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6:12절을 보겠습니다. (신 247쪽)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 노릇 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그의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의 의미를 모르고 있습니다. 죄에 대하여 죽으심이라고 말씀을 하니까 진짜 세상 죄에 대하여 죽으셨다고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모르면 어떻게 되는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이 성경을 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자기들이 안다고 한 그 율법을 몰라서 사망에 이르렀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 역시 이스라엘과 똑같이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그것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죄 입니다
이 죄를 율법을 지키는 것이 죄라고 하면 아마도 거의 모든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느냐고 따질 것이 분명합니다. 성경에 분명히 죄라고 기록이 되어 있지 않느냐고 말하면서 예수님께서 요한복음에서 세상 죄를 지고 가신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하면서 성경을 이상하게 해석한다고 말할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도덕적인 죄를 안 짓고 살아갈 수 있습니까? 도덕적인 죄라고 하니까 쉽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율법을 문자 그대로 지키면서 살 수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물론 이스라엘이 그렇게 살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말씀을 하시니까 아무도 돌로 치지 못 했습니다
그래도 이스라엘은 정직합니다.
인간적인 면에서 정직하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말과 행위를 서로 상반되게 하고 있습니다.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 죽은 자라는 이 말씀을 보고 그렇게 믿고 있다고 하는 그들이 전혀 죄에 대해서 죽지 않고 있습니다.
아니 죄에 대해서 죽기 위해서 살아가고 있다고 말합니다.
죄에 대해서 죽기 위해서 살라고 하지 않고 죽은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자기 마음대로 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라면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죄 안 짓고 삽니까?
이것을 도덕적인 죄라고 하는 그 자체가 죄에 대해서 죽지 않았기 때문에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죄에 대하여 죽은 자가 되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는데 자기 자신을 생각하면 아무리 생각해도 죄에 대하여 죽은 자가 못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성경대로 살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자기 스스로를 정죄하고 정죄에 빠져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성경에는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아무리 살아보아도 신앙생활을 수십 년을 했어도 죄에 대하여 죽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더 살아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안 됩니다
도덕적인 죄를 안 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율법을 지키는 죄는 안 질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도덕적은 죄는 죽을 때까지 짓고 살아가지만 율법을 지키는 죄는 성령이 오셔서 감동을 하면 안 짓고 살아갑니다. 그런 성도가 죄에 대하여 죽은 자라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는 못 합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능력이 내 안에 없다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성도는 성령의 감동으로 죄에 대하여 죽은 자가 되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편지에서 교제를 하는 모든 성도는 죄에 대하여 죽은 자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 교회에 교인들은 죄에 대해서 죽은 자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너희는 죽은 자라고 말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신 것과 같이 우리 역시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편지에서 교제를 하는 성도님들은 도덕적인 죄에 대해서는 죽었다고 말할 수 없어도 율법을 지키는 죄에서는 죽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죽은 자가 죄에 대하여 죽은 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죽은 자입니다
죽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어느 정도 죽을 수 있습니까? 반 죽고 반은 살 수 있습니까? 죽으면 죽은 것이고 살았으면 산 것임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성경에서 죽은 자라고 하면 우리는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산 자입니다
세상에 대하여 산 자가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 산 자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산자가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는 자가 하나님을 대하여 산 자입니다. 그 산자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해서 죽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입니다
우리 영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라고 말씀을 하면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그런 성도만이 하나님의 대하여는 산 자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죄에 대하여 죽은 자가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자기들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가 되었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하나님을 대하여 산 자입니다
내 육체를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의 생명이 없으면 하나님의 대하여 산 자가 될 수 없습니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영이 있는 성도만이 산 자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영도 없는 그들이 종교에 세뇌가 되어서 막연하게 성경에 있는 문자를 보고 자기들이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정확 합니다.
영의 일에 있어서는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이 있는 말씀인데 이때는 이렇게 말씀을 하고 저때는 저렇게 말씀을 한다면 어느 누구도 영생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문자에 갇혀서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문자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도리어 사망을 당합니다.
이스라엘이 성경의 문자를 보고 사망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이방의 교회도 역시 문자를 보고 사망에 이르고 있습니다. 성경은 율법에 대해서 죽은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율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2000년 가까이 이방의 교회가 율법을 지켜왔기 때문에 이제는 모두가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고 심지어는 율법을 지키면서도 율법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율법에 대해서 죽으시기 바랍니다.
지키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런 성도만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에 대하여는 산 자가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시대는 산 자가 거의 없습니다. 모두가 율법을 지킴으로 해서 산 자가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이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고 막연하게 거대한 종교가 율법을 지키라고 하니까 지키고 있습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죄가 여러분의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해서, 여러분이 몸의 정욕에 굴복하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죄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이 죄를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이 죄를 더 많이 범하려고 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죄를 짓는 자기들의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로마서6장에서는 같은 죄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죄입니다.
도덕적인 죄는 우리가 안 질 수 없습니다. 그러나 6장에서 말씀하고 있는 죄는 성령이 오시면 안 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서 죽은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죄를 안 질 수 있기 때문에 죄에서 죽은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시면 가능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이성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 불가능한가 하면 그것이 사람의 이성에는 옳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지독한 율법주의자였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에 자기가 지키고 있던 율법의 흠 없는 의를 예수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서 버린 사람이기 때문에 지금 이 말씀을 할 수 있습니다.
깨닫지를 못 합니다
사실 로마서6장은 율법을 지키는 것이 죄라는 것을 모르면 풀어지지가 않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도 역시 무식한 자들이 억지로 성경을 풀다가 사망에 이르고 있습니다. 아니 이제까지의 모든 교회에 있던 신학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다 그렇게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세상 지적으로 무식하다는 것이 아니라 소경이 되어 있는 사람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 노릇하지 못하게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육체는 죽을 몸입니다. 이 죽을 몸에 죄가 왕 노릇하지 못하게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문자적으로 율법을 지킴으로 해서 영적으로 율법을 범하는 죄를 지어서 사망이 왕 노릇하지 못하게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죽을 몸입니다
성경은 우리 육체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죄가 이 죽을 몸에 왕 노릇하는 순간에 여러분은 사망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죽을 몸에 죄가 왕 노릇하고 있지만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죄 짓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도덕적인 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미 다 지고 가셨습니다. 이제 그 도덕적인 죄를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문자적으로 율법을 지킴으로 해서 영적으로 죄를 짓는 어리석음을 행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죄를 짓는 순간 사망이 왕 노릇하게 되어 있습니다.
골로새서3:5절을 보겠습니다. (신 327쪽)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몸의 사욕에 순종치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누구에게 말씀을 하고 있는가 하면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그들이 자기 몸의 사욕에 순종을 하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있는 거의 모든 말씀에서 나쁜 의미로 기록이 되어 있는 것은 이 시대 교회 안에서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입니다
어느 일부의 사람이 자기 몸의 사욕에 순종을 하고 있다면 사도 바울이 이 말씀을 기록할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절대 다수가 자기 몸의 사욕에 순종을 하기 때문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자기 몸에 사욕을 순종하고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자기들이 사욕에 순종하고 있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사욕
자기 자신의 개인적인 이익이나 만족만을 탐하는 욕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욕, 탐욕, 탐심 등 거의 같은 말씀이라고 보면 맞습니다. 사도 바울은 너희 몸에 만족을 탐하는 욕심에 순종치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자기 몸에 만족을 탐하는 욕심이 무엇이 있습니까?
성경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런 말씀의 의미를 깨닫지를 못하면 다수를 따라 자기 몸의 사욕에 순종하다가 사망의 길로 가게 된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 이러한 행위를 하고 있으면서도 사욕을 말씀하는 그 의미를 몰라서 자기 몸의 사욕에 순종을 하면서도 그것을 하나님을 위하는 일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욕이 어디서 나타납니까?
그것을 골로새서에서 땅에 있는 지체에서 나타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성경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땅에 있는 지체라는 이 말씀도 이해가 되지가 않고 있습니다. 땅에 있는 지체라는 이 말씀을 보고도 자기들이 교회 안에서 행하고 있는 행위들은 땅에 있는 지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는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성경에서 계속해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성경을 이해하지 못해서 땅에 있는 지체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어떻게 죽여야 하는 줄도 모르고 있습니다.
같은 말씀입니다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는 말씀과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라는 말씀이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사도 바울은 교회 안에서 행하고 있는 일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지 세상과 교회를 비교를 해서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이 하고 있는 행위를 하지 않은 자기를 보면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였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위엣 것을 생각하라 땅엣 것을 생각하지 말라고 하면서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위엣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속의 일을 다 이루시고 하늘에 계신 그것을 생각하는 것이고 땅엣 것은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모든 육체의 행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생각합니까?
자기들이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모든 행위는 위엣 것이고 세상 사람들이 세상에서 하는 모든 행위는 땅엣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는 시각부터가 바뀌지 않으면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소경으로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누가 땅엣 것을 생각했습니까?
이스라엘의 바리새인들이 땅엣 것을 생각하면서 율법으로는 흠이 없는 삶을 살다가 마귀의 자식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 시대 역시 교회 안에 있는 절대 다수는 이스라엘의 바리새인과 같이 땅엣 것을 생각하면서 율법을 지키고 있고 또 거기에 한술 더 떠서 은사적인 행위를 하면서 기독교는 체험의 종교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다 땅엣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구속의 일을 이루시고 하늘에 계십니다. 그 일이 위엣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 자기들의 육체로 하고 있는 모든 행위는 다 땅엣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드려지고 있는 예배, 찬송, 기도, 헌금, 봉사 등이 다 땅엣 것임을 바로 깨닫지 못하면 그 지체를 죽이지 못해서 사망에 이르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죽었습니다.
땅엣 것에서 죽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지체를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 죽지 않은 것으로 자기들이 복음을 전한다고 하면서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다른 복음을 가지고 있는 그들이 위엣 것을 생각한다고 하면서 땅엣 것에 열심을 내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죽이시기 바랍니다.
아니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우리 지체를 죽이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성경은 우리는 죽었다고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에 대해서 죽었는가 하면 땅에 있는 지체가 하는 행위에 대해서 죽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정말 안타깝습니다.
이 지체를 죽이지 못해서 교회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이 사망에 이르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어찌 생각해 보면 하나님께서 그 다수를 유기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더욱 큰 은혜가 있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불쌍하지만 우리의 힘으로 안 되는 일이기에 안타까운 마음만 가지고 있습니다.
땅에 있는 지체를 모릅니다.
아니 솔직히 국어를 이해하는 수준이 너무 낮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성경을 보고 자기들이 좋은 쪽으로만 생각을 하려고 하다 보니까 반대로 해석이 되고 그것이 사망의 길로 가는 길인데도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 지혜가 있다고 하면서 스스로에게 속고 있습니다.
죽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그리스도의 생명이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생명에 대해서 너무 모르다보니까 막연하게 자기 안에 생명이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막연함이 모두를 사망으로 끌고 가고 있는 것을 보면서 참으로 답답한 마음만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몸의 사욕에 순종치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죄로 너희 죽을 몸에 나타나고 있는 율법의 행위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율법의 행위를 사욕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사로운 욕심에 순종하지 말고 성도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어 주신 구속을 믿어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미가7:3절을 보겠습니다. (구 1296쪽)
“두 손으로 악을 부지런히 행하도다 그 군장과 재판자는 뇌물을 구하며 대인은 마음의 악한 사욕을 발하며 서로 연락을 취하니”
재앙입니다
사욕을 취하는 자들이 재앙을 당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얼마나 타락했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선인이 세상에서 끊쳤고 정직자가 인간에게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미가 시대에 단 한 사람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없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우리에게 경계를 하고 있습니다. 미가 시대만 신실한 사람과 정직한 사람이 없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성경은 늘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을 알고 보아야 합니다. 어느 시대에 선인이 그리고 정직자가 한 사람도 없다고 하면 이 시대 역시 그렇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너무도 안일하게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그때는 그랬습니다.
그 사람들은 지혜가 없어서 그랬습니다. 그러나 자기들은 아주 잘 믿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선인이 누구며 정직자가 누구입니까? 교회 안에 있는 목사들과 그리고 장로들이 어떻게 되었는가를 미가 선지자가 자세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때만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도 그렇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씀입니다
지금 이 시대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미가 시대만 그런 것이 아니라 주님이 오셨을 때 이스라엘을 보아도 우리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때만 그런 것이 아니라 예레미야 시대에도 진리를 찾고 공의를 구하는 자가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자기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경고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지만 자기들은 잘 믿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런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어서 남의 집에 불구경 하듯이 하고 있습니다. 정말 교회 안에서 구원을 받는 사람이 얼마나 적다는 것을 늘 생각하고 이 복음에 대해서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성경을 보고 생명을 붙잡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두 손으로 부지런히 악을 행하고 있습니다.
그 군장과 재판자는 뇌물을 구하며 대인은 마음의 악한 사욕을 발하며 서로 연락을 취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교회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지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많은 사욕으로 연락을 취하고 있는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누가 그렇게 하고 있습니까?
군장이 그렇게 하고 있고 재판장이 그렇게 하고 있고 대인이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목사들이 그렇게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 앞장서서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그렇게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욕에 빠져 있습니다.
왜 이들이 사욕에 빠질 수밖에 없는 가를 알아야 합니다. 사람의 눈에는 예수 그리스도는 보이지가 않고 있습니다. 그들이 보고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한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럼 그들이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잘 전하고 있다고 아니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라는 것을 보이기 위해서 사욕을 부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제가 복음을 전하는 자가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보이려고 하는 모든 행위가 사욕에서 나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자라는 것을 보이려고 하는 모든 행위가 사욕이고 그것으로 연락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참 선지자라고 믿고 있습니다.
누가 그렇게 하고 있습니까?
요즘 천주교의 교황의 행태를 보면 이 말씀이 더욱 실감이 나고 있습니다. 그가 얼마나 사욕에 빠져 있습니까? 겸손의 모양을 내면서 교황이 검소하게 살아가고 가난한 자를 위해서 살아가고 있다고 하면서 사람들은 교황의 사욕을 보면서 참 선지자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교황이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자입니까?
실제 우리가 뉴스를 통해서 보면 그는 사욕을 발하는 자입니다. 아마 제가 이 말씀을 하면 심하게 반발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겸손의 모양을 내는 것이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사욕을 발하는 행위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누가 그것을 못 합니까?
누가 교황과 같은 행위를 못 합니까? 생각해 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사욕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은 교황이 낮아졌다고 하면서 그를 더욱 사욕에 빠지게 하고 있습니다. 교황도 진토인 사람입니다. 그 진토가 겸손의 모양을 내고 있다면 그것 역시 사욕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권력자가 악한 사욕을 발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욕에 빠져 있는 권력자는 자기의 의를 나타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사욕이 되고 있지만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지 못해서 더욱 겸손의 모양을 나타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한 사람도 없습니다.
미가 시대에 한 사람도 없었다면 이 시대 역시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사욕이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교회 안에서 자기 지체를 죽이지 않고 사욕에 순종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연락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뭐하고 하셨습니까? 바람이 임의로 불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것과 같이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성령으로 난 사람은 그렇게 뉴스에 나오지도 않고 세상에 알려지지도 않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너무 연락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만 연락을 하고 있습니까? 누가복음에서 예수님께서 한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서 부자가 연락을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지 않고 율법의 행위로 부자가 되어 있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그 사람이 연락을 하다가 음부의 고통 중에 들어갔습니다.
부자가 연락을 합니다.
그러면 수많은 개들이 함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부자가 연락하는 것을 따라가기 위해서 교회 안에는 개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연락하는 부자를 따라가고 있는 모든 사람을 주님께서는 개들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에서 사도요한이 개들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부자가 되면 안 됩니다
교회 안에는 반드시 부자가 있습니다. 그들은 사욕으로 연락을 하고 있습니다. 미가 시대에 사욕에 빠져 있지 않은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부자가 연락을 하면 그 부자가 사욕하는 그것을 따라 하기 위해서 수많은 개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땅에 있는 지체가 이렇게 만들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 만들어서 사망에 이르게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다는 그것으로 모든 것이 다 용납이 되고 있습니다.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지 못하고 미가 시대와 같이 정직자가 인간에 하나도 없지만 깨달을 수 없어서 사망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우리 지체입니다
그 지체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고 있는 모든 행위가 몸의 사욕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모든 행위가 사욕이라는 것을 모르고 그것을 죽이지 않으면 절대로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성경을 몰라서 도리어 이 사욕에 순종을 하고 있습니다.
모두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 전체가 이 사욕에 순종하고 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욕으로 연락을 취하고 있는 그들이 자기가 사욕에 순종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죄에게 종노릇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1:14절을 보겠습니다. (신 375쪽)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이전 알지 못할 때에 좇던 너희 사욕을 본 삼지 말고”
알지 못 합니다
사욕이 무엇이라는 것을 이 시대는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세상의 욕심 정도로만 알고 있습니다. 아니 개인의 만족을 위해서 갖는 욕심 정도로만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이 사욕을 좇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어느 한 사람이 아닙니다.
다수가 사욕을 좇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늘 그래왔듯이 성경에 있는 그 사람들은 사욕을 좇아갔어도 자기들은 사욕을 좇아가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사욕이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알면 좇아가겠습니까?
우리는 진리를 알고 있기 때문에 설령 누군가 이 사욕을 좇아가라고 해도 절대로 좇아가지 않습니다. 그 사욕을 죽이지 않으면 반드시 사망에 이른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어떻게 사욕을 좇아갈 수 있습니까? 그러나 사욕이 무엇인가를 모르면 반드시 좇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외모입니다
각 사람의 행위입니다. 그것을 취하려고 하는 행위가 다 사욕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을 사욕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이 율법을 지켜왔던 그 모든 행위를 따라가는 것이 사욕을 좇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면 누가 만족을 누립니까?
내가 십일조를 내면 하나님께서 만족을 하십니까? 내가 만족하고 있습니까? 이 질문에도 하나님이 만족한다고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는 내가 만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행위를 보고 만족 해 하신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주님이 하신 구속의 일만 만족 해 하십니다. 우리가 그 어떤 행위를 한다 해도 하나님께서는 만족하시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만족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율법을 지키고 어떤 행위를 하면 내가 더 만족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욕을 본 삼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은 율법을 지키면서 어떻게 했습니까? 바리새인의 기도에서도 우리가 알 수 있듯이 내가 이레에 이틀을 금식하고 소득의 십일조를 드린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 기도를 하는가 하면 자기 행위에 만족을 했기 때문에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자기가 만족을 누리는 것을 사욕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배를 드립니까?
찬송가를 부르고 있습니까? 누가 만족합니까? 그것은 다 자기들이 만족하는 행위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런 기본이 되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고 있습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만족하신다고 억지를 부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욕을 본받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는 모두가 사욕을 좇아가고 있습니다.
사망입니다
사도 바울은 영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어떻게 하는 가를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영생의 문제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욕에 순종하는 사람은 영생을 얻지 못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영생을 받느냐 못 받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그런데 마치 신앙생활의 문제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모든 말씀은 다 영생에 관한 말씀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마치 신앙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우리 성도가 어떻게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가를 말씀하고 있는 것은 지극히 적습니다.
아니 거의 없습니다.
이 성경을 왜 기록하셨습니까? 우리가 성경을 보고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해서 기록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거의 모든 말씀은 영생의 문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욕에 본받으면 영생을 얻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욕에 순종하면 어떻게 됩니까?
너희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 노릇하게 되어서 사망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죄에 대해서 죽은 자가 되어야 하는데 이 죄를 모르다보니까 사욕을 좇아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욕을 좇아가는 그들이 하나님을 믿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고 자기들은 구원을 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한 가지라도 사욕을 좇아가는 사람은 반드시 사망이 왕 노릇한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우리 성도는 이스라엘의 조상들이 지켰던 율법의 유전을 행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 이방인은 본래 복음을 들었지만 이제는 모두가 다른 복음으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디모데후서4:3절을 보겠습니다. (신 346쪽)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바른 교훈을 받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벌써 초대교회에 이러한 일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도들이 살아 있는 그때에 벌써 사욕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얼마나 사람이 쉽게 사욕에 빠져 순종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사욕이라는 단어의 나쁜 의미만을 생각하니까 자기들이 행하고 있는 모든 일들이 사욕이라는 것을 도무지 깨달을 수 없어서 죄에 순종을 해서 사망에 이르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교회 안에서 여러 가지 행위를 하면서 오직 예수라고 하는 것은 다 거짓임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오직 예수라는 그 말 한 마디만 하면 사욕에 빠져 있으면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라는 그 말 한 마디를 하면 무슨 일을 해도 다 용납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귀가 가렵습니다.
아주 쉽게 넘어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사람이 이 말을 하면 그것이 사람의 이성에 옳기 때문에 그것을 따라하고 있고 또 저 사람이 저것을 하면 또 그것도 옳기 때문에 따라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그대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스승을 많이 두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스승을 많이 두기가 얼마나 쉽습니까? 방송이다. 인터넷이다. 하면서 수많은 설교와 글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 것을 보면서 자기 마음에서 좋으면 따라하고 있습니다. 귀로 들어보니까 이것도 옳고 저것도 옳고 다 옳기 때문에 스승을 많이 두고 있습니다.
그들이 누구입니까?
다음 절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허탄한 이야기가 무엇입니까? 율법의 행위를 허탄하다고 야고보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귀가 가려워서 자기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있습니다.
이 시대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율법이 선생이 되어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솔직히 이 시대 율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그리스도편지에서 교제하고 있는 성도들 외에는 아직까지 제가 못 봤습니다. 물론 나름대로 율법을 폐했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말로만 율법을 폐했지 실상은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허탄한 이야기입니다
다 사욕에서 나오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귀가 가려워서 이 사욕을 좇아가면서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지만 사욕이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사욕만 모르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지키면서도 그것이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폐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자기들이 지키는 율법은 율법이 아니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폐했다는 성경말씀을 모르고 그저 말로만 폐하고 있습니다. 아니 자기들이 필요치 않은 것은 다 폐하고 자기들에게 필요한 것은 율법이 아니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사욕에 순종치 마시기 바랍니다.
로마서를 통해서 사도 바울이 이렇게까지 말씀을 하고 있는데 사욕이 무엇이라는 것을 모른다면 그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이 영생의 문제를 가지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욕에 순종하면서도 전혀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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