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9:9절을 보겠습니다. (신 251쪽을 보겠습니다.)
“약속의 말씀은 이것이라 명년 이 때에 내가 이르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라”
육신의 자녀입니다
그 자녀를 보고 하나님의 자녀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다시 쉽게 말씀을 드립니다. 이 시대는 부활에 대해서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까 육신의 자녀가 무엇인지 그리고 약속의 씨가 무엇인가를 잘 모르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계속해서 말씀을 드렸듯이 우리의 부활은 신체가 아니라 영이 신령한 몸을 입고 부활을 합니다.
육신의 자녀는 부활을 하지 못 합니다
영원한 생명이 없어서 부활을 하지 못하는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육신은 부활을 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우리 영이 부활을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 육신은 어떻게 되는가 하면 썩어 없어지게 됩니다.
썩습니다.
그 썩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육신의 자녀라고 하니까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삭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했다고 해서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이삭이 육신의 자녀가 아니라는 것으로 받아들이면 안 됩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도 역시 육신의 자녀입니다
쉽게 말씀을 드립니다.
육신을 가지고 있는 모든 인생은 육신의 자녀입니다 내가 아무리 하나님을 믿고 있고 내 안에 성령으로 말미암아 탄생이 되어 있는 영의 생명이 있다 해도 역시 육신의 자녀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 육신의 자녀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육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 모두는 육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육신을 가지고 있는 우리 인생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육신의 자녀를 마치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분명하게 육신의 자녀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고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자녀입니다
그 부모로부터 태어나야 자녀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육신을 나신 것이 아니라 우리 육신은 우리 부모로부터 났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육신의 부모로부터 태어난 그 자녀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습니까?
그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육신의 자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육신의 자녀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으면 그 육신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물론 두 가지의 의미를 가지고 말씀할 수도 있습니다.
육신입니다
다른 하나는 육신으로 죄의 법을 섬기는 사람을 말씀할 수도 있습니다. 어찌 되었든 우리 육신은 죄를 법을 섬기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해도 그것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습니다. 왜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는가 하면 그 육신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의 영의 생명이 있다 해도 우리 육신은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그 육신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그 육신이 주님이 오시는 날에 깨어서 천국에 들어가서 예수님도 만나고 자기와 같이 신앙생활을 했던 사람도 만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자기가 어떻게 부활을 하는 줄도 모르고 있으면서 교회 안에서 천국에 들어간다고 말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의 육신입니다
반드시 썩어 없어집니다. 우리 육신은 우리가 이 세상을 살 때까지만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내 영혼과 연결 고리가 있는 것이 아니라 육신은 썩어 없어집니다. 그리고 내 안에 성령이 오심으로 말미암아 성령으로 난 영이 있어서 그 영이 주님이 오실 때 부활을 합니다.
그 영이 생명입니다
그리고 그 영이 진짜 나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진짜 나라는 것을 성경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신의 나는 이 세상을 살다가 죽으면 썩어 없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로서 난 내가 있어서 그 생명이 주님이 오실 때 부활을 해서 하나님의 아들들로서 영원히 천국에서 모든 축복을 누리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오직 약속의 씨로 여기심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약속의 씨가 무엇입니까? 요한일서에서 사도 요한이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우리 육신이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까?
절대로 아닙니다. 우리 육신은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 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던 사람이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던 사람이나 육신은 그것으로 끝이 납니다. 그것이 깨어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영원한 생명을 모르고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 생명이 어디에 있는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하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육신이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그 생명 안에 있다는 말씀입니다
육신이 있습니다.
그리고 영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그것을 적절하게 섞어 버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분명히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는 육으로 난 것과 성령으로 난 것이 적당히 섞여서 그것이 마치 하나가 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절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성경의 기초가 되는 말씀은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육으로 난 것과 성령으로 난 것은 전혀 다른 본질이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이 섞여서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으로 끝이 나고 성령으로 난 것은 영원한 생명이 있어서 천국에서 영원히 산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 사람은 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는 두 사람이 있습니다. 육으로 난 사람이 있고 성령으로 난 사람이 있습니다. 육으로 난 사람은 이 세상 사람들과 같이 육으로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난 사람은 우리가 그 생명에 대해서는 아직 느끼거나 알 수 없지만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그것이 믿어지고 있습니다.
오직 약속의 자녀입니다
그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입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약속을 믿음으로 내 안에 생명이 있다는 것이 믿어짐으로 해서 있는 생명이 씨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직 형체가 없기 때문에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씨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 약속의 말씀은 "내년에 내가 다시 올 때쯤에는,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다" 한 것입니다.”
약속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을 하셨습니다. 명년 이 때에 내가 이르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는데 그 약속이 무엇인가 하면 내년 이 때에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입니다
그는 누구를 예표하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라입니다 그는 누구를 예표하고 있습니까? 교회를 예표하고 있습니다. 약속의 말씀은 이것이라 명년 이 때에 내가 이르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태어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5:32절을 보겠습니다. (신 316쪽을 보겠습니다.)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비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는 남편과 아내입니다 그것을 로마서에서는 아브라함과 사라를 통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갈라디아에서는 이 사라를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의 어머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약속의 말씀은 이것이라 명년 이 때에 내가 이르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사라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라는 무엇을 상징하고 있습니까? 교회를 상징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명년 이 때에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고 말씀을 한 그것은 이 시대 교회 안에서 탄생이 되는 하나님의 아들들을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입니다
그리스도편지를 통해서 이 교회에 대해서 부정적인 면을 말씀을 했습니다. 이 교회가 음녀가 된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정말 교회에 대해서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음녀가 되어 있는 교회, 율법의 종이 되어 있는 교회에 들어가는 순간에 그 교회에서는 아들을 낳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라입니다
반드시 사라에게서 아들을 낳을 수 있습니다. 사라가 아닌 교회에서는 절대로 아들을 낳을 수 없습니다. 교회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로마서를 통해서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반드시 사라의 교회에서만 아들을 낳을 수 있고 그 아들들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라의 교회입니다
그 교회 안에만 약속이 있습니다. 다른 교회에 약속이 있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사라의 교회에만 약속이 있고 그 약속이 무엇인가 하면 영원한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사라의 교회는 거의 사라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위에 있는 예루살렘입니다
땅에 있는 예루살렘은 종노릇하고 있습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땅에 있는 교회는 종노릇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역시 땅에 있는 교회는 모두가 종노릇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땅에 있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종노릇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누구와 같습니까?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의 바리새인들에게 진리가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말씀을 하시니까 바리새인들이 듣고 있다고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 남의 종이 된 적이 없다고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땅에 있는 예루살렘은 똑같은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종교의 자유를 누리고 있어 남의 종이 된 적이 없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교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디에 계십니까? 하늘에 계십니다. 그러면 그의 아내가 어디에 있습니까? 역시 하늘에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에서 사라를 위에 있는 예루살렘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땅에 있는 교회에 있으면 안 됩니다
이 시대 교회입니다
다 땅에 있는 교회입니다 그 교회에는 약속의 말씀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어느 교회에 하나님께서 약속을 하셨는가 하면 하늘에 있는 교회에 명년 이 때에 내가 이르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다 땅에 있는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종입니다.
종에게서는 종만 낳습니다. 반드시 종이 태어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의 어머니입니다 그 어머니에게서 태어나야 약속의 씨가 태어날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약속의 씨가 아브라함의 씨고 이 씨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비밀입니다
교회는 정말 비밀입니다 이 시대 교회에 대해서 바로 알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모두가 자기들의 눈으로 보고 있는 그 교회를 보고 교회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또 성경에 두세 사람이 모인 곳에 나도 함께 있고 그것이 교회라고 말씀을 하니까 자기들이 모여 있는 것을 교회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알아야 합니다.
교회가 되려면 반드시 약속의 자녀가 태어나야 합니다. 약속의 자녀가 없는 교회는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히 아브라함에게 명년 이 때에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아들이 누구인가 하면 영원한 생명이 있는 하나님의 아들들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라는 교회입니다
반드시 사라의 교회에서만 아들이 탄생이 되고 있습니다. 그 아들은 육신의 자녀가 아닙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교회가 어디에 있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에베소서에서 주님과 교회를 남편과 아내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내를 볼 수 있는 눈이 그들에게는 없고 아내가 어떻게 하고 있는 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에베소서5:24절을 보겠습니다. (신 316쪽을 보겠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디도서1:10절을 보겠습니다. (신 349쪽을 보겠습니다.)
“복종치 아니하고 헛된 말을 하며 속이는 자가 많은 중 특별히 할례당 가운데 심하니”
디도서3:9절을 보겠습니다. (신 350쪽을 보겠습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변론과 족보 이야기와 분쟁과 율법에 대한 다툼을 피하라 이것은 무익한 것이요 헛된 것이니라”
명년 이 때에 사라에게 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라는 위에 있는 예루살렘입니다 교회라는 말씀입니다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에게 약속을 하셨지만 그 사라는 교회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디에 있는 교회인가 하면 땅에 있는 교회가 아니라 하늘에 있는 교회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입니다
교회가 음녀가 되어 있습니다. 성경에서 음녀에 대해서 많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음녀라는 단어가 아주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만큼 교회는 쉽게 음녀가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고 우리 성도들에게 음녀가 누군가를 가르쳐 주면서 음녀를 따라가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음녀에게서는 절대로 아들이 태어날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라에게 아들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아들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갈은 종을 낳았습니다. 반드시 사라에게 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사라와 하갈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교회를 보면서도 그것이 하갈인가 아니면 위에 있는 예루살렘인가를 분별을 못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교회를 분별을 못하면 반드시 사망에 이르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명년 이 때에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가 반드시 사라의 교회에 있어야 아들이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사라의 교회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가 없어서 모두가 종의 교회에서 종노릇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라의 교회입니다
남편에게 복종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다니고 있는 교회가 아니 우리가 예배를 하고 있는 교회가 남편에게 복종을 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 남편을 주님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을 로마서에서 복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입니다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 복음입니다 사라의 교회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에 복종을 하고 있으면 그것은 사라의 교회입니다 그 남편에게 복종을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디도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종치 아니하고 헛된 말로 속이는 자가 할례당 가운데 많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육체의 할례를 하고 있는 사람들은 복음에 복종치 않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에 복종하는가 아니면 복종치 아니하는가를 알 수 있는 가장 기본이 할례라는 율법을 지키고 있는가를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헛된 말로 속이고 있습니다.
누가 헛된 말에 속았습니까?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있는 사람들이 헛된 말에 속아서 육체에 할례를 받았습니다. 육체의 할례를 받았다는 말씀은 율법을 지켰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으면서도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헛된 말로 속입니다.
복종치 아니하는 자들은 다 헛된 말에 속고 있습니다. 그 헛된 말이 무엇인가 하면 어리석은 변론과 족보 이야기와 분쟁과 율법에 대한 다툼을 피하라 이것은 무익한 것이요 헛된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에 복종을 해야 하는데 교회가 어떻게 되고 있는가 하면 다 헛된 말에 속아서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위에 있는 예루살렘입니까?
반드시 그 조건이 있습니다. 먼저 복음에 복종해야 합니다. 그 복음에 복종을 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헛된 말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그 헛된 말이 율법을 지키라고 하는 말이 헛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라입니다
아브라함에게 명년 이 때에 아들이 있으리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라의 교회가 되어 있어야 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교회는 사라의 교회가 아니라 다 헛된 말에 속아서 복음에 복종치 아니하고 있는 교회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율법입니다
단 한 가지를 지켜도 사라의 교회가 아닙니다. 갈라디아에서 자유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무거운 짐에서 자유하는 자가 사라의 교회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교회 안에서 아들이 태어난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에 복종하시기 바랍니다.
복음에 복종한다는 말씀은 율법에 대해서 자유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의 종이 되어 있으면 그가 아무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해도 그 교회는 사라의 교회가 될 수 없고 사라의 교회가 아니면 아들을 낳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명년 이 때에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교회입니다
이 세상에 건물을 지어 놓은 교회는 다 하갈의 교회입니다 예루살렘에 무엇이 있었습니까? 성전이 있었습니다. 그 보이는 성전이 있는 교회는 다 종노릇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에 대해서 자유하지를 못하기 때문에 그에게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 교회 안에서는 아들이 태어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 교회입니다
솔직히 말씀을 드려서 복음에 복종을 하는 교회는 없습니다. 거의 모든 교회가 다 헛된 말에 속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헛된 말에 속고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율법의 종이 되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율법입니다
어느 한 가지라도 지키고 있다면 그 교회는 사라의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사라의 교회가 되지 못하면 아들이 태어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은 사라에게 아들에 있으리라고 하셨지 다른 사람에게 아들이 있으리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라에게만 있습니다.
그런데 자유하는 자가 없습니다. 갈라디아에서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의 어머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교회는 율법에 대해서 자유해야 합니다. 그런 자유하는 교회를 사라의 교회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 교회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명년 이 때에 아들이 있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4:26절을 보겠습니다. (신 307쪽을 보겠습니다.)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사라입니다
누구의 어머니입니까? 이삭의 어머니입니까? 그것이 아니라 사라는 곧 우리의 어머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명년 이 때에 사라가 아들을 낳으리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사라가 누군가 하면 우리의 어머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삭의 어머니 사라입니까?
그것이 아니라 사라는 우리의 어머니입니다 우리 역시 사라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 하늘의 씨가 탄생이 되었기 때문에 우리의 어머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는 유대인들이 아니라 이방의 교회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 이방의 교회를 보고 사도 바울이 사라를 가르쳐서 곧 우리의 어머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로마서에서 육신으로 이삭을 낳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어떻게 아들이 태어나는 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신의 자녀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어떻게 태어나는 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삭의 어머니가 아닙니다.
사라는 우리의 어머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신으로 이삭을 낳은 것은 교회를 통해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생명이 탄생이 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영원한 생명이 어떻게 탄생이 되는가 하면 자유하면서 복음에 복종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성경에 그의 아들에 관하여 미리 약속하신 것을 알고 믿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누구를 말씀하고 있습니까?
로마서는 우리가 누구의 자녀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태어나고 있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어떻게 탄생이 되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약속의 말씀이 무엇인가 하면 명년 이 때에 사라에게 아들이 있습니다.
우리의 어머니입니다
그 사라를 통해서 우리 아들들이 태어났습니다. 이삭에게 있어 사라가 어머니가 아니라 그리스도 영이 있는 우리 모두의 어머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서도 이 영의 일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라가 누구의 어머니라는 것을 모르고 막연하게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를 알고 있는 것으로 자기가 사라의 아들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4:28절을 보겠습니다. (신 307쪽을 보겠습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우리 성도입니다
어떤 자녀입니까? 우리는 육신의 자녀가 아닙니다. 우리는 약속의 자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약속의 자녀인가 하면 우리도 이삭과 같이 사라를 통해서 낳기 때문에 약속의 자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 육신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 있는 성도들의 육신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시대는 육의 일과 영의 일을 전혀 분별을 못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고 말씀을 하니까 마치 자기 육신이 약속의 자녀가 된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아니라 요한일서에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은 이것이니 영원한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약속의 자녀입니까?
내 육신이 약속의 자녀입니까? 그것이 아닙니다. 내 육신은 약속의 자녀가 아니라 혈통으로나 육정으로 난 자녀입니다 약속의 자녀와 혈통으로나 육정으로 난 자녀를 바로 분별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서도 도무지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육체가 되었습니다.
이 시대 교회는 다 육체가 되어서 영의 일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삭과 같은 약속의 자녀입니다 누구에게서 난 약속의 자녀인가 하면 위에 있는 예루살렘 자유하는 자 곧 우리의 어머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로마서를 보고도 자기들이 사라의 자녀가 어떻게 되는 줄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이삭과 같은 약속의 자녀입니다
어떤 약속입니까? 영원한 생명이 있는 약속의 자녀라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육신이 약속의 자녀가 아니라 내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영이 영원한 생명이 있고 그 생명이 약속의 자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우리가 누군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릅니다.
자기가 누군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이 영의 일을 말씀을 하면 이 시대는 도무지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성경의 문자를 아는 것으로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은 약속의 자녀라고 하니까 어떻게 해서 낳은 이삭과 같은 약속의 자녀라는 것도 모르고 무조건 약속의 자녀라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사라에게서 낳아야 합니다.
사라는 우리의 어미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누구에게서 낳는 줄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사라가 의미하는 것도 모르고 약속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으니까 그 문자를 아는 것으로 자기가 구원을 받은 성도라고 막연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분명해야 합니다.
영의 일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육신과 영에 대해서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형제들이라고 말씀을 하면서 너희는 이삭과 같은 약속의 자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육신을 이삭과 같은 약속의 자녀라고 한 것이 아니라 자유하는 여자 사라에게서 난 하늘의 생명이 있는 약속의 자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약속의 자녀입니다
우리 안에 탄생이 된 영은 하나님의 약속으로 말미암아 탄생이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내 노력으로는 태어날 수 없는 생명입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약속을 해 주셔서 그 능력으로 태어날 수 있는 생명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라의 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 사라는 이 세상에 있는 교회가 아닙니다. 위에 있는 예루살렘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위에 있는 예루살렘이라는 말씀은 영의 일을 믿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사라로 말미암아 탄생이 되는 성도는 하나님께로서 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삭만 아닙니다.
로마서는 지금 이삭 한 사람을 가지고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은 약속의 자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명년 이 때에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고 하신 말씀이 이삭에 대해서 말씀을 한 것이 아니라 우리 성도가 약속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영이 탄생이 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4:19절을 보겠습니다. (신 307쪽을 보겠습니다.)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성도의 탄생입니다
그러니까 내 안에 그리스도의 약속의 생명이 탄생이 되는 역사입니다 이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 그냥 구원을 받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라가 이삭을 낳기까지 명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성경은 다 영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명년입니다
물론 다음 해를 뜻하는 단어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사라가 이삭을 낳을 때도 명년이라는 시간이 필요 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해산입니다
그러니까 사라에게 명년 이 때에 아들이 있습니다. 그것을 갈라디아에서는 해산의 수고를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해산의 수고를 하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정말 한 사람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 데리고 들어왔습니까?
그가 구원을 받았습니까? 절대로 아닙니다. 이 시대 교회는 다 종이 되어 있습니다. 사라의 교회가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내가 해산의 수고를 한다고 하는 말씀은 복음에 복종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라도 해산을 하기 까지는 명년이라는 시간이 필요 했습니다.
이 시대는 어떻습니까?
해산의 수고도 하지 않고 그저 교회에 나와서 남들이 시키는 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 구원을 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대형 교회 같은 경우에는 새 신자를 위한 결신의 시간이 있어서 그때 그들이 고백하는 것으로 마치 구원을 받은 것으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영의 탄생 물론 쉽습니다.
우리 인생들에게 재능을 주셨습니다. 누구나 믿어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재능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루아침에 성경을 보고 그 안에 그리스도의 생명이 탄생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의 탄생입니다
물론 우리는 약속의 자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명년 이 때에 반드시 사라를 통해서 태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사라를 통해서 태어나는 영이 어떻게 태어나는가 하면 해산의 수고를 해야 태어날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해산의 수고입니다
사라의 교회에서 성도가 그냥 태어난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은 후에 하나님께서 하와에게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라로 말미암아 한 영혼이 탄생이 되는 고통이 크게 더하겠다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입니다
너무도 쉽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해산의 수고를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도 하와에게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나왔다고 해서 다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잉태하는 고통입니다
한 생명이 탄생이 되기까지는 정말 어머니가 해산을 하는 것과 같이 고통이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아니 우리가 약속의 자녀로 어떻게 태어나는가 하면 해산의 고통이 반드시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이 시대를 보면 너무도 안타깝기만 합니다.
며칠 전에도 문자를 하나 받았습니다.
그리스도편지에 있는 말씀을 잘 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강한 외압에 견디지를 못하고 더 이상 그리스도 편지의 말씀을 볼 수 없게 되었다는 문자를 받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저에게 계속해서 수고를 해 주시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약속의 자녀입니다
그냥 태어난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가 알기에도 많은 분들이 환경에 넘어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니 주변에서 너무 강하게 압박을 하면 혼자서의 힘으로는 견디지를 못하고 결국에는 그들에게 굴복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우리와 함께 예배를 했다면 그래도 조금은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물론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하나님께서 그가 약속의 자녀가 될 것이면 어떻게 해서라도 구원을 해 주실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적인 마음으로 너무 안타깝기만 합니다. 사실 혼자서 이 복음을 보고 주위에 사람들로부터 당하는 고난을 견딘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가능한 가까이 계신 분들에게 예배에 꼭 참석을 해 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거의입니다.
예배에 참석을 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다 나중에는 다시 뒤로 물러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전부는 아닙니다. 그러나 혼자서 이 복음을 보고 믿음을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다시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해산의 고통을 다시 하면서까지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성도들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했습니다.
명년 이 때까지입니다
사실 그 해산의 날까지 견딘다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인터넷을 통해서 교제를 하고 있지만 안타깝기만 합니다. 명년 이 때가 되기 전에 거의 모든 사람들이 중간에 다시 뒤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혼자서 이 복음을 보고 듣고 믿음을 지킨다는 것이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부탁입니다
가까이 계신 분들은 꼭 예배에 참석을 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이 말씀을 글로만 보고 또 음성으로 듣는다 해도 정말 고난이 다가오기 시작을 하면 견디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하시면 할 수 있다고 믿고 있지만 그래도 이제까지 많은 사람들을 보았지만 역시 예배에 참석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고난입니다
거의 다 견디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그 환경과 처지를 주시면 견딜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교회라는 것을 늘 생각하고 있어야 합니다. 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교회를 주셨는가 하면 그 교회를 통해서 해산의 수고를 하더라도 생명이 탄생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의 생명입니다
그냥 탄생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사라를 통해서 탄생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라가 있는데도 참석을 하지 않고 있다면 고난이 오면 견디지를 못하고 넘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교회에 대해서 너무 모르기 때문에 그리고 그리스도편지에서 복음을 말씀하니까 교회를 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안타깝기만 합니다.
로마서9:10절을 보겠습니다. (신 251쪽을 보겠습니다.)
“이뿐 아니라 또한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잉태하였는데”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리브가도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에게서 쌍둥이 아들을 수태하였는데,”
사라입니다
그리고 이제 리브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여자들은 다 교회를 예표를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예표와 비유입니다 성경에서 그 예표와 비유를 못 보면 그는 소경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모두가 영의 일을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족보가 아닙니다.
우리가 이스라엘의 족보를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족보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떻게 생명을 주시는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영의 일을 깨닫지를 못하면 반드시 사망에 이르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성경을 보면서 영의 일을 깨닫는 것이 아니라 육으로 빠져 버리고 있습니다.
창세기의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의 부인이 사라입니다 그리고 그 사라가 약속의 자녀로 이삭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그 이삭의 부인이 리브가 입니다. 이제 이삭을 통해서 리브가가 어떻게 아들을 낳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라를 통해서 이삭을 낳았습니다.
약속의 자녀입니다
우리는 약속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생명이 있는 약속의 자녀라는 말씀입니다 쉽게 말씀을 드리면 우리 안에 하늘에 생명이 있는 성도라는 말씀입니다 그 성도가 어떻게 합니까? 사도 바울을 이방의 사도로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했습니까?
사도 바울을 통해서 이방에 교회가 세워지기 시작을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누구입니까?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은 약속의 자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이삭과 같은 약속의 자녀입니다 그러니까 영원한 생명이 있는 자녀라는 말씀입니다
잘 이해를 하셔야 합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를 통해서 이삭과 같은 약속의 자녀가 태어났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를 통해서 위에 있는 예루살렘을 통해서 우리가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사라를 우리의 어머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입니까?
이삭과 같은 약속의 자녀입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안에 영원한 생명이 있는 자녀라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에는 약속의 자녀들이 있습니다. 그 약속의 자녀들이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이 세상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 복음을 전하는 교회를 리브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삭이 누구입니까?
약속의 자녀입니다 어떤 약속의 자녀인가 하면 사라로부터 낳은 약속의 자녀입니다 사라로부터 낳은 자녀는 어디서 낳는가 하면 위에 있는 예루살렘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도 바울도 이삭과 같은 약속의 자녀고 이 시대 영원한 생명이 있는 우리 성도도 역시 약속의 자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약속의 자녀입니다
그가 이 세상에서 무엇을 해야 합니까? 사도 바울이 이방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방에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 교회에서 해산의 수고를 해서 성도들이 탄생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한 그곳이 교회가 되었고 그 교회가 해산의 수고를 해서 아들을 낳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사도 바울은 이삭과 같은 약속의 자녀입니다 그런데 그가 이방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곳에 자연스럽게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 교회를 지금 사도 바울이 리브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정말 잘 이해를 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사라로부터 낳은 약속의 자녀가 되어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있는 우리는 약속의 자녀입니다
쉽게 말씀을 드립니다.
성경을 보고 성령의 감동을 받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을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내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있습니다. 이 사람을 이삭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 이삭이 또 세상에 나가서 복음을 전하는데 그때 세워진 교회가 리브가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삭과 같은 약속의 자녀입니다
이제 리브가가 이삭으로 말미암아 아들을 잉태를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삭과 같은 약속의 자녀가 이 세상에 나가서 복음을 전했는데 교회가 세워졌다는 말씀입니다 이삭과 같은 약속의 자녀가 주님께서 부탁하신 말씀을 듣고 이제 세상에 나가서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때 사람들이 그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것을 잉태라고 합니다.
이삭과 같은 약속의 자녀입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의 영의 생명이 있는 자녀가 세상에 나가서 복음을 전합니다. 이제 그 복음을 들은 사람이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마치 사도 바울이 이방에 복음을 전하니까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가 세워진 것과 같습니다.
성경의 비유입니다
그것을 모르고 성경을 본다는 것은 너무 어리석은 일입니다 아니 소경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삭이 누군지도 모르고 리브가가 누군지도 모르고 이 로마서를 보고 있다면 그는 로마서 자체를 깨달을 수 없기 때문에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삭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복음을 듣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것을 사도 바울은 이삭으로 말미암아 리브가가 잉태를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교회가 어떻게 세워지고 있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입니다
반드시 이삭과 같은 약속의 자녀가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이스마엘과 같은 사람이 복음이라고 전하면 어떻게 됩니까? 그것은 리브가가 될 수 없습니다. 교회는 누구에 의해서 세워지고 있는가를 사도 바울이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반드시 이삭입니다
이삭과 같은 약속의 자녀가 아니면 그가 아무리 복음을 전한다 해도 그것은 교회라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교회에 대해서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영원한 생명에 대해서도 모르고 있는 사람이 복음이라고 전하고 있다면 그것은 교회가 아닙니다. 반드시 이삭과 같이 영원한 생명이 있는 자가 복음을 전해야 그것이 리브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도 바울이 이방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교회들이 무엇인가 하면 리브가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라의 교회와 리브가의 교회는 다릅니다. 사라의 교회는 반드시 이삭과 같은 약속의 자녀를 낳습니다. 그 사라는 어디에 있는가 하면 위에 있는 예루살렘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라의 교회는 하늘로부터 온 생명이 있는 성도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 있는 교회입니다 그 교회는 사라의 교회가 아니라 리브가의 교회입니다 우리가 지금 예배를 하고 있는, 주의 만찬을 나누고 있는 이 교회는 리브가 입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눈으로 보고 있는, 그리고 교제를 하고 있는 이 교회는 리브가라는 말씀입니다
이 리브가의 교회는 어떻게 세워집니까?
이삭과 같이 영원한 생명이 있는 성도가 복음을 전함으로서 교회가 게워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삭과 같이 영원한 생명이 있는 자가 그 생명에 대해서 전함으로 해서 예배를 하고 있고, 주의 만찬을 나누고 있는 그 모임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1:20절을 보겠습니다. (신 400쪽을 보겠습니다.)
“네 본 것은 내 오른손에 일곱 별의 비밀과 일곱 금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이삭입니다
그는 약속의 자녀입니다 약속의 자녀는 누구인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 사이에서 태어난 생명이 있는 성도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늘로부터 온 생명이 있는 성도를 약속의 자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약속의 자녀를 요한계시록에서는 일곱 별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별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하늘의 뭇별들을 보이시면서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이삭은 누구인가 하면 하늘의 뭇별들 중에 하나라는 말씀입니다 하늘의 생명이 있는 성도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아브라함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그것은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늘의 영이 탄생이 되어 있는 사람을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요한일서에서는 영원한 생명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것을 요한계시록에서 일곱 별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삭과 같은 약속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생명이 있는 자를 일곱 별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일곱 별이 이 세상에서 복음을 전하니까 그것이 일곱 교회가 되었고 그것을 요한계시록에서 사도 요한을 통해서 환상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성경은 영의 일입니다
우리 육체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늘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 시대는 성경을 거의 이스라엘과 같이 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성경을 문자 그대로 본 것과 같이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가끔 가다가 성경을 인용하고 있고 거의 인용을 하지 않고 그 말씀에 있는 문자만을 보고 이해하려고 하니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고 있습니다.
일곱 별입니다
우리 성도를 일곱 별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생명이 있어서 복음을 전활 수 있는 성도를 별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갈라디아에서는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이 있는 성도를 일곱 별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일곱 별입니다
그 별이 일곱 교회에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세상에 나가서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생명이 있는 일곱 별이 복음을 전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의 비유를 우리는 정말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일곱 교회는 누구를 상징하고 있는가 하면 이삭으로 말미암아 잉태가 되어 있는 리브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일곱 교회입니다
그것은 리브라가를 상징하는 교회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일곱 별이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곱 교회를 보니까 거의 모든 교회가 타락을 했습니다. 일곱 별이 그러니까 이삭으로 말미암아 리브가가 잉태가 되었는데 거의 다 타락한 교회를 보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일곱 별이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일곱 별이 복음을 전하고 있는 교회의 대부분이 타락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교회가 어떻게 되는 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리브가라는 교회가 세상에는 많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교회 중에서 주님으로부터 책망을 듣지 않는 교회가 거의 없다는 것을 또한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한 영혼의 구원입니다
이 시대는 구원에 대해서 너무 쉽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일곱 별이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는 이삭과 같은 약속의 자녀가 복음을 전하는데도 교회는 거의 타락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리브가입니다
교회가 어떻게 되는가를 성경은 아주 자세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 기독교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은 성경의 비유를 모르다보니까 남의 교회는 그렇더라도 자기들의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주 잘 믿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실상은 이 시대 기독교라는 종교의 교회는 일곱 교회에서 끼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별이 있습니까?
이 시대 별이 있습니까? 이삭과 같은 약속의 자녀가 있습니까? 사라로 말미암아 탄생이 되어 있는 영원한 생명이 있는 약속의 자녀가 있느냐는 말씀입니다 정말 죄송하지만 아니 저를 이단이라고 해도 좋지만 이 시대는 별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별이 없는 상태에서는 리브가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먼저 이삭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리브가가 잉태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별이 없습니다. 이삭과 같은 약속의 자녀가 거의 없다는 말씀입니다 아니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그런 별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 교회라고 하는 것은 리브가가 아니라 음녀가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음녀입니다
그것은 리브라가 될 수 없습니다. 반드시 이삭과 같은 별이 있어야 리브가도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시대는 리브가도 거의 없습니다. 물론 있습니다. 그러나 리브가가 거의 보이지가 않고 있습니다. 이삭과 같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약속의 자녀가 탄생이 되어 있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의 일곱 교회입니다
그것은 반드시 일곱 별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일곱 별이 없습니다. 구원을 받은 자가 거의 없습니다. 아니 구원을 받은 자는 조금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곱 별과 같이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자가 거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일곱 교회를 잘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곳에는 분명히 일곱 사자가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이삭과 같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생명이 있는 자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목사들을 보면 이삭과 같은 약속의 자녀가 거의 없습니다. 사라로 말미암아 탄생이 되지 않은 사람은 일곱 별이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이삭과 같은 약속의 자녀입니다
그 자녀가 이제 복음을 세상에 전하고 있지만 일곱 교회가 어떻게 타락을 하는가를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성경을 전혀 모르면서도 자기들이 구원을 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라 거대한 종교의 포승에 묶여 끌려가고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리브가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 안에서 구원을 받을 사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리브가가 보이지를 않고 있습니다. 리브가가 없는 교회에서는 절대로 구원을 받을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리브가는 이삭으로부터 잉태를 했습니다. 그러니까 사도 바울과 같은 자가 복음을 전해서 그 안에 성도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교회입니다
교회의 조건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복음이 전해지고 있지 않으면 그것은 교회가 아닙니다. 이 시대 거의 모든 교회가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율법을 지키고 있는 교회는 실상은 리브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복음이 전해져야 합니다.
그러려면 반드시 이삭과 같은 약속의 자녀가 있어야 합니다. 영원한 생명이 있는 자가 있어야 복음을 전할 수 있고 그런 교회를 리브가라고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율법을 지키고 있는 교회는 리브가가 될 수 없고 이미 그 자체로 음녀가 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삭으로 말미암아 잉태가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가 못하고 있습니다.
로마서9:11절을 보겠습니다. (신 251쪽을 보겠습니다.)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기도 전에, 택하심이라는 원리를 따라 세우신 하나님의 계획이 살아 있게 하시려고,”
이 시대 기독교의 교리입니다
무조건적인 선택에 대해서 말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9장11절부터의 말씀을 가지고 선택과 유기를 말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신학에서 베우고 있는 선택입니다 그러나 오늘은 그 선택에 대해서 바로 알아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리브가가 누구입니까?
그녀는 교회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 교회 안에 선택을 받는 자와 유기가 되어 있는 자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리브가가 잉태를 했는데 이 중에 하는 선택을 받고 하나는 유기를 당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어느 정도는 맞을 수 있지만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칼뱅의 예정론입니다
오늘은 이 예정론이 얼마나 잘못 되었는가를 말씀을 하겠습니다. 저 역시도 얼마 전까지는 칼뱅의 오대 강령을 기초로 삼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오대 강령을 버렸습니다. 왜 버렸는가 하면 그것은 그들이 말하는 예지 예정론 자체가 모순이 되기 때문입니다
왜 모순이 됩니까?
리브가가 이삭으로 말미암아 잉태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실제 리브가가 이삭으로 말미암아 에서와 야곱을 잉태한 것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비유입니다 그런데 칼뱅의 예정론은 이것을 비유로 본 것이 아니라 실제로 보았습니다. 저 역시도 얼마 전까지는 이것을 실제로 보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는 것을 고백합니다
예지 예정론입니다
이것에 대해서 제가 굳이 다시 설교할 필요성이 없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기독교에서 신앙생활을 했던 사람은 알미니안주의에 있었든지 칼뱅주의에 있었든지 이 예지 예정론에 대해서는 들어 왔고 많은 사람들이 이 선택의 교리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을 드립니다.
칼뱅의 예지 예정론은 잘못된 교리입니다 결론부터 말씀을 드리면 좀 의아해 하실 분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이제까지 선택에 대해서 거의 칼뱅주의의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전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칼뱅의 선택입니다
그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선택과 다르지 않습니다. 불교에 가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도 불자가 되기 위해서는 부처님의 선택을 받았다고 하면서 그 선택을 받은 자는 불자의 길을 가야 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택하심과 무엇이 다릅니까? 사실 이런 선택의 교리 때문에 불교와 기독교가 거의 차이가 없이 같은 말을 쓰고 있습니다.
불자의 선택은 맞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씀하는 택하심을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우리는 이 택하심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지금 칼뱅주의에서 말하고 있는 선택의 교리는 거의 불교의 교리와 같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지금 로마서입니다
이제까지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이삭이 누구입니까? 우리 인생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사라로 말미암아 탄생이 된 이삭이 창세기에서 말씀하는 그 이삭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이삭은 위에 있는 예루살렘으로부터 난 영원한 생명을 이삭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약속의 말씀은 이것이라 명년 이 때에 내가 이르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셨습니다. 그 말씀 그대로 실제 창세기에서 이삭이 태어났습니다. 그 이삭이 영원한 생명을 가진 자입니까? 그 이삭이 위에 있는 예루살렘으로부터 난 자입니까? 그 이삭은 실제 사라라는 여자의 몸에서 태어난 아들입니다
누구입니까?
영의 일을 가르쳐 주기 위한 예표입니다 이 이삭은 실제 이삭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가진 영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에서 위에 있는 예루살렘이니 자유하는 여자라고 하면서 곧 우리의 어머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라가 우리의 어머니입니까?
사라는 육적으로는 절대로 우리의 어머니가 아닙니다. 사라가 어떻게 우리의 어머니가 될 수 있습니까? 그런데 사도 바울은 사라를 우리의 어머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 육신의 어머니라고 하는 것입니까? 내 영의 생명의 어머니라고 하는 것입니까? 내 영의 어머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삭입니다
영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영원한 생명이 있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 육체의 일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영의 일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삭은 사라로부터 태어났습니다. 그 이삭이 일곱 별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이 이삭이 이제 또 일곱 교회에 복음을 전하고 있고 그 일곱 교회가 리브가 입니다.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않았습니다.
누구를 말씀하고 있습니까? 물론 표면적으로는 에서와 야곱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 표면적인 것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이삭이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리브가가 잉태를 했습니다.
그 자식들입니다
그것의 표면적인 것은 에서와 야곱입니다 그러나 지금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그것을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 자식들이 누구입니까? 교회 안에 두 자식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는 분명히 두 자식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요한복음8:44절을 보겠습니다. (신 160쪽을 보겠습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시편128:3절을 보겠습니다. (구 899쪽을 보겠습니다.)
“네 집 내실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상에 둘린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그 자식들입니다
그들이 누구입니까? 에서와 야곱입니다 그러나 지금 로마서에서는 에서와 야곱을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교회 안에는 두 자식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로마서9장11절 말씀으로 인하여 거의 모든 사람이 선택의 교리를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선택이 무슨 선택입니까? 육신의 선택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육신을 선택했습니까?
이제까지 사도 바울이 우리 육신을 선택해서 그 육신이 구원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사도 바울은 계속해서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육의 일을 말씀을 한다는 것이 모순입니다 이삭은 분명히 별입니다 그러니까 하늘의 생명이 있는 약속의 자녀라는 말씀입니다 그 자녀가 복음을 전해서 잉태를 했습니다.
그것이 리브가라는 교회입니다
그 교회 안에는 두 사람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실제 에서와 야곱이 아니라 자식들이 있습니다. 이삭으로부터 복음을 듣고 잉태가 되어 있는 교회 안에는 자식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자식이 하나는 에서고 하나는 야곱이라는 말씀입니다
자식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 나지도 않았습니다. 리브가가 잉태만 했습니다. 물론 우리는 창세기를 통해서 그들이 누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에서와 야곱이라는 것을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교회 안에는 두 사람이 있는데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교회입니다
그 교회에는 누가 있었습니까? 예수님께서 요한복음에서 바리새인들에게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정말 성경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시대는 너무 성경을 편하게 보고 있습니다. 이 시대 뿐 아니라 이제까지 신학자들이 매너리즘에 빠져 있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종교입니다
그것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까 그들의 교리가 든든히 서 있고 거기서 더 이상의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성령을 보내 주시지 않아서 성경말씀을 아무리 보아도 도무지 무슨 말씀인가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에서입니다
그리고 야곱입니다 지금 두 육체를 가지고 하나님께서 선택을 하셨고 유기를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우리 육체는 누구의 자식입니까? 우리 육체는 마귀의 자식이기 때문에 죽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에서입니다.
그것은 우리 육체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야곱입니다 그것은 우리 안에 탄생이 되어 있는 영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 사도 바울은 이 두 자식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지 실제 에서와 야곱을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실제 육체의 에서와 야곱으로 생각하면서 선택이라는 교리를 만들고 또 유기를 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야곱입니다
그 육체는 유기되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합니다, 야곱의 육체 역시 유기가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에서만 유기가 된 것이 아니라 야곱의 육체도 역시 유기가 되어서 썩어 없어졌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야곱이 선택을 받았습니까?
이삭이 누구입니까? 이삭은 영원한 생명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이삭이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생기면서 그 안에 두 자식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어느 자식인가 하면 하나는 마귀의 자식입니다 우리 육체는 다 마귀의 자식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신체의 구원이 아닙니다. 칼뱅의 선택의 교리는 신체의 구원을 기초로 두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 신체의 구원을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만약에 신체의 구원이 맞는다면 칼뱅의 오대강령이 맞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체의 구원이 아니기 때문에 칼뱅의 오대강령은 틀릴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이 오해를 합니다.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니까 마치 우리 신체가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자식들입니다
아직 나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않았습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분명히 창세기의 에서와 야곱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두 자식은 하나는 육체를 말씀을 하고 있고 하나는 영을 말씀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두 자식 다 육체를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한 자식은 영입니다
사라의 자녀입니다
그 자녀는 약속의 자녀입니다 그러나 리브가의 자녀는 다릅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를 예표를 하고 있고 그 교회를 통해서 이삭이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 생명이 있는 이삭을 별이라고 하면서 그가 복음을 전해서 리브가가 잉태를 했습니다.
리브가라는 교회입니다
그 교회가 요한계시록에서 보이고 있는 일곱 교회입니다 그런데 그 교회 안에는 자식들이 있습니다. 이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않은 때에 하나는 마귀의 자식이 되고 하나는 그리스도의 생명이 주어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영의 일입니다
계속해서 강조를 하고 있지만 성경은 육의 일이 아니라 영의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육의 야곱을 택하신 것이 아니라 영의 생명이 탄생을 해서 하나님 앞에 서게 하려고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의 일을 이제까지 기독교는 육의 일로 만들어서 선택이 맞는가 아니면 틀리는가 하면서 서로 자기들이 정통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알미니안 주의가 맞습니까?
아니면 칼뱅주의가 맞습니까? 알미니안 주의는 하나님의 선택이 있지만 사람도 거기에 동조를 했다는 것이고 칼뱅주의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선택을 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둘 다 무엇이 선택을 받았는가 하면 자기들이 신체가 선택을 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 선택의 교리가 시작이 된 것이 바로 로마서9장11절 부터의 말씀입니다
둘 다 틀립니다.
사도 바울은 영의 일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기독교에서 말하고 있는 신체의 선택이 아니라 영이 어떻게 탄생이 되고 구원을 받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삭으로 말미암아 복음을 듣고 영의 생명이 탄생이 되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의 생명의 탄생입니다
그것은 선택에 의해서 태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영의 생명은 하늘로부터 오는데 어떻게 선택을 하고 있습니까? 선택이라는 것은 나쁜 것과 좋은 것이 있어서 그 중에 좋은 것을 택한다는 것인데 논리적으로 영의 생명을 선택한다는 것은 맞는 말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로마서를 보고 사람들은 그렇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강해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로마서 강해 87강 성경은 영의 일입니다 (0) | 2017.10.03 |
---|---|
로마서 강해 86강 선택의 바른 이해 (0) | 2017.10.03 |
로마서 강해 84강 영생입니다 (0) | 2017.10.03 |
로마서 강해 83강 큰 근심이 있습니다 (0) | 2017.10.03 |
로마서 강해 82강 육체가 아닙니다 (0) | 2017.10.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