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은혜와 진리의 말씀

1043, 사자들이 왕에게 복명하니라

윤주만목사 2023. 9. 30. 07:39

 역대하34:22-28절을 보면 

이에 힐기야와 왕의 보낸 사람들이 여선지자 훌다에게로 나아가니 저는 하스라의 손자 독핫의 아들 예복을 주관하는 살룸의 아내라 예루살렘 둘째 구역에 거하였더라 저희가 그에게 이 뜻으로 고하매 훌다가 저희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으로 너희는 너희를 내게 보낸 사람에게 고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곳과 그 거민에게 재앙을 내리되 곧 유다 왕 앞에서 읽은 책에 기록된 모든 저주대로 하리니 이는 이 백성이 나를 버리고 다른 신에게 분향하며 그 손의 모든 소위로 나의 노를 격발하였음이라 그러므로 나의 노를 이 곳에 쏟으매 꺼지지 아니하리라 하라 하셨느니라 너희를 보내어 여호와께 묻게 한 유다 왕에게는 너희가 이렇게 고하라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들은 말을 의논컨대 내가 이 곳과 그 거민을 가리켜 말한 것을 네가 듣고 마음이 연하여 하나님 앞 곧 내 앞에서 겸비하여 옷을 찢고 통곡하였으므로 나도 네 말을 들었노라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너로 너의 열조에게 돌아가서 평안히 묘실로 들어가게 하리니 내가 이 곳과 그 거민에게 내리는 모든 재앙을 네가 눈으로 보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사자들이 왕에게 복명하니라

 

하나님입니다 

그분은 창조주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창조주에 대해서 개념이 부족합니다. 그저 이 세상을 창조하신 분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창조주라는 말씀은 시작과 끝을 아신다는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창조주입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환상으로 보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히브리서에서는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또 말씀합니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처음입니다

태초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나중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이 시작과 나중에 대해서 다 알고 계시는 분이고 그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선지자들로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은 시간적 개념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시작과 끝이라고 그리고 처음과 나중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인생이 알고 느끼고 하는 시간적 개념하고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창조된 모든 것의 시작을 하나님께서 하시고 또 그 끝에 대해서 그러니까 인생의 시간적 개념으로 나중에 일어날 일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창조주시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처음과 나중이 아니라면 우리가 되어 질 일에 대해서 보여주실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우주를 보고 이 지구 안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지만 그래서 하나님을 유일하신 하나님이라고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분이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그래서 모든 예언의 말씀이 성경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우리가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말씀을 보면서도 인생들은 그저 성경의 문자를 보고 창조주 하나님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창조주라는 의미도 모르면서 그저 문자를 아는 것으로 창조를 하신 하나님으로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인생입니다 

무엇을 연구를 하고 개발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 프로젝트를 완성하기까지는 때로는 수백 년이 걸리는 일도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 해도 다 완성을 했을 때는 그 시작과 끝에 대해서 다 알고 있습니다. 바로 그렇게 처음과 나중을 아는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는 창조주로서 처음과 나중을 다 아신 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봅니까

우리는 창조주를 믿으면서 보아야 합니다. 그분은 처음과 나중을 다 아시고 당신의 뜻대로 다 이루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이해가 안 되는 일이지만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사도 요한에게 환상으로 보여주시면서 나중에 대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처음과 나중입니다 

이미 하나님께서는 창조주로서 다 이루셨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디에 살고 있습니까? 그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우리 인생에 대해서 성경은 헛것 같고 지나가는 그림자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잠시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와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해가 됩니까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다 이루신 일을 보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고 있는가 하면 헛것 같이 그리고 지나가는 그림자 같이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헛것 같고 지나가는 그림자 같은 인생은 성경에서 증거를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생을 얻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입니다 

우리 피조물이 영생을 얻는 일입니다. 처음과 나중이신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이미 다 이루셨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창세기13절에서 빛이 있으라 하셨고 그 빛을 보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 빛이 바로 이 세상에 생명의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시는 구속의 일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그 빛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빛에 대해서 우리 피조물들에 믿게 하기 위해서 선지자들을 그리고 이스라엘을 택하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예표와 비유로 해서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을 어떻게 구원을 하시는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인생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될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창조주시라는 것을 그리고 그분이 처음이고 나중이라는 것을 성경에서 증거를 받으면 믿을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입니까

우리가 창세기부터해서 역대하까지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마치 이스라엘의 역사와 같이 성경을 보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그깟 이스라엘의 역사를 가르쳐 주기 위해서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아니라 그들을 통해서 비유와 예표로 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구속의 은혜를 나타내 주시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가 왕으로 살았습니까? 그가 거부로 살았습니까? 세상에서 모든 것을 누리고 또 세상에서 지혜로운 자로 살았습니까? 그것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성경에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처음과 나중에서 한 때 헛것 같고 지나가는 그림자 같은 인생이 왕으로 살면 뭐하고 거부로 살면 뭐하고 세상에서 이름을 남기면 뭐 합니까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인생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우리는 성경에서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물론 그것 역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셔야 가능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인생이 아무리 지혜가 있다고 해도 성경을 보고 자기 스스로를 깨닫고 하나님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입니다 

그들은 주님의 말씀과 같이 지금도 육체를 따라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왜 육체로 판단을 하는가 하면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과 우리 인생과의 관계를 모르니까 그저 인생만을 생각을 하고 있고 그래서 그들은 인생들이 하고 있는 육체의 행위를 보고 판단을 하고 있지만 성경에서는 우리 인생을 헛것 같고 지나가는 그림자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처음입니다 

그리고 나중입니다. 그 시간이 어느 정도인지 우리가 알 수 있습니까? 과학자들이 말을 하는 것으로만 빅뱅이 138억 년 전에 있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창조 전부터 계셨고 그 시작이 어딘지도 우리는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나중이 또 얼마나 될지도 우리는 아무도 모릅니다

 

인생80년입니다 

그 시간이 길다고 생각을 합니까? 처음과 나중에서 보면 그것은 점으로도 표시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점을 찍으려고 해도 그 점이 보이지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마치 보이저호가 태양계를 벗어나면서 지구를 찍으니까 작고 푸른 점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우주 더 먼 곳으로 가면 그 작고 푸른 점은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인생입니다 

그런데 그 80년을 살면서 인생들은 자기를 나타내기 위해서 온갖 행위를 다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이 세상에 오신 참 빛을 보고 생명을 얻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 밖에는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입니다 

우리 헛것 같은 피조물들에게 참 생명을 얻게 하시고 그럼으로 해서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살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피조물들에 나타내기 위해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고 그 일을 다 이루셨고 그것을 성경에서 증거를 해 주고 있지만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보다는 종교적인 행위에 빠져 자기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22,“이에 힐기야와 왕의 보낸 사람들이 여선지자 훌다에게로 나아가니 저는 하스라의 손자 독핫의 아들 예복을 주관하는 살룸의 아내라 예루살렘 둘째 구역에 거하였더라 저희가 그에게 이 뜻으로 고하매

 

요시야 왕입니다 

유다 왕들을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왕들은 물론 다윗의 자손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성경은 그런 표면적인 것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늘 생각을 하면서 보아야 합니다

 

역사입니까

다시 말씀을 하지만 역사를 배우려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특히 신학자들이라는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역사에 대해서 깊이 배우고 있습니다. 그런 지식이 우리에게 영생을 얻게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까? 그들은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영생을 모르기 때문에 아니 율법에서 말씀을 하는 하나님의 뜻을 모르기 때문에 본질을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왕입니다 

우리의 왕은 다윗 하나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을 다윗의 위를 이어서 이 세상에 오신 왕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또 이사야 선지자는 만왕의 왕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평강의 왕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를 하는 왕이라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자손입니다 

유다에 많은 왕들이 있습니다. 다윗의 자손이라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자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남편이고 교회는 그의 아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교회를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교회입니다 

왕이 있습니다. 그것을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도 말씀을 하고 있고 요한계시록에서는 별이라고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유다의 왕들은 그렇게 비유로 해서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그들은 다윗이 될 수도 없고 다윗과 같을 수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입니다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에 교만한 자들에게 너희가 이미 배부르며 이미 부요하며 우리 없이 왕 노릇 하였도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왕 노릇 하기 위하여 참으로 너희의 왕 노릇 하기를 원하노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왕 같은 제사장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왕 노릇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역대하를 보아도 므낫세와 아몬 왕은 왕 노릇한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아몬 왕의 아들 요시야가 왕이 됨으로 해서 왕 같은 제사장으로 하나님을 믿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2:36절을 보면 

또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선지자가 있어 나이 매우 늙었더라 그가 출가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성경을 오해를 합니다

이스라엘의 수를 계수를 할 때 남자만 계수를 하고 여자는 계수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말씀들을 보고 하나님께서 마치 남자와 여자를 차별하시는 것으로 아니 구별을 하시는 것으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그래도 지금은 많이 개선이 되었지만 종교는 남자라는 기득권을 놓치기 싫어서 지금까지 차별을 하고 있는 종파도 있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정말 무지합니다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차별을 합니까?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 먹을 때 뱀에게 미혹을 받아 먼저 따 먹고 아담에게 준 것을 말씀에서 보고 마치 여자가 먼저 죄를 진 것으로 생각을 하는데 성경은 다 의미적인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생리적인 남자와 여자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차별을 하고 있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니 그들이 차이가 있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물론 체력적으로는 남자가 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남자와 여자를 차별하지 않는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여자입니다 

제가 늘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리적인 여자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직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을 여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또 교회를 여자로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를 가지고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것이지 실제 남자와 여자를 차별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선지자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사기에서도 드보라는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성경에서는 절대로 여자라고 해서 차별을 하지 않지만 종교는 지난 수천 년 동안 성경을 자의적으로 보면서 여자를 차별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여선지자입니다 

힐기야가 누구입니까? 제사장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당시 제사장이 여선지자 훌다에게 가서 율법에 대해서 묻고 있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에서도 주님이 오시는 일을 또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선지자가 있어 나이 매우 늙었더라 그가 출가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구속됨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하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그가 복음을 전할 때 도움을 줬던 사람들에 대해서 로마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거기서도 여자들을 많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있어서는 그러니까 복음을 전하는 일에 있어서는 생리적인 남자냐 여자냐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중요하게 생각을 하다가 종교는 스스로 망하는 길로 갔다는 것을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합니다

 

율법책입니다

제사장과 그리고 서기관들이 히브리어를 모릅니까? 그들이 모세의 율법을 모른다고 생각을 합니까? 이 율법책은 분명히 히브리어로 기록이 되어 있을 것이고 그들은 조상 대대로 히브리어를 사용을 했고 더구나 제사장과 서기관이라면 율법을 지키는 일에 정통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왜 훌다에게 찾아갔습니까

그것을 21절에서 너희는 가서 나와 및 이스라엘과 유다의 남은 자를 위하여 이 발견한 책의 말씀에 대하여 여호와께 물으라 우리 열조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이 책에 기록된 모든 것을 준행치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쏟으신 진노가 크기 때문에 훌다를 찾아갔습니다

 

율법책입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성경에서 율법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확하게는 어느 말씀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저주의 말씀이 있는 것으로 보아서는 신명기의 말씀이 아닌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당시는 수천 년 전이고 종이도 없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아마 신명기 한권의 책만 해도 지금의 책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도 두껍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신명기28:45-46절을 보면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고 네게 명하신 그 명령과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므로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고 너를 따르고 네게 미쳐서 필경 너를 멸하리니 이 모든 저주가 너와 네 자손에게 영원히 있어서 표적과 감계가 되리라

 

복과 저주입니다 

신명기에서 이 저주의 말씀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2820절에서 네가 악을 행하여 그를 잊으므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여호와께서 저주와 공구와 견책을 내리사 망하며 속히 파멸케 하실 것이며 여호와께서 네 몸에 염병이 들게 하사 네가 들어가 얻을 땅에서 필경 너를 멸하실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저주의 말씀입니다 

정말 그 저주가 그대로 이스라엘에게 임한다는 것을 우리가 이제 예레미야 선지자의 말씀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제사장과 서기관입니다 그들이라면 학문적으로도 뛰어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고 하나님을 믿는 일에도 잘 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 저주에 대해서 모르고 있기 때문에 여선지자 훌다에게 그것을 물으러 가고 있습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고 네게 명하신 그 명령과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므로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고 너를 따르고 네게 미쳐서 필경 너를 멸하리니 이 모든 저주가 너와 네 자손에게 영원히 있어서 표적과 감계가 되리라는 말씀이 그들에게는 아무도 두려운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요시야 왕입니다 

그래도 그는 이 저주의 말씀이 자기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깨닫고 선지자를 찾아가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율법을 보고 있지만 아니 이 시대는 자기들의 교리로 시민법이 폐하여졌다고 하면서 율법을 보려고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저주의 말씀을 보면서도 그저 남의 집에 불구경하듯이 보고 지나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는 시작입니다 

더구나 교회의 왕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가 성경을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 그 백성까지 다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교회에서 왕과 같이 제사장이 있고 니골라당이 있습니다. 그 둘이 성경을 보는 시각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요시야 왕입니다 

그는 이 저주가 자기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여선지자 훌다에게 제사장과 서기관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 종교를 보시기 바랍니다. 신명기에서 말씀을 하는 율법을 시민법이라고 하면서 거의 보려고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니 자기들의 교리로는 폐하여졌다고 하기 때문에 굳이 보려고 하는 사람도 없고 깊이 상고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깨달아야 합니다

다 누구에게 하는 말씀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우리에게 하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이스라엘은 비유와 예표와 경계가 되기 때문에 육체로 그 저주를 그대로 다 받았고 우리에게는 영의 일이 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모세입니다 

율법을 반포를 하고 있습니다.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실행치 아니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찌니라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율법이 이스라엘에게만 해당이 되는 시민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모든 사람에게 하고 있는 말씀이고 실제 이 시대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이 다 그렇게 함으로 해서 저주를 받고 있지만 그것이 실행이 안 되니까 담대합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은 육적으로 모든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두려워했고 그래서 왕이 이 율법책에 대해서 물으려고 여선지자 훌다에게 당시 제사장과 서기관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묻는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그들은 율법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의미를 깨닫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23, “훌다가 저희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으로 너희는 너희를 내게 보낸 사람에게 고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곳과 그 거민에게 재앙을 내리되 곧 유다 왕 앞에서 읽은 책에 기록된 모든 저주대로 하리니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의 육의 일입니다. 우리의 영의 일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방의 종교인들은 율법을 보고 제사법과 시민법과 도덕법으로 나누고 있고 그런 그들이 도덕법만 지키는 것이 아니라 제사법과 시민법을 지키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은 비록 문자 그대로 지켰을지라도 율법책에 있는 모든 말씀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방의 종교는 자기들의 교리에서도 벗어나게 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의 종교에 필요한 것은 취하고 필요치 않은 것은 취하지 않고 있습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 자체를 무시를 하고 있는 행위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22:19을 보면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고린도전서15:3절을 보면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성경말씀입니다 

율법이라고 해도 우리가 마음대로 제하여 버릴 수 있습니까? 이 시대와 맞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 마음대로 제할 수 있습니까? 그 말씀을 사실은 자기들이 깨닫지를 못하고 있는 것이지 이스라엘은 우리 이방인들의 예표와 비유라는 것을 알면 절대로 그렇게 할 수 없는데도 이 시대는 마치 이스라엘의 일만으로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신명기의 율법입니다 

그리고 저주의 말씀입니다. 그것이 이스라엘만 해당이 되는 말씀입니까? 그렇다면 성경은 그 자체로 모순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 요한에게 환상으로 보여주시면서 성경을 마치면서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방의 종교입니다 

자기들 마음대로 제하여 버렸습니다. 그들은 교리부터가 스스로를 저주를 받게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영의 일을 모르고 그저 성경의 문자를 보니까 마치 자기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율법과 같이 보이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고 있는 성도는 깨닫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의 육의 일입니다. 신명기의 저주대로 그들은 완전히 멸망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의 육은 우리의 영의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간 것과 같이 요한계시록에서 바벨론을 말씀을 하고 있고 이방의 종교인들 역시 바벨론에 포로가 되어 저주를 받고 있으면서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성경대로입니다 

성경에서 어느 한 말씀이라도 버릴 수 있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주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이스라엘이 육체로 받았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그들의 육체의 일이 우리의 영의 일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그렇게 받아들이지를 않고 있습니다

 

저주입니다 

그래도 이스라엘은 성경말씀을 제하여 버리는 우를 범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방인들은 저주에 저주를 자청하고 있습니다. 율법도 모르고 있고 모르다보니까 그 율법이 폐하여졌다고 하면서 더 이상 그 율법을 보려고도 하지 않고 제하여 버림으로 해서 저주에 저주를 자청하고 있으면서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율법입니다

누구에게 하는 말씀입니까? 우리 인생들이 저주를 받는 일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다 하고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지 않아서 율법을 보아도 도무지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지를 깨닫지를 못하니까 이방의 종교는 교리로 폐하여졌다고 하고 있습니다

 

제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모든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를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생들은 성령이 오시지 않아서 증거를 받지 못하니까 폐하여졌다고 하면서 제하고 있고 사도 요한을 통해서 분명히 경고를 하고 있지만 아주 담대하게 성경말씀을 무시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 요시야 왕은 옷을 찢고 있는데 이방의 종교인들은 자기들과는 상관이 없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24,“이는 이 백성이 나를 버리고 다른 신에게 분향하며 그 손의 모든 소위로 나의 노를 격발하였음이라 그러므로 나의 노를 이 곳에 쏟으매 꺼지지 아니하리라 하라 하셨느니라

 

분향입니다 

기도를 비유적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안 믿었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바알과 아세라를 말씀을 하니까 이 시대 종교인들이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들의 육의 일을 비유로 해서 우리의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고 실제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제가 부정하고 싶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단이 주는 것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포도원의 비유를 말씀을 하면서 한 데나리온을 약속을 하셨습니다. 바로 이 한 데나리온이 하나님 나라를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심으로 해서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사단입니다 

주님께서 광야에서 사십일을 금식하고 시험을 받으실 때 천하만국의 영광을 보여주면서 내게 절하면 이 모든 것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인생이 보고 알고 좋게 생각을 하고 있는 모든 것이 누구에게 있는가 하면 사단에게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 종교입니다.

누구에게 분향을 하고 있습니까? 다른 신에게 분향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 기도를 하고 예배를 하는 것은 다 이 세상 천하만국의 영광중에서 자기들이 얻고 싶은 것을 얻기 위해서 그렇게 하고 있고 그것을 역대하에서는 다른 신에게 분향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솔직히 누가 믿는다고 할 수 있습니까? 이방의 종교인들을 보면 거의 다 다른 신 사단이 주는 것을 위해서 그들이 예배를 하고 기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누가 오직 영생을 얻기만을 위해서 기도를 하고 그 기도가 금 대접에 담겨 있다고 할 수 있습니까

 

비유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육의 일은 우리의 영의 일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방의 종교는 이스라엘보다 더 심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주여 주여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지만 자기의 소위가 어떠한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진노입니다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이 왜 율법을 잘 지키려고 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인생의 본성이고 그렇게 율법을 잘 지킴으로 해서 복을 받는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지금 말씀을 하고 있고 그런 이스라엘에게 저주를 말씀을 하고 있고 사도 요한은 진노의 포도주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율법을 지키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25, “너희를 보내어 여호와께 묻게 한 유다 왕에게는 너희가 이렇게 고하라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들은 말을 의논컨대 내가 이 곳과 그 거민을 가리켜 말한 것을 네가 듣고 마음이 연하여 하나님 앞 곧 내 앞에서 겸비하여 옷을 찢고 통곡하였으므로 나도 네 말을 들었노라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이스라엘의 육의 일입니다 

우리의 영의 일이라는 것을 늘 생각을 하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하나도 버릴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증거를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방의 종교는 자기들의 교리가 성경보다 더 우선이 되고 있어서 성경도 마음대로 제하고 있습니다

 

요엘 선지자입니다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찌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육의 일이기 때문에 옷을 찢었습니다

 

히브리서5:7절을 보면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세상에 우리와 같은 형상을 입고 오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생명을 얻게 하시는 모든 구속의 일을 이루시고 이제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시야 왕입니다 

그의 통곡으로 그는 육체적으로 저주를 받지 않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바벨론의 포로가 되지 않을 수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그 바벨론의 포로는 생명을 얻지 못하는 것을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고 주님께서 통곡하심으로 영으로 부활하심을 얻은 것과 같이 요시야 왕 역시 그가 통곡함으로 해서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왕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가 있을 때 그 백성이 구원을 받을 수도 있고 그 백성이 다 멸망을 당할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요시야 왕은 자기 생명을 위해서 그러니까 영의 생명을 위해서 율법의 저주를 받지 않기 위해서 통곡을 함으로 해서 하나님께서 들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28,“그러므로 내가 너로 너의 열조에게 돌아가서 평안히 묘실로 들어가게 하리니 내가 이 곳과 그 거민에게 내리는 모든 재앙을 네가 눈으로 보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사자들이 왕에게 복명하니라

 

요시야 왕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평안이 무엇입니까? 이 세상에서 나이가 늙고 평안히 죽는 것을 편안히 묘실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까? 우리는 성경에서 요시야 왕이 어떻게 죽었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애굽 왕 느고가 갈그미스를 치러 와서 요시야에게 상관하지 말라고 했지만 변장을 하고 싸우다가 죽었습니다

 

전쟁에서 죽었습니다

그것도 제 명을 다하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그것이 평안히 표실로 들어가는 것입니까? 아마도 사람들은 이 말씀을 보면서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영의 일을 말씀을 하는 것이지 육의 일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에베소서6:15절을 보면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요한계시록21:9절을 보면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평안입니다 

요시야 왕은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증거를 받고 믿음으로 역사를 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재앙을 받지 않았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재앙은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아도 요시야 왕과 같은 사람이 없는 것을 쉽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마음대로 제하거나 더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방의 종교는 너무 심합니다. 그 결과가 어떠하다는 것을 성경에서 증거를 하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증거를 받고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신을 신고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시기를 부탁드립니다.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