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이방 여인을 취하여
느헤미야13:23-27절을 보면
“그 때에 내가 또 본즉 유다 사람이 아스돗과 암몬과 모압 여인을 취하여 아내를 삼았는데 그 자녀가 아스돗 방언을 절반쯤은 하여도 유다 방언은 못하니 그 하는 말이 각 족속의 방언이므로 내가 책망하고 저주하며 두어 사람을 때리고 그 머리털을 뽑고 이르되 너희는 너희 딸들로 저희 아들들에게 주지 말고 너희 아들들이나 너희를 위하여 저희 딸을 데려오지 않겠다고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하라 하고 또 이르기를 옛적에 이스라엘 왕 솔로몬이 이 일로 범죄하지 아니하였느냐 저는 열국 중에 비길 왕이 없이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라 하나님이 저로 왕을 삼아 온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하셨으나 이방 여인이 저로 범죄케 하였나니 너희가 이방 여인을 취하여 크게 악을 행하여 우리 하나님께 범죄하는 것을 우리가 어찌 용납하겠느냐”
혼인 너무도 중요합니다.
서로 다른 사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만나 한 가정을 이루고 살려고 하면 여러 가지의 문제가 충돌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제까지 각자의 가정에서 생활을 하던 것을 연애를 할 때는 그것이 안 보이다가 같이 살게 됨으로 해서 서서히 보이기 시작을 합니다.
그리고 하나가 됩니다.
또 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자녀가 탄생이 되기도 합니다. 지금이야 이혼율이 꽤 높게 나타나고 있지만 사실 우리나라도 수십 년 전만 해도 이혼을 한다는 것을 상상도 못했습니다. 설령 어느 한 배우자가 불륜을 한다 해도 그것으로 이혼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고 나니까 이제는 아주 사소한 문제로도 이혼이 되고 있고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혼인은 너무 중요합니다.
사상이 결합이 되지 않고는 원만한 생활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그런 말이 있습니다. 감자를 삶아서 소금을 찍어 먹느냐 아니면 설탕을 찍어 먹느냐는 그 문제를 가지고 서로 다투어 이혼 직전 까지 갔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사실 말이 안 됩니다.
그러나 혼인을 한 상태에서는 이런 사소한 것까지도 문제가 되고 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표현을 해 주고 있는 말입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아도 한 집에서 살면서 누구는 소금을 찍어 먹고 누구는 설탕을 찍어 먹는 자체가 서로를 피곤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아주 사소한 그런 것이 결국에는 큰 틈을 만들어 버리고 있습니다.
사람이 그렇습니다.
큰 문제는 오히려 대범합니다. 그러나 부부가 갈라서는 것은 아주 작은 문제에서 출발을 해서 그것이 점점 확대 되고 나면 나중에는 걷잡을 수 없을 만큼 확대가 되어 그 틈을 메울 수 없게 됩니다. 서로가 충분히 대화를 하고 이해를 하지 못하면 안 되는 것이 혼인 관계입니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특히 우리나라 같은 경우에는 3대 종교가 잘 어우러져 있는 나라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그런 마찰들이 보이지 않게 발생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독교 안에는 그런 사상들이 있습니다. 가능한 기독교인들과 혼인을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도 기독교인들끼리 혼인을 하게 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구약에 이런 말씀들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혼인에 대해서 신중을 기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여자가 남자와 결혼을 할 때 그 조건으로 교회에 나가는 것을 제시하기도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나중에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신앙이라는 것은 그런 강제적인 것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먼저 이해를 해야 하는데 결혼을 목전에 둔 사람이 그런 약속을 하는 것은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늘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는 구약의 이스라엘이 아니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지금 이 시대 많은 교인들이 마치 자기들이 이스라엘인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유대인도 아니고 유대인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는 이방인이고 그들이 개와 같이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이스라엘이 되는 것같이 그들과 같아지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아닙니다. 비록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이방인인 우리가 하나님을 찾고 그 아들이 되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이스라엘이 된 것으로 오해를 해서는 안 됩니다 물론 영적으로는 승리자이기 때문에 이스라엘이라 칭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육은 아닙니다.
이제는 육의 이스라엘의 싸움이 아니라 영의 싸움이라는 것을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성경에서 이방인과 혼인을 하지 말라고 한 것을 가지고 마치 지금 이방인인 우리가 이스라엘이 된 것같이 교회 안에 있는 사람끼리 결혼을 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을 하고 그렇게 하려고 하고 있다면 너무도 어리석은 생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창세기6:2절을 보면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이 말씀을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왜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았겠습니까? 이것이 문제가 되어 노아의 홍수가 있어서 인류가 노아 가족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물로 멸망을 당하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혼인 문제입니다
인류의 혼인 문제로 인하여 인류가 하나님으로부터 진노를 받고 결국에는 다 물로 심판을 받는 일이 발생이 되어 말았습니다. 단지 혼인 때문에 하나님께서 인류를 심판 하셨겠습니까?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그들과 혼인을 했다고 해서 인류가 물로 심판을 받았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역발상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왜 그럼 하나님의 딸들은 사람의 아들들과 혼인을 하지 않았을까요?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사람의 딸들이 아름다웠으면 사람의 아들들도 잘 생겨서 하나님의 딸들이 충분히 그들과 혼인을 했을 텐데 이상하게 성경은 그렇게 기록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인류의 심판입니다
첫 심판이 혼인 문제가 되었다는 것이 정말 이상하지 않습니까? 죄를 많이 지었다거나 악을 많이 행하였다거나 하지를 않고 혼인이 문제가 되어서 그것으로 인하여 물로 심판을 받게 되었다고 성경이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혼인이라는 것은 이만큼 중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가나안 지경에 있는 이방인과 혼인을 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혼인은 그만큼 중요합니다.
그리고 이 혼인은 정말 남자와 여자와의 혼인만을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만약 이방인과의 혼인인 문제가 되었다면 이 시대 이방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분명히 문제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방인이라는 것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리고 사람의 딸들입니다. 이 말씀은 구원을 받은 성도들이 자꾸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들과 혼합이 되어 갔다는 말씀입니다 실제 혼인의 문제가 아니라 그 당시 사람들이 진리와 비 진리가 섞여 가면서 점점 비 진리 화 되어 가고 있는 세상을 하나님께서 더 이상 참지를 않으시고 심판을 보여 주셨습니다.
세상에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아들들이 점점 세속화 되어 결국에는 진리에 있는 사람들이 사라질 때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판 하셨습니다. 노아의 홍수도 마찬가지고 또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갔던 역사도 마찬가지고 예수님 이후에 이스라엘이 완전히 멸망을 해서 디아스포라가 되어 세계 각지로 흩어진 것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법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들이 죄를 짓고 안 짓고 하는 문제로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진리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에 이 세상에 멸망의 길로 간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에 진리를 가지고 있는 성도가 사라지는 시대가 오면 그때가 바로 예수님께서 재림을 하시는 때라고 보면 맞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미혹이 됩니다.
사람의 딸과 하나님의 아들이 함께 있으면 당연히 하나님의 아들들이 미혹을 받고 있습니다. 왜 그들은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행위가 좋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들이 보는 눈으로 인하여 자꾸 거기로 가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영의 사람과 육의 사람이 있으면 영의 사람이 육의 사람으로 변해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바로 이런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영의 사람이 육의 사람으로 변하는 것을 막아야 하는데 사단은 어떻게 하든지 사람의 눈을 자극하고 감성을 자극해서 육의 사람으로 변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 교회도 거의가 그렇게 육의 사람으로 변해 있으면서도 그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 때에 내가 또 본즉 유다 사람이 아스돗과 암몬과 모압 여인을 취하여 아내를 삼았는데”
느헤미야서는 바벨론의 포로에서 귀한을 한 시대입니다
그때 느헤미야가 자기 민족들 중에 다른 민족의 아내를 취한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사실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이방이라는 개념은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왜 성경이 느헤미야를 통해서 이방인과 혼인을 한 것을 이렇게 문제를 삼는가를 우리가 분별을 해야 합니다. 단지 육적인 면을 가지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는 이방인이 이미 들어가 있습니다.
이방인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창세전부터 예정하시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이방인과의 혼인이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지금 이 문제는 율법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또한 이방인과의 혼인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바로 분별을 해야 합니다.
영의 문제입니다
육의 혼인을 통해서 영의 문제를 생각해야 합니다. 단지 이방의 여인과 혼인을 한 것으로 문제가 된다면 이방에 복음을 전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됩니다. 사실 이 문제를 바로 이해를 하지 못해서 이스라엘은 선민의식에 사로 잡혀서 이방에 복음을 전하는 것을 게을리 했습니다. 율법이냐 영혼 구원이냐 하는 문제에서 괴리감을 느끼면서 그것에서 벗어나지를 못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무엇이 더 중요합니까?
이스라엘이 이방과 혼인을 하지 않으면서 과연 이방에 복음을 전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 혼인을 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전할 수 있겠지만 그것이 쉽지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더구나 지금과 같은 미디어 시대가 아니라 아주 폐쇄적인 시대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분명히 율법의 문제입니다
지금 느헤미야는 그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그것을 곧이곧대로 문자적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더구나 우리는 이스라엘이 아니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단지 지금 혼인의 문제를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가 비 진리와 결합이 되는 것을 혼인을 비유로 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전쟁 포로였습니다.
그들이 서로 유대인들끼리 혼인을 할 수 있는 그런 형편이 아니었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이방인이 아니면 도저히 혼인을 할 수 없는 그런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것을 느헤미야가 모르고 지금 이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내 주변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 중에 아스돗과 암몬과 모압의 사상이 그대로 담겨져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니 교회 안에 그들이 지금 침투해 들어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방의 사상들이 교회 안에 들어와서 그것이 어느 새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단지 이스라엘에 이방 여인이 들어 온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교회가 그렇게 변하고 있습니다.
이방 여인들로 하여금 점점 이방화가 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오히려 그들을 이스라엘로 만들어야 하는데 교회는 급속히 이방 여인들에 의해서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왜 그들이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하는 행위들이 자기들이 보기에도 너무 좋아 보이기 때문에 그렇게 이방화가 되어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잠언7:5절을 보면
“그리하면 이것이 너를 지켜서 음녀에게, 말로 호리는 이방 계집에게 빠지지 않게 하리라”
이방 여인이 문제가 아닙니다.
생리적인 이방 여인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 이방 여인의 사상이 문제입니다 지금 교회 안에는 한국의 샤머니즘이 아주 깊숙이 들어가 있습니다. 한국의 민속 문화도 이방 여인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그들을 진리로 이끌지를 못 합니다.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진리가 비 진리도 끌려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행위가 좋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진리는 믿음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행위가 아름답지를 못 합니다. 그러나 이방의 풍습과 문화는 행위를 아주 중시를 하고 있습니다.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는 진리와 행위를 보이는 비 진리 중에 어느 것이 끌어당기겠습니까?
정말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단지 믿지 않는 사람과의 혼인의 문제가 아닙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방 여인들과 혼인을 하지 말라고 하셨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들을 진리 안으로 끌어 들일 수 있다면 좋은데 이상하게도 진리가 점점 비 진리로 가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이방 여인 화 되었습니다.
지금 한국 교회는 거의 이방 여인 화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보면 맞습니다. 사실 한국의 문화와 풍습이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한 가지만 이야기를 해 드리겠습니다. 자기 자녀들을 위해 불교에서는 백일치성을 드립니다. 그것이 교회 안에 그대로 들어와 자기 자녀들을 위해서 특별 새벽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별 생각 없이 하고 있습니다.
아니 그렇게 하지를 않으면 오히려 이상하게 생각할 정도로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고 교인들도 자기 자녀들을 위해 교회가 그렇게 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또 그렇게 함으로서 자기 자녀들이 잘 된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런 생각들이 다 이방 여인의 생각이라는 것을 모르고 그들과 혼인을 하고 있습니다.
추수 감사절은 어떻습니까?
이것이 어디 성경에 있는 것입니까? 오히려 추수감사절에 반대를 하면 이단으로 공격을 받는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미국의 감사절입니다 청교도들이 감사를 했다고 해서 교회가 그 감사 절기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이방 여인의 생각임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누구입니까?
미국 사람들의 절기입니다. 그들의 최대 명절 중에 하나가 바로 추수감사절입니다 마치 우리의 추석과 같은 절기입니다. 그것을 왜 교회가 지켜야 하는지 그것에 대해서 아무 거리낌이 없는 것을 보면서 정말 가슴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그런 절기를 지키면서 내 영혼이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방 여인과 이미 혼인을 한 그 백성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겠습니까?
너무 많습니다.
교회 안에서 행하고 있는 영성 프로그램 중에 거의 모두가 다 이방 여인의 것임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실제 예배 자체도 이방 여인의 것임을 바로 알지 못하면 사망을 당할 것이 너무도 분명합니다. 사단은 이방 여인을 통해서 어떻게 하든지 교회 안에 진리가 무너지도록 하고 있다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육의 일이 아닙니다.
믿지 않는 사람을 성도는 믿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로 하여금 우리와 혼인을 해서 그들이 진리 안으로 들어오게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행위의 아름다움으로 인하여 스스로 영이 육체로 변해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자녀가 아스돗 방언을 절반쯤은 하여도 유다 방언은 못하니 그 하는 말이 각 족속의 방언이므로”
말이 얼마나 중요 합니까?
그런데 이방 여인으로 하여금 그들이 말을 모릅니다. 단지 사람이 하는 말을 모르는 것으로 끝이 나면 좋은데 그들을 멸망의 자식으로 만들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인지를 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말은 그냥 이스라엘의 언어가 아닙니다.
진리입니다
유대인의 단순한 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가 무엇을 말하는가에 따라서 결국 진리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방의 언어를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의 말을 해야 하는데 그래야 성경에 대해서 배울 수 있고 진리를 알 수 있는데 그렇지를 못하고 있고 그대로 이방의 방언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지금 이 시대를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은 성경이 각국 언어로 번역이 되어 있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그때는 히브리어를 모르면 하나님에 대해서 알 수 없는 시대이기도 합니다. 지금이야 언어가 별로 중요하지 않지만 이스라엘이 바벨론의 포로에서 돌아왔던 그 시대는 언어를 모르면 사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 했다고 보아도 됩니다.
혼인이 문제가 아닙니다.
사실 진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비 진리의 사람과 혼인을 하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그리고 엄밀히 말씀을 드려서 진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끼리 혼인을 한다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교회는 많이 있지만 과연 진리 안에 있는 교회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또 교인은 많지만 그들 중에 진리 안에 거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만약 그들끼리 혼인을 한다면 아마 혼인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사실 진리를 아는 사람끼리 만난다는 것 자체 확률적으로 떨어진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내가 책망하고 저주하며 두어 사람을 때리고 그 머리털을 뽑고 이르되 너희는 너희 딸들로 저희 아들들에게 주지 말고 너희 아들들이나 너희를 위하여 저희 딸을 데려오지 않겠다고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하라 하고”
좀 심합니다.
아니 도저히 이해가 안 됩니다. 포로로 잡혀가서 이방인과 혼인을 한 것이 무슨 큰 잘못이 되겠습니까? 아마 이 사람들 중에 상당수는 이방인과 혼인을 하지 않았다면 아예 혼인 자체를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유대인들끼리 살 수 있는 그런 시대가 아니었습니다.
왜 그런가를 알아야 합니다.
느헤미야가 왜 이토록 이방인과 혼인하는 것을 금하고 그들을 책망을 하고 심지어는 저주를 하며 때리기 까지 했는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앞서 말씀을 드렸지만 이방인들과 혼인을 하여 그 자녀들이 유대 말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 그들의 풍습이 그대로 그들의 생활 속에서 진리를 방해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책망을 했습니다.
이 책망이라는 단어는 진리에 대해서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그 책망의 소리를 듣지 않으면 결국에는 저주를 받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잠시 아프더라도 때려서 라도 그들을 바로 잡아야 하겠기에 느헤미야가 강하게 하고 있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이 문제를 육의 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의 육의 일은 우리의 영의 일이기 때문에 때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진리에서 멀어져 가는 그들을 책망을 하고 그들이 듣지 않을 때는 저주를 받게 됩니다. 그런 사람들을 정말 때리는 심정으로 그들을 책망을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듣지를 않습니다.
혼합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육적인 혼합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으로 혼합이 되기 않게 하기 위해서 경계의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이 서로 혼인을 하게 되면 하나님의 아들들이 망하게 됩니다. 늘 우리는 이 부분에서 경계를 해야 합니다.
“또 이르기를 옛적에 이스라엘 왕 솔로몬이 이 일로 범죄하지 아니하였느냐 저는 열국 중에 비길 왕이 없이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라 하나님이 저로 왕을 삼아 온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하셨으나 이방 여인이 저로 범죄케 하였나니”
솔로몬이 누구입니까?
지혜의 왕입니다. 잠언 전도서 아가서를 기록했을 정도로 지혜가 있었습니다. 이 세상에 솔로몬보다 더 지혜 있는 사람이 없었다 할 정도로 지혜가 있는 왕입니다 그러나 그 솔로몬이 나중에 나이가 들어 총기가 사라졌을 때 이방 여인들로 하여금 우상을 섬기는 일을 했던 것을 지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혜의 왕 솔로몬도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솔로몬도 타락을 해서 결국 이방 여인이 하는 대로 하고 말았습니다. 물론 솔로몬이 그것으로 구원이 취소가 되지는 않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일부 사람들은 솔로몬이 우상을 섬겨서 나중에 타락을 해서 구원을 못 받았다고 주장을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것은 구원론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누가 범죄케 했습니까?
이방 여인이 솔로몬이 총기가 사라지고 나니까 그를 범죄 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 지혜의 왕 솔로몬도 이방 여인에게 그렇게 되었는데 우리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물론 교회 안에서 음녀에게도 우리를 지켜야 하겠지만 또 이방 여인에게서도 우리를 지켜야 합니다. 이방의 풍속이 그대로 교회 안에 들어오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미국도 이방입니다
우리나라도 이방입니다 이스라엘을 빼고는 모두가 이방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미국의 풍속을 교회에 끌어 드린다면 그것은 이방 여인으로 말미암아 범죄를 하는 것이 되고 맙니다. 구약은 신약을 사는 우리를 경계하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림자입니다 그 그림자를 보고 실체를 살아가는 우리가 어떻게 행해야 하는 가를 바로 분별을 해야 합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방 여인을 그토록 반대를 합니까?
실제 이방 여인이 아닙니다. 생리적인 이방 여인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사상을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안 믿는 사람이라도 그와 혼인을 해서 그가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일입니다 하지만 오히려 성도가 그 여인으로 말미암아 타락을 한다면 그것은 너무도 불행한 일입니다
이방 여인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말하는 것 자체가 다릅니다. 진리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어서 진리에 반하는 말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이방 여인에게서 나를 지키지 못하면 그것은 불행한 일이 됩니다. 교회가 이방 여인의 생각을 아무 거리낌이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면 그것은 너무도 안타까운 일입니다
분별하시기 바랍니다.
내 교회에 이방 여인이 들어와 있는가 분별을 해야 합니다. 만약 그들이 들어와 있다면 책망을 해야 하고 그 책망을 듣지 않을 때는 저주를 해야 하고 또 그들을 때로 진리의 말씀으로 때려서 라도 그들이 바른 길로 갈 수 있게 해 주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 느헤미야와 같은 사람이 있어서 그것을 분별해야 그 교회가 축복을 받습니다.
“너희가 이방 여인을 취하여 크게 악을 행하여 우리 하나님께 범죄하는 것을 우리가 어찌 용납하겠느냐”
악한 일입니다
이방 여인의 풍습이 그대로 들어와 있다면 그것은 너무도 악한 일이고 그 영혼이 범죄를 하는 일입니다 교회 안에 얼마나 샤머니즘적인 것이 많이 들어와 있습니다. 우리나라 풍습에 맞는 모든 것은 다 이방 여인의 작품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생리적인 이방여인이 아닙니다.
우리 한국은 이방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만약 이것을 생리적인 것으로 오해를 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가 이방 여인 화 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교인끼리 결혼을 한다고 해도 그가 이방 여인의 것을 따르고 있다면 교인들끼리의 혼인이라 해도 그것을 이방 여인과 혼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한국 교회는 거의 이방 여인이 되어 있다고 보아도 틀리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자기들끼리 혼인을 하는 것을 아주 좋아 하고 있습니다.
교인들끼리 혼인을 합니다.
그러면서 이런 말씀을 인용하면서 자기들은 이방인과 혼인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혼인을 통해서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혼인은 사실 안 믿는 사람과 해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안 믿는 사람과 혼인을 하면 부끄러워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사실은 절대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 아닙니다.
영의 일입니다
내가 스스로 이방 여인과 혼인을 하고 있지 않은가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서 행하고 있는 행위들이 그 안에서 하고 있는 언어들이 이방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지는 않은 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런 말을 하면서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13:4절을 보면
“모든 사람은 혼인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
누구와 혼인을 해야 합니까?
성도는 진리와 혼인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혼인을 귀히 여기지를 않고 있습니다. 그저 자기들이 육체적으로 하는 혼인만 귀하지 영의 혼인을 너무도 소홀히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혼인을 했습니다.
침소를 더럽게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음행하는 자와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심판을 하십니다. 이 음행은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는 자들이고 간음은 이방의 풍습을 교회 안으로 끌어 들여온 사람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방의 것을 교회 안에서 지키고 있다면 그는 간음을 하는 자입니다 이 사람들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심판을 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육은 우리의 영입니다
그들의 이방 여인은 지금 이 시대의 이방의 사상을 끌어 들여와 교회 안에서 행하고 있는 그것입니다 음행을 하고 간음을 하면서 자기가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구약의 일들을 그냥 기록한 것이 아닙니다.
나도 이방 여인이 될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진리가 아닌 이방의 것을 행하고 있다면 역시 이방의 여인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방의 것이 내게 있다면 나는 간음을 하는 자가 되고 그것은 내 영혼을 망하게 하는 일입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그 외에 다른 것에 미혹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단은 성도를 미혹해서 혼인의 침소를 더럽게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 이외에 그 어떤 것에도 미혹이 안 되려면 우리는 가능한 진리에 집중을 해야 합니다 그런 성도만이 자기 영혼을 보존할 수 있습니다.
예수만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이방 여인의 아름다움에 취하지 마시고 내가 누구의 신부인가를 잘 생각하면서 영혼을 사모하면서 살아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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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하고 얻은 분복이니라 (0) | 2016.03.20 |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0) | 2016.03.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