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찌어다(계20:9.)

로마서 강해(오직 믿음)

102-2, 네 서원을 갚을지어다

윤주만목사 2025. 3. 5. 08:17

나훔1:15절을 보겠습니다. (구 1299쪽)

“볼지어다 아름다운 소식을 보하고 화평을 전하는 자의 발이 산 위에 있도다 유다야 네 절기를 지키고 네 서원을 갚을지어다 악인이 진멸되었으니 그가 다시는 네 가운데로 통행하지 아니하리로다”

마태복음7:19절을 보겠습니다. (신 10쪽)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영의 일입니다

성경은 우리의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거의 사람의 이성에 따라 문자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무엇이 아름다운 줄도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의 모든 말씀이 우리 영의 일인데 이 시대 교회는 육체로 아름다운 것을 보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소식입니다.

우리가 하는 행위가 아름답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구속의 일을 보고 아름답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일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화평을 전하는 자의 발이 산 위에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시대도 우리에게 복음을 주시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복음에 대해서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을 위해서 시대마다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세우시고 있지만 그들을 통해서 복음을 전파하게 하시고 있지만 사람들의 이성에는 이 복음이 도무지 이해가 안 되고 있습니다.

육의 사람입니다

영의 일을 깨닫는 것 자체가 모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 주시고 있습니다. 성령이 아니고는 이 영의 일을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게 성경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는 종교에 빠져 다수를 따라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적습니다.

아주 적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얼마나 적으면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의 발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그만큼 보내심을 받은 자가 적습니다. 보내심을 받은 자가 누구라는 것을 성경에서 가르쳐 주고 있지만 역시 성경을 안 보고 있습니다.

답입니다.

성경에서 찾으시기 바랍니다. 다른 곳에서 답을 찾으려고 하지 마시고 성경에 답이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답을 찾으려고 하지 않고 자기들 마음대로 상상을 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치 자기들의 종교행위가 좋은 소식을 전하는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발로 생각을 하고 그 일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교인 하나입니까?

교회 안에 교인하나를 끌고 들어오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좋은 소식이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미 종교가 되어 있는 그 교회 안에는 사람들의 이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히 좋은 것이 있어서 사람들이 교회 안으로 잘 들어가고 있습니다.

전하는 자의 발입니다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전파하는 자가 많다는 것이 아니라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아주 적다는 의미의 말씀입니다. 아주 적다는 의미의 말씀이지만 이 시대는 자기들의 종교를 전하면서 마치 복음을 전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로마서10:16절을 보겠습니다. (신 253쪽)

“그러나 저희가 다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였도다 이사야가 가로되 주여 우리의 전하는 바를 누가 믿었나이까 하였으니”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다 복음에 순종한 것은 아닙니다. 이사야는 "주님, 우리가 전하는 소식을 누가 믿었습니까?" 하고 말하였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의 발이 아름답습니다.

성경을 보더라도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얼마나 적은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선지자들을 보아도 그들이 보내심을 받았을 때 누가 그들의 말을 따랐습니까? 이스라엘은 언제나 선지자들의 말을 듣기 보다는 대적을 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 시대입니다

그리고 호세아 시대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었지만 이스라엘에 진리를 찾는 자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때만 그렇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도 전파하는 자가 그와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목사들이 참 많이 있다 보니까 전파하는 자가 많은 것으로 생각을 하는데 절대 그렇지가 않습니다.

성경을 안 봅니까?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감동을 받아서 전파할 때 이스라엘이 어떻게 했습니까? 좋은 소식을 전파하는 자의 발이 많았습니까? 이스라엘은 모두가 대적을 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 교인들은 자기들만은 다르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의 어느 시대도 똑같았습니다. 자기들만은 다르다고 하면서 선지자들을 대적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보내심을 받은 자도 적었고 그 보내심을 받은 자의 말씀을 듣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는 것을 이스라엘을 예표로 해서 가르쳐 주고 있지만 자기들은 다르다고 하면서 좋은 소식을 듣고 있다고 하면서 이스라엘과 같이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현재 진행형입니다

이스라엘이 그렇게 했으면 이제도 그렇습니다. 이스라엘에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의 발이 없었으면 이제도 그렇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보내심을 받지 않은 자들이 종교가 되어서 열심을 냄으로 해서 모두가 사망의 길로 끌려 들어가고 있습니다. 똑같은 일이 반복이 되고 있지만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전파하는 자도 없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다 복음에 순종치 아니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 번역에 대해서 또 다시 말씀을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한글개역성경은 그러나 저희가 다 복음에 순종치 아니하였다고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모든 성경은 그러나 모든 사람이 복음에 순종한 것은 아니라고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한글개역성경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의 발이 복됩니다. 그러나 이 복음을 전하는 자가 지극히 적은데 저희가 다 복음에 순종치 아니하였다고 번역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성경은 그러나 모든 사람이 복음에 순종한 것은 아니라고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사람이 복음에 순종치 아니하였지만 순종한 사람이 있다는 번역입니다.

그러나 한글개역성경입니다

저희가 다 복음에 순종치 아니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에 순종한 사람이 없다는 번역입니다. 어느 번역이 맞는다고 생각합니까? 우리가 선지서들을 보아도 한글개역성경이 맞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선지자들이 전하는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저희가 다 복음에 순종치 아니한 것이 맞습니다.

저희가 다 복음에 순종치 아니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전체가 복음에 순종치 아니하였습니다. 그러면 이 시대 역시 그대로 진행이 되고 있다면 복음에 순종치 아니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로마서를 누가 보고 있습니까? 왜 사도 바울이 이사야의 말씀을 인용을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이스라엘은 순종치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너희는 순종하라는 뜻입니까? 물론 그런 뜻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방의 교회 역시도 순종치 않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시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역시 복음에 순종치 않는다는 것을 이사야의 말씀을 인용을 해서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복음에 순종하고 있습니까?

이 시대 어느 교회가 복음에 순종을 하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 교회는 아직까지 제가 못 보았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죄송하지만 이렇게 말씀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에서 저희가 다 복음에 순종치 아니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만 그렇습니까?

이방의 교회도 복음에 순종치 않는다는 것을 사도 바울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다 복음에 순종하고 있고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아주 잘 믿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앞에서 말씀을 드렸지만 이 시대는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없습니다.

주의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

그런데 모두가 불의를 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에 있는 문자를 보고 세례를 받고 있습니다. 교인하나가 들어오면 그를 어떻게 종교인으로 만들어서 세례를 줄까를 생각하고 있는 것이 이 시대 교회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보내심은 세례를 주게 하려 하심이 아니라고 하지만 이 시대는 어떻게 세례를 줄까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공부를 시킵니다.

그리고 일정 기간을 지나야 합니다. 모두가 자기들이 만들어 놓은 교리에 의해서 세례를 주고 있습니다. 그런 행위들이 복음에 순종치 아니하는 행위라는 것을 전혀 모르고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보내 주셨지만 이스라엘이 듣지 않은 것과 같이 이 시대 역시 똑같이 행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25:4절을 보겠습니다. (구 1090쪽)

“여호와께서 그 모든 종 선지자를 너희에게 보내시되 부지런히 보내셨으나 너희가 듣지 아니하였으며 귀를 기울여 들으려고도 아니하였도다”

듣지를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종 선지자를 너희에게 보내시되 부지런히 보내셨으나 이스라엘은 듣지를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보면서 정말 이 시대는 어떠한가를 냉정하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스라엘만 듣지 않고 우리는 잘 듣고 있는가를 생각하고 성경에서 말씀하는 뜻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부지런히 보내셨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저희가 듣지를 않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시대만 해도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예루살렘이 멸망을 당하면서도 그 중에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 없었는가를 성경을 통해서 바로 알아야 합니다.

지금은 다릅니까?

예레미야 시대에 이스라엘은 무지해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하나도 없고 이 시대는 지혜가 있어서 모두가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까? 이스라엘은 우리의 예표로 우리가 그들을 보고 경계를 삼기 위해서 이 성경을 기록했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만약에 이 시대 기독교라는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가 하나님을 믿었다면 사도 바울은 이 말씀을 하지 않았습니다.

저희가 다 복음에 순종치 않았습니다.

저희 중에 어느 일부가 복음에 순종치 않은 것이 아닙니다. 또 저희 중에 그래도 어느 일부의 사람이 복음에 순종한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보내시지 않은 시대는 그들이 하나님을 잘 믿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상실한 마음대로 두셨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 중에 몇이나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합니까? 요한계시록 7장에 144.000명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과연 이 숫자 이상의 사람이 구원을 받았을까를 생각해 보면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정도는 될 수 있을지 몰라도 그 이상은 되지 않는다는 것이 제 개인의 생각입니다.

저도 모릅니다.

그것이 비유인지 실제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많은 숫자가 구원을 받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브라함부터 해서 이제까지 이스라엘의 수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래도 최소한 수억 명은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그 중에 144.000명은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이방에 복음이 전해졌습니다.

이제까지 기독교라는 종교에 있었던 사람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러나 그들이 모두가 종교인이 되어서 사망에 이르렀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정말 초대교회를 제외 하고는 구원을 받은 숫자가 지극히 적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시대입니다.

이제는 성경이 다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인쇄술이 발달을 해서 이제는 누구나 성경을 아주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복음은 좋은 환경이 되면 될수록 사라진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환경이 좋습니까?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더 많이 있습니까? 그런 숫자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아니 이스라엘이 좋은 환경에 있을수록 그들이 타락의 길로 갔다는 것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그들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들어갔지만 그 세대가 지나가자마자 우상을 섬겼다는 것을 성경에서 보았습니다.

이방에 복음이 전해졌습니다.

그리고 이제 200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런 세월이 흐른 것보다 우리는 교회사를 통해서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313년에 기독교가 공인이 되고 난 이후에 325년에 니케아 공회가 있은 후로는 복음은 완전히 사라졌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물론 있었습니다.

주류가 되었던 기독교인의 입장에서 교회사를 기록하다 보니까 복음이 있었던 성도의 모습은 자취를 찾아보기 힘들찌라도 하나님께서 시대마다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겨 주셨을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선지자들을 부지런히 보내셨습니다.

그러나 너희가 듣지 아니하였으며 귀를 기울여 들으려고도 아니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선지자들을 굳이 보내실 필요가 없는 때입니다. 우리에게는 성경이 있습니다. 물론 지혜의 은사를 받은 사람이 있어야 성경에서 복음을 깨닫고 전파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없더라도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고 성령을 구하면 저는 반드시 주신다고 믿고 있습니다.

듣지를 않습니다.

성경을 성경으로 보지를 않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선지자들의 말씀을 듣고도 복음에 순종치 아니한 것과 같이 이 시대 역시 성경을 주셨지만 성경으로 안 보고 있습니다. 목사들부터가 신학이라는 곳에서 성경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교리를 배우고 있습니다. 그 교리를 기초로 삼아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선지자들을 부지런히 보내셨습니다.

이 시대는 더 이상의 선지자를 보내시지 않습니다. 물론 성령의 감동을 받아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성경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지금 이 시대 문맹인 사람이 있습니까? 모두가 성경을 볼 수 있는 지적인 능력이 있습니다.

다만 어떻습니까?

성경을 성경으로 안 보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분명히 자기가 이제까지 알고 있던 말씀과 다른 말씀이 기록이 되어 있으면 그것에 대해서 자기 생명을 걸고 구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내 생명이 걸린 문제라는 것을 알고 지혜를 구해야 하는데 그런 말씀이 감동을 주고 있어도 그냥 스쳐 지나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저는 늘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물론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이 저와 같이 성경을 볼 수 있는 시간이 없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전하는 자는 한시도 성경을 자기 손에서 놓아서는 안 됩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저는 성경 이외의 것은 거의 안 보고 있습니다.

예전에 있던 책도 거의 다 버렸습니다.

제가 참고로 할 책 이외는 이제 거의 다 버렸습니다. 사실 우리는 성경만 보아도 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경을 너무 어렵게 생각을 하고 있어서 보려고 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직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성경을 본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지혜가 있는 자를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지혜가 있는 자는 성경만 보고 그 성경에서 지혜를 구해서 복음을 보고 전해야 합니다. 이제까지 이스라엘을 보더라도 복음이 있는 자도 거의 없었고 하나님께서 그런 가운데서도 부지런히 선지자들을 보내 주셨지만 너희가 듣지 아니하였으며 귀를 기울여 들으려고도 아니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듣기라도 해야 합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하는 자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라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의 이성으로는 이 복음이 있는 자가 이단과 같이 보입니다. 예레미야만 해도 당시 이스라엘로부터 이단이었습니다. 모든 이스라엘의 선지자들과 제사장은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구원해 주신다고 했지만 예레미야만 바벨론의 포로가 된다고 했습니다.

백성들입니다

누구의 말을 듣겠습니까? 모두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백성입니다. 그리고 자기 조상들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구원해 주셨다는 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예레미야는 바벨론에 항복을 하고 포로가 되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선지자와 제사장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 주셔서 우리가 전쟁에서 이길 것이라고 합니다.

누가 이단입니까?

백성들이 누구의 말을 듣겠습니까? 지금 역시 그렇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오셔서 이스라엘에게 너희가 종이라고 하셨지만 그들은 우리가 남의 종이 된 적이 없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율법의 종이 되어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이 시대 마찬가지입니다.

모두가 율법의 종이 되어 있습니다. 제가 이 시대 기독교인들에게 너희가 율법의 종이 되어서 사단에게 사로잡힌 자가 되었다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저에게 별 미친놈이 다 있다고 할 것이 분명합니다. 제가 너희는 이스라엘과 같이 율법의 종이 되어서 마귀의 자식으로서 세세토록 고난을 받는 불과 유황 못에 들어간다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누가 듣겠습니까?

귀를 기울이지도 않습니다. 자기들의 이성으로 생각할 때 예배도 잘 드리고 있고 찬송도 부르고 있고 주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기도도 하고 있어서 우리가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고 생각하고 아무도 들으려고도 하지 않고 귀를 기울이지도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은 복음을 모르기 때문에 복음에 순종할 수 없습니다. 아니 누군가 복음을 전해도 그들의 귀에는 들려지지가 않습니다. 이미 사람의 이성으로 하나님을 잘 믿고 있는데 별 미친놈이 이상한 이야기를 한다고 하면서 무시하게 되어 있습니다.

히브리서3:18-19절을 보겠습니다. (신 356쪽)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뇨 곧 순종치 아니하던 자에게가 아니냐 이로 보건대 저희가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

이스라엘은 우리의 경계입니다.

이스라엘이 당했던 일이 이 시대 그대로 진행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만약에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께서는 이 말씀을 굳이 기록하게 하실 이유가 없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만의 일이라면 성경에 기록할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성경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이 순종치 않았습니까? 이 시대 역시 순종치 않고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순종치 않았고 우리는 순종을 잘하고 있다면 굳이 성경이 기록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에 순종치 않아서 그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의 안식이 들어간 사람이 몇이나 됩니까? 우리가 표면적으로 보았을 때는 60만 명이 애굽에서 나와서 단 두 명이 들어갔습니다. 물론 광야에서 죽었어도 모세와 아론 그리고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사람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단 두 명입니다.

그럼 이 시대를 그대로 대입을 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기록해 놓은 이유는 이 시대 역시 똑같이 그렇다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의 안식에 들어가는 사람입니다. 이 시대 천국에 들어가는 구원을 받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된다고 생각합니까?

많을 수도 있습니다.

어느 시대는 많을 수도 있고 어느 시대는 아예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우리에게 예표와 경계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가 그렇게 생각합니다. 자기들이 복음에 순종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광야는 지금의 교회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희가 다 복음에 순종치 않았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까? 우리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까? 성경을 보고도 누구에게 하고 있는 말씀인가를 깨닫지를 못한다면 그는 어리석은 자이며 사망에 이를 수밖에 없습니다. 저희가 순종치 아니하였다고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으면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나는 순종하는가를 성경에서 알아야 합니다.

믿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말이 된다고 생각합니까? 하나님의 기적을 본 사람들입니다. 자기들 스스로는 애굽에서 나올 수 없는데 하나님께서 애굽의 군대를 바다에 수장을 시키면서 자기들을 인도 하셨습니다. 그리고 광야에서는 만나를 먹이시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것을 직접 자기들의 눈으로 본 그들이 믿지를 않았습니다.

이 시대 믿고 있습니까?

이스라엘이 믿지 않았으면 이 시대 역시 믿지 않고 있습니다. 천국에 들어갈 사람이 얼마나 적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제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렵다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믿음이 얼마나 쉽습니까? 누군가 복음을 전하면 듣고 믿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전하는 자도 거의 없고 또 혹시 있더라도 듣는 사람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에 순종치 않고 있습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복음에 순종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들은 율법의 종이 되어서 율법에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율법에 순종하면서 성경에 문자에 기록이 되어 있는 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한다고 하면서 주여 주여 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디도서1:16절을 보겠습니다. (신 348쪽)

“저희가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치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

사도 바울은 이방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고 있는 그때에 벌써 교회 안에는 율법주의자가 들어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로마서에서 사도바울은 이사야의 말씀을 인용을 해서 이스라엘이 복음에 순종치 아니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제 막 복음을 전한 이방의 교회도 역시 그렇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하나님을 시인합니다.

누가 하나님을 시인을 합니까?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을 시인을 하고 있습니까? 그들이 하나님을 시인을 할 것 같으면 세상에 있지 않고 교회 안에 들어와 하나님을 믿습니다. 이 시대는 성경을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일로 생각하지를 않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누구입니까?

사도 바울이 전한 이방의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복음을 들어도 얼마나 쉽게 다른복음에 빠져 들어가는 가를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람은 체질적으로 다른 복음을 쫓아가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누구입니까?

사도 바울로부터 복음을 들은 이방의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 안에 벌써 율법주의가 들어왔습니다. 할례를 행하라고 하는 사람들이 들어왔고 유대인의 허탄한 이야기가 교회 안에 들어왔습니다. 사도 바울로부터 복음을 들은 그들이 유대인의 허탄한 이야기를 듣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안 믿습니까?

모두가 시인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시인을 한다는 말씀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한다는 말씀입니다 교회 안에 들어오면 그곳에서 복음이 전해지든 다른 복음이 전해지든 모두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시인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복음에 복종치 않고 있습니다.

복음에 복종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 시대는 어떻게 하는 것이 복음에 복종하는 것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복음에 순종하는 것이 어떻게 하는 것 인줄을 전혀 모르고 그저 자기들이 교회 안에 나와서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고 교회 안에서 그들이 하라고 하는 대로 율법을 지키면서 살아가는 것이 복음에 순종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고 그 일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입니다

모두가 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시인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도 보시기 바랍니다. 자기가 하나님이라고 하는 특별한 곳을 빼고는 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시인을 하고 있습니다. 정통교회에서 이단이라고 하는 천주교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합니다. 안식일 교회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고 있고 여호와증인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들만 그렇습니까?

구원파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합니다. 다락방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성락교회에 다니는 사람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고 있고 만민중앙성결 교회에 다니는 사람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하나님이라고 하는 곳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시인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단이라고 합니다.

왜 이단이라고 하고 있습니까? 실상은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이 다르다고 이단이라고 공격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성경의 어느 교리를 가지고도 이단이라고 하지만 그들 모두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시인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까?

행위로는 부인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행위로 부인을 하고 있습니까? 복음에 복종치 않은 사람들이 행위로 부인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행위로 부인을 하고 있습니까? 디도서1장10절에서 헛된 말을 하며 속이는 자가 많은 중 특별히 할례당 가운데 심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할례입니다

율법 전체를 대표하는 것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자가 복음에 복종치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할례는 모든 율법을 대표하는 율법입니다. 그러니까 어느 한 가자라도 율법을 지키고 있으면 그는 복음에 복종치 않는 사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다 복음에 순종치 아니하였습니다.

그것이 이스라엘만의 문제입니까? 이 시대 율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까? 율법을 한 가지라도 지키고 있다면 그는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을 시인을 하고 있지만 실상은 복음에 복종치 아니하며 행위로서 부인하는 자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이 행위의 문제가 해결이 안 되면 사망에 이른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다 시인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로마서에 있는 말씀과 같이 저희가 다 복음에 복종치 않고 있습니다. 어떻게 복음에 순종치 아니하는가 하면 행위를 함으로 해서 복음에 순종치 아니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복음에 복종치 아니하면서 선한 일을 버리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이 시대 다수가 하고 있는 모든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다수가 복음에 순종치 아니하고 있지만 이 시대는 자기들이 어떻게 복음에 순종치 아니하는 가를 모르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주셨지만 믿지를 않고 율법의 행위에 깊이 빠져 있습니다.

저희가 다입니다.

어느 일부의 사람이 아닙니다. 저희가 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믿지 않고 있는가 하면 율법의 행위를 함으로 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안 믿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만 율법을 지키고 있는 그 사람들은 실제로는 복음에 순종치 아니하는 사람들이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복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영생을 얻을 수 있게 이 복음을 성경에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는 사람들이 복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율법의 행위를 보고 있습니다. 사람의 이성으로는 복음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율법의 행위가 보이기 때문에 복음에 순종치 아니하면서도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정말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저희가 다 복음에 순종치 아니하였으면 이 시대 역시 저희가 다 복음에 순종치 아니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다 복음에 순종치 아니하였으면 이방의 교회 역시 다 복음에 순종치 아니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복음에 순종치 아니하고 있는가 하면 행위를 함으로 해서 순종치 아니하고 있습니다.

이사야53:1절을 보겠습니다. (구 1033쪽)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정말 우리는 성경을 바로 보아야 합니다. 이미 이사야 선지자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보내 주셔서 복음을 전하게 하셨지만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보내 주셔서 복음을 전하셨지만 아무도 믿지 않았습니다. 왜 믿지 않았는가 하면 행위에 빠져서 믿지 않았습니다.

안 믿습니다.

이 영의 일을 누가 믿을 수 있습니까? 성령이 오시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믿을 수 없습니다. 아니 성령이 오시기 전에 이해가 안 되는 말씀을 들었으면 그리고 그것이 자기를 감동하고 있으면 지혜를 구해야 하는데 사람들은 종교에 빠져 헤어 나오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포승입니다

이 시대 역시 종교가 사람들을 포승으로 묶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포승에 묶여서 빠져 나오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행위라는 포승에 묶여서 꼼짝을 하지 못하면서도 자기들이 하고 있는 행위를 보면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고 있고 시인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도 없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가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기독교라는 종교를 전하는 자는 있어도 복음을 전하는 자는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전하는 자가 없어서 자기들이 눈으로 보고 있는 교회를 보고 다수의 사람들이 복음이라고 하니까 아무 것도 모르는 소자들은 그것이 복음인줄 알고 따라가고 있습니다.

복음입니다

그리고 다른 복음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에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이 복음을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복음이 문자적으로는 절대로 안 보입니다. 다 의미로 감추어져 있어서 성경을 문자적으로 보면서 다른 복음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 다른 복음이 사람에 이성에는 복음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고 있습니까?

그렇다고 해서 다 믿는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니 성경이 그들이 믿지 않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믿는다고 하고 있지만 이 시대 역시 행위로 부인을 하면서 율법을 지키면서 복음에 복종치 아니하고 있습니다.

누가 믿겠습니까?

아무도 안 믿습니다. 안 믿는다는 의미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시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의를 행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제까지의 모든 교회를 보더라도 율법을 지키지 않은 교회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시인하는 그들이 복음을 안 믿고 있는 것이 교회 안에 현실입니다.next 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