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너희는 귀를 기울리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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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

윤주만목사 2017. 11. 2. 07:19

민수기 6:22-27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여 이르되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찌니라 하라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찌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

 

()입니다.

이 시대는 복에 미쳐 있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물론 세상에서의 성공의 잣대가 되다 보니까 어떻게 하든지 복을 받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고 일단 복을 받고 나면 되는 것으로 다수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범죄도 합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범죄도 서슴지 않고 있고, 설령 그 범죄로 인하여 감옥에 간다 해도 별로 상관하지 않는 것이 지금 한국사회의 단면이라고 보면 맞을 것 같습니다.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면, 감옥에 가서 몇 년을 썩어도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실제 그런 일들이 많이 있고, 그 피해를 다수의 사람들이 당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한국 기독교는 기복주의가 너무 심합니다.

물론 이 세상에서 잘 사는 것은 누구나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러나 그 정도가 너무 심해서 진리가 훼손이 되고 있는데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돈을 더 많이 벌어서 하나님께 더 많이 드리는 것이 잘 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팽배해 있다 보니까, 기독교인들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에 집착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솔직히 이 시대 교회에서 돈이 없으면 사람 취급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교회라는 건물을 지어 놓고 그 건물을 유지해야 하고, 또 자기들이 행하고 있는 여러 가지 일들을 하려고 하다 보니까 돈이 많이 필요로 하고 있고, 그런 일들을 잘 해야 믿음이 좋은 것으로 생각을 하니까 교회에 더 많은 헌금을 하기 위해서 세상에 나가 정말 거지 같이 벌고 있습니다.

 

그렇게 벌어서 어떻게 합니까?

교회에다 바치고 그것을 하나님께 바친다고 착각을하고 있습니다. 복을 받기 위해서 더 많이 바치고 있고, 그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고 믿고 있습니다. 아니 자기들이 바치고 있는 헌금을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헌금을 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자기들에게 복을 더 주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십니까?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하는 헌금을 하나님께서 받으시지 않습니다. 성경 어디에 그것을 하나님께서 받으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제가 연보하는 것 자체를 반대하고자 이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자기들이 하고 있는 헌금을 하나님께서 받으시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안 받으십니다.

그럼 연보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분명히 복음을 전하려면 연보가 필요합니다. 그것을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하면서 이 세상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하나님께서 즐겨 내는 자를 기뻐하신다(고후9:7)고 하는 것이지,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과 같이 기복을 바라고 하는 헌금을 기뻐하시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그것이 기복과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특히 십일조는 복을 받기 위해서 하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자기들이 한 헌금을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고, 또 다시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기를 바라면서 헌금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십일조는 이 시대 교인들에게 있어 복을 받은 바로미터가 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돈 놓고 돈 먹기 하는 그런 십일조를 하는 사람은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그 십일조를 기복을 바라고 했든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했던 선교를 하기 위해서 했든, 아니면 목사들의 생계를 위해서 했든, 아니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해서 했든 그것은 기복주의에서 나온 악한 행위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다고 다 가하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문자적으로 보고 기록된 말씀대로 하는 것은 다 사단의 미혹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복을 잘하는 사람에게 더 주고, 못하는 사람에게 안 주고 하는 분입니까? 그런 하나님이라면 저는 안 믿겠습니다. 사람보다 못한 하나님을 무엇 하러 믿습니까?

 

복에 미쳐 있습니다.

그것이 어디에서 나온 것인 줄을 모르고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저 복을 받으면 다 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특히 목사가 자기들을 축복해 주는 것을 너무도 좋아하고 있습니다. 제가 가장 난감할 때가 바로 이 부분이기도 합니다.

 

저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저 목사라는 것만 알고 있는 사람들은 저와 교제를 하면 제가 복을 빌어 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실제 그런 일로 저에게 왜 축복을 빌어 주지 않느냐는 이야기를 직접 들은 적도 몇 번 있습니다. 그들의 생각에는 목사가 축복을 빌어주면 그것을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복을 주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참 안타깝습니다.

물론 시대가 그렇게 변했습니다. 하지만 성경이 무엇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는가를 알고 있다면 절대로 그런 요구를 하지도 않을 것이고, 또 목사들도 그런 기도를 해 주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목사들도 그렇고, 교인들도 역시 이 복을 위해서 살아가다 보니까 반드시 축복을 해 주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복을 받는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런 잘못된 믿음이 자기 영혼을 망하게 만들고 있지만, 사람들은 깨닫지를 못하고 이생의 복을 위해서라면 청산가리라도 먹으려 하고 있습니다. 실제 이생의 복을 위해서 헌금을 하는 행위는 영혼이 사망에 이른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지만, 이 시대는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전도서 5:18절을 보면

사람이 하나님의 주신 바 그 일평생에 먹고 마시며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 중에서 낙을 누리는 것이 선하고 아름다움을 내가 보았나니 이것이 그의 분복이로다

 

분복입니다.

이 세상에서 누리고 사는 복은 태어 날 때부터 타고난 복이지, 내가 교회에서 헌금을 많이 해서 받는 것이 절대로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 어디에도 하나님께 재물을 드린다고 해서 더 많은 복을 받는다는 말씀이 없습니다. 그런 말씀이 있다면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분복입니다. 그것을 가지고 자랑할 것도 없고 또 없다고 해서 하나님을 원망할 필요도 없습니다. 물론 이 세상을 살아가려면 힘이 든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재물이 없으면 얼마나 힘든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을 원망해서는 안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인생은 잠깐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이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에서 너희는 잠깐 보이다 사라지는 안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안개를 보아서 잘 알겠지만 안개가 끼었을 때는 그것의 실체를 느낄 수 있지만, 걷히고 나면 그것은 흔적초자 남아 있지를 않습니다.

 

안개입니다.

그런 안개가 조금 잘 살고 조금 못 살고 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내가 잘 살아도 그것이 하나님의 분복이기 때문에 그것으로 자랑을 해서는 안 되고, 또 설령 못 산다 해도 그것으로 자기를 비하해서도 안 됩니다. 정말 이 시대 기독교인들이 깨달아야 하는 것은 부자가 천국에 가기가 얼마나 어려운 가를 알아야 합니다.

 

재물의 부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의에 부자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것이라도 부자가 되면 사실 천국에 들어가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 보다 어렵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지금 가난하다고 하나님을 원망할 것이 아니라, 그것이 오히려 축복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꼭 재물만이 아닙니다.

어느 것으로도 부자가 되면 그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렵습니다. 물론 이 부자는 재물의 부자를 말씀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재물의 부자도 역시 자기가 누리고 있는 부로 인하여 진리를 깨닫기가 힘이 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복 너무 바라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생의 복을 바라는 사람은 이미 그 마음에 바알이 들어와 있기 때문에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을 감사함으로 받아야지 그것을 얻기 위해서 교회 안에서 기도를 한다든지, 또 헌금을 하는 행위는 스스로 망하는 길로 간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너무 기복주의에 물들어서 빠져 나오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진리는 사라졌습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사사기를 보면 그들이 얼마나 쉽게 하나님을 떠나 바알을 섬겼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사사기 전체가 이스라엘이 바알을 섬기면 하나님께서 징계를 하시고, 또 그들이 회개를 하면 사사를 보내 주시고 하는 것을 계속해서 반복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서 복 받는 것을 모두가 원합니다.

저 역시도 사람입니다. 그것을 마다할 사람이 없고 또 그것을 바라지 않을 사람이 없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복을 받기 위해서 그 복을 위해서 어떤 행위를 하고 있다면, 그는 더 이상 하나님을 믿는 성도라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의 복을 너무도 바라고 있고, 교회가 그것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성경에 그렇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고 기록이 되어 있다 보니까, 마치 이생의 복을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고, 그것을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 교회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이스라엘이 이생의 복을 위해서 바알을 섬겼던 것과 같이, 지금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이 이 바알에게 부속이 되어 있다 해도 절대로 틀린 말이 아닙니다.

 

누가 싫어하겠습니까?

그러나 우리 성도는 그것을 바래서는 안 됩니다. 아니 그것을 얻기 위해서 교회에 나와서 어떤 행위를 해서는 안 됩니다. 기도를 하는 순간 그는 그 기도로 인하여 사망에 이르게 되고 있고, 이생의 복을 위해서 헌금을 하거나 또 교회에서 어떤 행위를 하는 순간에, 그는 영혼이 망하게 된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깨달아야 천국을 얻을 수 있습니다.

 

분복을 인정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이 세상의 복을 얻기 위해서 수고하지 말라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성경을 연구하고 진리를 전해야 하는 목사는 그런 삶을 살아갈지라도 성도들은 이 세상에서 직업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이 사업체에서 그리고 직장에서 열심히 일을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고, 그것을 통해서 복을 누릴 수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분복입니다.

 

그러나 교회에서는 안 됩니다.

아니 신앙생활을 그렇게 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특히 이 시대 자기가 예수를 잘 믿어서 복을 받았다고 하는데, 그런 이야기는 정말 무식한 말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그가 아무리 잘 믿는다 해도 또 다른 분복을 주시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믿음과 분복은 다릅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생을 얻는 것과 이 세상에서 얻는 분복은 전혀 다른 일입니다. 만약에 그렇다면 지금 우리나라의 재벌들은 다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예수를 믿는 사람이 몇이나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까? 우리나라 최고의 부자들 10명을 생각해 보면 그들이 과연 예수를 믿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런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타 종교를 믿고 있는 사람들이 더 잘 살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의 분복이기 때문입니다. 진짜 믿음이 있는 성도는 아마도 재물의 복을 그렇게 많이 받지는 못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설령 있다 해도 그들은 종교인이지 성도라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도와 교회 안에 있는 종교인은 다르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부자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느 것으로도 부자가 되는 것은 곧 사망의 길로 간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거지 나사로와 부자의 비유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천국의 복을 받기 위해서 믿는 것이지, 이생의 복을 위해서 믿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사단은 이생의 복을 주면서 할 수만 있다면 모든 사람을 죽이려고 하는데, 사단이 주는 것을 받으면서 너무도 좋아하고 있는 것이 이 시대 교인들의 모습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여 이르되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누구입니까?

이스라엘의 제사장들입니다. 그 제사장들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을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구약은 그림자입니다. 그러니까 이 축복이 그림자라는 것을 먼저 이해를 하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제사장입니다.

그들은 누구를 대신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제사장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축복하시는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제사장들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서 축복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제사장들이 축복을 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이 축복을 한 대로 들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대제사장입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것은 다 예표입니다. 그것을 문자 그대로 보고 마치 이스라엘의 육적으로 축복을 한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면 그는 너무도 어리석고 성경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성경을 너무도 자의적으로 해석을 하고 있고, 문자 그대로를 보려고 하면서 제사장의 축복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또 한 가지가 있습니다.

이 시대 성도는 다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이 시대 성도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성도는 축복을 해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축복이 이 세상에 축복이 아니라, 하늘의 축복이라는 것을 먼저 이해를 하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영의 일입니다.

그것이 이스라엘의 육적인 축복처럼 보일지라도, 이 모든 축복은 영의 일에 있어서 축복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런 말씀들을 보면서 거의 모두가 이생의 축복을 바라고 있고, 목사들은 이생의 축복을 하는 것을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의미를 모르고 문자대로 하는 것은 곧 사망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단이 어떻게 미혹합니까?

성경에 있는 말씀을 가지고 미혹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을 죽이려면 다른 것으로는 죽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단은 성경에 있는 말씀을 가지고, 그대로 이용을 해서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그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게 해서 사망에 빠뜨리고 있다는 것을 이 시대는 너무 모르고 있고, 성경을 문자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문자는 육의 일입니다. 바로 이렇게 영의 일을 육의 일로 받아들이게 함으로 해서 사망에 빠뜨리고 있지만 그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정말 안타까운 것은 아무리 지혜가 있다고 하는 그 역시도 이 영의 일과 육의 일을 분별을 못 하고 있습니다.

 

새번역입니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말하여라. 그들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복을 빌 때에는 다음과 같이 빌라고 하여라.”

 

복을 빌어 주라고 합니다.

이것을 문자 그대로 보면 이생의 복을 빌어 주라고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이 시대 목사들이 자기가 제사장이나 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고, 또 이 시대 교인들은 자기들이 이스라엘이나 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목사들은 복을 빌어 주고 있고, 교인들은 목사들이 그렇게 복을 빌어 줘서 마치 자기들이 복을 받는 것으로 생각하면서 너무도 좋아하고 있습니다.

 

사단입니다.

사단은 이렇게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를 그대로 이용해서 미혹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는 그것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고는 있지만 소경이 되어서 이 세상의 초등학문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사단의 미혹에 다 넘어가고 있습니다.

 

복을 빌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니까 무조건 복을 빌면 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씀하고자 하는 뜻을 전혀 모른 체 그저 복을 빌면 되고, 이스라엘은 복을 받으면 되는 것으로 성경을 보고 지금 이 시대 목사들은 복을 빌어 주고 있고, 교인들은 그 복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점점 더 바알이 주는 복을 빌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 사람들도 알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보고 그렇게 하는 것은 이 세상에 어느 정도 지적인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 세상의 초등학문에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대로 행한다고 하면서 마치 하나님을 아주 잘 믿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성경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이 왜 망했는가를 알아야 하고, 또 왜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의 바리새인과 제사장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셨는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하지만 성경을 보면서도 아니 성경을 연구한다고 하는 그들이 말씀으로 미혹을 당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고, 다 사단에 의해서 망하는 길로 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생의 복이 아닙니다.

비록 이스라엘에게는 그것이 이생의 복이었을지라도 우리에게는 영의 일에 있어서 복이라는 것을 바로 보아야 합니다. 성경을 보고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면 소경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성경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성경을 이 세상의 이성적 지식으로 보려고 하는데서 심각한 문제가 있고, 또 지혜를 구하지 않고 있습니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이렇게 축복하라고 말씀합니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며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신다고 이스라엘에게 복을 빌어 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서 거의 다 문자적으로 보고, 아니 구약은 그림자라는 것을 모르고 이생의 복을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이생의 복입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아직까지 초등학문 아래 있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복을 주시고 있습니다. 그것은 실제로 이스라엘이 복을 받았지만 그들은 하나의 예표라는 것을 늘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마치 지금 이 시대 이스라엘과 같이 복을 받을 것으로 생각하고 성경을 보고 있다면 그는 망하는 자가 됩니다.

 

에베소서 1:3절을 보면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어느 복입니까?

이생의 복입니까? 하늘의 복입니까? 정말 안타까운 것은 이 시대 자기가 어느 복을 받아야 하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이 두 가지를 한꺼번에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생의 복을 받은 사람은 하늘의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물론 두 가지를 다 받을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성도는 어느 복을 받기를 원하는 가를 알아야 합니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십니다.

구약의 제사장들이 그렇게 이스라엘을 위해서 빌어 주었습니다. 그것을 신약에 와서 사도바울이 실체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을 주신다고, 사도 바울이 이 시대 제사장으로 빌어 주고 있습니다.

구약의 이스라엘이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아무리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다 해도 그렇게 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성도는 이생의 복을 빌고 있는 자가 아니라,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받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속한 육체의 사람인가 아니면 하늘의 속한 사람인가는 그가 무엇을 빌고 있는가를 보면 아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이생의 복이 아닙니다.

그리고 구약을 보면서 그것을 문자 그대로 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단이 얼마나 지혜로운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바로 이렇게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를 가지고 미혹을 하기 때문에, 교회 안에 있는 다수가 사망에 이르고 있으면서도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그저 교회 안에서 주여~ 주여~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늘에 속한 모든 복입니다.

그 복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고 그 하늘에 속한 모든 복이 얼마나 크다는 것을 성경의 여러 가지 비유를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내가 성도인가 아닌가는 내가 빌고 있는 복이 어디에 속한 것인가를 알면 됩니다.

 

데살로니가후서 3:3절을 보면

주는 미쁘사 너희를 굳게 하시고 악한 자에게서 지키시리라

 

우리를 지켜 주십니다.

주는 미쁘사 너희를 굳게 하시고 악한 자에게서 지켜 주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이 악한 자에게서 지켜 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모두가 악에서 빠져 나올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는데, 이 시대는 이 악한 자가 누구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악한 자가 누구입니까?

교회 안에 있지만 생명이 없는 자입니다. 교회 안에는 생명이 없는 자가 더 많이 있다는 것을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악한 자를 분별을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이성적 지식으로는 이 악한 자가 너무도 선하게 보이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악한 자라는 것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악한 자의 의해서 사망을 당하고 있습니다.

 

악한 자에게서 지켜 주셔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 역시 이 악한 자를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지극히 선하게 보이고 있는 그 사람이 악한 자라는 것을 모르고, 그 악한 자에게 거의 다 넘어가고 있습니다. 이 악한 자를 사람의 이성으로 분별할 수 있으면 좋은데, 이 악한 자가 참 선지자 같고 선하고 의롭게 보이기 때문에 분별이 안 되어 이 악한 자에 의해서 다 사망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악이 무엇입니까?

교회 안에서 행하고 있는 모든 선하고 의로운 일이 다 악입니다. 사람이 한 행위를 나타내고 그것을 자랑하는 자가 악한 자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이 악한 자를 도무지 모르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악한 자에게서 지켜 주셔야 한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빌지를 않고 있습니다.

 

주기도문을 보시기 바랍니다.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기도를 하라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이 의미를 모르고 그저 앵무새처럼 주기도문을 외우고 있습니다. 정말 주님께서 악한 자에게서 지켜 주시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진리를 알고 있는 성도들은 주님께서 이 악한 자에게서 지켜 주신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라지는 모릅니다.

이성적으로 볼 때 자기들이 악한 일을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이 기도를 왜 해야 하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내 스스로 악한 자에게서 지킬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지켜 주셔야 한다는 것을 모르고 기도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상대가 안됩니다.

악한 자에게서 지켜 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다 악한 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악한 자를 자기 지식으로 분별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서 지켜 주시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성도들은 주님께서 이렇게 지켜 주시고 있습니다. 자기가 얼마나 악에 빠져 있었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고, 악에서 지켜 주시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그 얼굴로 네게 비춰 주시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비춰 주시지 않으면 은혜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에게 이렇게 비춰 주시고 있지만, 그 빛에 거하지를 않고 있어서 주님이 주시는 은혜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4:6절을 보면

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

 

어두움에 있습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은 다 어두움에 있습니다. 이 어두움이 무엇인가 하면 바로 율법의 의입니다. 율법을 통해서 나타나고 있는 영광을 어두움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에서 빛이 어두움에 비추매 깨닫지 못하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춰 주셨습니다.

이 영광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입니다. 그 얼굴로 우리에게 비춰 주시고 있지만, 이 시대 역시 이스라엘과 같이 어두움을 더 사랑해서 이 빛에 비췸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빛이 우리에게 비췸으로 해서 우리가 구원을 얻고 있지만, 지금도 역시 이스라엘과 같이 어두움을 더 사랑해서 율법을 지키는데 모두가 빠져 있습니다.

 

은혜입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비춰 주신 것은 은혜입니다. 주님이 빛을 비춰 주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아직도 어두움에 있습니다. 그 말씀은 생명의 빛을 못 보고 율법을 따라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시대 교인들의 다수가 다 이 어두움의 율법을 행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비춰 주시고 있지만,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어두움을 더 사랑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찌니라 하라

 

다 영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다 육의 말씀으로 보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 얼굴을 네게로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제사장들이 이스라엘을 위해서 이렇게 빌어 주라고 하지만, 이 시대는 그 뜻을 모르다 보니까 그저 육적으로 문자에 사로잡혀서 빌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후서 3:16절을 보면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기를 원하노라 주는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하실지어다

 

이 세상의 평강입니까?

당시 초대 교회는 순교를 당하고 있었습니다. 정말 이 세상에 사는 것은 지옥과도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성도들에게 평강을 주심으로 해서, 그들이 하늘의 축복을 바라면서 이 세상에서 순교를 당할 수 있었습니다.

 

세상은 잠깐입니다.

그래서 우리 인생을 그림자라고 말씀을 하고 안개라고 합니다. 그런 인생이 이 세상의 평강을 누린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아니 설령 평생을 누린다 해도 그것은 잠깐입니다. 그런데 이 평강을 누리기를 원하면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늘의 평강을 주시기를 원하시고 있지만 땅의 것을 바라고 있습니다.

 

평강의 주입니다.

우리 주님은 평강의 주님입니다. 그래서 평강의 왕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그 평강을 주시기를 원하시고 있습니다. 이 시대 제사장이 누구입니까? 성도를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적 이스라엘인 교회에 이렇게 빌어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너무도 육에 빠져서 자기들이 빌어야 하는 것을 모르고 그저 정욕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찌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들이 나의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렇게 축복하면, 내가 친히 이스라엘 자손에게 복을 주겠다."”

 

제사장입니다.

그들이 나의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렇게 축복을 하면 내가 친히 이스라엘 자손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달리 빌어서는 안 되고 이렇게 빌어야 복을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어느 복을 주시겠다는 말씀입니까?

 

하늘의 복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 제사장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무엇을 빌어야 하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제사장이 복을 빌어 주어야 하나님께서 친히 복을 주실 수 있는데, 이 시대는 복을 빌어 주지를 않고 있습니다. 그저 이생의 복을 비는데 모두가 정신이 팔려서 자기가 받아야 하는 복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하늘의 복을 버리고 있습니다.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제사장이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이렇게 빌어 주셨습니다. 우리도 역시 이 시대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새로 들어오는 성도들에게 어떤 복을 빌어 주어야 하는 가를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들이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땅의 것이 아닙니다.

문자에 사로잡히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의 것을 구하는 자는 그리고 그것을 빌어 주는 자는 모두가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이생의 복을 받기 위해서 자기 영혼의 생명을 버리고 있습니다. 모두가 성경을 문자적으로 보고 있어서 소경이 되어 있기 때문에 하늘의 신령한 복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성경은 주님을 통해서 이 모든 복을 주신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를 믿는 성도는 이 복을 빌어주고 있고 또 이 복을 받고 있습니다.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받는 성도가 되어서,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에 천국에서 모든 축복을 누리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