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너희는 귀를 기울리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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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 모형 - 가나안

윤주만목사 2017. 11. 2. 21:54


로마서10:16-17절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저희가 듣지 아니하였느뇨 그렇지 아니하다 그 소리가 온 땅에 퍼졌고 그 말씀이 땅끝까지 이르렀도다 하였느니라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10:17)고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어야 믿음이 난다고 말씀합니다. 너무도 중요한 말씀이지만 사람들은 쉽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반드시 들음에서 난다고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어떤 말씀을 들어야 합니까?

반드시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어야 믿음이 난다고 성경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물론 성경은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기록한 말씀이라는 것을 이미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성경이 내게 대해서 기록했다(5:39)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있습니까?

아마 교회에 다니는 모든 사람들은 자기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있다고 주장을 할 것입니다. 한 사람도 이것에 대해서 의심을 하시지 않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말씀을 듣고 있다고 말 합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은 어려서부터 성경을 보았고 자기 조상 대대로 하나님을 믿어 왔습니다. 그런 그들이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못하고 오히려 대적을 하고 심지어는 십자가에 못 박아서 죽였겠습니까? 구약 성경도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기록한 말씀인데 그들은 예수를 안 믿었습니다.

 

예수 믿습니까?

교회에 다니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질문을 하면 오히려 이상하게 생각을 하고 자기를 무시한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솔직히 말씀을 드려서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있습니다. 왜 믿지를 않느냐면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을 듣지를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은 다 자기들이 예수를 믿는다고 할 것입니다.

이것에 대해서 어느 누구도 의심을 가질 필요도 없고 그것에 대해서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을 오히려 이상하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결론 적으로 말씀을 드리면 지금 한국교회는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겉으로는 믿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믿음의 비밀을 모르고 있습니다. 분명히 표면적으로는 예수 믿는 사람들이 맞지만 그들은 믿음의 말씀을 듣고 있지를 않고 있기 때문에 믿음의 비밀을 모르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정말 아무리 강조를 해도 지나치지가 않습니다. 여러분이 평생 예수에 대한 말씀만 듣는다면 복 있는 성도라고 저는 감히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예수에 대한 말씀을 듣기가 너무도 힘이 듭니다. 예수를 믿으라고 하지만 예수에 대해서는 전혀 가르치지를 않고 있는 것이 교회의 모습입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입니다.

여러분이 이 외에 말씀을 듣고 있다면 그것은 천국에 들어가는 일에 있어서 실패할 가능성이 매우 너무 높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천국에 들어가고 싶다면 다른 것은 안 들어도 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만 들어도 된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제가 조금 극단적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 세상을 사는 동안 아무 것도 안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을 들을 수 있다면 여러분은 분명히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믿음을 얻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믿음은 오직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을 들었을 때만 생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누구를 믿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영생을 얻는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교회 안에 있습니까? 어린 아이들도 압니다. 왜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을 들어야 하는 가를 잘 아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모르면 믿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맹목적이 아닙니다.

그것은 샤머니즘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믿고 싶다면 그 대상에 대해서 바로 알아야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모르면서 믿는다고 하는 것은 그것은 자기가 믿고 싶은 것일 뿐입니다. 자기 필요에 의해서 믿고 싶은 것이지 믿음이 아닙니다.

 

베드로후서 3:18절을 보겠습니다.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저에게 있을지어다

 

이스라엘이 왜 실패를 했습니까?

그들은 어려서부터 성경을 보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 자라가지를 못 했습니다. 성경은 보았고 또 신앙생활은 아주 열심을 다 해서 했고 하나님을 믿었지만 정작 중요한 것을 모르고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천국 가는 길입니다.

다른 길을 찾으려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으로 자라가지 못 한다면 절대로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를 다닙니까?

그리고 그 안에서 늘 말씀을 듣고 성경을 공부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이스라엘도 여러분보다 더 잘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성경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 했습니다. 지금 이 시대 교회에서 말씀을 듣고 성경을 공부를 하고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자식에서는 어린아이보다도 못 합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성경 말씀을 설교로 듣고 그 말씀을 본다고 예수를 아는 지식으로 자라간다고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시적인 언어입니다. 시라는 것은 메타포를 감추어 두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을 본다고 해서 예수가 그대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그 메타포를 찾아야 예수를 아는 지식으로 자라갈 수 있습니다.

 

예수를 보아야 합니다.

성경을 보면서도 예수 그리스도가 안 보인다면 그는 믿음이 없다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최소한 예수에 대해서 바로 알아야 믿을 수 있는 것 아닙니까? 모르면서 어떻게 믿습니까? 막연하게 다른 사람들이 믿으니까 나도 믿는다는 것은 너무도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교회는 광야입니다.

구원의 방주가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교회에 나왔으면 이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으로 자라가서 우리가 소원하는 천국에 들어가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간 것 같이 우리는 그들을 경계로 삼아 천국에 들어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구약과 신약으로 되어 있습니다.

구약은 하나님께서 옛 사람들과 하신 약속이 구약입니다. 신약은 새 사람들과의 약속입니다. 구약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들에게 하신 약속이며, 신약은 온 세상 사람들과의 약속입니다.

 

구약은 무엇이고 신약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구약은 그림자요 신약은 실체입니다. 구약은 설계도요 신약은 실재되어진 건물입니다. 구약의 믿음을 통해서 신약의 믿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 구약을 바로 알아야 신약이 바로 보입니다. 그림자를 통해서 희미하게 보였던 것이 실체를 봄으로 해서 아! 그래 이제 바로 보이는 구나 실체를 분별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설계도대로 지어진 집은 잘 지어진 집입니다.

설계도대로 집을 짓지 않으면 그 집은 부실공사가 되어 준공검사가 나오지 않습니다. 구약의 모형의 믿음을 통해서 그 믿음을 바로 알게 됨으로서 잘 믿을 수가 있습니다. 구약에 대해 바른 것을 들으면 신약에서 어떻게 믿어야 하는가를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가나안은 천국의 모형입니다.

이스라엘백성이 애굽에서 출발하여 가나안땅에 들어 간 것은 오늘 우리가 세상에서 나와서 교회에서 신앙생활 하다가 천국에 들어가는 모형과 같습니다. 이스라엘백성이 홍해를 건너서 광야에서 생활하다가 요단강을 건너서 가나안 땅에 들어갑니다. 이것은 구약에 이스라엘백성이 실제 가나안으로 들어간 사실입니다.

 

우리에게도 그렇게 모형이 주어지고 있습니다.

신약에 우리는 세상에서 나와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구약 이스라엘 백성을 통해서 배워야 합니다. 그들의 애굽 그리고 광야 가나안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왜 배워야 하겠습니까?

이스라엘백성이 애굽에서 나와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데 중간에서 들어가지 못하고 죽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모형을 보고 우리는 그들과 같이 광야에서 죽는 자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이스라엘이 왜 죽었는가를 바로 알아야 내가 교회에 나와서 죽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광야 생활은 모형입니다.

그들만의 실패가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도 역시 그들과 같이 실패를 할 수 있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너무도 안일하게 생활을 하고 있고 마치 그 실패는 이스라엘만의 실패인 것으로 치부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은 아주 잘 하고 있어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막연하게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0:6-11절을 보겠습니다.

그런 일은 우리의 거울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저희가 악을 즐겨한 것같이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저희 중에 어떤 이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 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간음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간음하지 말자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시험하지 말자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

 

이스라엘의 광야 생활입니다.

그들이 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못 들어갔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교회 안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도 똑같이 행할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

 

거울이 무엇입니까?

우리도 그들과 똑같이 그렇게 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은 육적으로 이런 일들을 했지만 지금 이 시대는 영적으로 이런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육입니다.

그 육을 보고 그대로 안하려고 한다면 정말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그렇다면 역시 이스라엘과 똑같이 망하고 말 것입니다. 그들의 육을 통해서 우리의 영의 일을 경계를 해 주고 있지만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고 이 시대가 이스라엘과 같이 그렇게 망해가고 있습니다.

 

교회는 광야입니다.

반드시 천국에 들어가야 하는 여정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이 이스라엘이 했던 것을 그대로 답습을 하고 있습니다.

 

악을 즐겨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상 숭배를 하고 있습니다. 간음을 하고 있고 하나님을 시험을 하고 있고 또 원망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씀들을 영적으로 깨닫지 못하고 있고 자기가 육적으로 우상숭배를 안 하고 간음을 안 하고 시험을 안 하고 원망을 안 하는 것으로 자기가 믿음이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육적으로 안 하고 있습니까?

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었다면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었겠지만 영의 이스라엘인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는 데는 문제가 됩니다. 아니 그런 것을 육적으로 안 한다고 해서 절대로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림자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그 그림자를 실체로 보고 있고 그것을 자기 육체로 안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우상숭배, 시험, 간음, 원망이 무엇인가를 실체를 모르기 때문에 역시 우상숭배를 하고 있고 간음을 하고 있고 시험을 하고 있고 원망을 하고 있습니다.

 

모르면 죽습니다.

광야에서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은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나와서 교회에 다니다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은 사람과 마찬 가지입니다. 이스라엘백성이 애굽에서 나와서 가나안땅에 들어 간 것은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는 모형이자 설계도입니다.

 

그림자를 그림자로 보시기 바랍니다.

그림자가 무엇인가를 모릅니까? 그림자가 사람으로 보인다고 그것을 사람이라고 합니까? 그림자는 사람으로 보일지라도 그 실체는 나무가 될 수 있습니다. 아니 또 어떤 돌멩이가 될 수도 있는 것이 그림자입니다.

 

우상숭배가 부처 같은 우상을 섬기는 것입니까?

 

로마서1 :23절을 보겠습니다.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사람과 금수의 영광과 바꾼 것이 우상숭배입니다.

구약에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우상 숭배를 한 것이 지금 이 시대는 어떻게 하고 있느냐면 사람이 우상이 되고 있고 금수와 버러지가 우상이 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누가 우상입니까?

목사가 우상이 되고 있고 교회가 우상이 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사람의 행한 영광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있는데도 그것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한 일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간증하느라 정신이 팔려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 마치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 줄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우상이 되어 자기가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고 이스라엘이 육적으로 우상 숭배를 한 것을 이 시대도 역시 그렇게 우상 숭배를 즐겨하고 있습니다.

 

깨어 있으시기 바랍니다.

구약 당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왜 못 들어갔는가를 깨닫는 것은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느냐 못 들어가느냐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림자를 통해서 그것을 경계로 삼아 실체가 무엇인가를 바로 깨달아야 이스라엘과 같이 광야에서 죽는 불행한 일을 안 당할 수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왜 가나안에 못 들어갔을까 라는 문제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스라엘백성이 애굽에서 나와서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이 천국 가는 것과 같은 모형과 그림자라면 세상 사람들이 나와서 교회 안으로 들어옵니다. 교회에 들어와서 세례를 받고 성도로서 이름이 올라갑니다.

 

이스라엘백성들도 광야로 들어갈 때 세례를 받았습니다.

 

고린도전서 10:1-2절을 보겠습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모형과 그림자라는 말이 이해가 되십니까?

우리는 이스라엘백성이 할례만 받은 줄 알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넌 것은 세례 받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였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냥 홍해를 건너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세례 받는 것과 같이 모형과 그림자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았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애굽에서 나와서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광야로 들어 왔습니다. 광야로 들어와서 사는 것은 우리가 세례 받고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면 교회 안에서도 신앙생활 하다가 천국 못 들어가는 사람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어떤 사람이 천국에 들어가고 어떤 사람이 천국에 못 들어가는지를 보겠습니다.

 

교회에 나와서 세례를 받습니다.

그런 의식을 통해서 마치 자기가 구원을 받은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실제 구약의 그림자에서도 세례를 받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광야라는 교회에서 죽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 사람들이 어떻게 해서 가나안에 못 들어갔는지를 살펴보면 우리가 천국에 들어 가냐 못 들어 가냐를 깨닫게 됩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광야로 나올 때에 억지로 나왔습니까? 스스로 나왔습니까?

 

출애굽기 14:12절을 보겠습니다.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고한 말이 이것이 아니뇨 이르기를 우리를 버려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뇨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그들은 억지로 나왔습니다.

우리를 버려두라 우리는 안가겠다 왜 우리가 광야로 들어가야 하느냐면서 안가겠다고 하는데 하나님께서 억지로 끌어냈습니다. 사실 400년 이상을 살던 땅에서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 나온 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억지로 하시는 분입니까? 자의로 하기를 원하십니까?

에덴에서 선악과를 만들어 놓으시고 사람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그런 하나님께서 왜 이스라엘백성을 애굽에서 강제로 끌어 내셨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자유의지를 주시고 선택하도록 하신 분인데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에덴에서 죄를 안진 사람에게도 강제로 하기를 원하시지 않으셨는데 세상에서 죄를 진 백성들에게 강권을 쓰셨겠습니까? 그 이유를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서 믿음이 무엇인가를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창세기 15:13-14절을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이방에서 객이 될 것이며 4백년 만에 나올 것이라고 약속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입니다. 너의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살다가 4백년이 지나면 재물을 이끌고 나올 것이라는 하나님의 예언적인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 강권적으로 하신 것은 4백년이 되어서 이스라엘백성이 나와야하는데 안 나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백성이 안 나오면 누가 답답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답답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약속을 했는데 이스라엘 백성이 안 나오면 하나님 스스로 문제가 생깁니다. 이스라엘을 나가게 하시려고 어려움을 주고 힘든 일을 하게 만들었는데도 그들이 안 나오는 것입니다. 심한노동을 하게 해도 안 나오니까 남자 아기가 태어나면 다 죽이도록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안 나오는 것입니다.

남자가 태어나는 대로 죽이면 몇 십 년만 지나면 그 종족이 멸종될 것입니다. 애굽에서 계속해서 살면 씨가 멸종될 텐데도 안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이행하시려고 어쩔 수 없이 이스라엘을 강제로라도 끌어 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약속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약속이 안 되어 있었다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절대적으로 강제로 끌어내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출애굽기 12:40-41절을 보겠습니다.

사백 삼십년이 마치는 그 날에 여호와의 군대가 다 애굽 땅에서 나왔은즉 이 밤은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심을 인하여 여호와 앞에 지킬 것이니 이는 여호와의 밤이라 이스라엘 자손이 다 대대로 지킬 것이니라

 

4백 년 만에 나오리라 하셨는데 그들이 안 나와서 30년이 더 지나갔습니다.

30년이 더 지나가니까 하나님께서 편히 계실수가 없습니다. 약속을 하고 안 지키면 누가 잘못하는 것입니까? 왜 성경에서 언약에 대해서 그렇게 중요하게 말씀을 하고 있는 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약속입니다.

그 약속이 이루어 진 것을 우리가 보고 이 시대 사람들이 앞으로 남아 있는 단 한가지의 약속을 믿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비록 아브라함에게 일방적으로 언약을 하셨지만 그 언약을 이루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하신 언약이 어떻게 이루어진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시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안 나오는 것은 사람 책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잘못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것을 변절 시키는 분이 아닙니다. 한번 약속 하신 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하시는 분입니다. 약속을 했는데도 이스라엘이 안 나오니까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강권적으로 끌어냈습니다.

모세를 보내서 애굽 사람들에게 재앙을 내림으로 그들이 재앙을 받는 것을 보고 나오도록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나올 수밖에 없게 만드시고 그들을 애굽에서 나오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백성이 왜 안 나왔을까요?

사람들은 가나안에 들어가면 좋은데 왜 그들이 안 나왔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애굽의 고센 땅은 참으로 좋은 땅입니다. 4백년을 살면서 몇 대를 거치면서 그곳에 기반이 잘 잡혔습니다. 자기들이 수백 년을 공들여서 건축하고 또 그 땅은 애굽에서도 제일 좋은 땅입니다.

 

이렇게 생각을 하면 됩니다.

만약에 지금 북한이 어느 정도 살기가 괜찮다면 그들이 탈북을 하겠습니까? 탈북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은 북한이 너무 경제적으로 나빠졌고 거기에 있다 보면 굶어 죽게 되니까 목숨을 걸고서라도 나오는 것입니다. 만약 먹을 것이 해결이 되면 절대로 탈북을 하지 않습니다.

 

남쪽은 이방과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같은 동족이 살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여기는 생면부지의 사람들이고 남쪽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쉽게 나올 수 없습니다. 더구나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나와야 합니다. 하지만 고통이 심해지니까 죽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을 하고 나오고 있습니다.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입니다.

애굽을 나가게 되면 광야 길을 가야하고 또 가나안에 지금 거주하는 사람들과 전쟁도 해야 합니다. 가나안에 가는 것 보다는 애굽에서 그냥 사는 게 좋았습니다. 힘은 들더라도 그래도 애굽이 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안 나오려는 것을 하나님께서 강제적으로 끌어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에서 기반이 잡힌 사람들은 예수를 안 믿으려 합니다. 광야생활은 교회생활과 같습니다. 그럼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직업은 무엇입니까? 광야는 말 그대로 사막입니다.

 

광야는 고생입니다.

집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풍족한 것도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원망을 할 때 애굽에서 있던 것을 추억하면서 하나님을 원망을 하다가 진노를 받았습니다.

 

교회를 오해하고 있습니다.

지금 한국 교회는 너무도 기복주위에 빠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치 교회에 나오면 모든 것이 다 해결이 되고 자기들이 평안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사실 편안했던 것이 절대 아닙니다.

 

그들은 당장 먹을 것과 마실 물이 없었습니다.

광야는 사막입니다. 그 자리에서 정착을 해서 농사를 짓는 것이 아니라 이동을 해서 가나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물과 먹을 것을 주시지 않으면 자기들 스스로는 구할 수 없는 곳이 광야라는 것을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 광야를 마치 가나안으로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자기들의 육적인 것을 하나님을 이용해서 채우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광야에 나온 목적이 무엇인가를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오히려 광야에 안주를 하려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6:48-50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다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이는 하늘로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만나도 하늘에서 내렸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만나를 먹고도 광야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너무도 중요한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늘에서 내러주는 만나를 먹고도 광야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왜 죽었습니까?

그들은 믿지를 않았기 때문에 죽었습니다. 육적으로는 하늘로부터 내려주는 만나를 먹고 배가 불렀을지 몰라도 생명의 떡을 먹지를 못했기 때문에 죽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그때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알고 먹을 수 있겠느냐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성막을 짓게 하셨습니다. 육적으로는 분명히 하늘로부터 내려주는 만나를 먹고 살았지만 그들의 영의 양식을 먹지를 못했기 때문에 죽었습니다.

 

예수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성막을 통해서 충분히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모형을 가르쳐 주었는데도 그들은 믿음을 몰랐고 또 그 성막을 왜 짓는 가에 대해서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모세를 통해 성막을 지으라고 하니까 그 모형을 만들어서 제사를 드리는데 급급했습니다.

 

성막을 어디서 만들었습니까?

광야라는 교회에서 이미 이스라엘에 예수 그리스도를 주셨는데도 이스라엘은 그것에 대해서 전혀 깨닫지를 못 했습니다. 사실 그들에게 있어 가나안은 그저 자기들이 육적으로 살아야 하는 땅에 불과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가나안이 어떤 곳인가를 가르쳐 주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몰랐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교회에 나와서 어떻게 가나안에 들어가야 하는 가를 모르고 있다면 그는 정말로 불행한 자입니다. 이미 이스라엘을 통해서 다 그 모형을 가르쳐 주고 있는데도 깨닫지 못한다면 이스라엘 보다 더 큰 저주를 받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만나를 주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만나를 먹으면서도 그것이 무엇인가를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었고 그저 자기들의 육적인 배가 부르는 것에 만족을 했습니다. 지금도 교회에 나와 있으면서도 이스라엘과 같이 그렇게 자기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구하면 다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이 갈증이 나서 물이 필요할 때 그들에게 물을 주셨고 또 배가 고파 했을 때 만나를 내려 주셨고 고기가 먹고 싶을 때 메추라기를 보내 주셔서 고기를 먹게 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구하기도 전에 먼저 원망을 하고 시험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 알고 계십니다.

이스라엘을 광야에서 그냥 죽게 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언약을 이루시려면 반드시 그들에게 물을 주어야 하고 먹을 것을 주어야 한다는 것을 다 알고 계셨지만 이스라엘은 그것을 구하기도 전에 먼저 원망과 불평을 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탐욕을 부렸습니다.

만나를 더 많이 먹기 위해서 욕심을 부렸고 또 메추라기를 더 많이 먹기 위해서 탐욕을 부렸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역시 그렇게 자기들의 육적인 것을 위해서 탐욕을 부리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셔서 가나안으로 데려 가실 텐데도 그것을 믿지를 못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