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팔복에 대하여

제3강, 온유한 자는

윤주만목사 2018. 10. 15. 14:19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마태복음 5:5절을 보면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동양은 기복사상이 물들어 있습니다.

한국에 기독교가 들어와 이렇게 부흥을 이룰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기복주의가 들어 왔기 때문입니다 미국에 중산층이 두텁게 생기는 그 시점에 그들이 경건주의와 맞물리면서 선교를 하기 시작을 했고 그 대상이 바로 우리나라였습니다.

 

복음이 들어 온 것은 감사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 시점이 너무 안 좋았고 기복주의 사상이 아무 저항을 받지 않고 한국 교회 안에 뿌리 깊게 자리를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그 당시 우리는 외세에 의해 나라 운명이 좌지우지 되었던 시대고 또 선교사들이 본격적으로 들어오던 5-60년대는 보릿고개가 있어서 하루 식사를 해결 하지 못했던 시대였습니다.

 

미국 교회가 한국을 위해 큰일을 했습니다.

그 당시 먹지 못하던 사람들이 교회에 나가기 시작을 했고 그들은 자연스럽게 미국의 중산층으로부터 전도를 받게 되었고 미국의 선교사들은 한국 사람들에게 가장 절실한 것이 바로 복을 받는 것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고마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한국 교회에 비극이기도 합니다.

지금 한국 교회는 바알 사상이 가득하고 또 기복주의가 판을 치고 있고 심지어는 기도를 해서 아파트 당첨을 받았다는 간증을 할 정도로 땅을 기업으로 받았다고 간증을 할 정도로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물론 복 받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분복을 누리는 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한국 교회는 너무 지나치게 복을 쫓아가고 있고 복을 받은 사람은 믿음이 있는 사람이고 땅을 기업으로 받지 못해 아파트 한 채도 없는 사람은 교회를 다녀도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취급이 되고 있습니다.

 

교회가 무한 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조금 더 크고 조금 더 화려하게 마치 성을 짓는 것 같이 지어지고 있고 거리를 다니다 보면 그 주변에서 가장 큰 건물이 언제부터 교회가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을 보면서 마치 하나님의 축복으로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다수를 이루고 있습니다.

 

지금 한국은 종교만 살고 있습니다.

천주교 불교 기독교 이 삼 대 종교가 아주 절묘하게 어울 어지면서 국민들의 고혈을 빨아내고 있고 청치 인들은 자기 명예를 위해서 종교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몽매무지한 국민들만 종교인들에게 속고 있는 그런 형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다 복을 이야기 합니다.

삼대 종교가 복에 환장을 해서 자기 종교 안에 들어 온 사람들에게 축복을 해 주고 있고 무지한 사람들은 그들이 하는 축복으로 자기들이 복을 받고 있다고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너무 가난한 시대에 기독교가 들어오면서 진리가 뿌리 채 흔들리는 불행한 일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중국은 공산당입니다

그리고 일본은 미국과 전쟁을 했던 나라이며 아직도 자기들이 졌다는 것에 대해서 수치를 가지고 있고 이번 원자로 사고만을 보아도 미국으로부터 도움을 받는 것을 자존심 상해하고 있는 나라입니다 이 두 나라는 기독교가 들어가기가 힘이 들었고 그런 것에서 자유로웠던 우리나라는 기독교가 세계 기독교 사를 다시 쓰는 일을 하고 말았습니다.

 

물론 지금은 중국도 기독교가 많이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그곳도 삼자 교회라고 해서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하고 그런 교회 안에서 진리가 바로 서는 것은 불가능 합니다. 또 중국은 대대로 우리나라 보다 더 복을 선호하는 나라입니다 우리나라가 기독교로 복을 받았다니까 복을 받기 원하는 중국인들에게는 기독교가 너무도 좋은 종교로 비춰지게 되고 교회 안에 들어와 복을 받고 싶어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우리는 구약의 이스라엘이 아닙니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땅을 기업으로 받았습니다.

자기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가나안을 기업으로 받았고 그것은 정말 젖과 꿀이 흐르는 살기에 너무도 좋은 땅이었습니다. 그들은 그 복을 마치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받을 복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얼마나 황당합니까?

아니 무지하다고 밖에 볼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무엇을 얻기 위해 이스라엘이 여리고성을 무너뜨릴 때 했던 것과 같이 그곳을 일곱 번을 돌기도 하고 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치고 안 그런 사람들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자기가 얻고 싶은 기도처를 얻기 위해서 먼저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 주변을 돌면서 하나님께서 그 땅을 자기에게 달라고 하는 샤머니즘 적인 의식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해서 그것을 얻으면 마치 하나님께서 자기의 기도를 들어 준 것으로 오해를 하고 무용담을 늘어놓고 있습니다.

 

복에 미쳐 있습니다.

그 복이 하늘의 복이 아니라 이 세상의 복을 받기 위해서 성경에 어떤 말씀이 있으면 그것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그런 행위들이 얼마나 악한 것임을 모르고 있고 오히려 자랑스럽게 말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이 세상의 것을 얻기 위해서 기도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설령 교회라 해도 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 어디에 교회를 얻기 위해서 기도를 했다고 나와 있습니까? 마치 그것이 하나님을 위하는 일이라고 오해를 하고 있는데 그것은 교회 안에 바알 사상이 들어와 미혹하고 있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이 필요 하시면 주십니다.

그런데 교회를 짓기 위해서 작정 기도를 하고 있고 수년전부터 그 일을 위해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도 응답이 되어서 교회를 건축하고 나면 봐라 우리가 기도를 했더니 하나님께서 이렇게 우리 눈으로 보게 해 주셨다고 자랑을 합니다.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주셨다는 보장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순전히 자기들의 생각이지 하나님께서 주셨다는 성경적인 증거도 없는데 자기들은 이 세상에서 땅을 얻은 것으로 기뻐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오히려 이스라엘의 성전을 허물어 버리셨습니다.

 

그런데 교회를 지어 놓고 성전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헐어 버리신 성전을 자기들은 교회를 지어 놓고 성전이라고 하면서 그것을 거룩하게 그리고 우상화 시키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지어 놓은 교회를 섬기느라 하나님을 찾을 시간이 없습니다.

 

타락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아니 이제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종교화가 되어 있고 교회 안에서 진리는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성경을 모르면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고 자기가 지금 받고 있는 그 복이 누구에게서 오고 있는 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만 주십니까?

그럼 믿음이 좋은 사람이 이 세상의 부를 다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부는 믿는 자들 보다 안 믿는 자들이 더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유대인이 믿는 자입니까? 그들을 가르쳐서 요한계시록에서는 사단의 회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단의 회니까 사단이 마음껏 그들을 축복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하나님을 잘 믿어서 유대인들이 복을 받는 것처럼 이야기 하는 목사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아니라 사단에게 미혹이 되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마치 그들이 이 세상의 부를 쥐락펴락하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을 잘 믿는 민족이라서 그렇게 복을 받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너무도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자기들이 필요에 따라서는 사단도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말할 사람들입니다

 

복 이 세상의 복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시는 분복을 감사하면서 그것을 즐겁게 누리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너무 복을 쫓아가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포기하라는 말도 아닙니다 그리고 정말 당부하고 싶은 것을 이 세상의 복을 위해 기도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기도는 하나님이 들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사단이 들어 주어서 그가 진리를 모르게 미혹시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마태복음11:29절 보면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마음이 온유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말하는 온유는 성격이 온화하고 부드러운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음이 온유하다고 하시는 말씀의 뜻을 우리가 먼저 이해를 해야 합니다. 성격이 온유한 것이 아니라 마음이 온유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마음이 온유해야 합니다.

마음이 온유하다는 말씀은 결국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섭리를 받아들이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이 온화하고 부드러워서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그 섭리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에 저항을 하지 않고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온유합니까?

하나님이 나를 가난하게 만들었다면 그것을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병자로 만들었다면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미천하게 만들었다면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저항을 하고 있습니다.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하나님과 싸움을 하면서 밤을 새워 기도를 하니까 하나님께서 마치 발람의 기도를 들어 주신 것과 같이 그 기도를 용납하셔서 사단이 그 기도를 들어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발람과 같이 발락의 보화를 집으로 가져 왔지만 그는 이스라엘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병이 들었습니까?

물론 병이 낫고 건강하게 살고 싶은 것은 모든 사람의 마음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너무 기도에 매달리고 기도원 같은 곳에 가서 기도를 하는 것 역시 누가 역사를 하고 있는 가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나 디모데 같은 경우 평생 지병을 가지고 살면서도 복음을 위해 일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낫기 원 합니다.

아니 낫지 못하면 마치 믿음이 없는 것으로 치부를 하고 있습니다.

병이 나빠지면 마치 기도를 하지 않는 것으로 정죄를 하고 있고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고 병이 나아야 믿음이 좋은 사람이 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온유한 것입니까?

 

이것은 온유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온유는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죽으실 필요가 없는 분인데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대속 제물로 받기를 원하시니까 묵묵히 그 십자가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얼마나 온유하신가를 보시기 바랍니다.

 

누가복음22:42절을 보면

“가라사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예수님은 우리와 똑 같은 육체를 입고 오셨습니다.

우리가 아프면 똑 같이 아프고 우리가 목마르면 예수님도 똑 같이 목마르고 우리가 배고프면 예수님도 똑 같이 배가 고프셨습니다. 누가복음은 우리와 똑 같은 인생으로 오신 예수님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육체의 고통을 지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고통이 얼마나 큽니까?

십자가를 지기 전에 이미 채찍으로 거의 반 죽은 상태를 만들고 나서 그 당시에 십자가에 매 달았습니다. 인자로서 그것을 감당한다는 것은 정말 피하고 싶었다는 것을 아주 잘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얼마나 피하고 싶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순응을 하고 받아들였습니다.

왜 받아들였는가를 아시기 바랍니다.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것은 인자로 오신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우리와 똑 같은 육체로 오신 예수님의 마음은 정말 할 수만 있다면 이 자리를 피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솔직한 마음입니다.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사람들은 자기 원이 무엇이고 하나님의 원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 원대로 하는 기도를 하면서 그것이 마치 하나님의 원인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십자가를 지지 않고 싶은 것은 인자로 오신 예수님의원입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지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원입니다 그것은 우리 인생을 불쌍히 여기셔서 구원을 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대속 제물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받아들이지를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얼마나 가증한지 자기가 기도하는 것이 마치 하나님을 위한 일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내게 재물을 주시면 하나님을 위해 쓸 것이고 내게 건강을 주시면 하나님을 위해 일하 것이고 내게 명예를 주시면 하나님을 위해 사용하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원대로 기도하는 것인 줄 알고 있습니다.

 

나를 가난하게 했습니까?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원이시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것을 거절하고 밤을 새워 기도를 하고 있다면 그는 온유한 자가 아니라 저항을 하고 반항을 하고 있는 자입니다 그런 것을 생각하지도 않고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나를 병들게 했습니까?

아니 죽을병이 들어서 죽게 하시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것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온유한 자입니다 물론 그것을 낫기 위해 기도도 해 보아야 하고 또 병원에 가서 치료도 받아야 하겠지만 정말 죽을병이라면 받아들이는 것이 하나님의 원대로 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더 이상 쓸모가 없어서 아니 이제는 세상에서 너무 힘들어 하니까 데려가고 싶은데 거절을 하고 있습니다.

 

온유가 무엇인가를 아시기 바랍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정말 온유했습니다. 그들은 까닭 없이 죽이고자 하는 그들에게서 피하지 않고 받아들였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온유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원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사자 밥이 되고 화형을 당하는 그런 사람으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어려움을 기꺼이 받아들였습니다.

 

내가 이 세상에서 하고 싶은 것은 모두 다 내 뜻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위하는 일이라고 해도 역시 내 뜻이라는 것을 분명히 아시기 바랍니다. 내가 교회를 세우고 전도를 하고 찬송을 하고 교회 안에서 큰 일을 하고 하는 이 모든 일들이 다 내 뜻이라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오해를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더 많은 일을 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병자를 고치고 또 오병이어 기적을 일으키고 또 전도를 하고 하는 것 보다 더 중요한 일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단번 속죄 제물로 받으시는 일입니다 사람의 생각은 예수님께서 그런 일들을 더 많이 하시는 것을 당연히 좋게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말립니다.

그런 일이 주님께 있어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때 주님께서는 사단아 네 뒤로 물러가라고 말씀을 하시고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기보다 사람의 일을 생각한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서 더 많은 일을 하시는 것은 사람의 생각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단번 속죄 제물로 받으시기를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배우세요.

예수님으로부터 온유함을 배우시기 바랍니다.

내가 이 세상에서 아니 교회 안에서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은 다 내 원이고 하나님은 그런 것보다 나를 구원하시고 싶어 하십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하나님의 원 보다는 자기들의 원을 위해서 기도를 하고 있고 그것을 받기 위해서 사단에게 미혹이 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10:1-4절을 보면

“너희를 대하여 대면하면 겸비하고 떠나 있으면 담대한 나 바울은 이제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으로 친히 너희를 권하고 또한 우리를 육체대로 행하는 자로 여기는 자들을 대하여 내가 담대히 대하려는 것같이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나로 하여금 이 담대한 태도로 대하지 않게 하기를 구하노라 우리가 육체에 있어 행하나 육체대로 싸우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사도바울은 이제 그리스도의 온유함과 관용으로 너희를 친히 권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고린도교회에 있는 성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온유함을 배우라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성도라면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의 온유함을 따라 배워야 하는데 그렇지를 못하고 있고 오히려 저항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육체대로 싸우지 않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육체대로 싸우는 것은 온유함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육체대로 싸운다고 하니까 나쁜 것만을 생각하고 있는데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힘들어 하시는 것은 바로 육체대로 싸우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더 많은 일을 하시고자 하는 것은 바로 육체대로 싸우는 일이라는 것을 분명히 아시기 바랍니다.

 

육체대로 싸우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교회 안에서 무엇을 하고자 하는 모든 일은 다 육체로 하는 일이며 그것을 위해 기도를 하고 그것을 하기 위해 애를 쓰는 모든 행위는 다 육체대로 싸우는 일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싸우는 것은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닙니다.

 

기도합니까?

예배를 드립니까? 전도를 합니까? 그리고 근사한 교회를 세웁니까? 또 교회 안에서 남들보다 더 빛나게 봉사를 하고 있습니까? 찬양을 부르면서 감동을 주고 있습니까? 이 모든 것이 다 육체에 속한 것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가 기도도 하지 말고 예배도 하지 말고 찬송도 부르지 말고 또 교회를 세우는 일도 하지 말라고 드리는 말씀이 절대 아닙니다.

 

우리는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육체에 속한 일임을 분명히 아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싸우는 병기는 이 육체를 더 좋은 모습으로 보이기 위한 것임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깨닫기 바랍니다. 그러나 이 시대 교인들은 그것을 위해 싸우느라 자기가 무엇을 위해 싸워야 하는 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이 육체의 일은 정말 온유함으로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섭리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를 부탁드립니다.

 

육체와 싸워 이기려고 하는 자는 반드시 땅을 기업으로 받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온유하지 않은 자에게는 땅을 기업으로 절대 주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가난하게 하시면 가난해야 하고 또 병들게 하셨으면 병자로 살아가야 하고 또 나를 죽이시고자 하면 죽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온유한 성도의 믿음이고 신앙입니다

 

야고보서1:21절을 보면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어 버리고 능히 너희 영혼을 구원할 바 마음에 심긴 도를 온유함으로 받으라”

 

악을 내어 버리시기 바랍니다.

무엇이 악인가 하면 내가 육체로 이기고자 노력하는 모든 것이 다 악에서 나온 것임을 깨닫기 바랍니다. 우리는 육체로 싸우는 자가 아니라 마음에 심긴 도를 받아들이는 온유한 성도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육체로 싸우려는 자만 있고 마음에 심긴 도를 온유함으로 받아들이려고 하는 성도는 거의 찾아 볼 수 없습니다.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럼 그것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됩니다. 굳이 내 육체로 이기지 않아도 그 도만 받아들이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구원을 받은 성도는 땅을 기업으로 받게 됩니다.

 

천국에 땅을 기업으로 받게 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온유하지를 못해서 자기 악을 드러내고자 육체에 대한 싸움을 하느라 영혼의 일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기 육체의 모양으로 온유함을 나타내기는 좋아하는데 진짜 필요한 온유함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싸웁니다.

하나님과 싸움을 하면서 하나님의 원대로 하지 마옵시고 내 원대로 부자가 되게 해 주시고 명예도 업게 해 주시고 내가 정말 교회 안에 의롭게 살게 해 주시고 또 선한 일을 하면서 칭찬을 받게 해주시고 이것도 하게 해 주시고 또 저것도 하게 해 주시고 하면서 싸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 무엇 하나를 하면 서로 그것을 하겠다고 나도 달라고 눈물을 흘리면서 대적을 하고 있습니다.

 

온유함은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것은 내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시고자 하는 섭리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렇게 받아들이는 성도는 자기가 비천에 처해도 또 설령 자기 생명을 빼앗겨도 그것이 하나님의 섭리임을 알고 구원에 확신을 갖고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더하고 못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을 먼저 아시기 바랍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예수님에게서 배우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안 지셨으면 이 세상에서 병자도 더 많이 고치시고 더 많은 일을 하셨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원이 십자가를 자시는 것이기에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내가 이 세상에서 무엇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게 주시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사는 것이 바로 온유한 성도입니다.

 

그런 성도는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그런 땅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축복의 땅 기업을 받게 될 것입니다 자기 육체를 위해 싸우기 보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를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바로 온유한 성도입니다 그런 성도에게 천국의 기업을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모두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 육체와 싸우지 않으면 쉽게 받을 수 있는 축복입니다 온유한 자가 되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천국을 기업으로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