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로마서 강해(오직 믿음)

54-1,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윤주만목사 2024. 9. 21. 11:28

로마서6:14절을 보겠습니다. (247)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고 말씀합니다.

성경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육의 지체도 있고 영의 지체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성경의 단어만을 보고 있습니다. 의미를 생각하지 않고 단어만을 보다보니까 전혀 다르게 살아가고 있고 그것으로 도리어 진노를 받고 있습니다.

성도의 지체입니다

그것은 육체를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육체를 하나님께 드리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 거의 모든 교인들이 자기 육체를 하나님께 드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점도 흠도 없으신 영광만 있는 분인데 우리 죄인의 지체를 받으시겠습니까? 썩어 없어지는 배설물과 같은 그 지체를 하나님께 드리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화가 있습니다.

누가 그렇게 했습니까?

이스라엘이 자기들의 지체를 하나님께 드리려고 하다가 주님께서 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도 성경을 깨닫지를 못해서 자기 지체를 하나님께 드리려고 하면서 도리어 죄만 더 짓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지체입니다

그것은 불의의 병기입니다 그것으로 하나님께 드리려고 하는 사람은 반드시 진노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성경을 몰라서 그 지체를 드리려고 열심을 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배설물과 같은 그 지체를 하나님께 드리면서 받으라고 하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누군가 여러분을 존경한다고 하면서 여러분에게 그 사람의 배설물을 준다면 어떻겠습니까? 우리 지체의 병기가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 교인들은 그 병기가 깨끗하다고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받으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 일에 열심을 내고 있는 그들이 천국에 들어간다고 주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망입니다

하나님을 멸시하는 행위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자기 지체가 무엇인가도 모르고 그것을 드리려고 하고 있다면 그는 축복이 아니라 저주를 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 지체는 하나님께서 받으시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하고 있어야 합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단번에 드리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단번에 드리셨으면 이제 더 이상 하나님께서 받으시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 교인들은 배설물을 자기고 하나님께 드린다고 하면서 교회 안에서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의의 병기입니다

우리 성도는 의의 병기입니다. 교회 안에서 어떤 행위를 해서 의의 병기가 아닙니다. 그런 행위로는 의의 병기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선을 행하는 자가 하나도 없습니다. 의인인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자기 행위로 의의 병기가 되어 드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사셨습니다. 왜 다시 사셨는가 하면 그분은 죄가 없으시고 의를 다 행한 분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으로 다시 사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다시 사신 것은 우리도 역시 다시 사는 일을 믿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어떻게 다시 사셨습니까?

하나님의 능력으로 다시 사셨습니다. 그렇게 다시 사심으로 해서 하늘에 올라가심으로 의가 되었습니다. 그럼 우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도 역시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다시 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거듭남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고 말씀을 합니다.

우리의 지체입니다. 아담의 지체도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도 있습니다. 성경은 이 두 지체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고 하는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육체의 지체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탄생이 된 영이 구원을 받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의 탄생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지체입니다. 육의 지체는 썩어 없어집니다. 그 썩는 것을 내 지체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내 지체가 아니라 이미 죽었습니다. 그 지체가 아니라 우리 안에 탄생이 되어 있는 그리스도의 생명이 우리의 지체라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모르면 사망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사망을 당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불의의 병기가 무엇이고 의의 병기가 무엇인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사람의 육체가 불의의 병기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얻어 내 안에 탄생이 되어 있는 영이 의의 병기입니다. 그 병기를 하나님께 드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을 받으라는 말씀입니다

드리라고 하니까 이 세상에서 무엇을 드리는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드리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가 구원을 받아 천국에 들어가야 드릴 수 있습니다.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은 드리고 싶어도 드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아무 것이나 드리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으로 도리어 저주를 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것을 받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이 시대 교인들은 불의의 병기를 드리면서 하나님께 받으라고 강요를 하고 있습니다. 정말 성경을 바로 알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가를 알아야 하는데 이 시대는 전혀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만이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릴 수 있습니까?

자기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아야 합니다.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면서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린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이렇게 두 가지를 비교를 해서 말씀을 하면 앞에 있는 것을 한 가지라도 하면 절대로 의의 병기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우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릴 수 없습니다. 율법을 지키면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거짓된 이야기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지체를 어느 한 가지라도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면 의의 병기가 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율법도 잘 지키고 예수 그리스도도 잘 믿으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될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성경을 몰라서 율법도 잘 지키고 예수 그리스도도 믿어서 영생을 얻으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순간 의의 병기가 될 수 없고 의의 병기가 되지 못하면 하나님께 드릴 수 없고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영생입니다

사도 바울은 계속해서 영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지 못하고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성경을 거의 거꾸로 보면서 불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려고 이스라엘과 같이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경계가 되어 있는데도 그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의의 병기입니다

그것은 내 안에 탄생이 되어 있는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그것을 하나님께 드리라는 말씀은 너희가 구원을 받으라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영생을 받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의의 병기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내 안에 탄생이 되어 있는 지체입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여러분은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으므로, 죄가 여러분을 다스릴 수 없을 것입니다.”

은혜 아래입니다

우리 성도는 법아래 있는 것이 아니라 은혜 아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죄가 우리를 주관치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죄가 우리를 다스리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는 성도는 죄가 주관치 못 합니다

법 아래입니다

성경을 이해를 못하고 있습니다. 법아래 있다는 말씀을 보고도 그 아래라는 단어의 의미를 모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지금 법 아래와 은혜 아래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두 가지를 비교를 해서 말씀을 할 때는 하나가 되면 하나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법아래 있으면 은혜 아래 있을 수 없습니다. 또 은혜 아래 있으면 법아래 있을 수 없습니다. 법도 지키고 은혜도 받고 할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래라는 단어의 의미를 안다면 절대로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성경을 보면서도 그 의미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마치 이와 같습니다.

북한에 사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 사는 사람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살 수 있고 북한에도 살 수는 없습니다. 반드시 어느 한 국가에 살아야 한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이중 국적을 허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북한이라는 나라의 법에 의해서 사느냐 아니면 우리나라의 법에 의해서 사느냐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둘 다 접촉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한 사람이 어디에 살든 둘 중에 하나에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도 받았고 율법도 지킨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사도 바울이 법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5:3절을 보겠습니다. (307)

내가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거 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

법 아래입니다

우리는 정말 성경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법아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이 너희가 법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다고 하는 그 말씀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법아래 있는 사람은 은혜 아래 있을 수 없고 은혜 아래 있는 사람은 법아래 있지 않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함께는 안 됩니다

율법도 지키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도 받는다는 이야기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지키면서 은혜라는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에서 안 된다고 하고 있는데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너무 자연스럽게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말을 바로 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모르면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성경에 반하는 말을 하고 있는지를 모르게 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분명히 법 아래와 은혜 아래를 비교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는 비교하는 의미를 모르다보니까 율법을 지키면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았다고 자연스럽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실상은 어떻습니까?

말이 안 되는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이 된다고 해서 함부로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말이 결국에는 사망에 이르게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도대체 무슨 말씀인가를 모르고 아무 생각이 없이 하고 있습니다.

법아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율법이 613가지가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저도 정확하게 세어 보지를 않아서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 아래 있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할례라는 율법을 지켰습니까? 그럼 그는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모든 율법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법아래 있는 것입니다.

내가 주일을 지켰습니까?

율법 중에 어느 한 가지를 지켰습니다. 그럼 그것을 지킨 것으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가 주어진다는 말씀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성도로 살아가기 위해서 어느 한 가지 율법을 지켰을지라도 그것을 지키는 순간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가 주어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율법을 하나를 지키면 율법 아래 있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전체를 지킵니까?

그 역시도 율법 아래 있는 사람입니다. 어느 한 가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그 사람도 그것으로 인하여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가 주어지기 때문에 율법 전제를 지키는 사람과 같아지게 되어 있습니다. 바로 이것을 법아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법 아래입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스라엘을 법아래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율법 전체를 지켰기 때문에 법아래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나는 율법 전체를 지키지 않고 어느 한 가지를 지키고 있습니까? 그럼 그 하나를 지킨 사람은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하나 지켰습니까?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가 있기 때문에 법아래 있다는 말씀입니다. 법아래 있다는 의미를 알아야 하는데 이스라엘과 같이 율법 전체를 행하는 사람을 보고 법아래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하나를 지켰어도 율법을 전체 행할 의무가 있다면 그는 법아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나는 율법을 하나만 지켰습니까?

그래서 법아래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아무리 법아래 있지 않다고 해도 성경이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가 있다면 율법 아래 있는 것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시대는 율법을 지키고 있으면서도 율법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억지를 부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에 십일조가 율법이라고 기록이 되어 있으면 율법입니다. 십일조를 하면서 율법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정말로 무식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일을 지키고 있습니까? 역시 안식일과 같이 지키고 있다면 그것은 율법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일이라는 말 자체가 율법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법아래 있습니다.

율법을 하나를 지켰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서 십일조를 낸다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에 십일조가 율법으로 기록이 되어 있으면 그는 율법 아래 있는 사람이고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가 주어진다는 말씀입니다.

은혜라는 말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감사라는 말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무엇이 은혜고 무엇이 감사합니까? 그 율법으로 저주를 받는데 은혜가 어디 있고 감사가 어디 있습니까? 법아래 있다는 의미를 전혀 모르고 법을 지킴으로 해서 사망이 왕 노릇하는데 은혜라고 말을 하고 있고 감사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온전한 정신이 있는 사람은 절대도 하지 못하는 말입니다.

지옥에 갑니다.

불 못에 던지웁니다. 그것이 은혜고 감사한 일입니까? 법아래 있으면 죄가 그 사람을 주관하기 때문에 반드시 지옥에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율법을 감사해서 지킨다고 하고 있고 은혜가 넘쳐서 지킨다는 궤변을 늘어놓고 있습니다.

있을 수 없습니다.

법아래 있는 사람에게는 은혜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는 감사할 일이 없습니다. 자기가 지옥에 들어가는데 그것이 감사합니까? 정신이 이상한 사람이 아니고는 그렇게 말할 수 없는데도 이 시대 교인들은 아무 생각이 없이 자기 혼까지도 빼앗겨서 말을 만들어서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만 법아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율법을 하나라도 지키면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가 있기 때문에 법아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죄를 짓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모든 행위가 죄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지 않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왜 율법을 지키고 있는가 하면 지체를 의의 병기로 드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지 않기 때문에 죄가 주관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그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말할 자격도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니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도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율법을 지키면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은 은혜를 받은 것이 아니라 사단에 의해서 저주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죄가 주관합니다.

율법을 지키게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지를 못하면 죄가 주관을 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이 영생을 얻지 못했으니까 율법을 지켰습니다. 의의 병기로 드리지를 못해서 죄가 그들을 주관해서 율법을 지키게 했습니다. 누가 율법을 지키게 했는가 하면 사단이 그렇게 했다는 말씀입니다.

죄가 주관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모두가 율법이 주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이 자기들을 주관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아니 율법에 의해서 미혹을 당해 율법을 지키고 있으면서도 율법이 아니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이스라엘은 율법을 지키면서 율법이라고 했는데 이 시대는 같은 율법을 지키면서도 율법이 아니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사망입니다

죄가 여러분을 주관하면 사망이 왕 노릇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그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깨닫지를 못하고 법아래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면서도 율법이 아니라는 이상한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 이 시대 기독교인들이며 종교에 세뇌가 되어서 그렇습니다.

법아래 있습니다.

그리고 은혜 아래 있습니다. 이 둘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어느 한 가지를 보면 어느 한 가지는 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는 이 동전의 양면을 다 보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면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 자 되어서 천국에 들어간다는 이상한 이야기를 아무 거리낌이 없이 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4:18절을 보겠습니다. (94)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은혜 아래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가난한 자에게 기쁜 소식이 은혜입니다. 거지 나사로가 구원을 받아 아브라함의 품에 있는 것이 은혜라는 말씀입니다. 율법의 의가 하나도 없어서 주님께서 거지 나사로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율법을 하나도 지키지 못한 그가 천국에 가는 것이 은혜입니다.

거지 나사로입니다

우리는 거지 나사로가 되어야 은혜 아래 있을 수 있습니다. 부자가 되어서 연락을 하면 절대로 은혜 아래 있을 수 없습니다. 율법을 한 가지라도 지키면 율법을 전혀 안 지킨 사람에 비해서 부자가 됩니다. 율법을 전체를 다 지켜도 부자가 되지만 율법을 단 한 가지만 지켜도 안 지킨 사람에 비하면 부자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은혜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율법의 포로가 되어 있습니다. 법이 우리를 주관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포로가 되어 있는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이 법을 지키니까 바벨론의 포로가 되게 하셨습니다. 성경에서는 바벨론은 율법을 상징하는 나라입니다. 율법주의에 빠지고 있는 이스라엘에게 율법의 포로로 사는 것이 어떠한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눈이 멀었습니다.

우리는 진리에 대해서 소경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참 빛을 비춰주셨습니다. 우리가 그 빛을 보는 것 자체가 은혜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법에 눌려 있었습니다. 우리는 법에 잡혀서 꼼짝을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습니다. 은혜가 무엇인가를 알아야 하는데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이 은혜입니까?

그것은 포로가 되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뜻과 마찬가지입니다.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가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들이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은혜라는 단어의 의미가 좋으니까 감성적으로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죄가 주관합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법아래 있습니다. 반드시 저주를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저주를 받는 사람은 은혜 아래 있을 수 없습니다. 또 은혜 아래 있는 성도는 가난한 자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가 은혜가 되고 있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고는 구원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 자체가 은혜입니다.

이 둘은 동전의 양면입니다

율법 아래 있는 사람은 은혜 아래 있을 수 없습니다. 또 은혜 아래 있는 사람은 율법을 지키지 않습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서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을 은혜라는 말로 너무 쉽게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은혜가 아니라 저주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두 가지를 비교를 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두 가지를 함께 하면서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법아래 있는 사람은 절대로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아니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불가능한 것을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가능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입니다

우리는 가난한 자입니다. 왜 가난한가 하면 율법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가난합니다. 거지 나사로와 같이 가난한 자입니다 그 가난한 자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가 은혜입니다. 그러나 율법을 지키게 되는 순간에 그는 세상에 대해서 부자가 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십일조를 내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서 내고 있습니까? 그런데 그 십일조를 내는 순간 십일조를 내지 않는 사람에 비해서 부자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하면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지키고 있는 단 한 가지의 율법이 그렇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는 부자가 아닙니까?

여러분이 십일조를 내고 부자가 아니라고 하는 것은 삼성 이건희 회장이 부자가 아니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삼성 이건희 회장도 빌게이츠에 비하면 가난한 사람입니다. 율법이라는 것을 바로 알고 은혜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성도는 은혜 아래 있습니다.

우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그 자체가 은혜라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아니고는 어떻게 우리가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릴 수 있습니까?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입은 성도만이 그 지체를 하나님께 의의 병기로 드릴 수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을 하나님께 드린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영생을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받는다고는 다 같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말로만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은혜 아래 있으려면 반드시 법 아래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전제 조건입니다

법 아래 있으면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먼저 법 아래 있지 말아야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것이지 막연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았다고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전제 조건을 무시하고 나는 무조건 은혜 아래 있다고 해서 은혜 아래 있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북한 주민이 있습니다.

그가 우리나라에 있다고 해서 있을 수 있습니까? 먼저 그가 북한에서 탈출을 해야 합니다. 북한에 있으면서 그가 우리나라에 있겠다고 해서 있어지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반드시 전제 조건이 북한이라는 나라에서 탈출을 해야 우리나라에 있을 수 있습니다. 북한 땅에 있으면서 우리나라에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북한에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는 대한민국 국민이 되겠다고 하면 어떻게 됩니까? 북한에서 그러면 너는 대한민국에 가서 살라고 합니까? 그것이 아니라 도리어 처벌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말로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북한이라는 나라에서 나와서 우리나라에 들어와야 대한민국 국민이 될 수 있습니다.

은혜 아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입어서 영생을 받았습니다. 그런 성도는 법 아래 있어서는 안 됩니다. 또 법 아래 있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고 싶다고 해서 받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북한에 있는 주민이 내가 대한민국에 살고 싶다고 해서 대한민국의 권리를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법 아래 있습니다.

그리고 은혜 아래 있습니다. 우리는 둘 중에 어느 한 가지 아래 있어야 합니다. 율법을 지키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았다고 하는 것은 성경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사람의 이성에는 가능할 수 있을지 몰라도 성경에서 아니라고 하면 안 됩니다.

성경을 왜 봅니까?

내 이성을 알아보기 위해서 보고 있습니까? 내 이성이 이렇게 생각이 되는데 성경도 그런가 해서 보고 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알아 믿음으로 구원을 받기 위해서 보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성경을 왜 보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도 자기들의 생각에 맞추고 있습니다.

깨달아지지가 않으면 지혜를 구해야 하는데 자기들의 이성이 그러면 그런 것이 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안 된다고 하면 절대로 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성경도 자기들 마음대로 보고 있습니다. 법 아래 있는 사람은 은혜 아래 있을 수 없다는 말씀을 보고도 율법을 지키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6:15절을 보겠습니다. (247)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우리가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에 있다고 해서, 마음 놓고 죄를 짓자는 말입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런즉 어찌하리요

성도는 사욕에 순종치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않고 있습니다. 다 율법을 지키지 않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지키지 않고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이렇게 드린 사람은 죄가 주관치 않습니다.

죄가 주관치 않는다는 말씀은 법 이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다는 말씀입니다 더 이상 율법이 주관치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아래 있어서 우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구원을 받은 사람이 이제 어찌하겠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법 아래 있지 않습니다.

율법을 지키지 않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법 아래 있다는 것은 율법의 포로가 되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법에서 자유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은혜 아래 있어서 구원을 받았는데 죄를 지을 수 있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성경을 잘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6장에서 말씀하고 있는 죄는 도덕적인 죄가 아닙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드리지만 이 죄를 거의 모든 목사들이 도덕적인 죄로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죄에 거할 수 있겠느냐고 하면서 도리어 율법을 지키게 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제3용도입니다

그것이 왜 생겼다고 생각합니까? 바로 로마서6장의 말씀을 잘못 해석함으로 해서 생겨났다고 생각합니다. 6장의 말씀을 도덕적인 죄로 생각하니까 죄에 거할 수 있겠느뇨 그럴 수 없다는 이 말씀을 보고 그래 은혜로 구원을 받았는데 죄를 지어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도덕법이라고 하면서 율법을 다시 살렸습니다.

제가 살인을 하라고 합니까?

제가 도적질을 해도 된다고 합니까? 이 세상에서 성도는 그들보다 더 높은 도덕적인 가치를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늘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것 역시 분복이기 때문에 그것을 가지고 정죄를 해서도 안 되고 정죄를 받아서도 안 됩니다. 그러나 성도는 세상의 법에 순복하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정말 안타깝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보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다는 이 말씀을 오해를 해서 율법의 제3용도라고 하면서 율법을 지키게 하고 있습니다.

정도가 넘어서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십계명의 의미도 전혀 모르는 그들이 십계명을 문자적으로 지키라고 하면서 도덕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목사들이 영생에 대해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술에 취해서 가르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을 오해를 하면 자기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사망의 길로 가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은혜 아래 있습니다.

성도는 법 아래 있지 않다고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율법을 지키고 있다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대해서 이야기를 할 자격도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고 있으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더 이상 무슨 말씀이 필요합니까?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않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를 보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지키지 않는 교회가 어디 있습니까? 정말 율법을 단 한 가지라도 지키지 않는 교회가 어디 있습니까? 율법을 말로는 폐했다고 하는 모든 교회도 역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들은 율법이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목사의 말입니다

그가 율법을 폐했다고 하면 율법이 폐해진 것입니까? 그 안에 있는 사람들도 너무 어리석습니다. 율법이 폐해진 것이 무엇입니까? 의문에 쓴 계명의 율법을 폐한 것입니다. 성경에 문자로 기록이 되어 있는 율법이 폐해졌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 안에 있는 사람은 이성도 없습니까? 아니 목사의 세치 혀에 사람들이 다 미혹을 당하고 있습니다. 차라리 이단이 더 정직합니다. 그들은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율법을 지킨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정말 문자 그대로의 율법을 지키면서 살아가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율법이 폐하여졌다고 하는 그 교회에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단보다 더 이중적인 삶을 살아가면서도 모르고 있습니다. 이단이 지키는 것은 율법이고 자기들이 지키는 것은 율법이 아닌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성경에 율법이라고 했으면 다 율법입니다. 그것을 자기들이 정통이라고 하면서 율법을 지킨다고 해서 율법이 아닌 것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은 그래도 정직한 사람들입니다. 인간적인 면에서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그들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율법을 율법이라고 정확하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자기들이 지키면 그것이 율법이 아니라 믿음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믿음이 됩니까?

야고보서의 행함이 있는 믿음을 모두가 거꾸로 해석을 하고 있어서 율법을 지키면서 행함이 있는 믿음이라는 어리석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는 율법을 지키지 않는 것이 행함이 있는 믿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믿음의 비밀을 모르는 사람들이 성경을 억지로 풀어서 율법을 지키는 것이 행함이 있는 믿음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행함이 있는 믿음입니다.

여기서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그리스도편지에 야고보서 강해를 통해서 충분히 설명이 되었습니다. 율법을 조상 대대로 지키면서 살았던 흩어져 있는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도 율법을 지키고 있는 것을 보고 주의 형제 야고보가 서신으로 보냈습니다.

율법을 지키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이제 너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면 법 아래 있지 않게 때문에 율법을 지키지 말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조상 대대로 율법을 지켰던 이스라엘에게는 사실 어려운 일입니다. 그들에게 행함이 있는 믿음을 보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율법을 지켜왔습니다. 우리나라에 기독교라는 종교가 들어오면서 율법을 지켜왔습니다. 더구나 그것을 행함이 있는 믿음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율법을 지키지 말라고 하면 도무지 받아들이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이해가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는 은혜고 율법을 지키는 것은 성도의 삶이라는 생각으로 굳어져 있습니다. 이미 할아버지 때부터 지켜 와서 매너리즘에 빠져 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율법을 지키지 말라고 하면 도리어 이상하게 생각이 되고 있습니다. 아니 어디서 이상한 이단이 와서 율법도 지키지 말라고 한다고 하면서 받아들이지를 못 합니다. next 5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