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찌어다(계20:9.)

로마서 강해(오직 믿음)

104-1, 내가 말하노니

윤주만목사 2025. 3. 12. 08:12

로마서10:19절을 보겠습니다. (253)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이스라엘이 알지 못하였느뇨 먼저 모세가 이르되 내가 백성 아닌 자로써 너희를 시기나게 하며 미련한 백성으로써 너희를 노엽게 하리라 하였고

복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보내 주셔서 이 땅에 복음을 전파하게 하시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게 먼저 온 땅에 복음을 전파하셨지만 이스라엘은 듣지를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안 보내신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듣지를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이 구원을 받기를 원하시고 있습니다.

한 영혼이 천하보다 더 귀하다는 말씀으로 구원에 대해서 말씀을 해 주시고 있습니다. 한 영혼이 천하보다 더 귀한데 하나님께서 왜 온 땅에 복음을 전파하시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육의 사람이 되어 있는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영이시라는 것조차 모르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습니다.

육의 일입니다

그리고 영의 일입니다. 성경을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말씀이 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는 사람이 육의 말씀으로 보면 거의 모든 성경은 육의 말씀으로 보여 지게 되어 있고 영의 말씀으로 보면 또 그 성경이 영의 일에 대한 말씀으로 보이고 있습니다. 노아의 홍수 때와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은 모두가 육체가 되었습니다.

육의 말씀으로 성경을 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부지런하게 선지자들을 보내 주셨지만 그 말씀을 듣고도 도리어 육의 말씀으로 만들었습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온 땅에 복음을 전파를 하셨지만 이스라엘은 복음을 듣고도 무슨 말씀인가를 깨닫지를 못했습니다.

출애굽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종살이 하는 애굽에서 인도하셨습니다. 그리고 광야라는 교회에서 이스라엘에게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복음을 들은 것이 아니라 육의 말씀으로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서 하늘에 있는 모형과 그림자로 보여 주셨지만 이스라엘은 그것을 사람의 이성으로 보고 있었습니다.

저희가 다 들었습니다.

그러나 광야에서 가나안에 들어간 사람이 몇이나 되었습니까?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다 들었지만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그들에게는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역시 성경을 통해서 다 듣고 있지만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오랜만에 기독교 방송을 아주 잠깐 보았습니다.

유명한 목사입니다.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기 전에 아브라함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처음에는 의인 50명이 있어도 이 성을 멸하시겠느냐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멸하시지 않겠다고 하자 10명까지 이야기를 하고 이제 물러가는 내용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입니다.

마치 세상을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말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시대 교회를 예표로 보여주시고 있습니다. 그 소돔과 고모라에 의인 열 명이 없어서 멸망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또 예레미야 시대에 바벨론에 멸망을 당할 때 공의를 구하고 진리를 찾는 자가 한 사람이 있으면 멸망시키지 않겠다는 말씀까지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교회입니다.

그렇게 복음을 듣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그것이 이 시대 자기들의 교회라는 것은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렇게 설교를 하는 그 목사가 소돔과 고모라와 그리고 바벨론에 멸망당하는 남 유다의 이야기를 하면서도 그것이 자기들의 예표라는 것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문자 그대로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복음을 전혀 듣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무엇을 예표하고 또 왜 멸망을 당할 수밖에 없었는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마치 이 시대 세상이 성적으로 타락을 하고 동성연애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하나님께서 멸망을 시켜야 하는데 그래도 자기들이 하나님을 잘 믿어서 이 나라가 멸망을 당하지 않는 것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멸망입니다.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갈 때 예루살렘에는 공의를 구하고 진리를 찾는 자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 말씀을 성경에서 보고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이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하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은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전하고 있지만 그 안에서 복음을 전혀 듣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공의를 구하고 있습니까?

그들이 진리를 찾고 있습니까? 그들이 소돔과 고모라와 같이 여자가 순리로 쓸 것을 버리고 역리로 쓰고 있고 남자와 남자로 더불어서 부끄러운 짓을 하고 있으면서도 성경을 도무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를 남의 일처럼 이야기를 하고 있고 자기들은 하나님을 아주 잘 믿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이 안 전해지고 있습니까?

이 시대 우리에게 성경을 주셨습니다. 그 성경 안에는 복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목사들이 복음을 전혀 못보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여자가 되어서 순리로 써야 하는 것을 역리로 쓰면서 율법을 지키면서 살아가고 있는 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음란에 빠져 있으면서도 성경에서 복음을 못 보니까 사망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문자를 아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것을 안다고 해서 복음을 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초대 교회를 지나오면서 기독교가 되어 버린 종교는 더 이상 복음을 전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성경이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시대입니다

성경도 자기들이 보고 싶은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목사들은 교인들이 복음을 듣는 것을 방해를 하고 있습니다. 어느 대형교회는 전혀 다른 성경을 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는 복음이 전해지지도 않고 있고 교인들은 목사들이 하는 말이 마치 하나님의 말씀과 같이 생각이 되어서 맹목적으로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보다 더 안 좋습니다.

그래도 그때는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보내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심으로 말미암아 자기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조차 모르고 모든 사람이 거대한 종교에 의해서 끌려가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이 모두가 구원을 받기를 원하시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모두가 종교에 빠져 있습니다. 성경은 이스라엘을 예표로 해서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경계를 하는 말씀이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이스라엘은 그렇게 했어도 자기들은 하나님을 아주 잘 믿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안 봅니다

성경을 보면 뭐 합니까? 이미 세상 지식으로 가득 차 있는 상태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 목사들은 성경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의 장식에 불과하고 자기들의 종교를 위해서 필요한 것에 불과하고 세상의 이성을 따라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내가 다시 묻습니다. 이스라엘이 알지 못하였습니까? 이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먼저 모세를 통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내 백성이 아닌 사람들로 너희의 질투심을 일으키고, 미련한 백성들로 너희의 분노를 자아내겠다."”

다시 묻습니다.

로마에 있는 교회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어떻게 했는가를 경계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예표로 해서 너희도 똑같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경계로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성경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마치 이스라엘에게만 하고 있는 말씀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이스라엘은 우리의 예표입니다.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났던 일들이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서 똑같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성경을 보고 깨달아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일로만 치부를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 이스라엘이 말을 했던 것과 같이 똑같은 말을 이 시대도 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23:29절을 보겠습니다. (40)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쌓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며 가로되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면 우리는 저희가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데 참여하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니

이스라엘이 알지 못했습니까?

이스라엘도 성경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선지자들이 전하는 말씀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지금 이 시대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드리지만 성경은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조상입니다

그들의 조상들이 선지자들을 죽였습니다. 당시에는 선지자들을 백성들이 죽였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난 후에 그가 선지자라는 것을 아니까 백성이 그 무덤을 쌓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으면 자기 조상들이 선지자들의 피를 흘리는데 참여하지 않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어떻게 했습니까?

선지자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가장 악한 일을 하고 말았습니다. 자기 조상들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를 죽였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은 그 조상들과 다르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 자기 조상들이 죽인 선지자들의 무덤을 쌓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고 있으면서 자기들은 그런 일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어떻게 했습니까?

자기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을 보고 이 말씀을 다 알고 있습니다. 아니 성경에 있는 거의 모든 말씀을 문자적으로 다 알고 있습니다.

모릅니까?

마태복음의 이 말씀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선지자들의 무덤을 쌓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민 이스라엘이 자기들은 조상들과 같이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는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 시대 역시 똑같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는 일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 역시 자기들은 이스라엘과 같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이스라엘이 했던 모든 악한 일을 교회 안에서 다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상 숭배하지 말라는 말씀을 안 들었습니까?

성경에서 이스라엘이 어떻게 우상을 숭배했는가를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까? 성경을 한두 번이라도 읽은 사람은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자마자 바알과 아세라를 섬김으로 해서 하나님께서 이방을 들어 이스라엘을 치게 하셨습니다. 그때만 그런 것이 아니라 선지자들을 보내실 때마다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똑같은 이야기를 할 것이 분명합니다.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이스라엘과 같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비록 이스라엘은 우상을 섬겼어도 우리는 절대로 우상을 섬기지 않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아마 교회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이 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실상은 어떻습니까?

이스라엘은 우상을 섬겼어도 우리는 우상을 섬기지 않는다고 하는 그들이 어떻습니까? 아마도 그럴 것입니다. 우리가 애굽에서 가나안으로 인도함을 받은 백성이라면 우리는 절대로 우상을 숭배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아주 자신 있게 말을 할 사람들입니다.

그런 그들이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교회 안에 수많은 우상들을 세우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지금 그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알지 못했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알지 못했습니까? 알지 못했다면 자기 조상들이 선지자들을 죽인 그 선지자들의 무덤을 쌓지 않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지 않았을 것이 분명합니다.

왜 그렇게 합니까?

자기 조상들이 잘못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으니까 자기 조상들이 죽인 선지자들의 무덤을 쌓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면서 우리가 그때 있었으면 우리는 선지자들을 죽이는 일에 참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이스라엘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이 시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모셔 내리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늘 그 당시에 사람들은 자기들은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선지자들을 죽였고 그런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고 그런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모셔 내리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알지 못했습니까?

그들의 조상들이 선지자들을 죽이고 의인들을 죽인 것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의 조상들이 선지자들을 죽이고 또 자기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고 있습니다.

성경에 다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다만 사람들이 성경을 안 보고 있습니다. 아니 성경을 보면서도 지혜를 구할 생각도 하지 않고 자기들의 이성으로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로마서9장과 10장의 말씀은 사람들이 성경을 안 보고 있는 것에 대해서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이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통해서 깨닫게 하시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복음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마치 이스라엘이 선지자들의 무덤을 쌓는 것과 비석을 세우는 것과 같은 일을 하면서 자기들이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알지 못했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아닙니다. 이미 성경에 다 기록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성경을 보고도 자기 조상들은 그렇게 했어도 자기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더 악한 일을 했습니다. 역시 이 시대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신명기32:21절을 보겠습니다. (314)

그들이 하나님이 아닌 자로 나의 질투를 일으키며 그들의 허무한 것으로 나의 진노를 격발하였으니 나도 백성이 되지 아니한 자로 그들의 시기가 나게 하며 우준한 민족으로 그들의 분노를 격발하리로다

모세의 예언입니다

이제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그런 이스라엘에게 앞으로 있을 일들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미리 아시고 계십니다. 이스라엘이 어떻게 하나님을 경홀히 여길지를 아시고 모세로 하여금 이 말씀을 하게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이 복음에 순종치 아니할 것을 들었습니다. 모세를 통해서 신명기에서 말씀하신 것을 다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 말씀 그대로 하나님 아닌 자로 하나님을 질투하시게 했습니다. 그리고 허무한 것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격발하게 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무엇으로 하나님을 질투하게 하셨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 바알과 아세라를 섬김으로 해서 하나님을 질투하시게 했습니다. 그것을 이 시대 교인들이 성경을 보고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가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바알과 아세라가 그대로 교회 안에 들어와 있고 자기들이 만든 삼위일체의 신을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닌 자입니다

이 시대는 거의 모든 교회가 성령을 성령님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 하나님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것이 아무리 하나님께서 보내신 영이라 해도 하나님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마치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송아지를 각을 떠서 만든 것과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하지만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허무한 것으로 진노를 하게하고 있습니다.

허무한 것이 무엇입니까? 잠언에서 악인의 삯이 허무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복음을 들었지만 이렇게 허무한 것으로 하나님을 진노하시게 만들었습니다. 그 허무한 것이 악인의 삯인데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이스라엘이 지킨 율법의 의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 허무합니다.

사람이 지키는 율법이 얼마나 허무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마치 바람에 날리는 티끌과 같습니다. 잠시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와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허무한 것으로 하나님을 진노하시게 이스라엘이 했습니다.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율법을 지키지 않는 교회가 있습니까? 악인은 율법을 지키는 자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율법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기 때문에 허무한 삯이 되어서 사라지고 만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모세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스라엘은 모두가 악인이 되어서 허무한 삯을 위해서 일을 했습니다.

성경입니다

이 시대는 왜 성경을 보는지를 전혀 모르겠습니다. 그저 문자를 아는 것으로 마치 자기들이 복음을 듣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그들이 어떻게 할 것인가를 말씀을 하고 있지만 주님이 오셨을 때 이스라엘과 같이 자기 조상들은 그렇게 했어도 자기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똑같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진노를 받습니다.

그들이 성경을 안 보아서 진노를 받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성경을 보고 진노를 받을 일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 역시 성경을 잘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같이 진노를 받을 일을 하면서 율법을 지키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진노를 쌓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시작하면서 진노를 쌓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스라엘이 자기 조상들이 그렇게 했다고 하는 것과 같이 이 시대 역시 이스라엘은 그렇게 했어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알지 못 했습니까?

이 시대 교인들이 알지 못 했습니까? 다 알고 있습니다. 아니 성경에 다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기록이 되어도 그것이 남의 일로만 치부가 되고 있고 자기들의 일로는 생각이 안 되고 있습니다. 자기들의 일이 아니니까 그런 일을 하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진노를 격발하게 했습니다. 그런 이스라엘에게 내가 백성 아닌 자로써 너희를 시기 나게 하며 미련한 백성으로 너희를 노엽게 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 그대로 백성 아닌 자로 시기를 하게 하셨습니다.

사도행전13:45절을 보겠습니다. (211)

유대인들이 그 무리를 보고 시기가 가득하여 바울의 말한 것을 변박하고 비방하거늘

이방인들이 하나님을 믿습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자 이방인들이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모세의 율법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너희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고 하니까 이 말씀을 듣고 이방인들이 많이 믿었습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이 시기가 나서 비방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십니다.

이스라엘이 율법주의에 빠질 것을 미리 아셨습니다. 그리고 모세를 통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말씀 그대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진노를 격발하게 했습니다. 자기들이 지키는 율법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함으로 진노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율법 외에 한 의를 나타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방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모세의 율법으로도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는 우리에게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게 하셨습니다. 이방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자 유대인들이 시기가 나서 사도 바울의 말을 비방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그들이 시기했습니까?

유대인들이 지키는 율법이 의로운 것이 아니라 허무한 것이라고 말씀을 하니까 시기하고 비방을 했습니다. 사실 사람의 이성에는 누가 말하는 것이 허무하게 들려집니까? 사람의 이성에는 사도 바울이 말씀하는 것이 허무하게 들려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의 일에 있어서는 유대인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이 허무한 삯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미리 말씀을 하셨습니다.

듣지 못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 역시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이스라엘과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미리 약속하신 것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성경을 보면서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만 그렇습니까?

이 시대도 율법을 지키는 사람은 반드시 시기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만 그렇게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이스라엘은 우리 이방인들을 위한 예표입니다. 그들이 율법을 지킴으로 해서 하나님의 진노를 격발하게 해서 하나님께서 백성 아닌 자로써 이스라엘을 시기 나게 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이 시대도 자기들이 영적인 이스라엘이라고 하면서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에서 율법의 행위 아래 있는 자는 진노를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백성 아닌 자로 시기 나게 하신 것과 같이 이 시대 역시도 그들이 볼 때 성도가 아닌 것과 같은 사람들로 시기 나게 하시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킵니까?

그 사람들은 절대로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믿음의 비밀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그리스도편지에서 전하는 말씀이 많이 알려지지가 않아서 그렇지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어 구원을 받았다고 하면 율법주의자는 시기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반드시 성령을 받은 성도만이 확신할 수 있습니다. 종교에서 말하는 그런 영생이 아닙니다. 그들이 볼 때는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것과 같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영생을 받았다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시기가 나게 되어 있습니다.

주일을 지킵니다.

십일조를 내고 있습니다. 일주일 내내 교회에서 살다시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율법을 하나도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도 당당하게 확신을 가지고 전파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모든 것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에게 없는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있는 성도들을 시기하게 되어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다. 누가 시기를 하게 되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미 이스라엘이 출애굽을 해서 가나안에 들어갈 때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에게 말씀을 하셨지만 그들은 그 말씀 그대로 시기를 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1:27절을 보겠습니다. (264)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사도행전26:11절을 보겠습니다. (233)

또 모든 회당에서 여러 번 형벌하여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하게 하고 저희를 대하여 심히 격분하여 외국 성까지도 가서 핍박하였고

미련한 백성입니다

우리 성도를 세상에 미련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우리는 세상 사람이 볼 때 미련한 자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너무도 미련합니다. 우리의 마음에 있다고 하는 그 믿음이라는 것은 실체가 없는 것과 같이 보입니다.

믿음입니다.

누가 그것을 지혜 있다고 하겠습니까? 세상의 이성으로는 도무지 깨달을 수 없는 것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있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을 도무지 깨달을 수 없어서 지혜가 있다고 하는 이스라엘이 율법주의에 빠졌고 이방의 교회도 역시 율법주의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들이 볼 때는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있는 믿음은 정말 미련하게 보입니다.

믿음입니다.

율법을 지키지 않고 의롭다 하심을 얻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 때문에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전에는 격분을 했습니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부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십자가에 못 박아서 죽였는데 갑자기 그 제자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나타나서 이 믿음에 대해서 전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격분했습니다.

왜 그가 격분했는가 하면 율법을 지키지 않고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가 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율법을 전혀 지키지 않고 율법을 다 지켰다고 하니까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자기가 이제까지 지키고 있는 그 율법을 무시하고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다고 하니까 격분을 했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이 볼 때 이방은 아주 미련한 백성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자 유대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분이 날 일이었습니다. 물론 사도 바울은 바리새인이었을 때 이렇게 했지만 유대인들은 지금도 이방인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 노여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입니다

참으로 자기 멋대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마치 유대인들이 자기들의 형제나 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이스라엘로 성지순례를 가고 또 성경이 이스라엘을 예표로 기록하다 보니까 그들을 통해서 복음이 전파가 되었다고 해서 그들이 마치 형제나 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유대인들이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을 좋게 생각합니까? 기독교인들이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마치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을 형제와 같이 대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시대를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유대인들입니다.

그들은 유대교를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팔레스타인입니다. 그들의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를 믿고 있습니다. 유대교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혀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유대인들이 지금 팔레스타인을 형제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절대 아닙니다.

그들에게 팔레스타인은 이방인으로 밖에 취급이 안 됩니다. 지금 이 시대도 수많은 분쟁이 있지만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어떻게 취급을 하고 있습니까? 이방의 개로 취급을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의 생각이 이렇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유대인이 마치 형제나 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착각입니다

성경말씀 그대로입니다. 미련한 백성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니까 더 미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들만이 하나님의 선민인데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자기들의 조상이 십자가에서 죽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노엽기만 한 것입니다.

성경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

이방인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복음이라고 하면서 믿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을 이스라엘이 형제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성경 말씀 그대로 이스라엘을 노엽게 해서 그들이 지금 이 시대 기독교인들이 많이 살아가고 있는 팔레스타인을 무차별하게 공격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형제입니까?

성경 어디에 이스라엘을 형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성경은 도리어 그들을 사단의 회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사단의 회라고 하는 그들을 형제라고 생각하고 있는 이 시대 기독교인들 역시 사단의 회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알았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에서 미리 모세를 통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복음에 순종치 않을 것을 아시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에게만 해당이 되는 말씀이 아니라 이 시대 역시 정통이라고 하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적용이 되는 말씀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로마서10:20절을 보겠습니다. (254)

또한 이사야가 매우 담대하여 이르되 내가 구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찾은바 되고 내게 문의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나타났노라 하였고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또한 이사야는 매우 담대하게 이렇게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나를 찾지 않는 사람들을 내가 만나 주고, 나를 구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내가 나타났다."”

복음입니다

이스라엘은 복음에 순종치 아니하였습니다. 이스라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통해서 우리에게 역시 똑같은 경계의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서 그의 아들에 관하여 미리 약속하신 것을 전혀 못 보고 있습니다.

듣지를 않습니다.

이사야가 담대하게 전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얼마나 듣지를 않으면 이사야가 담대하게 전하겠습니까? 우리가 성경을 보아서 잘 알겠지만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보내시면 이스라엘은 거의 듣지를 않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선지자의 말씀을 들은 사람이 지극히 적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세상에 복음이 전해집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복음을 들으려 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왜 들으려 하지 않고 있는가 하면 사람의 이성으로는 복음이 깨달아지지가 않습니다. 그들이 듣지 않고 싶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도무지 깨달을 수 없으니까 듣지를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입니다

이 시대 역시 하나님의 의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이 하나님의 의를 알고 믿어야 합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복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들이 지키는 율법의 행위가 의롭게 보이기 때문에 불의로 진리를 막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믿어야 합니다.

복음을 듣고 믿어야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선지자들이 담대하게 복음을 전해도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이미 이스라엘이 율법주의에 빠질 것을 말씀을 하시고 하나님을 믿는 이방사람으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시기 나게 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성경을 보고도 도무지 무슨 말씀인가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사람입니다

그가 아무리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실상은 다 이렇게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복음을 보고 그것을 믿어야 하는데 사람의 지혜로는 성경을 아무리 많이 보아도 복음이 안 보이고 있습니다. 복음이 안 보이니까 계속해서 행위로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입니다

이 시대 역시 담대할 수밖에 없습니다. 배짱이 두둑하고 용감하다는 사전적인 뜻이 있습니다.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복음은 자기 생명을 내 걸고 전해야 하기 때문에 담대하지 않으면 복음을 전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담대하지 않고는 복음을 전할 수 없습니다.

타협입니다

사람들은 타협하기를 좋아하고 있습니다. 물론 세상의 이성으로는 타협을 하는 것이 참 좋습니다. 전쟁이 나도 빨리 화해를 해서 타협을 하는 것이 상대에게 서로 이익이기 때문에 타협을 하고 있습니다. 그 전쟁에서 담대하게 싸울 수 있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예전에는 그것이 가능하지만 이제는 사실 전쟁의 수가 빤히 보이기 때문에 더 쉽게 타협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입니다

타협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 타협을 해서는 안 되는가 하면 그것이 우리의 생명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것 하나쯤 하는 그것이 나를 사망으로 끌고 가고 있습니다. 사단은 지금도 사람들이 성경을 보면서 타협을 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왜 율법을 지킵니까?

그것이 타협점이기 때문에 지키고 있습니다. 사실 성경에는 율법을 지키라는 말씀도 있고 율법이 폐하여졌다는 말씀도 있습니다. 문자적으로 보면 분명히 그렇습니다. 성경이 그렇게 기록이 되어 있다 보니까 사람들은 더 쉽게 타협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율법이 폐하여졌다고 할 수 있습니까?

누가 율법을 하나도 안 지킬 수 있습니까? 이 시대 말로는 율법이 폐하여 졌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그들의 행위를 보면 다 율법을 지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성경에서 복음을 못 보고 있기 때문에 율법과 타협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알아야 담대할 수 있는데 복음을 모르니까 타협을 하고 있습니다.

담대하시기 바랍니다.

적은 누룩이 온 덩이를 퍼지게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또 할례를 받은 그 사람에게 모든 율법을 지킬 의무가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하나를 지키면 모든 율법을 지켜야 하고 그 율법으로 의롭다 함을 받아야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도는 담대합니다.

왜 담대할 수밖에 없는가 하면 율법을 한 가지라도 지키는 순간 우리는 사망에 이른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 생명이 걸린 문제에서 어떻게 담대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복음을 알면 담대할 수 있지만 복음을 모르면 담대하지를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next 10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