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강,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고린도전서14:1-5절을 보면
“사랑을 따라 구하라 신령한 것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듣는 자가 없고 그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니라 그러나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안위하는 것이요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방언을 말하는 자가 만일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통역하지 아니하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니라”
방언입니다
그리고 예언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12장에서 은사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14장에서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고 있는 성도들에게 사랑을 따라 구하라고 말씀을 하면서 예언과 방언에 대해서 다시 자세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입니다
이미 한번 설교를 했던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제 다시 쓰고 있습니다. 왜 다시 쓰고 있는가 하면 방언과 예언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하게 말씀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전에 썼던 말씀을 보니까 다시 써야 할 필요성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 방언에 대해서 설교를 쓰면서 찾아보니까 다시 써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고린도전서12장을 통해서 은사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은사 중에 예언의 은사도 있고 방언의 은사도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우리에게 은사를 주시는 가는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은사를 주십니까?
유익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에 대해서 유익하게 하려 함인가 하면 생명에 대해서 유익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성도가 영의 생명을 얻는데 있어서 유익함을 주려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왜 우리가 성경을 보고 있습니까? 영생을 얻기 위해서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영생을 얻으려고 성경을 보고 있는데 그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해서는 예언의 은사를 받은 사람도 있고 방언의 은사를 받은 사람도 있어서 그들이 은사를 따라 나타냄을 통해서 생명을 얻는 그 일에 유익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입니다
그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교회 안에 있다고 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해서 다 생명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사랑해 주셔야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고린도전서13장을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바로 이 생명입니다
이 생명에 대해서 전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보내 주시고 그 성령의 나타내심을 따라 우리에게 은사를 주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왜 우리에게 은사가 나타나는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또한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은사와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말하고 있는 은사는 전혀 다릅니다.
쉽게 말씀을 드립니다.
사람이 성경을 봅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영생을 얻을 수 있는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성경을 수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지만 모두가 문자에 사로 잡혀서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이스라엘을 통해서 예표로 보여 주셨고 그래서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고 난 후에 성령을 보내 주시고 그 성령의 나타내심을 따라 우리에게 은사를 주시고 복음을 전할 수 있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누군가 은사를 받았습니다.
은사를 받기 전에는 반드시 먼저 성령이 오셔야 합니다. 성령이 오신 성도를 통해서 은사가 나타나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은사를 통해서 무엇을 나타내고 있는가 하면 진리에 대해서 나태내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은사주의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실 은사주의라는 말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왜 성경적이지 않은가 하면 그것은 주의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은사를 행한다 해서 그가 은사주의라는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다만 이 말이 왜 교회 안에서 나오고 있는가 하면 성경적이지 않은 성경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을 나타내면서 은사라고 하니까 그런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은사가 있습니까?
저는 분명히 말씀을 드립니다. 이 시대도 은사는 있다고 믿습니다. 성령의 나타내심을 통해서 은사가 나타나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모든 은사는 역시 이 시대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다만 그렇습니다.
이 은사를 아무나 받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아니 이 은사가 아무에게서나 나타난다고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니까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해서 성령을 받은 모든 성도들에게서 은사가 나타난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먼저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고린도전서12장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은사에 대해서 말씀을 하면서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고린도교회에 구원을 받은 형제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성령을 받아서 모두가 은사를 받았다면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씀을 하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은사입니다
그러니까 고린도전서12장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은사입니다 그 은사를 성령을 받은 모든 사람이 받는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누구는 은사가 나타날 수 있고 누구는 은사가 전혀 나타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해서 영생을 얻어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은사와 영생입니다
영생을 받은 모든 사람이 은사를 받는 것은 아닙니다. 누구는 나타날 수 있고 누구에게서는 전혀 나타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특히 방언의 은사를 이야기를 하면서 마치 교회 안에 있는 믿음이 성도 전체가 방언을 해야 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절대 아닙니다.
방언을 아무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 역시도 방언을 하지 못 합니다.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주술적인 방언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방언은 지난번에 설교에서도 말씀을 했지만 어렸을 때부터 했습니다. 그런 방언에 아니라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방언의 은사를 받지 못했다는 것을 말씀을 합니다.
방언입니다
아주 특별한 은사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니 방언 뿐 아니라 예언이라든지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모든 은사가 그렇습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을 받으면 은사를 당연히 받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은사는 여러 가지입니다
그런데 성령은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의 뜻을 우리가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은사는 여러 가지입니다 그것을 고린도전서에서 사도 바울이 일일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령은 같습니다. 무슨 말씀인가 하면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은사가 나타남으로 해서 무엇을 전하고 있는가 하면 진리에 대해서 전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방언의 은사입니다
그를 통해서 진리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예언의 은사입니다 그를 통해서 진리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병 고치는 은사입니다 실제 병을 고치는 것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아는데 있어서 병이 든 자에게 진리가 전해짐으로 해서 그가 병을 고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쉽게 말씀을 드립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소경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소경이 있습니다. 그런데 병 고치는 은사가 있는 사람이 그에게 진리를 전함으로 해서 그가 성경을 볼 때 영의 말씀이 깨달아짐으로 해서 구원을 받았다면 병 고치는 은사를 통해서 진리가 나타났고 그럼으로 해서 구원을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은사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은사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병을 고치는 것도 실제 육체의 병을 고치는 것을 은사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 육체의 일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영의 일입니다 육체의 병이 아니라 영적으로 병이 든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은사입니다
또 이렇게 성령의 나타내심을 통해서 은사가 행해지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은사와 전혀 다른 샤머니즘적인 행위를 하면서 그것을 보고 은사라고 하고 있고 그런 샤머니즘을 보면서 자기가 성령을 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은사를 다 주십니까?
그것이 아니라 진리를 나타낼 수 있는 사람에게 은사가 행해지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의 생명을 얻어서 구원을 받을 사람에게는 굳이 은사가 나타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런데도 은사를 오해를 해서 마치 모두에게 은사가 나타나야 하는 것으로 말을 하고 있습니다.
12장에서 은사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은사보다 더 중요한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라는 것을 13장을 통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고 있는 성도들이 교회 안에서 진리를 전하고 있고 그것을 사도 바울이 사랑을 따라 구하라 신령한 것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언입니다
누구나 예언을 할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성령의 나타내심을 따라 예언을 하는 사람이 있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은 너희가 예언을 하려고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예언을 해야 하는가를 알고 예언을 하려고 해야 합니다.
“사랑을 따라 구하라 신령한 것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사랑을 추구하십시오. 신령한 은사를 열심히 구하십시오. 특히 예언하기를 열망하십시오.”
사랑을 따라 구하라
어느 사랑을 따라 구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고린도전서13장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았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따라 구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은사를 왜 주십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타내기 위해서 우리에게 주시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언의 은사나 방언의 은사를 주시는 단 한 가지의 목적은 바로 그 은사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은 성도가 구해서 받은 은사만이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은사를 받아 행할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번역입니다
저는 이 시대 우리가 보고 있는 성경 중에서 방언의 은사를 받은 사람이 번역한 성경은 한글개역성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사랑을 따라 구하라는 이 말씀도 한글개역성경만이 바로 번역이 되어 있고 다른 번역을 보면 이 사랑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사랑을 말씀을 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아닙니다.
13장이 무엇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사랑에 따라 구하라는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사랑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바로 방언의 은사를 받은 사람과 그렇지 않는 사람의 차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고 한글개역성경이 그렇게 반역이 되어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성경의 번역입니다
다른 성경을 번역한 사람들도 역시 히브리어와 헬라어에 정통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안다고 해서 그들이 다 방언을 받은 것은 아니라고 믿고 있습니다. 방언에 대해서 말씀을 할 때 다시 말씀을 드리겠지만 자기가 언어의 능력이 조금 있다고 해서 그것을 방언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고린도전서10:4절을 보면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신령한 것입니다
무엇이 신령한 것입니까? 계속해서 말씀을 드리지만 고린도전서13장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해서 말씀을 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신령한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알아가는 것을 신령한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해 주셔야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은사를 말씀을 하면서도 신령한 것을 사모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을 사모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 시대는 성경도 번역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신령한 것이 무엇인가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교회 안에서 예언을 한다고 하고 있고 방언을 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정말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베드로후서1:19절을 보면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특별, 일반적인 것과 아주 다르다고 사전에서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언을 하는 것은 아주 특별한 일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예언을 하는 사람들이 그리고 방언을 하는 사람들이 일반적이지 않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은사입니다
일반적이라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을 받을 수 있게 그러니까 진리로 인도함을 받아 구원을 받을 수 있게 성령을 주시는 것과 교회 안에서 은사를 받는 것은 또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은사를 너무 쉽게 생각을 하고 있고 아무나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예언입니다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다고 사도 베드로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언이라는 것은 마치 어두운데 비추는 등불과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이성으로 성경을 보면 어둡습니다.
그런데 예언의 은사가 있으면 어떻습니까?
사람의 이성으로는 어두운데 예언의 은사가 있음으로 해서 그 어두운데서 비추는 등불과 같이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는 것과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아무에게나 그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은사를 받은 성도에게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예언을 하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일반 사람들은 성경은 보면 어두움에 있습니다. 그러나 특별히 예언의 은사를 받으면 그 어두운데서 마치 새벽에 샛별이 떠오르는 것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언을 해야 합니다.
성경을 보면 그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볼 수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신령한 것을 성경에서 보아야 합니다. 그 신령한 것이 무엇인가 하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은 로마서를 시작하면서 복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에서 은사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은사를 아무나 받는 것으로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특히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조금 안다고 해서 자기에게 방언의 은사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그 원어의 뜻을 아는 것으로 예언을 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신령한 것을 사모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아무리 언어의 능력이 있고 그것으로 원어의 뜻을 알고 성경을 해석한다고 해도 신령한 것을 모르고 있다면 그는 예언을 하는 자도 아니고 방언을 하는 자도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정말 이 시대 목사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뜻도 모르는 그들이 세상의 이성적 지식으로 미혹을 하고 있습니다.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듣는 자가 없고 그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방언으로 말하는 사람은 사람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말하는 것입니다. 아무도 그것을 알아듣지 못합니다. 그는 성령으로 비밀을 말하는 것입니다.”
방언
이 방언은 참으로 말도 많습니다. 특히 이 시대 교회 안에서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을 하는 것으로 자기들이 방언을 말한다고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방언은 언어입니다 그러니까 외국어로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것을 방언이라고 합니다.
이 시대 두 부류가 있습니다.
한 부류는 주술적으로 알아듣지도 못하는 언어로 이야기를 하는 것을 방언이라고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한 부류는 이성적 지식이 있습니다. 그래서 언어의 능력에 있어서 자기가 외국어를 할 수 있는 것을 가지고 방언이라고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늘은 주술적인 것은 더 이상 하지 않겠습니다.
지금 이 시대 교회 안에서 아무나 하고 있는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을 하는 것은 사실 무당이 하고 있는 샤머니즘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자기가 외국어를 하고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하는 것으로 그것으로 성경을 보고 직역을 하는 것으로 방언의 은사가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가지고 은사라고 한다면 이 세상에 지적인 능력이 있어서 외국어를 하고 있는 모든 사람은 다 은사를 받은 사람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사람의 이성과 지적인 수준을 가지고 은사라고 하는 것은 성경을 너무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히브리어를 합니까?
헬라어를 능통하게 하고 있습니까? 그가 성경을 직역을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을 가지고 방언이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가 알기에는 이 시대 그 정도의 지적인 수준이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리고 심지어는 그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가 하면 스스로가 성경을 다시 번역을 하고 있고 자기가 직역한 성경이 옳다고 주장하고 그것만을 보고 있습니다.
방언이 아닙니다.
그것은 외국어의 지적인 이성적인 지식입니다 그것은 누구라도 공부를 열심히 하면 어느 정도는 할 수 있습니다. 언어의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히브리어를 그리고 헬라어를 공부를 해서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방언입니다
사도 바울이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도 오해를 해서 자기가 방언을 하면 사람들이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알아듣는다고 말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누군가 방언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먼저 은사에 대해서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은사는 복음을 전하는데 유익하게 하기 위해서 각 사람들에 성령의 나타내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를 나타내기 위해서 주신 은사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사도 바울은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도 사람들이 오해를 해서 자기들이 방언을 하면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고 하나님께서만 알아듣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입니까?
그것이 아닙니다. 누군가 방언을 하고 있습니다. 그 방언은 외국어라고 이제까지 말씀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방언은 진리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방언을 하면 당연히 사람은 알아듣지를 못 합니다. 쉽게 말씀을 드립니다. 한글개역성경은 방언의 은사를 받은 사람이 번역을 했습니다. 이 성경을 알아듣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골로새서2:2절을 보면
“이는 저희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원만한 이해의 모든 부요에 이르러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라”
누군가 방언을 합니다.
그 방언은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나라에도 방언의 은사를 받은 사람이 한글개역성경을 번역을 했습니다. 이 시대를 보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이 이 한글개역성경을 보고 하나님의 비밀인 예수 그리스도를 깨닫고 있습니까?
바로 이 말씀입니다
방언을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씀인가 하면 방언을 해서 성경을 번역을 하면 그 성경을 보고 사람들이 문자 그대로 하나님의 비밀인 예수 그리스도를 깨달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을 통해서 성경을 번역하게 하시고 있습니다.
방언을 말하는 자입니다
그 영으로 비밀을 말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 비밀을 말하고 있는가 하면 하나님의 비밀인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제가 이제까지 구약에서 율법과 선지자들의 말씀을 해석을 하면서 그 안에서 하나님의 비밀인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을 했습니다. 그것이 왜 가능한가 하면 바로 이렇게 방언을 하는 자가 그 영의 비밀을 말함으로 해서 한 성령 안에서 역사를 하면 그것을 볼 수 있게 했다는 말씀입니다
그 영으로 비밀을 말 합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성령의 감동으로 하나님의 비밀인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방언의 은사를 가진 자가 번역을 해 놓으면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 주신 자만이 그 성경을 바로 풀 수 있습니다. 바로 이렇게 방언은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해서 이는 알아듣는 자가 없고 그 영으로 비밀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그렇게 방언을 말하고 있습니다. 아니 방언의 은사가 있어서 성경을 번역을 했습니다. 그 성경은 반드시 진리로 인도함을 받아서 하나님의 비밀인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을 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그 영으로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 나란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성령을 받았다면 그 성경을 보고 하나님의 비밀인 예수 그리스도를 알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은사를 무시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히 방언의 은사를 주신 사람이 한글개역성경을 번역을 했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교회 안에서 신학을 공부를 하고 지성이라고 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비밀인 예수 그리스도가 너무도 잘 나타나고 있는 이 한글개역성경을 폄하를 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알고 있는 알량한 히브리어의 지식으로 직역을 하면서 한글개역성경이 오류가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오류가 있습니까?
교만한 말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는 우리가 보고 있는 한글개역성경을 보고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하나님의 비밀인 예수 그리스도를 깨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알량한 이성적 지식으로 히브리어를 그리고 헬라어를 조금 한다고 해서 은사자에 의해서 번역이 된 성경을 폄하하고 있는 사람은 악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입니다
방언의 은사를 받은 자가 번역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 성경을 보고 알아듣는 자가 없습니다. 왜 없는가 하면 그들이 성령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방언을 하는 사람이 성령의 감동으로 그 영으로 비밀을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 성경을 보고 알아듣지를 못하는 사람들이 성경에 오류가 있다고 하면서 계속해서 폄하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감히 말씀을 드립니다.
만약에 우리 복음 안에서 교제를 하는 사람들 중에서 이 성경을 폄하를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함께 해서는 안 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방언을 말하는 자가 사람에게 하지 않고 하나님께 한 그 성경 그러니까 그가 영으로 하나님의 비밀을 말한 그 성경을 폄하를 하면서 어떻게 함께 교제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까? 그는 복음이 없는 자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누가 알아듣습니까?
방언을 말하는 자가 성령의 감동으로 했습니다. 함께 성령의 감동을 받고 있다면 알아들을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 성령 안에서 역사를 하지 않으면 그리고 사람의 지식으로 히브리어를 조금 안다고 직역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성경을 폄하를 하면서 오류가 있다고 말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안위하는 것이요”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러나 예언하는 사람은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는 덕을 끼치고, 위로하고, 격려하는 말을 합니다.”
방언입니다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을 우리는 잘 이해를 해야 합니다. 그가 성령의 감동으로 성경을 번역을 했습니다. 굳이 번역이 아니라 직접 방언을 한다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방언만 듣고는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제가 이해하기 쉽게 성경을 가지고 말씀을 합니다.
누군가 한글개역성경을 번역을 했습니다. 그것은 방언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고 알아듣는 자가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솔직히 한글개역성경을 보고 하나님의 비밀인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하는 자가 거의 없습니다. 바로 이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언을 하는 자입니다
당시에는 사도들이 거의 다 이스라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굳이 방언을 듣고 예언을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성경을 기록했습니다. 물론 헬라어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당시 문화가 헬라 문화고 헬라어를 많이 사용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쓴 성경을 보면 그 성경을 보고 예언을 할 수 있었습니다.
예언은 앞에서 말씀을 했습니다.
이제 그 예언을 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을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도 바울이 헬라어로 성경을 기록했습니다. 그 성경을 보고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샛별이 떠올랐습니다.
성경에서 예언을 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쉽게 말을 해서 방언의 은사를 받은 사람이 성경을 기록했습니다. 그러면 그 성경을 보고 이제 어두운데 비취는 등불과 같이 날이 새어 샛별이 우리 마음에 떠올랐습니다. 그가 예언을 하면 누구에게 하는가 하면 사람에게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비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성경에서 알았습니다. 그가 이제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복음을 전하는 일은 누구에게 하고 있는가 하면 사람에게 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예언을 함으로 해서 교회 안에서 덕을 세우며 권면하는 것이며 안위를 주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방언으로 말하는 사람은 자기에게만 덕을 끼치고, 예언하는 사람은 교회에 덕을 끼칩니다.”
우리는 성경을 정말 잘 이해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성경을 너무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 방언에 대해서도 그렇고 사도 바울이 지금 고린도전서14장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방언과 예언에 대해서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거의 성경을 문자적으로 보고 그대로 말을 하고 있습니다.
방언을 하는 자입니다
왜 자기의 덕을 세웁니까? 그가 방언을 하는 것을 사람들이 알아듣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왜 알아듣지를 못하는가 하면 그 방언은 마치 복음의 비밀을 모르는 사람이 한글개역성경을 보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한글개역성경을 번역을 해 놓았으면 그는 이미 하나님의 비밀인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 말씀입니다
그는 복음의 비밀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의 덕을 세운다고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가 방언을 한다는 것은 성령의 감동으로 진리로 인도함을 받고 있기 때문에 비록 사람들이 알아듣지는 못할지라도 자기에게는 덕을 세운다는 말씀입니다
예언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교회에 덕을 세운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씀을 해서 제가 한글개역성경을 보고 하나님의 비밀인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서 교회 안에서 전하고 있습니다. 제가 전하는 복음을 듣고 사람들이 구원을 받고 있습니다. 바로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군가 예언을 합니다.
그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예언의 말씀을 듣고 구원을 받는다면 그는 교회에 덕을 세우는 사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특별히 예언을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언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야 하고 예언을 함으로 해서 교회에 덕을 세우고 그 안에 구원을 받는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방언을 말하는 자가 만일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통역하지 아니하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여러분이 모두 방언으로 말할 수 있기를 내가 바랍니다마는, 그보다도 예언할 수 있기를 더 바랍니다. 방언을 누가 통역하여 교회에 덕을 끼치게 해주지 않으면, 방언으로 말하는 사람보다, 예언하는 사람이 더 훌륭합니다.”
초대교회입니다
당시 처음 복음을 들었던 사람들은 물론 이스라엘 사람이 가장 많았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이 이방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당시는 헬라 사상이 있어서 사람들이 헬라어를 사용을 했습니다. 쉽게 말을 하면 우리나라 일본강점기 때에 한국어와 일본어를 동시에 사용을 했습니다. 그런 시대적 배경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나는 너희가 다 방언을 말하기를 원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마치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다 방언을 해야 하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로마 시대는 수많은 나라들이 로마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그런 혼잡한 언어 속에서 복음을 전하려 하다보니까 사도 바울이 나는 너희가 다 방언을 하기를 원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합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있는 성도들에게 예언을 말씀을 하면서 특별히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교회 안에서 성경을 보고 예언을 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 주셔서 성령의 나타내심으로 진리로 인도함을 받아야 가능한 일입니다
예언을 하시기 바랍니다.
저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시대 복음을 듣고 있는 우리 성도님들이 특별히 예언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바로 알고 진리로 인도함을 받아서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으면 좋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언을 해서 한 성령 안에서 진리로 인도함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방언을 하는 자입니다
그가 통역을 하지 못하면 예언을 하는 자만 못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누군가 일본어를 할 수 있습니다. 그가 방언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알아듣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알아듣지를 못하게 하고 있고 그것을 통역을 하지 못하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통역입니다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 사이에서, 상대방의 말을 번역하여 그 뜻을 알게 해 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방언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언어라는 것은 참으로 표현이 어렵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뜻을 정확하게 전달할 수 없다면 그는 예언하는 자만 못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은사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바로 전해야 합니다. 그 뜻을 바로 전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방언의 은사 정말 필요합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뜻을 모릅니까?
그것은 예언하는 자만 못 합니다. 예언하는 자는 하나님의 뜻을 다 알고 교회 안에서 덕을 세우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예언하는 자의 말을 듣고 구원을 받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의미에게 사도 바울은 방언을 하는 자가 예언을 하는 자와 같이 그 뜻을 바로 전하지 못하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은사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은사를 통해서 진리를 나타내시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성령이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라고 할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예언하는 자의 말씀을 바로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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