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요1서2:25)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엡5:32)

로마서 강해(오직 믿음)

128-2,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을 더할 것이니라

윤주만목사 2025. 6. 8. 08:14

디모데전서5:17절을 보겠습니다. (341)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을 더할 것이니라

존경하시기 바랍니다.

물론 가르치기를 잘 하는 장로가 있다면 당연히 존경을 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말하는 그런 존경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말하는 존경은 우러러 받드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장로를 우러러 받든다면 그것 역시 우상이 되고 만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왜 존경합니까?

그의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장로가 잘 가르쳐서 그를 통해서 구원을 받는 사람이 있다 해도 인간적으로 우러러 받들어 존경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존경을 하라는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시기 때문이며 그가 하고 있는 모든 말씀이 성령의 감동으로 하고 있다는 뜻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형제입니다

인간적으로는 형제가 아닙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부모에게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는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을 긍휼히 여겨 주심으로 해서 돌감람나무 가지에서 찍어 본성에 거스리는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이셨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우리 한 사람이 다 하나님의 택하심을 따라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런 성도라면 우리는 서로 존경을 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영이 어떠한 생명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면 서로 존경하기를 먼저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육의 일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이런 말씀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인간적으로 존경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지나친 존경은 도리어 그에게 해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잘 가르치지도 못하는데 존경을 하면 그는 자기가 잘 가르치는 것으로 착각하게 되어 있고 그로 인하여 많은 사람이 사망에 이르게 되어 있습니다.

지나친 겸손입니다.

그리고 지나친 존경의 모습입니다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다고 해서 교회 안에서 지나치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왜 그렇게 하는가 하면 영의 일을 모르고 성경을 문자적으로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가 구원을 받은 형제인가도 알지 못하고 성경의 문자를 보고 서로 먼저 존경하라고 하니까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형제입니다

누구로 말미암은 형제입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형제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가 반드시 구원을 받은 자여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 기독교는 자기들이 구원을 받았는지 아니면 버림을 받은 자인가도 모르면서 성경의 문자를 보고 지나치게 겸손의 모양을 나타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은사를 각자가 받았습니다.

그들이 교회 안에서 서로 받은 직분을 따라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은사를 받은 성도는 한 형제입니다 그 형제들이 서로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서로 각각에 받은 은사가 다를지라도 그가 받은 은사를 존경해야 합니다.

교회는 하나입니다

이 시대는 기독교가 되어 있고 또 교회마다 서로 교제가 없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어느 누가 남의 교회에 가서 간섭을 해서도 안 되고 또 누가 은사가 있다 해서 그 교회에 가서 함부로 그 은사를 따라 자기 직분을 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초대 교회는 달랐습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에 있는 교회에 보내는 편지입니다 그러나 그 로마에 작은 교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 교회들이 서로 교제가 되었습니다. 우리 교회라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교회는 모두가 하나의 교회라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럼 이 교회 안에는 예언의 은사를 받는 사람이 있고 이 교회는 섬기는 은사를 받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 교회들이 서로 만나고 있었습니다.

아니 그들은 자기 교회라는 생각부터가 없었습니다. 지금과 같이 자기들이 돈을 내서 건물을 짓는 그런 교회가 아니었습니다. 초대 교회는 주님의 아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 안에 서로 다른 은사로 직분을 행하고 있었고 그런 형제가 서로 사랑하여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대형교회입니다

초대교회는 지금과 같은 대형교회가 없었습니다. 아니 있을 수도 없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당시는 핍박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여러 사람이 많이 모여 있는 것 자체가 안 되었던 시대입니다 그런 때에 아주 작은 교회들이 있었고 그 교회는 모두가 한 교회라고 믿었습니다.

쉽게 말씀을 드립니다.

지금 동작구 인구만 해도 상당히 많습니다. 그럼 대방동도 있고 노량진동도 있고 여러 동이 있습니다. 당시는 교통이 발달을 하지 않아서 서로 이동한다는 것이 쉽지가 않았습니다. 그러나 모든 교회는 주님이 세우신 한 교회라고 받아들였습니다. 그 각각의 교회가 한 교회로 서로 부족한 것을 채워주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은사가 다 다릅니다.

비록 은사가 다를지라도 형제였습니다. 주님 안에서 서로 형제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형제가 되어 있는 그들에게 사도 바울이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은사를 따라 자기 직분을 행할 때 서로 존경하라고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형제가 너무 적습니다.

그러다보니까 은사를 받은 사람도 거의 없고 행할 수 있는 사람도 거의 없습니다. 그럴지라도 우리 가운데 은사가 있으면 그를 서로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서로 먼저 존경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전하고 있는 이 복음을 통해서 초대 교회와 같은 그런 역사가 우리 가운데서도 일어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로마서12:11절을 보겠습니다. (256)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열심을 내어서 부지런히 일하며, 성령으로 뜨거워진 마음을 가지고 주님을 섬기십시오.”

누구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까?

지금 사도 바울은 계속해서 은사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교회 안에서 은사를 받은 형제들에게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은사에 대해서는 다시 말씀을 드릴 필요가 없을 정도로 이미 자세하게 말씀을 드렸다고 믿고 있습니다.

부지런입니다

우리가 이 단어의 뜻을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이런 단어가 나오면 자기 육체의 행위로 부지런하게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바로 알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지혜로운 성도가 부지런 하면 그것이 축복이 되지만 은사를 받지 못한 자가 부지런 하면 그것은 재앙이 되게 되어 있습니다.

은사입니다

솔직히 이 시대 앞에서 말씀을 드린 은사에 대해서 바로 이야기를 하는 목사가 어디 있습니까? 성경을 사람의 이성을 따라 보면서 은사에 대해서 말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의 이성을 따라 이 은사를 행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 부지런히 행하는 것은 도리어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재앙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누구에게 부지런하라고 말씀을 합니까?

이 은사를 받은 형제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으로부터 직분을 받은 형제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이 은사를 거의 사람의 이성을 따라 성경을 보면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은사에 대해서 정확하게 아는 성도가 부지런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입니다.

이는 우리가 드릴 영적 예배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무엇인가 하면 이 세대를 본받지 않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가를 분별하고 있는 성도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육체의 일이 아닙니다.

이 시대 기독교는 육체적으로 너무 부지런하고 있습니다. 그 부지런함이 도리어 진리를 알아 가는데 있어 방해가 되고 있습니다. 아니 교회 안에 너무 많은 제사와 일이 있다 보니까 사람들이 종용히 앉아서 진리를 알아갈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가 없습니다.

목사만 해도 그렇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바쁘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솔직히 그렇게 바쁘게 살면서 그 많은 설교를 준비한다는 것이 기적과도 같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인들의 가정사까지 챙기면서 어떻게 시간을 내서 성경을 보고 설교를 준비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 저는 아무도 안 만나지만 솔직히 강해와 설교를 쓰는 시간이 늘 부족하다고 생각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종교가 되었습니다.

그들에게서 어떻게 복음이 전해질 수 있습니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종교가 되어 있는 교회에 너무도 많은 일이 있는데 그 일을 하느라 부지런히 하고 있는데 그가 어떻게 성경에 있는 예언의 말씀을 깨달아서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까?

성경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내가 무엇에 대해서 부지런해야 하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 목사들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얼마나 부지런합니까? 매일 새벽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기도를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야 하니까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또 새로 나오는 노래들을 배워서 불러야 합니다.

그것 뿐 입니까?

수요 예배가 있습니다. 금요 철야 예배가 있습니다. 주일이라는 날에 예배가 최소한 두 번은 있습니다. 그리고 교인들은 자기가 무슨 일을 하나 하더라도 어린 아이와 같이 목사에게 전화를 해서 물어보고 목사의 말을 듣고 그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일일이 다 열거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육체적으로 부지런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존경스럽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을 보면 교인들은 목사를 존경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말 자기들을 위해서 수고하는 그 일들을 생각하면 목사가 이야기를 하면 모든 것이 다 진실과 같이 받아들여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기독교라는 종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그런 것으로 부지런하라고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가지고 부지런을 떨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모든 것이 실상은 종교의 틀에 가두는 일이라는 것을 모르고 목사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고 그 안에 있는 교인들도 그것을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잠언1:28절을 보겠습니다. (912)

그 때에 너희가 나를 부르리라 그래도 내가 대답지 아니하겠고 부지런히 나를 찾으리라 그래도 나를 만나지 못하리니

지혜가 부릅니다.

길거리에서 부르며 광장에서 소리를 높이며 훤화하는 길 머리에서 소리를 지르며 성문 어귀와 성중에서 그 소리를 발하고 있지만 사람들이 듣지를 않고 있습니다. 우리는 정말 성경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지금 이 말씀을 누구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까?

이스라엘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이렇게 부르시고 있지만 그들은 듣지를 않고 있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일만 됩니까? 그것이 아니라 이 시대 기독교인들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정말 지금도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잠언의 말씀과 같이 소리를 지르면서 부르고 있지만 성경을 보는 사람들이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너무 게으릅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소리를 지르면서 부르시고 있지만 아예 귀를 닫고 들으려고 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성경을 주시고 성령을 보내 주시고 있지만 이 시대 역시 성경을 사람의 이성으로 보면서 전혀 들으려고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어디서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알 수 있게 정말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성경을 주셨습니다.

성경입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이 성경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이 시대 성경을 보고 하나님을 알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성령의 감동을 받아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알기 위해서 부지런해야 합니다.

새벽 예배를 드립니까?

교회에서 하고 있는 모든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까? 그리고 기도를 하고 늘 찬송가를 부르고 있습니까? 그런 그들이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지혜가 소리를 지르면서 부르는 소리를 듣지를 않고 있습니다. 그런 제사에 빠져 지혜가 부르는 소리를 들을 시간이 없습니다. 이 시대 성령을 보내 주시지만 감동을 받을 시간이 없습니다.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예배를 다 드리면 뭐 합니까? 아니 세상 사람들이 성도라고 부르면 뭐 합니까? 정말 중요한 것은 내 영혼의 구원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제사에는 너무도 부지런한 그들이 이 영생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있어도 들으려고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우리에게 한글개역성경을 주신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을 버리지 않고 구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은사 자를 통해서 방언의 은사를 받은 사람들로 하여금 우리가 보고 있는 한글개역성경을 쓰게 하시고 우리가 그 성경을 보고 성경에서 영생을 얻을 수 있는 하나님을 알아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부지런하시기 바랍니다.

영생이 무엇인가를 알고 부지런하시기 바랍니다. 새벽예배를 나가고 있습니까? 아니 교회 안에서 드리고 있는 모든 예배에 참석을 하고 있습니까? 그런 것으로는 영생을 얻을 수 없습니다. 아니 그런 것에 시간을 빼앗겨서 지혜가 부르는 소리를 듣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만나야 합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성도만이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성경에 문자를 아는 것으로 하나님을 만난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지도 않은 그들이 교회에 나와서 제사를 드리면서 하나님을 만난 것으로 생각하고 자기들이 부지런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청년의 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날 시간이 청년의 때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 청년의 때를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제사를 드리면서 보내고 있습니다. 지혜가 소리를 지르면서 부르고 있지만 그 소리를 외면을 하면서 세월을 허비하고 있습니다.

인생 짧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팔십년이라는 시간이 길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유년기 20세입니다 그리고 65세 이상이 되면 벌써 총기가 사라지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40년이라는 세월을 주셨는데 그 시간에는 또 세상에서 자기 육체가 사는 것으로 모든 정력을 다 낭비를 하고 있어서 하나님을 만날 시간이 없습니다.

저도 50대 중반이 넘었습니다.

이제 제가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시간이 불과 10년도 안 남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그 이상 총기를 주시면 할 수 있겠지만 나이가 있으면 그 총기라는 것도 사라지게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총기가 사리지게 되면 그때는 하나님을 만나고 싶어도 만나지 못한다는 것을 잠언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그것을 교회에 나가서 예배를 몇 번 드리면서 설교를 들었다고 해서 알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청년의 때에 정말 우리는 세월을 허비하지 말고 이 일에 부지런해야 합니다.

교회에 나왔습니까?

자기 먹고 살기도 바쁜 세상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바쁜 세상을 살면서 교회에 나와서 제사를 드리느라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이 이 시대 기독교인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보면 뭐 합니까?

그들이 성경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알고 있습니까? 거의 성경을 문자적으로 보면서 어떻게 하면 제사를 잘 드릴까를 배우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재앙이 임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재앙이 임할 때는 하나님을 부지런히 찾아도 만날 수 없습니다. 왜 만날 수 없는가 하면 시간이 없어서 만날 수 없습니다.

최소한 몇 년입니다

이 성경만 보면서 아니 복음만 들으면서 최소한 몇 년이 걸립니다. 사도 바울이 사도행전에서 에베소 교회를 떠나면서 내가 삼년 동안 밤낮으로 너희를 훈계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으로 하면 10년 이상을 사도 바울로부터 복음을 들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내가 가면 흉악한 이리가 와서 너희를 아끼지 않고 삼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부지런하시기 바랍니다.

부탁드리지만 청년의 때를 허비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영생보다 더 소중한 일이 어디 있습니까? 저 역시 늘 성경을 보고 있지만 솔직히 아직도 모르는 말씀들이 많이 있습니다. 물론 구원에 대해서는 이제 모든 것이 명확하게 보이고 있지만 부분적으로 깨달아지지 않는 말씀들이 있습니다.

제사에 시간을 낭비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하고 있는 모든 행위가 다 제사입니다. 예배, 기도, 찬양, 그리고 교회 안에서 하는 모든 일, 내가 내 몸으로 하는 모든 일들이 다 제사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런 것에 낭비할 시간이 없다는 것을 늘 기억하고 성경을 보면서 성령의 감동을 받아 하나님을 만나는데 정말 힘써서 부지런하게 일을 해야 합니다.

부지런해야 합니다.

이 부지런한 것이 무엇인가는 8절에서 은사에 대해서 말씀을 할 때 이미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리는 영생에 대해서 부지런한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제사에는 열심을 내고 있지만 영생에 대해서는 전혀 부지런하지 않고 있습니다.

마태복음25:26절을 보겠습니다. (44)

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부지런하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우리 은사를 받은 성도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에 대해서 부지런해야 하는가 하면 영생에 있어서 부지런해야 합니다. 늘 말씀을 드리고 있지만 우리는 이 영생을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고 성경을 통해서 지혜를 얻고 있습니다.

달란트의 비유입니다.

이 달란트의 비유가 무엇이라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하는데 이 시대는 비유조차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영원한 생명에 대해서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영원한 생명을 달란트라고 하시면서 이 생명을 얻으라고 우리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는 생명의 달란트를 얻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교회 안입니다

모두가 이 생명의 달란트를 얻을 수 있는 재능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께서 이 재능을 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이 재능을 받았으면서도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어서 이 한 달란트를 받은 종과 같이 생명의 달란트를 남기지 못하고 있습니다.

게으르지 마시기 바랍니다.

게으르다고 말씀을 하니까 세상에서 게으른 것을 말씀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누가 게으른 자입니까? 예배도 참석하지 않고 기도도 시간 내서 드리지 않고 찬송가도 잘 부르지 않은 그 사람이 게으른 사람입니까? 성경을 바로 깨닫지를 못하면 그는 사망에 이른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악하고 게으른 종입니다

게으른 사람은 악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악한 자들은 다 게으른 자입니다 그러니까 생명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재능을 주셨는데 이 게으르고 악한 종은 그 재능이 자기에게 있는 줄을 모르고 도리어 악한 일만 하다가 생명을 얻지 못하는 것을 게으르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게으른 것이 아닙니다.

생명에 대해서 게으른 사람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게으른 사람이 누구입니까? 바리새인과 같이 율법을 지키면서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하는 사람을 게으르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너무 부지런한 사람이 생명에 대해서는 게으르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시대도 보시기 바랍니다.

교인들이 얼마나 부지런합니까? 그러나 실상은 그들은 다 게으른 자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자기 안에 영원한 생명이 있는지 없는지 조차 모르고 자기가 믿음에 서 있는지 조차 모르고 그저 교회 안에서 그들이 요구하는 일에 열심을 내고 따라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생명입니다

은사를 받은 성도는 이 생명에 대해서 게을러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다른 것은 조금 게을러도 됩니다. 예배를 한번 못 드리면 어떻습니까? 기도를 시간 내서 못하면 어떻습니까? 아니 아무 것도 하지 못하면 어떻습니까? 그러나 이 악하고 게으른 종이 되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누구입니까?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율법주의자들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지키느라 생명에 대해서는 게으른 사람들입니다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그 율법의 행위 때문에 생명에 대해서 게으르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입니다

분명히 두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는 율법을 지키는 악한 자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그 악한 자를 주님께서 비유로 말씀을 하시면서 게으르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대로 생명에 달란트를 남기는 성도입니다 성도는 다른 것을 생각하지 않고 이 달란트를 남기는 일에만 마음을 두고 있습니다.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을 하셨습니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 두 달란트 받은 사람,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3명 중에 두 명이 달란트를 남긴 것으로 생각하고 교회 안에 있는 자기들이 재능대로 달란트를 남기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비유입니다

실제가 그렇다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실상은 어떻습니까? 교회 안에서 이 달란트를 남기는 사람이 지극히 적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어느 정도 적은가 하면 이 시대 교인들 중에서 10만 명 중에 한 명이 있으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실상은 그것도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게으르지 마시기 바랍니다.

복음의 비밀을 맡는 자는 다 하나님으로부터 은사를 받은 성도입니다 이 복음의 비밀을 맡은 자는 사도 베드로의 말씀과 같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피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문자를 부지런하게 보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다 세상 초등학문이 되고 있습니다. 성경은 비밀입니다 그 비유를 알기 위해서 우리는 선지자들이 기록한 성경에서 부지런히 연구하고 살펴서 영생에 대한 비밀을 깨달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만 보더라도 그런 목사들을 보기가 어렵습니다.

아니 없습니다.

목사들의 설교를 듣거나 그들의 글을 보면 과연 이들이 성경을 보고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저 종교에 빠져 자기들이 신학에서 배운 그 교리를 가지고 그 안에서 안 벗어나려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로 밖에는 보이지가 않습니다. 기독교라는 종교에 포승으로 묶여서 빠져 나오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베드로후서1:8절을 보겠습니다. (384)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게으른 자입니다

그들은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너무도 게으른 자들입니다 솔직히 이 시대 목사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게으르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성경의 문자를 아는 것으로 자기들이 성경을 아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야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말씀이며 그렇게 영생을 얻는 자가 열매가 있는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누가 압니까?

이 시대 우리나라에 있는 목사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사람이 있으면 이야기를 해 보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문자로 적혀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을 가지고 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솔직히 말씀을 드려서 이제까지 나온 성막론 책 한 가지만 보아도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성막입니다

저의 육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안다면 최소한 성막에 대해서 만이라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전은 저의 육체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이제까지 수많은 목사들이 쓴 성막론을 보면 전혀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지가 않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면 그는 게으른 자입니다 게으른 것으로 끝이 나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열매가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을 얻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막론도 모르는 그들이 어떻게 율법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할 수 있겠습니까?

왜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말라고 말씀합니까?

그것이 영생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면 그는 영생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 목사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이제까지 기독교라는 종교에서 나온 모든 책들을 쓴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들이 왜 예수 그리스도를 모릅니까?

게으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라는 종교에 대해서는 아주 부지런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데 있어서는 너무도 게으릅니다. 기독교 2000년 동안의 교회사와 그리고 교리를 배우다보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에 있어서는 너무도 게으른 자들이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직분입니다

우리에게 왜 직분을 주셨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생을 얻으라고 이 직분을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생을 얻으려면 성경에서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예언이 되어 있는 말씀을 부지런히 살펴서 알아야 합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아 알아야 믿을 수 있고 그 믿음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는데 모두가 기독교라는 종교에 빠져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알지 못하면 열매를 얻을 수 없습니다. 영생을 얻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이 일에만 온 마음을 다 써도 사실 우리 인생의 지혜로는 알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깨어 지혜를 구하고 성령을 구해서 인도함을 받아야 합니다.

은사자입니다

그들이 부지런하지 않고 게으르다는 것은 쉽게 말씀을 드리면 재앙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니 그들이 제사에 부지런해서 그 일에 빠져 있으면 그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무엇에 대해서 부지런하고 무엇에 대해서 게으르지 말아야 하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반대입니다

성경과 전혀 반대로 하고 있습니다. 생명에 대해서 부지런 하라고 하면 제사에 대해서 부지런하고 있고 생명에 대해서 게으르지 말라고 하면 도리어 악하고 게으른 종이 되어서 생명의 달란트를 남기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모르고 기독교라는 종교가 이끄는 대로 이성이 없는 짐승과 같이 끌려가고 있습니다.

디도서2:14절을 보겠습니다. (349)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고 말씀을 하니까 자기들이 교회에 나가서 행위에 열심을 내는 것으로 마치 그것이 열심을 품고 주님을 섬기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교회라는 아세라에게 열심을 내고 있는 사람입니다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교회에 열심을 내는 것이 주님께 열심을 내는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누가 교회에 열심을 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까?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고 말씀을 했지 누가 열심을 품고 교회를 섬기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모릅니까?

교회를 모릅니까? 주님을 모릅니까? 교회를 섬기는 것이 누가 주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성경에서는 전혀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지 않은데 자기들의 생각으로 사람의 이성을 가지고 마치 그것이 주님을 섬기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저에게 무슨 봉창 두드리는 말을 하느냐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계속해서 아니 안타까운 마음으로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불법을 행하고 있습니까?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그것이 불법입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 아니라 저주를 받게 하는 그것이 불법이라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모두가 불법을 행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아니 율법을 모르기 때문에 아니 성경을 모르기 때문에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면 절대로 율법을 지키지 않는데 전혀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기 때문에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선한 일에 열심을 내시기 바랍니다.

선한 일이라고 하니까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는 아니 제사를 하는 그런 행위를 가지고 선한 일이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 믿는 그것이 선한 일입니다 그 일에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전제 조건이 율법의 행위를 버리는 일입니다 그 악한 일을 버리고 선한 일에 열심을 내는 친 백성이 되어서 복음의 직분을 맡은 자로 살아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