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11:39절을 보겠습니다. (신 166쪽)
“예수께서 가라사대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가로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돌을 옮겨 놓아라" 하시니, 죽은 사람의 누이 마르다가 말하였다. "주님, 죽은 지가 나흘이나 되어서, 벌써 냄새가 납니다."”
병든 나사로입니다
마르다와 마리아가 주님께 사람을 보내서 주의 사랑하시는 자가 병이 들었다고 하면서 빨리 오시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시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죽을 병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틀을 더 유하시니까 나사로가 죽었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하나님이심을 믿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지금 종교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삼위일체를 믿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이 풀리지도 않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도 없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나사로가 죽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다고 말씀을 하시면서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간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제자들이 차라리 잠들었으면 낫겠나이다. 라고 말을 하니까 주님께서 밝히 이르시되 나사로가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유대로 오셨습니다.
나사로는 죽었고 무덤에 있은 지가 이미 나흘이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오셨다는 말을 듣고 먼저 마르다가 와서 주님께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마르다에게 주님께서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르다입니다.
자기가 아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날 부활에는 다시 살줄을 내가 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마르다가 안다고 하는 자기가 안다고 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우리가 사랑과 영혼이라는 영화를 보아서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그 영화의 엔딩 장면이 주인공이 육체의 모습으로 영과 같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보여주고 있고 사람들은 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마르다에게 주님이 말씀합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마르다가 안다고 하는 부활이 아니라 내가 생명인데 그 생명으로 부활을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종교입니다
마르다가 안다고 하는 부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종교의 조직신학이라고 하는 책에서부터 그렇게 부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고 모든 종교인들이 신학교에서 그렇게 배우고 있고 성경을 보고 그렇게 교인들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고 교인들은 자기들이 마르다의 말과 같이 마지막 부활에는 죽은 나사로의 모습으로 다신 사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절대 아닙니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온 것은 양들로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고 내가 그 생명으로 부활을 먼저 하고 너희도 그 생명으로 부활을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리아를 만납니다.
마리아는 주님을 보고 울면서 마르다와 같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양이라고 하는 마르다와 마리아도 그렇고 그들을 위로하기 위해서 온 유대인들도 역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목적을 모르는 것을 보고 주님이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주님께서 오신 목적입니다
양들로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양들이라고 하는 그들이 생명에 대해서는 주님께 전혀 구하지를 않고 자기 오라비 나사로의 육체의 죽은 것을 육체적으로 슬퍼하면서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통분히 여기시고 민망히 여기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들은 영의 일을 깨닫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철학적 지식으로 성경을 보고 있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누가 하나님의 마음을 알겠습니까? 우리 인생과 하나님이 얼마나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요한복음11장을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인생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주님께서는 눈물을 흘리시고 있지만 그 의미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종교가 아닙니다.
그리고 인생들의 철학적 지식도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인생들은 자기들의 언어로 기록이 된 성경의 문자는 아는 것으로 마치 대단한 지식이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말씀합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셔야 한다는 것을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믿음을 주시는가 하면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해서 우리가 성경에서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하게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생입니다
자기들이 성경을 보고 아는 철학적 지식으로 아는 것을 가지고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믿음이 아니라 인생들의 철학적 지식으로 그 지식으로 아는 것으로 그렇게 믿고 싶은 마음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아 믿는 것과 인생의 철학적 지식으로 성경을 보고 아는 것으로 믿는 것은 전혀 다른 본질임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은 자기가 아는 그대로 믿고 싶은 것이고 그것을 마르다가 말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유대인들입니다
그들이 인생들의 지식으로 아는 것을 마르다가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을 주님에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마르다가 인생의 철학적 지식으로 아는 것에 대해서 다시 정확하게 가르쳐 주고 있지만 이방인들이 이 성경을 보면서도 무슨 말씀인지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지식입니다
그것을 가지고 믿음이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인생들이 그렇게 믿고 싶은 마음을 교리로 만들어서 믿는다고 하는 것이지 성경말씀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마르다도 역시 인생의 철학적 지식은 있지만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과 같이 하나님의 아들로 믿지를 못하니까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스가랴14:4-5절을 보겠습니다. (구1325쪽)
“그 날에 그의 발이 예루살렘 앞 곧 동편 감람산에 서실 것이요 감람산은 그 한가운데가 동서로 갈라져 매우 큰 골짜기가 되어서 산 절반은 북으로, 절반은 남으로 옮기고 그 산 골짜기는 아셀까지 미칠찌라 너희가 그의 산 골짜기로 도망하되 유다 왕 웃시야 때에 지진을 피하여 도망하던 것 같이 하리라 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임하실 것이요 모든 거룩한 자가 주와 함께하리라”
성경입니다
그냥 기록이 되었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니 이 시대는 종교의 교리 때문에 성경을 바로 볼 수 없습니다. 요한복음11장을 보면서도 그저 죽은 나사로에 대한 말씀을 그리고 마르다와 마리아가 자기 오라비의 죽은 것을 슬퍼하는 것을 말씀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면서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성경을 왜 봅니까?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유대인들에게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해서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해서 증거를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영생을 얻은 자 되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베다니 마을입니다
감람산 경사면에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감람산에 오실 것을 스가랴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경을 보고 있지만 자기들의 교리 때문에 스가랴 말씀과 요한복음의 말씀을 서로 인용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종교의 교리고 인생들의 지식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스가랴 선지자입니다.
그 날에 그의 발이 예루살렘 앞 곧 동편 감람산에 서실 것이요 감람산은 그 한가운데가 동서로 갈라져 매우 큰 골짜기가 되어서 산 절반은 북으로, 절반은 남으로 옮기고 그 산 골짜기는 아셀까지 미칠찌라 너희가 그의 산골짜기로 도망하되 유다 왕 웃시야 때에 지진을 피하여 도망하던 것 같이 하리라 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임하실 것이요 모든 거룩한 자가 주와 함께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용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바로 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일하실 것이라는 말씀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인용을 하게 되는 순간 자기들의 종교에서 만든 교리가 잘못 되었다는 것을 인정을 하기 때문에 인용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습니다.
누가 봐도 그렇습니다.
분명히 주님이 오셔서 이루시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단지 문자적으로 여호와라는 단어가 있으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감람산에 서실 것이라는 이 말씀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임하시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모든 거룩한 자입니다
누가 거룩한 자입니까? 주님께서 요한복음10장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렇게 주님께서 주시는 생명을 얻는 양들이 거룩하다는 것을 우리 성도는 믿고 있습니다.
인생입니까?
우리는 거룩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정의를 하고 있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거룩한 자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먼저 기초로 세우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생명에 대해서도 모르니까 아니 종교에서 증거를 하지 않으니까 누가 거룩한 자인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자기 양입니다
주님의 양이 누구입니까? 지금 11장에 와서 주님께서는 마르다와 마리아와 그리고 그 오라비 나사로를 사랑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자가 예수의 생명을 얻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생명이 거룩한 생명이라는 것을 우리 성도는 믿고 있습니다.
선지자의 예언입니다
그 말씀이 반드시 응하게 되어 있습니다. 응하지도 않는 말씀을 했다면 우리는 성경을 볼 필요도 없고 하나님을 믿을 이유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스가랴 선지자가 말씀을 하는 감람산은 바로 베다니 마을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쉽게 알 수 있고 지금 주님께서 오셔서 하나님의 영광을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스가랴 선지자의 말씀이 응하게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사랑하시는 자 그리고 주님께서 친구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 나사로가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죽으면 그는 더 이상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스가랴 선지자입니다.
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임하실 것이요 모든 거룩한 자가 주와 함께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10장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양들로 생명을 얻게 하고 그 생명을 얻은 자들이 거룩한 자라는 말씀을 하고 있고 그들이 감람산에 설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사로가 죽었습니다.
성경을 보는 목적입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시는 구속의 일을 증거를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하기 위해서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저 요한복음11장 말씀만 본다면 이 말씀이 무슨 말씀이 응하는 말씀인가를 모른다면 주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는 표적만을 이야기를 하게 되어 있고 지금 종교인들이 그렇습니다.
인생입니다
주님께서 나사로의 무덤에 오셔서 돌을 옮겨 놓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마르다는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유대인들이 그리고 인생들이 성경을 보고 아는 지식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영의 일입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임하실 것이라는 스가랴 선지자의 말씀을 조금이라도 생각을 했다면 아니 마르다의 고백과 같이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로 믿었다면 주님께서 돌을 옮겨 놓으라고 말씀을 하시면 마르다는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다고 하면서 벌써 냄새가 난다고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을 아는 지식입니다
인생의 언어로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를 아는 지식입니다. 그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우리가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령이 오셔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먼저 증거를 받아야 하고 또 믿음으로 역사를 하지 않으면 마르다가 하는 말은 그저 공허한 인생들의 이야기 밖에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리고 스가랴 선지자의 말씀을 알고 있고 그 날에 여호와께서 거룩한 자들과 그러니까 주님의 양들과 함께 서실 것이라는 말씀을 증거를 받고 믿었다면 절대로 마르다와 같은 이야기를 하지 않고 도리어 주님께 내가 주님을 믿습니다. 라고 말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자기 오라비 나사로의 육체가 다시 살 것을 믿는다고 하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압니까?
성경의 문자를 보고 알고 있습니까? 그래서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까? 그런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를 우리는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지금 주님께서는 스가랴 선지자의 말씀을 응하게 하고 있고 주의 거룩한 자 그러니까 주님의 양들과 함께 서시는 것을 표적으로 나타내 보이심으로 해서 믿게 하시겠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방인들입니다
그저 똑같이 성경을 보고 있고 그것을 안다고 하고 있고 주님께서 나사로의 육체를 살리신 것을 보고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아니라 스가랴 선지자의 말씀과 같이 여호와께서 감람산에 서시는 것을 거룩한 자와 그러니까 자기 양들과 서시는 것을 증거를 받고 믿음으로 역사를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누가 믿습니까?
이 시대 종교인들이 다 마르다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영의 일을 성경에서 증거를 받는 것이 아니라 죽은 나사로의 시체가 썩어 벌써 냄새가 난다는 것을 말을 하고 있고 그런데 주님께서 표적을 나타내셔서 나사로를 살리셨다고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입니다
감람산에 그의 거룩한 자들과 함께 서시는 것을 보여주시고 있습니다. 죽은 나사로를 다시 살리셔서 그에게 생명을 얻게 하심으로 해서 스가랴 선지자의 말씀이 응하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우리 인생들에게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고 선지자의 말씀이 응하는 것을 보고 우리가 믿어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입니다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실 때부터 하나님께서는 안식에 들어가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이스라엘을 비유와 예표로 해서 우리 이방인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일을 이루시는 것을 보고 믿을 수 있게 성령을 보내 주심으로서 우리가 영의 일을 증거를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주의 거룩한 자가 될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11장입니다
주님께서 이 일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일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죽은 나사로를 단지 살리시는 것으로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스가랴 선지자의 말씀과 같이 여호와께서 감람산에 주의 거룩한 자와 서시는 것을 응하게 하심으로 나타내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입니다
성경을 보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이 영의 일을 전혀 모르기 때문에 주님께서 불쌍히 여시기는 마음으로 눈물을 흘리셨다고 말을 하고 있고 이제 그 영광을 나타내시기 위해서 나사로의 무덤에 와서 돌을 옮기라고 말씀을 하자 마르다는 역시 죽은 지 나흘이 되었다고 하면서 벌써 냄새가 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본다고 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습니까? 그저 인생들의 언어를 아는 것으로 자기들의 철학적 지식으로 아는 것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인생의 한계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십니다.
우리 인생들을 너무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 인생들이 불쌍해서 눈물을 흘리시고 있고 또 우리가 깨닫지를 못하고 있다고 해도 주님께서는 성경말씀이 응하는 일을 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다시 말씀을 하지만 그들의 종교의 교리 때문에 스가랴 선지자의 말씀이 응하고 있다는 것을 어느 누구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성경의 문자에 예수 그리스도라는 단어를 안다고 하면서 믿고 있습니까? 그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심도 모르고 있고 또 그분이 주의 거룩한 자 그러니까 이 세상에 오셔서 자기 양들로 생명을 얻게 하신다는 말씀도 모르면서 믿는다고 하는 것은 믿음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종교의 교리입니다
그것은 단지 인생의 철학적 지식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아니라 반드시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해서 이렇게 성경에서 주님께서 오셔서 이루시는 일을 증거를 받음으로 해서 양들로 얻게 하시는 생명을 얻은 자 되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요한복음11:40절을 보겠습니다. (신 166쪽)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신대”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마르다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리라고, 내가 네게 말하지 않았느냐?"”
벌써 냄새가 나니이다
마르다는 누가복음에서 우리가 알고 있듯이 주님이 베다니를 지나가실 때 자기 집으로 영접을 했습니다. 그리고 주님으로부터 말씀을 들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하는 것은 그렇게 한두 번 들은 말씀으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하고 반드시 성령이 오셔서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제자들입니다.
삼년 반 동안 주님을 따라 다녔습니다. 수많은 표적도 보고 많은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런 그들이 어떻게 했습니까?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 만에 영으로 부활을 하셨지만 그들은 믿지를 못하고 예전에 자기가 하던 일을 다시 찾아서 하고 있는 것을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입니다
사람들이 다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안다고 하는 것과 믿는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허황된 일이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아는 것도 바로 알지 못하고 있고 바로 알지 못하는 그들은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인생들이 안다고 하는 것은 자기들의 언어를 철학적 지식으로 아는 것으로 안다고 말을 하고 있고 그리고 종교 안에서의 의식적인 행위를 하는 것을 보고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자기 입으로 말을 합니까?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아니 진심으로 믿습니다. 그런 인생들의 말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하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성령이 오시지 않고 성경을 보면서 그 문자를 알고 성경말씀을 조금 아는 것으로 내가 믿는다고 하는 것은 믿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마르다입니다
병든 오라비 나사로가 죽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만나서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 입으로 주님께 고백을 하기를 이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을 내가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다 압니다.
기본적으로 유대인들은 성경에 무슨 말씀이 있는가를 다 알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선지자의 말씀도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선지자들이 죽은 자를 살리는 일을 보았습니다. 사실 선지자들의 일을 보면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죽은 자기 오라비 나사로를 살리시는 일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근본 문제입니다
생명을 모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만약에 생명에 대해서 알았다면 자기가 얻는 생명을 알았다면 자기가 주님의 양으로 생명을 얻는다는 것을 알았다면 지금 주님의 말씀과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성령이 오시지 않은 마르다는 믿음이 없었고 말로는 이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줄 내가 믿는다고 하지만 그 믿음이라는 것이 그저 성경의 문자를 인생의 언어로 하는 것을 가지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답답하십니다.
그러니까 마르다에게 이제 내 말을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마르다가 믿는다고 하지만 어떻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마르다는 이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는다고 하지만 실상은 믿음이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믿습니까?
그런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마르다와 같이 믿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저 자기들의 종교에서 이야기를 하는 그대로 믿고 있습니다. 부활도 모르고 있으면서 자기가 안다고 말을 하고 있고 이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알지도 못하면서 자기가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그러니까 인생의 언어로 기록이 되어 있는 성경의 문자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도 그렇고 이 시대 이방인들 역시 그것을 가지고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마르다는 스가랴 선지자의 말씀이 누구를 지칭하는 말씀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고 그 말씀이 응하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있고 주님의 양이 거룩한 생명을 얻는다는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믿습니까?
그것은 종교 안에서 맹목적으로 믿는다고 하는 인생들의 철학적 사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인생들이 만든 교리에 따라 그것을 아는 것으로 그리고 성경의 문자를 아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만 그런 그들이 지금 요한복음11장을 보면서도 스가랴 선지자의 말씀이 응하고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믿음입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하지만 아는 것이 없이 믿는다고 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인생들의 언어로 기록이 된 문자를 아는 것으로 안다고 해서는 안 되고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아 그분이 이루시는 일을 알고 믿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안 믿습니다.
그런 마르다를 보고 주님께서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르다는 지금 주님께서 육체적으로 다시 살리리라는 말씀도 믿지 않고 있고 주님이 말씀을 하신 부활이요 생명이라는 말씀도 전혀 깨닫지를 못하니까 믿지 못하고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오셔서 스가랴 선지자의 말씀을 응하게 하신다는 것도 모르니까 역시 믿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양입니다.
주님께서는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영원히 멸망치 아니한다고 말씀을 하시면서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일을 마르다와 마리아 나사로를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 역시 하박국 선지자의 말씀을 인용을 해서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생명을 얻는 일입니다
믿음이 아니고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스가랴 선지자의 말씀을 응하게 하고 나사로를 살리시는 영광을 나타내시고 있습니다. 왜 이 영광을 나타내시는가 하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저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후에 성령이 오시면 제자들은 스가랴 선지자의 말씀이 응하게 돼서 여호와께서 주의 거룩한 자와 서셨다는 것을 믿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주의 거룩한 자입니다
마리아와 마르다 그리고 죽은 나사로를 살리셔서 그들에게 생명을 얻게 하시는 놀라운 일을 이루시고 계십니다. 지금은 제자들도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후에 성령이 오시면 주님의 말씀과 같이 제자들로 믿게 하기 위해서 이 일을 이루셨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믿게 함입니다.
무엇을 믿게 하십니까? 그저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일을 보고 믿게 하신다는 말씀입니까? 그것이 아니라 스가랴 선지자의 말씀과 같이 주 여호와께서 감람산에 임하심으로 해서 주의 거룩한 자 그러니까 예수의 생명을 얻은 자들이 서게 되는 일을 믿는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입니다
죽은 나사로를 단지 살리시는 일로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자들이 믿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누가복음에서 아브라함과 부자가 나누는 대화에서 죽은 자가 살아서 간다 해도 믿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표적을 보고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하고 믿음이 무엇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입니다
이미 우리에게는 성경을 주셨습니다. 아브라함도 선지자의 글을 보고 믿을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스가랴 선지자의 말씀을 응하게 하는 것을 후에 성령이 오시면 제자들이 증거를 받음으로 해서 주님께서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믿을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11장입니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는 표적을 보고 믿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스가랴 선지자의 말씀이 응하게 되는 것을 이제 성령이 오심으로 해서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 여호와 하나님께서 감람산에 서셨다는 것을 믿는다는 말씀이고 그 일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하나님의 아들로 이로 영광을 얻으신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일을 다 본 제자들이 믿게 된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스가랴14:8-9절을 보겠습니다. (구1325쪽)
“그 날에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나서 절반은 동해로, 절반은 서해로 흐를 것이라 여름에도 겨울에도 그러하리라 여호와께서 천하의 왕이 되시리니 그 날에는 여호와께서 홀로 하나이실 것이요 그 이름이 홀로 하나이실 것이며”
7장입니다
주님께서 외쳐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사도 요한은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신 고로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유월절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천국복음을 전파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제 유월절을 다 먹이시고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장사 지낸 뒤 삼일 만에 영으로 부활을 하시고 제자들에게 보이시다가 하늘에 올라가시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일입니다
다 이루시고 오순절이 임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이 세상에 오셔서 제자들에게 유월절을 먹이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이 오실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스가랴 선지자는 그 날에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나서 절반은 동해로, 절반은 서해로 흐를 것이라 여름에도 겨울에도 그러하리라 여호와께서 천하의 왕이 되시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수입니다
성령이 오시는 것을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누구라도 다 알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구속의 일을 다 이루심으로 해서 그러니까 유월절을 다 먹이심으로 해서 성령이 오시는 것을 스가랴 선지자가 말씀을 하고 있고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절기입니다
반드시 유월절을 먹어야 오순절이 임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이 절기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유월절을 다 먹이심으로 해서 스가랴 선지자의 말씀과 같이 성령이 임하시는 것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복음이 동해로 서해로 그리고 여름에도 겨울에도 전파가 될 것을 예언으로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알면 뭐 합니까?
아니 성경을 보면 뭐 합니까? 요한복음11장을 보면서도 스가랴 선지자의 말씀이 응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면 그저 이 세상의 책보다도 못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 말씀이 응한다는 것을 마르다에게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스가랴 선지자입니다.
여호와께서 천하의 왕이 되시리니 그 날에는 여호와께서 홀로 하나이실 것이요 그 이름이 홀로 하나이실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방의 종교는 자기들이 만든 삼위일체라는 교리 때문에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시는 일을 증거를 받을 수 없고 믿을 수도 없습니다.
여호와입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심에 대해서 정말 많은 말씀에서 증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들은 성경에도 없는 교리를 만들어 놓고서 자기들이 충분히 감동을 받는다고 하고 있고 소자들은 다수를 따라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저 따라가고 있습니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는 일입니까?
그것을 보고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차피 인생은 죽습니다. 그 죽은 인생을 다시 살리시는 것으로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한다면 그는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지금 주님께서는 스가랴 선지자의 말씀을 응하게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마르다입니다.
그녀만 믿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이 시대는 신약 성경이 다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모든 성경을 다 보고 있지만 역시 주님께서 나타내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믿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거룩한 자들과 감람산에 서실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스가랴 선지자의 말씀은 인용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그럼으로 해서 스가랴 선지자가 초막절을 지킬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성령을 받은 후에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생명을 얻은 거룩한 자가 됨으로 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믿어 영생을 얻는 성도가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next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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