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찌어다(계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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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윤주만목사 2016. 5. 14. 22:13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전도서12:1-8절을 보면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 그런 날에는 집을 지키는 자들이 떨 것이며 힘있는 자들이 구부러질 것이며 맷돌질하는 자들이 적으므로 그칠 것이며 창들로 내어다 보는 자가 어두워질 것이며 길거리 문들이 닫혀질 것이며 맷돌 소리가 적어질 것이며 새의 소리를 인하여 일어날 것이며 음악하는 여자들은 다 쇠하여질 것이며 그런 자들은 높은 곳을 두려워할 것이며 길에서는 놀랄 것이며 살구나무가 꽃이 필 것이며 메뚜기도 짐이 될 것이며 원욕이 그치리니 이는 사람이 자기 영원한 집으로 돌아가고 조문자들이 거리로 왕래하게 됨이라 은줄이 풀리고 금그릇이 깨어지고 항아리가 샘 곁에서 깨어지고 바퀴가 우물 위에서 깨어지고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신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

 

인생은 헛됩니다.

그러나 인생들은 이 인생에 모든 것을 다 걸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정말 잠시 보이다가 사라지고 마는 인생인데 체질이 너무 연약해서 그 인생의 희로애락에 마음을 다 빼앗기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실 우리 인생이 얼마나 허망한가를 가르쳐 주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 합니다.

 

받아들인다는 것이 어렵습니다.

고난의 연속인 삶을 받아들이기가 어렵습니다. 또 우리 속담에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이 있듯이 비교하는 눈이 있어서 인생에 더욱 집착을 하고 있습니다. 잠시 보이다가 사라지는 인생이라는 것을 인정을 하면 그나마 조금은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데 한 끼만 굶어도 견디지를 못하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그 한 끼를 위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먹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만은 아닙니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에는 충분히 먹을 것이 있는데도 남들이 하는 것을 자기도 누리고 싶어 하는 그 마음이 너무 강해서 인생에 연연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실 사람의 도리를 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사람이 문제입니다

서로가 비교를 하고 있고 또 도리를 해야 한다고 하고 있고 그것을 못하면 심하게 모멸감을 받기 때문에 누구라도 그것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그래서 더욱 사람의 도리를 다 하기 위해서 인생에 모든 것을 다 걸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잠시 후에는 흔적도 없이 흙으로 돌아가는 그것에 그렇게 마음이 빼앗겨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목사라고 하지만 저 역시도 그것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정말 복음을 위해서 살고 싶지만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을 하기 위해서 주님께서 제게 주신 직분을 감당하고 싶지만 역시 배가 고프면 참지를 못하고 있고 또 남들이 누리고 있는 것을 나도 조금이라도 누리고 싶어서 때로는 내가 왜 이 일을 해야 하는가 하면서 포기를 하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인생은 누구나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에서 그래도 사람답게 살고 싶어 합니다. 인정도 받고 싶어 하고 있고 또 아! 저 사람 대단해 하는 말도 들어 보고 싶고 누가 보아도 당당하게 살아가고 싶습니다. 누가 그것을 마다할 사람이 어디 있고 그것에 초연해 질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잘 하고 싶습니다.

그 마음은 인생 모두에게 있어 마음 깊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 아닌 가 생각을 합니다. 그 이유는 바로 죄 때문입니다 인생은 체질적으로 죄를 짓고 살아가는 인생이기 때문에 어떻게 하든지 자기를 잘 나타내 보이고 싶어 하는 것이 그 마음에 내제하고 있다고 보면 맞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욱 연연을 하면서 인생에 애착을 가지고 있습니다.

 

장미를 봅니다.

같은 장미꽃이 피었지만 어떤 꽃은 정말 보기만 해도 탐스럽고 향기가 너무 좋습니다. 미물인 장미도 자기를 나타내기 위해서 그렇게 내 보이고 있는데 이성이 있는 인생은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누군가는 세상에 대해서 초연하다고 하지만 그것도 하나의 객기가 아닌 가 봅니다. 자기에게 그럴 수 있는 처지와 형편이 되니까 그런 말을 하지 노숙자가 되어서 몇 끼를 굶어보면 그런 말을 함부로 하지 못할 것이 분명합니다.

 

갈라디아서5:24절을 보면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말로는 쉽습니다.

그러나 사실 이것보다 더 어려운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정말로 이와 같이 육체와 함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받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물론 이 세상에서 사는 것을 말씀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사람은 분명히 육체를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가능한 그렇게 살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살아 있는 한 어느 누구도 자기 육체가 죽었다고 할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면 정말로 무의미한 삶이 되고 맙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는 이것을 받아들이고 인정을 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있습니다.

영의 일에 있어서는 우리 육체와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을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행하고 있는 그런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입니다

내 삶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은 절대로 어느 누구도 십자가에 육체와 정과 욕심을 못 박을 수 없습니다. 배가 고프면 먹고 싶고 누군가 더 좋은 것을 가지면 나도 누리고 싶고 때로는 여행을 하면서 쉬고 싶은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그리고 맛있는 것이 있으면 먹고 싶어 하는 것이 또한 우리의 솔직한 마음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앞에 성령의 열매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열매를 말씀을 하고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의 예수의 사람은 육체와 함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열매를 우리는 잘 나타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성령의 열매를 너무 강조를 하다 보면 진리가 가려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랑,

너무 사랑 타령만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정과 욕심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사랑을 내 보이려고 하는 그 자체가 육체의 모습입니다. 물론 분명히 성령이 감동을 해 주셔서 사랑을 하고 있지만 그것에 너무 집착을 하게 되면 진리가 가려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도는 물론 이 세상 사람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또 교회 안에서 성도끼리도 사랑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도 육체의 정과 욕심입니다

성령의 9가지 열매가 있습니다. 성도는 그것을 나타내면서 이 세상에서 헌신을 하면서 살아가야 하겠지만 그것이 육체라는 것을 우리가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진리를 위해서는 그 성령의 열매를 나타내고 싶어 하는 육체와 함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지금 이 시대 교회는 너무 그것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습니다. 사랑에 대해서 절제를 하라고 하면 아마도 화를 낼 것이 분명합니다. 아니 사랑을 안 해도 된다고 하면 이단이라고 공격을 할 것입니다. 물론 성도가 사랑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그러나 내 영혼의 구원을 위해서는 그 사랑도 십자가에 못 박을 수 있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뭐가 중요한지를 모릅니다.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구원을 했을 때 일입니다. 그저 육체를 가지고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려고 너무 집착을 하는 것 역시 복음에 방해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것에 마음을 빼앗기기 보다는 진리를 아는데 더 힘써야 한다는 것을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합니다.

 

성령의 열매 반대를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그것까지도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성령의 열매를 너무 나타내려고 하는 것 역시 내 육체의 일이고 또 그것이 정과 욕심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성령이 감동을 주어서 그것을 금지할 법이 없지만 그렇다고 너무 그것에 마음을 빼앗기는 자는 결국에는 자기 영혼을 망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왜 예수를 믿습니까?

자기에게서 성령의 열매가 나타나서 이웃을 사랑하고 희락을 누리고 화평을 하고 오래 참고 하는 것을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절대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성령의 열매를 말씀을 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성도는 오직 영혼 구원을 위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것을 모르고 살아가고 그것을 한 시라도 잊고 살아가고 있다면 그는 성도라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너무 육체와 정과 욕심에 마음을 빼앗겨서 자기 청년의 때를 보내고 있습니다.

 

영혼 구원입니다

아무리 강조를 해도 지나치지가 않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교회에 나와서 자기가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는지 그 목적을 모르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 아주 열심을 다 해서 봉사를 하고 헌신을 하면서 자기가 하나님을 아주 잘 믿고 있다는 것을 육체로 보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정과 욕심이라는 것을 모르고 그 일에 모든 것을 다 빼앗겨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른 것에 마음을 두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이 세상에서 모든 것을 다 얻었다 해도 그 영혼이 구원을 받지 못한다면 그는 멸망하는 짐승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이성을 가지고 있다고 자랑을 하고 있지만 자기가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는지를 모르고 육체를 살리고 있고 정과 욕심이 가득 차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청년의 때입니다

아마도 이 말씀을 보고 있는 청년들은 자기들이 교회 안에 있는 것으로 자기는 창조주를 기억하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지금 교회 안에는 청년의 때를 하나님을 믿으면서 살아가고 있다고 자부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기억하고 있습니까?

무엇을 기억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믿고 있는 그것이 기억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청년의 때를 놓치면 안 됩니다. 나이가 들어 총기가 사라지고 난 후에는 하나님을 믿고 싶어도 믿을 수 수 없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청년의 때를 놓치게 되면 여러분은 결국 사망의 길로 가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말을 합니다.

죽을 때가 되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해서 천국에 들어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과연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을 합니까? 물론 하나님께서 하시면 무엇이든 못하실 것이 없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러나 왜 전도서를 통해서 청년의 때에 너를 창조하신 창조주를 기억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병이 듭니다.

그리고 나이가 듭니다. 그런 상태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천국에 간다고 하는 것은 사람들의 말장난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총기가 있는 청년의 때에 성경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도 쉽지가 않은데 곤고한 날에 이르러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자체가 모순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영생이 무엇입니까?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물론하나님께서 단번에 모든 것을 다 알게 해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성경을 주시고 또 그 성경에는 수많은 말씀들이 있는데 과연 병이 들어 있는 상태에서 그리고 나이가 들어 있는 상태에서 그것을 안다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알아야 믿을 것 아닙니까?

사람들의 강요에 의해 믿는다고 하는 것은 믿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청년의 때에 총기가 있을 때 성경에서 성령의 감동을 받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것은 거짓에 불과하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그래도 구원에 대해서 알려고 한다면 최소한 복음이 있는 자의 설교를 몇 년은 들어야 한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믿음은 단번에 주십니다.

물론 단번에 주시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 믿음을 받은 성도는 늘 성경을 묵상을 하면서 성령의 감동을 받아 진리 가운데로 인도함을 받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합니다. 나중에는 내가 믿고 싶어도 이미 총기가 다 사라져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청년의 때입니다

아무 낙이 없다고 할 때는 이미 믿고 싶어도 믿을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청년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습니까? 그들이 하나님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감성에 의해서 자기들의 기쁨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시편78:42절을 보면

저희가 그의 권능을 기억지 아니하며 대적에게서 구속하신 날도 생각지 아니하였도다

 

애굽에서 인도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의 권능을 기억지 아니하며 대적에게서 구속하신 날도 기억지 아니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한국 교회를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기억지 않고 있습니다. 그저 현실에 갇혀서 자기들이 하고 있는 신앙생활을 보면서 전혀 그의 은혜를 기억지 않고 있습니다.

 

행위가 아닙니다.

기억하라는 말씀은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자기들을 구속하신 것을 구원해 주신 것을 기억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자기들의 행위에 너무 깊이 빠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청년의 때 무엇을 기억해야 합니까? 신앙생활을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어떻게 구원해 주셨는가를 기억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청년의 때에 나를 어떻게 구원해 주셨는가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그냥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성령의 감동을 받으면서 성경 안에서 그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청년의 때에 그것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교회 안에 있는 것으로 마치 하나님을 늘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나를 어떻게 구원해 주셨는가 하는 것에 대해서 기억을 하지 않고 있다면 그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지금 이 시대는 너무도 중요한 구원에 개해서 기억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모르면서 무슨 믿음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까?

 

왜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죽었습니까?

그것이 자기 조상들의 일도 아니고 자기들이 직접 목도를 하고 또 하나님의 기적을 보았으면서도 광야에서 기억을 하지 않았습니다. 오래 된 일이 아닙니다. 자기들이 직접 본 일입니다. 하물며 그들도 그랬는데 지금 이 시대는 수천 년 전의 일을 성경을 통해서 보고 있습니다. 어쩌면 기억을 하고 있다는 것이 더 이상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성도는 다릅니다.

자기가 어떻게 구원을 받았는가를 늘 기억하고 있습니다. 영혼 구원에 대해서 한 시도 잊어버리지 않고 똑똑히 기억을 하고 있는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에 어떻게 영접을 받을 것인가를 늘 기억을 하면서 성경을 보고 있고 또 성령의 감동을 받고 있습니다. 성도는 이 구원에 대해서 성령의 감동을 받고 있기 때문에 너무도 잘 기억을 하고 있습니다.

 

청년의 때입니다

그때가 지나가서 하나님을 잘 믿겠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때가 지나가서 성경을 보겠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 총기가 있을 때 부지런하게 깨어서 성경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알아야 하는데 교회 안에서 너무 해야 하는 일들이 많이 있고 또 자기를 나타내고 싶은 마음에 하나님을 기억하는 일에 관심이 없습니다.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

 

종말이 옵니다.

물론 개인적인 종말도 있지만 이 지구의 종말이 옵니다 그때가 오면 기회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 종말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마치 종말의 때가 왔을 때에도 자기들에게 기회가 있을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절기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마지막 수장절이 지나고 나면 기회가 사라지고 만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지구에 종말이 올 때 믿음이 있는 자가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재림의 나팔 소리가 들리는 그 순간에는 모든 것이 이미 결정이 나 있습니다.

 

미리 예비를 하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 게으른 자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행위에 있어서는 그리도 부지런한 자들이 창조주를 기억하는 일에 대해서는 너무도 게을러서 해가 달이 어두워 질 때 까지도 그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교회 안에 있다는 그것으로 마치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른다고 하는 것으로 창조주께서 자기를 구속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는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경계를 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종말의 때가 가까이 오고 있지만 그들은 교회라는 종교에 너무 갇혀서 거기서 빠져 나오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종교적인 행위로 인하여 창조주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어야 하는 지를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날에는 집을 지키는 자들이 떨 것이며 힘 있는 자들이 구부러질 것이며 맷돌질하는 자들이 적으므로 그칠 것이며 창들로 내어다 보는 자가 어두워질 것이며

 

공동번역을 보겠습니다.

그 날이 오면 두 팔은 다리가 후들거리는 수문장같이 되고, 두 다리는 허리가 굽은 군인같이 되고, 이는 맷돌 가는 여인처럼 빠지고, 눈은 일손을 멈추고 창밖을 내다보는 여인들같이 흐려지리라

 

청년의 때가 지나갑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청년의 때를 허송세월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세상 사람들에게 하는 말씀이 아니라 바로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전도서를 누가 보았습니까? 그 당시에는 이방에 복음이 전혀 전해지지 않고 이스라엘 사람만이 성경을 보았습니다. 더구나 그 성경을 보는 사람들은 일반 백성이라기보다는 제사장 선지자들이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날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더 그 날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자기들은 너무도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고 자기들이 하고 있는 행위를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너무도 태평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고 그런 자기들에게 다가오는 때를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인생은 살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들에게 닥쳐오는 그 날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청년의 때를 살아가고 있고 또 그 청년의 때에 교회 안에서 너무도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더 창조주를 기억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내가 어떻게 구원을 받아야 하는 가를 생각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날에는 아무 것도 못 합니다

종말의 때가 오면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싶어도 못 믿는다는 것을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합니다. 지금 이 시대는 하나님의 때로 보았을 때 오순절에서 나팔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 시기가 끝이 나면 어떻게 될 것인가를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길거리 문들이 닫혀질 것이며 맷돌 소리가 적어질 것이며 새의 소리를 인하여 일어날 것이며 음악하는 여자들은 다 쇠하여질 것이며

 

안 들립니다.

복음의 소리가 안 들려지고 있습니다. 귀가 먹어서 도무지 복음을 들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지금 청년의 때 무엇 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다면 복음의 나팔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아니 듣고 있지 못하고 있다면 하나님께 간절하게 구해야 합니다.

 

깨어 있으시기 바랍니다.

교회가 있다고 해서 다 복음이 전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수가 바다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이 구원을 받는다고 로마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청년의 때가 지나가면 우리가 이 복음의 소리를 듣고 싶어도 안 들려 집니다. 그 이유는 귀가 먹어서 듣고 싶어도 들리지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지금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 귀머거리들아 들으라 소경들아 보라고 성령께서는 우리 심령을 두드리고 있지만 이 시대는 모두가 귀머리가 되어 있으면서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구원에 대해서 들어야 하는데 구원은 이미 자기들에게 지나간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고 교회 안에 들어와 있는 것으로 마치 구원을 받은 것으로 생각을 해서 생명에 대해서 들으려 하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 들어야 합니다.

총기가 있는 청년의 때에 들어야 합니다. 그때가 지나가면 여러분이 듣고 싶어도 들을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셔야 합니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사상이 점점 고착화되기 때문에 그때는 아무리 복음이 전해져도 들을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청년의 때가 지나가면 아무 소리도 안 들려 진다는 것을 명심하고 지금 이때 지혜를 간절하게 구해 영혼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 자들은 높은 곳을 두려워할 것이며 길에서는 놀랄 것이며 살구나무가 꽃이 필 것이며 메뚜기도 짐이 될 것이며 원욕이 그치리니 이는 사람이 자기 영원한 집으로 돌아가고 조문자들이 거리로 왕래하게 됨이라

 

두려워합니다.

청년의 때를 그냥 보낸 자들은 그때가 임하는 날에는 두려워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종말의 때가 임해서 성도들이 영원한 집으로 들어가고 나면 이 세상은 두려움만이 임하게 되고 길거리에는 조객들만이 다닌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거듭 말씀을 드립니다.

개인의 종말도 있고 이 지구의 종말도 있습니다. 개인의 종말도 마찬가지고 지구의 종말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때가 가까이 왔을 때는 아무 것도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 잘못된 종말론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마치 종말의 때가 되어도 자기들이 믿음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을 너무 모르는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종말의 때에는 내가 믿고 싶어도 믿을 수 없습니다.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이가 들고 병이 들면 내가 믿고 싶어도 못 믿습니다. 그때는 두려움만이 그 사람에게 임하게 되고 아무리 복음을 가진 자가 있다 해도 그 말이 자기 귀에 들어오지를 않는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지금 청년의 때 총기가 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을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나이 들어서 내가 성경을 본다고 해서 그것이 지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종말을 잘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언제 임할지 아무도 모릅니다. 물론 저는 이때는 아니라고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개인의 종말이 있다는 것을 늘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지금 사모하는 마음으로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믿고 있는 가 늘 지혜를 구하는 성도만이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실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은줄이 풀리고 금 그릇이 깨어지고 항아리가 샘 곁에서 깨어지고 바퀴가 우물 위에서 깨어지고

 

은줄이 풀립니다.

그리고 금 그릇이 깨어집니다. 항아리가 샘 곁에서 깨어지고 바퀴가 부서져 버립니다. 다 영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은은 생명의 속전을 말씀을 하고 있고 금은 생명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샘 곁에 있는 항아리는 성령의 감동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사라진다는 말씀입니다

지혜는 감추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성경을 너무 쉽게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너무 맹목적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경계로 다 보여 주셨지만 사람들은 그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일들이 자기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잘 하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노아가 방주를 삼백년 동안 지었습니다.

그가 물론 9백세를 넘게 살았습니다. 그 방주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노아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얻기 위해서 삼백년 동안 그 방주를 짓는 일만 했다는 것을 우리가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을 삼백년 했다는 것이 아니라 노아는 어려서부터 죽을 때 까지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삼백년 동안 방주를 지었습니다.

청년의 때를 거의 방주를 짓는 일에 노아는 자기 청년의 때를 다 보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교인들을 보면 자기가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그것을 보면서 마치 방주를 짓고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허송세월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신앙생활을 구백년을 했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내가 방주를 짓기 위해 청년의 때에 얼마나 지혜를 구했는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서 성경 공부를 했다고 자랑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은 어려서부터 성경을 보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전혀 몰랐고 또 기억하지도 않았다는 것을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신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인생은 흙입니다

모두가 다 흙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돌아가기 이전에 하나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이 하나님께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인생들은 그렇게 이 세상에 잠깐 보이다 사라지는 안개와 같이 그렇게 지나가고 있습니다.

 

인생 짧습니다.

금세 지나간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얼마나 허무하면 잠깐 보이다 사라지는 안개라고 말씀을 하겠습니까? 그런데 그 인생에 너무 매달려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무엇인가를 이루려고 하고 있고 또 교회 안에서 무슨 일이라도 하고 싶어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 영혼을 어떻게 구원을 하시는 가를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지금 교인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서 자기 행위를 보여야 하고 또 세상에서도 출세를 해야 하고 그 일에 모두가 마음을 다 빼앗기고 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잘못된 일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 것에 마음 빼앗기기 보다는 어떻게 하든지 내 영혼에 대해서 생각을 하고 있어야 하고 하나님께서 내 영혼을 어떻게 구원해 주시는가를 늘 생각하고 있어야 합니다.

인생을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너무 인생의 모습을 보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분복을 받아들이고 하루 세끼를 먹고 잠을 잘 수 있는 곳이 있으면서 감사하면서 살아가고 정말 영원히 살아야 하는 영혼에 대해서 생각을 하시기 바랍니다.

 

안개입니다

왜 그 안개에 그토록 마음을 빼앗기고 있습니까? 내 육체를 잘 보이려고 하지 마시고 어떻게 하든지 내 영혼의 구원에 대해서 육체가 흙으로 돌아가기 전에 생명이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그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인생은 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청년의 때인 지금 영혼 구원만을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

이 모든 것을 잘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교회 안에서 지금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모습도 다 헛됩니다. 세상에서 출세를 한 그것도 헛되고 또 교회 안에서 모든 사람으로부터 저 사람은 천국에 갈 것 같이 모법적인 성도라고 칭찬을 듣는 그 행위도 다 헛되다는 말씀입니다

 

헛됩니다.

다 헛됩니다. 헛되지 않은 것은 없습니다. 교회 안에서 행하고 있는 모든 행위도 다 헛됩니다. 지금 전도서는 이스라엘이 보았던 성경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얼마나 잘 믿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또 그들이 율법을 얼마나 잘 지켰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누가 뭐라해도 하나님의 백성과 같이 보였지만 그것 역시 헛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 헛됩니다.

그러나 헛되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혼 구원을 받는 그것입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있는 그것만 빼고 모든 것이 다 헛됩니다. 나도 헛되고 내가 평생을 신앙생활을 한 그것도 헛되고 오직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내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영만 헛되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그 영이 있습니까?

교회 안에 있다고 다 그 영이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아니고는 이 영이 있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지금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헛된 것이 마음을 빼앗기고 있고 그 영이 그 안에 없으면서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청년의 때 너무도 소중한 이때에 행위에 빠져 하나님을 기억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지금 청년의 때에 종교에 빠지지 마시고 내 영혼을 위해 하나님께 구하고 또 구해서 정말 내 영혼이 구원을 받았는가 성령의 감동으로 확신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헛된 것을 버리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혼 구원을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