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12:12절을 보겠습니다. (신 168쪽)
“그 이튿날에는 명절에 온 큰 무리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신다 함을 듣고”
마리아입니다
지극히 비싼 향유를 주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주님의 발을 씻겼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향유 냄새가 온 집에 가득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제 구속의 일을 다 이루시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전입니다
주님께서는 그 성전에 속죄소에 있는 향품의 냄새가 의미를 하고 있는 모든 일을 이 세상에 오셔서 다 이루셨습니다. 그 향품을 사도 바울은 향기로운 냄새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왜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인가 하면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시고 장사지낸 뒤 영으로 부활하시고 우리에게 그 생명을 얻게 하기 때문에 향기로운 냄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삼백 데나리온입니다
일용직에 있는 사람이 일 년을 일해서 벌 수 있는 금액이니까 상당히 비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알고 있는 제자들이 마리아가 향유를 주님의 발에 붓고 집에 향유 냄새가 가득한 것을 보고 그것을 팔아 가난한 자에게 나눠 주는 것이 좋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육적인 가난한 자입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내 장사할 날을 위해서 그냥 두라고 하시고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무엇이 더 중요한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사람의 이성에 따라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자입니다
물론 육적으로 가난한 자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영적으로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육적으로 가난한 자를 이야기를 했고 주님께서는 영적인 의미를 가지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가난한 자가 항상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가난한 자입니다
거의 영적인 의미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육적인 가난한 자를 말한 것은 제자들의 이 말이 유일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성경은 다 비유의 말씀이기 때문에 그리고 영적인 일을 말씀을 하기 때문에 가난한 자를 영적인 의미로 보아야 합니다.
우리 인생입니다
영적으로는 다 가난한 자라는 것을 신명기의 율법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부자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신명기의 율법에서 가난한 형제가 네게 와서 꾸이거든 네 손을 넉넉히 펴서 꾸어 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영적인 말씀이고 이 말씀은 우리가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의를 비유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런 가난한 자라는 것을 늘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율법에 정해져 있는 대로 우리는 주님께 우리가 필요한 대로 넉넉히 꾸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의를 얻어서 생명을 얻은 자로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그 생명으로 부활을 한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 가난한 자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주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난 후에 제자들은 주님의 말씀과 같이 항상 가난한 자들이 있는데 그들에게 주님에게 꾸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의를 얻을 수 있게 할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실제 제자들은 그 일을 했습니다.
무엇이 중요합니까?
가난한 자를 돕는 것이 중요합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합니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무엇이 더 중요한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우리가 들은즉 너희 가운데 규모 없이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만 만드는 자들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자를 돕는 일입니다.
그것은 규모 없이 행하여 도무지 일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게 하는 일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생명을 얻는 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는 이렇게 도무지 일은 안하고 일만 만드는 자들이 더 많이 있습니다.
종교입니다.
그들이 수많은 일들을 만들었습니다. 지금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예배, 찬송가를 부르는 일, 기도를 하는 일, 전도하는 일, 선교를 하는 일, 가난한 자를 돕는 일 등 수많은 일을 만들어서 하고 있고 실제 생명을 얻는 일은 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방의 교회가 그렇게 될 것을 아시고 사도 바울을 통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죽은 나사로입니다
그가 무덤에 있은지 나흘이 되었고 벌써 냄새가 나기 시작했는데 주님께서 그 무덤을 열라고 하시고 나사로를 나오게 하심으로 해서 그가 다시 살아났습니다. 이 나사로의 사건은 우리가 성경을 보면 알 수 있지만 에스겔 선지자의 예언의 말씀을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그대로 이루시는 말씀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입니다
그들은 조상 대대로 하나님을 믿었고 성경도 늘 보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사로의 사건을 보고도 성경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 시대 종교인들 역시 에스겔 선지자의 말씀을 인용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무덤을 열고 나오게 하셨습니다.
그분이 누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그것을 보면 내가 여호와 인줄 알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만 보아도 주님께서는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우리가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도 그렇고 이방의 종교인들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지나친 열심이 성경을 바로 편찬하지 못하게 하고 있고 인생들의 생각을 첨삭을 해서 제목을 붙여 놓고 있고 또 자기들이 아는 말씀만 인용이라고 해서 표기를 하고 있고 장절을 붙여 놓음으로 해서 진리를 아는데 방해가 되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인생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열심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는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에스겔의 말씀입니다
무덤에서 나사로를 나오게 하셨습니다. 그 나사로에게 내 처소가 그들 가운데 있을 것이며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에스겔 선지자의 말씀만 알아도 굳이 요한복음에 기록이 안 되어 있어도 나사로가 생명을 얻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처소입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에서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생명을 어떻게 얻는가를 말씀을 해 주고 있지만 사람들은 성경을 바로 볼 수 없습니다. 종교에 의해서 사람들의 철학적 지식에 의해서 진리를 알아 가는데 방해가 되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종교입니다
우리는 종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은 유대교를 처음 짐승으로 말씀을 하고 있고 그리고 이방의 종교를 두 번째 짐승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짐승이 되어 있는 종교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자기 땅에 오신 하나님을 죽이는데 앞장을 서서 모의를 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가장 잘 믿는다고 자부를 하고 남들도 그렇게 인정을 하는 그들이 앞장을 서서 진리를 막고 있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지금 이 시대도 역시 사람의 철학적 지식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과 같은 그들이 실상은 주님을 죽이는 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다음날에는 명절을 지키러 온 많은 무리가,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오신다는 말을 듣고,”
종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종교가 되는 것을 가장 싫어하십니다. 왜 그런가 하면 종교가 되는 순간 그 안에서는 구원을 받을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종교를 짐승으로 비유로 해서 그리고 음녀를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종교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짐승과 행음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찌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영의 일입니다. 실제 짐승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짐승이 되어 있는 종교가 되어 있는 교회 안에서 율법의 행위를 하는 것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을 요한계시록에서는 우상을 숭배하게 하고 표를 주어 매매를 하게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짐승입니다
이스라엘이 이 짐승의 밥이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이 시대를 보더라도 짐승이 되어 있는 종교에 모두가 미혹이 되어서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사망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제가 유대교와 이방의 종교를 짐승이라고 하면 그들이 심하게 반발을 하고 저를 이단으로 때로는 위해를 가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기 때문에 성경대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이튼 날입니다.
그러니까 이 일이 있은 후 다음 날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명절에 온 큰 무리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신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제 예루살렘으로 가셔서 유월절에 예비일을 드시고 십자가에서 운명을 하십니다.
갈라디아서1:4절을 보겠습니다. (신 302쪽)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으니”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구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여호와 하나님입니다. 우리 인생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우리와 같은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 방의 종교에서는 사람들의 철학적 지식으로 만든 삼위일체를 믿고 있는데 그들은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가 믿는 하나님도 모릅니다.
그가 누군지도 모르는 그들이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하나님이라고 믿었는데 실상은 하나님이 아니라 인생들이 만든 허상이었다면 그것보다 더 참담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평생입니다
내 할아버지 때부터 해서 집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정말 누가 보아도 종교인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평생을 교회 안에서 성도로서 살면서 주여 주여 했는데 자기는 삼위일체라고 믿었는데 삼위일체라는 것이 아예 없다면 그는 주님의 말씀과 같이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최소한 자기가 믿는 신이라면 그의 존재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알아야 한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에 대해서 다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내가 믿는 신이 유일하신 하나님인가 아니면 성경에도 없는 삼위일체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방인들의 종교는 성경에서도 증거를 하지 않는 삼위일체를 믿고 있습니다. 성부가 어디 있고 성자가 어디 있고 위가 어디에 있고 격이 어디 있습니까?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저는 찾을 수 없고 그 비유라도 그것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을 합니다.
기본입니다.
내가 누구를 믿는가를 아는 것이 믿음에서 기초가 되는 것 아닙니까? 나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믿었는데 실상은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면 그것 보다 더 난감한 일은 없습니다. 인생의 삶에서 난간함 일이라면 다시 고치면 되겠지만 내세는 우리 육체가 한번 죽으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다시 기회가 있어서 아! 내가 잘못 알고 있었구나 하고 돌이킬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11장입니다.
병든 나사로가 죽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무덤에 있은지 나흘이 되어 벌써 냄새가 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의 무덤에 주님께서 가셔서 그 무덤을 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사로를 부르시고 나오게 하셨습니다.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에스겔 선지자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그대로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무덤에서 나온 자에게 생명을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는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리라고 말씀을 하시면서 그 일을 보게 되면 내가 여호와인줄 알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일을 우리가 나사로가 무덤에서 나오는 것으로 보았으면 주님께서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모릅니다.
자기들이 믿는 하나님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라는 증거가 성경에서 차고도 넘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삼위일체는 성경 어디에서도 비유조차로도 찾을 수 없는데 종교인들은 자기들이 계시를 받았다고 하면서 그 계시가 고상한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 안 봅니까?
성경을 무시를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성경 외에 계시를 받으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얼마나 어리석은 자의 소행이라는 것을 바로 깨닫지를 못하면 그는 종교라는 거대한 집단에 의해서 사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종교입니다
그 종교라는 거대한 집단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종교의 사상을 믿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 종교 역시 자기들이 만든 교리를 믿고 있고 그것을 성경보다 더 우위에 두고 있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단입니다
그들은 성경보다 그들의 교리를 더 중요시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느 교파 같은 경우에는 여러 가지 기도문이라든지 책들을 보고 읽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표적인 이단이라고 하는 종파는 원리강론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렇게 그들은 성경보다 더 우위에 두고 있는 책들이 있어서 성경을 바로 볼 수 없게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신학교에서부터 종교인이 되기 위해서 많은 책들을 가지고 공부를 하고 있고 안수를 받은 그들이 그 책들을 근거로 해서 성경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그들이 성경을 상고할 수도 없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도 모릅니다.
그리고 생명에 대해서도 모르고 있습니다. 생명을 얻어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데 그 생명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면서 그저 이 세상 사람들이 이야기를 하는 것과 같이 인생의 철학으로 천국이라는 막연함을 가지고 간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모든 말씀은 성경이 기초가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가능한 성경 외에 있는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성경은 문자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그 의미도 내가 상상을 해서 아는 것이 아니라 나사로의 사건과 같이 이미 성경에 다 예언이 되어 있고 그것을 인용을 함으로 해서 그 의미를 알아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나사로를 무덤에서 나오게 하셨습니다.
그 자체로 주님께서는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우리가 믿을 수 있고 또 나사로 역시 생명을 얻은 자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성경에서 다 증거를 해 주고 있고 우리는 성경에서 증거를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생명을 얻은 자로서 그 생명으로 주님의 날에 부활에 영광에 참예를 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영의 일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다 악하다는 것을 성경이 말씀을 하고 있고 우리는 그렇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 악한 세대에서 주님께서 자기 몸을 드리심으로 해서 우리가 생명을 얻게 되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유월절입니다
이제 주님은 사역을 거의 다 마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도 유월절을 거의 다 먹이셨습니다. 그리고 성경대로 십자가에서 장사되기 위해서 이제 예루살렘으로 입성을 하고 있습니다. 당시 유월절이 기간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전에 와 있었다는 것을 사도 요한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죽은 자입니다.
그것도 무덤에서 나흘이 되어 벌써 냄새가 나기 시작을 하고 있는 나사로를 살리셨다는 것을 이제 유대인들이 다 알고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주님은 이 세상에서 오셔서 이 성경에 다 기록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표적을 행해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죽은 자 가운데 다시 산 나사로의 일로도 많이 믿었고 주님을 보고 싶어 했습니다.
성경대로입니다
주님은 지금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시는 길이 어떠하다는 것을 다 알고 계시는 분입니다. 사도 바울의 말씀과 같이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시기 위해서 들어가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물론 주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입니다. 우리와 같은 육신을 입고 오셨지만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일을 하시는 동안에는 철저하게 우리 육신과 같이 자기를 낮추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고통입니다.
우리 인생이 받는 것을 그대로 다 받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하나님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시고 우리에게 태초에 있는 생명을 얻게 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 하나님께서 오셔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심으로 해서 이제 유대인들에게 잡혀 십자가를 지시게 됩니다.
종교입니다.
대제사장들입니다. 그들은 이미 주님을 죽이기로 다 모의를 했다고 앞 절에서 사도 요한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것을 다 아시고 계시지만 우리에게 생명을 주기 위해서 장사가 되고 삼일 만에 영으로 부활하심으로 해서 우리도 그 길을 따라가게 하기 위해서 먼저 우리로 앞서 가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이스라엘은 주님께서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또 그 소문을 듣고 주님을 맞이하고 있지만 실상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누가 자기의 것을 무한의 가치가 있는 생명을 아무 조건이 없이 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 세상의 어느 종교도 이 생명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니 인생의 이성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기 때문에 그들은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에게는 성령을 보내주심으로서 이 생명에 대해서 증거를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고 그 믿음이 실상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미 소문이 다 났습니다.
유대인들도 이성이 있습니다. 병든 자를 고쳐 주시고 그리고 나면서부터 소경인 사람의 눈을 뜨게 하시고 또 죽어 무덤에 있은지 나흘이 되어 벌써 냄새가 나는 나사로를 살리시고 성경에 기록이 되지 않은 여러 가지 표적을 행하셨다는 것을 다 들어서 알고 있고 그리고 보리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배부르게 먹이시고 열두 광주리를 남기게 하셨습니다.
인생입니다
먼저 배부르면 됩니다. 그리고 자기가 잘 집이 있으면 됩니다. 그리고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살면 됩니다. 인생들이 바라는 것이 다 그것 아닙니까? 물론 거기에 돈이 많이 있다면 금상첨화가 된다는 것을 모두가 인정을 하고 있지만 최소한의 것을 주님께서 다 해결해 주시는 것을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주님이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제까지 주님께서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소문을 듣고 주님을 맞이하는 유대인들입니다. 이제 뒤에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주님께서는 구속의 일을 다 이루시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서 들어가시고 유대인들은 자기들의 왕으로 맞이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12:13절을 보겠습니다. (신 168쪽)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종려나무 가지를 꺾어 들고, 그분을 맞으러 나가서 "호산나!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에게 복이 있기를! 이스라엘의 왕에게 복이 있기를!" 하고 외쳤다.”
하나님입니다.
영의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이제 주님이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그러니까 우리에게 생명을 얻게 하는 모든 일을 다 이루시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입니다.
이제까지 우리가 요한복음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독생하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왜 이 세상에 오셨는가 하면 우리 양들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기 위해서 오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방의 종교입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만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우리 양들에게 주시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들은 바알 사상에 빠져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니까 자기들이 원하는 온갖 것을 하나님께 기도를 해서 얻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입니다.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고 그저 보이는 교회 안에 있으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당연히 가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유대인들도 주님께서 내 양이 아니라고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는데 자기들은 유대인들과 다르다고 하면서 생명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고 있으면서도 천국에 간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입니다.
그 외에 어느 것도 우리에게 주시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니 주고 싶어도 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지으시고 이 지구의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사단에게 지고 말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왕과 왕의 싸움에서 한 왕이 지면 그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은 이긴 자의 것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바로 이 문제입니다.
지구는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다스리라고 주셨지만 아담이 사단에게 짐으로 해서 이긴 자의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사단은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사십일을 금식하실 때 나타나서 주님을 미혹을 하면서 천하만국의 영광을 보여주면서 나에게 절을 하면 이 모든 것을 다 주겠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천하만국입니다.
이제 누구의 것입니까? 사단의 것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자기 것이기 때문에 주님을 미혹하면서 내게 절을 하면 이 모든 것을 주겠다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자기 것도 아닌 것을 준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 지구 안에 있는 모든 것입니다.
거기에는 교회도 있고 그 교회 안에 있는 성물이라는 것도 있고 또 교인들이 하나님께 드린다고 하는 헌금도 있고 자기들이 교회 안에서 하고 믿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행위도 있고 그 모든 것이 다 사단의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그것을 어떻게 주실 수 있습니까?
강도입니까?
남의 것을 빼앗아서 우리에게 준다는 것은 주님께서 강도라는 것을 이야기를 하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실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이 지구 안에서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비록 창조주하나님이시고 이 모든 것을 지으신 분이라고 해도 이미 아담에게 주었고 그것을 아담이 사단에게 빼앗겼는데 어떻게 줄 수 있습니까?
하나님입니다.
아니 그런 것에 관심도 없습니다. 이 세상 형적은 지나간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도 헛것 같고 그림자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지구도 언젠가는 멸망을 당한다는 것을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데 그것을 우리에게 주어서 무엇하겠습니까?
그것은 다 헛것입니다.
그러면 실체는 무엇입니까? 바로 생명입니다. 영원한 생명이라는 말씀입니다. 그 영원한 생명만이 실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빅뱅이 138억년에 있었다고 합니다. 그 기간 동안에 보였다가 사라진 것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저 우주를 보면 물론 아직까지 남아 있는 것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지구 안에서는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생명입니다.
하나님은 생명의 원천입니다. 이 생명만이 그 이전부터 남아 있어서 아직까지 그대로 있고 또 언제까지 끝도 없이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도 실체가 무엇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바로 그 실체를 주시겠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실체를 아직 우리 인생의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면서 주님이 오셔서 우리 양들로 생명을 얻게 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주기 위해서 입니다.
주님께서는 이제 예루살렘으로 입성을 하시고 계십니다. 그러니까 우리 양들에게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서 마지막 구속의 일을 이루시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시고 있습니다. 그 일을 이루시기 위해서 표적도 나타내시고 한 것이지 이제는 더 이상 그런 일이 없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알아듣고 깨달을 수 있게 표적을 보이시고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들이 무엇을 압니까?
주님이 오셔서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듣고 했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계심으로 해서 모든 것이 해결이 될 수 있는 것과 같이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죽은 나사로가 무덤에 있는데 벌써 나흘이 되어서 무덤에 있는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는 것을 보고 들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왕이 이 세상에 오셨다고 생각을 하고 있고 자기들의 왕으로 새로운 세상을 만드실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생각입니다.
그들이 주님을 예루살렘에서 맞이하는 생각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육의 일을 보고 주님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맞이하고 있고 주님께서는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마치 그들이 주님을 알고 맞이하는 것으로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대하 3:5절을 보겠습니다. (구 658쪽)
“그 대전 천장은 잣나무로 만들고 또 정금으로 입히고 그 위에 종려나무와 사슬 형상을 새겼고”
성전입니다.
저의 육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성전을 그냥 자기들의 생각대로 지었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의 모든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하고 있고 그럼으로 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가 교회 안에서 남으로 해서 믿음으로 역사를 할 수 있고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늘 말씀을 하고 있지만 성경은 우리 이방인들을 위한 비유와 예표라는 것을 알고 보아야 합니다. 성경에 어느 말씀이 있다고 해서 마치 그 시대 그 사건으로 보아서는 안 되고 모든 말씀은 영생에 대해서 비유와 예표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입니다
이제는 다 기록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의 하나님의 감동은 없고 더 이상의 하나님의 말씀은 없습니다. 우리는 이제 성경에서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음으로 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다시 말씀합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십자가를 지시기 바로 전이라는 것을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마리아가 주님의 발에 향유를 붓는 사건을 보아서도 알고 있지만 인생들은 그 일을 모를지라도 주님께서는 내 장사할 날을 위하여 이를 두게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철학적 지식입니다.
당연히 주님께서 오셔서 실제 가난한 자를 위하시고 또 병자들을 고쳐 주시는 것을 보고 제자들까지도 실제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위하는 것이 마치 주님의 뜻인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지만 주님께서는 마리아를 통해서 장사할 날을 예비하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시기 전입니다.
우리 인생의 철학적 지식으로는 도무지 깨달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리아가 주님의 발에 향유를 붓는 것을 보고 그들은 가난한 자를 돕는 것이 좋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창조주 하나님이시고 이 일 역시 우리 인생들을 구원하시는 구속의 일을 증거를 하기 위해서 창세전에 예비를 하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입니다.
성령이 오시기 전에는 도무지 무슨 말씀을 하는지를 깨닫지를 못 했습니다. 그러나 사도 요한은 성령이 오시고 난 후에 이 요한복음을 기록을 했고 같은 성령을 받은 성도들은 이 말씀을 보고 주님의 장사를 위해서 마리아가 주님의 발에 비싼 나드 한 근의 향유를 붓는 일이 영적으로 속죄소에 있는 향품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이 그렇습니다.
성경의 문자를 보고 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 이 시대 마리아가 주님의 발에 향유를 붓는 사건의 말씀을 요한복음에서 보고 있지만 그 말씀의 의미를 깨닫고 있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성경은 이렇게 인생들은 모를지라도 주님께서 영의 일을 이루시는 것을 증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인생의 지식입니다.
주님께서 2000년 전에 오셔서 이루셨던 일이라는 것을 성경에서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오시면 이미 속죄소에 그 향품이 있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은 모세가 하늘에 있는 모형을 보고 그대로 했다는 것을 히브리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시간적 개념입니까?
그렇게 성경을 보는 사람은 영생에 대해서 깨달을 수 없습니다. 마리아가 주님의 발에 향유를 붓는 일은 속죄소에 있는 향품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시기 위해서 주님께서 예비를 하신 일이고 마리아는 모르고 했지만 이제 성령이 오심으로 해서 제자들과 그리고 성령을 받은 성도는 주님께서 하나님 나라에 어떻게 들어가셨는가를 알게 되고 또 우리 역시 믿음으로 역사를 한다는 것을 믿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정도로 말씀을 해도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미 그들의 지식으로 매너리즘에 빠져 있기 때문에 아무리 말씀을 해도 들을 수 없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강조를 하고 또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은 우리 성도는 이미 충분히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고 있습니다.
성경의 문자입니까?
그것이 히브리어로 기록이 되어 있고 헬라어로 기록이 되어 있다고 해서 그것을 안다고 해서 마치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영의 일을 깨달을 수 있는 것으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으로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 이 시대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이 거의 그런 생각으로 성경을 보고 있지만 그것이 도리어 사망의 길로 가게하고 있습니다. next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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