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로마서 강해(오직 믿음)

15-2,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윤주만목사 2024. 6. 12. 05:59

고린도후서4:3절을 보겠습니다. (289)

만일 우리 복음이 가리웠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운 것이라

망하는 자가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에게 복음이 가리워지면 망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는데 이 시대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지가 않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고 선지자들이 그의 아들에 관하여 미리 약속하신 것이 나타나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고 있습니다.

복음이 가리워지면 어떻게 됩니까?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게 되어 있습니다. 신명기28장의 말씀을 보면서 자기가 복을 받기 위해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에서 율법의 행위 아래 있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복을 받기 위해서 지키고 있는 그 율법이 도리어 나를 저주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을 보면 뭐 합니까?

복음이 가리워졌으면 차라리 안 보는 것이 그에게 유익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말에 선 무당이 사람을 잡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성령이 오시지 않은 사람이 성경을 보면 사람을 잡습니다. 사람만 잡는 것이 아니라 그 영혼을 망하게 만들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나 혼자 망하는 것은 그래도 낫습니다.

아니 양심적인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종교적인 열심으로 자기만 망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가족을 망하게 하고 형제를 망하게 하고 있고 이웃을 망하게 하고 있습니다. 율법이 없는 교회 안으로 전도를 해서 율법을 지키게 함으로 해서 망하게 만들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그것이 하나님을 믿는 성도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하면서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교회 안입니다

그 안에는 망하는 자들이 더 많습니다. 더 많은 정도가 아니라 우리가 이스라엘의 예를 들어 보아도 60만 명 중에 두 명이 가나안에 들어갔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물론 광야에서 죽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지 못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에게 예표로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천만 명입니까?

그런 숫자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이 없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은 다 망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에서 복음을 볼 수 있는 눈이 감겨져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 그대로의 율법을 지키고 있는 모든 사람은 다 망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 중에 어느 한 가지를 지켜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음을 가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한 가지라도 지키면 복음은 가리워지게 되어 있습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춰주고 있습니다. 이 영광이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시대는 이 복음이 가리워져서 율법을 문자 그대로 지키면서 망하는 자로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도무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율법이 없고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 합니다

그리고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이 있어야 합니다. 성도는 먼저 자기에게 율법이 있어야 합니다. 어느 율법이 있어야 하는가 하면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이 있어야 합니다.

신명기22:5절을 보겠습니다. (295)

여자는 남자의 의복을 입지 말 것이요 남자는 여자의 의복을 입지 말 것이라 이같이 하는 자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자니라

율법이 없는 자는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는 자입니다

율법이 있는 자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완전케 하시고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게 하셔서 우리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고 있습니다. 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가지고 있는 성도가 율법이 있는 자라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율법이 있는 자가 없습니다. 아무리 보아도 그런 사람이 없습니다.

교회를 보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 어느 교회가 율법이 있습니까?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실행하는 자가 없습니다. 아무리 돌아보아도 그런 교회가 없습니다. 율법이 없는 상태에서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성도는 우선 기초가 무엇인가 하면 율법이 있어야 합니다.

율법이 없는 사람은 성도라고 할 수 없습니다.

로마서는 초대교회에 기록된 말씀입니다. 그때만 해도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니까 율법이 있는 자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모두가 망하는 자의 길로 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지식이 없어서 자기들이 하나님을 아주 잘 믿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에 나타나는 의도 안 믿는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이 여러분에게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먼저 선행이 되어야 구원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갈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복음을 깨달을 수 있는 것이지 율법이 여러분에게 없는 상태에서는 눈이 감겨져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소경이나 다름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율법을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율법이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율법에도 그것을 말씀하고 있지만 성경을 보아도 복음이 안 보이니까 율법이 자기에게 어떻게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초대 교회에는 그래도 율법이 있는 성도가 있었지만 이 시대는 아예 율법이 있는 성도가 없는 것으로 보여 지고 있습니다. 혹시 간혹 가다가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역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여자입니다

구원을 받지 못한 자입니다. 구원을 아직 못 받았다는 것은 율법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남자입니다.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았다고 하는 사람입니다 왜 성경에서 여자를 계수하지 않았는가 하면 의미적으로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이기 때문에 계수를 하지 않았습니다. 실제 여자가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여자입니다

남자의 의복을 입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은 자기가 구원을 받았다고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는 여자만 있지 남자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의복입니다

그것은 구원을 말씀하고 있고 또 율법의 의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전히 지키시고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주신 것도 의복입니다. 그리고 사람이 성경을 보고 문자 그대로 지키고 있는 율법의 의도 의복이라는 말씀입니다. 아직까지 문자 그대로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구원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여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자는 이제까지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는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이 없는 사람입니다. 문제는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이 있는 남자가 여자의 의복을 입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온전한 율법을 가지고 있는 성도가 율법의 의에 옷을 입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남자가 여자의 의복을 입으면 가증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이 있습니다.

그런데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은 가증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시대는 율법이 있는 남자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해당이 안 되는 말씀이지만 그래도 초대교회에는 율법이 있는 남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범죄입니다.

율법이 있는 성도가 율법을 지킨다는 것은 범죄입니다. 아니 율법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야고보서나 갈라디아서 강해를 통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율법을 하나라도 지키는 그 사람에게는 모든 율법을 항상 다 지켜야 하는 의무가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알고도 율법을 지킨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바로 알아야 합니다.

율법이 있습니다. 그런데 범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이 말하는 바를 이 시대는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모르고 율법을 지키는 사람은 그것으로 망하고 율법을 알고 범죄를 하는 사람은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2:9절을 보겠습니다. (372)

만일 너희가 외모로 사람을 취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죄자로 정하리라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이 있습니다.

그런 성도가 사람을 외모로 취하고 있다면 죄를 짓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율법이 너희를 범죄자로 정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이 있는데 사람을 어떻게 외모로 취합니까? 그런데도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어떻게 외모로 취합니까?

사람이 죄를 지면 그것을 긍휼히 여기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것을 가지고 취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저가 구원을 받지 못할 사람이라고 말을 하고 있다면 그는 범죄를 하는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율법이 누가 지킨 것입니까?

성도가 가진 율법입니다

그것은 내가 지킨 것이 아닙니다. 내 의는 더러운 옷과 같은데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완전케 하시고 우리에게 그 의를 주셨습니다. 그렇게 내가 한 것이 아닌 주님이 지키시고 주신 율법을 가지고 있는 성도가 사람을 외모로 취하고 있다면 그는 범죄자가 되고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도는 영의 사람입니다. 나부터가 외모로는 별 볼일이 없습니다. 아니 내 외모로는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의 외모가 아니라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지키신 그 율법으로 내 안에 점도 없고 흠도 없는 그리스도의 영이 탄생이 되었습니다.

율법이 있습니다.

그 말씀은 주님께서 이루신 거룩함이 내 안에 있다는 말씀이며 그리스도의 영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성도가 사람을 외모로 취하고 있다면 범죄라는 말씀입니다. 자기에게 어떤 의가 있는 줄을 모르고 사람을 외모로 취하고 있다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거절하고 있는 사람이며 이 사람은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그 율법이 말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온 세상으로 입을 막고 하나님의 심판에 있게 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받은 그 율법을 가지고 있는 성도가 다른 사람을 외모로 취하고 있다면 그 자체가 범죄라는 말씀입니다. 성도는 절대로 외모로 사람을 취해서는 안 됩니다.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지키는 사람도 취하라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율법을 지키는 자는 성도와 원수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율법으로 말미암아 아담의 씨로 태어난 내가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율법을 지키는 자를 외모로 취하지 말라고 했다고 해서 그들을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그런 외모가 아니라 율법을 지키지 못해서 세상에서 죄인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을 외모로 취합니다.

그러면 그에게는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이 아무 의미가 없어집니다. 사실 이 시대는 율법이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이 말씀이 해당이 안 되고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율법이 있는 성도는 절대로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는다고 믿고 있습니다. 율법이 있는 성도는 그리고 심판을 받지 않는다고 믿고 있습니다.

율법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습니다. 율법을 다 지킨 것과 같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우리 육체를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탄생이 되는 영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 성도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범죄를 하지 않고 자유하게 하는 율법으로도 심판을 받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왜 심판을 받습니까?

우리가 죄를 지어서 심판을 받습니까? 우리가 율법을 지키지 않아서 심판을 받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율법이 없기 때문에 심판을 받습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자유 하는 율법이 없기 때문에 심판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자유 하는 율법이 있으면서도 범죄를 하고 있다면 그 자유 하는 율법을 거절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유 하는 율법이 없는 것과 같이 되어 심판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범죄자가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자유 하는 율법으로 심판을 받습니다. 그러니까 사람을 외모로 취하면 자유 하는 율법을 거절하는 사람이 되어서 그 율법이 없기 때문에 심판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자유 하는 율법이 있는 성도라면 절대로 심판을 받지 않는다고 믿고 있습니다.

로마서2:13절을 보겠습니다. (241)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사람이 의로운 사람이 아닙니다. 오직 율법을 실천하는 사람이라야 의롭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율법,

아마도 주님이 오실 때까지 교회는 계속해서 율법을 점점 더 많이 지키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더구나 이 율법이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고 하나님께서 친히 쓰셔서 모세를 통해서 반포하셨습니다. 성경을 보는 사람은 누구라도 자연스럽게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사람의 이성입니다

당연히 율법을 지키는 것이 옳습니다. 누군가 단체나 또 어느 사회를 만들었을 때 제일 먼저 하는 것이 있다면 법을 만드는 일입니다. 이 세상은 그렇게 법에 의해서 움직이고 있고 법을 지키는 것을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법이 없다고 하면 도리어 이상하게 생각을 하고 있을 정도로 법에 의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국가입니다

그리고 사회입니다. 당연히 법을 지키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저 역시도 국가나 사회 그리고 어느 단체를 만들면 법을 지켜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조금도 반대를 하지 않습니다. 아니 법이 있어야 바로 운영이 된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이라는 단어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물론 에로스적인 사랑은 법과는 상관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영어에서는 이 사랑을 지속적이고 잔잔한 것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사랑이라는 것이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법이 있는 상태에서는 사랑이라는 단어는 성립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혀온 여자가 있습니다. 그 여자를 사랑하려고하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법대로 하면 문자 그대로의 법대로 하면 그 여자는 반드시 돌로 쳐 죽여야 합니다. 법대로 하면서 사랑한다는 말이 성립이 될 수 있습니까?

법이 있습니다.

내가 돌로 너를 쳐 죽이겠다 법에 있는 그대로 하겠다고 하면서 그러나 나는 너를 사랑한다는 말이 성립이 될 수 있느냐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말로만 사랑한다고 하지 실상은 법대로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법이 있는 상태에서는 하나님의 사랑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교회가 있습니다.

그 교회에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 교회가 이웃을 사랑한다고 말을 하고 실제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가능 하느냐는 말입니다. 물론 세상의 이성으로는 가능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사랑을 하는 교회가 아닙니다. 만약에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법을 지키지 않으면 사랑을 절대 하지 않습니다.

이중적입니다

자기들의 이성으로 판단을 해서 어려운 사람들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자기 교회 안에서 십일조를 내지 않고 주일을 지키지 않으면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심지어는 자기 교회에 성도가 아니라고 하면서 교회는 다닐 수 있지만 성도의 자격은 없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법이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다른 한 면에서는 자기들이 사랑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막상 법과 부딪치면 사랑을 하지 않고 있고 원수와 같이 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기들이 이웃을 사랑하는 것을 보면서 사랑을 한다고 말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실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닙니다.

오직 율법을 지키는 자라야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어떻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온 율법을 지키다가 하나를 범하면 모두를 범한 자가 되고 그렇게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는 사람은 저주를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성경이 서로 반대가 되고 있습니다. 정말 성경을 바로 깨닫지를 못하면 어떤 때는 이 말씀을 맞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저 말씀이 맞는 것 같아서 도저히 무슨 말씀을 하는지를 모르게 되어 있습니다.

율법은 저주를 받습니다.

저주를 받지 않으려면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율법을 항상 다 지켜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받는데 율법으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다면 이 말씀은 우리에게 저주를 받으라는 말씀이 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고 하면 우리는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이 보고 있는 성경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로마서의 말씀입니다. 하지만 성경을 바로 알면 사도 바울이 지금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갈라디아서3:12절을 보겠습니다. (305)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라 이를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

율법입니다

의롭다 함을 받아야 합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내가 율법을 단 한 가지라도 지키는 그 순간에 율법은 의롭다 함과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를 지키면 모든 율법을 다 지킬 의무를 가진 자라고 갈라디아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 성경을 보는 사람들이 율법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킵니까?

십일조를 내고 주일을 지키면 됩니까? 착각하지 마사기 바랍니다. 지금 교회에서 하고 있는 십일조도 그렇고 주일이라는 날도 그렇고 성경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율법 어디에 소득의 십일조를 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이스라엘의 바리새인들이 만든 율법이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반포하신 율법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닙니다.

율법을 지키는 자는 그가 행하는 것으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는 것과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에 기록된 대로 율법을 지키면 살고 그렇지 않으면 죽는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로마서에서는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의롭다 하심입니다.

그것은 사는 것입니다. 율법을 행하는 자는 그것을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그대로 항상 다 행해야 살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아무리 강조를 해도 지나치지 않기 때문에 계속해서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그리스도편지에서 이 율법에 대해서 강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 사람은 말 합니다

목사님은 율법에 대해서 많은 말씀을 하고 있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 사람은 율법의 기능이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율법에 대해서 왜 이렇게 강조를 하고 말씀을 드릴 수밖에 없는가 하면 이렇게 말씀을 드려도 사람은 태생적으로 율법주의라서 율법을 지키고 싶어 하는 마음을 절제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바로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율법에 대해서 그렇게 말씀을 해도 사람들이 너무도 쉽게 율법주의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물론 우리가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아는 것 중요합니다. 그것이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율법은 저주를 받게 하고 있습니다. 내가 아무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해도 율법을 지키고 있다면 저주를 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안 듣습니다.

이 정도로 강조를 해도 역시 또 율법주의에 빠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니 아주 작은 율법을 지키고 있으면 율법주의가 아닌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할례 한 가지를 가지고 갈라디아서를 기록했다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단 한 가지의 율법을 세우는 순간 모든 율법을 항상 다 지켜야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복음입니다

그것을 나타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율법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이렇게까지 율법에 대해서 계속해서 강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율법을 모르고 있습니다. 더구나 로마서에서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고 말씀을 하니까 더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반드시 그 의로 살아야 합니다. 반드시 의롭다 하심을 받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생각은 하지 않고 그저 성경에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고 하니까 율법을 행하라고 말씀을 했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문법을 모릅니까?

문장의 연결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앞뒤 말씀은 싹둑 잘라 버리고 자기들에게 필요한 말씀만 가지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고 하면서 오직 율법을 행하야 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율법을 행하면 어떻게 되는 가는 생각하지 않고 율법을 행하라는 말씀만 보고 있습니다.

율법을 행했습니다.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율법으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고 하면서 율법을 행하라고 하면 어떻게 됩니까? 율법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어서 저주를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자기들 마음대로입니다.

아니 스스로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그저 성경에서 자기들의 이성을 따라 보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율법으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 성경이 정의를 하고 있는데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면 어떻게 하라는 말씀입니까? 우리에게 저주를 받으라는 말씀 아닙니까?

성경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율법에 대한 정의가 먼저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율법으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습니다.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면 어떻게 됩니까? 저주를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고 하면서 율법을 지키라고 하면 어떻게 됩니까?

저주를 받으라는 말입니다

이 시대 목사들이 그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교인들에게 저주를 받으라고 가르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아무 감각이 없이 율법을 지키는 교회를 다니고 있습니다. 아니 내가 다니는 교회가 저 교회보다 율법을 덜 지키면 마치 율법을 안 지키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기는 율법을 많이 지킵니다.

100가지를 지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다니는 교회는 율법을 한 10가지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면 저 교회는 율법주의 교회고 내가 다니는 교회는 복음이 있는 교회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단 한 가지를 지키더라도 율법주의라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이 시대는 율법을 지키면서도 그것을 율법이라고 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분명히 삼가 지키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율법이라고 생각하지를 않고 자기들이 율법주의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삼가 지키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믿음이라고 말을 하고 있고 그 안에 있는 교인들은 믿음이 좋다는 말을 듣기 위해서 더 많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삼가를 모릅니까?

늘 같이 행하고 있는 것을 삼가 지킨다고 하는 것입니다. 십일조를 매월 드리고 있으면 삼가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일이라는 날을 매주 지키고 있으면 삼가 지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 가지라도 지키는 것이 있다면 그는 율법을 지키는 사람이고 그 사람은 반드시 자기가 지키고 있는 그 율법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야고보서1:25절을 보겠습니다. (372)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다시 또 보겠습니다.

율법은 너무 중요하고 또 분명히 알아야 하기 때문에 이 말씀을 계속해서 말씀을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12절에서 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는 그 말씀에서 율법이 무엇이라는 것을 이미 말씀을 했습니다.

똑같은 말씀입니다

야고보서의 말씀과 로마서213절의 말씀은 같은 말씀입니다.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는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로 복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 율법입니까?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 그대로의 율법을 말씀하는 것입니까? 우리가 그것을 실행해서는 절대로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없습니다. 성경이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 율법이 아니라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는데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완전케 하시고 우리에게 주신 율법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율법을 들었습니다.

이 시대도 많은 사람들이 이 의에 대해서 듣고 있습니다. 로마서에서 율법 외에 나타난 하나님의 한 의에 대해서 듣고 있습니다. 그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아마도 성경을 그래도 한두 번 봤다는 사람은 다 알고 있고 특히 목사들은 다 알고 있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는데 그 의가 무슨 의인가 하면 주님이 율법을 완전케 하신 의라는 말씀입니다.

이 의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실행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 의를 들었으면 이제 그 의를 믿는 것이 실행하는 것입니다. 그 의를 듣고 실행을 해서 내 의로 받아들이고 있는 사람이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문자로 기록이 되어 있는 율법을 지켜서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지키신 율법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왜 성경이 오직 믿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율법을 실행할 수 있는 방법이 오직 믿음이 아니고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율법의 행위로 실행을 해서는 어느 누구도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 성경의 정의이기 때문에 우리가 의롭다 함을 받으려면 오직 믿음의 방법으로 밖에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믿음의 비밀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이 믿음의 비밀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편지를 통해서 아무리 이 율법에 대해서 말씀을 드려도 깨닫는 사람이 지극히 일부인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합니다. 왜 성경이 믿음, 믿음을 말씀하고 있는가를 모르고 그저 믿음이라고 말을 하면 자기들에게 믿음이 있는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행해서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있습니까?

정말 어리석은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이 그 율법으로 마귀의 자식들이 되었다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은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듣고 실행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실행하고 있는가 하면 마음으로 믿고 내가 지킨 율법으로 받아들이고 있고 그 믿음으로 내 안에 율법을 완전히 지킨 그리스도의 영이 탄생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리석은 자는 행위를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할 수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그저 종교라는 거대한 힘에 의해서 어디로 끌려가는지도 모르고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성도는 성경에서 복음을 보고 있고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믿음에 따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의롭다 하심을 얻기 바랍니다.

그것을 내가 얻으려고 하다가는 저주를 받습니다. 반드시 주님이 하신 것으로 얻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율법의 기능을 모르고 그저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율법을 지켜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면서 저주를 받게 하는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5:4절을 보겠습니다. (307)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율법입니다

문자적으로 기록이 되어 있다고 같은 율법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의 깊은 의미를 모르고 그저 단어에 집착을 하는 사람은 반드시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보는 성경에서 문자를 아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아는 것은 이 세상에서 지적인 능력이 있는 사람은 누구라도 알 수 있습니다.

아무나 복음을 전합니까?

세상에서 공부를 많이 했다고 해서 그가 성경을 안다고 생각합니까? 도리어 그 지식이 망하게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이 알고 있는 지식이라는 것은 쓰레기와 같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 쓰레기를 가지고 율법을 지키면서 교회 안에서 율법으로 의롭다 함을 얻으려고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아니 그들은 말 합니다

우리는 의롭다 함을 얻기 위해서 지키는 것이 아니라 성도로서 살기 위해서 지킨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어떠한 마음에서 지켰는가 하는 것은 중요하지가 않습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어떻게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율법을 지킵니까?

반드시 의롭다 함과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나는 그런 마음이 아니라고 해도 성경이 그렇다고 하면 그런 것입니다. 내 생각을 주장하려면 왜 성경이 봅니까? 우리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을 믿기 위해서 성경을 본다고 하는 그들이 자기 생각으로 고집부리고 있습니다.

고집피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 이성을 가지고 고집하다가는 반드시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에서 율법은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 그대로의 율법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렇게까지 강하게 말씀을 하고 있는데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율법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서로 두 말씀이 충돌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 것을 따르겠습니까?

성경에서 율법을 모르면 이때는 이 말을 하게 되어 있고 저때는 저 말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거의 모든 목사들이 로마서를 강해를 하면서도 율법에 대해서 왔다 갔다 할 것이 분명합니다. 문자로 같은 율법이라고 기록이 되어 있어도 하나는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지키신 율법을 말씀하고 있고 하나는 문자 그대로의 율법을 말씀하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입니다

우리는 율법을 듣는 자가 아니라 실행을 하는 자입니다. 어떻게 실행을 하고 있는가 하면 야고보서의 말씀과 같이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잊어버리지 않고 실행을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전케 하신 율법을 마음으로 믿어 의롭다 함을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문자 그대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 시대 거의 모든 기독교인들은 문자 그대로의 율법을 듣고 행하려 하다가 도리어 사망에 이르고 있습니다. next 1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