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너희는 귀를 기울리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예수님의 금식은

2강,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윤주만목사 2020. 2. 27. 15:49

 

2,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마태복음 4:5-7절을 보면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하였으되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하신대

 

첫 번째 시험을 했습니다.

그것은 사단이 영의 양식보다는 육의 양식을 먹게 하고 있습니다. 사단은 늘 그렇게 육의 양식을 먹게 함으로 사람들을 사망에 이르게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실제 육의 양식이 될 수도 있고 또 바리새인의 누룩이 될 수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둘이 다 육의 양식에 해당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무엇으로 말을 한다 해도 틀리다고 할 수 없습니다.

 

지금 이 시대 교회를 보시기 바랍니다.

영의 양식을 먹는 교회는 거의 없고 다 육의 양식을 먹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기들이 무슨 양식을 먹고 있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지식적으로 알고 있는 성경을 가지고 마치 영의 양식을 먹고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문자적으로 먹고 있는 것은 다 바리새인의 누룩이라는 것을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세 가지 시험입니다.

사람들이 이 시험에 대해서 너무 무지합니다. 그리고 성경을 보고 그저 문자 그대로만 보려고 하다 보니까 그 뜻을 모르고 있습니다. 마귀가 주님을 시험하고 있는 것은 이 시대 우리를 그대로 시험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시험을 바고 알고 사단이 어떻게 우리를 시험하고 있는가를 깨달아 사단의 미혹에 넘어지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이 세 가지에 모두가 넘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기들이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수도 없이 하나님을 시험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큰 악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고 또 자기들이 어떻게 시험을 하고 있는 줄을 깨닫지 못하고 교회 안에서 사단이 시키는 대로 하고 있습니다.

 

영적인 싸움입니다.

이 싸움은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또한 우리 인생의 지식으로는 도무지 깨달을 수 없는 싸움입니다. 사실 그렇기 때문에 천국은 사람이 성경을 보아도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아주 적다는 사실입니다. 이 영의 싸움을 사람의 이성으로 인지할 수 있는가 하면 그렇지가 못하다는 것이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어려운 일입니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입니다

그리고 반드시 싸워서 이겨야 하는 자의 것입니다. 그리나 그 싸움이라는 것이 인생의 지식으로는 알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허다한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주여 주여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구원을 받지 못하고 지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되기는 쉽습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태어나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 성도가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실제 우리가 성경을 보아서 잘 알겠지만, 이스라엘 자손들 중에서 과연 진리로 인도함을 받았던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시대도 역시 교회 안에 들어와 있는 교인이 되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그들 중에서 성도가 된다는 것은 정말 하늘의 별을 따는 것 만큼이나 어렵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별을 따는것이 쉽겠습니까?

성도가 되는 것이 더 쉽겠습니까? 사실은 둘 다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과학이 발달을 한 이 시대 달에 사람이 가고 있고 곧 화성에도 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별을 딸 수는 있습니다. 사람의 지식으로 하늘에 별을 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안 됩니다.

성도가 되는 일은 우리 인생들이 화성에 가는 것보다 더 어렵습니다. 아니 불가능하다고 보면 맞습니다. 하지만, 이 불가능한 일을 하나님께서 하시고 있습니다. 그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경륜을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고 있고 또 믿음을 주셔서 이 사실을 믿을 수 있게 역사를 해 주고 있습니다.

 

이것이 영의 일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라고 성경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교회 안에 들어와 있으면서도 이 싸움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실 이 영의 싸움을 모르고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그에게 저주가 임하는 일입니다. 차라리 세상 죄인으로 사는 것이 낫지 교회 안에 들어와 싸움에서 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왜 싸움에서 집니까?

하나님을 시험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시대 자기들이 얼마나 많은 것으로 하나님을 시험하고 있는 줄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신 이 세 가지는 사실은 이 시대 그대로 교회 안에서 교인들을 시험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험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싸움에서 이겨야 합니다. 그것은 시험을 당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씀이고 또 그것은 하나님을 시험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왜 시험하는가 하면 하나님을 믿지를 못하기 때문에 시험을 하고 있습니다.

 

사단입니다.

이 세상을 누가 가지고 있는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왜 시험을 당하고 있는가 하면 이 세상이 누구 것인 줄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것과 사단의 것을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을 시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기들이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시험하면서도 그것을 시험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요한일서 5:4절을 보면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싸움입니다.

싸움에서 지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시험하고 있습니다. 성도가 세상을 이긴다고 하니까 마치 이 세상의 싸움에서 이기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세상을 이긴다고 말씀을 하니까 세상에서 자기들이 싸워서 이기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아닙니다.

초대교회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세상과의 싸움에서 지고 말았습니다. 만약에 이 시대와 같이 세상과의 싸움에서 이기고 있는 것이 하나님을 잘 믿는 것이라면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를 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긴다고 하니까 진짜로 이 세상에서 자기들의 육체가 이기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몇 년 전에 사학법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교회와 세상이 싸움을 했습니다. 결국에는 교회가 이기고 말았습니다. 그것을 보고 자기들이 하나님을 잘 믿어서 이겼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이긴 것이 아니가 진 것입니다. 그런 세상의 것을 가지고 이겼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시험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 싸움이 아닙니다.

이 세상을 이긴다고 하니까 그렇게 외적으로 보이는 싸움에서 이기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번에도 WCC 문제가 있었습니다. 세계 대회를 찬성하는 교회가 있었고 또 그것을 반대하는 교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끝이 났습니다. 아직까지 교회는 그 총회의 후유증을 앓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누가 이겼습니까?

저는 다 졌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한 쪽에서는 자기들이 이겼다고 의기양양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것으로 세상을 이겼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 문제는 교회가 더 큰 문제입니다. 그리고 이 교회가 세상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 것이 다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시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시험한다고 하니까 내가 어떤 질문을 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물론 그것도 시험이겠지만 믿지를 않고 있는 자체가 하나님을 시험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있는 그 사람은 이미 하나님을 시험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싸우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 자체가 이미 하나님을 시험하는 일이 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믿음이 없이 자기가 이 세상과 싸우려고 하는 그 모든 행위들이 하나님을 시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 시대는 너무도 많은 시험을 하고 있으면서도 깨닫기를 못하고 있습니다.

 

사단은 시험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주님만을 시험하는 것이 아니라 이 시대도 끊임없이 성도들을 시험하고 있습니다. 이 시험에서 이기는 자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 시험에서 이기지를 못하고 시험에 넘어가고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사단이 주님을 시험한 것과 같이 이 시대도 역시 시험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유머가 있습니다.

아마도 거의 모두가 다 아는 유머입니다. 어느 목사가 산행을 하다가 절벽에서 미끄러져 떨어지다가 간신히 손으로 나무를 붙잡았습니다. 그리고 소리를 지릅니다. 누구 위에 있습니까? 그때 하나님의 소리가 들립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나를 믿으면 네가 잡고 있는 나무의 손을 놓으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이 목사가 어떻게 합니까?

한참을 생각하다가 위에 하나님 말고 다른 사람 없습니까? 라고 다시 소리를 지릅니다. 사람들이 이것을 유머로 보고 웃고 있습니다. 사실 믿음이라는 것을 몰라서 그렇지 이 목사는 지극히 정상입니다. 만약에 여기서 손을 놓는다고 한다면 그 목사는 오히려 시험에 넘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목사인데

하나님께서 구해주실 것이라고 믿으면 되는데 안 믿고 다른 사람을 찾는다고 자기가 믿는 신도 안 믿고 있다고 그 유머를 보고 웃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것이 시험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단은 그렇게 믿음이라는 것을 오해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성경은 영의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육체를 도와주십니까? 물론 성도가 복음을 전하는 일에 있어서는 보호해 주십니다. 그러나 우리 육체를 도와주시지는 않습니다. 특히 이 시대 교회 안에서 은사자들이 시험을 너무 많이 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병이 치유가 된다고 하고 있고 또 어떤 은사적인 체험을 하게 해 달라고 시험을 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8:11-12절을 보면

바리새인들이 나와서 예수께 힐난하며 그를 시험하여 하늘로서 오는 표적을 구하거늘 예수께서 마음속에 깊이 탄식하시며 가라사대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적을 구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세대에게 표적을 주시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보리떡 일곱 개로 사천 명을 먹이셨습니다.

있을 수 없는 기적입니다. 그러나 이 기적을 보고도 믿지를 않습니다. 그리고 또 하늘로서 오는 표적을 구하고 있습니다. 보리 떡 일곱 개로 사천 명을 먹였는데 무슨 표적이 또 필요합니까? 만약에 이 사람들에게 하늘로서 오는 표적을 보여 준다고 해서 이들이 믿을 수 있겠습니까? 절대로 믿지 않을 것이 분명합니다.

 

사단입니다.

이렇게 계속해서 시험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바리새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못하니까 계속해서 시험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시대 은사자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얼마나 하나님을 시험하고 있습니까?

 

표적을 구하고 있습니다.

병을 고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어떤 은사적인 체험을 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런 모든 것이 다 사실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일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이미 성경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다 계시를 해 주셨는데도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셨는데도 이 시대 역시 표적을 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합니까?

자기가 응답을 받았다고 하고 있고 또 어떤 체험을 했다고 하면서 그것을 자랑하고 있고 믿기 보다는 그런 체험을 표적으로 삼고 있습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구원해 주었다고 하는 사인과 같이 받아들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보다는 그런 사인을 더 자기의 표적으로 삼고 있는 것이 이 시대 교인들의 모습입니다.

 

기도 응답을 받았습니까?

기도 중에 음성을 들었습니까? 환상을 보았습니까? 또 꿈을 꾸었고 어떤 말씀이 가슴에 와 닫고 있습니까?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을 시험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왜 굳이 그런 체험이 필요 합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고 이미 성경에서 누누이 말씀을 하고 있는데도 시험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믿음이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다 하나님을 시험하고 있는 악한 일입니다. 사단이 그렇게 미혹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그런 체험을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보다 더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고 그것이 자기들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사인으로 받아들이고 있고 그것을 보여 달라고 밤을 새워 가면서 기도를 하면서 하나님을 시험하고 있습니다.

 

시험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모든 것을 사단이 감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 시험을 하면서도 자기들이 하나님을 아주 잘 믿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단은 지금도 이렇게 아주 교묘하게 교인들이 하나님을 시험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도의 목표가 무엇입니까?

그 한 가지만을 생각하면 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생을 얻는 그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믿으려 하기 보다는 하나님을 시험하고 있습니다. 그 시험이 대부분의 이 시대 표적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사람들은 오히려 그것을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5,“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하였으되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마귀입니다.

무엇을 가지고 시험을 하고 있습니까? 육체의 생명을 가지고 시험을 하고 있습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뛰어내리라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에게 명하시리니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무딪히지 않게 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마귀를 잘 아시기 바랍니다.

무엇으로 시험을 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가 아무 뜬금없는 말을 해서 예수님을 시험했던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 있는 말씀을 가지고 예수님을 시험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에 있는 말씀을 가지고 시험을 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다 그 시험에 넘어지고 있다고 보면 맞습니다. 하지만 자기가 하나님을 시험하고 있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시편 91:11-12절을 보면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네 모든 길에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저희가 그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성경에 있는 말씀입니다.

잘 보시기 바랍니다. 시편에 있는 말씀은 문자 그대로 이야기를 하면서 예수님을 시험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사단이 이렇게 성경에 있는 말씀을 문자 그대로 가지고 시험을 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이것이 시험입니까?

분명히 시편에 기록이 되어 있는 말씀입니다.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네 모든 길에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저희가 그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아마도 제가 볼 때 사단이 이렇게 미혹을 하면 뛰어 내리고도 남을 것입니다.

 

안 뛰어 내리면 어떻게 됩니까?

앞에서 말씀을 드렸듯이 나뭇가지를 붙들고 있는 목사는 믿음이 없는 사람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믿음을 모르고 또 영의 일을 모르다 보니까 이런 일에 쉽게 미혹을 당하고 있습니다. 사단은 이렇게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말씀을 가지고 미혹을 하고 있고 그렇게 미혹을 당하는 사람들이 이 시대 얼마나 많은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만약 입니다.

주님이 뛰어 내리셨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것은 주님이라도 별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도 인생의 몸을 입고 있기 때문에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리면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이 시대 기독교인들이 이런 말씀들을 잘 깨닫고 있어야 합니다.

 

순교자들이 있습니다.

물론 초대교회의 진짜 순교자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니케아 공회가 있고 난 후에 교회는 종교가 되었습니다. 그 교회에 의해서 수많은 순교자들이 나왔다는 것을 우리는 교회사를 통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왜 순교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까? 사단이 지금 예수님을 시험한 것과 같이 시험을 했습니다.

 

제가 순교자를 폄하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종교에 의해서 죽은 사람도 많다는 것을 여러분이 깨달아야 합니다. 그들이 그렇게 죽을 수 있었던 이유는 자기들이 죽으면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신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그들이 구원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의심을 했다면 절대로 순교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성경에 있는 말씀을 가지고 사단이 그들의 마음에 믿음이 아닌 종교적 신념을 주고 있지만, 사람들이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종교가 얼마나 무섭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에게는 믿음이 없어도 실제 순교자들이 나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들은 그것을 믿음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종교적인 신념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 말씀을 문자적으로 보고 실제 죽음도 불사하고 있다는 것을 마귀의 시험을 통해서 깨달아야 합니다.

 

교회사를 보시기 바랍니다.

정말로 많은 순교자들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과연 그 순교자들 중에서 진리로 인도함을 받고 있었던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된다고 생각합니까? 저는 그렇게 많지 않다고 보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를 여러분이 깨달아야 합니다. 지금 티베트라는 나라에서는 스스로 자기 목숨을 끊는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불교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자기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 스스로 분신을 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있습니다. 또 중국의 공안들에 의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할 수 있는가 하면 바로 신념입니다. 믿음이 아니라 종교적 신념이 강하다 보니까 자기 몸을 스스로 불로 태울 수 있습니다. 그것이 종교이고 기독교 역시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다 시험입니다.

사단이 시험하고 있는데 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 있는 말씀을 가지고 시험을 하니까 정작 믿음의 비밀도 모르고 성경을 문자 그대로 보면서 자기가 옳다는 신념에서 그렇게 되고 있습니다. 순교자라고 해서 다 순교자가 아닙니다.

 

말씀에 속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렇게 종교적 신념으로 죽는 것은 절대로 순교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을 이미 유대인들을 통해서 보여 주셨습니다. 예루살렘이 망할 때 그들이 얼마나 비참하게 죽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 왜 로마에 의해서 그렇게 죽을 수 있었는가 하면 바로 종교적 신념입니다. 자기들이 설령 죽어도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신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유대인들을 향해서 마귀의 자식들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귀의 자식입니다

그들이 로마와 항전을 하면서 선민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반드시 자기들을 구원해 주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런 신념이 있었기 때문에 예루살렘이 사람의 피로 흘러내릴 정도로 많은 사람이 죽으면서도 끝까지 항전을 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말씀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순교가 아닙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위해서 싸운 것도 아닙니다. 그들 스스로 종교에 빠져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고도 회개를 하지 않고 자기들이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고 하다가 그 벌을 그대로 받았습니다. 종교라는 것이 그렇게 무섭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또 성경에 있는 말씀을 문자 그대로 보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그것이 하나님을 시험하는 일이라는 것을 이 시대는 모르고 있습니다.

 

뛰어내리면 죽습니다.

아무리 성경 말씀에 그 말씀이 있다 해도 죽습니다. 성경은 영의 말씀이지 육의 말씀이 아닙니다, 영의 말씀을 육의 말씀으로 보면 사람들은 뛰어 내립니다. 또 죽으면서도 그것을 아주 기쁘게 받아들이면서 죽임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이 시대 하나님을 시험하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말라기 3:8절을 보면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성경 말씀입니다.

이 시대 사단이 이 말씀을 가지고 시험을 하고 있고 이 시험에 거의 다 넘어가고 있습니다. 성경에 문자적으로 보면 십일조를 하지 않는 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시험을 당하고 있고 실제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지 않기 위해서 빚을 내서라도 십일조를 하고 있는 것이 교인들의 모습입니다.

 

안타깝습니다.

시편의 말씀과 무엇이 다릅니까? 시편에서는 뛰어내려도 그가 너를 지키시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말라기에서는 십일조를 내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단은 이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지 말라고 이 시대 교인들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됩니까?

이 말씀을 가지고 시험을 하니까 사람들이 다 십일조를 내고 있습니다. 아니 그들의 마음에 십일조를 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지 않으려고 하니까 아무리 어려워도 십일조 먼저 내고 있는 것이 교인들입니다.

 

이 십일조를 내야 합니까?

분명히 히브리서에서 제사 제도는 변역이 되었다고 말씀을 하면서 이 십일조가 무엇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고 십일조를 하는 것은 율법을 지키는 일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지 않는 행위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말라기에서 너무도 분명히 십일조를 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한다고 하니까 다 십일조를 하고 있습니다.

 

시험에 다 죽습니다.

십일조를 내는 것이 어떤 일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 육체를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는 것과 같이 자기 영혼이 사망에 이르는 일인데도 사람들이 성경을 문자 그대로 보면서 이 십일조를 하는데 너무도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그 뜻을 모르고 아니 영의 일을 모르고 문자에 사로잡히는 것은 마귀에게 시험을 받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보고 있는 성경의 모든 문자가 그렇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성경을 다 문자 그대로 보면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면서도 그것을 그대로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는 단 한 가지 이유는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사단을 우습게 알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가 성경에 없는 말을 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성경에 있는 말씀을 사단이 그대로 인용을 해서 교인들을 죽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성경에 있는 말씀이라는 그것 하나로 자기가 어떤 시험을 받고 있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말라기 3:10절을 보면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십일조입니다

나를 시험하여 보라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성경에 있는 문자를 그대로 보면서 마귀는 교인들을 미혹하고 있다는 것을 이 시대는 너무도 모르고 있습니다.

 

십일조를 내면 복을 이 세상에서 복을 받습니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면 이미 마귀의 시험에 넘어가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시편의 말씀을 가지고 그대로 인용을 해서 예수님을 시험했습니다. 만약에 그것이 육적인 말씀이었다면 예수님께서는 마귀 앞에서 그것을 보여 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표면적인 말씀이지 이면적인 말씀이라는 것을 주님께서는 너무도 잘 아시고 마귀에게 시험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시험하고 있습니다.

십일조를 내라고 시험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하늘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에 없도록 부어 주겠다고 시험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사단은 록펠러 같은 인물을 내 세워서 그렇다는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이 이 십일조에 시험을 당해서 말라기의 말씀을 문자적으로 보고 복을 받기 위해서 십일조를 하고 있습니다.

 

시험입니다.

무엇이 마귀의 시험이라는 것을 이 시대는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이렇게 성경에 있는 말씀을 그대로 인용을 해서 마귀는 시험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그것이 시험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고 믿음의 증표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시험을 받아서 육적으로 십일조를 하고 있는 사람은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7,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하신대

 

주님은 하나님입니다.

설령 뛰어 내리신다 해도 살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신 분입니다. 그러나 인생의 몸을 입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시편의 말씀이 육적인 말씀이 아니라 영적인 말씀이라는 것을 아시기 때문에 마귀에게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 것이 시험입니까?

뛰어내리는 것이 시험입니까? 안 뛰어내리는 것이 시험입니까? 아무리 시편에 기록이 되어 있다 해도 진짜 뛰어내리는 것이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다 해도 십일조를 내는 것이 시험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육적으로 십일조를 내고 하늘의 복을 쌓아 둘 곳이 없을 정도로 받으려고 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시험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무엇이 시험인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귀에게 다 시험에 넘어가고 있습니다. 성경은 정말 우리가 잘 보아야 합니다. 지금 이 시대도 이렇게 마귀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을 죽이려고 성경 말씀을 가지고 시험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경에 있는 말씀을 문자 그대로 보면서 마귀가 시험하면 그대로 행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그것을 모르다 보니까 성경을 문자적으로 보고 하나님을 시험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비단 이 십일조 문제만이 아니라 성경에 수많은 말씀들을 가지고 하나님을 시험하고 있습니다. 누가 하나님을 시험하고 있는가 하면 바로 교회 안에서 마귀에게 미혹이 되어 있는 사람들이 성경을 문자적으로 보면서 시험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시험하는 사람은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신명기 6:16절을 보면

너희가 맛사에서 시험한 것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시험하지 말고

 

주님께서도 성경 말씀을 그대로 인용을 하고 있습니다.

마귀와 주님은 성경 말씀을 가지고 인용을 하고 있지만, 주님은 영적인 의미를 알고 인용을 하시고 있고 마귀는 문자 그대로를 가지고 인용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맛사에서 물이 없어서 하나님을 시험했던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애굽에서 인도를 하셨습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마실 물이 없자 하나님을 시험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중에 진짜 계신가 하면서 시험을 했습니다. 자기들의 먹을 물을 주실 수 있는가를 시험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반석에서 물을 내서 마시게 하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생수의 물을 주시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시험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과 같이 육적인 것으로 시험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왜 그들이 갈증에 시달리고 있는 것을 모르시겠습니까? 그들이 진심으로 하나님께 구했으면 하나님께서는 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시험했습니다. 이렇게 시험을 한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다 죽었다는 것을 예표로 보여 주시고 있습니다.

 

성경 말씀입니다.

마귀는 지금도 성경 말씀을 가지고 교회 안에서 사람들을 시험하고 있고 그 미혹에 빠져 교인들이 하나님을 시험하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십일조 문제입니다. 성도는 내가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를 바라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고 무엇을 하려고 하는 자는 이미 하나님을 시험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확인하려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원의 문제를 다 해결해 주셨습니다. 우리 성도는 그것을 믿기만 하면 됩니다. 성경에 문자적으로 기록이 되어 있는 말씀을 내 행위로 하려고 하는 것이 다 하나님을 시험하고 있는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도는 그렇게 행위로 시험하지 않고 오직 믿음으로 주님의 은혜를 바라고 있습니다.

 

마귀는 하라고 하고 있습니다.

문자 그대로 하라고 시험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새로운 성화주의 자들이 있습니다. 성경을 묵상하는 운동이라고 하면서 그날의 본문을 정하여 읽고 깨달아 그날 자신들이 실천하는 운동입니다. 그것에 넘어가는 사람은 하나님을 시험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성도는 성경 말씀 안에 담겨져 있는 이면적인 뜻을 알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다. 그 믿음으로 구원을 받아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에 영접을 받아 천국에서 모든 축복을 누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