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2:8절을 보겠습니다. (신 265쪽)
“혹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가르치는 은사입니다
은사는 물론 다 중요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그것이 우리 몸으로 드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가 되기 때문입니다 은사를 무시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은사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종교적인 샤머니즘에 빠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천국 복음에 대해서 가르치셨습니다. 주님께서 먼저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를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부탁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주님이 부활을 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주님의 부탁입니다
우리는 모두가 가르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물론 어느 사람은 복음을 듣고 성경을 볼 때 예언이 다 보인다 해도 그것을 가르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할 수만 있다면 가르치는 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가르침으로 해서 복음을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가르치는 자가 너무 적습니다.
초대 교회입니다
오순절이 임하여 성령이 오셨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120여 문도가 성령을 함께 받았습니다. 그리고 사도들이 복음을 전할 때 성령이 오심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초대교회에는 가르치는 자들이 많았고 그들이 사방으로 가서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이 시대는 기독교라는 종교에서 가르치는 자는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그리나 복음을 알고 가르치는 자는 너무 적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가르치는데 힘써야 합니다. 아니 언제 사람을 만나더라도 내가 가르칠 수 있는 정도의 하나님의 깊은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 내 안에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가르치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려면 먼저 내 안에 모든 좋은 것이 가득 차 있어야 합니다. 자기에게 좋은 것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는 사람은 가르치는 자로서의 자격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가르치는 자들이 좋은 것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저주를 받게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모든 좋은 것입니다
그것은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맺어 주신 열매며 그것을 내 것으로 가짐으로 해서 구원을 받습니다. 성경은 영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이 우리에게 있어 가장 좋은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영생을 얻는데 있어서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하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데는 율법을 지키지 않은 조건이 따르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그에게는 모든 좋은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율법을 단 한 가지라도 지키고 있는 사람은 가르치는 자로서의 자격이 없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율법의 행위 아래 있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져 있고 그 사람은 저주를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입니다.
우리가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가에 대한 명확한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성경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거의 모든 사람이 성경을 자기 지식에 의지를 해서 보고 있다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성령이 오시지 않고는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소경과 마찬가지지만 교회 안에서 누군가를 가르치면 마치 성령이 오신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내가 믿는다고 할 때는 반드시 율법을 지키지 않겠다는 조건이 따라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율법으로도 생명을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생명을 얻을 수 없는 방법을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그 믿음으로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가르치는 자는 율법을 지켜서는 안 됩니다
교회입니다
여자가 가르치는 것을 금하고 있습니다. 생리적인 여자가 가르치는 것을 금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이 가르치는 것을 금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직 율법 아래 있어서 은혜 아래로 들어오지 못하고 있는 사람은 가르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을 보고 어떻게 합니까?
진짜 생리적인 여자가 가르치는 것을 막고 있습니다. 특히 어느 교단은 여자 목사를 안수도 주지 않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은 생리적인 여자와 남자를 차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동등한 사람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생리적인 여자가 가르치는 것을 금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어떻게 합니까?
전도사는 할 수 있게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일학교 교사는 할 수 있게 하고 있습니다. 또 구역에서도 가르치는 자로 세우고 있습니다. 성경을 자기들 마음대로 편리한 대로 바꾸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자기들의 종교를 위해서라면 성경말씀을 바꾸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누가 여자입니까?
사도 바울이 우리 성도들에게 깨어 믿음에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믿음이 있는 성도를 남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생리적으로 남자냐 여자냐는 중요하지가 않습니다. 반드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이 있는 성도를 사도 바울이 깨어 믿음에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믿음이 있는 성도입니다
우리는 가르치는 자로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합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먼저 내가 믿음에 서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모두가 율법을 지킴으로 해서 믿음에 서 있는 성도가 거의 없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욱 이 복음을 전하는 일에 힘써 행해야 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이것이 우리 몸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영적 예배입니다
우리는 예배를 하는 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종교적인 형식에 맞추어서 드려지는 예배가 아니라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지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이 시대는 더욱 복음이 있는 자가 없기 때문에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가르치는 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할 수 있다면 해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저 역시도 사람을 만나면 늘 복음에 대해서 전하고 있습니다. 물론 한두 시간을 전한다고 해서 그가 복음을 받아들인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라도 전하다 보면 주님께서 역사를 하실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전도의 미련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성도들을 통해서 복음을 전파하시고 있습니다. 이 시대 모두가 다른 복음에 빠져 있는데 아주 적은 숫자지만 우리를 긍휼히 여겨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은혜를 받은 자로서 할 수 있다면 기회가 되는대로 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권면하는 사람이면 권면하는 일에 힘쓸 것이요, 나누어 주는 사람은 순수한 마음으로, 지도하는 사람은 열성으로, 자선을 베푸는 사람은 기쁜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권위하는 자는 권위하는 일로
다른 번역에서는 권면이라고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또 격려라는 단어로도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물론 다 비슷한 어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늘 한글개역성경의 번역을 먼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왜 한글개역성경만 권위로 번역이 되어 있는가를 생각하면서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비슷합니다.
사실 권면이라고 해도 틀리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의 본뜻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한글개역성경에 번역이 되어 있는 단어는 제가 방언의 은사는 없지만 아마도 가장 정확하지 않은가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런 단어 하나도 우리는 깊이 생각을 해야 합니다.
권위입니다
사전에서는 두 가지의 뜻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통솔하여 이끄는 힘과 특정 분야에서 뛰어나다고 인정을 받고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능력을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전자보다는 후자의 뜻이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권위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후자의 뜻입니다
특정 분야에서 뛰어나다고 인정을 받고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능력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권면이나 격려라는 단어는 적합하지가 않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권면이라는 단어와 격려라는 단어가 다 사용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은사를 말씀을 하면서 권위라는 단어로 번역이 되어 있기에 우리는 더욱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은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시대 우리에게도 은사를 주시고 있습니다. 아니 우리는 이미 태어날 때부터 다 받았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오심으로 해서 우리가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은사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것이 각 사람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기도 하고 있고 또 같은 은사를 행하기도 하고 있습니다.
디도서2:15절을 보겠습니다. (신 349쪽)
“너는 이것을 말하고 권면하며 모든 권위로 책망하여 누구에게든지 업신여김을 받지 말라”
디도입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와 디도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을 장로회의에서 안수를 하였습니다. 사람들이 디모데전후서와 디도서를 목회서신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두 사람에게 보낸 서신의 내용을 보아도 그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는
디도에게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먼저 바른 교훈에 합한 것을 말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 있는 젊은 남자들에게 권면하고 근신하게 하되 범사에 네 자신으로 선한 일에 본을 보여 교훈의 부패치 아니함과 경건함과 책망할 것이 없는 바른 말을 하게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는 이것을 말하고 권면하며 모든 권위로 책망하여 누구에게든지 업신여김을 받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권위로 책망하여 누구에게든지 업신여김을 받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디도는 바른 교훈을 다 알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 교훈을 가지고 권위를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디도를 장로로 세웠습니다. 지금과 같이 신학을 공부를 하고 나서 라이선스를 받으면 안수를 받았던 것이 아닙니다. 디모데나 디도는 헬라인이지만 사도 바울로부터 복음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에게도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그것을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과 같이 성경의 모든 비밀을 알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인정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나 디도에게 서신을 보낸 그 자체가 그들이 복음의 비밀을 알고 있는 장로라는 것을 인정했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인정이 되기 때문에 디도에게는 권위가 있었습니다. 어떤 사회적인 지위의 권위를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아니 장로로서의 권위를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받아서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함을 받은 것을 인정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권위입니다
모든 권위로 책망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시면 그가 모든 진리 가운데로 너희를 인도하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디도는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그는 세상 말로 하면 이 분야에서 정통한 사람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함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는 진리가 아닌 것을 알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그것이 진리인지 진리가 아닌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디도는 성령을 받음으로 해서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함을 받아서 권위를 할 수 있습니다. 왜 권위를 할 수 있는가 하면 그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권위입니다
그것이 어디서 나오고 있습니까? 성령이 오심으로 해서 그가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함을 받고 있기 때문에 권위가 나오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 무당과 같이 자기들이 은사가 있다고 하면서 샤머니즘적인 행위를 하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들은 자기가 하고 있는 샤머니즘적인 행위로 세상적인 권위를 나타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것이 아닙니다.
권위는 반드시 성령이 오셔야 합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디도에게 모든 권위로 책망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책망이라고 하니까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진리에 성령이 오시면 세상에 대해서 책망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입니다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디도는 성령이 오셨습니다. 그래서 모든 권위로 책망을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간적인 것을 가지고 책망을 하라는 말씀이 아니라 성령을 거스리는 일에 대해서 책망을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권위 하는 일입니다
내가 권위를 하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먼저 내 자신이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함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볼 때 저 사람은 성령의 감동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 때 그가 말하는 것이 사람의 말이 아니라 성령의 책망이라는 것을 알 때 권위를 할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은사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는 은사를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권위를 하라고 하니까 성령이 오시지도 않은 사람들이 자기가 목사 안수를 받았다고 해서 그리고 어느 은사가 나타난다고 해서 권위를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권위 할 수 있는 자격이 없다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아무나 권위합니까?
도리어 그가 권위를 함으로 해서 사망에 이른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디도는 사도 바울로부터 복음을 듣고 바른 교훈을 배웠고 또 그에게도 성령이 오셔서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함을 받고 있는 사람입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고 있기 때문에 교회 안에서 잘못되는 일이 있으면 그것에 대해서 책망을 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권위입니다
그 분야에서 먼저 정통해야 합니다. 세상 말로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는 그가 성령을 받으면 권위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이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를 하고 있기 때문에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을 권위 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디도서2장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늙은 남자입니다. 늙은 여자입니다. 젊은 여자입니다. 그리고 젊은 남자입니다 그리고 당시 초대 교회에는 종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권위를 하고 있습니다. 무엇으로 권위를 하고 있는가 하면 그가 사도 바울로부터 장로회의에서 안수를 받은 것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를 하심으로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서 권위를 하고 있습니다.
모든 권위입니다
성경의 모든 비밀을 알면 그것을 가지고 권위를 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면 알 수 있지만 디모데나 디도는 나이가 적었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가지고 오해를 하는 사람들이 있고 목사 안수를 받으면 자기가 뭐가 된 줄로 알고 세상적으로 권위를 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 아무리 목사라고 해도 아니 그가 가르치는 자라고 해도 세상의 도덕을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목사라는 것으로 마치 가장 어른의 대우를 받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비록 가르치는 자라고 할지라도 교회 안에서 그런 권위를 내세워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성경을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권위라는 단어가 나오고 또 디도에게 모든 권위로 책망하되 누구에게든지 업신여기지를 말라고 말씀을 하니까 교회 안에서 자기가 가장 어른이나 되는 것으로 대우를 받으려고 하는 목사들이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지금 그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예전에 작은 교회에 나갔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에 목사가 좀 젊었습니다. 그리고 그 교회에 처갓집 식구들이 많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장인이 그 교회를 세우는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장인이 자기에게 목사 대우를 조금이라도 소홀히 하면 자기 권위가 손상이 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아주 기분나빠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 권위가 아닙니다.
세상의 도덕을 무시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 나이가 든 사람이 있으면 존경을 해 주어야 합니다. 비록 내가 가르치는 자라고 해도 내가 가르치는 것이 내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사이기 때문에 그것으로 권위를 세우려고 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가르치는 자입니까?
그가 성경의 모든 비밀을 알고 있습니까?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더욱 더 겸손해야 하는데 이 시대는 그저 목사 안수만 받으면 자기가 대단한 것이 된 것으로 생각을 하고 세상적으로 권위를 세우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누구에게든지 업신여김을 받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디도는 성령의 감동을 받고 있는 사람입니다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함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복음을 전해보아서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전하는 복음을 듣고 업신여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업신여김을 받습니다.
이 복음의 비밀을 모르는 사람에게 업신여김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설령 누군가 너를 업신여기더라도 업신여김을 받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권위로 누구에게든지 업신여김을 받지 말라는 말씀이 아니라 우리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책망을 하면 업신여김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입니다
권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권위를 세상에 대해서 책망을 하면 반드시 업신여김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때 권위를 내 세우라는 것이 아니라 반어적으로 업신여김을 받지만 네가 바른 교훈을 전하고 있으니까 성령의 감동으로 책망하고 있으니까 설령 누군가 너를 업신여겨도 업신여김을 받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디도 스스로입니다
분명히 그렇습니다. 그래도 초대 교회이기 때문에 아직 사도 바울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디도를 업신여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성령의 감동을 받아 권위로 책망을 하는 성도들이 반드시 업신여김을 받을 것을 알고 비록 업신여김을 받을지라도 업신여김을 받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대항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디도 스스로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성경을 모르면 돈키호테 같은 일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말씀을 가지고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 업신여김을 받지 않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우리가 권위를 하면 반드시 업신여김을 받는다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누가 우리가 권위 하는 것을 들으려 합니까? 내 자식도 안 듣고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있는 복음입니다 이 복음을 전하면 수도 없이 업신여김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럴지라도 우리는 업신여김을 받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은사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아니 성경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모르면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성령의 감동을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권위로 책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그 책망을 들으려 하지 않고 도리어 업신여길 수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우리 스스로는 성령의 감동을 받고 있기 때문에 업신여김을 받지 않을 수 있습니다.
유다서1:8절을 보겠습니다. (신 397쪽)
“그러한데 꿈꾸는 이 사람들도 그와 같이 육체를 더럽히며 권위를 업신여기며 영광을 훼방하는도다”
권위입니다
교회 안에서 목사라고 권위를 세우지 마시기 바랍니다. 세상 적으로 권위를 세우려고 하는 사람은 성경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런 권위가 아니라 성령이 내 안에 오셔서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심을 받으면 권위가 있습니다.
내 안에 지혜입니다
그리고 내 안에 지식이 있습니다. 성경을 보고 복음을 전하게 되면 자기 스스로가 권위를 세우지 않아도 교회 안에서 권위를 하는 일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성령이 오셔서 모는 진리 가운데로 인도를 하시기 때문에 그가 책망하는 말을 하면 교회 안에서 한 성령 안에서 교재를 하고 있는 성도들은 듣게 되어 있습니다.
육체를 더럽히는 자들이 있습니다.
누가 육체를 더럽히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성경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우리의 의는 더러운 옷과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스라엘의 바리새인들과 같이 이 시대 역시 자기들의 행위로 회를 칠하면서 더 더럽게 만들고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습니까?
그가 바로 육체를 더럽게 하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육체를 더럽게 하는 사람들은 권위를 업신여기며 영광을 훼방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지키고 있는 단 한 가지의 율법이 권위를 업신여기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성경을 보면서도 도무지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죄가 육체를 더럽히고 있습니까?
아직도 죄가 육체를 더럽히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도 모르는 사람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은 사람입니다 분명히 죄의 문제는 끝이 났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죄가 더럽다고 하지 않고 있고 우리의 행위가 더럽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더러운 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육체의 행위가 더럽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은 육체가 더럽다고 생각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내 육체가 하는 모든 행위가 더럽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지만 모두가 소경이 되어서 자기들이 하는 행위를 더럽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육체를 더럽히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율법을 지키면서 겉으로 회를 칠하는 것을 보고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율법을 지키고 회를 칠하고 있는가 하면 그 속에 깨끗한 것이 없고 모든 더러운 것만 있어서 그것으로 육체를 회를 칠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바리새인의 행위입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의 행위입니다 무엇이 다릅니까? 그것이 다르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바리새인도 율법을 지켰고 이 시대 역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왜 율법을 지키고 있는가 하면 그 속에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그는 그 행위를 통해서 권위를 업신여기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가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모든 행위가 의로운 일이 아니라 더러운 일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하나님을 위하는 일이라고 하면서 더 많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예배를 드립니다.
주일을 지키고 있습니다. 십일조를 내고 각종 헌금을 하고 있습니다. 찬양을 부르고 있습니다.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성찬식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러한 행위를 다 더럽다고 말씀을 하고 그 행위들이 권위를 업신여기며 영광을 훼방한다고 하면 도리어 이단이라고 공격할 사람이 많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하고 있는 모든 행위는 다 더럽습니다. 오직 주님이 하신 일만 깨끗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왜 우리의 행위는 더러운가 하면 그것으로는 우리가 영생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영생을 얻지 못하는 모든 행위는 다 더러운 것이고 그것을 유다서에서 육체를 더럽히며 권위를 업신여기면서 영광을 훼방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권위하는 자입니다
반드시 권위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 권위가 세상의 권위를 말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성령 내가 그런 위치에 있다 해도 권위를 세우는 순간 그것이 니골라당으로 변하고 만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 성도는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교회 안에서 성령을 훼방하는 일이 나타나면 그것을 권위를 해 주어야 합니다.
모든 진리입니다
그에서 성령이 오셔서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함을 받아야 권위를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세상의 권위를 생각하면 안 됩니다 이 권위라는 단어 때문에 이 시대 교회 안에 니골라당이 많이 나타나고 있지만 사람들은 도리어 그 니골라당을 더 좋아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신명기15:10절을 보겠습니다. (구 286쪽)
“너는 반드시 그에게 구제할 것이요 구제할 때에는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 것이니라 이로 인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범사와 네 손으로 하는 바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구제입니다
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거나 구하여 주는 것이라고 사전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 구제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합니까? 성경에서 이 구제라는 단어를 보고 자기들이 구제를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어떻습니까?
월세를 내기도 힘이 든 교회도 자기들이 성경대로 산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이 구제를 하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모든 성경을 이 세상 초등학문으로 만들어서 보면서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 그대로 자기들의 육체로 행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도리어 자기들이 의가 되어서 부자로 만들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교회입니다
자기들이 세상에서 선한 일을 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구제를 하는 일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기독교라는 종교가 들어온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1950년 대 그 당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에 하나였습니다.
그 나라를 구제를 했습니다.
누가 구제를 했는가 하면 미국과 캐나다의 선교사들이 와서 구제를 하고 그것을 자기들의 본국에 보고를 하고 있고 지금 우리나라 기독교가 하는 것과 같이 배를 타고 단기 선교를 갔다 와서는 자기들의 교회에 가서 큰 일을 하는 것과 같이 보고를 했습니다. 실제 구제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라는 종교를 믿게 되었습니다.
일제 감점기입니다
거의 모든 것이 일본에 의해서 수탈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육이오 전쟁을 지나오면서 정말 우리나라는 참혹한 환경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그런 가운데서 당시 기독교인들의 구제는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너무도 큰 힘이 되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제가 그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아마 당시 미국의 선교사들이 없었다면 우리나라는 더욱 어려웠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인간적으로는 분명히 그들이 우리에게 은인과 같고 고마운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성경에서 말씀하는 구제를 한 것이 아니라 기독교라는 종교에 대한 열심을 가지고 그러한 일을 했다는 것을 우리는 또한 바로 알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우리나라도 경제 대국으로 성장을 했습니다. 그러다보니까 세계에서 두 번째로 선교사를 많이 파송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들 역시 가난한 나라에 가서 구제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교통이 발달을 해서 단기 선교를 갔다 오면서 그것을 교인들이 보게 하고 있고 그것을 보고 온 교인들이 그 일에 더욱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사람입니다
단기 선교지에 가서 보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보면서 자기들이 도움을 주고 있다는 것을 확인을 하면 그들이 얼마나 가슴에 벅차겠습니까? 더구나 자기들이 믿는다고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가지고 가서 하고 있고 그것을 본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부하게 하셔서 가난한 나라를 돕게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거의 모든 교회입니다.
정말 아주 작은 교회도 선교사에게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하고 있는가 하면 바로 이 구제를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들이 하는 구제를 통해서 한 영혼이 구원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이 그들에게 얼마나 감동이 되겠습니까?
어느 교회입니다
거의 이 일에 모든 것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수백 명의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고 그들이 가난한 나라에 가서 구제를 하고 있고 그 구제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제가 이것이 악한 일이라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마도 종교의 힘이 세면 저를 돌로 쳐 죽이려고 할 것이 분명합니다.
인간적입니다
저 역시도 그것이 나쁘다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정말 나보다 가난한 형제가 있으면 그를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것을 나쁘다고 한다면 그 사람이 오히려 잘못된 생각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그런 육의 일이 아니라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영의 일입니다
은사를 왜 주셨습니까?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게 하기 위해서 주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구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가 아니라 도리어 악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거룩한 산 제사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드릴 영적 예배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기독교인들이 하고 있는 구제는 거룩한 산 제사가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제사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으로 도리어 자기 육체를 더럽게 해서 악한 일로 만들고 있습니다.
구제입니다
성경은 영의 일입니다 우리 육체의 일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의 일에 있어서 구제를 하라고 은사를 주신 것이지 육체의 일로 구제를 하라고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구제가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누가 구제를 합니까?
그것을 신명기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로마서 강해를 하면서 몇 번 인용을 했기 때문에 이제는 다 알고 있는 말씀입니다 성경을 모르면 자기가 무엇을 구제해야 하는 줄을 모르고 살아가게 되어 있고 그것이 악한 일이 되어서 도리어 진노를 쌓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오직 주님입니다
우리 인생은 모두가 가난한 자입니다 무엇에 대해서 가난한 자인가 하면 천국을 가는데 있어서 필요한 것이 하나도 없는 가난한 자입니다 우리는 천국을 가는데 있어서 쓸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 가난한 자에게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완전케 하시고 우리가 주님께 꾸어 달라고 하면 주님은 손을 펴서 우리가 필요한 만큼 넉넉히 꾸어 주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구제를 누가 하고 있습니까?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은사를 주셔서 이 구제를 할 수 있게 하시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돕는 그런 구제가 아니라 천국을 가는데 있어서 쓸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들에게 주님이 하신 그 구제를 가르쳐 줘서 내가 받은 구제를 그도 받을 수 있게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악한 자가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썩는 것을 가지고 구제를 하려고 하는 자는 악한 자입니다 이 시대는 교회에 돈이 넘치고 있습니다. 왜 돈이 넘치고 있는가 하면 교회에 바알에 들어와서 그들이 바알을 숭배하다보니까 돈이 넘치고 있고 그것으로 육체적으로 구제를 하고 있습니다.
교회입니다
부자가 거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돈이 많은 사람이 이 복음을 듣겠습니까? 돈으로라도 자기를 나타내고 싶어서 종교에 들어오는 사람이 자기를 나타내지 말라고 하는 복음을 들을 수 있습니까? 세상 적으로도 돈이 많은 사람은 우리가 전하고 있는 복음을 듣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구제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는 성경을 초등학문으로 보고 있습니다. 유대교가 그렇게 봤고 또 기독교가 그렇게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구제를 받아야 하는데 도리어 이 세상에 가난한 자를 돕겠다고 하면서 구제를 하고 있고 그 일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부자입니다
오직 주님 한 분만이 부자입니다 천국에 갈 수 있는 쓸 것이 있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은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천국에 들어갈 쓸 것을 가지고 계신 분입니다 그 분께 꾸면 누구라도 천국에 들어갈 수 있고 그것을 신명기에서 율법으로 정하셔서 우리가 꾸어 달라고 하면 주님은 반드시 구제를 해 주어야 합니다.
반드시 구제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꾸어 달라고 하면 안 꾸어 주실 수가 없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우리가 꾸어 달라고 하는데 안 꾸어 주시면 주님은 율법을 범한 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범한 자가 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보아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정말 율법을 바로 알아야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으로 정하시고 우리가 천국에 들어갈 쓸 것을 주님을 통해서 반드시 꾸어주실 수 있게 율법으로 정하셨지만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주님께 그것을 꿀 생각을 하지 않고 도리어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물질을 가지고 구제를 하겠다고 하면서 악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구제하는 자입니까?
우리에게 이 은사를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주님이 구제를 하시는 분이고 그것을 우리를 통해서 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주님이 가지고 계신 것을 우리에게 맡기시고 우리를 통해서 이 세상에 있는 가난한 자들에게 꾸어 주라고 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24:45절을 보겠습니다. (신 42쪽)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
구제입니다
이 세상의 구제를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물론 성경에는 이 세상이 하는 것과 같은 구제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구제도 역시 성도들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구제입니다. 당시 예루살렘 교회가 극심한 가뭄으로 인하여 이방의 교회가 물질을 모아서 예루살렘 교회를 구제를 했던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제가 무엇입니까?
지금 사도 바울은 우리 몸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한 영혼이 구원을 받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구제하는 은사가 있어서 그 은사를 통해서 영혼이 구원을 받는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구제는 주님이 하십니다.
그러나 주님은 지금 이 세상에 계시지가 않습니다. 주님은 신명기의 율법을 다 이루시고 하늘에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에게 은사를 주시고 구제를 할 수 있게 하시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직접 하셔야 하는 일을 이제 우리 성도들을 통해서 은사를 따라 그 일을 하게 하시고 있습니다.
은사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계시지 않으니까 하실 수 없습니다. 그 일을 우리 성도들에게 맡기셨습니다. 우리에게 이 복음의 비밀을 다 깨닫게 하시고 구제를 할 수 있게 주인의 소유를 우리에게 다 맡기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마태복음에서 말씀을 하면서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그 일을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은사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제 그 일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주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주님이 하시던 구제를 이제 우리 성도들에게 은사로 주시고 우리가 구제를 할 수 있게 하시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은사를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또 은사주의가 너무 샤머니즘적으로 가다보니까 일부에서는 은사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들까지도 나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모든 일들이 영의 일을 모르기 때문에 서로 분쟁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는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성경에서 말씀하는 은사를 바로 알고 있고 우리에게 주신 은사대로 행하고 있습니다.
충성된 종입니다
무엇에 대해서 충성을 합니까? 구원에 대해서 충성을 하고 있습니다. 충성이라고 하니까 마치 군대의 절대적인 것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분명한 것을 알고 충성을 해야지 모르면서 충성을 하는 사람은 지혜롭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 집 사람들을 맡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때를 따라 양식을 주고 있습니다. 어떤 양식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양식을 주어서 그가 그것을 먹고 영생을 얻을 수 있게 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때를 따라 양식을 주는 자가 거의 없습니다. 양식을 주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저주를 받게 하는 우상의 제물을 먹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구제를 해야 합니다.
그것을 주님께서는 때를 따라 양식을 줄 자가 누구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양식을 줄 자가 있다는 말씀입니까? 없다는 말씀입니까? 주인이 올 때 이렇게 하는 종은 복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교회 안에서 이렇게 때를 따라 양식을 줄 자가 없다는 것을 반어법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언입니다
마태복음24장은 예언의 말씀입니다 성경을 정말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방에 복음이 전파가 되었지만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없다는 것을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를 보아도 역시 그렇다는 것을 우리가 쉽게 분별을 할 수 있습니다.
양식입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은 다 가난한 자입니다 그들에게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주는 것은 구제를 하는 일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시대도 이렇게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에게 구제를 하는 일을 맡기시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방에 복음에 전파가 되었지만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주는 자가 거의 없습니다.
구제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정말 구제를 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내가 구제하는 그 일로 한 영혼이 천국에 들어갈 쓸 것을 주님으로부터 꿀 수 있다면 그보다 더 귀한 일이 없습니다. 이것은 반드시 구제하는 은사를 받은 성도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모든 은사입니다
이 은사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드릴 영적 예배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드리고 있는 영적 예배를 통해서 누군가가 구원을 받을 수 있다면 우리는 이 일에 힘써 행해야 합니다.
마태복음6:2-4절을 보겠습니다. (신 8쪽)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구제입니다
이 시대는 구제를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영적 예배를 드리는 사람입니다 이 세상의 이성을 따라 그런 구제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성경에서 문자를 보고 구제를 하다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외식입니다
이스라엘의 바리새인들은 신명기의 말씀을 보고 자기들이 구제를 했습니다. 그것을 주님께서는 외식이라고 말씀을 하면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이미 상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미 상을 받았으면 이제는 더 이상 받을 상이 없고 상을 못 받으면 그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외식을 모릅니다.
지금 이 시대 이스라엘의 바리새인들과 같이 똑같은 행위로 외식을 하면서도 바리새인들이 하는 것은 외식이라고 하고 있고 자기들이 하는 일은 외식이라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외식은 겉을 보기 좋게 꾸미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행위입니다
교회가 구제를 하는 일을 무엇입니까? 겉을 보기 좋게 꾸미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외식이 무엇이라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똑같은 일을 하면서도 바리새인이 하는 행위는 외식이고 자기들이 하고 있는 행위는 믿음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상을 이미 다 받았습니다.
여러분이 물질로서 실제 구제를 하고 있다면 여러분은 이미 상을 다 받아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성도는 영의 일을 하는 사람이지 육의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영의 일이 무엇인지 육의 일이 무어인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구제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구제가 이미 자기 상을 다 받은 것이 되고 있지만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그 구제를 통해서 자기의 의가 나타나고 있고 그것으로 이미 상을 다 받아서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성경을 문자적으로 보고 그 일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구제를 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오른 손이 하는 것을 왼 손이 모르게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오른 손이 하는 것을 왼 손이 모르게 할 수 있습니까? 오른 손이 하는 것을 왼 손이 모르게 하라고 하니까 또 이상하게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구제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생각하지 않으면 되는 것으로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바리새인들과 같이 나팔을 불지 않으면 오른 손이 한 것을 왼 손이 모르게 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가 나팔을 불던 불지 않았던 오른 손이 한 것을 왼 손이 모를 수 없습니다.
오른 손이 했습니다.
그런데 왼 손이 모르게 할 수 있습니까? 주님께서는 지금 말도 안 되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게 하지 않으면 구제를 하는 것으로 이미 상을 받아서 천국을 갈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는 오른 손이 한 것을 왼 손이 모르게 구제를 하고 있습니다.
구제입니다
지금 주님께서 육적인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바리새인들을 비유로 해서 영적인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외식을 하면서 사람들의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을 비유로 해서 우리가 해야 하는 구제가 무엇인가를 말씀하면서 그런 구제가 아니라 영적인 구제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오른 손입니다
늘 오른 편은 구원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왼 편은 저주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도 양은 오른 편에 염소는 왼 편에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오른 편은 구원을 의미하는 것을 상징하고 있고 왼 편은 자기 상을 이미 받은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의 구제입니다
그것은 왼 손이 하는 구제입니다 그 구제를 한 사람은 이미 자기 상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그런 구제를 하는 성도가 아닙니다. 그런 구제가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하는 구제는 왼 편이 모를 수밖에 없다는 의미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오른 손이 하는 구제입니다
그리고 왼손이 하는 구제입니다 그 둘의 구제는 서로 다릅니다. 그러니까 오른 손이 하는 구제는 왼 손이 모를 수밖에 없습니다. 쉽게 말씀을 드리면 이미 상을 받는 바리새인과 같은 구제를 하는 사람은 오른 손이 하는 구제를 모른다는 말씀입니다
오른 손이 하는 구제입니다
무엇을 가지고 구제를 하고 있습니까? 주님이 부자로 이 세상에 오셔서 가난한 자들에게 천국에 들어갈 쓸 것을 꾸어 주셨습니다. 바로 이 구제가 오른 손이 하는 구제입니다 우리는 이 은사를 맡은 자로서 이 구제를 하고 있는 성도입니다
왼 손입니다
그들이 이 구제를 압니까? 바리새인과 같이 왼 손으로 구제를 해서 이미 자기 상을 받은 사람은 오른 손이 하는 구제를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구제를 하는 것은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알 수 없습니다. 아니 우리가 하는 구제를 구제라고 생각지도 않고 있습니다.
그들의 구제입니다
외식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아무리 무기 명으로 한다 해도 역시 자기 마음에서는 부자 되고 있고 그것이 왼 손이 하는 구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진짜 가난한 사람을 돕지 말라고 하는 말씀이 아니라 우리 성도가 해야 하는 구제가 무엇인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제에 대해서 기초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의 구제입니다
그것은 오른 손이 하는 구제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구제인가 하면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부자로서 가난한 자에게 넉넉히 그 쓸 것을 꾸어 주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이제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에게 맡겨서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주게 하고 있습니다.
이 구제입니다
구제를 함으로 해서 어떻게 됩니까? 이 세상에 가난한 자들이 주님으로부터 꿀 수 있게 되어서 자기가 천국에 들어갈 쓸 것을 꾸어서 구원을 받고 있습니다. 이것이 오른 손이 하는 구제라는 말씀입니다 이 오른 손이 하는 구제는 왼손으로 하는 구제를 하는 사람은 모를 수밖에 없습니다.
오른 손입니다
우리 성도가 하는 구제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왼 손입니다. 그것은 바리새인의 구제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가 하는 구제를 왼 손은 도무지 모르게 되어 있습니다. 아니 왼 손은 자기들이 하는 구제가 하나님을 믿는 성도가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하면서 그 일에 열심을 내면서 지금도 교회 안에서 나팔을 불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구제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도무지 모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구제를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기 때문에 주님께서 은밀하게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구제는 은밀해서 세상 사람의 지혜로는 도무지 깨달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은밀히 행하고 있습니다.
생각이나 행동 따위가 숨겨져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을 은밀하다고 사전에서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오른 손으로 하는 구제는 겉으로 드러나는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구제를 통해서 이 세상에 가난한 자들이 주님으로부터 자기 쓸 것을 꾸어서 천국에 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잠언28:27절을 보겠습니다. (구 943쪽)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자는 궁핍하지 아니하려니와 못본 체 하는 자에게는 저주가 많으리라”
우리에게 은사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구제하기를 원하시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시대는 무엇을 구제를 해야 하는가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성경을 알아야 내가 무엇으로 구제를 할 수 있는가를 알 수 있는데 모두가 소경이 되어서 자기들의 물질로 구제를 하면서 나팔을 불고 있고 그것으로 이미 자기들의 상을 다 받은 자가 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입니다
부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입니다 그리고 다 가난한 자입니다 우리 성도는 부자로부터 이미 우리가 쓸 것을 넉넉히 꾸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꾼 그것을 세상에 있는 가난한 자에게 흩어 구제를 해야 합니다. 정말 우리는 영의 일로 구제를 해야 합니다.
구제를 하는 자입니다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자는 궁핍하지 아니하려니와 못 본체 하는 자에게는 저주가 많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가난한 자에게 구제를 해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구제를 해 주심으로 해서 우리는 부요한 자가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제를 하시기 바랍니다.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주는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주는 자는 궁핍치 아니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저 역시도 강해를 하면 할수록 더 부요하게 되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알고 있는 그것을 가난한 자를 보고도 못 본체 하면 저주를 받을 사람이 많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꼭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구제도 은사입니다 누구는 성경의 모든 비밀을 알고 있어도 구제를 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못 본체 한다는 말씀은 은사를 받고도 행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지 은사가 없는 사람은 구제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고 은사는 모든 사람이 다 받는 것이 아니라 분명히 각 사람에게 나눠주고 같은 직분을 가진 것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시기 바랍니다.
내가 알고 있습니까? 아니 은사를 받았습니까? 그는 구제를 하면 할수록 풍요로워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구제를 하는 사람은 절대로 궁핍치 아니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서 주인의 집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주는 자는 절대로 궁핍치 아니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실함으로 하시기 바랍니다.
구제를 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참되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구제를 하는 자가 거짓이 있다면 그 구제가 도리어 재앙이 될 수 있습니다 이미 주님으로부터 구제를 받아 천국에 들어갈 쓸 것을 넉넉히 받은 성도는 그렇게 성실하게 구제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런 것 같습니다.
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가능한 성경만 보면 정말 궁핍하지 않게 하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저 역시도 처음부터 이 복음을 다 깨달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성실함으로 하다 보니까 하나님께서 은혜를 더욱 주셔서 이제는 궁핍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아직까지 성경에서 깊은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을 다 깨달은 것은 아닙니다.
이 시대는 구제를 하는 자가 없습니다.
왼 손이 하는 구제를 하는 자는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대형교회를 보면 그 주변에 있는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를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왜 구제를 하고 있는가 하면 성경말씀을 보고 구제를 하고 있습니다. 신명기에서 구제를 하라고 하니까 넉넉히 쓸 것을 주지는 못할지라도 자기들이 구제하는 것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것이 나팔입니다
그렇게 나팔을 부는 자는 이미 자기 상을 다 받았습니다. 우리는 왼 손이 하는 구제를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왼 손이 모르게 오른 손으로 구제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세상 사람이 깨달을 수 없어서 주님께서 은밀히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자를 구제하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를 보더라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있습니까? 자기들이 얼마나 가난한 가를 모르고 교회 안에서 점점 더 부자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에게 구제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복음을 듣고 주님으로부터 꾸어 천국에 들어갈 쓸 것을 구할 수 있게 해 주어야 합니다.
요한복음17:2절을 보겠습니다. (신 177쪽)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다스리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이나 집안, 나라 따위를 보살펴 이끌거나 관리하는 것을 사전에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먼저 국어에서 말하는 사전적인 의미를 알고 그 의미를 생각하면서 성경에서 다스리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국어를 너무 모릅니다.
이 시대 이 로마서에서 말씀하고 있는 은사를 보면서 거의 모든 사람들이 권위적으로 나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국어를 모르고 성경에서 의미하는 뜻을 모르다보니까 자기들이 막연하게 알고 있는 국어를 가지고 다스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어떤 위치에 서서 사람들을 다스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영생에 대한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이런 은사에 대한 말씀을 보면서도 거의 다 육체적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스리는 은사가 있는 것으로 이야기를 하면서 사람들 위에 군림을 하면서 다스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다스리는 권세입니다
누가 가지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다스리는 권세를 가지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왕입니다 세상의 왕이 아니라 우리 영혼을 구원하시는 의미에서 왕이라는 말씀입니다 왕이 싸움에서 이기면 그 백성이 다 이긴 자가 되고 왕이 싸움에서 지면 그 백성 모두는 포로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누구를 다스리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아들에게 주신 자들을 다스리고 있습니다. 어떻게 다스리고 있습니까? 그 모든 자들에게 영생을 주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주님에게 주신 자들을 잘 보살피고 이끌어서 영생을 얻게 하시려고 다스리는 권세를 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지 못하면 다스리는 권세가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은사는 영생에 대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가 되는 것이지 이 세상에서 성도로서 살기 위해서 우리에게 은사를 주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 시대 다스리는 자가 있습니까? 이 은사를 받은 사람이 있습니까? 모두가 종교의 포승에 묶여서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 줄을 모르고 도리어 다스린다고 하면서 저주를 받게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거의 모든 교회가 율법을 지키고 있고 그 율법으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있지만 그런 거짓 선지자들이 다스려 주는 것을 도리어 좋아하고 있습니다.
영생을 주게 해야 합니다.
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다스리는 은사를 주셨는가 하면 그것을 통해서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세상의 지위를 가지고 다스리면서 저주를 받게 하고 있습니다. 다스리는 은사가 무엇인가도 모르고 교회 안에서 교인들을 다스리려고 하면 그 사람은 물론이고 다스림을 받는 사람들 모두도 저주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누가 다스릴 수 있습니까?
반드시 영생을 얻는 성도만이 다스릴 수 있습니다. 자기 안에 생명이 없는 사람이 교회에서 다스린다는 것은 자기 뿐 아니라 그 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는 재앙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은사를 모르기 때문에 무엇에 대해서 다스림을 받아야 하는 줄을 모르고 교인으로서 다스림을 받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성경의 모든 말씀은 이 영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영생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영생을 받지도 못한 그들이 교회 안에서 세상의 권위로 다스리고 있고 그것이 그들에게 저주가 되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디모데전서3:1-4절을 보겠습니다. (신 338쪽)
“미쁘다 이 말이여,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하면 선한 일을 사모한다 함이로다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근신하며 아담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치 아니하며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단정함으로 복종케 하는 자라야 할찌며”
다스리는 자입니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감독의 직분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적인 직분입니다 성경은 감독, 장로, 집사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직분이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거의 같은 직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종교가 되었습니다.
이 직분을 가지고 차이를 두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성경을 보면 알 수 있지만 직분은 차이가 없습니다. 우리는 다 복음을 전하는 일에 있어서 각자의 맡은 직분을 가지고 일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 것이 더 높고 어느 것이 더 낮다는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의 직분입니다
분명히 감독이라고 하고 또 장로라고 하고 집사라고 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호칭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의미가 더 중요하지 호칭을 어떻게 부르는가는 중요하지가 않습니다. 이 시대 목사라는 호칭을 쓴다 해서 그것이 틀리다고만 말할 수 없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같은 의미의 호칭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할 수 있다면 장로로 부르고 집사로 부르는 것이 더 좋습니다.
이 시대는 종교가 되어서 사람들에게 그 종교의 소속감을 갖게 하려고 여러 가지 세상 직분을 만들어서 주고 있는데 그런 것은 다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다스리는 자가 누구고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가를 알면 됩니다.
감독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 감독을 다스리는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꼭 감독만 아니라 뒤에 있는 말씀에서 집사도 역시 다스리는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요한복음에서 말씀하는 것과 같이 영생을 주게 할 수 있다면 그는 다스리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물론 그 영생은 하나님이 주시지만 영생을 얻는 방법을 가르쳐 줄 수는 있습니다.
감독입니다
우선은 책망할 것이 없어야 합니다. 육체적으로 책망할 것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 인생은 모두가 책망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무엇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성령의 감동으로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함을 받아서 진리에 대해서 책망할 것이 없어야 합니다. 성령의 책망을 받고 있다면 그는 감독으로 자격이 없고 다스리는 자가 되어서도 안 됩니다
성령이 오셔야 합니다.
이 시대는 성령에 대해서 너무 모르다보니까 누가 성령을 받았는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에 문자적으로 성령이 기록되어 있으니까 교회 안에 있는 자기들이 성령을 받았다고 하고 있고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성령을 받는 자가 거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야 합니다.
거의 모든 사람이 성경을 육적으로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 교단에서는 심지어는 아직 결혼을 하지 않으면 안수를 안 주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한 아내입니다 교회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주님의 아내지만 그 교회 안에서 다스리는 자로서는 그 교회의 남편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두 개의 교회가 있습니다.
하나는 참 감람나무고 하나는 돌 감람나무입니다. 감독은 참 감람나무의 남편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그런가 하면 그것을 창세기에서 유다의 아들들을 통해서 보여주셨습니다. 우리의 형은 주님입니다 주님이 지금 이 세상에 계시지 않습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 동생이 형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남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감독입니다
절제하며 근신하며 아담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치 아니하며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단정함으로 복종케 하는 자라야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의미는 이제 다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미 그리스도편지에 설교로 올려 드렸습니다. 이 모든 일을 통해서 영생을 얻게 하는 것이 감독의 직분이며 자기 집을 잘 다스린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 집을 잘 다스려서 자녀들로 모든 단정함으로 복종케 하는 자라야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감독 개인의 집입니까?
그것이 아니라 교회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녀들이라고 하니까 문자적으로 감독의 개인의 집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아니라 교회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내가 너를 낳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감독입니다
교회에서 자녀들을 낳고 있습니다. 그가 복음을 전함으로 해서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그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해서 성령이 오시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난 영이 그 안에 거하게 함으로 해서 그가 영생을 받는 것을 자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거의 성경을 문자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성경은 영의 일입니다
감독의 육적인 것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가 교회를 다스리기 위한 육적인 조건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가 가정적으로 아무리 모범적이 삶을 살면 뭐 합니까? 그가 구원을 받을 수 없다면 그는 다스리는 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그가 혼인 관계를 유지를 했습니까? 확실하지는 않지만 그는 결혼을 한 사람이라고 하고 있고 그가 복음을 깨닫고 이방에 복음을 전하러 가니까 그 부인이 그를 떠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 디모데서의 말씀대로라면 사도 바울부터가 다스리는 자로서의 자격이 없는 사람이 됩니다.
다스리는 자입니다
자녀들로 모든 단정함으로 복종케 하는 자라야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이 모두가 복음에 복종케 함으로 해서 영생을 얻게 하는 자라야 감독이 되고 그가 교회에서 다스리는 자로서의 직분을 행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다스리는 자입니다
술을 즐기지 않아야 합니다. 구타하지 않아야 합니다. 오직 관용하고 다투지 아니하고 돈을 사랑치 아니하는 자라야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다 무엇을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모두가 율법에 대한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영생을 주기 위해서는 감독은 율법을 지켜서는 안 되고 자기 집을 잘 다스려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집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술에 인박이지 않고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않은 자라야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다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율법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성경을 문자 그대로 보면서 진짜 마시는 술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정말 이 술 문제 하나만으로도 이 시대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왜 다스립니까?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해서 다스리고 있습니다. 세상의 종교적 권위로 다스리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의 영생에 대해서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교회 안에서 자기가 목사라고 하면서 세상 적으로 다스리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이 무엇을 가지고 다스리는가 하면 율법을 가지고 다스리면서 저주를 받게 하고 있습니다.
은사입니다
우리는 이 은사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영생이 있는 성도만이 교회 안에서 다스릴 수 있습니다. 내 안에 생명이 없는데 어떻게 다스려서 영생을 얻을 수 있게 할 수 있습니까? 주님께서 우리에게 먼저 영생을 주시고 다르시게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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