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찌어다(계20:9.)

은혜와 진리의 말씀

1198, 네가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

윤주만목사 2025. 4. 2. 08:41

누가복음19:41-44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가라사대 너도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기웠도다 날이 이를찌라 네 원수들이 토성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권고 받는 날을 네가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

 

예루살렘입니다 

이 성에 대해서는 제가 굳이 말씀을 하지 않아도 다 알고 있습니다. 다윗 왕이 이스라엘의 성을 건축을 했습니다. 그리고 유다 지파에게는 이 성이 계속해서 성전이 건축이 되어 있는 그러니까 이스라엘의 중심의 도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유입니다 

성경은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이스라엘과 그리고 우리 인생들의 철학적 사상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이라는 도시 역시 그런 의미로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제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시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입니다 

그것은 보이는 육적인 이스라엘의 성이라는 것을 누구라도 다 알고 있고 지금 이 시대 역시 예루살렘에 이스라엘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 지역과 역사적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성경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창조를 하시고 우리 인생들에게 영생을 얻게 하신 일을 깨달아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스라엘에 오셨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시고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잡히시면서 십자가형을 받으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육적인 예루살렘을 얼마나 많이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알고 있고 그래서 인생들은 그곳을 성지라고까지 하고 있습니다

 

평화의 도시입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이라는 도시에 성전이 있다는 것을 누구라도 알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이 있는 성전에서 주님께서 많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 역시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19장입니다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시기 전에 주님께서는 므나의 비유를 말씀을 하고 있고 그 마지막으로 나의 왕 됨을 원치 아니하던 저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 하였다는 말씀을 하시고 나서 이제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시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왕입니다 

주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에서도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평강의 왕이시고 하나님이심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렇게 하나님이심을 하나님으로 믿는다고 하는 유대인들이 믿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유대교인들입니다 

그들은 이방의 종교인들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에게 나의 왕 됨을 원치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은 이방의 종교인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심을 믿지 않는다는 것을 예표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노래를 부릅니다

아무리 그들이 왕이라고 하면서 노래를 부르면 뭐 합니까? 그렇게 믿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므나의 비유를 통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실제 이방의 종교인들은 주님께서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교리를 따라 성자라고 부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창조하신 일의 영광에서 보니까 우리 인생들이 그렇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입니다 

주님께서 예루살렘으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성경에 예언이 되어 있는 것과 같이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이다. 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이 사건은 스가랴 선지자의 말씀을 응하게 하시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유대인들입니다 

주님을 하나님으로 믿었습니까? 비록 선지자의 예언을 응하게 하는 일은 했을지라도 그들은 하나님으로 믿지를 않았다는 것을 주님께서 잡히시고 난 후에 알 수 있습니다. 만약에 그들이 자기들이 믿는 하나님으로 믿었다면 빌라도의 법정에 세우지도 않았고 더구나 십자가를 지시는 일을 절대 용납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방의 종교인들입니다 

주님을 왕이라고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그런 행위가 얼마나 무의마한가를 알아야 합니다. 지금 유대인들이 주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실 때 그들이 분명히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라고 외쳤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응하게는 했지만 그들에게는 믿음이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인생입니다 

정의를 해 주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이 믿음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고 나의 왕 됨을 원치 아니하던 저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이 일이 창조하신 일의 영광에서 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주님께서 만왕의 왕이심을 믿지를 않는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왕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의 왕이 아니라는 것을 제가 굳이 말씀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주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왕이시라는 것을 쉽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방의 종교인들 역시 주님을 왕이라고 노래를 부르고는 있지만 실제 주님께서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이심을 믿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일반 백성입니다 

그들은 성경을 이루기 위해서 주님을 왕이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인들을 대표로 하고 있는 바리새인들은 주님께 무리 중 어떤 바리새인들이 말하되 선생이여 당신의 제자들을 책망하시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바리새인들은 이 시대 종교 안에서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대표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왕입니다 

만왕의 왕입니다. 제가 이 시대 주님을 만왕의 왕이시라고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과 같이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고 말을 한다면 아마도 제 말을 듣는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바리새인들과 같이 저를 책망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 책망합니까

그들은 삼위일체를 믿기 때문에 제가 주님을 평강의 왕이라고 하면 참지를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도 지금은 국가의 형태가 민주주의 국가고 표현의 자유가 있고 종교의 자유가 있기 때문에 이 정도로 끝이 나지 아마도 중세 시대였다면 저는 종교 재판을 받고 그들의 교리에 따라 화형을 당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성경을 봅니다

그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인생의 언어로 기록이 되어 있는 성경을 자기 합리화를 시키면서 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로 감동을 해서 기록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영생을 얻게 하고 있지만 이 성경을 인생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인생의 철학으로만 보고 있습니다

 

성경의 문자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이 시대 종교인들보다 성경의 문자를 몰랐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정말 성경에서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보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 그들이 자기 땅에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지만 그들은 성경에 예언이 되어 있는 그대로 악인이 되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악을 행하고 말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이 세상에 우리 인생의 육체를 입고 오신 유일하신 참 하나님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방의 종교인들은 성경에서 증거를 하는 영생에 대해서 모르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 이 세상에 오셨다는 말씀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입니다 

그분은 창조주이십니다. 그분이 창조된 세상에 피조물과 같은 형체를 입고 오시는 일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인생들은 헬라 사상이 지배를 하고 있던 시대에 창조된 세상에 나태내신 독생하신 하나님을 깨달을 수 없으니까 당시 인생의 철학에 따라 삼위일체라는 말도 안 되는 자기들의 신을 만들고 말았습니다

 

왕 됨을 원치 않습니다

하나님으로 믿고 싶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그들이 실제 주님의 말씀과 같이 왕 됨을 원치 않아서 삼위일체를 만들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1700년이 지난 이제까지 이방의 종교는 그 교리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고 아마도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인생들은 삼위일체라는 자기들이 만든 형상의 신을 믿는다고 할 것이 분명합니다

 

41,“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성경입니다 

인생의 언어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늘 말씀을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도 성경을 보는 사람들이 인생의 언어로 기록이 되어 있는 성경을 보면서 인생의 철학적 지식으로 그리고 인생의 감정을 가지고 성경을 보고 있고 그런 그들이 인간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고 그런 그들이 결국 종교가 되어 인생들을 자기들의 교리로 끌고 가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우리는 한 시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을 볼 때는 영생이라는 단어를 내 눈 앞에 띄어 놓고 본다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저는 정말 그 정도로 성경을 보고 있고 그렇지 않고는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을 수도 그리고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시고자 하는 뜻도 깨달을 수 없다고 믿고 있습니다

인생들입니다 

아니 종교인들입니다. 이 누가복음의 말씀을 보면서 거의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몇 번을 우셨는가를 성경에서 찾고 있고 그 감정을 이야기를 하는데 거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해도 틀리지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인생이기 이전에 우리가 믿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심을 잊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물론 우리 피조물의 형체를 입고 이 세상에 오신 것을 제가 조금이라도 부정을 하는 그리고 인생의 모든 것을 느끼는 그런 분이시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말씀을 하지만 성경은 영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루살렘입니다 

육적인 예루살렘을 통해서는 우리는 영의 일을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계속해서 말씀을 하지만 그분은 우리가 믿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 믿음이 있는 가운데서 1941절의 말씀을 보아야 한다고 저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창세기6:5-6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창조주입니다 

우리 인생들을 지으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노아 홍수 이전에 우리 인생에 대해서 창세기에서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을 보시고 

그리고 창조를 하시고 난 후에 우리 인생들을 보셨다는 것을 창세기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창조입니다 이미 다 이루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십니다. 이미 창세기에서 우리 인생들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어떻게 되는가를 모르시겠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성경입니다 

누가가 왜 이 말씀을 기록했는가를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울다는 말씀보다는 보신다는 말씀이 더 강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인생들은 성경을 어떻게 보는가 하면 보시다는 말씀보다는 울다라는 말씀을 보고 있고 그 말씀을 가지고 주님께서 우신 것만을 강조를 하면서 인생의 감정을 건드리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진리입니다 

그리고 인생의 감성입니다. 정말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인생의 감정이 들어가는 순간 그것은 샤머니즘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성경을 보면서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야지 인생의 감성을 가지고 보아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을 명심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종교인들은 주님께서 우신 것을 이야기를 하고 있고 마치 눈물을 흘리시면서 우시는 것과 인생들의 감성과 같이 주님께서 반응을 하신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창세기에서 보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또 보셨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창세기에서 보시고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창조하신 일입니다 

그 일을 이미 창세기를 통해서 이스라엘이 보고 있는 성경말씀이라는 것을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보셨을 때 이 세상은 죄악이 관영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입니다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노아의 홍수입니다. 비록 우리 인생들의 죄악이 관영해서 노아 홍수를 통해서 물로 심판을 하셨지만 이제 더 이상 물로는 심판을 하시지 않겠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인생들은 역시 죄악이 관영함을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중심의 도시 예루살렘을 보시니 역시 같다는 말씀입니다

 

창조를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창조주시라는 것을 우리 성도는 믿고 있습니다. 그분이 이 세상에 있는 예루살렘이 어떠하다는 것을 모르시겠습니까? 그것을 모르셨는데 이제 이 세상에 오셔서 보시니까 역시 마찬가지라서 그것을 보시고 우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이 일이 이스라엘만의 일입니까

우리 이방인들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창조주시고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이미 다 알고 계시는 분입니다. 그분이 보셨다는 말씀은 솔직히 알기 위해서 보셨다기 보다는 창조하신 일의 영광에 있어서 확인을 하시는 것과 같이 보셨다는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다 알고 계시는데 보셨다는 말씀이 맞습니다

 

다 아시는 일입니다 

그런데 우십니까? 인생의 언어로 그렇게 기록이 되어 있고 또 번역을 그렇게 했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사실 번역이 더 그렇게 되었다고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원어의 뜻을 보면 양심의 가책이나 슬픔을 표현하지 않고, 밖으로 드러나 볼 수 있는 육체적 혹은 정신적인 고통을 표현한다는 뜻이 더 강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피조물입니다 

그리고 창조주 하나님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피조물은 창조주의 뜻을 알 수 없다는 의미에서 역시 피조물이라는 것을 표현하는 말씀이라고 보는 것이 저 맞는다고 저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창세기에서 보신 것과 같이 이 세상에 오셔서 직접 확인을 하시고 피조물들의 한계를 보시고 안타까워했다는 말씀이 더 맞는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입니다 

교회를 비유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 인생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창세기에서 말씀을 하는 것과 같이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셨고 이제 이 세상에 오셔서 그것을 다시 보시는 하나님의 뜻을 표현하는 단어라고 하는 것이 맞습니다

 

교회입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 있는 하나님을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교회들입니다. 그 교회를 이미 창세기에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보시니까 창세기의 말씀과 같이 그것 뿐 아니라 이방인들의 교회 역시 같다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인생의 표현으로는 안타까워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유대교입니다 

그들은 우리 이방인들의 종교를 대표로 하는 교회라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그들을 주님께서 보시고 있고 그것은 그들만 보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역시 같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말씀을 보고 마치 예루살렘의 성전만 로마에 의해서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무너지는 것으로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루살렘만 보셨습니까

절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방의 종교를 같이 보셨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마치 인생들이 눈물을 흘리시는 것과 같이 그런 마음으로 보셨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의 의미를 모르니까 이방인들은 마치 이 일이 이스라엘만의 일로 생각을 하고 있고 자기들이 종교인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는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42,“가라사대 너도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기웠도다

 

예루살렘입니다 

그 교회는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교회를 대표로 하는 교회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예루살렘이라는 교회 하나의 문제로 생각을 하는 사람은 창조하신 일의 영광도 모르고 하나님이 창조주시라는 것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성경입니다 

대표성을 가지고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말씀이 유대교인들에게 하는 말씀이라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이 성경을 보지도 않고 있습니다. 이 성경은 이방인들만 보고 있고 그렇다면 지금 주님께서는 누구에게 이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쉽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사야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평화입니다 

이 세상에서 누리는 평화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이런 단어를 보고 인생들은 전쟁이 없는 그리고 자연 재해가 없는 그런 평화를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아니라 성경은 영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영생을 얻는 일에 있어서 평화에 관한 일을 모르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그들은 자기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입니다 

주님이 오시는 일을 예언으로 말씀을 하고 있고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다고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평화입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시고자 하는 일입니다. 그 일을 이제 이사야 선지자가 계속해서 가라사대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히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의로운 종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구속의 일을 이루시고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신 우리 성도들이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심을 받아 혈통으로나 육정으로 난 자가 아니라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 된다는 말씀이고 그 일이 주님과 아버지가 창세전에 가졌던 영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평화가 아닙니다

이 평화는 하나님 나라를 비유적으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38절에서 가로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라고 외치고 있고 어디에서의 평화인가 하면 하늘에는 평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사람이 없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종교 안에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그들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을 모르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는 하지만 평화에 관한 일을 모른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우리 이방인들에게 하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창세기18:17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아브라함입니다 

그가 믿음의 조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인생으로서 지혜가 있어서 믿음의 조상이 된 것이 아니라 그 역시도 인생이기 때문에 종교가 되어 있는 갈데아 우르에 있었고 그런 그를 하나님께서 이끌어 내시고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아브라함에게 숨기지 않았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네 눈에

우리 인생들의 눈이 이렇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나면서부터 소경인 사람의 눈을 뜨게 하시고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을 요한복음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이 주님께서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믿지를 않자 그들에게 너희가 소경되었더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입니다 

우리 인생들에게 숨기웠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지혜로는 그가 아무리 위대한 신학자라고 해도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일을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보시고 인생의 언어로 안타까움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평화입니다 

다시 말씀을 하지만 이 세상의 평화를 말씀을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물론 실제 보이는 예루살렘이 로마에 의해서 멸망을 당하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그것은 이 세상에 보이는 교회들이 멸망을 당한다는 것을 예표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고 결국에는 그 보이는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가 없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역사를 하는 우리 성도들에게만 평화에 관한 일을 그러니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을 숨기지 않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앞에서 므나의 비유를 말씀을 하고 있고 우리 성도는 이 므나의 비유가 행함이 있는 믿음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의 형제 야고보 역시 행함이 있는 믿음을 말씀을 할 때 아브라함과 라합을 예표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입니다 

그들은 주님께서 만왕의 왕이 되시는 일을 원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나라의 왕이 되시는 일을 원치 아니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성도는 하나님 나라를 어떻게 들어가는가를 알고 있고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지만 종교인들에게는 이 평화에 관한 일이 숨기었다는 말씀입니다

 

43,“날이 이를찌라 네 원수들이 토성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원수입니다 

육적인 예루살렘의 원수는 로마라는 것을 제가 부정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로마가 결국에는 종교가 되었다는 것을 우리가 역사를 통해서 알고 있고 313년에 로마의 콘스탄틴 대제에 의해서 이방인들이 종교가 되었다는 것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감기었습니다

그래서 자기 원수가 누군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이 시대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원수가 누군지를 모르고 그 원수에 의해서 온갖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예루살렘이 로마에 의해서 멸망을 당하는 것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인생들은 그저 그 문장의 말씀만 인생의 철학으로만 보고 있습니다

 

에베소서2:15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이스라엘의 육의 일입니다 

그것을 아는 것으로 성경을 안다고 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주님께서는 육적인 평화를 비유로 해서 영적인 평화를 말씀을 하고 있고 예루살렘이라는 교회를 대표로 해서 이방인들의 교회에 그들의 눈에 감기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로마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영의 일을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방인들의 눈에 이 일이 감기어서 그들의 종교 안에서 온갖 율법의 행위를 하면서도 그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의문입니다 

문자로 기록이 되어 있는 법조항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인생들의 언어로 인생들의 철학으로 아는 율법을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이 의문이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주님께서 폐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인생들이 믿지를 않고 그 율법의 행위에 빠져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의 말씀을 앞에서 말씀을 했습니다. 그 십자가에서 원수된 것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우리 이방인들의 눈에는 그것이 숨기어서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모르니까 이 세상의 종교와 같이 온갖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고 그런 그들이 마치 로마가 토성을 쌓는 것과 같이 영적으로 그렇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44,“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권고받는 날을 네가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

 

예루살렘입니다 

저 역시 그들이 로마에 의해서 멸망을 당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지금 그 일을 비유로 해서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말씀을 보고 그저 로마에 대한 일만 이야기를 한다면 그는 이 세상 초등학문을 이야기를 하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평화에 관한 일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들을찌어다 너의 파숫군들의 소리로다 그들이 소리를 높여 일제히 노래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시온으로 돌아오실 때에 그들의 눈이 마주 봄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오셨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말씀은 우리 이방인들이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은 이 세상에 있는 보이는 모든 교회를 대표로 하고 있고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마치 예루살렘이 로마에 의해서 완전히 멸망을 당하는 것과 같이 이 세상에 있는 보이는 모든 교회가 그렇게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영생을 얻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사람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을 보고는 있지만 그들의 눈에는 숨기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평화입니다 

하늘에는 평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평화에 관한 일을 우리는 성경에서 증거를 받아 믿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신 독생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십자가를 지시고 장사 지낸 뒤 삼일 만에 영으로 부활하시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신 일을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그 길을 따라 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