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너희는 귀를 기울리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팔복에 대하여

제1강, 심령이 가난한 자는

윤주만목사 2018. 10. 15. 14:1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마태복음 5:3절을 보면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천국...

모두가 그곳에 가고 싶어 합니다.

교회에 나온 목적이 물론 다를 수 있겠지만 그래도 교회에 나온 사람이라면 천국을 가고 시어하는 것은 모든 사람의 마음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교회에 나왔다고 다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천국에 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더 많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교회에 나온 것은 이제 애굽에서 우리가 광야로 나온 것입니다 사단에게서 나를 복음에 참예한바 되게 하신 부르심이라는 말씀입니다

 

만약 말입니다

여러분이 천국에 가지 못한다면 여러분의 신앙은 모두가 거짓이고 그것이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성경은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을 깨우치기 위해서 기록한 말씀이 아니라 교회 안에 그러니까 이스라엘이 광야로 나온 것 같은 그 상태에 있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해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가를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첫 마디가 바로 천국입니다

이 세상에서 잘 살고 잘 먹고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해야 어떤 사람이 천국에 갈 수 있는 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들어온 사람들에게 천국에 가는 사람과 버림을 받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교회가 약 60.000개라고 합니다.

얼마나 대단합니까? 그러나 이스라엘이 60만이 나와서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가나안에 들어갔다고 한다면 60.000이라는 숫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교회가 60만개가 된다 해도 단 두 곳 그것도 성도가 불과 몇 사람 있는 곳이 복음이 있다면 이것은 세상 종교보다 못한 일이고 그들이 받을 고통은 참으로 안타깝기만 합니다.

 

주님이 오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병자를 고치고 빵을 주어 배부르게 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까?

물론 그런 일들을 하셨지만 주님께서는 그 일을 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이 세상 사람들을 구언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빵을 먹고 배부른 자들이 주님을 왕으로 삼으려 하니까 주님께서는 오히려 피하셨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그것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꿩 잡는 게 매라고 무조건 배만 부르면 되고 병자가 낫기만 하면 되는 그럼 마치 그 교회가 주님의 능력이 임하는 교회로 착각을 하고 있고 그런 교회로 사람들이 몰려가고 있습니다. 점점 부자가 되기 위해서 노력을 하고 있고 교회 안에는 물질의 부자 뿐 아니라 자기의 의로 부자가 되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이 많이 변했습니다.

지금은 자기 마음에 드는 말씀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고 또 수많은 설교들이 엄청나게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과연 그 설교들 중에 오직 예수만을 전하고 있는 설교가 얼마나 되는가를 냉정하게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를 안 전하는 설교는 없지만 그러나 오직 예수를 전하는 설교도 또한 없다는 사실입니다

 

너무 많은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여기서 저 말하고 저기서는 저 말하고 도무지 어떤 말이 맞는가를 쉽게 알 수 없습니다. 특히 성경을 많이 읽지도 않았고 또 공부를 하지 않은 사람들은 어떤 말씀이 진리를 전하고 있는가를 도무지 깨닫지 못합니다. 그러다 보니까 이단들이 세력을 키우고 있고 또 정통이라는 교회 역시도 치열한 경쟁 속에서 진리가 퇴색되어 지고 있습니다.

 

상업적인 논리만이 있습니다.

자본주의의 영향을 그대로 받고 있는 교회는 어떻게 하든지 한 사람이라도 자기 교회로 끌어 들이려 하고 있고 그런 행위들이 복음을 얼마나 방해를 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대형교회는 그 숫자를 다 채우지 못해 건물을 짓고 또 짓고 있고 소형 교회는 그 틈바구니에서 자기들이 살아남기 위해 아주 몸부림을 치고 있습니다.

 

그런 교회에서 과연 진리가 바로 설 수 있습니까?

탐욕만이 가득 차 있습니다.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간절한 마음을 갖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 한 사람이라도 더 채우고 싶은 욕심으로 치열하게 경쟁을 하고 있고 자기들만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쓰고 있는 모습이 애초롭기까지 합니다.

 

그런 육체의 싸움이 아닙니다.

영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으면서 아직도 육의 싸움을 치열하게 하고 있는 교회들의 모습은 스스로 패망의 길로 달려가고 있을 뿐입니다 주님께서는 교회 안에 수백만 명을 끌어 다 놓는 것보다 단 한 사람이라도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그 교회를 보호하시고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깨닫기 바랍니다.

 

시장 경제가 아닙니다.

복음은 그렇게 경쟁을 하면서 시장 논리에 따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한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비둘기 같이 슬기롭고 뱀 같이 지혜롭게 해서 그 영혼을 구원하는 일입니다. 그것은 교회 안에 들여다 앉혀 놓는 것이 아니라 그 영혼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복음을 믿게 되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입니다.

 

부자가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물질적으로나 명예나 이런 것으로 가난해 지라는 말씀이 아니라 그것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분복을 인정하고 누리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왜 가난해야 하는가를 성경을 통해 배우고 어떤 가난한 자가 되어야 하는 가를 바로 아시기를 바랍니다.

 

부자는 죽습니다.

 

야고보서5:1절을 보면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을 인하여 울고 통곡하라”

 

부자들에게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물질이나 이 세상의 명예를 가진 부자들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의 의로 행위로 부자가 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하는 경고의 말씀입니다 교회 안에서 자기들이 하는 행위에 취해 자기가 마치 그 행위로 천국에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배를 합니다.

찬양을 부르고 기도를 하고 또 십일조를 하고 하는 그런 행위들에 취해서 자기가 스스로 천국 백성이라고 착각에 빠져서 진리를 알기를 거절하고 있고 진리에 대해서 구하는 마음도 없습니다. 그런 행위들에는 너무도 열심인 그들이 지혜를 구하지도 않습니다.

 

천국에 벌써 들어가 있습니다.

그렇게 하지 못하는 사람과 비교를 하면서 나는 분명히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그 심령이 부자가 되어 있습니다. 자기가 받은 은혜보다도 자기의 행위를 보면서 부자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야고보서5:2절을 보면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먹었으며”

 

모릅니다.

자기들이 행하고 있는 행위들이 어떻게 되고 있는 가를 모르고 있고 자기들이 입고 있는 그 율법의 의에 옷이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 가를 모르고 그것을 눈으로 보면서 마음에 부자가 되어 있습니다. 그 심령에는 이미 자기는 그런 행위들을 보면서 천국백성이라고 자부를 하고 있습니다.

 

행위는 부자로 만들어 버립니다.

제가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내가 하고 있는 모든 신앙생활의 행위는 나를 부자로 만들고 있다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바로 이 행위가 야고보는 재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시편에서 다윗도 내 소유가 이것이나 내가 주의 법도를 지킨 것이니이다 라고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부자가 되고 싶어 합니다.

행위를 잘하는 순간 그 행위로 인하여 마음에서는 부자가 되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그저 칭찬을 받기 위해 부자가 되고자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죄를 지라고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성도는 이 셋아 사람보다 더 선하고 의롭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재물이 되어 자기 심령을 부자로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면 그 사람은 결국 그 재물이 썩어 죽고 말 것입니다

 

누가복음18:25절을 보면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신대”

 

이 부자 청년은 율법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시니까 자기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다고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지킨 그 율법이 재물이 되어서 그것을 버리지 못하고 결국에는 예수님을 따르는 것을 포기 하고 근심하고 돌아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부자는 천국에 못 들어갑니다.

물질의 부자는 들어갈 수 있어도 행위로 인하여 부자가 된 사람은 절대로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도 그리고 다윗도 솔로몬도 다 부자였지만 그들은 믿음의 선진들로 천국에 들어갔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물질의 부자는 얼마든지 천국에 들어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일부 목사들은 재물이 많은 사람들을 정죄를 하고 있고 마치 재물이 없어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그 분복은 내가 천국을 가는데 있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또 설령 그가 자기 재물을 인색하게 사용했다 해서 그것이 절대로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극단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성도가 그럴 사람은 없겠지만 믿음이 있으면서도 자기 재물이 아까워 교회에 헌금을 하나도 안 한다 해서 그가 천국에 가는데 있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성도라면 바나바와 같이 자기 것을 아끼지 않고 교회를 위해 자기 재산을 내 놓으면서 헌신을 할 것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시편9:18절을 보면

“궁핍한 자가 항상 잊어버림을 보지 아니함이여 가난한 자가 영영히 실망치 아니하리로다”

 

다윗의 시입니다

다윗이 가난한 자입니까? 그가 정말 궁핍한 자였습니까?

그는 한 나라의 왕입니다 그리고 그는 그 당시 패권을 가진 나라의 왕이었고 지금과 같으면 미국의 대통령과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다윗이 자기를 가난하다고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뿐 아닙니다.

다윗은 시편에서 자기를 한 번도 부자라고 말하지 않고 늘 가난하다고 말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실 다윗이 실수도 했지만 그가 하나님을 위해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는가를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익히 알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성전을 짓기를 사모 했고 자기가 비록 못 지을지라도 그 아들 솔로몬을 통해 성전을 짓게 하기 위해서 모든 준비를 다 했던 사람입니다.

 

누가 다윗만큼 하나님을 위해 헌신을 했습니까?

그는 법궤를 들여 올 때 너무 좋아서 춤을 추다가 바지가 벗겨지는 왕으로서의 체통도 버리면서 까지 하나님을 사모 했던 사람입니다 그가 얼마나 헌신적으로 살았는가를 성경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단 한 번의 실수가 너무도 치명적이었지만 그래도 그는 하나님을 섬기는데 있어서 많은 일을 한 사람입니다

 

시편10:12절을 보면

“여호와여 일어나옵소서 하나님이여 손을 드옵소서 가난한 자를 잊지 마옵소서”

 

가난한 자를 잊지 마옵소서...

왜 이토록 다윗은 자기를 가난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 가를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천국에 가고 싶지만 자기의 의로는 도무지 갈 수 없기 때문에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의가 자기에게는 없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자기를 가난한다고 탄식을 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설령 내가 천국에 갈 수 있는 사람 100명을 전도해서 그에게 복음을 가르쳤다 해도 그것으로 내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 교회를 짓고 또 전도를 많이 하고 또 기도를 하고 예배를 하고 하는 그것으로는 아니 평생 하나님만을 생각하면서 죄를 생각지도 않고 살았다 해도 그것으로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내가 왜 가난한 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의로는 도무지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만이 자기 심령이 가난해 질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에 이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말고 자기가 노력을 해서 구원을 받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절대로 가난하지 않습니다.

 

없습니다.

죄를 한 번도 안 져본 아담도 실패를 했습니다.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만이 그리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그 어떤 방법도 없다는 것을 아는 사람만이 다윗과 같이 자기를 가난한다고 탄식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돕지 않으면 안 됩니다

부자는 하나님이 돕지 않아도 자기 스스로 예배도 하고 기도도 하고 찬송도 하고 이웃 사랑도 하고 십일조도 하고 또 교회에서 무엇을 한다고 하면 스스로 나서서 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을 하지 못할 정도로 자기 처지와 형편이 변해 본 사람은 자기가 얼마나 가난한가를 깨닫고 은혜를 구할 수 있습니다.

 

부자는 자기가 천국갈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자는 자기 노력으로 절대로 천국에 갈 수 없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도움을 간절히 구하게 됩니다. 지금도 교회 안에서 모든 것을 다 하는 사람은 사실 하나님의 은혜가 그렇게 가슴에 와 닫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게 되어 있습니다.

 

제가 못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 아닙니다.

다윗은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사람이었지만 자기 영혼의 구원에 있어서는 그런 것으로는 도무지 해결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자기 스스로 가난하다고 하면서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선하고 의롭게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사는 것은 좋은데 문제는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그 행위로 인하여 그것이 재물이 되어 마음에 부자가 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교회 안에서 나는 모든 예배를 하고 있고 저 사람은 예배도 하다가 안 하다가 한다면 내 마음에 어떻게 되겠습니까? 스스로 생각하기에 나는 천국에 갈 사람이고 저 사람은 저렇게 해서 어떻게 천국에 가겠어! 마음에서 그렇게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은근히 자기 행위를 보고 또 다른 사람의 행위를 보면서 자기 교회를 보고 또 다른 교회를 보면서 자기들은 스스로 그런 눈에 보이는 것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사로잡히게 됩니다.

 

안 됩니다.

안 된다는 것이 마음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은연중에 그런 생각이 자리하고 있고 그것으로 인하여 그런 행위들을 보면서 마치 구원을 받은 성도로 자기를 스스로 판단을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별로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구원은 오직 믿음입니다.

그런데 부자가 되어 있는 사람을 어떻게 믿음만 가지고 구원을 받을 수 있느냐고 말 합니다 그들이 얼마나 간교한가를 알아야 합니다. 제가 행위로 안 된다고 하면 그러면 강도를 하고 살인을 하면서 막 살아도 되냐고 따집니다.

 

왜 비교를 해도 그런 것에 비교를 합니까?

그들의 마음이 얼마나 부자가 되어 있는 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입니다

자기들이 안 하는 강도 살인을 말하고 있고 자기들이 못하고 있는 행위에 대해서는 아무 이야기를 안 합니다. 마태복음에서 부자 청년에서 예수님께서 네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고 나를 따르라고 한 그 말씀을 행하지도 못하면서 강도 살인을 이야기 합니다.

 

얼마나 교묘합니까?

그런 사람이 어떻게 그 심령이 가난해 질 수 있습니까?

자기가 조금 하고 있는 것을 주장하면서 자기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말을 하지 않고 강도 살인을 비교를 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5:41-42절을 보면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이것을 할 수 있습니까?

물론 강도 짓 안하고 살인은 안 하지만 그들이 과연 예수님께서 말씀 하신 이것을 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아무도 못 합니다 제가 복음을 위해 쓰겠다고 꿔 달라고 해 보았지만 그렇게 장담하는 그들은 한 사람도 이 일에 대해서 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그냥 쓰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주님의 복음을 위해 쓰겠다고 하는데도 못 주는 그들이 자기가 안 하는 강도 살인 등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은 이 세상 사람들도 안 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기독교인이나 천주교이이나 불교인이나 죄를 짓는 것은 거의 대동소이합니다.

 

가난해 지시기 바랍니다.

내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니 그렇게 하고 있는 사람은 절대로 가난해 질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내 노력으로는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을 아는 성도는 그 심령이 다윗과 같아서 하나님이여 나를 도우소서 가난한 자를 잊지 말아 달라고 호소를 할 수 있습니다.

 

천국은 가난한 자의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율법으로 부자가 되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하는 악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그들이 만약 율법의 고운 옷을 입고 있지 않았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사모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자기 스스로 아무 부족함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시편51:17절을 보면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내 행위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입니다

이 제사는 바로 교인들이 행하고 있는 교회 안에서 하는 모든 행위입니다 바로 이스라엘이 이 제사에 빠져 스스로 부자가 되어 자기들이 재물이 썩고 자기들의 의에 옷이 좀 먹고 있는 줄을 몰랐습니다.

 

왜 상했습니까?

내 죄가 보이기 때문에 상한 것입니다

내가 도저히 할 수 없다는 자기 한계를 알기 때문에 천국에는 너무도 가고 싶지만 갈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보면서 심령이 상해 있습니다.

 

제사에 너무 빠지지 마세요.

그 제사가 여러분의 마음을 부자로 만들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한다고 하는 그 모든 행위들로 인하여 부자가 되고 있고 은혜를 사모하지 못하게 방해를 하고 있습니다. 내가 안 된다는 것을 아는 성도만이 통회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누가 하나님을 믿으면서 잘 하고 싶지 않겠습니까?

아니 할 수만 있다면 사도 바울보다 더 잘하고 싶고 할 수만 있다면 바나바가 자기 전 재산을 내 놓은 것 같이 나도 하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그러나 사단은 교묘하게 그 마음을 이용하고 있다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제사를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미가6:7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수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를 인하여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천천의 숫양과 만만의 강수 같은 기름을 여러분이 드릴 수도 없지만 설령 드린다 해도 그것으로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고 오히려 상한 심령을 기뻐하시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죄인이라고 하는 그래서 구원을 받을 수 없어 간절히 은혜를 구하는 그 심령을 주님께서 기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선하고 의롭게 사세요.

그러나 그것으로 인하여 부자가 되는 순간 여러분의 영혼은 사망으로 갑니다. 내가 천천의 숫양과 만만의 강수 같은 기름을 드린다 해도 그것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기에 다윗은 자기를 철저하게 가난하다고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내 행위는 나를 부자로 만듭니다.

설령 흠이 없이 내가 신앙생활을 했다 해도 그것이 내 구원에 보탬이 된다고 생각을 하는 사람은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내가 어떤 것을 해도 안 된다는 성도만이 심령이 가난하여 주의 인자하신 은혜를 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첫 말씀입니다

성도라면 이 내 심령이 어떤 가를 늘 생각하시고 혹시라도 내 행위로 교회 안에 있는 직분으로 인하여 부자가 되지 않게 나를 스스로 채찍질 해가면서 천국을 사모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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