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로마서 강해(오직 믿음)

16-2,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윤주만목사 2024. 6. 15. 17:12

디모데후서4:16절을 보겠습니다. (346)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저희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

변명을 합니다.

성경의 단어는 거의 거꾸로 라고 보면 됩니다.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을 한다고 하니까 나쁜 의미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정말 국어의 문법을 바로 이해하지 못하면 성경을 아무리 본다 해도 그가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저주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저는 늘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 성경을 깨닫게 해 주신 것이 은혜라고 믿고 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사람의 이성으로는 이 성경이 풀리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정말 잘난 것이 하나도 없는 저 같은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은혜의 복음을 깨닫게 해 주시고 있습니다. 더구나 세상 종교인들과는 전혀 다르게 진리로 인도함을 받게 해 주시고 있다는 자체만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사람의 율법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성도가 받은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이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느 말을 들을 것 같습니까? 아마도 우리 성도가 전하는 이 율법에 대해서 어느 누구도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로마서의 말씀입니다

두 가지의 율법을 가지고 사도 바울이 같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말씀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의 이성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 이해가 안 되는 다수의 사람에게 그것을 이야기를 하려고 하면 당연히 변명이 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다수의 사람의 생각과 아주 극소수의 사람의 생각이 충돌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변명을 합니까?

율법이 있는 이스라엘이 변명을 해야 합니까?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가지고 있는 사도들이 변명을 해야 합니까? 세상 법정에 가서도 말이 안 됩니다 당연히 사도들이 가지고 있는 율법에 대해서 변명을 해야 하고 그때 때로는 그 말을 듣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말씀입니다.

복음을 전해 보시기 바랍니다.

복음을 전해본 사람만이 알고 있습니다. 다수의 사람들에게 이 복음을 전해 보시기 바랍니다. 같이 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아무리 변명을 해 보아야 소용이 없습니다. 분명히 성도들에게는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이 있지만 그것을 이야기를 하니까 더구나 사도 바울인데도 나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초대 교회입니다

그래도 그때는 처음 복음이 전파가 될 때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역사를 해 주셨습니다. 지금 이 시대는 더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편지를 통해서 이렇게까지 율법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정말 때로는 함께 하는 자가 하나도 없는 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의 만찬을 나누고 있습니다.

적은 숫자지만 서로 의지가 되고 있습니다. 정말 한때는 이 아카데미 강의를 듣는 성도가 불과 2-3명이 있을 때는 사도 바울이 지금 말씀하는 것이 실감이 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복음 안에서 교제할 수 있게 하고 있습니다.

다 버립니다.

우리 성도는 때로 그러한 일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변명을 해 보아야 소용이 없습니다. 아무리 사람의 율법이 잘못되었고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에 대해서 말씀을 해도 사람들이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이 지금 그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에게 율법에 대해서 변명을 해 보아야 이해가 안 되기 때문에 도리어 해를 입히고 있습니다.

복음입니다

정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 누구에게 이 복음을 주셨습니까? 아무리 찾아보아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 성도들을 긍휼히 여겨 주셔서 사람이 율법의 아니라 구원을 받는 자유하게 하는 율법을 성경에서 성령의 감동으로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든든히 서시기 바랍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성도는 이 세상에서 외롭습니다.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주 적은 성도만이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믿음으로 우리가 아무리 변명을 해 보아야 세상의 이성으로는 이해가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누가 증거를 해 주고 있는가 하면 내 양심이 성령으로 더불어서 내 안에서 증거를 해 주고 있습니다. 누가 이 증거를 받아들일 수 있습니까? 사람의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우리가 변명을 아무리 해 보아도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야고보서1:21절을 보겠습니다. (372)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어 버리고 능히 너희 영혼을 구원할 바 마음에 심긴 도를 온유함으로 받으라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입니다

참 성경이 어렵습니다. 아니 사람들이 이 말씀을 보고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라고 하면서 율법을 지키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 로마서를 강해를 하면서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가 어디 있습니까?

마음에 새겨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런 말씀들은 생각하지 않고 율법의 행위를 나타낸다는 말씀만 보고 있습니다. 이 율법의 행위가 사람이 지키고 있는 율법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율법이 아니라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버리는 율법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율법입니다

그것을 지키는 것이 악입니다. 그리고 사람이 행하고 있는 율법을 더러운 옷과 같다고 이사야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라고 하니까 이 시대는 도리어 넘치는 악을 행하고 있고 그것이 얼마나 더러운 것인 줄을 모르고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지금 교회 안에서 지키고 있는 율법의 행위는 이스라엘에게 있는 율법이고 그 율법이 넘치는 악이고 더럽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넘치는 악입니다

그리고 더러운 것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그것을 행하는 것에 열심을 내면서 하나님의 진노를 쌓고 있습니다. 자기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율법을 지키면서 넘치는 악을 행하고 있고 그것으로 자기를 더럽게 하는데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악이고 무엇이 더러운 것인 줄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율법, 사람이 지키는 율법이 있습니다.

그리고 마음에 새긴 율법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진노를 받을 사람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을 받을 성도는 자기 마음에 새긴 자유 하는 율법을 따라 나타내고 있습니다. 어떻게 나타내고 있습니까? 사람이 지키고 있는 율법의 행위를 하지 않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자기 마음에 새기고 있으면 더 이상 율법을 지키지 않습니다.

성경 너무 쉽게 봅니다.

앞에 있는 말씀을 전혀 모르니까 뒤에 있는 말씀, 율법의 행위를 나타낸다는 그 말씀만 가지고 율법을 지키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국어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가 아무리 헬라어에 능통해서 헬라 사람과 같이 언어를 한다 해도 이 말씀을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구원입니다

그것을 야고보가 능히 너희 영혼을 구원할 바 마음에 심긴 도를 온유함으로 받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계속해서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마음에 심긴 도를 온유함으로 받아야 하는데 이 시대는 로마서에 사도 바울의 말씀과 같이 고집을 부리고 있습니다.

온유하시기 바랍니다.

성경 말씀에 온유하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이성적 지식을 가지고 고집을 부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가지고 고집을 부리니까 사도 바울이 아무리 변명을 해도 듣는 사람이 없고 사도 바울을 버리고 있습니다. 왜 사도 바울을 버렸는가 하면 자기 마음에 새긴 율법이 무엇이라는 것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너희 영혼을 구원할 바 마음에 심긴 도를 온유함으로 받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그런데도 온유함으로 받는 것이 아니라 고집을 부리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에게 있던 그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야고보서2:26절을 보겠습니다. (373)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행함이 있는 믿음입니다.

이미 야고보서 강해를 통해서 분명히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도 야고보서 강해를 보고도 그것을 지식으로만 알고 있고 행함이 있는 믿음을 보이지 않고 있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행함을 보이지를 않고 있으면서도 전혀 두려워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믿습니까?

사람의 율법을 지키고 있다면 여러분이 믿는다고 하는 것은 죽은 믿음이라고 야고보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죽은 믿음이라는 말씀은 믿음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는데 믿음이 없다면 그는 사는 것이 아니라 저주를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으면서도 믿고 있다고 하는 것은 자기에게 스스로 속고 있는 사람입니다. 마음에 심긴 도를 온유함으로 받았습니다. 그런 성도는 이제 행함이 있는 믿음을 보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야고보서의 말씀을 바로 가르쳐 줘도 행함이 있는 믿음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같은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가 있습니까? 이제 그것이 나타난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지킨다는 것이 아니라 온전한 율법이 마음에 새겨 있으면 더 이상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이 성경을 보면서 거꾸로 이해를 하고 있으면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성경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자기에게 있는 율법이 무엇인가를 모르면 죽습니다. 율법이 있는 이스라엘이 율법의 행위를 나타냈습니다. 그런 그들을 주님께서 마귀의 자식들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율법이 있고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는 이스라엘이 마귀의 자식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방인입니다.

우리에게는 율법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초대 교회는 지나오면서 거의 모든 교회가 율법이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유명하다고 하는 모든 신학자가 그렇게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 이방인에게는 율법이 없다고 말씀을 하는데 신학자들은 한 결 같이 율법이 있다고 말을 해서 율법을 지키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율법이 없습니다.

그런데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해서 우리에게 율법이 있습니다. 그 율법이 무엇인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전케 하신 율법입니다. 그 율법이 어디에 있는가 하면 양심에 있습니다. 성령이 나와 더불어서 우리에게 증거를 해 주고 있는 율법입니다.

그 율법이 있습니다.

그러면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낸다는 말씀입니다. 어떻게 나타내고 있는가 하면 이스라엘에게 있던 율법을 지키지 않는 것이 마음에 새긴 율법을 나타내는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그 율법의 행위가 나타나야 하는데 이 시대는 거꾸로 이스라엘이 지켰던 율법의 행위가 나타나면서 진노를 쌓고 있습니다.

율법 성도의 마음에 새겨 있습니다.

이제 그것을 나타내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만약에 그 율법을 나타내지를 않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진노를 쌓고 있는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절대 다수의 사람이 이 율법도 모르고 있고 율법의 행위도 나타내지 않으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죽은 믿음입니다.

자기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지 않고 있는 사람의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야고보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 믿음이 죽은 믿음인지 살게 하는 믿음인지도 모르고 그저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사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시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거의 모든 사람의 믿음이 죽은 믿음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들은 자기 마음에 새긴 율법이 없어서 성경을 보고 이스라엘과 같이 문자적으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야고보가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살기 바랍니다.

교회에 나와서 죽는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자입니다. 이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이 불쌍한 것이 아니라 행함이 있는 믿음이 없어서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이 불쌍합니다. 그들은 넘치는 악을 행하고 모든 더러운 것을 너무도 소중히 여기면서 그것을 가지고 천국에 가겠다고 하면서 율법의 행위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로마서2:16절을 보겠습니다. (241)

곧 내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 날이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이런 일은, 내가 전하는 복음대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내세우셔서 사람들이 감추고 있는 비밀들을 심판하실 그 날에 드러날 것입니다.”

이런 일입니다

어떤 일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로마서21절부터의 일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남을 판단하는 사람은 자기가 판단하는 그것이 정죄를 하는 것이고 그것으로 자기가 정죄를 받는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이 시대 율법을 가지고 남을 판단하는 사람은 정말 죽을 때까지 그것을 모르고 하게 되어 있습니다.

고집을 부리고 회개를 하지 않습니다.

넘치는 악을 행하면서도 자기가 진노를 쌓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절대 다수가 악을 행하면서도 그것이 자기에게 진노가 되고 있다는 것을 모르면서 교회 안에서 그 일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심판을 받아 진노를 쌓고 있으면서도 자기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주 잘 믿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당을 짓고 있습니다.

이 시대 교회는 전부 당을 짓는 교회라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주님의 교회를 자기들 마음대로 당을 만들어서 어느 교회라고 이름을 붙이고 있습니다. 그러한 행위를 하면서도 교회가 정통이라는 간판만 내 걸면 모든 것이 다 용납이 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악을 행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드리지만 악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세상에 이성적 지식으로 알고 있는 악만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누가 악을 행하고 있는가 하면 교회 안에 있는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십자가에 반하는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면서도 그것이 악한 일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율법이 없습니다.

그리고 범죄를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서 오셔서 이루신 율법이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교회 안에서 회개를 하지 않고 자기가 지키는 그 율법을 보고 마치 율법이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2장에서 계속해서 율법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이 다 같은 단어로 기록이 되어 있지만 전혀 다른 율법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복음입니다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입니다. 이 시대는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말로는 누구나 복음이라고 하지만 사도 바울이 전하고 있는 복음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을 모르면서 아니 성경을 모르면서 막연하게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복음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분명히 지금 로마서1장부터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복음을 말씀하면서 율법에 대해서 그리고 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입니다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복음을 막고 있는 것이 있다고 말씀을 하면서 불의로 진리를 막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해서 끝이 아니라는 것을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면서 지금까지 불의로 진리를 막고 있는 것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7:22-23절을 보겠습니다. (10)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두려워하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누구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까? 양의 옷을 입고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가 있는 거짓 선지자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에서 사도 바울이 말씀한 것과 같은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사람에 이성에는 어떻게 보이는가 하면 겉은 양의 옷을 입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자기가 양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를 보는 모든 사람도 양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노략질 하는 이리라는 말씀입니다. 거짓 선지자는 이렇게 자기도 모르고 그를 보고 있는 사람도 모르기 때문에 주님이 오셨을 때 내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선지자입니다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자기가 모르고 그에게서 듣던 사람도 모르고 있습니다. 왜 모르는 가를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통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모르니까 율법을 지키면서 불의로 진리를 막고 있으면서도 모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들이 진리에서 벗어나면 징계를 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히브리서에서 무엇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징계를 누가 받습니까? 교회 안에 있는 사생자는 징계를 받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거짓 선지자는 징계를 받지 않고 죽을 때까지 거짓 선지자로 살아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말에 미혹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목사가 잘못하면 하나님이 징계를 하십니까? 그를 육적으로 징계를 하셔서 그가 알고 또 교인들이 알게 해 주십니까? 절대로 그런 일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마태복음에서도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그들이 양의 옷을 입고 선지자 노릇을 하고 있지만 죽어서 주님을 만날 때까지도 자기가 무슨 일을 했는지를 모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착각에 빠져 있습니다.

자기들이 잘못을 하면 하나님께서 징계를 하시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미 진리를 불의로 막고 있으면서 교회 안에서 악을 행하고 있는 그 사생자에게 하나님께서 징계를 하신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우리에게 성경을 주셨습니다. 이제는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대로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주여 주여 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뭐라고 말씀을 하십니까?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가 너희를 도무지 모르니까 내게서 떠나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누군가 하면 교회 안에서 양의 옷을 입고 선지자 노릇하는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들이 누군가 하면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이제까지 말씀을 한 그 사람들이라는 말씀입니다.

진노를 쌓고 있는 사람입니다

악을 행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하고 있으면서도 자기가 누구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실제 이 시대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 자기들이 악을 행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복음을 알고 있는 성도는 그것이 악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율법을 지키는 악을 행하는 사람은 죽을 때까지 깨닫지를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분명히 심판이 있습니다.

성경은 계속해서 심판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심판을 받는가 하면 이 세상 죄인이 심판을 받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악을 행하고 있는 사람이 심판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누군가 하면 교회 안에서 진노를 쌓고 있는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은 모릅니다.

누가 모르는가 하면 교회 안에서 주여 주여 하고 있는 사람들이 모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모르면서도 자기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가 하면 양의 옷을 입고 선지자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자기 속에 이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하면 이리가 들어 있는 사람도 모르고 그에게 속고 있는 사람도 모릅니다.

왜 모릅니까?

그들이 행하는 불법을 불법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주의 일로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불법을 행하면서도 그것이 사람의 이성에는 불법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주의 일로 보이기 때문에 이들이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에 내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심판을 받습니다.

성경은 이 심판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말씀하신 비유를 보아도 자기들이 심판을 받는다는 것을 꿈에도 모르고 있습니다. 한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서도 그 부자는 호화로이 연락하면서 율법의 의로 고운 베옷과 자색 옷을 입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불의라는 것을 모르다가 음부의 고통 중에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심판을 받습니다.

심판을 받을 사람이 알고 있느냐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까지 절대로 모릅니다. 초대 교회를 지나오면서 이제까지 수많은 교회들이 있었지만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이 불의고 악이라는 것을 깨달은 사람이 거의 없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누가 알았습니까?

만약에 그래도 신학자라고 하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알았다면 지금 이 시대는 이렇게 율법주의에 빠지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징계를 하셨다면 절대로 율법을 지키지 않고 오직 믿음으로 사는 성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 날까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똑같은 말씀을 누가복음에서 말씀을 하시면서 마지막에 슬피 율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습니까? 만약에 자기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는 것을 알았다면 슬피 울며 이를 갈 필요가 없습니다. 아니 처음부터 그것을 알았다면 마땅히 받아들일 것입니다

하지만 어떻습니까?

주여 주여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습니다. 다른 사람은 구원을 못 받아도 자기들만은 구원을 받는다는 것에 대해서 조금도 의심을 하지 않았습니다. 만약에 그들이 자기들이 하는 행위가 율법이 없는 악한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절대로 그런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모릅니다.

심판하시는 그 날까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말씀하고 또 불의로 진리를 막는 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로마서를 시작하면서부터 가르쳐 주고 있지만 사람들은 이 성경을 보면서도 자기들이 불의를 행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주님이 내가 너희를 도무지 모른다고 하시니까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됩니다.

마태복음25:11-12절을 보겠습니다. (43)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대답하여 가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열 처녀의 비유입니다

달란트의 비유입니다. 그리고 양과 염소의 비유입니다. 이 비유들이 다 누구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어느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인가 하면 복음이 전파되고 있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 교회입니까?

사실 이 세 가지의 비유와는 해당이 안 되는 교회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지금 로마서에서 사도 바울이 말씀하고 있는 것이나 주님이 마태복음25장에서 말씀하는 3가지의 비유는 같습니다. 누구에게 하고 있는 말씀인가 하면 복음이 전해지고 있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복음이 안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사실 이 비유에도 해당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비유 조차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저 마태복음7장의 말씀과 같이 거짓 선지자로 살아가면서 양의 옷을 입고 있는 이리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심판하시는 그 날입니다.

성경말씀을 자세히 보시기 바랍니다. 심판하시는 그 날에 누가 심판을 받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교회 밖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 심판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복음이 비밀이다 보니까 사람들은 심판을 받을 때까지도 자기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조차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열 처녀의 비유입니다.

성령이 오시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달란트의 비유입니다. 자기에게 생명의 달란트가 없는데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복음이 전해지고 있는 교회 안에서 그런 사람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양과 염소로 나누어서 양은 오른 편에 염소는 왼편에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모릅니다.

주님이 오실 때까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이 시대 교회를 보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서 다섯 처녀가 있습니까?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 그리고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이 있습니까? 주님께서 게으르고 악한 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자기 생명에 대해서 너무 무관심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심판하실 그 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복음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성경에서 복음만 보면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그 의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는 사람들의 눈이 감겨져 복음을 못 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편지를 통해서 아무리 복음에 대해서 말씀을 해도 심판을 받을 일만 골라서 하고 있습니다.

불의를 압니까?

악을 압니까? 그렇다고 해서 율법을 알고 있습니까? 이 시대는 이 세 가지를 다 모르고 있습니다. 어느 한 가지라도 알아야 그 날에 임할 진노를 쌓지 않을 수 있는데 아무 것도 모르고 그저 성경을 자기들의 이성을 따라 보고 있습니다.

은밀한 일입니다

사람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이 은밀한 일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불의도 모르고 있고 악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고 율법이 자기에게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이 누군가 하면 바로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입니다. 이들이 누구로 인하여 심판을 받는가하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들이 한 은밀한 것이 다 나타나 심판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에베소서5:12절을 보겠습니다. (315)

저희의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움이라

사람들의 은밀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심판을 하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은밀한 것이 무엇인가 하면 열매가 없는 어두움의 일이 사람들의 은밀한 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지만 생명을 얻지 못하는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행위를 은밀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두움의 일입니다

사람들이 이 어두움의 일이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율법으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으로는 구원을 받는 사람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으로는 천국의 열매가 없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절대 다수의 사람들은 이 어두움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열매가 없습니다.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은밀한 것이 바로 이 율법의 행위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 역시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모두가 참여를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습니다.

주님이 오셔서 참 빛을 비춰주셨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핑계할 것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주님이 오셔서 사람이 하는 모든 은밀한 일이 다 불의가 되고 악이 된다는 것을 보여 주셨지만 사람들은 이스라엘과 같이 어두움에 거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에서 주님이 오신 것을 참 빛이 어두움에 비추매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보시기 바랍니다.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빠져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빛이 무엇인지 어두움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어두움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두움의 은밀한 일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심판을 하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은밀히 행하는 일입니다

사전적인 뜻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은근하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율법의 행위를 어두움이라고 말씀하고 있고 어두움이 은밀하다는 것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이성에는 이 어두움의 일이 빛으로 보이고 있고 영광으로 보이기 때문에 그것을 진리로 보고 있지만 실상은 불의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은밀하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의 행위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면 그것은 어두움이 아니라 참 빛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어두움이라고 말씀하고 있고 은밀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은밀히 행하는 것을 부끄럽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부끄러움을 당합니까?

불의로 진리를 막는 자가 부끄러움을 당하게 됩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돼서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그 말씀대로 살게 됩니다. 영생에 있어서 복음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지만 율법은 부끄러움을 당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율법의 행위가 부끄럽다는 것을 주님이 오심으로 해서 드러나고 사람들을 심판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사도 바울이 전하고 있는 복음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이 복음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심판하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교회 안에서 불의를 행하고 또 악을 행하면서 진노를 쌓고 있습니다.

저희의 은밀히 행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단어의 뜻을 생각하지 말고 성경에서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가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이 은밀히 행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열매가 없는 어두움의 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심으로 해서 율법이 열매 없는 은밀한 일이 되어서 심판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이 있습니다.

성도에게는 분명히 율법이 있습니다. 그 율법이 어디서 왔는가 하면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율법이 없는 사람은 불의를 행하게 되고 그것이 하나님의 진노를 쌓게 되어서 심판을 받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안타깝게도 심판을 받는 그날까지도 사람들은 진노를 쌓는 그 일에 열심을 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교회 안에는 이 복음을 믿는 성도보다는 불의를 행함으로 해서 심판을 받을 사람이 더 많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에게는 복음이 됩니다. 그러나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는 사람은 심판을 받는다는 것을 바로 알고 오직 믿음으로 든든히 서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next 1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