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37:18-24절
“여호와께서 완전한 자의 날을 아시니 저희 기업은 영원하리로다 저희는 환난 때에 부끄럽지 아니하며 기근의 날에도 풍족하려니와 악인은 멸망하고 여호와의 원수는 어린 양의 기름같이 타서 연기 되어 없어지리로다 악인은 꾸고 갚지 아니하나 의인은 은혜를 베풀고 주는도다 주의 복을 받은 자는 땅을 차지하고 주의 저주를 받은 자는 끊어지리로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 길을 기뻐하시나니 저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성경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는 사람은 지극히 적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만약에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경을 보았다면 지금과 같은 종교가 되지 않았고 영생을 얻는 자들이 많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인생입니다
그리고 피조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피조물이라는 것은 쉽게 말을 해서 우리가 컴퓨터를 정말 잘 해서 프로그래밍을 할 수 있고 게임과 같은 것을 만들 수 있을 때 그 안에 있는 캐릭터를 만들어서 그 게임을 운용을 할 수 있고 마치 이 세상과 같이 그들이 자유의지를 가지고 활동을 하고 있고 그 안에 있는 캐릭터들을 피조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게임입니다
그리고 캐릭터들입니다. 내가 게임을 만들었다고 해서 그 안에 있는 캐릭터에게 나를 계시를 해서 믿을 수 있게 할 수 있는가를 생각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제가 굳이 설명을 하지 않아도 쉽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보는 성경이 마치 그와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인생들은 성경을 보는 기초부터가 안 되고 있고 자기가 피조물이라는 것을 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안 됩니다.
우리는 피조물이라는 것을 한 시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내가 성경을 보고 그 문자와 언어를 안다고 해서 성경을 볼 수 있는 것으로 오판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만약에 그렇게 성경을 보고 하나님을 믿을 수 있다면 이 세상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믿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노아 홍수입니다.
아담의 자손들이 번창을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인생의 언어적 표현이라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우리 인생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있어서 그러니까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인데 그 일에서 우리 인생이 죄악이 관영을 했다는 말씀은 그들에게 하나님을 계시를 해 주셨지만 그들은 알지 못하니까 믿을 수 없었고 믿지를 않는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바로 죄악이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인생입니다
아니 우리 피조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성경을 보는 인생들이 노아 홍수에 대해서 말씀을 보면서 그 당시 사람들만 죄악이 관영을 한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고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 죄악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도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어 죽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착각에 빠져 있습니다.
정의입니다
인생에 대해서 우리 피조물들에 대해서 정의를 해 주고 있는 기초의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 죄악이 관영했으면 이 시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모두가 죄악이 관영하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그러나 그 가운데서 노아 한 사람이 은혜를 입은 것과 같이 이 시대 역시 많은 사람들 중에서 어느 한 사람이 은혜를 입는다는 말씀과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죄악입니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도덕적인 죄악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그것을 배우려고 하고 있고 그 죄악을 안 지려고 하면 논어를 배우고 공자를 배우고 니체의 철학을 배우면 됩니다.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죄악은 그런 죄악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은 영원한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이 영생을 생명을 얻는 일에 있어서 얻지 못하는 일을 죄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노아 시대입니다
그들은 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표면적으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지만 영생을 얻은 자들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래서 노아 가족만이 은혜를 입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이 죄악도 모르고 노아가 받은 은혜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그저 은혜라는 단어를 아는 것으로 인생의 철학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제 제자들에게 유월절을 다 먹이시면서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영생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래서 마태복음에서도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류 80억 명이라고 합니다.
그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28억 명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다는 말씀이 해당이 된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전체 인류를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종교를 대표로 하는 유대교에 오셨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들이 적다는 말씀입니다.
적습니다.
주님께서 적다고 말씀을 하시면 그런 것으로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왜 적은가를 지혜를 구하는 자가 되어야지 이 말씀을 보고 자기 합리화를 시키면서 나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고 있다고 하는 사람은 가장 어리석은 자라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시편 37편입니다
역시 인생들이 행악을 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로 하는 왕인 다윗의 시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이 성경을 보고 있고 그들에게 경계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성경입니다
부탁드리지만 자기 합리화를 시키지 마시기 바랍니다. 행악자를 말씀을 하고 있고 여호와를 의롭하여 선을 행하는 자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씀을 보고 행악자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그저 나쁜 의미의 말씀은 내가 종교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나에게는 해당이 안 되는 말씀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바로 행악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의인입니다
그리고 악인입니다. 악인의 팔은 부러지나 의인은 여호와께서 붙드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표면적으로 종교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것으로 의인이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 성경은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이 보고 있고 그 안에 있는 다수가 좁은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있다는 것을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인생들은 자기 철학으로 보면서 자기 합리화를 시키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 모르니까 객관화가 되어 있지를 못하는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이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우리 인생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지만 자기가 누군지를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자기가 의인인지 악인인지도 모르면서 종교 안에서 평생을 예수 그리스도를 주여 주여 하면서 부르고 있는 사람들이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18,“여호와께서 완전한 자의 날을 아시니 저희 기업은 영원하리로다”
의인입니다
우리 인생에 대해서 먼저 자기 객관화를 하시기 바랍니다. 전도서에서 선을 행하고 죄를 범치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아주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이 기초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 욥과 같이 산다고 해도 사도 바울이 바리새인으로 있을 때 흠 없는 율법의 의를 가지고 산 것과 같이 산다고 해도 영생을 얻는 일에 있어서는 이 말씀이 기초입니다.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악인에 대해서 그리고 의인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까 인생들은 성경을 보고 자기 철학으로 합리화를 시키면서 내가 종교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니까 의인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물론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말씀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의인입니다
일단 우리 인생 스스로에 대해서 기초적인 말씀은 의인은 세상에 아주 없다는 것이 정의입니다. 종교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해서 의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반드시 히브리서에의 말씀과 같이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뒤로 물러갑니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나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이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의인은 누군가 하면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 자를 의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입니다
그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것으로 내가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으로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전제 조건을 갈라디아서에서 하나님 앞에서 아무나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단 한 가지라도 지키면 그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없다고 그것이 분명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입니다
이 시대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이 모르고 있습니까?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종교 안에서 온갖 율법의 행위를 하면서 표면적으로 그 종교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행위를 보면서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정말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을 하고 있고 그런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자기가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의인입니다
여호와께서 완전한 자의 날을 아시니 저희 기업은 영원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의인을 완전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이 완전하다는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만약에 이 완전한 자를 우리 인생으로 보고 있다면 앞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전도서의 말씀 세상에 의인은 아주 없다는 말씀과 정면으로 충돌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베드로전서1:3-4절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완전한 자입니다
성경은 일관성이 있어야 합니다. 만약에 이 일관성이 무너지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싶어도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럼에도 믿는다고 하는 것은 그것은 믿음이 아니라 자기가 그렇게 믿고 싶어 하는 인생의 철학에 따라는 마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믿음입니다.
성경은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하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입니다
그 안에 있는 인생들은 일관성이 무너지고 있는데도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들의 철학으로 종교성을 가지고 그렇게 믿고 싶은 마음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지 그것을 믿음이라고 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어느 말씀을 보고 율법을 지키라는 말씀이 있고 어느 말씀에서는 율법이 폐하여졌다는 말씀이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두 말씀을 다 수용을 하고 있다면 그는 자기가 그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싶어 하는 마음이 인생의 철학에서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완전한 자입니다
사도 베드로가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완전한 자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시는 일을 성경에서 증거를 받고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우리 역시 주님께서 태초에 있는 생명으로 부활을 하신 일과 같이 우리의 믿음이 역사를 해서 태초에 있는 생명을 얻은 자를 말씀을 하고 있고 이 거듭난 생명을 완전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거듭나야합니다.
태초에 있는 생명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그런 성도들에게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거듭난 생명만이 태초에 있는 생명을 완전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생명이 하늘에 간직하신 기업을 얻을 수 있다는 말씀이고 시편에서 저희 기업이 영원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이 아닙니다.
우리는 피조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피조물을 대표로 하는 아담에게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인생은 죄악의 종자이기 때문에 창조하신 일의 영광에서 우리 인생들은 다 흙으로 그러니까 먼지 같이 사라져야 한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렇게 잠시 보이다가 사라지는 우리 인생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를 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럼으로 해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렇게 거듭난 생명으로 기업을 잇게 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19,“저희는 환난 때에 부끄럽지 아니하며 기근의 날에도 풍족하려니와”
의인입니다
우리 인생이 아닙니다. 기초는 늘 말씀을 하지만 세상에 의인은 아주 없다는 말씀입니다. 지금 종교 안에 있는 인생들은 태초에 있는 생명으로 거듭나는 일을 모르니까 자기 신체가 구원을 받는다고 하고 있고 그런 그들이 교리고 신체가 의로워지는 것으로 성경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6:35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의인입니다
거듭난 생명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피조물의 믿음이 역사를 해서 태초에 있는 생명을 얻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제가 아무리 말씀을 해도 그들은 성경과 다르게 신체의 구원을 주장을 하기 때문에 영생을 얻을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율법에 정하신 대로 이 세상에 오셔서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먹이시는 표적을 나타내 보여주셨습니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바로 이어서 그러나 내가 너희더러 이르기를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아니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의인입니다
이렇게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는 일을 하고 있고 그럼으로 해서 그 아는 일이 믿음으로 역사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은 환난입니다. 그리고 마치 기근을 당하는 것과 같이 우리 인생들을 사망의 길로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먹지를 않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성도입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진리의 성령을 보내주신 자만이 이렇게 환난 날에 그러니까 우리 인생은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을 수 없고 영생을 얻을 수 없는데 진리의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해서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하심으로 풍족하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의 떡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이 생명의 떡을 먹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유대인들에게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해서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해서 증거를 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인생들은 모세의 율법에서 증거를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인생의 철학으로 보고 안식일이라는 날을 주일이라는 날을 지키고 그 날에 온갖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의인입니다
그저 내가 의인이라는 단어를 성경에서 보았다는 것으로 의인이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종교 안에서 표면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행위를 보고 의인이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이렇게 생명의 떡을 먹어야 하고 그럼으로 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고 그래서 사도 바울이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의 떡입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유월절을 다 먹이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 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도 말고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도 말고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떡으로 하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룩입니다
성경에서 율법을 문자 그대로 인생의 철학으로 보고 아는 것으로 인생들이 지키는 행위를 누룩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말씀이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문자를 아는 것으로 인생들은 안식일을 그리고 주일이라는 날을 기키면서 누룩을 먹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누룩이라는 것 조차 모르고 있고 그것이 종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20,“악인은 멸망하고 여호와의 원수는 어린 양의 기름같이 타서 연기 되어 없어지리로다”
우리 인생입니다
이미 전도서의 말씀에서 세상에 의인은 아주 없다고 말씀을 했습니다. 우리 인생은 그렇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다시 말씀을 하지만 인생을 대표로 하는 아담에게 그래서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고 말씀을 했고 그래서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는 아브라함도 그리고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하는 다윗도 죽어서 흙으로 돌아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정말 어리석은 이야기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인생은 연기처럼 사라진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의 형제 야고보도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잠시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들의 결말이 그렇다는 것을 우리는 다 죽은 자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거듭남입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반드시 거듭나는 생명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을 믿는 성도만이 기업이 영원하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21,“악인은 꾸고 갚지 아니하나 의인은 은혜를 베풀고 주는도다 주의 복을 받은 자는 땅을 차지하고 주의 저주를 받은 자는 끊어지리로다”
의인입니다
우리 인생은 영생을 얻는 일에 있어서 죄악을 행하는 자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가 지혜가 있습니까? 모두가 존경하는 종교인입니까? 이 시대 석학입니까? 성경은 우리 인생에 대해서 세상에 의인이 아주 없다고 정의를 해 주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고 그럼에도 우리 인생은 창조하신 일의 영광에서 보면 은혜를 받았음에서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창조입니다
이미 다 이루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에게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이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일에서 보니까 우리 인생들은 악인은 꾸고 갚지 아니하나 의인은 은혜를 베풀고 주는도다 주의 복을 받은 자는 땅을 차지하고 주의 저주를 받은 자는 끊어진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의인입니다
누구만 의인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만이 의인이시라는 것을 성경에서 증거를 받아 믿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의인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시고 있지만 인생들이 그 은혜를 모르고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모르니까 은혜를 받아들이지를 않고 믿지를 않는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은혜입니다
주의 복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은혜를 믿는 성도는 거듭남으로 해서 땅을 차지하리라고 그러니까 하늘에 있는 기업을 얻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은혜를 받지 않는 우리 인생들은 다 저주를 받아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질 때 연기 같이 사라지고 만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그런 인생들이 악인이 누군지도 그리고 의인이 누군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성경에서 의인이라는 문자를 보는 것으로 자기 합리화를 시키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것이 종교이고 그들은 그렇게 교리를 만들어서 인생들을 미혹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경계로 저주를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22,“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 길을 기뻐하시나니”
종교입니다.
그들은 너무 많이 샤머니즘에 빠져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모르니까 이런 말씀을 보고도 인생의 철학에 따라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내 평생의 걸음을 정하시고 나로 종교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셨다고 하고 있고 세상 사람들의 걸음은 정하시지 않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입니다
우리 성도는 창조주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 이 창조하신 일의 영광은 다 이루셨다고 믿고 있고 성경에서도 그래서 우리의 구원이 과거형으로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에서도 창조하신 일을 다 이루셨기 때문에 사도 요한에게 환상으로 보여주시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14:6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 말씀을 의미를 전혀 모르면서 종교 안에서 살아가면서 그 행위를 하는 것으로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믿는다고 하는 것은 내가 믿는 대상이 하신 일을 보고 믿는 일이 믿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입니다
내가 그 길을 가서 하나님 나라로 들어갑니까? 그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내가 가는 길을 보고 판단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그래서 내가 곧 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리고 시편에서는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 길을 기뻐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사람의 걸음입니다.
하나님이 정하셨습니다. 그런데 누가 그 걸음을 걷고 있고 그 길을 가십니까? 우리가 영생을 얻는 일에서는 주님께서 그 길을 가셨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그래서 시편에서는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 길을 기뻐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믿음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그저 종교인으로 사는 것으로 자기들이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걸음을 정하시고 기뻐하신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걸음을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걸어 주시고 그래서 내가 곧 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우리 성도는 믿고 있습니다.
종교인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믿음이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니까 자기들이 걸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시편의 말씀을 오해를 하고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 길을 기뻐하신다고 말씀을 하니까 자기들이 종교인으로 사는 것을 기뻐하시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고 그 종교인으로 사는 일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인생의 대표입니다
아담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산 자의 대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은 아담으로 살아갑니다. 그리고 거듭난 자는 예수 그리스도로 살아간다는 말씀이고 그래서 주님께서 내가 곧 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고린도전서에서 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자가 아니요 육 있는 자요 그 다음에 신령한 자니라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담의 자손입니다
아담과 같이 살아가고 있고 그것이 인생의 철학입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인생을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셔서 사신 길을 보고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 길을 그 걸음을 시편에서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 길을 기뻐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인생들이 아담의 걸음을 보고 기뻐하시는 것으로 오히려 종교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믿음을 모릅니까?
이렇게 말씀을 해도 나의 의인이 믿음으로 살리라는 말씀이 이해가 안 됩니까? 물론 저도 아담의 자손이기 때문에 아담과 같이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걸음으로는 우리는 악인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그 걸음을 걸어 주심으로 해서 그 일을 보고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거듭난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기뻐하십니다.
우리 인생을 기뻐하시는 것으로 생각을 하기 마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히브리서에서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구원)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한다고 믿음으로 역사를 하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23,“저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우리는 인생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만 계속해서 넘어지면서 간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시고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심을 받는다 해도 그것을 도깨비 방망이 같이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고린도전서10:12-13절
“그런즉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믿음입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은 본성이 종교성을 가지고 있어서 믿을 수 없습니다. 그것을 경계로 하기 위해서 사도 바울이 그런즉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피할 길입니다
그것을 이제 고린도전서10장에서 사도 바울이 우리가 축복하는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예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함이 아니냐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예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의 떡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아야 설령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다가 아담의 길로 간다고 해도 다시 돌이키심을 받을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걸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신 그 길을 보고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기업을 얻는 성도가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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