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 남은 자(2)
(Remnant)
스바냐 3:11-13절을 보겠습니다. (구 1308쪽)
“그 날에 네가 내게 범죄한 모든 행위를 인하여 수치를 당하지 아니할 것은 그 때에 내가 너의 중에서 교만하여 자랑하는 자를 제하여 너로 나의 성산에서 다시는 교만하지 않게 할 것임이니라 내가 곤고하고 가난한 백성을 너의 중에 남겨 두리니 그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의탁하여 보호를 받을지라 이스라엘의 남은 자는 악을 행치 아니하며 거짓을 말하지 아니하며 입에 궤휼한 혀가 없으며 먹으며 누우나 놀라게 할 자가 없으리라”
남은 자입니다
교만하여 자랑하는 자를 남겨 두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자기를 자랑하는 것은 교만한 것입니다 그런 교만한 자들을 남겨 두지 않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만하여 자랑하는 자는 남은 자가 될 수 없습니다.
자랑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자랑을 무엇으로 합니까? 믿음은 마음에 있기 때문에 그것을 보일 수 없어서 자랑할 수가 없습니다. 교회 안에서 자랑하는 것은 다 행위를 보고 자랑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기도를 얼마나 하고 또 자기가 찬양을 잘 부르는 것으로 자랑하고 또 자기가 성경을 지식적으로 알고 있는 것을 가지고 자랑을 하고 있고 십일조를 내는 것으로 자랑하고 있고 주일을 지키는 것으로 자랑을 하고 있습니다.
제하여 버립니다.
교만하여 자랑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제하여 버리시겠다고 말씀합니다. 누가 교만합니까? 은혜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 교만합니다. 교회에는 나와 있지만 은혜를 모르고 자기를 자랑하고 있는 사람이 교만합니다. 은혜를 입은 사람은 절대로 자기를 자랑하지 않습니다.
은혜를 안 받아들입니다.
이것이 다 선택과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택을 한 것을 은혜라 생각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가장 교만한 사람이 누군가 하면 자기가 할 수 없는 것을 은혜로 해 주었는데 그것을 받으려 하지 않고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서 단번 속죄제물이 되셨는데 그것을 안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자랑합니다.
무엇을 자랑합니까? 자기가 교회 안에서 행하고 있는 행위를 가지고 자랑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교만한 자들을 다 제하여 버리시겠다고 말씀은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행위를 가지고 간증이라고 하면서 자랑하는 자는 남은 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로마서 2:17-19절을 보겠습니다. (신 241쪽)
“유대인이라 칭하는 네가 율법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자랑하며 율법의 교훈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지극히 선한 것을 좋게 여기며 네가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규모를 가진 자로서 소경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두움에 있는 자의 빛이요”
율법을 의지해서 하나님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무슨 말씀이냐면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을 가지고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고 자랑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그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이라고 하면서 그것을 지키는 것을 대단한 자랑으로 삼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부자 청년이 주님께 와서 내가 어려서부터 율법을 다 지켰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랑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 이 시대도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을 보면서 하나님을 빙자해서 자랑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들에게 능력을 주셔서 율법을 지킬 수 있다고 자랑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도와 주셔서 십일조도 내고 주일도 지킬 수 있다고 자랑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자랑하는 자들을 다 제하여 버리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소경입니다
율법을 문자 그대로 지키라고 하는 사람은 소경입니다 지금 이 시대 그런 소경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리고 자기들은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지켰다고 자랑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는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자기를 지켜 주신다고 자랑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남은 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겉으로는 자랑을 안합니다
그러나 자기 마음에서는 그것이 자랑이 되고 있습니다. 십일조를 안 내는 사람을 보면 그리고 주일을 안 지키는 사람을 보며 자기 마음에서는 자랑을 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이런 행위들을 가지고 자랑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자랑하는 자들을 제하여 버리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일서 2:15-16절을 보겠습니다. (신 389쪽)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
자랑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율법, 은사, 지식, 그 어느 것이라도 자랑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너희가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자기가 한 행위에 대해서 너무도 자랑하고 싶어 합니다. 이 시대를 보면 그것을 자랑하기 위해서 참지를 못하고 있고 서로 간증을 하면서 칭찬을 해 주고 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악한 일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세상이 무엇입니까?
교회도 세상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하는 일도 세상에서 하는 일입니다. 세상이라고 말씀을 하니까 마치 교회 밖에 세상을 말씀하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구는 세상입니다 그 지구 안에서 무엇을 했다 하면 그것은 다 세상에서 한 것임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입니다
이 세상에 교회도 있고 이 세상에 교회 안에서 기도도 하고 있고 이 세상에 교회 안에서 찬양도 부르고 이 세상에 교회 안에서 예배도 드리고 또 교회 안에서 봉사도 하고 헌신도 하고 주의 복음을 위해서 일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들이 다 이 세상의 정욕과 안목과 이생의 자랑이라는 말씀입니다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위해서 일 했습니까?
제가 아무 것도 하지 말라고 지금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는 이 세상에 자기를 헌신하면서 복음을 위해서 일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인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라는 것을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런 행위들을 한 것을 가지고 교회 안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하면서 자랑을 하고 있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왜 육의 사람과 같이 살아가고 있습니까? 자기 육체를 자랑하는 것이 얼마나 교만한 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지렁이 같은 야곱이 무엇을 잘 했다고 자랑을 합니까? 자기를 모르니까 율법의 행위에 취해서 그것을 자랑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교회 안에서 한 행위가 어떤 가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우리가 버러지를 보고 있는데 그 버러지가 자기가 무엇을 했다고 우리에게 자랑을 하는 것과 같다는 말씀입니다
늘 강조를 드립니다.
나를 알면 아니 내가 받은 은혜가 무엇인가를 알고 절대로 자랑하지 않습니다. 설령 사도 바울과 같이 큰일을 했다 해도 그것을 가지고 자랑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영혼을 죽이는 악한 일을 하면서도 그것을 가지고 자랑을 하고 있습니다.
자랑 한다는 자체가 복음이 없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것을 가지고 자랑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아무리 많은 영혼을 구원하는 일을 했다 해도 그것을 자랑하는 순간에 하나님께서 제하여 버리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얼마나 영악합니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하고 또 성령께서 도와주셨다고 하면서 자랑을 하고 있습니다.
교만한 것입니다
은혜를 입은 자가 자기가 무엇을 조금 했다고 그것을 자랑한다는 것이 얼마나 교만한 일입니까? 그러나 그것을 자랑하고 싶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고 또 성령께서 감동하셨다고 하면서 자랑을 하고 있는 것이 지금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누가복음 17:10절을 보겠습니다. (신 124쪽)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참으로 중요한 말씀입니다
사도들이 믿음을 더하여 달라고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몇 가지 비유를 들어 말씀을 하시고 난 후에 명령을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로서 일했습니까?
지금 예수님께서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지 우리가 자랑할 것도 그 일로 우리가 사례를 받을 수도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익한 종이 일을 했는데 무엇을 자랑합니까? 자랑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남은 자에서 제하여 버릴 것입니다
무익한 종입니다
내가 한 일 모두가 다 무익하다는 말씀입니다. 사도들이 한 모든 일이 다 무익하다고 예수님께서 직접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자기들이 아주 조그만 일을 했어도 그것을 하나님을 빙자해서 자랑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들 중에 누가 자기들이 한 일을 가지고 자랑을 했습니까? 사도 바울이 오죽하면 부득불 자랑한다고 말씀을 하겠습니까?
무익합니다.
내가 복음이 있습니까? 그래서 이 시대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까? 무익합니다. 그런데 이 무익한 것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교만한가를 정말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은혜를 입은 자가 은혜를 주신 주님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은혜를 입은 자가 자기가 한 일을 가지고 자랑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교만한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들이 교만하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아주 겸손의 모양을 내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이 세상의 일을 한 것을 가지고 자랑하는 것 자체가 교만입니다 무익한 종은 설령 이 세상에서 어떠한 일을 했다 해도 그것을 가지고 자랑하지 않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다고 하면서 자기를 감추는 것입니다.
정말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하는 그 자랑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나를 제하여 버리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가 자기들이 이 세상에서 한 일을 가지고 자랑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위해서 한 일도 아닌 자기들의 종교적인 행위를 가지고 서로 자랑하고 서로 칭찬을 해 주고 있는 것이 이 시대 교인들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무익한 종입니다
내가 한 일을 가지고 사례를 바라거나 자랑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저 주님께서 택하여 주신 것에 우리는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너무 자기 교회를 자랑하고 있고 또 자기들이 교회 안에서 행하고 있는 것을 자랑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스바냐 3:12절을 보겠습니다. (구 1308쪽)
“내가 곤고하고 가난한 백성을 너의 중에 남겨 두리니 그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의탁하여 보호를 받을지라”
남은 자가 누구입니까?
내가 곤고하고 가난한 백성을 너의 중에 남겨 두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주님께서 곤고하고 가난한 자를 남겨 두시고 있고 그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의탁하여 보호를 받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곤고한 자입니다
누가 자기를 곤고한 자라하고 있습니까? 사도 바울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라고 말씀을 하면서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탄식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우리는 사도 바울과 같이 구원에 대해서 곤고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자기가 얼마나 곤고한 자인가를 알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그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이렇게 곤고한 자가 남은 자입니다
왜 곤고합니까? 사도 바울이 로마서 7장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 육신이 죄에 팔렸다는 것을 압니다. 어쩔 수 없이 죄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죄를 안 지려고 선을 행하고 싶어서 복음의 일을 열심히 했습니다.
그래서 선을 행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자기는 선을 행한다고 한 그것이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악을 행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죄를 안 지려고 해도 역시 죄인의 모습으로 보이고 또 그래서 선을 행하려고 했는데 그것이 악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사실 교회 안에서 이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보면 맞습니다. 자기가 행하고 있는 선이 악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곤고합니다.
어떻게 해도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율법의 의로 보니까 자기가 아무리 흠 없는 율법의 의를 가졌다 해도 역시 죄인입니다 그래서 이제 복음을 알고 선을 행하면서 살려고 하니까 그 선을 행하는 것이 악으로 변하는 자기를 보고 탄식을 하고 있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오직 예수입니다 곤고한 성도는 오직 예수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로마서 8장1절에서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곤고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 사망의 몸에서 건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렇게 곤고한 자가 여호와를 의탁하며 보호를 받는다고 말씀합니다.
성경을 알아야 내가 곤고한 자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곤고한 자는 자기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에 더욱 더 예수 그리스도께 의탁해서 보호를 받을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기를 누구도 정죄할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곤고한 자를 남겨 두십니다.
지금 이 시대도 이렇게 곤고한 자를 하나님께서 남겨 두시고 있고 그들을 구원해 주시고 있습니다. 자기 영혼에 대해서 바로 알아야 하는데 이 시대는 너무도 안일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고 그런 그들은 남은 자가 아니라 거대한 종교에 미혹이 돼서 자기들 스스로 만들어 놓은 정통이라고 하는 올무에 걸려 다수를 따라 가고 있습니다.
가난한 자입니다
물질적으로 가난한 자가 아닙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에 저희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의, 은사, 신앙생활의 의, 이런 모든 것은 나를 부자로 만들고 있지만 사람들은 그런 것에서 빠져 나오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누가 가난합니다.
기도를 잘하는 사람과 기도를 잘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누가 가난하겠습니까? 교회 안에서 정말 모든 것을 잘하는 사람은 이미 그 마음에 부자가 되어 있습니다. 내가 무엇을 해도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성도는 가난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행위들이 이 세상 사람들과 비교를 하게 만들어서 자기도 모르게 그 마음에 부자가 되어 있습니다.
나는 주일을 지킵니다.
나는 십일조를 내고 있습니다.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찬양을 부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나와 그렇지 않은 세상 사람과 비교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부자가 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면 그는 결코 남은 자가 될 수 없습니다.
가난해 지시기 바랍니다.
일부러 가난해 지라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통해서 내가 구원을 받을 수 없는 가난한 자라를 것을 깨달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사실 율법을 바로 알면 거지 나사로와 같이 가난한 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율법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을 바로 알지 못하면 절대로 곤고한 자도 될 수 없고 가난한 자도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늘 깨어 지혜를 구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시편 68:10절을 보겠습니다. (구 849쪽)
“주의 회중으로 그 가운데 거하게 하셨나이다 하나님이여 가난한 자를 위하여 주의 은택을 준비하셨나이다”
가난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자를 위하여 그 은택을 준비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사람들이 교회에만 나오면 부자가 되기를 좋아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부자가 되려고 하고 그 부자가 되어 가는 자기를 보고 너무 좋아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왜 오셨습니까?
바로 이 가난한 자를 찾아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 서로 부자가 되려고 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교회가 부자가 되라고 부추기고 있습니다. 부자가 되는 것이 하나님을 잘 믿는 것이라 하고 있고 또 하나님께서 도와 주셔서 부자가 되었다고 하면서 부자가 되라고 강요를 하고 있습니다.
정말 부탁드립니다.
나를 철저하게 비워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으면서 조금이라도 부자가 되는 순간에 사망의 길로 간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율법적으로도 그렇고 은사도 그렇고 지적으로도 부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을 많이 안다고 하는 그런 지적인 부자가 이 시대에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런 것이 자기를 부자로 만들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스스로 사망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은혜가 누구에게 임합니까?
절대로 부자에게는 안 임합니다. 아니 부자는 은혜를 은혜로 받아들이지를 못 합니다. 내가 정말로 가난해 져야 주님의 은혜가 임할 수 있는 것이지 부자는 절대로 받아들이지를 못한다는 것을 이미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보여 주셨습니다.
구약의 육은 우리의 영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약에서 가난한 자에 대해서 얼마나 많은 말씀을 하게 하셨습니까? 바로 그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영적으로 가난한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자기 심령이 가난하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남은 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시고 내게서 부자가 될 수 있는 모든 것을 반드시 없애 버리기를 바랍니다.
스바냐 3:13절을 보겠습니다. (구 1309쪽)
“이스라엘의 남은 자는 악을 행치 아니하며 거짓을 말하지 아니하며 입에 궤휼한 혀가 없으며 먹으며 누우나 놀라게 할 자가 없으리라”
이스라엘의 남은 자입니다
이 시대도 남은 자가 있습니다. 남은 자는 악을 행치 아니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남은 자는 주의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절대로 악을 행하지 않고 있습니다. 정말 이 악이 무엇인가를 깨달아야 하는데 이 시대는 악을 행하면서도 그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악이 무엇입니까?
내가 선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모든 행위들이 사실은 다 악한 일입니다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선하게 보이는 그 행위들로 인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가려지고 있다면 그것은 다 악입니다 아니 그것이 가려지지 않는다 해도 악이라는 것을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합니다. 사람이 행하고 있는 모든 행위가 다 악이라는 것을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행위는 다 악 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는 선합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것은 선하고 사람들이 한 모든 행위는 다 악합니다. 그것이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위해서 일을 했어도 악합니다. 제가 아무 것도 하지 말라고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우리의 행위는 다 악하다는 것을 알지만 복음이 있는 성도는 복음을 위해서 자기 직무를 행하고 있습니다.
선과 악을 모릅니다.
종교적인 모든 행위는 다 악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신 모든 구속의 일들은 선합니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그 자체가 선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받아들이기 보다는 종교적 행위에 쉽게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 자기들을 나타내고 싶어 하고 자랑을 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악을 행하지 않습니다.
아니 악을 행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 행위가 악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사도 바울과 같이 배설물과 같이 버리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볼 때는 정말 선하다고 하는 성도도 버리고 있습니다. 그렇게 버리는 성도를 보고 악을 행하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거짓을 말하지 않습니다.
교회 안에서 믿음을 방해하는 행위를 강조하는 말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다 거짓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행위를 믿음으로 한다고 하면서 사람들을 미혹 시키고 있는 것이 이 시대 교회의 모습입니다. 거짓말이 무엇인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요한일서 2:4절을 보겠습니다. (신 388쪽)
“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그의 계명이 무엇입니까?
오직 믿음입니다. 만약에 이 오직 믿음을 방해를 하는 말을 하고 있다면 그는 거짓말 하는 자입니다 오직 예수를 믿어서 구원을 받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주일을 지켜야 한다고 하면 그는 거짓말하는 자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오직 예수라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그런 그가 십일조를 내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는 거짓을 말하는 있는 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육체로 폐하신 율법의 어느 것이라도 지키라 하고 있다면 그는 오직 믿음을 모르고 있는 사람이며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않고 거짓을 말하고 있는 자라는 것을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합니다. 사실 이 시대 이렇게 거짓을 말하고 있는 자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계명을 지키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것입니다 그 외에 다른 사족을 다는 사람은 다 거짓말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맞는데 하면서 다른 이유를 말하고 있다면 그는 무조건 거짓말하는 자라는 말씀입니다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거짓말 하는 자입니다
행위와 믿음은 연결이 될 수 없습니다.
갈라디아에서 분명히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이 시대는 자기들의 행위를 가지고 믿음이라고 말도 안 되는 주장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주장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다 거짓말 하는 자라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를 교인들을 보면 너무도 안타깝기만 합니다.
오직 예수라는 그 말 한마디에 다 넘어가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라고 말하고서 그 후에 어떤 말을 해도 그것이 오직 예수가 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라는 말을 하고 난 후에는 무수한 거짓을 말하고 있지만 그것을 전혀 분별을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 교회 안에서 이 오직 예수를 말하지 않는 교회는 없습니다. 그것을 부정했다가는 무조건 이단으로 정죄를 받기 때문에 다 오직 예수입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그들은 오직 예수라는 말을 하고 있지만 실상은 오직 예수를 부정하고 있는 말들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저버리는 말을 하고 있지만 오직 예수라는 그 말 한마디에 다 넘어가고 있다고 보면 맞을 것입니다 심지어는 샤머니즘적인 행위를 해도 오직 예수를 믿어 구원을 받는다고 하면 모든 것이 다 용납이 되고 있는 시대입니다.
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를 믿는 것과 종교적 행위는 대치를 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빛을 사랑하는 것이고 종교적인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은 어두움을 사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직 예수를 목소리 높이면서 이야기를 하고 그 후에 종교적인 행위들을 강조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말장난에 불과한 거짓이라는 것을 우리가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남은 자는 궤휼한 혀가 없습니다.
뱀이 얼마나 간사스럽고 교묘합니까? 죄를 한 번도 안 지어본 하와를 미혹해서 선악과를 따먹게 했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역시 사단에 미혹이 되어 있는 광명의 천사들이 얼마나 간사스럽고 교묘하게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 사이를 끊어 놓고 있는 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생명입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광명의 천사로 가장을 한 거짓 선지자들은 이 생명보다 행위를 더 강조를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주장을 하는 것이 그렇습니다. 너희는 생명을 얻었다고 말 합니다. 그리고 이제 생명을 얻었으니까 하나님의 성도로서 이 세상에서 잘 살아야 한다. 이것도 해야 하고 저것도 해야 하고 교회 안에서 해야 하는 일들을 많이 만들어 놓고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점점 멀어지게 만들고 있습니다.
교묘합니다.
마치 생명을 얻는 것 같이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생명은 단번에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 생명을 누구나 그렇게 쉽게 받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오늘 남은 자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수가 아니라 은혜를 따라 택하심을 입은 남은 자에게 이 생명을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치 교회 안에만 들어오면 이 생명을 다 얻은 것으로 착각을 하게 만들고 아주 교묘하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9:29절을 보겠습니다. (신 252쪽)
“또한 이사야가 미리 말한바 만일 만군의 주께서 우리에게 씨를 남겨 두시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과 같이 되고 고모라와 같았으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남은 자입니다
만군의 주께서 우리에게 씨를 남겨 두시지 않았다면 우리가 소돔과 고모라 같았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종말의 때입니다 지금 이 시대 아직도 주님께서 남은 자를 있게 하시고 있기 때문에 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종말이 오지 않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남겨 두시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아직까지는 성도들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 숫자가 얼마나 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남은 자가 아주 적다는 것을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이 그것을 경계로 가르쳐 주면서 우리에게 남은 자가 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남은 자들은 주님께서 은혜로 택하셔서 이 시대 구원을 받은 성도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종말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 시대는 아직 종말이 아닙니다. 종말이 때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것은 맞지만 아직은 종말이 아닙니다. 만약에 종말이 온다면 이 지구는 소돔과 고모라와 같이 멸망을 당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이 시대도 이렇게 남은 자들을 두시고 그들을 통해서 복음이 전파되기를 원하시고 있습니다.
씨를 남겨 두셨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의 씨가 아닙니다. 하늘로부터 온 생명의 씨를 이 세상에 남겨 두셨습니다.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표면적 영적 이스라엘이 이스라엘이 아니요 이면적 영적 이스라엘이 이스라엘이라는 것을 우리가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표면적입니다
거의 모든 교회가 자기들의 행위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 종교적인 행위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 성도는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선택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입고 있습니다.
이사야 46:3-4절을 보겠습니다. (구 1024쪽)
“야곱 집이여 이스라엘 집의 남은 모든 자여 나를 들을지어다 배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안겼고 태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품기운 너희여 너희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내가 그리하겠고 백발이 되기까지 내가 너희를 품을 것이라 내가 지었은즉 안을 것이요 품을 것이요 구하여 내리라”
남은 자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배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안겼고 태에서 남으로부터 나에게 안긴 너희여 너희가 노년에 이르기 까지 그리하겠고 백발이 되기까지 내가 너희를 품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하시냐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로서 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너희를 품을 것이요 내가 너희를 구하여 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남은 자들이 있습니다. 남은 자는 하나님께 로서 낳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품에 품어서 지켜 구원해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백발이 되기까지는 우리를 영원히 지켜 주시고 구원해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거듭 말씀드립니다.
남은 자는 아주 적습니다. 성경이 그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남은 자가 누구라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로마서에서도 스바냐서에서 남은 자가 누구라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는 남은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 남은 자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고 구원해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알아야 합니다.
왜 우리가 성경을 바로 알아야 하는 가를 오늘 이 시간에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으리라 믿고 있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남은 자만 구원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이 시대는 교회 안에 들어와 있으면 마치 구원을 받는 것같이 교묘하게 미혹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모르면, 진리를 모르면 자기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도무지 깨닫지 못하고 사망의 길로 가게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남은 자입니다
그 이유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입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만세 전부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하사 우리를 선택을 하셨습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임재를 하셔서 이 모든 것을 믿을 수 있게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역사를 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 은혜를 아는 성도는 감사하고 있습니다.
은혜로 택하심을 입은 성도는 자기를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감사만 나오고 있습니다. 성도는 자기를 알기 때문에 이 은혜가 더욱 은혜가 되어 넘치고 있습니다. 이 시대 남은 자가 되어서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영접을 받아 천국에서 모든 축복을 누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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