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독주를 잔뜩 먹자
이사야 56:9-12절을 보면
“들의 짐승들아 삼림 중의 짐승들아 다 와서 삼키라 그 파숫군들은 소경이요 다 무지하며 벙어리 개라 능히 짖지 못하며 다 꿈꾸는 자요 누운 자요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니 이 개들은 탐욕이 심하여 족한 줄을 알지 못하는 자요 그들은 몰각한 목자들이라 다 자기 길로 돌이키며 어디 있는 자이든지 자기 이만 도모하며 피차 이르기를 오라 내가 포도주를 가져오리라 우리가 독주를 잔뜩 먹자 내일도 오늘같이 또 크게 넘치리라 하느니라”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성경을 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모든 말씀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의에 대해서 가르쳐 주고 있지만 사람들은 성경을 문자적으로 보면서 그의 의에 대해서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타락을 합니다,
누가 타락을 한다고 생각합니까? 백성들이 먼저 타락한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물론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백성이 타락하는 것은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들이 설령 타락의 길로 간다고 해도 교회 안에 있는 지도자들이 타락하지 않으면 얼마든지 바로 잡아서 다시 돌이킬 수 있습니다.
문제는 목사입니다.
교인들이 타락을 했다 해도 목사가 바로 서 있다면 그 타락한 것에 대해서 목사가 말을 하면 교인들은 다 듣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목사가 타락하면 들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절대적으로 신뢰를 받는 지도자가 타락을 하면 아무리 교인들이 이야기를 해도 그것을 바로 잡을 수 없습니다.
아니 이야기도 못 합니다,
감히 어느 누가 지도자가 타락을 했는데 그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까? 육적인 타락도 이야기를 못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데 영의 일에 있어서 타락을 하면 어느 누구도 이야기를 하지 못 합니다, 더구나 일반 교인이 신학을 공부하고 직업으로 살아가고 있는 목사들의 영역을 침해한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용납이 안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알아야 합니다,
사단은 목사들을 세우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정말 사람의 이성으로 생각할 때 참 하나님의 사람과 같은 목사를 세우면 그에게서 배우는 모든 사람들을 아주 쉽게 사망에 빠뜨릴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가 십만 명을 모으면 십만 명이 죽고 천명을 모으면 그 안에 있는 천명이 모두가 사망에 이른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목사 한 사람입니다,
지금은 거의 모든 교회가 니골라당의 형태를 갖추고 있습니다. 목사의 일인 독제라 해도 별로 틀리지 않습니다, 마치 공산주의와 같이 목사는 치외법권적인 지위를 누리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시대 교회는 공산주의와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와 생각이 조금이라도 다르게 표현을 하면 이단으로 몰라서 인민재판을 하듯이 쫓아내고 있습니다,
교인 한 사람입니다,
그가 타락을 하는 것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물론 그 한 사람으로 인하여 다른 사람까지 미혹이 되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목사가 타락을 하게 되면 그에게서 배우는 모든 사람이 다 사망에 이르기 때문에 타격이 너무 큽니다,
거짓 선지자입니다.
이미 구약에서부터 이 거짓 선지자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거짓 선지자를 말씀을 하고 있는가 하면 바로 이런 이유가 있어서 그렇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눈에는 그 거짓 선지자가 참 선지자로 보이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깨달을 수 없습니다, 거짓 선지자 본인도 모르는데 어떻게 교인들이 그를 분별할 수 있겠습니까?
정말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계속해서 이 거짓 선지자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정말 주의 깊게 보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시대 거짓 선지자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가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종말의 때가 가까이 오면 올수록 거짓 선지자들은 더 많아진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누군가 위대한 신학자가 있습니다.
그가 교리를 세웠습니다. 그런데 당시 사람들이 그가 너무 큰 인물이다 보니까 감히 반대를 하지 못하고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러면 이제 그것을 가지고 또 논리적으로 세우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자기도 정통이라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서 그가 세운 교리에 더욱 견고히 하기 위해서 또 자기의 사상을 더해서 교리를 점점 더 굳게 세우고 있습니다,
이것이 신학입니다,
이제까지의 신학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중세 시대를 지나오면서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감히 그들이 세운 교리에 반대를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자기 생명을 내 놓고 하는 일이라는 것을 우리가 교회사를 통해서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교리 한번 잘못 세우면 다 죽습니다.
누군가 교리를 세웠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모두가 추종을 하게 되었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그 교리로 인하여 모든 사람이 다 사망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해석은 하되 교리를 함부로 세워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시대 교리로 따르고 있는 것들 중에는 성경적이지 않은 것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지금의 조직신학입니다.
그것은 이제까지의 신학자들의 주장들을 그대로 담은 것이라고 보면 맞습니다. 하지만 그 조직신학이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성경적이지 않은가를 사람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그것을 신학교에서 배우는 목사들도 모르고 배우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배우다 보니까 그것이 정통의 교리라는 것만으로도 모든 것이 다 용납이 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5:31절을 보면
“선지자들이 거짓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그 결국에는 너희가 어찌 하려느냐”
남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을 당합니다,
그때 어떠한 일이 있었는가를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선지자들이 거짓 예언을 합니다, 만약에 백성들이 선지자들의 예언이 거짓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그것을 좋게 어겼겠습니까? 절대로 그러한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지자들의 말입니다,
그 말이 얼마나 좋게 생각이 되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선지자들은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을 당하지 않는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보내셔서 이스라엘을 바벨론의 포로가 되게 하시겠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선지자들의 말과 예레미야의 말 중에서 어느 말을 좋게 여기겠습니까?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일이 똑같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저는 이 시대 모든 교회가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있다고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거의 모든 교회의 목사들은 자기들의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천국에 간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저는 천국에 못 간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천국에 간다고 합니다, 어느 말에 더 좋게 여기겠습니까? 음행의 상징이 바벨론입니다,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음행을 해서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이 시대 역시 음행을 해서 모두가 포로가 되어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실제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고 이 시대는 영적으로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있으면서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교인들이 더 좋아합니다,
어떤 말을 더 좋아하는가 하면 음행을 하라고 하는 말을 더 좋아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사람의 이성에는 너무도 바르게 판단이 되기 때문에 음행을 하라는 말에 더 좋아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요한계시록에서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는 성경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바벨론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음행의 포도주를 먹이던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율법을 지키면서 하나님을 믿다가 결국에는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생각했습니까? 하나님을 믿으면서 율법을 지키는 것을 좋게 여겼습니다, 그것을 선지자들이 이야기를 했고 제사장들은 자기들이 율법을 지켜야 권위가 서니까 강요를 했고 또 백성들도 율법을 지키는 것을 보면서 자기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어떻습니까?
이스라엘은 바벨론의 포로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 시대 역시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서 음행을 하고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바로 알지 못하면 어떠한 결과가 오는 가를 깨달아야 하는데 사람들은 그저 교회 안에 들어가 목사들의 말을 좋게 여기고 있습니다. 그들이 하는 말이 인간적으로 나쁘지 않기 때문에 음행에 빠지고 있습니다,
거짓 선지자입니다,
그들이 하는 말이 좋습니다. 인간적으로 들으면 나쁜 말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다 율법을 지키라는 말입니다. 그 율법이 음행의 산물이기 때문에 그것을 예표로 하나님께서 바벨론의 포로가 되게 하셨습니다. 자기들이 바벨론의 포로가 안 된다고 한 것은 자기들이 음행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그들은 음행을 했습니다. 그 음행의 결과가 바벨론의 포로입니다, 누구로 인하여 그렇게 되었는가 하면 거짓 선지자들로 인하여 그렇게 되었고 제사장으로 인하여 그렇게 되었습니다, 백성들이 스스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거짓 선지자들이 그렇게 말을 하고 있고 제사장들이 그렇게 강요를 하니까 백성들이 생각해도 좋아서 율법을 지켰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이 음행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음행을 한 이스라엘을 바벨론의 포로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 시대도 음행을 하고 있는 모든 사람은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요한계시록을 통해서 사도 요한에게 환상으로 보여 주셨지만 자기들이 음행을 하고 있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왜 하지 않습니까?
거짓 선지자의 말에 속아서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어도 자기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어서 포로가 안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에서 포로가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포로가 되었다고 하면 포로가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들의 짐승들아 삼림 중의 짐승들아 다 와서 삼키라”
새번역입니다.
“들짐승들아, 와서 나의 백성을 잡아먹어라. 숲 속의 짐승들아, 와서 나의 백성을 삼켜라.”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은 모두가 짐승에 사로 잡혔습니다. 짐승이 이스라엘을 잡아먹었지만 이스라엘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율법 외에 나타난 한 의를 믿지를 않고 율법을 지켰습니다, 그런 그들이 다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간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벨론은 짐승입니다,
다니엘서에서도 우리가 보아서 잘 알겠지만 나라를 짐승으로 비유를 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구약의 나라는 짐승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다 영적인 의미가 있는 짐승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음행을 하고 있는 이스라엘이 요한계시록에서 나오는 짐승에게 잡혀 먹히는 것을 실제 바벨론이라는 나라를 통해서 육적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짐승입니다,
이스라엘을 다 잡아 먹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것이 이스라엘만의 문제냐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짐승에게 잡아먹히면 이 시대 역시 거의 모든 사람들이 다 짐승에게 잡아먹히고 있다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자기들이 짐승에게 잡아먹혀 있다는 것조차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모든 일은 다 성경말씀대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바벨론이라는 보이는 짐승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이스라엘은 그 이전에 짐승에게 사로 잡혀 먹혔습니다, 그것을 육적으로 보여주시기 위해서 바벨론의 포로가 되게 하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요한계시록13:1절을 보면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면류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참람된 이름들이 있더라”
이스라엘은 짐승이 되었습니다,
요한계시록의 두 짐승 중에 첫 번째 짐승입니다, 그 짐승이 무엇인가 하면 바로 이스라엘입니다. 이스라엘은 음행을 해서 모두가 다 짐승에게 잡혀 먹혔습니다, 이사야의 말씀과 같이 들에 짐승들이 산림 중에 짐승들이 나와서 이스라엘을 다 잡아 먹었습니다.
사람들은 요한계시록의 짐승을 오해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먼저 짐승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음행을 함으로 해서 짐승에게 다 잡아먹히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음행을 했는가 하면 율법을 지킴으로 해서 음행을 했습니다. 율법을 지킨다는 것이 어떠하다는 것을 이 시대는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짐승에게 사로 잡혀 있는 사람들이 다 율법을 지킨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짐승입니다.
율법주의가 되어 있는 교회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율법으로 인하여 저주를 받는 교회를 하나님께서 짐승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실제 바벨론이라는 나라에 의해서 포로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짐승이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두 짐승입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 있는 두 교회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이스라엘이라는 짐승이고 다른 하나는 이방이라는 짐승입니다. 이 두 짐승에게 모든 사람이 잡혀 먹히고 있지만 사람들은 자기들이 다니고 있는 종교가 짐승이라는 것조차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짐승입니다.
그것이 무엇으로 사람들을 잡아먹고 있습니까? 교회 안에서 지키고 있는 율법으로 인하여 모두가 잡아먹히고 있습니다, 율법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 온다는 것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왜 망하고 어떠한 짐승에게 잡혀 먹혔는가를 성경을 보면서도 모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일로 치부하고 있습니다,
들에서 나온 짐승이 잡아먹고 있습니다, 숲에서 나온 짐승에 잡아먹고 있습니다, 어떤 짐승이 나왔는가 하면 율법을 지키게 하는 짐승이 나와서 사람들을 다 잡아 먹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이 짐승인지 왜 자기들이 잡아먹히고 있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왜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습니까?
그들이 죄를 우리보다 더 많이 지어서 포로가 되었습니까? 아니면 이 시대 교인들보다 믿음이 없어서 포로가 되었습니까? 이 시대 교인들보다 진심이 없어서 포로가 되었습니까? 이스라엘이 포로가 된 것은 짐승에게 절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이스라엘이 지키는 율법이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단입니다,
그가 짐승을 만들고 있습니다. 아니 이 세상에는 두 짐승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민이라고 택한 이스라엘이 짐승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주님이 오시고 난 후에 이방에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방의 교회도 역시 짐승에게 사로 잡혀서 모두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율법 중에 어느 한 가지라도 지키고 있다면 그는 짐승에게 잡아 먹혀 있는 자입니다, 이 세상에 그렇게 두 짐승이 있지만 사람들은 이 두 종교에 빠져 나오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유대교에 빠져 잡아먹히고 있고 이방의 교회는 기독교라는 종교에 빠져 잡아먹히고 있습니다,
짐승이 잡아먹기도 전에 스스로 그 입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모두가 짐승에게 경배를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짐승에게 어떻게 경배하는 가를 가르쳐 주고 있지만 성경을 보면서도 도무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짐승이 나와서 이스라엘을 다 잡아 먹은 것과 같이 이 시대 역시 짐승에게 다 잡아먹히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율법입니다,
이스라엘을 보시기 바랍니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율법을 지키지 않은 때가 있습니까? 그리고 이방의 교회를 보시기 바랍니다,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고 있는 그때에 벌써 율법주의자들이 교회 안에 들어왔다는 것을 갈라디아서를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짐승이 어떻게 잡아먹습니까?
율법을 지키게 함으로 해서 잡아먹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그 율법 때문에 모두가 사로 잡혀 갔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지만 모르고 있습니다, 바벨론이라는 짐승에게 사로 잡혀 가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짐승이 이스라엘을 다 잡아 먹었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보고도 이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 파숫군들은 소경이요 다 무지하며 벙어리 개라 능히 짖지 못하며 다 꿈꾸는 자요 누운 자요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니”
새번역입니다,
“백성을 지키는 파수꾼이라는 것들은 눈이 멀어서 살피지도 못한다. 지도자가 되어 망을 보라고 하였더니, 벙어리 개가 되어서 야수가 와도 짖지도 못한다. 기껏 한다는 것이 꿈이나 꾸고, 늘어지게 누워서 잠자기나 좋아한다.”
파수꾼은 소경입니다,
무엇에 대해서 소경입니까? 짐승이 무엇이라는 것을 볼 수 있는 눈이 감겨져 있는 소경이라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이 왜 망했는가 하면 그들을 파수하는 사람들이 다 소경이 되었기 때문에 짐승을 볼 수 없어서 짐승에게 잡혀 먹히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의 파수꾼들은 소경이 되어서 자기들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를 모르고 살았습니다,
마태복음15:14절을 보면
“그냥 두어라 저희는 소경이 되어 소경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하신대”
누구에게 하시는 말씀입니까?
외식하는 바리새인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들이 먹을 때 손을 씻지 않고 먹는다고 하면서 율법을 어긴다고 말을 하는 것을 들으시면서 그들에게 소경이 되어서 소경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져 죽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의 일을 모릅니다.
그리고 육의 일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면서 하나님을 헛되이 경배를 하고 있는 바리새인들에게 주님께서 소경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짐승이 무엇을 가지고 와서 이스라엘을 잡아먹는 줄을 모르고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그 외식하는 율법을 보고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어떻습니까?
이스라엘과 무엇이 다릅니까? 이스라엘이 먹을 때 손을 씻는 것과 이 시대 식사를 하기 전에 기도를 하는 것이 무엇이 다릅니까? 이스라엘은 외식이고 이 시대는 믿음입니까? 이스라엘은 불륜이고 자기들이 하는 것은 로맨스입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 바로 소경이라는 말씀입니다,
누가 그렇게 하고 있습니까?
목사들이 그렇게 하니까 모든 교인들이 다 따라하고 있습니다. 언제부터 식사를 하기 전에 기도를 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것이 외식이며 소경이 되어서 짐승에게 잡아먹히고 있는 행위라는 것을 모르고 이 시대 모든 교인들이 식사를 하기 전에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 설교를 보면 반대할 사람도 많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소경이 되어 있는 파수꾼이 누군가를 가르쳐 주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습니다,
바리새인은 소경입니다,
그러면 이 시대는 소경이 아닙니까? 그들이 손을 씻고 먹는 것과 이 시대 기도를 하고 먹는 것이 무엇이 다릅니까? 이렇게 소경이 되어서 잡아먹히고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소경이 되어서 소경을 인도하다가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외식을 하고 있습니까? 단 한 가지라도 모양이 나오고 있다면 그는 다 소경입니다, 율법에 눈이 가려져 참 빛을 못 보고 있는 소경이라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소경이 되어서 짐승에게 잡아먹힌 것과 같이 이 시대도 역시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4:18절을 보면
“저희 총명은 어두워지고 저희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저희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무지하여 벙어리 개입니다,
그들이 왜 무지합니까? 더러운 것과 깨끗한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짐승이 더러운 곳으로 미혹을 해서 다 더러움에 빠지게 하고 있지만 무지한 파수꾼들은 그것이 더러운 것인지 깨끗한 것인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이 시대 역시 더러운 것이 무엇이고 깨끗한 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내 의는 더럽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는 깨끗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 목사들이 어떻게 이야기를 합니까? 의롭고 선하게 성도로서 살라고 하면서 그 더러운 것을 행하면서 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 더러운 것으로 인하여 짐승에게 잡아먹히고 있지만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벙어리 개입니다,
개는 짐승이 오면 짖어야 합니다, 하지만 몰지각한 목자들은 짐승이 오는데도 짖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짐승이 무엇인가를 모르기 때문에 그 짐승을 보고도 짖지를 않고 있습니다, 이 시대도 역시 모두가 짐승에게 잡혀 먹히고 있지만 짖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종교가 거대한 짐승이 되어 있는데도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잠언 6:9절을 보면
“게으른 자여 네가 어느 때까지 눕겠느냐 네가 어느 때에 잠이 깨어 일어나겠느냐”
꿈을 꾸고 있습니다,
잠을 자고 있습니다, 게으른 자여 네가 어느 때까지 눕겠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 빛을 비춰주시고 있지만 어두움에 있는 이스라엘은 게을러서 잠만 자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무엇이 잠자기를 좋아하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새벽부터 떠듭니다,
새벽 마다 일찍 일어나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 자기를 보면서 마치 깨어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라는 말씀은 육체적으로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보기를 거절하고 있는 이스라엘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두움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자는 아직 잠자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 시대 어느 교회가 율법을 안 지키고 있습니까?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 새벽부터 일어나 기도를 하고 있는 것이 이 시대 교인들의 모습입니다, 실상은 그런 행위들이 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빛을 아직 못 보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참 빛입니다,
빛이 비추면 깨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잠을 잔다는 것은 아직 그에게 빛이 비추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지만 실상은 다 어두움에 있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사람은 실상은 다 어두움에 있어 잠을 자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게으른 종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교인들은 다 게으른 종입니다, 그런데 자기들이 새벽부터 일어나 기도를 하는 것을 보면서 깨어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니 잠자기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영의 일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지 육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모르고 그저 성경의 문자만을 보고 자기들이 깨어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잠자는 자입니다.
참 빛이 아직 비추지 않고 있기 때문에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율법주의에 빠져 짐승에게 잡아먹힌 것과 같이 이 시대 역시 율법을 지키면서 짐승에게 경배를 하고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 개들은 탐욕이 심하여 족한 줄을 알지 못하는 자요 그들은 몰각한 목자들이라 다 자기 길로 돌이키며 어디 있는 자이든지 자기 이만 도모하며”
새번역입니다,
“지도자라는 것들은 굶주린 개처럼 그렇게 먹고도 만족할 줄을 모른다. 백성을 지키는 지도자가 되어서도 분별력이 없다. 모두들 저 좋을 대로만 하고 저마다 제 배만 채운다.”
개들입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입니다, 이 시대 목사들입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을 주님께서 개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개들이 탐욕이 심하여 족한 줄을 알지 못하는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개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시편 22:16절을 보면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누가 주님을 에워쌌습니까? 이스라엘의 바리새인들이 주님을 에워쌌습니다, 그들이 누구입니까? 율법을 지키는 바리새인들입니다. 주님의 원수가 바로 율법을 지키는 바리새인이라는 것을 성경을 보고도 모릅니다, 이 개들이 누군가 하면 율법을 지키는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입니다,
그리고 율법의 의입니다, 교회 안에서 이 두 의가 싸우고 있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얼마나 율법주의에 빠졌는가를 모르고 있고 이 시대는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아니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을 보고도 그것을 믿음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개들이 되어서 율법을 지키고 있으면서도 믿음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개들입니다,
그들은 율법주의자들입니다, 그들이 얼마나 탐욕이 있었는가를 우리가 복음서를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흠 없는 율법의 의를 가질 정도로 탐욕을 부렸습니다, 족한 줄을 모를 정도로 탐욕을 부려서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호화로이 연락을 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안에 얼마나 많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그 개들은 점점 더 많은 율법을 지키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정통이라고 하는 모든 교회에서 많은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는 율법을 지키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모두가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다 자기 길로 돌이켰습니다,
주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몰지각한 목자들은 다 자기 길로 갔습니다, 자기 길이 무엇인가 하면 자기 스스로 율법을 지켜서 의롭다 함을 받으려고 했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더욱 더 율법주의로 빠져 들어갔습니다,
목사들입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 그렇게 했습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성경은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일들이 이 시대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말씀을 보고도 마치 이스라엘의 일로만 치부를 하고 있습니다, 실상은 이스라엘보다 더 심하게 자기 길로 가고 있으면서도 도무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자기 이만 도모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의를 가지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하면 율법을 잘 지킬까를 도모했습니다, 성막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려고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율법을 잘 지켜서 구원을 받으려고 했습니다,
“피차 이르기를 오라 내가 포도주를 가져오리라 우리가 독주를 잔뜩 먹자 내일도 오늘같이 또 크게 넘치리라 하느니라”
새번역입니다.
“그 도적들이 입은 살아서 "오너라, 우리가 술을 가져 올 터이니, 독한 것으로 취하도록 마시자. 내일도 오늘처럼 마시자. 아니, 더 실컷 마시자" 하는구나.”
개들입니다
그리고 도적입니다, 우리가 술을 가져 올 테니 독한 것으로 취하도록 마시자고 합니다, 내일도 오늘처럼 마시자 실컷 마시자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 술이 무엇입니까? 모든 성경은 율법과의 싸움입니다, 로마서에서 율법은 진노를 이룬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요한계시록에서는 진노의 포도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목자들입니다,
이 시대 목사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목자들만 그렇게 해서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을 당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육적으로 멸망을 한 것은 이 시대 영적으로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율법주의에 빠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거의 모든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와 율법과의 싸움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개가 되어서 탐욕을 부리면서 율법을 지키는 것을 좋아하다가 흠 없는 율법의 의를 가졌고 그것으로 인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땅에 오셨지만 그들은 영접할 수 없었습니다, 이 시대도 율법을 지키는 사람은 그가 아무리 교회 안에 있다 해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단 한 가지입니다,
많은 율법이 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지키고 있는 단 한 가지의 율법을 보고 하나님께서 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단 한 가지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이 시대도 수많은 율법들을 지키고 있지만 그것이 율법이라는 것조차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이스라엘은 613가지를 다 지키려고 탐욕을 부렸습니다, 이 시대는 자기들이 정한 율법을 지키려고 탐욕을 부리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 시대 역시 100여 가지가 넘는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것을 율법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고 말도 안 되는 믿음이라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목사들입니다,
그들에 의해서 교회는 율법주의가 되고 있습니다. 그 율법주의에 빠지는 순간 짐승에게 잡혀 먹힌다는 것을 이사야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짐승에게 잡혀 먹히지 않으려면 반드시 율법을 지키지 말아야 합니다, 하지만 짐승에게 경배하는 것이 율법이라는 것을 모르고 무지하여 율법을 지키는 것에 탐욕을 부리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율법의 단 한 가지라도 지키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받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 외에 나타난 한 의를 믿음으로 내 안에 새 생명이 탄생이 되고 있습니다, 그 생명 가운데 거하는 성도가 되어서 구원을 받아 천국에서 모든 축복을 누리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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