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로새서2:11절을 보겠습니다. (신 326쪽)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너희 몸입니다
이제까지 우리 몸은 어떠했습니까?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입기 전까지는 악을 행하고 있었습니다. 이 시대는 자기들의 몸으로 어떠한 일을 하고 있는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사람은 태생적으로 율법주의라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이 율법에 대해서 성경을 보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라고 하니까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더욱 더 율법주의에 빠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사를 즐겨하지 않으시고 번제를 기뻐하시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교회 안에서 자기들이 하고 있는 행위를 거룩한 산 제사로 생각하면서 도리어 제사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기독교인입니다
거의 성경과 반대로 하고 있다고 보면 맞습니다. 어느 한 가지라도 성경에서 말씀하는 것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하는 모든 것이 다 성경과 반대가 되고 있다고 해도 틀리지가 않습니다. 너희 몸으로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라고 말씀을 하니까 자기들의 몸으로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릴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히브리서에서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기뻐하지 않으시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들의 몸으로 예배를 하고 기도를 하고 찬송가를 부르고 헌금을 하는 것으로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 몸입니다
내가 행위로 무엇을 해서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릴 수 있습니까? 그런 생각부터 지우시기 바랍니다. 이제까지 사도 바울이 무엇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나는 죄 아래 팔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원하나 선한 것이 내게는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입니다
내가 하는 모든 행위는 죄 입니다 또 내가 하는 모든 행위는 다 악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 몸으로 어떻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릴 수 있습니까? 우리 몸으로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릴 수 있다는 생각부터가 잘못 아닙니까? 사도 바울이 지금 우리 몸으로 무엇을 행하라고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먼저 아시기 바랍니다.
제사는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그리고 믿음을 기뻐하십니다. 제사는 내가 몸으로 하는 모든 행위가 다 제사입니다 그리고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신 구속의 일을 성령의 감동으로 깨닫고 마음으로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우리 몸입니다
우리 몸으로는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릴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릴 수 잇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정말 성경을 바로 알지 못하면 성경과 전혀 반대로 행하게 되고 그것이 자기 영혼을 망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 몸입니다
그것으로 무엇을 하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 몸으로 무엇을 하려고 하는 순간에 그것은 거룩한 것이 아니라 악한 것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를 자기들의 몸으로 드리는 사람이 없습니다. 왜 없는가 하면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입은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입니다
그것을 골로새서에서는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손으로 받는 할례가 있고 손으로 하지 않은 할례가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할례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할례는 율법 613가지를 대표하는 율법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할례를 했다는 것은 율법을 지킨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씀을 드립니다. 주일이라는 날을 지키고 있습니까? 그는 손으로 한 할례를 행한 사람입니다 십일조를 하고 있습니까? 그 역시도 손으로 한 할례를 행한 사람입니다
율법입니다
어느 율법이라도 지키고 있습니까? 그는 손으로 한 할례를 행한 사람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거룩한 산 제사가 무엇인가 하면 손으로 할례를 하지 않고 그러니까 자기 몸으로 율법을 지키지 않고 자기 마음에 할례를 하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으로 믿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육적 몸을 벗는 것입니다
손으로 할례를 하는 것은 육적으로 자기 몸에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손으로 하지 않는 할례는 그렇게 육적으로 하지 않고 몸을 벗어버리는 그리스도의 할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몸으로 지키지 않고 마음으로 믿는 것이 할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할례를 육적 몸을 벗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 절입니다.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바 되고 또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몸을 벗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가 된 몸은 율법을 지키고 싶어도 지킬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가 무엇인가 하면 우리 몸으로 율법을 지키지 않고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가 되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손으로 할례를 받습니다.
그것은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육체의 몸을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손으로 하는 할례를 행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는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가 되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장사가 되었다는 의미도 모르고 율법을 지키면서 자기들이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권하고 있습니다.
왜 권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입은 자이기 때문에 권하고 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입은 너희는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릴 수 있는가 하면 우리 몸을 벗음으로 해서 드릴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할례가 무엇입니까?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바 되고 또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몸이 죽어서 장사가 되어야 우리 몸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릴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히브리서10:22절을 보겠습니다. (신 363쪽)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에스겔36:25절을 보겠습니다. (구 1208쪽)
“맑은 물로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케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을 섬김에서 너희를 정결케 할 것이며”
우리 몸입니다
이 시대는 자기들이 몸이 어떠하다는 것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몸으로 예배를 드리면서 거룩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거룩하다고 하는 그것이 악하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사도 바울이 말씀하는 것과 반대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악을 행하는 일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악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악이 무엇인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악을 깨달아야 그것을 맑은 물로 씻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릴 수 있는데 이 시대는 악을 모르니까 맑은 물로 씻지도 않고 있고 더러운 육체로 도리어 악을 행하는 일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악이 무엇입니까?
나를 온전케 할 수 없는 율법의 행위가 다 악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이 악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그 악을 행하는 몸을 맑은 물로 씻을 수도 없고 도리어 자기들의 몸을 가지고 더욱 더 악을 행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씻어서 악을 행하지 말아야 하는데 악이 무엇인가를 모르니까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거룩한 산 제사입니다
맑은 물로 씻어 자기 몸으로 악을 행하지 말아야 합니다. 거룩한 산 제사는 내 육체가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것이 거룩한 산 제사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맑은 물로 씻지 않으면 우리는 늘 악을 행하게 되어 있고 우리 몸으로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릴 수 없습니다.
맑은 물로 씻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씻지를 않고 있습니다. 우리 몸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그것을 어떻게 드려야 하는가를 모르고 율법을 지키는 일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우리 몸을 맑은 물로 반드시 씻어야 합니다.
몸으로 무엇을 하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우리 몸을 맑은 물로 씻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 것에게 씻어야 하는가 하면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을 섬김에서 너희를 정결케 해야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드릴 수 있는 영적 예배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거의 모든 목사들이 이 말씀을 가지고 도리어 더 율법주의에 빠져 들어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자기 몸을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고 하니까 거룩한 예배를 드리고 거룩한 찬송을 부르고 거룩한 기도를 하고 하는 것으로 자기들의 몸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너희 모든 더러운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우리의 의는 더러운 옷과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인생들이 행하고 있는 모든 의는 더럽다는 말씀입니다 교회 안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까? 더럽습니다. 찬송가를 영광스럽게 부르고 있습니까? 더럽습니다. 정성을 다 해서 십일조를 하고 헌금을 하고 있습니까? 역시 더럽습니다.
다 더럽습니다.
그런데 그 더러운 것으로 이 시대는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린다고 하면서 더욱 더럽게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 더러운 것을 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이 시대는 도리어 더 더러운 것을 많이 하기 위해서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합니까?
아니 성도로서 일을 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생각이 어떠한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성경이 더럽다고 하면 더럽다는 것을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그 더러운 것으로 하면서 자기 몸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고 있다고 말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행위입니다
그것은 다 더럽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사도 바울이 우리 몸으로 그런 행위를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우리 몸으로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 그 몸으로 더러운 것을 행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시편14:3절을 보겠습니다. (구 811쪽)
“다 치우쳤으며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로마서7:18절을 보겠습니다. (신 248쪽)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우리 인생입니다
다 치우쳤으며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 더러운 자입니다.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난번에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더러운 자입니다 그가 깨끗한 것이 있을 수 있습니까?
더럽습니다.
분명히 깨닫기 바랍니다. 바리새인들이 깨끗한 것이 있었습니까? 그들은 마음에서부터 더럽다는 것을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음에 더러운 것이 그들의 행위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거룩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의 이성입니다.
아니 세상의 이치입니다. 아무리 악한 자라고 해도 선한 것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선한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시편에서 다 치우쳤으며 함께 더러운 자가 되었다는 말씀은 사도 바울의 말씀과 같이 내 육신에는 선한 것이 거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육신입니다
우리의 마음입니다 다 더럽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바리새인은 머리 끝 부터 해서 발끝까지 다 더럽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 하는 모든 것은 거룩한 산 제사가 아니라 더러운 것임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들의 행위 뿐 아니라 생각까지도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까? 우리에게 선한 것이 하나도 없는데 어떻게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릴 수 있습니까?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은 다 더러운데 어떻게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릴 수 있습니까? 정말 성경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더럽습니다.
우리 육신은 다 더럽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고 말씀을 하니까 더러운 몸으로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몸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릴 수 없다는 것을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더럽습니다.
그 몸으로 어떻게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릴 수 있습니까? 더러운 몸으로 산 제사를 드릴 수 있다면 드려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육신에는 선한 것이 없고 다 더럽기만 합니다. 함께 더러운 자가 되었다는 말씀은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머리 끝 부터 해서 발끝까지 다 더럽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거룩한 것이 있습니까?
11장에서 무엇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영으로 부활을 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거룩한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의 영이 거하시면 그 영이 거룩하다는 말씀입니다
뿌리입니다
그 뿌리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하늘에 계십니다. 그 뿌리가 거룩한즉 하나님께로서 난 영이 거룩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서 우리 모든 인생을 순종치 아니하심 가운데 거두어 두셨다가 이제 긍휼을 입은 자가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거룩할 수 없습니다.
그냥 더럽기만 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더러운 그것을 가지고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우리 몸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라고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의 의는 더럽습니다.
아니 우리에게는 깨끗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더럽히지 않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육체로 무엇을 하려고 하면 그것은 무조건 더러워지니까 더럽게 하지 않으려고 하면 육체로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됩니다.
우리 몸입니다
그 몸으로 어떤 행위를 하면 무조건 더럽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 것도 안 하고 살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우리 몸으로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라고 하는 그 말씀은 우리가 무엇을 몸으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에베소서4:22-24절을 보겠습니다; (신 314쪽)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거룩한 산 제사입니다.
이 시대는 문자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고 말씀을 하니까 도리어 자기들의 몸으로 하나님을 위해서 산 제사를 드린다고 하면서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아가고 있습니다.
거룩한 산 제사입니다
성도는 이제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입은 자입니다 어디서 자비하심을 입었는가 하면 은혜를 모르는 자에서 그리고 악을 행하던 자에게서 자비하심을 입었습니다. 그런 성도들에게 이제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하라는 말씀입니까?
이제까지 사도 바울이 율법을 지키면 안 된다는 것을 말씀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율법을 다시 지키라고 하겠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우리 몸을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유혹의 욕심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무엇으로 유혹을 받고 있습니까? 율법의 행위로 유혹을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율법은 썩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썩어 없어진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옛 사람이 행한 율법의 행위는 다 썩어 없어진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썩어 없어지는 것을 버리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이 무엇을 기뻐하십니까?
천천의 수양을 기뻐하십니까? 믿음을 기뻐하십니까? 이 시대는 무엇을 기뻐하시는 줄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천천의 수양이 무엇입니까? 만만의 기름이 무엇입니까? 다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이 했던 율법의 행위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고 말씀합니다.
그것은 우리 몸을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 두지 말고 우리 몸으로 거룩함을 입을 수 있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몸이 거룩함을 입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육신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육신으로 썩어져 가는 구습을 버림으로 해서 의와 진리로 거룩한 새 사람을 입으라는 말씀입니다
의와 진리로 거룩한 새 사람을 입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 몸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려면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려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옛 사람입니다
본성을 따라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 본성이 무엇인가 하면 율법을 지키면서 살아왔습니다. 그것을 에베소서에서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옛 사람이 율법을 지키고 있으니까 하나님이 찍어 우리를 좋은 열매 맺는 감람나무에 접붙이셨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가 다시 구습을 좇는 옛 사람으로 돌아가서는 안 됩니다 이제 그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어야 하고 이것이 우리 몸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는 일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옛 사람입니다
이제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우리 몸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릴 수 있는 것이며 그렇게 함으로 해서 우리가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을 수 있고 이것이 거룩한 산 제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몸입니다
반드시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버려야 합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버리고 의와 진리로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따라 새 사람을 입는 것이 산 제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몸입니다
반드시 율법을 버려야 합니다. 아니 우리에게서 더러운 것은 다 버려야 합니다. 내가 하고 있는 모든 행위가 다 더럽다는 것을 아는 성도만이 이것을 버릴 수 있습니다. 그렇게 버린 성도는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을 수 있고 이 새 사람이 있는 성도만이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거룩한 새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 육체가 아닙니다. 그 육체는 썩어 없어진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썩어 없어지는 육신으로 하는 모든 행위는 다 더럽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더럽기 때문에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거룩한 산 제사입니다
우리 안에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입은 새 사람을 입는 것이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는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새 사람을 입으려면 반드시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려야 한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 시대는 그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벗어버리지 못하는 우리 몸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릴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율법을 지키는 몸으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릴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자기 몸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릴 수 없습니다. 반드시 그것을 버리는 성도만이 의와 진리의 거룩하심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새 사람을 입으려고 하는 성도를 너희 몸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1:14-15절을 보겠습니다. (신 377쪽)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이전 알지 못할 때에 좇던 너희 사욕을 본 삼지 말고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우리 몸입니다
이 시대는 이 몸을 너무 함부로 하고 있습니다. 아니 자기들의 몸으로 무엇을 하고 있는 줄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이 몸으로 수많은 악을 행하고 있고 우상을 숭배하고 있고 음란에 빠져 있으면서도 자기들의 말로 거룩하다고 하면 거룩한 것으로 알고 있고 악을 행하고 있는 그들이 문자를 아는 것으로 자기들의 몸으로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 몸으로 거룩한 산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그것이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시대는 자기들의 몸을 너무 함부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 행위가 어떠한 결말을 가져오는가를 전혀 모르고 종교에 의해서 그저 끌려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모든 행실에 있어서 거룩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말씀을 보고 도리어 그들의 행실이 더러운 것으로 넘쳐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무튼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성경에서 말씀하는 것과는 정 반대로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순종하는 자식입니다
누가 순종을 하는 자식입니까? 율법을 지키는 사람이 순종을 하는 자식입니까? 율법을 지키지 않는 자가 순종을 하는 자식입니까? 로마서11장에서 사도 바울이 율법을 지키는 이스라엘을 순종치 아니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율법을 지키는 것이 순종을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이런 말씀을 보면 더 열심을 내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우리는 순종하는 자식입니다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는 사람은 사욕을 좇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모두가 소경이 되어서 누가 순종을 하는지도 모르고 있고 사욕이 무엇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성경의 문자를 아는 것으로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입니다 그 분과 같이 우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고 하니까 더욱 율법주의에 빠지고 있습니다. 거룩한 자가 되려면 이전 알지 못할 때에 좇던 너희 사욕을 본 삼지 말아야 하는데 아직까지 복음을 깨닫지를 못해서 이전에 알지 못할 때에 좇던 사욕이 무엇인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모릅니다.
복음을 모르고 있습니다. 순종을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것을 알아야 이전에 알지 못할 때에 좇던 사욕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이것을 알아야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될 수 있지만 이 시대는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너무 모릅니다.
그런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스스로에게 재앙이 된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어떻게 해야 산 제사로 드릴 수 있는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알지 못할 때입니다
사도 바울이 알지 못할 때 어떻게 했습니까? 그가 자기 스스로를 고백하면서 내가 포행자요 핍박자요 훼방자였다고 말씀을 하면서 그러나 그때는 내가 알지 못하고 그렇게 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율법주의로 산 것은 아직 복음을 알지 못하던 때라서 그렇게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 왜 지킵니까?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왜 버리지 못 합니까? 그리고 왜 사욕을 따라 행하고 있습니까? 이 모든 것이 아직 그에게 복음이 계시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미리 약속하신 것을 알면 순종할 수 있지만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알지 못하고 했습니까?
여러분이 나중에 주님이 오실 때 그것이 핑계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죄는 알고 지어도 죄고 모르고 지어도 죄 입니다 모르고 살인을 했다고 해서 그가 살인을 하지 않은 것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몸입니다
그것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이전에 알지 못할 때에 좇던 너희 사욕을 본 삼지 말고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우리 육체로는 거룩한 제사를 드릴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알지 못할 때입니다
이 시대도 복음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알지 못하면 죽을 때까지 율법을 지키다가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거룩하지도 않은 육체로 거룩하게 하려고 하다가 도리어 악이 되어서 사망에 이르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4:22절을 보겠습니다. (신 148쪽)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우리 성도입니다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입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입은 우리 성도는 이제 사도 바울의 말씀과 같이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려야 합니다. 그 거룩한 산 제사는 내가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육체의 썩어져 가는 구습을 버리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적 예배입니다
예배에 대해서는 이미 아카데미 강의를 통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예배가 무엇입니까? 그것을 요한복음4장에서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에서 주님께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 시대는 예배도 모르면서 예배를 드린다고 하고 있습니다.
예배입니다
그 예배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가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드렸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셔서 예배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아버지께 예배를 하는 자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배를 왜 합니까?
이 시대는 예배를 왜 하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예배를 함으로 해서 구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입니다
예배를 하는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예배를 왜 해야 하는 줄을 모르고 있는 사람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과 예배를 하고 있습니다. 왜 사마리아 여인과 예배를 하는가 하면 구원이 유대인에게 나기 때문에 예배를 하고 있습니다.
어느 유대인입니까?
표면적 유대인이 아니라 이면적 유대인입니다 그 유대인이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과 예배를 하시면서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를 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를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에 대해서 알지 못 합니까?
영생에 대해서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 영생에 대해서 알고 있습니다. 예배를 하는 분명한 목적이 있어야 하는데 이 시대는 예배를 왜 하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예배를 열린 예배라고 하고 있고 또 자기들이 만든 예배에 이름을 붙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배는 그런 것이 아니라 구원을 받기 위해서 하고 있습니다.
예배입니다
주님과 사마리아 여인과 왜 예배를 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그 예배를 통해서 무엇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까? 이 사마리아 여인이 주님을 만났습니다. 처음에는 유대인으로 알았습니다. 그 다음에는 선지자로 알았습니다. 그 다음에는 그리스도로 알았습니다. 그리스도가 무엇입니까? 구원자라는 뜻입니다.
영생입니다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해 주셨습니다. 그러자 이 여인이 양동이를 버려두고 마을로 들어가서 그리스도를 전파하고 있습니다.
예배라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그 예배를 통해서 영생을 얻지 못하면 그것은 예배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 시대 우상의 제물을 먹이고 있는 기독교의 예배는 사실 예배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예배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서 영생을 얻게 해야 예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구원입니다
유대인에게서 납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난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예배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예배들을 드리고 있지만 성경에서 말씀하는 예배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면서 드리고 있는 그런 예배는 주일이라는 날을 정해서 그리고 수요일에 금요일에 정해서 하고 있는 예배는 사실 예배라고 할 수 없습니다.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입니다
주님과 사마리아 여인과 한 예배와는 조금 다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영적 예배인가 하면 우리 몸을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배가 있습니다.
그리고 영적 예배가 있습니다. 주님과 사마리아 여인과 한 예배는 직접 주님을 가르쳐 주신 예배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이 예배를 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하는 자를 찾아서 구원을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영적 예배입니다
그것은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신령과 진정으로도 예배를 해야 하지만 우리는 복음에 순종하기 위해서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는 영적 예배도 해야 합니다. 이 예배를 하는 성도만이 율법의 저주를 받지 않고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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