경을 바로 볼 수 있는 눈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이 말씀을 주님이 하시는 일이라는 것이 믿어져야 아니 그것이 깨달아 져야 오늘 마태복음14장 말씀이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모두가 소경이 되어서 어느 한 말씀도 바로 해석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주님이 받는 복입니다,

그 복을 우리에게 주시고 있습니다, 그것을 마태복음14장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빈들로 나가셨습니다, 그러자 많은 무리가 주님이 빈들로 나가셨다는 것을 듣고 여러 고을로부터 걸어서 쫓아 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쫓아 왔습니까?

주님이 계시는 들에서 복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주님은 신명기의 말씀대로 하셔서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으셨습니다, 그런 주님이 지금 들로 가셨다는 말을 이스라엘 사람들이 듣고 주님을 찾아서 쫓아갔다는 말씀입니다, 왜 무리가 쫓아갔는가 하면 주님이 계시는 그 들에 복이 있기 때문에 쫓아갔습니다,

 

무슨 복입니까?

이 세상의 복입니까? 그것이 아니라 신명기에서 미리 말씀을 드렸지만 하늘의 복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 하늘의 복이 주님이 계시는 곳에서는 다 있다는 것을 신명기에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냥 이스라엘이 주님이 들로 나가셨다고 하니까 쫓아갔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들에 복이 있기 때문에 그 복을 받으려고 쫓아갔습니다,

 

성경은 그냥 기록된 것이 없습니다.

다 그 의미가 있고 그 의미를 성경에서 찾아야 합니다. 늘 깨어 지혜를 구하면서 그것을 찾는 성도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성경을 그저 사람의 생각을 따라 보고 있고 이 사건을 왜 나타내셨는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겨주셨습니다,

왜 불쌍히 여겨주셨습니까? 그들이 육적으로 배가 고프고 육적인 병이 걸려서 불쌍히 여겨주셨습니까? 주님이 그런 이 세상의 육체의 일을 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까? 주님이 이 세상에 왜 오셨는가를 모르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너무 많이 있습니다,

 

시편103:13절을 보면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니

 

아비가 지식을 불쌍히 여김같이

주님이 누구십니까? 이 시대는 주님이 누구라는 것도 모르고 그저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고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 인생들의 아비입니다,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같이 이스라엘의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겨주셨습니다,

 

주님이 계시는 들입니다,

그곳에는 복이 있다고 신명기에서 말씀을 하고 있고 마태복음에서는 실제로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들로 나가셨습니다, 그리고 그 들에 많은 무리가 쫓아 나오자 주님께서 그들을 불쌍히 여겨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불쌍히 여겨 주셨는가하면 들로 나온 이스라엘이 배가 고파서도 아니고 육체의 병이 들어서도 아니고 구원이 없었기 때문에 불쌍히 여겨주셨습니다,

 

주님이 왜 오셨습니까?

구원입니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우리 인생은 모두가 율법의 저주 아래 있습니다, 그런 우리 인생들을 불쌍히 여겨주셔서 주님이 신명기의 말씀과 같이 모든 말씀을 순종하셔서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아서 그 복을 들로 나가셔서 이스라엘에게 주시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사야에서 그는 영존하시는 아버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그렇게 믿지를 않고 있고 성자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알아야 불쌍히 여김을 받을 수 있는데 그것을 거절하고 있는 것이 이 시대 교인들이라고 보면 맞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경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어떻게 구원을 받는 줄을 모르고 이스라엘과 같이 기독교에 빠져 유대교인이 율법을 지킨 것과 같이 이 시대 기독교인들도 율법을 지키면서 그것으로 부자가 되고 있어서 불쌍히 여김을 받을 수 없습니다,

 

누가 불쌍히 여김을 받습니까?

부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을 수 없습니다. 누가 부자를 불쌍히 여겨주고 있습니까? 부자를 불쌍하다고 하는 사람은 좀 이상한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는 율법의 행위로 모두가 부자가 되어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얼마나 부자인 줄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자기들의 모든 행위가 다 부자로 만들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그것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부자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부자가 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 재물로 부자가 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행위로 부자가 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 한 가지라도 행하면 그것을 하지 않는 사람에 비해서 부자가 된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한 부자와 거지 나사로입니다.

그저 내가 나사로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율법의 어느 한 행위라도 하고 있다면 그것을 하지 않은 사람에 비해서 부자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부자가 음부의 고통 중에 있다는 것을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부자가 아니라 거지 나사로를 불쌍히 여겨주셔서 그가 아브라함의 품에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병인들을 고쳐주셨습니다.

주님은 실제 병자들을 고쳐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들은 구원을 예표 하는 일이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 인생 모두는 영적으로 병자입니다, 그것을 야고보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고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장로를 청해서 기도를 받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병이 아닙니다.

그 육체의 병을 고쳐서 무엇 하려고 합니까? 이 시대는 교회가 샤머니즘에 빠져 자기들의 육체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 별 이상한 일들을 다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병자를 고치신 것은 맞지만 그것은 구원에 관한 것을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을 받는데 있어 병이 들어 있는 사람을 고쳐주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저녁이 되매 제자들이 나아와 가로되 이 곳은 빈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 무리를 보내어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 먹게 하소서

 

새번역입니다,

"저녁때가 되니, 제자들이 예수께 다가와서 말하였다. "여기는 빈 들이고, 날도 이미 저물었습니다. 그러니 무리를 헤쳐 보내어, 제각기 먹을 것을 사먹게, 마을로 보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저녁이 되었습니다,

이제 사람들의 육적인 배가 고픕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이곳은 빈들이고 날도 저물었으니까 사람들을 보내어 마을로 가서 사 먹게 하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아직까지 성령이 오시지 않아서 신명기의 말씀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들이 복을 받습니다.

이 들에 복이 있다는 것을 제자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주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빈들에서 복을 주시고 있지만 제자들은 성경을 아직 모르다 보니까 이 빈들에 어떤 복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이제 저녁이 되었으니까 사람들을 마을로 보내어 먹을 것을 사 먹게 하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 마음에는 복이 없는데도 제자들은 그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복이 어디 있습니까?

주님이 계시는 곳에 복이 있습니다, 그것을 이미 신명기에서 말씀을 해 주고 있습니다, 이 모든 말씀이 다 영적인 의미가 있다는 것을 모르고 이 시대는 그저 눈에 보이는 문자를 보고 이 기적을 이야기를 하고 있고 주님이 오셔서 오천 명을 먹이시는 기적을 행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모르면 어디에 복이 있는 줄을 모르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새번역입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들이 물러갈 필요 없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제자들은 마을로 보내 먹을 것을 사 먹게 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신명기의 말씀을 이루시기 위해서 일부러 들로 나오셨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주님이 모든 하나님의 명령을 다 이루심으로 들에 복이 있다고 신명기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들에서 주님은 먹을 것을 주시려고 일부러 들로 나오셨습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그저 오천 명을 먹이는 기적으로만 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사건은 신명기의 예언을 그대로 주님께서 나타내시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이 모든 명령을 지키심으로 해서 주님이 계시는 들이 복을 받는다는 것을 보여 주시고 있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지금 제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일을 실제 먹을 것을 주는 것을 보여주시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들에 하늘에 복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사건이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신명기의 말씀대로 하셨기 때문에 이 들에 복이 있고 먹을 것을 줄 수 있습니다,

 

제자들이 가로되 여기 우리에게 있는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이니이다

 

새번역입니다,

제자들이 예수께 말하였다. "우리에게 있는 것이라고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습니다."”

 

이 사건의 배경입니다,

주님은 신명기의 말씀을 그대로 보여 주시고 있습니다, 주님이 신명기의 말씀대로 들에 복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시고 있는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이야 아직 신약 성경이 기록이 안 되고 성령이 오시지 않아서 그렇다고 하지만 이 시대는 신약 성경을 보면서도 이 사건이 왜 있는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기적만을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은 오천 명을 먹이시는 것과 같이 생명의 양식을 준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성경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 기적을 이야기를 하면서 이 시대도 이보다 더한 기적이 일어날 수 있다고 하면서 사람들을 샤머니즘에 빠지게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기적만 바라고 있다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들에 있는 복입니다,

그것을 주님이 보여주시고 있는 사건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시대 역시 들에 있는 복을 전혀 모르고 그저 기적만을 이야기를 하면서 자기들에게도 그런 기적이 일어나야 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고 교회에서 표적만 구하고 있습니다,

 

가라사대 그것을 내게 가져오라 하시고 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히시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새번역입니다,

이 때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그것들을 이리로 가져 오너라." 그리고 예수께서는 무리를 풀밭에 앉게 하시고 나서,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들고, 하늘을 우러러 보시고 축복 기도를 드리신 다음에,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이를 무리에게 나누어주었다.”

 

떡 다섯 개입니다.

그리고 물고기 두 마리입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을 합니다. 요한복음의 말씀을 보고 아이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는 것을 주님 앞에 내 놓아서 그것을 가지고 주님께서 기적을 일으키셔서 오천 명을 먹이셨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아이가 가지고 있는 작은 것이라도 주님께 드리면 이런 기적이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사악합니다,

주님이 누구라는 것을 모릅니까? 그분은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아이에게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없었다면 이 사람들을 먹이지 못하셨습니까?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하시면서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신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떡 다섯 개입니다,

그리고 물고기 두 마리입니다, 그것이 없다 해도 주님은 그 들에서 돌들로도 떡을 만들어서 오천 명을 먹이실 수 있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주님이 무엇을 못하실 수 있습니까? 주님은 능치 못하시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축사하셨습니다,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떼어 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이 축사를 너무 좋아하고 있습니다, 정말 무슨 일만 있어도 축도를 하는 것을 바라고 있고 그것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무엇에 대해서 축사를 하셨습니까?

 

성경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신명기의 말씀을 이루실 것을 축사하셨습니다. 그저 육신의 먹을 것을 주기 위해서 축사를 하신 것이 아니라 신명기의 말씀을 이루셔서 들에 복이 있는 것을 아시고 축사를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는 목사가 축도를 해 주는 것을 너무 바라고 있고 그것을 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솔직히 그런 축도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축사도 모르고 있습니다,

먹을 것을 주시기 위해서 축사를 하셨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주님이 신명기의 말씀대로 하셔서 이 들에 복이 있는 것을 축사하셨습니다, 마치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기적을 일으키시기 위해서 축사를 하신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 축사가 아닙니다.

주님 스스로가 축사를 하시고 있습니다, 이 들에 복이 있다는 것을 축사하시고 있습니다, 실제 이 축사를 하시고 오천 명을 먹이는 기적이 있었지만 그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신명기의 말씀대로 이루시고 이 들에 복이 있는 것을 축사하고 있습니다, 하늘의 복을 주시기 위해서 축사를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먹을 것이 아닙니다.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시기 위해서 축사를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신명기의 말씀을 이루시는 것을 가지고 축사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신명기의 말씀을 모르다 보니까 이 말씀을 보고 다 기적만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목사들이 축도하는 것을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영의 일입니다.

문자로 보이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시대 이런 기적이 일어나면 뭐 합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주님이 하시는 일도 모르면서 그저 자기들의 눈에 나타나는 기적을 바라고 있고 그것으로 미혹을 당하면서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 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먹은 사람은 여자와 아이 외에 오천 명이나 되었더라

 

육적인 일입니다,

그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안에서 영적인 의미를 모르고 있다면 그는 소경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 이 말씀을 가지고 얼마나 기적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까? 마치 자기들에게 육적으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와 같은 것으로 이러한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라고 목사들이 축도를 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5:7절을 보면

내가 어찌 너를 사하겠느냐 네 자녀가 나를 버리고 신이 아닌 것들로 맹세하였으며 내가 그들을 배불리 먹인즉 그들이 행음하며 창기의 집에 허다히 모이며

 

성경은 진행형입니다,

이스라엘의 사건이 그때의 일로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이 신명기의 말씀대로 들에 복이 있게 해서 배불리 먹게 해 주셨습니다, 물론 이 사건은 육적으로 분명히 있었던 일입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지금 이 시대 어떻게 하고 있는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우리가 먹고 배부를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떡을 먹으면 배가 부를 수 있습니다, 아니 주님께서 신명기의 말씀을 다 이루셨다는 것을 알면 배가 부를 수 있습니다, 주님은 이 세상 모든 사람을 다 배부르게 먹이시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합니까?

그들이 행음하며 창기에 집에 허다히 모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들에서 이미 오천 명을 먹이셨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인생들이 다 배부르게 먹을 수 있게 먹였습니다, 그러나 역시 이 시대도 이스라엘과 같이 행음을 하고 있고 창기의 집에 허다히 모이고 있습니다,

 

창기의 집이 어디입니까?

교회입니다, 교회가 육의 일을 쫓아가면서 행음을 함으로 해서 창기의 집이 되고 말았습니다, 주님이 계시는 들에서 배부르게 먹였지만 교회는 창기의 집에 되어서 행음을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멸망을 당할 때 예레미야51절에서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가 한 사람이 있으면 이 성을 멸하지 않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배부르게 먹이셨습니다,

그리고 그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배불리 먹고 열두 광주리에 찼습니다, 주님의 광주리가 복을 받았습니다. 어느 정도 복을 받았는가 하면 이 세상 모든 사람을 다 먹이고 그 남은 조각을 거두니까 열두 바구니에 찼습니다,

 

열둘입니다.

그 숫자에 의미를 두지 마시기 바랍니다. 열둘이라는 숫자는 하나님의 숫자입니다. 그러니까 들에서 모든 사람을 다 배불리 먹이고 열두 바구니에 찰 정도로 주님의 복이 넘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복이 주님이 계시는 들에 있습니다,

 

복을 받았습니다.

신명기의 말씀을 이루신 주님께서 복을 받으셔서 들에서 오천 명을 먹이셨는데도 열두 광주리에 찼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받는 하늘의 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의 이 사건은 신명기의 복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배가 부르게 먹었습니다.

구원을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신명기의 말씀을 이루심으로 복을 받으시고 그 복을 들에서 주셨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예레미야의 말씀과 같이 교회는 창기의 집이 되었고 그 안에 허다한 사람들이 모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만이 우리를 배부르게 먹이고 있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먹이는가 하면 신명기에서의 하나님의 모든 명령을 다 지킴으로 해서 우리가 배부르게 먹고 있습니다. 그 복을 들에서 받아 천국에 들어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