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너희는 귀를 기울리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예수님의 금식은

1강,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윤주만목사 2020. 2. 27. 15:48


1,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마태복음 4:1-4절을 보면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성경은 영의 일입니다

영의 일을 모르고 성경을 보는 것은 그 사람에게 있어 재앙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람이 아무리 지혜가 있다 해도 하나님께서 그 말씀을 깨닫게 해 주시지 않으면 그는 아무 것도 모르는 자요 또 소경이라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사로잡혀 있습니다.

이 세상의 이성적 사고에 너무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알고 있는 지적인 능력을 가지고 이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사실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이고 또 자기에게 해가 되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제가 늘 말씀을 드리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나에게 없다면 차라리 세상 죄인으로 사는 것이 그에게 더 유익합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착각을 합니다.

꿩도 먹고 알도 먹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 교회 안에서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문제입니다. 이스라엘이 그랬던 것과 같이 이 시대도 역시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착각에 빠져 있고 또 사람들이 너무도 쉽게 미혹을 당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두 가지를 다 가지려고 합니다.

이 시대 거의 목사들이 주장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문제입니다. 그들은 주님께서 어떠한 시험을 받으셨는가를 도무지 모르고 있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하늘의 것을 생각하는 사람과 이 땅의 것을 생각하는 사람은 바라보고 있는 것이 다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시대는 이 땅의 복과 하늘의 복을 같이 누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성경을 보는 시각입니다.

이스라엘은 영의 일을 잘 몰랐습니다. 사실 구약을 보면서 영의 일을 안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림자와 모형만을 보고 있던 이스라엘로서는 너무도 당연한 결과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영의 일을 믿는다고 하는 그들이 성경을 볼 때 이스라엘보다 더 육적으로 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점점 이스라엘화 되어 가고 있다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메시지를 모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그저 문자적으로 지식을 알게 하기 위해서 기록이 되어 있는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가 어떻게 거듭난다는 것을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한 자는 하나님 나라를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말씀입니다.

성령은 하나님께서 보내 주십니다. 문제는 이 말씀을 사람들이 다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사람이 볼 수 있는 언어로 기록이 되어 있다 보니까 성령을 보내 주시지 않아도 사람들이 이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더구나 지금과 같이 모두가 지적인 수준이 높아서 대학을 나오고 있는 때에는 다 성경을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이 세상에서 지적인 능력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신학을 공부할 수 있고 또 이 성경을 볼 수 있습니다. 아니 신학을 공부하지 않은 사람이라 해도 목사보다도 더 많이 성경을 읽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이 왜 그렇게 성경을 보고 있는가 하면 바로 영생을 얻기 위해서 보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성령이 임하시지가 않은 상태에서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성경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성령이 임하시지가 않았습니다. 물론 선지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영이 임해서 복음을 전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다수의 이스라엘은 성경을 자의적으로 보았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이 세상의 이성적 지식을 가지고 성경을 보고 자기들이 이해를 하는 것으로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말씀을 계속해서 드린다는 것이 저 역시도 참으로 안타깝지만, 이 시대에 과연 진리를 가지고 있는 자가 어디 있습니까? 아직까지 제가 만나본 사람 중에는 없었습니다. 이스라엘과 다를 것이 없이 성경을 이 세상의 신학으로 배우고 그것을 가르치고 있는 사람들뿐입니다.

 

초등학문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알고 있었던 하나님은 초등학문에 불과 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알고 있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자부를 하고 살았지만, 그들은 초등학문에서 벗어나지를 못했습니다. 성경을 보고 있지만, 이 세상 초등학문으로 밖에는 안 보였습니다. 그들은 초등학문에 사로잡혀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영이신 하나님을 믿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예표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다가 하늘에 승천하신 것을 이제 이방의 교회들이 다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다릅니까? 이스라엘이 초등학문에서 벗어나지를 못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았는데 그럼 이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오히려 이스라엘보다 더합니다. 사실 이 시대는 교회가 다 종교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스라엘이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첫째 짐승이라면 이방의 교회는 두 번째 짐승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은 천국 복음에 대해서 그림자로만 들어서 그렇다고 하지만 이방의 교회는 이제 실체가 보여 졌는데도 역시 더 심하게 초등학문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정말 안타깝습니다.

이스라엘을 통해서 예표로 보여 주셨습니다. 그런데 역시 이방의 교회도 똑같이 이스라엘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수많은 신학이 있고 아마도 수십 만 명 이상이 되는 목사와 신학자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과연 이 시대 진리로 인도함을 받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이스라엘과 똑같이 초등학문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골로새서2:20절을 보면

너희가 세상의 초등 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의문에 순종하느냐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초등학문이라고 하니까 이 세상의 지식을 말씀하는 것으로 오해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 있으면서도 이 초등학문을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니 성경을 그렇게 많이 본다고 하는 목사들조차도 이 초등학문을 모르고 있습니다.

 

신학이 무엇입니까?

말은 참 좋습니다. 신학이라고 하니까 대단한 학문을 배우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시대 모든 신학은 다 초등학문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신학이라는 곳에서 초등학문을 배우고 나온 목사들이 개척을 하기도 하고 있고 또 초등학문을 가르치고 있는 교회의 부목사로 들어가서 초등학문을 배우고 전하고 있습니다.

 

세상이 초등학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너희가 세상의 초등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정말 바로 정립이 되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반드시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 역시 죽어야 합니다. 만약에 초등학문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지 않았다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안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도 그랬습니다.

그들은 초등학문에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하나님을 아주 잘 믿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 시대도 역시 초등학문에 있으면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이 초등학문도 분별이 안 되고 있고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도 초등학문입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성경이 초등학문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자기들이 성경을 보고 신학을 공부했다고 해서 마치 초등학문에서 벗어나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많은 정도가 아니라 이 시대 목사들이 다 그렇고 또 교회 안에 있는 교인들이 다 그렇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깨어 있으시기 바랍니다.

초등학문이 무엇이라는 것조차 모르고 있다는 것은 그 영혼이 죽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분명히 초등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는 성경에서 초등학문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반드시 죽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는데도 이 시대는 너무 살아 있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아니 모릅니다.

무엇이 초등학문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에 있는 문자를 몇 마디 설교로 하는 것을 듣고 자기들이 마치 예배를 하는 자들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있는 문자를 보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사람들은 초등학문에 빠져 있습니다.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의문에 순종하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법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도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의문에 순종을 하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어찌하여 법에 순종을 하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를 보시기 바랍니다. 한 두 가지가 아니라 수많은 법에 순종을 하면서도 자기들이 의문에 순종한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열거하기도 힘이 듭니다.

사실 이 의문에 순종을 하는 아니 법으로 지키고 있는 것이 있는 사람은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것을 법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마치 남이 하면 불륜이고 내가 하면 로맨스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이 이스라엘은 율법주의고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은 믿음이라는 말로 미혹을 하고 있습니다.

 

왜 모릅니까?

너무도 자연스러운 옷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들어오면서 거의 모두가 율법주의자들에 의해서 들어왔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그것이 이제는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그렇게 살다가 교회 안에 들어와서 복음을 듣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같이 법을 듣고 있기 때문에 거기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의문에 순종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서 법으로 정해 놓은 것을 지키고 있다면 그들이 두려워하고 있는 지옥으로 반드시 가게 될 것입니다. 법을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법도 있고 새로 만들고 있는 법도 있습니다. 법이라는 것을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삼가 지킵니다.

삼가 지킨다는 말씀은 매일, 매주, 매달, 매년 그 날짜에 지키고 있다는 뜻입니다. 쉽게 말씀을 드리면 매일 자기가 몸으로 하고 있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율법입니다. 또 매주 교회에서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면 역시 율법입니다. 또 매달 십일조를 하고 있다면 역시 율법입니다. 그리고 매년 그 날짜를 정해서 절기를 지키고 있다면 그것 역시 율법입니다.

 

지금 교회는 다 율법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율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십일조를 율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고 주일을 율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너무도 안타까운 것은 그런 율법에 빠져 있으면서도 그것을 율법이라고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의문입니다.

이것만이 아닙니다. 은사도 역시 의문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령의 은사라고 말씀을 하니까 은사하면 무조건 좋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실상은 그것 역시 율법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이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라 의문에 순종하고 있으면서도 자기가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교회 안에 교인들입니다.

 

다 사망입니다.

아니 그들은 생명이 없는 자들입니다. 주님께서도 교회 안에 가라지가 더 많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런 초등학문은 다 독약과 같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성경에 그것이 문자적으로 기록이 되어 있다고 해서 그것을 그대로 지키고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청산가리를 먹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영의 생명입니다.

그것은 느끼지도 않고 만지지도 못하고 또 내가 나타낼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청산가리를 먹고 있으면서도 무엇을 먹고 있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또한 영의 생명이 죽고 사는 것을 알 수 없다 보니까 의문이라는 청산가리를 먹고 있으면서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의문에 순종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게서 의문의 한 모양이라도 있다면 그는 절대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편지를 통해서 수도 없이 이 말씀을 강조하고 있지만, 이 설교를 보고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의문에 순종하는 줄을 모르고 있고 또 영이 죽어 있어도 그것을 느끼지를 못하니까 아주 태평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절대입니다.

십일조를 내고 있습니까? 성탄절을 지키고 있고 추수감사절을 지키고 있고 교회 안에서 정해진 예배를 드리고 있고 찬양과 기도를 하고 있습니까? 그러고도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말씀을 듣고도 계속해서 그렇게 하고 있다가 나중에 주님께서 오시는 날에 통곡하게 될 것입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드리지만, 차라리 세상 죄인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더 유익합니다.

교회 안에서 의문에 순종하는 자는 악한 자입니다. 그리나 복음을 듣지 않고 이 세상에서 종교인으로 살지 않고 그저 세상에서 산다면 그는 죄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죄인과 악인이 있습니다. 누가 더 하나님 앞에서 큰 벌을 받을까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교회에 나와서 악한 일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세례요한을 통해서 세례를 받으시고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소리가 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어린 시절을 보내시고 이제 막 사역을 시작하시게 되었습니다.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잘 보아야 합니다. 주님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는 분입니까? 성경의 기록을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마치 문자적으로 보면 주님께서는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려고 광야로 나가신 것으로 보여지고 있습니다. 물론 시험을 받으셨다는 것도 맞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제 사역의 시작입니다.

 

2,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성경은 꼭 차례가 아닙니다.

특히 요한계시록을 해석하는 사람들이 성경을 차례로 보고 있습니다. 성경이 차례로 기록이 되어 있다 보니까 사람들은 모두 차례로 기록이 되어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세례요한을 통해서 세례를 받으시고 난 후에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이제 주님께서 사역을 시작하십니다.

그것을 위해서 광야로 가서 사십일을 금식 기도를 하시고 있습니다. 마귀에게 시험을 받기 위해서 사십일을 기도하신 것이 아니라 이제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사단에게 결박이 되어 있는 것에서 풀어 주시기 위해서 사십 일을 금식하셨습니다.

 

사십일 금식을 합니다.

목사들 중에서 사십일을 금식하는 사람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금식의 의미도 모르고 그저 금식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고 또 이 사십일을 금식하고 난 후에 오히려 그가 더 의로워지려고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십일을 금식하고 난 후에는 자기가 대단한 일을 한 것으로 생각하고 그것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왜 금식을 하셨습니까?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려고 금식을 하셨습니까? 주님은 누구에게도 시험을 받으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사단이 설령 주님을 시험한다 해도 주님이 그것에 넘어지실 분이 아닙니다. 아니 넘어지실 분 같으면 이 세상에 오시지도 않았습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 즈음에 예수께서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셔서, 악마에게 시험을 받으셨다. 예수께서 밤낮 사십 일을 금식하시니, 시장하셨다

 

저도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제가 이것을 차례로 말씀을 드려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에 이끌리어 광야로 가셔서 밤낮 사십일을 금식하셨다. 그 금식으로 무척이나 시장 하셨다. 그러자 마귀가 다가와서 예수님을 시험하셨다. 아마도 이렇게 기록이 되는 것이 맞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주님은 금식하시려고 광야로 가셨습니다.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려고 광야로 가서 금식하신 것이 아니라 주님은 이제 사역을 시작하시기 위해서 광야로 가셔서 금식하셨습니다. 그리고 금식을 하시고 난 후에 마귀가 예수님께 와서 3차례를 시험하고 있는 것을 마태복음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목사들의 훈장입니다.

지금 젊은 목사들은 그래도 조금 덜 해도 나이가 드신 목사들은 아마도 사십일 금식을 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도 한 차례가 아니라 여러 차례에 걸쳐 그렇게 금식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금식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하고 있고 그럼 사십일의 금식으로 인하여 그들이 더욱 교만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금식은 자랑이 아닙니다.

또 예수님과 같이 사십일을 해야 하는 것도 역시 아닙니다. 주님이 금식하시고 난 후에 능력을 받으신 것이 아니라 이미 앞에서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에서 비둘기같이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주님은 이 금식을 하고 안 하는 것과는 능력에 있어서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마치 이 시대 금식을 하면 능력을 받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미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이 금식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금식하고 난 후에 능력이 임하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금식이 무엇인가를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주님께서 왜 금식을 하셨다는 가를 알아야 합니다.

 

이사야 58:6절을 보면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은 흉악에 결박을 당해 있었습니다. 그리고 율법의 멍에를 지고 있었습니다. 또한 강한 자에 의해서 압제를 당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모든 멍에를 메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비단 이스라엘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사단에 의해서 이렇게 되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이 금식하시고 있습니다.

그 금식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입니다. 왜 기뻐하시는가 하면 주님께서 금식을 하심으로 해서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고 멍에의 줄을 끌러 주고 압제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해 주시기 위해서 주님께서는 성령에 이끌리셔서 광야로 가서 금식을 하고 있습니다. 이 금식을 보면서 마치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기 위해서 어떤 통과 의례를 행하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주님이 왜 오셨습니까?

사단에게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는 금식을 시작하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기 위해서 금식을 하시는 것이 아니라 이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사단의 흉악한 결박에서 풀어주고 멍에의 줄을 끌어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해 주기 위해서 금식을 하시고 있습니다.

 

성경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마귀에 의해서 통과 의례를 하지 않아도 되는 분입니다. 그 분은 하나님이시고 온 우주를 창조하신 창조주이시며 어느 누구에게도 시험을 받지 않으시는 분이라는 것을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금식을 하시고 있습니다.

 

금식을 왜 합니까?

이 시대는 금식의 의미도 모르고 있습니다. 내가 금식을 하는 목적입니다. 바로 이사야의 말씀과 같이 금식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내 영혼을 위해서도 해야 하고 또 다른 영혼을 위해서도 우리는 금식을 해야 합니다. 성도의 금식으로 이렇게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또 율법으로 묶여 있는 멍에의 줄을 풀어주며 율법의 의로 부자가 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압제를 당하는 것에서 자유하게 해 주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도는 금식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사십일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하루도 좋고 이틀도 좋고 또 내가 정하는 기간 동안 하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금식과 우리의 금식은 다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무지해서 주님이 사십일을 하셨다고 하니까 자기도 사십일을 금식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의 금식으로 이 모든 일들이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금식으로는 이 모든 일들이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영의 일입니다. 육체의 금식은 사단에게 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반드시 영의 금식을 해야 합니다. 그것은 모든 율법의 행위를 금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금식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그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는 주님의 마음과 같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금식을 하고 있고 그 금식을 통해서 사단에 매여있는 율법에서 풀려나 영혼을 살리는 자유함을 누리는 것입니다.

 

3,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사십일을 금식하셨습니다.

그리고 시장 하시다고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을 보고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사십일을 금식하시고 시장을 하니까 마귀가 사람의 가장 연약한 것을 가지고 시험을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거의 다라고 보면 맞습니다.

 

지금 그 시험을 하고 있습니까?

주님께서 금식하시고 나니까 너무 시장하셔서 돌덩이를 떡 덩이가 되게 해서 먹으라고 시험을 하고 있습니까? 주님도 사람입니다. 인자로 오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들과 똑같은 체질을 가지고 오셨다는 것을 먼저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사십일 금식을 안 했습니다.

이런 진리를 알고 난 후로 부터는 육체의 금식을 하지 않습니다. 금식을 해 본 사람은 다 알고 있습니다. 금식을 하는 것 보다 금식을 하고 난 후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사단이 돌덩이를 떡이 되게 하라고 한다 해서 주님이 그것을 드실 수 있습니까? 더구나 이스라엘의 떡은 우리의 떡이 아니라 화덕에 구운 빵입니다. 그것을 먹고 소화를 시킬 수 있습니까?

 

실제 떡입니까?

지금 사단이 주님께 실제 떡 덩이를 만들어서 그것을 먹으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주님께서 또 그것을 못 하십니까? 우리가 너무 잘 알고 있듯이 보리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이 먹었습니다. 그런 기적을 일으키실 수 있는 분이 이 돌덩이로 떡을 못 만드시겠습니까? 아니 사단이 지금 주님께서 이것을 만드시지 못할 것을 모르고 있습니까?

 

사단도 알고 있습니다.

무슨 떡입니까? 돌덩이가 떡이 되는 떡은 무슨 떡입니까? 바로 이 세상의 초등학문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 있는 그런 떡을 만들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귀와 예수님과는 지금 우리가 먹고 있는 그 떡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16:10-11절을 보면

떡 일곱 개로 사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광주리이던 것을 기억지 못하느냐 어찌 내 말한 것이 떡에 관함이 아닌 줄을 깨닫지 못하느냐 오직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보리떡 일곱 개로 사천 명을 먹이셨습니다.

그 기적을 제자들이 보았습니다. 이 보리 떡은 바리새인의 교훈이라는 말씀입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먹는 떡을 비유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비록 보리떡 일곱 개로 사천 명을 먹이셨지만 그것은 이 세상의 떡이라는 말씀입니다.

 

배고픔의 시험이 아닙니다.

주님께 지금 이 돌덩이로 떡을 만들어서 먹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의 떡을 먹으라는 말입니다. 쉽게 말해서 바리새인의 누룩을 먹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네가 배가 고프면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니까 이 돌덩이로 떡을 만들어서 먹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돌덩이로 만든 떡이 무엇인가 하면 바로 바리새인의 누룩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람은 먹어야 삽니다.

그것은 육체를 가지고 있는 인생의 기본입니다. 그 떡을 먹는 것 자체가 바리새인의 누룩이라는 말씀입니다. 돌덩이로 떡을 만들어서 먹는 그것이 바리새인의 누룩입니다. 이 세상에서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서 먹는 그것이 바로 이 세상의 초등학문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단은 주님께 지금 그 시험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떡을 먹으라는 말입니다.

배가 고프니까 이 시험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배가 고프니까 그 생명을 위해서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이 돌덩이로 떡이 되게 해서 먹으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돌덩이가 떡이 되게 하는 그리고 이 육체를 위해서 먹는 이 떡은 바리새인의 누룩이라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왜 삽니까?

먹기 위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돌덩이를 떡이 되게 해서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설령 돌덩이가 떡이 되어서 그것을 먹는다 해도 그것은 이 세상의 초등학문이며 그 떡을 먹고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사단은 육체의 생명을 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십일을 금식하시고 주리시니까 그 생명을 살기 위해서 이 돌덩이로 떡을 만들어서 먹어서 네 생명을 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를 살라고 하고 있습니다.

사단은 지금도 우리 성도들에게 육체를 살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육체가 먼저가 아니냐고 묻고 있습니다. 육체가 살고 보아야지 그 다음에 영의 생명을 생각할 수 있지 네가 당장 죽게 되었는데 영의 생명이라는 것을 생각할 수 있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이 시험에서 거의 모두가 다 넘어가고 있다고 보면 맞습니다.

 

바리새인의 누룩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신명기에 있는 말씀을 그대로 인용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이 두 떡을 바로 분별을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바리새인의 떡도 먹고 하나님의 말씀도 먹고 있습니다.

 

신명기 8:3절을 보면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천국을 어떻게 갑니까?

이 세상의 떡으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육체는 반드시 떡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그 떡으로만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육체는 그 떡으로 살 수 있어도 사람이 영원히 사는 것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사단은 지금 주님을 바리새인의 떡으로 시험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는 떡으로 삽니다.

그러나 그 떡으로는 우리가 영원히 살 수 없습니다. 우리가 먹고 있는 떡이 그렇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떡을 먹기 위해서 이 세상에서 법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법대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육체의 떡을 먹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그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말씀입니다.

 

떡을 먹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법에 따라서 일을 해서 떡을 먹을 수 있습니다. 지금 사단은 주님께 이 돌덩이로 그 떡을 만들어서 먹으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것으로 사단은 지금도 이렇게 미혹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배고품이 아닙니다.

사단은 이 세상의 떡을 만들어서 먹으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무슨 말인가 하면 네가 지금 배가 고프니까 이 떡을 먹어야 할 것이 아니냐고 묻고 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물론 그 떡을 먹어야 하지만 사람이 사는 것은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는 영의 일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단은 육체를 살게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 육체가 아니라 영의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 육체가 사는 것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영이 사는 것입니다. 이 시대 교회를 보면 육체를 사는 것에 모두가 다 미혹이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돌덩이를 떡이 되게 하면서 자기 육체를 위해서 먹고 있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영의 일에 대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사람은 돌덩이를 떡이 되게 해서 그것을 먹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주님의 말씀과 같이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먹고 있습니다. 생명의 떡을 먹어 주님께서 오시는 날에 영접을 받아 천국에서 모든 축복을 누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