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찌어다(계20:9.)

로마서 강해(오직 믿음)

112-2,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윤주만목사 2025. 4. 9. 08:46

로마서11:16절을 보겠습니다. (255)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니라

 

누룩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누룩이 없는 덩어리를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누룩이 없는 떡을 먹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 거하시는 그리스도의 영은 누룩이 전혀 없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영은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하신 영이 거하시기 때문에 율법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율법 외에 입니다.

율법의 의가 포함이 되지 않은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누룩 없는 떡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누룩이 없는 덩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누룩이 없는 덩어리가 되어야 하는데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누룩입니다

율법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누룩 없는 떡이라고 말씀을 하면서 누룩을 내어 버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율법의 한 모양이라도 나타나고 있다면 어느 누구도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 교회 안에서 나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 일은 절대로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율법입니다

이 시대 모든 교회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방인의 사도인 사도 바울이 말씀하는 너희는 누룩이 없는 자인데 누룩을 내어 버리라고 하는 그 말씀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율법을 지키면서도 자기들은 누룩을 내어 버렸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이야기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 교회입니다

그 안에는 구원이 없습니다. 혹시라도 말씀을 드립니다. 나는 그리스도편지에 있는 말씀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진리로 인도함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고 나는 율법을 안 지키고 있고 구원을 받았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율법을 지키고 있는 교회에 나가고 있습니다. 그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지방에 있습니까?

혹시 그리스도편지를 보고 있는데 지방에 있어서 성도의 교제를 나누지 못하고 있습니까? 그럴지라도 교회에 나가는 순간 그는 이미 그 교회가 율법에 의해서 지키고 있는 예배에 참석을 했기 때문에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설령 일요일 날 나 혼자 있다 해도 성도는 절대로 음녀가 되어 있는 교회에 나가서는 안 됩니다.

사정이 있습니다.

어느 정도의 기간 동안에 자기에게 특별한 사정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께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리스도편지를 통해서 이미 복음을 충분히 듣고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악한 일이라는 것을 알고서도 율법을 지키고 있는 교회에 나가서 예배를 드리고 있다면 그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엘리야입니다

나만 홀로 남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정말 이럴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엘리야가 나만 홀로 남았다고 해서 바알의 선지자들이 제사를 드리는 곳에 가서 제사를 드렸습니까? 지방에 있어서 나만 홀로 있는데 일요일에 할 일이 없다고 해서 율법을 지키고 있는 교회에 나가서 예배를 참석하고 있는 것은 엘리야가 바알의 제사장들이 드리는 제사에 참석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저도 안타깝습니다.

이 시대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보니까 지방에 계시는 분들이 정말 안타깝습니다. 그들이 성도의 교제를 하지 않아서 때로 오래 동안 저와 전화 한 통화도 없다보니까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미혹에 넘어가는 것을 볼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그것을 이겨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만 혼자 남습니다.

성도는 때로 그럴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바알의 선지자들의 제사를 하는 곳에 참석을 합니까? 저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교회가 바알의 선지자가 제사하는 곳이라는 것을 알고 어떻게 그 예배에 참석을 해서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까?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우리는 누룩이 없는 자입니다. 그러니까 바알을 섬기지 않는 자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바알의 선지자가 예배를 하는 그곳을 참석할 수 있습니까? 성도가 이 세상에 많이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 안일한 생각이 결국에는 자기 영혼을 망하게 하고 있습니다.

이기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노아 시대에 노아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이스라엘은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이었습니다. 예레미야 시대에서는 공의를 구하고 진리를 찾는 자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내 주변에 그런 사람이 없다고 해서 율법을 지키는 교회의 예배에 참석한다는 것은 불구덩이에 들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싸움입니다.

이기는 자에게만 면류관이 주어집니다. 때로 정말 이 시대 나 혼자 있는 것과 같은 생각이 듭니다. 그럴지라도 우리는 이겨야 합니다. 바알의 선지자가 드리는 예배에 참석한다는 것은 사망의 길로 가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참지 못하고 그런 종교의 예배에 참석을 한다면 제가 더 이상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나는 율법을 안 지킵니까?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까? 바알의 선지자가 드리는 예배에 참석을 하고 있고 그 건물에 들어가는 순간에 그들의 하는 모든 것을 같이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하는 십일조를 안 내고 있습니까? 그러나 그들의 예배가 다 율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누룩이 없습니다.

그런데 누룩으로 드려지고 있는 예배를 참석하면서 누룩이 없는 자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지식으로 알고 있는 그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내 육체에서 누룩의 모양이 하나라도 나오면 그 역시 율법을 지키는 자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요한복음17:19절을 보겠습니다. (178)

또 저희를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저희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니라

우리는 영의 일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거의 문자 그대로 보니까 도무지 이해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깨닫지를 못하니까 종교는 교인들에게 막연한 믿음을 이야기를 하고 있고 자기가 하는 일이 옳은가 그른가도 분별을 못하고 다수를 따라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거룩이라는 단어를 참 좋아합니다.

그리고 좋은 의미의 단어이기도 합니다. 그러다보니까 이 거룩이라는 단어를 아무 곳에나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는 자기들이 드리는 예배도 거룩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율법에 의해서 드려지고 있는 예배는 쉽게 말씀을 드려서 바알의 제사장들이 드리는 제사와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거룩하다고 합니다.

거룩이라는 단어를 함부로 사용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무엇이 거룩한가를 알고 사용을 해야 합니다. 그냥 아무데서나 거룩이라고 하지 마시고 반드시 이 거룩에 대해서 알고 사용해야 합니다. 우리 육체는 거룩하지가 않습니다.

육체입니다.

그 육체로 하는 모든 행위는 거룩한 것이 아니라 악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거룩하지 않습니다. 설령 내 안에 거룩하신 이의 영이 있다 해도 우리 육체를 보고 거룩하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에 아무리 좋은 의미로 기록이 되어 있다 해도 그것을 아무데서나 사용을 하는 것은 실상은 그 마음이 악하기 때문입니다.

뿌리가 거룩합니다.

주님을 비유로 해서 뿌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거룩하시다고 하는 것에서는 어느 누구도 부인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가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다고 말씀을 하니까 마치 내가 거룩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기도입니다

요한복음17장에서 3가지 기도를 하시고 난 후에 이제 십자가를 지시게 됩니다. 우리는 이 기도를 잘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성도들을 위해서 기도를 하시고 있습니다. 또 그 기도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이 시대에 진리로 인도함을 받아서 구원을 받고 있습니다.

주님은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왜 주님께서 이 세상에 우리와 같은 육신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까? 그것은 우리를 위해서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의 은혜가 없이도 구원을 받을 수 있었다면 주님은 이 세상에 오시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를 위해서입니다.

우리 인생은 거룩해질 수 없습니다. 천국은 반드시 거룩한 자만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죄인은 절대로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죄인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은 우리 육체는 어느 것도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씀인데 이 시대는 신체의 구원을 이야기를 하고 있고 교회는 점점 더 율법의 행위로 해탈을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안 됩니다

우리 신체는 반드시 썩습니다. 그것으로는 어떻게 해도 거룩해지지가 않습니다.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죄가 사함을 받았다고 하니까 마치 우리 신체의 죄가 사함을 받은 것으로 생각하면서 그 신체가 구원을 받는다고 하면서 이제 그 신체를 더 의롭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신체는 어느 것도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것은 어떻게 해도 거룩해 질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세상 죄를 지고 가셨다 해도 우리 신체가 거룩해 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통해서 믿는 자에게 거룩하신 이의 영이 거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도 거룩해 진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거룩해 지셨습니다.

주님은 거룩하신 분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서 율법을 완전케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죄가 없으신 분이 되셨다는 말씀입니다. 죄가 없으신 분으로서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셨지만 하나님께서 영으로 살리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죄가 없으신 분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영으로 살리셨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거룩하신 분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다시 말씀을 해서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진리의 성령이 오심으로 해서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시고 그 영이 거룩함을 얻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영이 거하시는 것을 얻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뿌리가 거룩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거룩하셨습니다. 그것은 우리 안에 거룩하신 이의 영이 거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거룩하신 이로서 십자가를 지시고 영으로 부활을 하심으로 해서 우리에게도 그의 영이 거하시게 하는 역사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 시대는 이 영의 일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성경의 문자를 아는 것으로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다고 하면서 뿌리는 주님이고 가지는 자기들이라고 하면서 교회에 나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자기들이 거룩해졌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거룩함을 입은 주체도 모르고 있으면서 성경의 문자를 알고 있는 것으로 말을 하고 있습니다.

뿌리가 거룩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가지도 거룩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그 뿌리와 가지와의 관계를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부활을 하셔서 뿌리가 거룩하다고 말씀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그리고 가지가 무엇인가도 모르면서 교회 안에 있는 자기들이 거룩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육이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의 영의 일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로마서의 말씀도 육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가지도 거룩하다고 하면서 자기들이 교회 안에서 행하고 있는 모든 행위가 마치 거룩한 것으로 생각하면서 악을 행하는데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악입니다

내 육체로 하는 모든 행위는 다 악한 행위입니다.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다는 말씀은 영의 일을 말씀하는 것이지 육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말씀을 이해를 하지 못하니까 사도신경을 주문과 같이 외우면서 거룩한 공회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거룩한 공회니까 자기들이 하는 모든 행위가 다 거룩한 것이 되고 있습니다.

종교입니다

주문을 외우게 해서 세뇌를 시키고 있습니다. 거룩한 공회가 어디 있습니까? 성경에서 말씀하는 것은 다 영의 일입니다. 그런데 종교는 그것을 육의 일로 만들어서 어떻게 하든지 거룩한 것을 나타내려고 하고 있습니다. 영의 일을 모르니까 아니 믿음이 없으니까 육의 일로 거룩함을 나타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뿌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주님은 지금 하늘에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시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영으로 부활을 하신 주님이 거룩하시고 또한 그의 영이 진리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 거하심으로 가지도 거룩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뿌리 안 보입니다

가지 역시 안 보입니다. 영의 일은 우리가 보고 느끼고 이성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우리에게 믿어지는 역사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시고 그 영이 거룩하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1:16절을 보겠습니다. (378)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히브리서2:11절을 보겠습니다. (354)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하신 분입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이견을 나타내지 않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믿는 하나님이 거룩하시지 않다면 믿을 이유조차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하신 분이고 또 그 거룩하신 분의 형상을 입기 위해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모릅니다.

자기들이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말씀을 하니까 자기들의 육체가 거룩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교회 안에서 자기들의 육체의 모양을 통해서 거룩함을 나타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을 모릅니다.

내가 거룩하다는 말씀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이시기 때문에 거룩하십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또 죄가 없으신 분이기 때문에 거룩하십니다. 하나님 자체가 거룩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십니다.

율법과 관계가 없이 그분은 거룩하신 분입니다. 그러나 왜 거룩하신 가를 보여주시기 위해서 모세를 통해서 율법을 반포하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그 율법을 완전케 하심으로서 죄가 없으신 분으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영으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거룩하신 분이라는 것을 나타내 주셨습니다.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이 말씀을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너라고 하니까 자기 육체를 거룩하게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너희도 거룩해지라고 하니까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고 성화가 되려고 하고 있고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모든 행위를 다 거룩하게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거룩합니까?

그렇게 해서 너도 거룩해지면 뭐 합니까? 그것은 다 썩어 없어진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거룩해 지려고 하는 그 모든 행위들이 실상은 다 썩어 없어진다는 것을 모르고 자기들의 육체로 거룩함을 나타내려고 하고 있습니다.

구더기입니다

그리고 벌레입니다. 자기들이 짐승이라는 것을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것들이 거룩해 지면 뭐 합니까? 제가 방종을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것들은 거룩해 질 수도 없고 거룩해지지도 않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지금의 기독교는 성경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그 벌레를 거룩하게 하려고 아니 자기들이 거룩하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모든 행위들을 통해서 거룩함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런 것으로 도리어 자기들의 영혼이 망하는 길로 간다는 것을 모르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거룩하다고 하면서 교회 안에 있는 자기들이 거룩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거룩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순전히 사람의 눈에 보이는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행위를 보지 않으십니다. 아니 사람의 행위 자체가 악한 일이기 때문에 그것을 절대로 보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들이 구더기라는 것을 모르고 그것을 가지고 거룩하다고 하고 있습니다.

거룩한 공회입니까?

거룩한 교회입니까? 겉으로 보이는 교회는 절대로 거룩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바리새인들의 흠 없는 율법의 행위를 회를 칠하고 있다고 하면서 외식이라고 말씀을 하셨지만 이 시대는 자기들이 하고 있는 행위는 외식이 아닌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외식을 모릅니까?

겉으로 나타나는 모든 것은 다 외식입니다. 그러니까 교회 안에서 예배를 드리고 찬송가를 부르고 기도를 하고 그 예배에 각종 헌금을 드리고 하는 모든 행위가 다 외식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화가 있을 그 외식에 빠져 있으면서도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 모양을 보면서 거룩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거룩해지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히브리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났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거룩합니다. 그 말씀을 히브리서에서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함을 입는 자가 다 하나에서 났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입니다

우리 성도는 하나님께로서 난 자입니다. 우리 육체가 그렇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육체는 하나님께로서 난 자가 아니라 아담으로부터 난 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의 혈통과 육정으로 난 자라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렇게 난 자는 절대로 거룩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아담으로 난 자를 거룩하게 하려고 모양을 내고 있습니다.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거룩하게 하시는 자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그리고 거룩함을 입은 자입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오심으로 해서 우리가 진리로 인도함을 받아 거룩하신 이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렇게 거하시는 영을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와 영입니다

육체는 절대로 거룩할 수 없습니다. 사람의 눈에 그리고 이성에 거룩하게 보인다 해도 그것은 다 썩어 없어지는 더러운 것임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더럽다고 하면 더러운 것입니다. 그러나 진리를 모르면 그런 것을 보고 거룩하다고 말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뿌리가 거룩합니다.

주님이 거룩하신 분입니다. 거룩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그 분으로 말미암아 우리 육체에 그러니까 썩어 없어진 것에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가 탄생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거하시는 영을 거룩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하나님께로서 난 자입니다. 그것은 내 육체가 아니라 우리 안에 거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와 예수님과의 관계는 영의 일입니다. 그것을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비유를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마치 그와 같다는 말씀입니다.

영의 일입니다. 영이 서로 나무와 가지 같이 그렇게 서로 연결이 되어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나무와 가지는 하나입니다. 사실 이 영의 일은 우리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 포도나무와 가지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는 하나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11:17절을 보겠습니다. (255)

또한 가지 얼마가 꺾여졌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 되었은즉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런데 참올리브 나무 가지들 가운데서 얼마를 잘라 내시고서, 그 자리에다 돌올리브 나무인 그대를 접붙여 주셨기 때문에, 그대가 참올리브 나무의 뿌리에서 올라오는 양분을 함께 받게 된 것이면,”

가지 얼마가 꺾였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버림을 받았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계속해서 이스라엘이 버림을 받았다는 것을 여러 가지 비유를 통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일들이 영의 일을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꺾였습니다.

그들이 왜 꺾였는가는 이미 말씀을 했습니다. 그들은 가난한 자가 되지 못 했습니다. 율법을 지킴으로 해서 부자가 되었습니다. 가난한 자에게 천국복음이 전파가 되는데 그들은 율법의 의로 부자가 되었습니다. 왜 부자가 되었는가 하면 그들 안에 바알이 들어와서 정욕에 따라 흠 없는 율법의 의를 가짐으로 해서 부자가 되었습니다.

바알입니다

그 바알이 이스라엘을 율법주의로 만들었습니다. 이 시대도 역시 교회 안에 바알이 들어와 수많은 율법을 지키게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교회 안에서 행위를 하고 있고 은혜를 은혜 되지 못하게 하고 있지만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또 한 가지 얼마가 꺾여졌는데

얼마입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전체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말씀들을 잘 이해를 해야 합니다. 얼마라고 말씀을 하니까 이 국어의 뜻을 잘 이해를 못하고 있습니다. 사전적인 뜻으로는 잘 모르는 수효나 분량 정도를 말을 하고 있습니다.

잘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성경을 통해서 이스라엘의 영적인 상태가 어떻다는 것을 이제는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정말 잘 모르기 때문에 이런 말씀들을 보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 얼마가 이스라엘 전체를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불행한 민족입니다

이 구원에 대해서는 정말 그렇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씀들을 보면 우리가 얼마나 큰 은혜를 받았는가를 깨달을 수 있는데 이 시대는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가지를 꺾어 버리심으로 해서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었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가르쳐 주고 있지만 성경을 보면서도 도무지 무슨 말씀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감사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가지 얼마를 하나님께서 꺾어 버리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꺾어 버리셨다기보다는 이스라엘 스스로가 꺾임이 되었다고 보는 것이 더 맞습니다. 왜 그들이 꺾이게 되었는가를 로마서11장 초반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행위로 말미암아 그렇게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습니까?

정말 성경을 바로 보시기 바랍니다. 참감람나무에 붙어 있다고 하는 이스라엘이 어떻게 되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 행위를 함으로 해서 은혜를 은혜 되지 못하게 함으로서 해서 구원을 받을 수 없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이 구원을 받았으면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 가지 얼마가 꺾이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왜 그들의 가지 얼마가 꺾이게 되었는가 하면 그들의 밥상이 올무와 덫과 거치는 것과 보응이 됨으로 해서 그렇게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이방인입니다

우리를 돌감람나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구원을 받을 수 없는 감람나무에 있는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이방인 모두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우리를 접붙이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가지 얼마가 꺾이었는데 그 자리에 우리를 접붙이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놀랍게도 이스라엘이라는 가지 얼마가 꺾여짐으로 해서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접붙임으로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시편52:8절을 보겠습니다. (840)

오직 나는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 같음이여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영영히 의지하리로다

우리는 육입니다

이제 영의 사람이 우리 안에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사도 바울은 참감람나무에 접붙임이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육의 사람인 우리 이방인들이 영의 사람으로 되는 것을 접붙임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해를 못 합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이 접붙임도 육의 일로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일은 육의 사람인 우리를 돌감람나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이방인을 돌감람나무로 말씀을 하고 있고 이제 접붙임이 되어서 뿌리로부터 진액을 받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비밀입니다

이 영의 비밀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사람의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다 보니까 사도 바울이 참감람나무와 돌감람나무를 비유로 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시대는 영의 일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이런 말씀을 보면서도 거의 다 한 가지로만 생각을 하다보니까 깨달을 수 없습니다.

영과 육입니다

주님은 영으로서 참감람나무입니다. 영이기 때문에 참감람나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육체를 입고 있는 인생 모두는 육이기 때문에 돌감람나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돌감람나무를 영으로 접붙임을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접붙이십니까?

육을 영으로 접붙일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사도 바울이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보고 사람들은 막연하게 자기들이 접붙임을 당한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 육의 사람이 어떻게 영의 사람이 되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접붙임입니다.

우리 육의 사람이 영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막연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나무에 자기들이 접붙임이 되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그런 것을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육의 사람인데 이제 영의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런 의미에서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뿌리가 거룩합니다.

가지가 거룩하려면 어떻게 되어야 합니까? 뿌리와 같아져야 한다는 것을 설명할 수 없다 보니까 사도 바울이 나무의 접붙임을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영의 비밀을 사도 바울은 우리가 알아듣기 쉽게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참감람나무입니다.

어떤 참감람나무인가 하면 영으로서 참감람나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육을 입고 있습니다. 거룩하신 이의 영이 없는 우리를 사도 바울은 돌감람나무로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면서 접붙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과 육입니다

정말 이 영과 육을 설명을 하려면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 성도님들은 다 알아들을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우리가 영의 일을 깨닫고 믿게 됨으로 해서 우리 안에 거룩하신 이의 영이 거하십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은 떡 덩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거룩하신 이의 영이 어떻게 거하시는가 하면 마치 나무를 접붙이는 것과 같이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사야11:10절을 보겠습니다. (981)

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호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

성경은 영의 일입니다

육의 일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호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고 한 이 말씀은 사실 육의 일로 우리가 쉽게 성경을 통해서 알고 있는 말씀입니다. 실제 주님은 이새의 뿌리에서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접붙임에 대해서 말씀을 하겠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귤이 있습니다. 귤나무는 강하지가 않습니다. 아니 저도 귤나무가 어떤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제주도에서는 강한 바람에 견디려면 탱자나무를 심습니다. 그리고 그 탱자나무에 귤 가지를 꺾어서 접붙여서 귤을 생산해 내고 있습니다. 시골에서 산 사람들은 탱자나무를 잘 알고 있습니다.

노란 열매를 맺습니다.

그런데 너무 시고 맛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 탱자나무 가지에 귤을 접붙이면 거기서 귤이 자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세상의 상식입니다. 귤은 좋은 나무고 탱자는 별로 좋지 않은 나무입니다. 그런데 탱자나무에 접붙이면 좋은 귤이 나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세상에 접붙이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에 상식입니다

나쁜 나무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나무가 강합니다. 그런데 좋은 열매를 맺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면 좋은 열매를 맺는 그 가지를 잘라서 우리가 상식으로 알고 있는 나쁜 열매를 맺는 나무에 접붙이면 나쁜 열매가 맺는 것이 아니라 좋은 열매가 맺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어떻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나쁜 가지입니다 그런데 좋은 열매를 맺는 감람나무에 접붙이니까 좋은 열매를 맺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접붙이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에 접붙이는 것을 상식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이 말씀을 보면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세상의 일을 비유로 해서 영의 일을 말씀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의 일입니다

좋은 가지를 나쁜 나무에 접붙여서 좋은 열매를 얻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나쁜 가지를 좋은 나무에 접붙여서 좋은 진액을 받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의 것을 비유로 해서 영의 일을 말씀하는 것을 모르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비유입니다

세상의 접붙임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비유지 꼭 그렇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것을 비유로 보지 않고 실제로 보면 성경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비유를 실제로 보면서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좋은 참 감람나무를 심으셨습니다.

세상의 접붙임을 비유로 해서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실제로 받아들이면 성경은 이해가 안 됩니다. 만약에 이렇게 접붙이면 좋은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니라 나쁜 열매를 맺는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영의 일을 육의 일을 가지고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감람나무입니다.

두 개의 나무가 있다는 것을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의 나무가 있고 영의 나무가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어떻게 해도 좋은 나무가 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좋은 나무뿌리의 진액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인생입니다

그 이성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 하면 영의 일을 알아야 합니다. 그 영의 일을 아는 것을 사도 바울은 접붙임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은 자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뿌리입니다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요한계시록에서는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구원을 받으려면 이 영의 일을 알아야 합니다. 그 영의 일을 아는 것을 뿌리의 진액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참감람나무의 뿌리의 진액을 받은 자가 되는 것은 우리가 진리로 인도함을 받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먼저 접붙임이 되어야 합니다.

반드시 이성을 따르는 육의 나무에서 우리는 영의 일을 가르쳐 주고 있는 나무로 접붙임이 되어야 합니다. 영의 일을 알기 위해서 접붙임이 되어야 하는데 이 시대는 어떻게 접붙임이 되는지도 모르면서 막연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그 일을 받아들이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이스라엘과 같이 올무와 덫과 거치는 것과 보응이 되는 밥상을 먹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진리로 인도함을 받는 성도가 되어서 구원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next 1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