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로마서 강해(오직 믿음)

16-1,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윤주만목사 2024. 6. 15. 17:11

로마서2:14-15절을 보겠습니다. (241)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사람의 이성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이 백번 이야기를 해도 옳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내 이성을 가지고 성경을 보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성경에서 깨닫는 자가 되어야지 이 세상에서 알고 있는 지식을 가지고 성경을 보아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내가 원하든 원치 않던 율법을 지키는 순간에는 의롭다 함과 연결이 되고 있습니다. 또 한 가지의 율법을 지키는 순간에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모든 율법을 항상 다 지켜야 하는 의무가 따르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율법에 대한 기초입입니다.

율법을 주셨습니다.

왜 우리에게 주셨습니까? 아담도 지키지 못한 율법을 우리에게 지키라고 주셨습니까? 아니면 다 지키지는 못할지라도 그래도 하나님의 백성이니까 세상 사람들보다는 의롭게 살라고 주셨습니까? 이 율법을 보고 세상 사람과 비교를 해서 그들보다는 더 도덕적으로 깨끗하게 살라고 주셨습니까?

그런 생각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이 율법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계십니다. 우리를 창조하신 분께서 우리의 체질을 모르시고 우리가 진토라는 것을 모르고 계십니까? 율법을 주신 이유는 율법을 보고 내 한계를 인정하고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자꾸 자기 한계를 넘어서려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사단은 적절하게 이용하고 있습니다.

사단이 우리 인생들에게 죄만 짓게 해 준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보면서 그렇게 알고 있다면 그는 초보에 머물러 있는 사람입니다. 사단이 죄만 짓게 하고 있다면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아니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가 되어 가서도 안 되고 또 로마에 의해서 멸망을 당해서도 안 됩니다.

죄의 문제는 끝이 났습니다.

그렇게 믿지 않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지 않고 거절을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죄의 문제가 끝이 났다면 이제 사단은 우리를 죽일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사단이 죄만 짓게 한다면 그런 결론이 나오게 되어 있고 우리는 교회 안에만 들어가서 주여 주여 하면서 믿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나 어떻게 말씀합니까?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비유로 말씀을 하실 때 버림을 받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구원을 받는 사람들보다 죄를 더 많이 지어서 버림을 받았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에게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세상 죄를 지고 가셨습니다.

그런데 사단은 우리에게 죄만 짓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주의 이름을 부르고 있는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은 다 구원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가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는 몇몇 교회를 빼고는 구원파도 구원을 받아야 하고 지방교회도 구원을 받아야 하고 또 이단이라고 지목이 되어 있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도 다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그들도 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안식일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안 믿습니까? 사단이 죄를 짓게 하고 있다면 더 이상의 논쟁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어떻게 말을 하고 있습니까? 자기들이 지키는 율법이 서로 다를 때 이단이라고 하고 있고 또 은사가 다를 때 이단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서로 이단이라고 합니다.

왜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율법의 문제 때문입니다. 이단이라는 것은 쉽게 말을 해서 사단의 교회라는 말과 같습니다. 율법의 문제로 그리고 은사의 문제로 이단이라고 말을 하고 있다면 그 율법과 은사를 누가 지키게 하고 있다는 말입니까? 그것을 사단이 지키게 하고 있기 때문에 이단이라고 하는 것 아닙니까?

그렇게 말 합니다

그런데 자기들이 지키는 율법은 사단이 지키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감동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순 억지를 부리면서도 자기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조차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죄의 문제는 끝이 났습니다. 그리고 의의 문제가 남아 있고 그것으로 구원을 받느냐 아니면 저주를 받느냐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저주를 받았습니까?

율법을 지키던 이스라엘이 주님으로부터 저주를 받지 않았습니까? 흠 없는 율법을 가지고 있었던 그들이 왜 주님으로부터 저주를 받았는가를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들은 성경을 보고 있었지만 소경이 되어서 복음을 보지 못 했습니다.

율법을 보았습니다.

그것을 문자 그대로 보면서 율법대로 판단을 하고 정죄를 했습니다. 그리고 판단을 받지 않고 정죄를 받지 않으려고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누가 이렇게 하고 있는가 하면 교회 안에서 율법을 문자 그대로 지키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을 누가 감동을 하고 있는가 하면 사단이 율법을 잘 지키게 해서 광명의 천사로 만들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광명의 천사입니다

양의 옷을 입고 있는 이리입니다. 이들이 누군가 하면 교회 안에서 율법을 잘 지키고 있는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이 죄로는 저주를 받지 않습니다. 이미 우리 육체는 죄로 인하여 저주를 받았습니다. 이제 영의 생명이 있습니다. 이 생명을 어떻게 저주를 받게 하고 있는가 하면 율법을 지켜서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게 만들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이 율법입니다

죄로는 저주를 받게 할 수 없으니까 사단은 이제 율법을 지키게 함으로 해서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게 하고 있고 은혜에서 떨어지게 만들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성경을 보면서도 소경이 되어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저주를 받게 하고 있는 그 율법을 지키면서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고 서로 칭찬을 해 주고 있습니다.

공동번역을 보겠습니다.

이방인들에게는 율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본성에 따라서 율법이 명하는 것을 실행한다면 비록 율법이 없을지라도 그들 자신이 율법의 구실을 합니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율법이 새겨져 있고 그것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전하는 복음이 말하는 대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사람들의 비밀을 심판하시는 그 날에 그들의 양심이 증인이 되고 그들의 이성이 서로 고발도 하고 변호도 할 것입니다.”

이방인들에게는 율법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이방인인 우리에게 율법이 생겼습니다. 정말 성경을 바로 보시기 바랍니다. 율법은 이방인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을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반포하셨을 때도 이스라엘에게 이 율법을 지키라고 주신 것이 아니지만 그들은 이 율법을 듣고 자기들이 다 준행하겠다고 하면서 언약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모르십니까?

우리 인생들을 창조하신 하나님입니다. 우리의 체질을 아시고 또 우리가 진토라는 것도 아시고 계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에덴에서 아담을 통해서 분명히 보여 주셨습니다. 죄를 한 번도 안 지어본 아담을 통해서 우리 인생들이 얼마나 쉽게 죄를 짓는가를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아담은 죽었습니다.

아담이 죽었다는 것은 아담의 자손으로 태어난 나 역시도 죽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율법을 너무 모르고 있고 율법의 저주를 받아 자기 육체가 이미 십자가에서 함께 죽었다는 것을 모르고 이스라엘도 아닌 이방인들이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이방인들에게는 율법이 없습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 그대로의 율법을 지키라고 하는 사람은 지금 로마서에서 사도 바울이 말씀하는 것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시대는 자기들이 이방인인지 아니면 유대인인지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도행전15:5절을 보겠습니다. (213)

바리새파 중에 믿는 어떤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 주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입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한 갈라디아에 유대로부터 온 거짓 형제가 와서 할례를 받게 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를 가지고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가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당시는 아직 이방에 그렇게 복음이 많이 전해진 때가 아니었고 또 대부분의 제자들이 다 유대인이라서 이제까지 자기 조상들이 지켜왔던 율법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초대 교회입니다

아직까지 어느 누구도 이 율법의 문제를 바로 정립을 하지 못하고 있었던 때입니다. 그러니까 유대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율법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사실 조상 대대로 율법을 지켜왔던 유대인들이 하루아침에 율법을 버린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때에 사도 바울이 이방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어느 누구에게도 율법을 지키라는 말을 하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하신 것을 성경을 통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방에 복음을 전할 때는 율법이 없었는데 아니 이방인들은 처음부터 율법을 지키지 않았는데 이제 유대로부터 온 거짓 형제가 오니까 그들로 인하여 할례라는 율법을 행하기 시작했습니다.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구약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살을 먹는 유월절에 이방인이라도 할례를 받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기 때문에 유대에 있던 사람들은 할례를 받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고 지금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에 와서 그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자 바리새파에 있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이방인이라도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키라고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사도들이 있는 장소입니다

그러니까 이 자리에는 예수님의 제자라고 하는 사도들이 다 있었고 또 주의 형제 야고보도 있었습니다. 그런 자리에서 바리새파에 있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강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방인이라도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키는 것이 마땅하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사도들입니다

주님과 함께 삼년 반 동안이나 동고동락을 했던 제자들이 있었지만 율법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이제까지 정립을 하지 않고 율법도 지키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했습니다. 초대 교회에 이제 막 복음이 전해지던 때라는 것을 생각하면 지극히 당연합니다.

바리새파입니다

그들이 누구입니까? 율법주의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는 하지만 율법을 버린다는 것이 쉽지가 않았습니다. 그런 그들이 예루살렘 교회에 많이 있다 보니까 어느 누구도 이 문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때에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서 할례를 받는 것을 보고 사도들과 이야기를 하려고 왔습니다.

결론입니다

먼저 베드로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이방인들의 목에 두려고 하느냐면서 율법을 지키는 것이 옳지 않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또 이어서 주의 형제 야고보 역시도 이방인들 중에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율법으로 괴롭게 하지 말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결론입니다

그것을 사도행전15장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방인들에게 율법을 지키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방인들에게 율법이 없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지만 이 시대는 이방인들이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 기독교인들의 교리로 되어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라고 하고 있습니까?

그들은 이스라엘의 바리새인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로마서에서도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이 없는 이방인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도덕법은 사실 성경에 있는 십계명에서 기초가 되었다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분명히 그 율법이 있었지만 성경에 있는 율법은 없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우리 이방인들은 율법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이미 초대 교회에 사도들이 결론을 내렸습니다. 만약에 이때에 지금 이야기를 하는 십계명이 있었다면 반드시 사도들은 다른 법은 폐하여 졌어도 이방인이라도 십계명은 지켜야 한하고 결론을 냈습니다. 그러나 십계명의 어느 계명도 이야기를 하지 않고 자기 조상들이 메었던 무거운 멍에를 메게 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율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방인이라 해도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분명히 이방인들에게는 율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일이 무엇입니까? 율법으로 의롭다 함을 얻어서 영생을 얻는 그것이 율법의 일입니다.

사도행전17:27절을 보겠습니다. (218)

이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하도다

율법의 일입니다

우리 인생은 다 아담의 씨로 태어났습니다. 그런 우리는 율법으로는 어느 누구도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으로 사람의 이성을 따라 의롭다 함을 받으려고 했고 스스로가 지키는 율법을 보고 흠이 없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율법으로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의롭다 함을 받지 못해서 결국에는 주님으로부터 저주를 받고 말았습니다. 사람의 이성으로는 분명히 하나님을 믿지 않는 세상 사람에 비해서 의롭다 함을 얻고 있었지만 하나님의 법으로는 그들은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럴지라도 우리 인생 모두는 영생에 대한 바람이 있어서 율법을 행하고 있습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이방인은 율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역시 복음을 들으면 구원을 받고 싶어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 율법의 일을 행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힘입어서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이 율법의 일을 행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2장에서 말씀하는 율법입니다

같은 단어로 사용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는 실제 이스라엘이 성경에 있는 문자 그대로를 지키고 있는 율법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13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율법입니다. 그 율법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완전케 하시고 우리에게 주신 율법의 의라는 말씀입니다. 이 율법의 의가 있어야 구원을 받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 하나님의 의가 무엇인가 하면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완전케 하신 의입니다. 그 의를 우리에게 주셔서 아니 우리가 믿음으로 율법을 행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누구나 구원을 받고자 하는 본성이 있어서 복음을 듣고 이 율법의 일을 행했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이 명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율법을 다 지키면 그 율법의 의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갈라디아서나 로마서 강해를 통해서 신명기와 레위기에 있는 말씀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규례와 법도를 반포하시고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 의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것이 율법이 우리에게 명하는 바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율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들으니까 본성으로 율법이 명하는 바를 행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 율법이 명하는 바는 율법을 지키면 산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으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또 우리 이방인에게는 더구나 율법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 우리 이방인들에게 사도들이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이렇게 모든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을 더듬어서 찾게 하는 마음을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찾게 하셨습니다.

율법의 명하는 바를 알게 해서 율법의 일을 하게 함으로서 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더듬어서 찾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율법이 없어도 본성으로 그러니까 복음을 듣고 더듬어서 하나님을 찾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 사람에게는 율법이 없어서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어느 율법이 없는가 하면 이스라엘이 지키던 율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율법이 되고 있습니다.

이방인이라도 하나님을 더듬어서 찾아서 율법이 명하는 바를 행하고 있으면 비록 우리에게는 이스라엘이 지키는 율법이 없을지라도 복음에서 나타나는 의가 율법이 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어렵게 기록이 되어 있더라도 이 말씀을 잘 이해를 하고 있어야 합니다.

늘 말씀을 드립니다.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안다고 해서 이런 말씀들이 이해가 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들이 아무리 방언에 능통하다 해도 그것으로는 성경을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을 아는 것은 오직 성령이 우리 안에 오셔서 보는 눈이 열려져야 합니다. 같은 율법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지만 전혀 다른 율법인데 그것이 헬라어를 안다고 해서 깨달을 수 있습니까?

세상 지식입니다

그런 초등학문을 가지고 성경을 풀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람의 이성에는 헬라어의 원어의 뜻을 알고 이야기를 하면 대단해 보일지 몰라도 성경은 그렇게 깨달아 지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가 아무리 헬라어에 능통하다 해도 지금 한 구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율법이 서로 다른 율법이라는 것을 모르면 절대로 깨달을 수 없습니다.

이방인입니다

우리의 율법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완전케 하신 율법이 우리의 율법이고 우리는 그 율법을 행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지키는 율법은 없어도 우리가 하나님을 더듬어서 찾아 의롭다 함을 얻는 율법을 행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이스라엘이 지켰던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 그대로를 지키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이방인 중에서 구원을 받은 성도는 비록 그 율법이 없어서 본성에 따라 그러니까 구원을 받고자 하는 마음에 따라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행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행하면 그 율법이 우리 이방인들에게 율법이 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이 됩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예수님께서 지킨 율법이, 율법이 되니까 우리가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비록 이스라엘이 지키고 있는 율법은 없을지라도 우리에게 율법이 되어서 의롭다 함을 받아서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말씀이며 이것이 다 성경에서 복음을 듣고 믿어서 가능한 일입니다.

고린도후서1:12절을 보겠습니다. (286)

우리가 세상에서 특별히 너희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써 하되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은 우리 양심의 증거하는 바니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라

율법이 되고 있습니다.

어느 것이 율법이 되는가 하면 이스라엘이 육체로 지켰던 율법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전케 하셔서 우리가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있는 의가 율법이 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율법이 되고 있는 성도들은 그 양심에 증거가 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증거를 합니까?

성령이 우리에게 증거를 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 양심에 증거가 되고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우리가 세상에서 특별히 너희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써 하되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은 우리 양심의 증거 하는 바니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지혜가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이 성경을 보고 안 것이 육체의 지혜입니다. 우리는 그런 육체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행하고 있고 우리 양심이 증거를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거룩함을 받고 진실함이 있는 것이 누구의 지혜인가 하면 우리 육체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의 성령을 보내 주셔서 그것이 우리 양심에서 증거가 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양심의 증거입니다

우리 인간적인 양심의 증거가 아니라 성령이 우리 안에 임재를 하셔서 이 율법을 행하게 하는 것이 믿는 성도들에게는 양심의 증거가 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양심이라고 하니까 사람이 가지고 있는 양심을 이야기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로마서9:1-2절을 보겠습니다. (251)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양심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이 자기는 진실되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것이 양심입니까? 인간적으로는 분명히 양심이고 진실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어떻게 말씀을 하고 있는 줄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양심은 그런 인간의 양심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더불어 증거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의 양심 좋습니다.

그것을 폄하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 양심이라는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습니까? 성도는 그런 인간적인 교제를 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성령 안에서 이루어 져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로마서에서 말씀하는 율법을 사람의 양심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까?

율법입니다

사람이 알고 있는 문자 그대로의 율법을 지키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누구는 이스라엘이 지켰던 문자적인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양심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성경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아니 성경에서 어떻게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어느 것이 더 양심적인가를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양심은 세상 사람들이 볼 때는 도무지 양심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성령의 감동을 받고 있는 성도는 그것이 분명히 우리에게 양심의 증거가 되고 있습니다.

왜 양심의 증거가 됩니까?

성령이 우리 안에 오셔서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를 하니까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알고 있으니까 그것이 양심의 증거가 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전혀 양심의 증거가 되지 못하고 있지만 우리 성도들에게는 분명히 양심의 증거가 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양심의 증거입니다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를 하고 있습니다. 자기에게 율법이 되고 있는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이 어떻게 증거를 하고 있는가 하면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를 하고 있다는 말씀이며 그것은 성령이 나를 믿을 수 있게 역사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모든 것이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믿습니까?

그것이 얼마나 허황된 이야기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반드시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더불어서 증거를 받아야 믿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성령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성경을 너무 모르다 보니까 그저 자기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우리 이방인들에게는 이스라엘이 지키는 율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더듬어서 찾고자 하는 마음을 누구에게나 주셨습니다. 이 말씀은 내세를 생각하는 마음을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내세를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이 전파가 되었고 그들이 비록 이스라엘이 지켰던 율법은 없지만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행합니까?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믿음으로 믿어지는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믿고 있는 성도는 그것이 자기에게 율법이 되고 있고 성령이 오셔서 내 마음과 더불어서 증거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증거를 받고 있는 성도를 율법을 행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입니다

성경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국어를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정말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 성경만 보고도 구원을 받을 수 있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좋은 성경을 주셨지만 이 성경을 보고 지혜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지혜를 가지고 육체의 행위로 빠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이 있습니다.

어느 율법이 있는가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과 같은 율법이 있으면 그는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이 있는 성도는 성령이 내 양심으로 더불어서 증거를 해서 그 율법으로 의롭다 함을 받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증거 해 주고 있습니다.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증거를 받고 있는 성도들은 그 생각들이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며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성경은 보면 볼수록 어렵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인간의 지혜라는 것이 얼마나 미약하다는 것을 성경을 보면서 깨달아야 하는데 도리어 육체의 지혜로 채우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6:5-6절을 보겠습니다. (269)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 하여 이 말을 하노니 너희 가운데 그 형제간 일을 판단할 만한 지혜 있는 자가 이같이 하나도 없느냐 형제가 형제로 더불어 송사할 뿐더러 믿지 아니하는 자들 앞에서 하느냐

고린도전서5장입니다

적은 누룩이 온 덩이를 퍼지게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 있는 음행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이어서 6장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 하여 이 말을 하노니 너희 가운데 그 형제간 일을 판단할 만한 지혜 있는 자가 이같이 하나도 없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다

이제까지 사도 바울이 복음에 대해서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리고 율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가르쳐 주었는데도 고린도교회에 적은 누룩을 가지고 온 덩이를 퍼지게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형제간의 일을 판단할 만한 지혜 있는 자가 하나도 없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생각들이 서로 송사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송사를 하고 있습니까?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가지고 있는 성도는 생각으로 송사를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송사를 하는가 하면 적은 누룩이 온 덩이를 퍼지게 하는 것을 송사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당연히 송사를 해서 이런 사람을 너희에게서 물리쳐야 하는데 고린도교회에 있는 성도들에게 너희 중에 이것을 판단할 만한 지혜 있는 자가 없다고 말씀합니다.

성령의 증거를 받았습니다.

성도는 이스라엘이 지키는 율법이 아니라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이 내 안에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 적은 누룩이 온 덩이를 퍼지게 하는데 고린도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형제간에 일을 판단할 만한 지혜를 가진 자가 하나도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송사가 아닙니다.

그 생각들이 송사를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각이 송사하는 것을 말씀하고 있지 진짜 이 세상의 송사를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송사가 무엇인가 하면 교회 안에서 적은 누룩으로 온 덩이를 퍼지게 하는 사람을 판단할 만한 지혜라는 말씀입니다 그 지혜가 있는 사람이 너희에게 없다고 말씀을 있습니다.

성도는 송사합니다.

우리 생각으로 송사를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킴으로 해서 적은 누룩으로 온 덩이를 퍼지게 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 생각에서 그것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판단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지혜 있는 자가 하나도 없어서 모든 교회가 누룩이 섞여 있는 우상의 제물을 먹고 있는데 어느 누구도 판단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송사해야 합니다.

반드시 송사를 해야 합니다. 우리 생각으로 송사를 해야 합니다. 적은 누룩으로 온 덩이를 퍼지게 하고 있다면 내 안에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이 있다면 송사를 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고 도리어 믿음이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성경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보고도 그 말씀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있다면 그는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자가 되고 만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저 사람의 이성을 가지고 성경을 보면 그가 아무리 세상에서 지혜가 있는 석학이라 해도 망하는 길로 간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성경을 너무 쉽게 이해를 하고 있고 그것을 복음이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율법입니다.

그것은 성경에서 문자 그대로 보고 있는 율법입니다 로마서에서는 그 율법을 말씀하고 있지 않은데 성경을 이해하지 못해서 그 율법을 지키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있어야 하는데 사람의 지혜를 가지고 성경을 보면서 송사를 하라고 하니까 사람의 율법을 지키지 않은 것을 보고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생각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아무 생각이 없이 종교로 들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최소한 그래도 내 영혼의 문제가 있다면 생각을 해야 합니다. 인생은 죽으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생명은 영원한 축복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영의 일입니다

그런데도 아무 생각이 없습니다. 진리를 알아야 생각할 수 있는데 전혀 모르다보니까 그저 종교가 시키는 대로 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나로 더불어 증거를 해야 조금이라도 생각할 수 있는데 성령이 오시지도 않다 보니까 사람의 이성으로 종교에 빠져 들어가서 모두가 망하는 길로 가고 있으면서도 교회 안에서 잔치를 벌이고 있습니다.

율법이 없습니다.

우리 이방인은 사람의 율법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이 지키는 율법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을 더듬어서 찾게 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 마음에 따라 내세를 생각하면서 율법의 일을 행해서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이 내 안에 있습니다. 그 율법이 내 안에서 성령으로 더불어서 증거를 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 성도입니다

성령으로 더불어서 내 안에서 증거를 받고 있습니다. 성도는 이제 사람의 율법을 행하고 있으면 그 생각들이 송사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교회 안에서 적은 누룩으로 온 덩이를 퍼지게 하고 있는 사람을 판단할 만한 지혜가 우리에게 있어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우리 생각으로 송사를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어떻게 압니까?

지금 사도 바울은 두 율법을 문자적으로 똑같이 율법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보고 똑같은 율법이라고 보고 있는 사람은 그 양심에 증거가 되지도 않고 있고 자기에게 있는 율법이 무엇인가도 모르고 그 생각이 지혜가 없으니까 그것을 판단하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사람의 지혜로 알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망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육체의 지혜로 성경을 보는 사람은 어느 누구도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 시대는 육체의 지혜로 보면서 율법이 무엇이라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적은 누룩입니다

생각에서 송사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적은 누룩을 보았으면 그것으로 내 영혼이 망하게 된다는 것을 알았으면 당연히 송사를 해야 하는데 그 일을 판단할 만한 지혜를 가진 자가 없어서 이 시대 교회는 다 사람의 율법을 지키면서 하나님을 믿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아니라 원수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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