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 요한 2서 악한 일에 참여하는 자(2)
요한1서 4:12절을 보겠습니다. (신 392쪽)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왜 서로 사랑하지고 말씀을 합니까?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온전히 이루어지기 때문에 사도요한이 부녀에게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교회의 음행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 사랑이 아닙니다. 음행을 하자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게 하자는 말씀입니다
새 계명이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가 처음부터 가지고 있던 계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처음부터 사랑을 하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랑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이해를 해야 합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는 말씀은 육적인 사랑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영혼에 대한 일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는 것이 온전히 이루어지는 것은 우리가 생명을 얻은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에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 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새 계명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을 하시고 또 우리가 사랑해서 영혼이 구원을 받으면 율법을 온전히 이루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이 사랑에 대해서 모르고 그저 율법적인 행위로 사랑을 하려고 하다가 하나님의 사랑을 온전히 이루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가지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처음부터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을 사랑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을 통해서 우리는 영의 일에 대해서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처음부터 우리를 사랑하시지 않았다면 아담과 하와를 창조 하시지도 않았고 또 그들이 범죄를 했을 때 인류는 그것으로 끝이 났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가죽 옷을 지어 입히시고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사랑을 아담과 하와가 범죄 하기 전부터 만세 전부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을 하셔서 우리를 구원하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 사랑을 처음부터 가지고 있었고 교회에게 서로 사랑하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교회가 서로 사랑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이 시대 교회는 율법을 지키고 있고 그 율법의 기준이 너무 높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정죄가 되어 있습니다. 율법을 한 가지라도 지키고 있는 이상 서로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분명히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으면 사랑하고 싶어도 사랑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누가 십일조를 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십일조를 안 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서로 사랑할 수 있습니까? 사랑하고 싶어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십일조를 내고 있는 사람은 십일조를 내지 않은 사람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18장에서 바리새인들이 기도를 하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다고 하고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린다고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나는 십일조를 드립니다.
그런데 저 사람은 안 드리고 있습니다. 사랑하고 싶어도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교회가 어느 교회는 십일조를 드리고 있고 어느 교회는 십일조를 안 드려 보시기 바랍니다. 아마도 서로 이단이라고 공격을 할 것이 너무도 뻔합니다. 아니 이단이라고는 안할지라도 서로 상종을 하지 않게 됩니다.
요한이서1:6절을 보겠습니다. (신 395)
“또 사랑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 계명을 좇아 행하는 것이요 계명은 이것이니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바와 같이 그 가운데서 행하라 하심이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사랑은 다름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명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계명은 다름이 아니라, 여러분이 처음부터 들은 대로, 사랑 안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계명은 다른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들은 대로 사랑 안에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사는 것이 계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씀들을 보고 성화주의자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대표로 교회 안에 QT 활동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사랑하라,
사람들은 성경을 거의 육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까 이런 말씀들을 보면 거의 모두가 육적인 사랑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가 자기들이 얼마나 사랑하는 가를 나타내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사랑을 따라 살아가라고 말씀을 하니까 교회가 이 세상을 육적으로 사랑하는 것을 보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제가 아는 목사입니다.
IMF가 있고 나서 우리나라에 대량 실업자가 생기니까 노숙자들이 생겨나기 시작을 했습니다. 일요일 날 예배를 하기 전에 노숙자들을 불러서 예배를 드리고 나서 그들에게 식사를 대접을 하고 또 1000원씩을 주니까 그렇게 큰 교회도 아닌데 일요일 날에는 많게는 500명까지 노숙자들이 예배를 드렸던 것을 보았습니다.
목사 개인 돈입니다.
자기 월급에서 매주 그렇게 4-50만원씩을 노숙자들에게 주면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그 교회 안에 있는 교인들이 목사에 대한 존경심이 너무도 대단했던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대형 교회도 아닌데 목사가 자기 월급으로 그렇게 했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입니까? 그런 일을 하면서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나쁘다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이 세상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그렇게 한 일은 분명히 사랑입니다 그러나 그 사랑은 하나님의 계명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과연 그 노숙자들 중에 거기서 예배를 드리고 나서 구원을 받은 사람이 있습니까? 영혼 구원과 상관이 없이 그런 행위적인 사랑은 하나님의 계명이 아니라 이 세상의 계명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교회가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이웃을 사랑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이웃을 행위적으로 사랑을 한 것을 통계로 내서 한국교회가 이렇게 이웃을 사랑하고 있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요한일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사랑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에 대해서 정말 오해를 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교회가 해야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
지금 사도요한은 교회가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부녀에게 이 세상에 대해서 사랑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물론 육적으로 이 세상을 사랑하는 일을 한다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사랑해야 하는 일을 모른다면 그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초대 교회를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언제 이 세상 사람들을 사랑했습니까? 그럴 여유도 없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가난해서 이 세상을 사랑해야 하는 여유도 없었고 또 서로 교회들끼리 사랑하는 일도 힘들었습니다. 그런 물질적인 사랑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어떻게 했습니까?
당시에 복음을 전하는 사도들과 장로들이 있었습니다. 교회는 그들을 위해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전도를 하러 갈 때 헌금을 해서 사용을 했습니다. 지금과 같이 물질이 넘쳐서 그것을 어디에 써야 하는 가를 고민하던 때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부녀가 서로 사랑하는 일에 모든 마음을 다했지 이 세상의 그런 육적인 사랑을 위해서 일하지 않았습니다.
성도는 오직 복음입니다
나를 통해서 내가 협력을 해서 이 복음이 한 영혼에게 더 전해진다면 그것이 사랑입니다. 사도 요한이 지금 부녀에게 이 사랑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는 그 사랑을 우리가 가지고 있다고 부녀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해야 하는 일입니다.
부녀가 자기 본분을 잃어버리게 되면 음녀가 되고 만다는 것을 우리가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 부녀들은 처음부터 있었던 사랑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고 그저 자기들이 이 세상에 가난한 자들에게 아주 조금 하고 있는 사랑을 나타내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하고 있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이서 1:7절을 보겠습니다. (신 395)
“미혹하는 자가 많이 세상에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것이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
미혹하는 자가 세상에 많이 나왔습니다.
정말 깨어 있지 않으면 누가 미혹을 하고 있는 줄을 전혀 깨달을 수 없게 됩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의 계명을 가지고 미혹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그런 것을 보면서 다 미혹이 되고 있다고 해도 별로 틀린 말이 아닙니다.
교회가 이 세상의 선과 의를 행하고자 있습니까?
자기가 무엇을 해야 하는 줄을 모르고 있다면 그것은 교회가 아니라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 가난한 자들에게 밥 한 끼를 주면 뭐 합니까? 하나님께서 그 일을 가지고 기뻐하십니까? 그러나 미혹하는 자들은 마치 그런 일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의 계명이지 하나님의 계명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좀 냉정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
우리 성도가 이 세상에서 해야 하는 일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부녀들이 어떻게 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하고 있는 아주 작은 행위를 가지고 마치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행하고 있는 것으로 말하고 있고 사람들은 그런 행위들을 보면서 다 미혹이 되고 있습니다. 교회에 미혹하는 자들이 많이 나와서 이 세상의 계명을 가지고 마치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있는 것으로 착각을 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가난한 자에게 빵을 주는 것
이 세상 사람도 다 아는 계명입니다. 사람들은 어느 교회가 그런 일을 하는 것을 보면 다 칭찬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최ㅇㅇ 목사를 잘 알고 있습니다. 교인들만 그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 사람들도 그를 따라 하고 있고 그가 하는 일에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 계명이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도 그 일을 바르다고 생각을 하고 그 일을 하는데 후원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제가 거듭 말씀을 드립니다.
그것은 분명히 이 세상의 이성으로는 잘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부녀는 그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는 일입니다. 그런 세상의 계명을 가지고 미혹하는 자들이 많이 나올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사를 보아도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칭찬을 받고 있는가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교회입니다
서로 사랑을 하라고 하니까 이 세상의 계명을 가지고 그런 행위들을 통해서 미혹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런 것들이 다 자기들의 의가 되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고 있다는 것을 성령의 감동을 받고 있는 성도라면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어느 교회가 부인을 하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을 하는 교회는 하나도 없습니다. 지금 사도요한이 무엇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부녀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거하지 않고 사랑의 모양을 나타내고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을 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를 바랍니다.
디모데후서 3:5절을 보겠습니다. (신 345쪽)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부인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부인을 하고 있는가 하면 부녀에게서 사랑의 모양은 나타나고 있지만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행하지 않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도 부인을 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누가 부인을 하고 있습니까? 말로는 어느 누구도 부인을 하고 있지 않지만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살아가고 있지 않으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을 하고 있는 자라는 말씀입니다 모양을 나타내고는 있지만 믿지 않고 있는 사람을 사도요한이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미혹을 합니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들이 행하고 있는 사랑의 모양으로 미혹을 하고 있습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이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러나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그런 행위는 부녀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들은 대로 사랑 안에서 살아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미혹 당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됩니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시인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녀가 이 사랑 안에서 살아가려 하기 보다는 사랑의 모양을 나타내려고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정말 이 시대 교회가 주의를 해야 하는 것은 사랑의 모양으로 인하여 사랑 안에서 살아가지 못하는 일입니다.
적그리스도입니다
부녀가 자기의 일을 모르면 그것이 적그리스도라는 것을 우리가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이 시대 교회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자기들이 육체의 모양으로 사랑을 나타내면서 그것을 사랑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적그리스도는 이렇게 자기들이 모양을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으로 미혹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2서 1:8절을 보겠습니다. (신 395)
“너희는 너희를 삼가 우리의 일한 것을 잃지 말고 오직 온전한 상을 얻으라”
우리가 일한 것이 무엇입니까?
복음을 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보내 주셨습니다. 독생자를 믿어 영생을 얻게 하는 일을 했습니다. 사도들은 모두가 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가르쳤습니다. 다른 일을 한 것이 아니라 오직 복음을 전하는 일을 했습니다.
영생입니다.
우리가 전한 복음을 잃지 말고 온전한 상을 받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온전한 상은 영생입니다. 성도는 이 세상에서 다른 상을 받으려 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직 천국을 소망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사랑 안에서 살아가지 않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정말 조심하지 않으면 쉽게 미혹이 됩니다. 교회가 사랑의 모양을 나타내는 것이 절대로 나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눈으로 보게 되는 순간 하나님의 사랑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또한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무엇이 먼저입니까?
아무리 강조를 해도 이 영생은 지나치지 않습니다. 제가 늘 말씀을 드리지만 모든 것을 다 버릴 지라도 이 영생을 얻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해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것도 취하고 저것도 취하려고 하다가 결국에는 영생에서 멀어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바로 깨달아야 하는 것은 교회에 나온 사람이 죄를 져서 천국에 못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너무 잘 하려고 하다가 그것이 걸림이 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왜 욕심을 부립니까?
한 가지만 생각을 하면 됩니다. 우리 성도는 온전한 상을 받는 그것 하나만 생각을 하면 됩니다. 그러나 온전한 상도 받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행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온전한 상을 받은 성도는 오직 그것에만 마음을 주고 있습니다.
다 버리시기 바랍니다.
성도님들이 온전한 상을 얻으려면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것 밖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요한이 6절에서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바와 같이 그 가운데서 행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살아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성도만이 온전한 상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부녀가 해야 하는 일입니다
다른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살아가고 있으면 온전한 상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 부녀는 너무 많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으로 미혹을 당하고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적그리스도는 우리의 이성의 생각을 가지고 무너뜨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성적으로는 아무리 그것이 바르다 해도 성경이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 가를 아는 성도가 지혜롭습니다.
요한2서 1:9절을 보겠습니다. (신 395)
“지내쳐 그리스도 교훈 안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마다 하나님을 모시지 못하되 교훈 안에 거하는 이 사람이 아버지와 아들을 모시느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지나치게 나가서 그리스도의 가르침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한 사람은 누구든지, 하나님을 모시고 있지 아니한 사람입니다. 그 가르침 안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아버지와 아들을 다 모시고 있는 사람입니다.”
지나치게 나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 이 시대 교회는 너무 지나치게 나가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을 얼마나 지나치게 하고 있습니까? 물론 그들은 그것이 하나님에 대한 신실한 신앙에서 나온 것이라고 하지만 지나치게 나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교회에 나와서 왜 망합니까?
모두가 지나치는 것으로 망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훈 안에 거하면 되는데 너무 하나님을 사랑하고자 하는 마음이 앞서다 보니까 사람들이 지나치고 있습니다. 지혜 있는 자의 교훈은 생명 샘이라고 잠언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교훈을 주셨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내가 생명이요 부활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모두가 지나치고 있습니다. 예수만 믿으면 되는데 예수 믿는 것에 플러스를 하려고 하다 보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그 안에 거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그것에서 지나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가 너무 앞서 나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도 적그리스도는 그렇게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이미 온전한 상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적그리스도는 온전한 상을 받은 것을 인정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더 큰 상이 있다고 합니다.
지금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의 생각을 보시기 바랍니다. 천국에서 더 큰 상을 받기 위해서 열심을 내고 있고 심지어는 천국에 많이 쌓아 놓겠다고 하면서 헌금을 많이 하게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들이 얼마나 지나친 일이라는 것을 모르고 적그리스도에게 미혹이 돼서 그 일을 하면서도 기뻐하고 있는 것이 이 시대 교회의 모습입니다.
온전한 상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갈 천국입니다 그런데 이 상을 부족한 것으로 여기고 있고 더 큰 상이 있는 것으로 미혹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다 그렇게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한 마디로 불교에서 공덕을 쌓은 사람이 극락에 간다고 하는 주장과 같습니다. 불교에서는 자기가 이생에서 공덕을 쌓은 것에 따라 가는 곳이 다르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생각입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 그런 사상이 그대로 들어와서 지나치게 행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믿는 자에게 동일한 상을 주셨는데도 사람들은 지나쳐 앞서 나가서 자기들이 하고 있는 행위로 말미암아 영생을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영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얻습니다.
그럼 아브라함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영생을 얻었고 사도 바울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영생을 얻었고 나 역시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영생을 얻었습니다. 성도가 얻는 영생이 어떠하다는 것을 이 시대 교회가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얻었다면 그보다 더 큰 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로마서 4:2절을 보겠습니다. (신 243쪽)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지나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면 자랑할 것이 있지만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었기 때문에 자랑할 것이 없다고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아브라함도 믿음으로 영생을 얻었고 나 역시도 믿음으로 영생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지나쳐 나가다 보니까 사람들이 온전한 상을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행위로 지나쳐 나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물론 성도가 이 세상에서 복음을 전해야 하지만 그것은 은혜입니다 자기 행위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은혜가 넘쳐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부탁하신 것을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영생을 얻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도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이미 온전한 상을 받았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세상은 옳다고 합니다.
너무 지나치게 해도 오히려 그것을 의롭다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공덕이라는 말로 미혹을 하면서 지나치게 하라고 강요를 하고 있고 모든 사람은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이치로는 너무도 당연합니다. 1억을 저축을 한 사람이 1억을 받는 것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그러나 하늘의 일은 그렇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그 외에 모든 일은 다 지나친 일입니다 사도요한이 부녀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교훈에서 지나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지나치고 있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사람은 하나님을 모시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교회를 보시기 바랍니다.
솔직히 예수 믿으라는 그 말만 빼고 불교와 뭐가 다릅니까? 하늘의 온전한 상을 모르기 때문에 교회가 불교가 되어 있는데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으며 더욱 지나치게 나가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얼마나 지나치게 나가고 있는 가를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고 오히려 그 일을 잘하는 일이라고 서로 칭찬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2서 1:10절을 보겠습니다. (신 395)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
사랑은 이것입니다
그의 계명을 쫓아 행하는 것입니다 이 계명은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바와 같이 그의 사랑 안에서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보내 주셨는데 이는 저를 믿는 자 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이 교훈입니다
내가 생명이요 부활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는 말씀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생을 얻는 그것이 교훈입니다.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하지 말라고 말씀을 합니다.
부녀입니다
이 부녀는 교회입니다 교회에게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은 그를 교회 안에 들어오지도 못하게 하고 또 인사도 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밖에 있는 세상 사람이 교회에 들어오는 것을 막으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서 다른 교훈을 가지고 있는 자들을 들이지도 말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냉정합니다.
왜 이렇게 냉정한가를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합니다. 설령 그런 사람을 들인다 해도 내가 분별을 하면 될 것 아닌가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다른 교훈을 가지고 들어오면 다 넘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의 이성으로는 이 다른 교훈이 절대로 나쁘지 않기 때문입니다
처음에 말씀을 드렸습니다.
교회가 이 세상에 대해서 사랑의 모양을 나타내는 것이 나쁩니까? 그것을 나쁘다고 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교회가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살아가라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 들어와서 이 세상을 사랑하는 일을 하게 되면 그것이 결코 나쁘지 않기 때문에 거기에 다 미혹이 되고 만다는 말씀입니다.
오직 예수를 믿는 일입니다
그 일 말고 다른 일을 가지고 들어오면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까지 해야 하는 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사실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일들이 나쁜 일이 아니라 선하고 의로운 일이다 보니까 사람들이 아주 쉽게 다 거기에 넘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인사도 하지 말라고 말씀을 합니다.
좀 심합니다. 그래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인데 어떻게 인사도 안 할 수 있습니까? 하지만 성경은 우리에게 이런 자들이 교회 안에 들어오면 인사도 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다른 교훈을 가지고 들어오면 너무도 쉽게 미혹이 되기 때문입니다.
단호합니다.
우리 성도가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얼마나 단호해야 하는 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특히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교훈이 아닌 것을 가지고 들어오는 자를 받아들이게 되면 그 순간에 교회는 그대로 무너지게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진리는 아주 적은 것 하나에서부터 흔들리기 시작을 하면 그대로 무너진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요한2서1:11절을 보겠습니다. (신 395)
“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여하는 자임이니라”
왜 인사도 하지 말라고 합니까?
그가 하는 악한 일에 참여를 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훈이 아닌 것을 가지고 들어오는 자는 다 악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악한 자들과는 인사도 하지 말라고 단호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들어오는 자가 누구입니까?
악한 일을 하는 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일 외에 교회 안에서 행하는 모든 행위가 다 악한 일이라는 것을 우리는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사도요한은 교회에게 아주 냉정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왜 인사도 하지 말라고 하는 줄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는 악한 일을 하는 자이기 때문에 인사도 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 사람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은 죄인이지 악한 일을 하는 자가 아닙니다. 교회 안에 있는 악한 자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악한 일을 하고 있는 자를 받아들이는 교회는 그 악한 일에 참여를 한 것이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부녀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악한 일을 하는 자가 교회 안에 들어오면 그 교회는 악한 일에 참여를 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정말로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악한 일을 하는 자를 모르고 받아들이면 그 교회는 악한 일에 참여를 하게 된다고 말씀합니다. 지금은 악한 일을 안 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보니까 교회가 받아들이고 말고 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도요한이 이 서신을 쓸 때만 해도 교회가 진리에 서 있었습니다.
디모데후서 4:18절을 보겠습니다. (신 347쪽)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 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교회에서 보내는 편지입니다.
우리 인생의 지혜로는 악한 일이 무엇인지 선한 일이 무엇인지를 분별할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지혜가 뛰어난 사람이라 해도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악한 일을 분별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진리의 성령을 보내 주셔서 악한 일을 분별을 할 수 있게 진리 가운데로 인도를 해 주시고 있습니다.
이 시대 교회는 다 악한 일에 참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선택을 하신 성도들은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 내시고 구원해 주시고 있습니다. 사도요한이 부녀에게 이 서신을 보내는 것은 교회가 얼마나 쉽게 악한 일에 참여를 하는 가를 깨우쳐 주기 위해서입니다. 사실 악한 일을 하는 자가 교회 안에 들어오면 그것을 분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악한 일에 참여를 하게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건져 내 주시고 있습니다.
이 시대가 아무리 악하다 할지라도 주님께서 선택을 하시고 사랑하는 성도들은 모든 악한 일에서 반드시 건져내 주시고 있습니다. 교회가 왜 악한 일에 참여를 하게 되는가 하면 이렇게 악한 일을 하는 자가 한 사람만 들어와도 교회는 아주 쉽게 악한 일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요한이 부녀에게 편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악한 일입니다
이 세상 죄인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지만 교회 안에서 악한 일을 하는 자는 가능성이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이 악한 일에 한번 빠지면 절대로 거기서 빠져 나오지를 못합니다. 주님의 은혜로 주님께서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 주셔야지만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새벽기도 한 가지만 말씀합니다.
그것을 누가 악한 일이라고 말하겠습니까? 누군가 들어와서 그렇게 새벽 기도를 하다 보면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도 그렇게 하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그 행위 자체가 너무도 신실하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교회가 악한 일에 참여를 하게 되면 그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사도요한이 정말 강경한 어조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2서 1:12절을 보겠습니다. (신 395)
“내가 너희에게 쓸 것이 많으나 종이와 먹으로 쓰기를 원치 아니하고 오히려 너희에게 가서 면대하여 말하려 하니 이는 너희 기쁨을 충만케 하려 함이라”
초대교회입니다
그러나 복음이 전해진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벌써부터 악한 일을 하는 자가 교회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을 했습니다. 사도들이 아직까지 살아 있는 그때에도 악한 일을 하는 자들이 교회 안에 얼마나 많이 들어왔으면 사도요한이 이렇게 서신을 보내겠습니까?
쓸 것이 많습니다.
그러나 종이나 먹으로 쓰기를 원치 아니하고 직접 얼굴을 보고 말씀을 하고 싶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이 바라는 것은 직접 교회에 가서 얼굴을 마주 보면서 복음을 전하고 싶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고자 하는 이유는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혼 구원입니다.
이보다 더 큰 기쁨이 어디 있겠습니까? 사도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서 그들이 믿어 구원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고 싶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천국을 얻은 성도만이 기쁨을 충만하게 받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훈을 전해서 교회 안에 있는 자녀들에게 기쁨을 주고 싶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2서 1:13졀을 보겠습니다. (신 395)
“택하심을 입은 네 자매의 자녀가 네게 문안하느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택하심을 받은 그대 자매의 자녀들이 그대에게 문안합니다.”
그대에게 문안합니다.
교회를 그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택하심을 받은 그대 자매의 자녀들이 그대에게 문안을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교회에 있는 성도들이 교회에게 문안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요한도 교회의 성도들 중에 한 사람으로서 교회에게 문안을 하고 있습니다.
선택입니다
주님께서 성도들을 선택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이 선택에 대해서 감사를 하고 있습니다. 선택을 모르는 사람들은 이 선택이 불의하다고 말을 하고 있지만 자기가 도저히 선택을 받을 수 없는 사람임을 아는 성도는 주님께서 무조건적인 선택을 해 주신 것에 감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이 선택이 불의 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요한이 교회를 높이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 교회가 주님의 아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대에게 라는 호칭을 쓰고 있습니다. 교회가 얼마나 중요한 가를 사도요한의 서신을 통해서 우리가 다시 깨닫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 시대는 이런 교회가 거의 없다는 것이 불행한 일입니다 거의 모든 교회가 다 악한 일에 참여를 하고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 줄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를 믿어 영생을 얻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교회는 하나님의 계명대로 진리를 행하는 자가 거의 없어졌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도 역시 주님께서는 선택을 받은 자들에게 사랑을 주시고 그 안에서 행하게 하시고 있습니다. 교회가 어떻게 해야 하는 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악한 일을 하는 자를 절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 주시는 주님의 은혜로 영생을 얻어 천국에서 모든 축복을 누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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