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요1서2:25)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엡5:32)

로마서 강해(오직 믿음)

129-1,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윤주만목사 2025. 6. 8. 08:16

로마서12:12절을 보겠습니다. (256)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열심을 품고 주를 섬겨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는 우리 성도입니다 우리는 이미 하늘의 신령한 것을 다 받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직분을 주셨습니다. 물론 각각이 받은 은사는 다르다는 것을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은사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자로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제 그 은사를 받은 성도는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영생을 받은 것은 우리 인생의 언어로 상상이 안 되는 선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 율법주의자들이 얼마나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그들은 생명을 살리는 자들이 아니라 저주를 받게 하는 자들인데도 그렇게 열심을 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자기들이 열심을 내는 그것으로 얼마나 많은 생명이 사망에 이르는가를 모르고 저주를 받게 하는 율법을 지키는 일에 그렇게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정말 안타깝습니다.

미련한 자가 열심을 내면 그것은 재앙입니다 그런데도 기독교인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 줄을 모르고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바리새인들은 그래도 이해가 됩니다. 그들은 자기 조상의 하나님이었기 때문에 충분이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다릅니다.

이방인들은 하나님과는 상관이 없는 백성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 이방인들을 긍휼히 여겨주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셔서 우리에게 빛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이방인이 종교가 되고 나니까 이제 유대인들보다 더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유대인은 자기 백성들에게 열심을 냈지만 이방인들은 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그들이 선한 일을 하고 있습니까?

열심을 품고 일을 하고 있는 이 시대 기독교인들이 선한 일을 하고 있느냐는 말씀입니다 그들은 선한 일이 무엇인지 악한 일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아니 악을 미워하기 보다는 악을 더 좋아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악을 행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않고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하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다가 둘 다 구덩이에 빠진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는 그러니까 영적 예배를 드리는 성도가 열심을 품고 주를 섬겨야 하는데 악한 자가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저희가 너희를 대하여 열심 내는 것이 좋은 뜻이 아니요 오직 너희를 이간 붙여 너희로 저희를 대하여 열심 내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누구입니까?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들어온 율법주의자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들이 열심을 내는 것은 정말 좋은 뜻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 시대 교회는 율법을 지키지 않는 교회가 없습니다. 그들이 열심을 내는 것은 좋은 뜻이 아니라고 성경에서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지만 성경을 보면서도 도무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서도 저희가 누군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할례 한 가지입니까?

그것이 아니라 율법을 대표하는 것이 할례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이 시대 받지도 않은 할례를 가지고 갈라디아서를 기록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에게 이 갈라디아서를 기록하게 하셨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 하나님 같으면 우리는 성경을 볼 필요도 없고 믿을 필요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이 시대 기독교인들이 할례를 받지 않을 것을 모르셨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믿을 이유가 없습니다. 아니 믿어 보아야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갈라디아서는 할례라는 율법을 받는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쓴 편지입니다

할례 안 받습니다.

지금 이 시대 할례를 받는 교회가 어디 있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갈라디아서를 볼 필요성이 없습니다. 볼 필요성이 없는 성경을 보고 있다면 우리의 믿음은 거짓이 되고 우리가 바라는 것 역시도 거짓이 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할례 악한 일입니다

미워하시기 바랍니다. 그 할례는 율법을 대표하고 있습니다. 율법 악한 일입니다 미워하시기 바랍니다. 성령을 받은 성도는 당연히 미워하고 있습니다. 내 영혼을 사망에 빠지게 하는 아니 저주를 받게 하는 그것을 당연히 미워하지 않겠습니까?

부지런하시기 바랍니다.

무엇에 대해서 부지런해야 하는가 하면 영생에 있어서 부지런해야 합니다. 우리 청년의 때를 아끼며 부지런해야 합니다. 율법을 지키는 게으른 자가 되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율법을 지키면 우리는 그만큼 시간을 빼앗기게 되고 또 그 율법의 행위를 함으로 해서 영생을 얻는 일에 게으를 수밖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게으르지 마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지키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 율법을 지키는 일을 함으로 해서 선에 속할 수가 없습니다. 늘 깨어서 영생을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성경을 보아야 하고 지혜를 구하면서 성령의 감동을 받아야 합니다. 더구나 교회 안에서 자기 몸으로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고 있는 성도는 더욱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친 백성입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시고 있는 백성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영의 일을 위해서 살아가고 있는 성도라는 것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구속하신 이유는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소망을 품고 즐거워하며, 환난을 당할 때에 참으며, 기도를 꾸준히 하십시오.”

소망

바라고 원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먼저 성경을 볼 때는 늘 국어의 뜻을 바로 알고 보아야 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 목사들은 국어를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소망 중에 즐거워하라는 말씀을 보고 있지만 그 뜻을 정확하게 이해를 못하고 있고 그 이유는 국어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성도는 소망이 있기 때문에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정말 성경에서 복음을 알고 우리 인생의 존재를 알고 나면 이 세상을 더 살아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구더기 같은 인생이 벌래 같은 인생이 잠깐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와 같은 인생이 더 산다고 해서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살아야 할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아니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부탁하신 일이 있기 때문에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실 이 세상에서 복음을 전하면서 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이 세상이 알지 못하는 소망이 있기 때문에 즐거워할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즐거운 일입니까?

소망이 있는 사람만이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소망을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천국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영의 구원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소망이 있다고 하면서 교회 안에서 열심을 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자기에게 어떤 소망이 있는지도 모르면서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5:8절을 보겠습니다. (332)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근신하여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데살로니가전서4:16-18절을 보겠습니다. (332)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 여러 말로 서로 위로하라

소망 중에 즐거워하시기 바랍니다.

그 소망이 무엇입니까? 우리 성도가 받을 구원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전서를 통해서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우리 성도에게 이 구원이 없다면 아니 이 소망이 없다면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자가 되고 만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는 세상을 사는 자가 아닙니다. 세상의 것을 가지고 즐거워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세상 사람들은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의 행위를 보면서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는 그런 행위를 전혀 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얼마나 무의미 합니까?

정말 우리가 이 복음을 깨닫고 믿는다는 것은 무미건조한 일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소망이 있기 때문에 소망 중에서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볼 때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들과 같이 보여 지지만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어서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거룩한 예배를 드립니까?

그렇다고 내가 힘이 들 때 육체의 것을 가지고 기도를 하고 있습니까? 또 이 시대 기독교인들이 부르는 찬송가를 부르면서 잠시 위안을 받기도 하고 또 하나님을 찬양하는 감성에 젖어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전혀 그런 것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아니 이 모든 것이 악한 일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소망이 있습니다.

남들이 찬송가를 부르면서 감성에 빠져 있을 때 우리는 성경을 보고 있고 그 안에서 영생을 얻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얻는 구원이 무엇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사람이 누리는 그런 감성적인 것을 다 포기를 하고 오직 진리를 따라 행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소망입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들이 얼마나 막연하게 소망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까? 천국을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천국에 대해서 바로 알고 있습니까? 기독교인들도 천국을 간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그들은 자기들의 이성으로 알고 있는 천국을 이야기를 하고 있고 우리는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구원입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들이 이 구원에 대해서 바로 알고 있습니까? 심지어는 데살로니가를 보면서 어떻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까? 성경에서도 말씀하고 있지 않은 휴거에 대해서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당시 순교를 당하는 성도들을 위로하기 위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마치 자기들이 휴거를 당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영의 일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자기 구원이 육의 구원인지 영의 구원인지도 모르고 막연하게 소망이라는 단어를 아는 것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들이 말하는 구원은 사실 성경에서 말씀하는 구원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신체의 구원입니다

이 시대 기독교는 교리로 신체의 구원을 배우고 있습니다. 목사들이 그렇게 배우고 있고 그렇게 배운 목사들이 신체의 구원을 교회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구원과 전혀 다른 구원을 이야기를 하는 그들은 사실 소망이 없는 자인데도 자기들이 구원을 받았다고 하면서 마음껏 즐거워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구원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신체의 구원을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사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도 아니고 소망도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신체의 구원이 아니라 영의 구원을 말씀하고 있는데 자기 신체가 구원을 받는다고 하면서 소망을 가지고 즐거워하고 있다면 그는 속고 있는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기초입니다

그런 기초도 안 되어 있는 사람들이 소망이 있다고 부자가 되어서 마음껏 잔치를 벌이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비유에서와 마찬가지로 고운 베옷과 자색 옷을 입고 부자가 되어서 연락을 하고 있습니다. 소망이라는 것은 확실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나는 신체의 구원으로 알고 있는데 영이 구원을 받는다면 그가 알고 있는 소망이라는 것은 거짓에 불과하고 아니 소망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준다고 하고 있는데 전혀 다른 것을 받는 것으로 알고 그것을 소망으로 가지고 있다면 그는 구원을 받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구원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 성도가 가지고 있는 소망입니다 하나님의 직분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우리 은사 자가 가지고 있는 소망입니다 이 소망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이 세상에서 환란을 당하면서도 기꺼이 즐거워하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구원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신체의 구원을 이야기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 모든 종교가 다 신체의 구원을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의 구원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이 구원을 받기 때문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신체는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도다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소망입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에 우리는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하게 됩니다. 그리고 영원히 주님과 함께 있는 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신체가 아니라 우리 안에 거하시는 그리스도의 영으로 말미암은 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4장의 말씀은 설교로 이미 올려드렸기 때문에 성도님들이 깨닫고 있으리라고 믿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1:3-4절을 보겠습니다. (377)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산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산 소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이 산 소망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자기들에게 있는 소망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성경의 문자를 아는 것으로 자기들이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습니다. 어떻게 부활하셨습니까?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주님이 신체로 부활하셨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영으로 부활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신체로 부활하셨다고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안 믿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영으로 부활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영이시기 때문에 주님은 영으로 부활을 하셨습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신체라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신체로 부활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성경은 영으로 부활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기독교는 그 뿌리부터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 배우고 있는 교리는 성경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실 목사들이 신학교에서 배우고 있는 기독교 조직 신학이라는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듭났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이 거듭남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거듭남은 너무도 중요합니다. 일부 이단이라고 말하는 교회에서 거듭남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그것을 오해하지 말고 소홀히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거듭나야 합니다.

거듭나지 않으면 우리에게는 산 소망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거듭나는 것이 무엇인가를 이 시대는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안 믿다가 이제 교회에 나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으로 거듭난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육으로 한번 낳고 성령으로 또 다시 낳는 것을 거듭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 안에 성령으로 난 그리스도의 영이 있어야 거듭났다고 말할 수 있고 그 거듭난 영이 주님이 오시는 날에 부활의 형상을 입는다는 것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 소망이 무엇입니까?

있지도 않은 것을 가지고 소망을 가지고 즐거워하는 사람은 정말 불쌍한 사람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요즘 복권이 열풍입니다 사는 것이 다 힘들어 지다보니까 거의 모든 사람이 복권을 구입한다고 해도 틀리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그 복권을 사고 소망을 가지고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말 합니다

그래도 복권을 사 놓으면 일주일이 즐겁다고 말을 합니다. 그들이 복권을 살 때는 어떠한 소망을 가지고 삽니까? 1등에 당첨이 되는 소망을 가지고 사고 있고 그것을 사 가지고서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소망이라는 것은 사실 불확실한 소망입니다 누구에게는 정말 소망이 되어서 바라고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이루어지지 않은 소망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소망은 아니 우리가 소망 중에 즐거워하고 있는 이 소망은 그런 복권이 아닙니다. 우리의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치 우리가 가지고 있는 소망이 복권을 사는 것과 같은 마음으로 가지고 있으면 안 됩니다

소망입니다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소망 중에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쉽게 말을 해서 복권 1등에 당첨이 되었기 때문에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복권을 산 사람이 물론 그것을 가지고 바라는 마음으로 즐거워할 수는 있지만 1등에 당첨이 안 되면 실망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즐거움이 아니라 우리는 이미 이루어진 실상을 가지고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부활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이 부활에 대해서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자기들은 복권 1등이 당첨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가짜라고 한다면 얼마나 불행한 일이 되겠습니까? 우리의 구원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부활이 어떻게 되는가를 모르면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휴지 조각입니다

아니 휴지보다도 쓸모가 없어집니다. 내가 소망 중에 즐거워하는 것이 만약에 그렇다면 그것은 휴지보다도 쓸모가 없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는 성경과 전혀 다른 것을 이야기를 하면서 자기들에게 소망이 있다고 하면서 즐거워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구원을 얻었습니다.

우리가 소망 중에 구원을 얻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소망은 보이는 소망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우리의 영의 부활은 상상이 안 되는 하나님의 신비한 능력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소망 중에 즐거워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소망입니다

우리가 거듭남으로 산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산 소망이 어디에 있는가 하면 하늘에 간직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것이 아니라 하늘의 것으로 우리가 소망을 간직하고 있고 그것을 믿음으로 즐거워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신체의 부활입니까?

그것은 하늘에 간직한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있는 썩어 없어질 것임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산 소망은 하나님이 하늘에 간직하신 비밀한 영의 일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성경을 보면서도 이 영의 일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같이 신체의 부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신체가 어떻게 부활합니까?

아니 우리 신체는 썩는 것임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썩는 것으로 부활을 한다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부활은 하늘에 간직하신 것인데 썩지 않은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 있는 모든 것은 다 썩어 없어지고 오직 하늘에 있는 것만 썩지 않습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우리가 거듭난 영이라는 말씀입니다

소망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당첨이 되지도 않은 복권을 가지고 당첨이 된 것과 같이 살아가고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만약에 그렇게 사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더욱 큰 고난을 당하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마치 이 시대 기독교인들이 가지고 있는 소망이라는 것이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영입니다

우리의 신체는 육입니다 육과 영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라는 말씀은 이 육과 영이 혼합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 그대로 육으로 난 것은 절대로 영이 될 수 없고 또 성령으로 난 영은 육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 시대는 육과 영을 혼합을 하고 있습니다. 아주 애매모호하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 안에 영이 없는 사람이 소망을 가지고 즐거워하고 있다는 것은 마치 열처녀의 비유에서 버림을 받은 다섯 처녀와 같이 주님을 기다리다가 바깥 어두운 곳에 쫓겨나는 사람과 같다는 말씀입니다

그들은 반드시 쫓겨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부활을 해야 하는데 그 영이 없다면 어떻게 부활을 할 수 있습니까? 성령으로 난 영이 있어야 주님이 오실 때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것으로 부활을 할 수 있는데 그 영이 없다면 그는 버림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중요한 영의 거듭남을 이 시대 교인들은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어떻게 합니까?

교회 안에서 한 부자와 같이 연락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즐거우면 연락을 하겠습니까? 이 시대 기독교인들이 자기들이 드리는 예배로 기도로 그리고 찬송으로 연락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 안에서 그런 일을 아무리 잘 해도 그 안에 거듭난 영이 없으면 그는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자가 되고 만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기독교인이 아닙니다. 정말 자기가 누군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기독교인들은 이 부활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신체가 성령과 결합을 해서 영이 되어서 부활을 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말은 전혀 성경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영입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 영이 어떻게 내 안에 거할 수 있는가 하면 그것을 베드로전서에서 우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문자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닙니다.

이 시대는 그것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항상 살아 있는 말씀은 우리가 보고 있는 성경의 문자가 아닙니다. 그것은 도리어 우리를 죽게 하는 초등학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아니라 성경을 보고 그 안에서 성령의 감동을 받아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함을 받아 우리가 거듭나는 그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박국3:18절을 보겠습니다. (1305)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소망 중에 즐거워합니다.

그것을 하박국 선지자가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소망 중에 즐거워한다는 말씀은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즐거워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구원이 없는데 어떻게 즐거워할 수 있습니까?

세상의 즐거움이 아닙니다.

그런 즐거움에 빠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우리의 믿음은 정말 무미건조합니다. 어떤 즐거움도 누릴 수 없습니다. 우리가 육체적으로 무슨 즐거움을 누릴 수 있습니까? 자기 육체적으로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사람은 주님의 비유에서와 같이 그는 자기의 의로 교회 안에서 연락을 하고 있는 한 부자와 같은 사람입니다

우리 성도입니다

무엇으로 즐거워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찬양을 부릅니까? 우리가 남들이 보기에 근사한 아니 부러워할만한 거룩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까? 우리는 그런 즐거움을 다 버린 성도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오셔서 확실하게 증거를 해 주시는 영의 부활을 믿기 때문에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이 즐거움이 육체의 즐거움이 아니라 앞에 있는 즐거움을 믿는다는 말씀입니다

즐거워합니까?

우리는 앞에 있는 즐거움을 믿고 있는 성도입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소망 중에 즐거워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앞에 있는 즐거움이 그러니까 우리가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심으로 부활을 해서 하늘의 신령한 것을 입고 천국에 들어가서 영원히 삽니다. 그것이 즐겁다는 말씀이지 인간적으로는 하나도 즐겁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믿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있기 때문에 이 믿음에 든든히 서 있기 때문에 앞에 있는 즐거움을 바라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것을 즐거워하라는 말씀이지 이 세상에서 즐거워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실상 우리의 믿음이라는 것은 즐거움을 전혀 주지를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는 성도는 앞에 있는 즐거움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시는 역사입니다 이 믿음이 있는 성도는 하박국 선지자와 같이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실제가 아니라 믿음이 내 안에서 역사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소망입니다

먼저 이 소망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런 성도만이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내 육체가 즐거워한다는 것이 아니라 앞에 있는 즐거움을 바라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이 무엇인가 하면 내 안에 거하시는 그리스도의 영이 부활을 해서 하늘의 신령한 것을 입고 천국에서 영원한 축복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세상에서 즐거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 즐거움을 내 육체로 누리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그것을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그것을 누리면서 연락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나중에 자기들에게 임할 고통을 모르고 자기 육체의 즐거움을 누리고 있습니다.

요한복음16:33절을 보겠습니다. (177)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요한복음16장입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듣자 제자들이 마음에 근심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언제까지 자기들과 함께 계실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주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이제 죽임을 당한다고 하시니까 아직 성령이 오시지 않은 제자들로서는 속된 말로 하늘이 무너지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성령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오시지 않을 것이고 내가 가면 그를 너희에게 보내시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말씀을 마치시면서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이 말씀을 하신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너희가 세상에서는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입니다

주님께서 환난을 당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 세상입니까? 물론 이 세상에서도 환난을 당합니다. 사실 진리는 이 세상에서도 환난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큰 환난은 어디서 당하는가 하면 교회라는 세상에서 당하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입니다

교회는 구원의 방주가 아닙니다. 광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광야는 세상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교회를 마치 구원의 방주가 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진리를 가진 자는 비진리를 가지고 있는 자들에게 환난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왜 환난을 당합니까?

다수가 비진리에 속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진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진리를 모두가 가지고 있다면 교회라는 세상에서 환난을 당할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늘 비진리에 속해 있기 때문에 환난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왜 그렇게 했습니까? 그들이 진리를 알았다면 절대로 그런 일이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진리가 절대로 많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그것을 보여주셨고 이제까지 선지자들이 어떻게 죽임을 당했는가를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성도입니까?

우리가 진리로 인도함을 받고 있습니까? 사람들이 성령을 너무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시면 마치 도깨비 방망이를 하나 쯤 얻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전혀 모르고 진리의 성령이 오셔서 무엇을 하는가를 모르기 때문에 거의 모든 기독교인들이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성령이 오신 자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누가 많습니까?

교회 안에서 진리로 인도함을 받지 않는 자가 바다 모래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남은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다 모래 같이 많은 사람과 남은 자가 있습니다. 누가 환난을 당하는가는 쉽게 알 수 있는 일입니다

교회 안에 있습니까?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입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이 오셨을 때 이스라엘의 바리새인들은 자기들만이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고 했는데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마귀의 자식들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실제 그들은 마귀의 자식이 되어서 자기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악을 행하고 말았습니다.

성도입니다

진리를 가진 자가 얼마나 적은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편지가 아직까지는 세상에 알려지지가 않았습니다. 사실 말씀을 본다고 해도 아주 적은 사람들이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이트에 접속을 해서 보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반드시 환난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