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로마서 강해(오직 믿음)

48-1,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윤주만목사 2024. 9. 8. 07:43

로마서6:1절을 보겠습니다. (246)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율법이 가입을 했습니다.

우리에게 율법을 주지 않았다면 우리는 사실 범죄를 하면서도 내가 범죄를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어떻게 깨달을 수 있습니까? 율법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그 율법을 보고 내가 어떤 범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도덕적인 죄가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 인생의 도덕적인 죄를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경을 사람의 이성에 따라 보면서 죄라고 하면 도덕적인 죄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창조하실 때부터 우리를 그 도덕적인 죄에서 구원을 해 주시기로 예정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세상 죄를 다 지고 가셨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스라엘이 그랬던 것과 같이 이 시대 역시 그 도덕적인 죄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 도덕적인 죄를 보면서 죄라고 하는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범죄를 하고 있습니다.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를 보고 정죄를 하는 그들이 사망이 왕 노릇하고 있는 범죄를 교회 안에서 마음껏 지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범죄를 더하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범죄를 더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아니 이제까지 교회사를 보아도 범죄를 더 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이 범죄에 대해서 알게 된 것만 해도 우리에게 얼마나 큰 은혜를 주시고 있는 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누가 압니까?

어거스틴이 알았습니까? 칼뱅이 알았습니까? 루터가 알았습니까? 웨슬레가 알았습니까? 조직신학을 정리한 루이스 뻘콥이 알았습니까? 아무도 모르는 이 범죄에 대해서 알게 해 주셔서 죄가 더하게 하고 있고 그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치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 유명하다고 하는 신학자들도 모르는 성경의 비밀을 지금 우리가 성령 안에서 교제를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지혜가 아닙니다.

오직 성령이 감동을 해 주지 않으면 알 수 없습니다. 이 시대 우리를 구원해 주시려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그리고 율법이 가입을 해서 죄가 더하게 하셨습니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치게 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영생에 이르게 하고 있습니다.

꿈만 같습니다.

시편에서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리실 때에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이 말씀이 실감이 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율법의 남편에게서 수치가 발견이 되었습니다. 반드시 죽어야 하는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은혜를 주신 것과 같이 지금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고 있습니다.

꿈같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교회 안에서 평생을 범죄만 하다가 사망이 왕 노릇하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그냥 죽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진노를 받게 된다는 것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래도 나름대로는 하나님을 위해서 성도로서 살려고 평생을 헌신을 했는데 그것이 다 가증한 일이었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꿈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편지를 통해서 교제를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정말 꿈같은 일이 우리에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은혜를 입는다는 것이 어떻다는 것을 이 시대 교인들은 절대로 깨달을 수 없습니다. 율법이 가입을 해서 범죄가 더한 것을 아는 성도만이 은혜가 더욱 넘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저 역시도 그렇습니다.

제가 이 복음의 비밀을 깨달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아니 예전에는 다른 복음을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그것을 복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셨습니다. 이 아카데미 강의를 통해서 교제를 하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더욱 은혜가 넘치게 역사를 해 주시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사망이 왕 노릇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천국에 간다고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다고 해야 맞을 것 같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주신 은혜를 주시면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하게 하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고 있습니다.

은혜입니다

저 역시도 이 율법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 얼마 되지 않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이 율법이 보이기 시작함으로 해서 죄가 더하게 되었습니다. 이제까지 율법을 지키면서 살았던 것이 얼마나 큰 죄인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율법을 통해서 은혜가 더욱 넘치게 되었습니다.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이 천만 명이라고 합니다. 우리보다 더 똑똑하고 지혜로운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은혜를 주시고 있습니다. 저는 정말 이 은혜를 생각하면 세상이 하나도 부럽지가 않습니다. 물론 세상을 사는 동안에는 조금 힘들지 몰라도 이 은혜가 있기 때문에 어떠한 일이 있다 해도 견딜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은혜가 더욱 넘쳤습니다.

여러분이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어디서 은혜가 넘치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성경 어디에서도 이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로마서5장에서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이 가입을 해서 범죄가 더한 곳에서만 은혜가 넘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 어디 다른 곳에서도 이러한 말씀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은혜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다는 말씀은 로마서에서만 하고 있습니다. 다른 어느 말씀에서도 은혜가 더욱 넘쳤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반드시 율법이 가입을 해서 범죄를 더한 곳에 은혜가 넘치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제까지의 어느 교회를 보더라도 은혜가 넘치는 곳은 없었습니다.

이 은혜입니다

넘치는 은혜입니다. 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은혜를 받아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은혜가 어떻게 넘치는지 조차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은혜가 넘쳐야 영생에 이를 수 있는데 범죄를 하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이성입니다

백번 생각해도 율법을 지키는 것이 옳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보면 모든 사람이 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 율법을 지키는 일이 가증한 일이라는 것을 사람의 지혜로는 도무지 깨달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아무리 이 복음을 전한다 해도 이것이 믿어지지가 않으면 안 됩니다. 한 성령 안에서 역사를 하고 있는 성도는 믿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지식으로만 받아들이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믿어지는 역사가 있어야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영생에 이르게 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영생에 이르게 하고 있습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율법을 완전케 하심으로 우리에게 의가 주어지고 있습니다. 이 의가 우리 안에서 왕 노릇하여 영생에 이르게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다 율법의 행위를 하면서 여호와 앞에서 가증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무엇이라고 말을 해야 하겠습니까?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여전히 죄 가운데 머물러 있어야 하겠습니까?”

공동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은혜를 더 받으려고 계속 죄를 지어야 하겠습니까?”

그런즉,

5장에서 아담의 범죄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담 한 사람의 범죄로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어느 정도 많은 사람이 죽었는가 하면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않았지만 역시 범죄를 했기 때문에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61절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도 거의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예전에 썼던 로마서 강해를 안 보아서 잘 모르겠지만 저 역시도 그렇게 오해를 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61절의 말씀을 거의 모든 사람이 율법을 범하는 도덕적인 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거의 모든 사람입니다

5장에서 범죄를 이해를 하지 못하다 보니까 6장에서 죄를 도덕적인 죄로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5장에서의 범죄는 율법을 지키는 범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율법을 지키는 죄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 범죄를 말씀하고 6장에서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꼭 그렇게 말을 합니다.

도덕적인 죄가 폐하여졌다고 하면 이제 마음 놓고 죄를 지어도 되겠네. 라고 말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사도 바울이 5장에서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쳤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쳤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또 은혜를 더하게 하려면 죄에 거해야 하겠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이 율법을 지키라고 지금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율법을 지키라고 말씀을 한 것이 아니라 율법이 가입을 해서 죄가 더해졌고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쳤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시대는 죄에 거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4:6절을 보겠습니다. (374)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죄에 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초대교회에서 사도 바울에게 복음을 들었던 사람들과 지금 이 시대 사람들과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할 때는 정말 복음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거의 2000년 가까이 기독교라는 종교에 의해서 복음을 듣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누가 복음을 전했습니까?

이제까지 교회사를 통해서 나오고 있는 인물 중에서 어느 누가 복음을 전했습니까? 복음을 듣고 믿고 있고 성령의 감동을 받고 있는 성도라면 이제까지의 교회사를 통해서 나타나고 있는 어느 사람도 복음을 전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릅니다.

이 시대는 로마서의 말씀도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율법이 가입을 해야 죄가 더하고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칠 수 있습니다. 로마서6장을 깨달으려면 반드시 율법이 가입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안타깝게도 율법이 가입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도리어 자기들이 율법에 가입을 해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어떻게 죄가 더 합니까?

율법을 지키는 가운데서는 죄가 더할 수도 없고 또 죄가 더하지 않으면 은혜가 더욱 넘칠 수도 없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로마서6장의 말씀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씀입니다. 그러다보니까 이 말씀을 보고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율법을 지키라고 하고 있습니다.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는 이 말씀을 보고 이 시대는 더욱 율법주의에 빠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율법을 지키는 죄에 거할 수 있겠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성경을 깨닫지를 못하니까 죄를 안 지려고 하면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참으로 성경은 하나님께서 눈을 열어 주시지 않으면 도무지 깨달을 수 없습니다.

거의 모든 목사들입니다

아니 이제까지의 로마서 주석이나 강해가 다 그렇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은혜를 더하게 하기 위해서 죄를 지어서 안 되니까 율법을 잘 지켜야 한다는 뜻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거꾸로 해석을 해서 모두가 사망에 길로 가고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어디로 가는지 조차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그것은 범죄입니다 그렇게 범죄를 하면 사망이 왕 노릇한다고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범죄도 모르고 있고 성경을 모르다보니까 도리어 죄에 더욱 거하고 있습니다. 죄에 거하지 않으려고 율법을 지키면서 범죄에 거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지혜입니다

그 한계에서 벗어나지를 못하면 모두가 사망에 이른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 사람의 지혜를 가지고 성경을 보면서 죄에 거하고 있습니다. 은혜를 더하기 위해서 죄에 거하는 것이 아니라 죄에 거하겠느냐는 그 말씀으로 인하여 율법을 지키면서 죄에 거하고 있는 것이 이 시대 교인들입니다.

율법을 지키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지금 율법을 지키는 것이 범죄라고 5장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율법을 지키는 것이 범죄라는 것을 가르쳐 주면서 그 율법을 지키는 범죄로 인하여 은혜가 우리에게 더욱 넘쳤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죄가 무엇이라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도덕적인 죄를 죄라고 하는 것은 이 세상 사람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 초보에 머물러 있으면서 자기들이 성경을 알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죄에 거하고 있는 그들은 분명히 말씀을 드리지만 안 믿는 사람입니다.

야고보서입니다

우리가 강해를 통해 교제를 나누어서 잘 알고 있습니다. 행함이 있는 믿음이 무엇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자유하게 하는 율법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율법을 보고 행하는 자를 행함이 있는 믿음이 있는 성도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완전케 하신 그 율법을 보고 믿는 성도는 문자적인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에게 은혜를 주시고 있습니다. 그 은혜가 무엇인가 하면 하나님께서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교만한 자입니까? 교회 안에서 정욕을 따라 살면서 간음하는 자가 교만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만합니다

이 시대는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말씀하고 있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는 말씀을 깨닫는 사람이 없습니다. 누가 죄에 거하고 있는가 하면 교만한 자들이 죄에 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죄가 더한 곳에 더욱 은혜가 넘치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것을 알아야 깨달을 수 있는데 기초를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면 그마나 다행입니다.

그 정도의 사람이라면 은혜를 더할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히 있습니다. 그것을 모르다 보니까 이 시대는 야고보서의 말씀과 같이 정욕으로 살면서 교회 안에서 간음을 하면서도 그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도리어 그것이 믿음이라고 하면서 교만한 자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물리치십니다.

죄에 거하고 있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물리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고 있지만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 교만한 자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교만이 어디서 오는가 하면 자기 정욕에 따라 율법을 지키는데서 온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죄입니다.

그러나 죄인 줄도 모르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를 짓고 있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지키는 것이 죄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도리어 죄에 거하고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그 죄에 거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죄도 모르는 그들이 죄에 있으면서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하는 것이 사실 얼마나 교만한 말입니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더욱 큰 은혜를 주시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은혜를 어떻게 더할 수 있는지 조차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은혜라는 단어를 보면서 세상에서 사용하는 온갖 미사여구를 써서 감성을 자극하는 말로 하고 있습니다.

죄에 거하겠습니까?

죄를 알고 죄에 거하겠다고 한다면 그나마 가능성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죄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기들의 정욕을 주체를 하지 못하고 죄에 거하고 있으면서도 은혜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이 복음을 전해 보시기 바랍니다. 지혜가 없으면서도 대적을 하면서 자기들이 하나님을 아주 잘 믿고 있다고 교만하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가장 교만합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거절하는 자가 가장 교만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성도가 겸손합니다. 이 교만과 겸손도 모르고 있습니다.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는 이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복음을 전해 보아야 도리어 거치는 것이 되고 말 것입니다.

갈라디아서5:1절을 보겠습니다. (307)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은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로 영생에 이르렀습니다. 이 영생에 이르기 위해서는 갈라디아서를 통해서 반드시 율법을 지키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갈라디아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자유가 무엇인가 하면 율법을 지키지 않는 자유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유 하는 자가 있습니다.

그리고 종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는 이 두 사람이 있는데 자유 하는 자는 율법을 지키지 않고 있고 종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율법 613가지를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단 한 가지라도 율법을 지키고 있으면 그는 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자유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우리 성도들에게는 은혜입니다. 율법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는데 주님께서 우리에게 자유를 주신 것은 은혜입니다.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없으면 저주를 받아야 하는데 주님이 그 율법을 폐하심으로 우리를 자유케 하셨습니다.

그런데 종이 되었습니다.

무엇에 대해서 종이 되었는가 하면 죄의 종이 되었습니다. 누가 죄의 종이 되었는가 하면 이스라엘의 바리새인들이 죄의 종이 되었다고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의 말씀이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죄의 종이 되었다는 말씀을 깨달아야 죄에 거하지 않을 수 있는데 이 시대는 죄를 모르고 있습니다.

로마서입니다

은혜를 어떻게 더할 수 있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은혜가 넘친다고 해서 사도 바울이 죄에 거하겠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갈라디아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케 하셨으니까 이제 더 이상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안타깝습니다.

사실 로마서에서 죄를 알아야 합니다. 범죄가 무엇이라는 것을 알아야 갈라디아서의 말씀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범죄가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경은 계속해서 율법을 지키지 말라고 여러 가지를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는 도리어 굳세게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은혜를 더하게 합니까?

그것이 아니라 은혜를 폐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는 이 말씀은 죄에 거하면 은혜를 폐할 수 있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종이 되어서 단 한 가지라도 율법을 지키고 있는 모든 사람은 은혜를 폐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종입니다

그것은 죄에 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에서는 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로마서에서는 죄에 거하겠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죄에 거하고 있는 사람은 종이 되어서 멍에를 메고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폐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성경을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 교인들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은혜 되지 못하게 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죄에 거함으로 해서 은혜를 은혜 되지 못하게 하고 있지만 죄에 거하고 있는 그들이 아니 율법을 지키고 있는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죄에 거하겠느뇨

죄에 거하지 말라는 강한 말씀입니다. 죄에 거하면 은혜를 받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죄가 더해서 은혜를 더욱 넘치게는 할 수 있지만 죄에 거하는 순간 여러분이 아무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고 그의 은혜를 말한다 해도 은혜가 폐해진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굳세게 서시기 바랍니다.

믿음에 굳게 서시기를 바랍니다. 그런 성도만이 죄에 거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아니 성경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성령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사람의 이성은 백번 생각해도 죄에 거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생각이 되어 지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시지 않으면 누구라도 죄에 거하는 것이 은혜라고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강해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의 만찬을 나누고 있습니다. 죄에 거하고 있는 사람이 이 말씀을 듣고 본다고 해서 죄에서 빠져 나올 수 있습니까? 절대로 그런 일이 없습니다. 반드시 성령이 오셔서 그 안에서 역사를 해서 죄가 무엇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죄에 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지키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자는 죄의 종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은혜로 자유 하는 성도입니다. 사도 바울이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는 이 말씀을 보고 은혜를 받은 성도는 죄를 짓지 않는다고 하면서 도리어 죄에 거하는 율법을 지키는 일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거하겠느뇨

그럴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죄에 거하고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 로마서6장은 이 죄에 거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영생에 이른 성도는 절대로 이 죄에 거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로마서6:2절을 보겠습니다. (246)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공동번역을 보겠습니다.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이미 죽어서 죄의 권세에서 벗어난 이상 어떻게 그대로 죄를 지으며 살 수 있겠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공동번역에서는 절대로 그럴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절대로 그럴 수 없다는 이 말씀을 모르다보니까 도리어 율법주의로 깊이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죄에 거할 수 없다는 이 말씀 때문에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모르면 사망입니다

성경을 모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그에게 재앙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마음껏 즐기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비유하신 한 부자와 나사로의 말씀과 같이 교회 안에서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의 행위를 보면서 연락을 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통곡입니다

누구에게 통곡의 날이 오는가 하면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통곡의 날이 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모르면 차라리 안 믿는 것이 그에게 더 유익합니다. 차라리 예수 그리스도를 안 믿고 사는 것이 더 유익하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정말 안타깝습니다.

가슴에서 더할 수 없는 슬픔이 오고 있지만 제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그저 기도나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사람들은 그저 교회에 나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영생에 이르는 것으로 생각하면서 자기 가족들에게 친지들에게 그리고 친한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든지 교회 안에 들어오게 만들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사촌 동생이 죽었습니다.

암이라는 병으로 죽었습니다. 그 동생이 참으로 세상에서 선하게 살려고 노력을 하면서 살았습니다. 여러 가지 많은 일을 하고 갔지만 생각만 해도 안타깝기만 합니다. 그런데 장로교를 다니다가 우연하게 안식일 교회를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분명히 말씀을 드립니다.

지금 이 시대 장로교에 다니고 있는 사람은 안식일 교회에 교인들과 교제를 하면 거의 80%이상은 안식일 교인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더구나 도덕적으로 살기를 원했던 사람은 거의 100%가 안식일 교회의 교인이 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 동생의 부탁입니다

자기 어머니가 교회에 나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을 할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병으로 치유를 받고 있고 그런 과정에서 연세가 드신 고모가 동생을 따라 교회에 나가게 되었고 그 동생이 죽고 나서는 안식일 교회를 다니고 있습니다. 연세가 드셔서 총기도 다 사라져 있는 고모를 교회에 들어가게 하고 죽었습니다.

이 시대 교회입니다

어느 교회가 죄에 거하지 않고 있습니까? 어느 교회가 죄 가운데 살지 않고 있는 교회가 어디 있습니까? 더구나 안식일 교회는 장로교보다 더 율법주의입니다. 그들은 구약에 안식일을 그대로 지킨다고 하고 있고 돼지고기도 부정하다 해서 먹지를 않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가슴이 먹먹합니다.

동생이 죽고 나서 고모를 찾아뵈었는데 이제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믿겠다고 하면서 안식일 교회를 다닌다고 합니다. 정말 그럴 때마다 참담함을 느끼면서도 제가 어떻게 할 수 없어서 답답하기만 합니다. 복음을 알고 있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서 죄에 거하고 있지 않지만 죄에 거하는 그 교회에서 꺼낼 수 없다는 것이 더 안타깝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제가 율법을 지키는 것이 죄라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더구나 안식일 교회에 다니고 있습니다. 아마도 제가 더 이상한 놈으로 생각이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를 통해서 죄에 거하는 사람들에게 그럴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아니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에게 그럴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점점 더 율법주의로 가고 있습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저는 이 강해를 쓰면서 정말 가슴이 아픕니다. 그럴 수 없는 일을 지금 이 시대 교회는 다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에게 그럴 수 없다고 사도 바울을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지만 사람들은 다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고 있지만 다 소경이 되어서 죄 가운데 살면서도 자기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 교회를 보면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그들로 인하여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망에 이르고 있습니까? 그럴 수 없는 일을 하면서 사망이 왕 노릇하는 그 일을 하면서도 그 일에 열심을 내면서 어떻게 하면 한 사람이라도 더 죽일까를 고민하고 그것을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간곡합니까?

사도 바울이 그럴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때 이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까? 있을 수 없는 일을 할 때 이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도 도무지 있을 수 없는 일 그러니까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을 할 때 이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사람의 상식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을 할 때 그럴 수 없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절대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는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사망이 왕 노릇하게 하고 있는데도 누구 하나 깨닫지를 못하고 있고 지혜를 구할 생각도 하지 않고 종교에 의해서 매너리즘에 빠져 있습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모두가 죄 가운데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떻게 한 교회도 그렇지 않은 교회가 없습니까? 정말 화가 납니다. 사망에 왕 노릇하게 하고 있으면서도 전혀 죄의식조차 느끼지 않고 그것이 하나님을 위하는 성도의 삶이라고 하면서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을 보면 화가 납니다.

원수입니다

왜 율법이 원수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바리새인들이 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는 성경을 본다고 하는 그들이 다 소경이 되어서 소경을 인도하다가 둘 다 구덩이로 빠지고 있습니다.

정말 가슴이 아픕니다.

어떻게 성경을 보면서 누구 하나 지혜를 구하지 않고 있다는 말씀입니까? 지금 우리나라만 해도 교회가 얼마나 되고 그 안에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됩니까? 그들은 그래도 남이니까 그런대로 참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 가족이 이 종교에 미혹이 되어서 그 안에서 그럴 수 없는 일을 하다 죽은 것을 생각하면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차라리 열심이나 안 냈으면 얼마나 좋았습니까?

그럴 수 없는 일을 하는 그들이 더욱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로마서6장을 시작하면서 가족을 생각하니까 화가 나서 참을 수 없습니다. 그들이 누군가 하면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그렇게 앞장서서 함으로 해서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을 했습니다.

기도도 못 합니다

이미 그 육체가 죽은 사람을 위해서 기도를 해 본들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가슴이 아프고 화가 나기도 하지만 이 시대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복음을 깨닫게 하시고 또 죄 가운데서 살지 않게 역사를 해 주심으로 우리가 은혜를 입고 있습니다. next 4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