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3 : 2절
"너희가 우리의 편지라 우리 마음에 썼고 뭇 사람이 알고 읽는 바라"
편지의 사전적인 뜻은 자그마한 뜻을 보내는 것입니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편지입니다. 그 편지에는 그리스도의 뜻이 담겨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편지라고 하면서 그 뜻과 다른 내용이 있으면 그것은 다른 사람의 편지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요한복음6 : 40절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18 : 14절
"이와 같이 이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그리스도의 편지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모른다면 그것은 가짜 편지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는 것입니다.
아들을 보고 믿어야 합니다
아들을 보고 믿지 않으면 그는 편지가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아들을 보고 믿지 않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은 모세가 준 율법이 더 소중했기 때문에 아들을 보고도 믿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도 마찬가지 입니다
아들을 믿지 않고 율법을 세우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는 행위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와 같이 소자 중이라는 말씀은 소자는 어린아이라서 행위를 잘 못하는 사람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구원에 대해서 확신을 주지 못하면 편지가 아닙니다.
내가 지금 다니는 교회에서 구원에 대한 확신이 있어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 있으면 참 편지를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인가 찜찜하다면 그것은 가짜 편지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편지는 보내는 이의 뜻이 담겨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영생에 대해서 확신을 주는 것이며 소자라도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구원론에 있어서 확신을 주지 못하면 그리스도의 편지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편지라고 하니까 사람들은 보이는 것으로만 생각합니다.
마치 우리가 편지를 펴 놓고 글을 보는 것으로 오해하면서 행위가 좋으면 참 편지라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편지지가 예쁘고 글씨가 달필로 누구나 보기에 좋아야 참 편지로 착각하는 것입니다.
요즘은 손 글씨가 매출을 올린다고 그것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마치 손 글씨가 사람의 마음을 붙잡듯이 자기 눈으로 보이는 성도의 모습이 참 편지라고 오해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3 : 3절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한 것이며 또 돌비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심비에 한 것이라"
돌에 쓴 것은 보입니다
마치 예쁜 편지지에 손 글씨를 쓴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한 것이라고 말씀 합니다.
영이 보입니까?
그런데도 사람들은 보이는 것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보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라고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는데 자기 마음대로 보이는 것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영으로 썼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임재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의 편지라고 말하면서 할 수 있는 모든 수식어를 다 쓰면서 자기 모습들을 나타내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영생을 주려면 누가 나타나야 합니까?
내 모습이 아무리 아름답다 할지라도 예수가 안 나타나면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 수 없는 것이고
하나님의 뜻을 바로 전하지 않는 미련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세요
성도가 물론 그 보이는 행위가 좋아야 하는 것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무리 좋을지라도 생명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지 못한다면 그것은 사단의 편지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모르면 그 편지는 아무 쓸모없는 것입니다
편지지가 아무리 예쁘면 뭐합니까?
보내는 이의 뜻이 바로 전달되지 못한다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어떤 미사여구를 쓴다 할지라도 생명을 주지 못한다면 보내는 이의 뜻과 상관없는 편지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영으로 여러분에게 심비에 하신 것입니다
성령께서 가르쳐 주시는 진리를 바로 전할 때 가장 아름다운 편지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생명을 얻지 못하는 것은 아름다울 수 없습니다.
생명이 있어야 아름다운 것입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제 블로그를 방문 하지만 모두가 좋은 글이라고는 하지만 어느 누구도 깨닫고
구원에 이르는 성도가 보이지가 않고 있습니다.
제 블로그의 말씀들은 생명에 대한 아주 심각한 말씀들인데도 깨닫는 사람들이 없어 아직도 악에서 건짐을 받는 성도가 보이지 않는 것을보고 오늘도 안타까운 마음으로 이 편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 편지를 여러분 심비에 간직하시고 깨닫고 믿어 온전한 구원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성령의 감동을 나타내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오늘의 감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편지임을 깨닫게 하시고 영의 심비에 성령이 내주 하셨음을 믿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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