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2:9절을 보겠습니다. (신 241쪽)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게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며”
진리는 의를 주고 있습니다.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의를 우리에게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의는 의를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의롭기 위해서 지키고 있는 율법이 의롭다 함을 주는 것이 아니라 율법으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진리를 좇는 사람이 몇이나 있었고 불의를 좇는 사람은 얼마나 있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예레미야 시대에 예루살렘이 멸망할 때 진리를 좇는 자가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하나님께서 이 성을 사해주시겠다고 했지만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진리의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이스라엘이 그랬다는 것을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안 믿었습니까? 그들은 한 번도 자기들이 하나님을 안 믿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진리를 좇지 않았다고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이방인들보다 지혜롭지 못해서 성경을 보고 율법주의에 빠졌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방의 교회 역시 율법주의에 빠져 헤어 나오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입니다
이미 그때부터 진리를 좇지 않고 불의를 좇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이 로마서를 보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로마서에 있는 교회만 그런 것이 아니라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 역시도 너무도 쉽게 율법주의에 빠져 들어가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싸움입니다.
진리와 불의의 싸움입니다. 두 가지를 비교를 해서 말씀을 하고 있으면 진리와 불의가 싸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다수의 사람들이 불의를 좇고 있다는 것을 비유로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어떻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그들이 율법을 잘 지켜야 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율법의 제3용도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미 목사가 되기 위해서 공부를 하는 신학에서부터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가 목사가 되어서 교회를 치리할 때 이 율법이 얼마나 유용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교회에 나와서 무엇을 하겠습니까? 진리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오직 불의를 어떻게 하면 좇게 할 수 있는가를 생각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표면적 유대인입니다
자기 육체로 그러니까 표면으로 나타나고 있는 율법을 지키는 일에 열심을 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면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는 말 한 마디를 하면 교인들은 아무 것도 모르고 도살장으로 끌려가듯이 뒤를 따라 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불의입니다
그것으로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다면 절대로 불의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율법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신학에서 배운 율법의 제3용도를 알고 있고 또 그것을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가르치다보니까 모두가 율법의 유용성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 율법이 노와 분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을 꿈에도 생각하지 않고 열심을 내서 지키고 있습니다.
성경은 두 가지 의의 싸움입니다.
아니 의롭다함을 받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의롭다 함을 받아야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이성은 율법을 잘 지키는 사람을 의롭다 하고 있습니다. 서로 상대적으로 비교를 하면서 속세를 떠나 절간이 들어가서 수행하는 사람을 의롭다 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이성에는 분명히 의롭습니다.
스님들이 절간에 들어가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깨달음에 이르기 위해서 정진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의롭다 하고 있습니다. 또 신부들이 수도원 같은 곳에 있으면서 성경만 보고 기도만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을 보면서 의롭다 하고 있고 심지어는 성인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상대적입니다
수도원에 있으면서 밖에 나오지 않는 신부는 그렇지 않은 신부와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의롭게 보입니다. 그래서 천주교 같은 곳에서는 그런 신부들을 아주 신앙이 높은 경지에 오른 사람들로 이야기를 하고 있고 그런 신부를 한번 면담하는 것을 가문의 영광으로까지 생각하고 있습니다.
분명이 의롭습니다.
이 시대 목사들과 비교를 하면 절간에 있는 스님이나 수도원에 있는 신부들이 의로워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은 거의 사람도 만나지를 않고 오직 기도와 깨달음을 위해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얼마나 의롭게 보이겠습니까? 그래서 불교나 천주교에 다니는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을 존경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이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그런 사람의 행위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젊은 나이에 수도원에 들어가 평생을 밖에 한 번도 나오지 않고 그 안에서 기도와 성경만 본 그 사람도 성경은 의롭지 못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조금 더 의롭다 하는 것이 아니라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같습니다.
그렇게 세상을 살아서 의롭다 함을 얻지 못 했습니다 세상에서 죄인으로 살다가 의롭다 함을 얻지 못 했습니다 성경은 이 둘을 똑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조금 더 의롭다고 한다면 당연히 할 수 있다면 우리는 수도원 같은 곳에 들어가 세상을 등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 일을 합니까?
자기들 나름대로는 의롭게 살기 위해서 그렇게 하고 있지만 실상은 다 불의를 좇고 있는 사람입니다 진리를 좇기 위해서 그렇게 살고 있는 그들이 도리어 불의를 좇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이성에는 그들은 정말 진리를 좇고 불의를 좇지 않는 사람과 같이 보입니다.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그가 젊은 나이에 수도원에 들어가 평생을 그 안에서 살다가 죽는다 해도 역시 그 육체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없습니다. 성경에서 복음을 보고 그 복음에서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그 의를 믿음으로 해서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성경에서 말씀하는 의입니다
율법으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의롭다 함을 얻게 하고 있습니다. 그 하나님의 의를 우리가 마음으로 믿어서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영이 탄생이 되고 그 영을 하나님께서 의롭다 하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영의 비밀을 모르면 사람은 의롭다 함을 받기 위해서 자연스럽게 불의를 좇게 되어 있습니다.
복음입니다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 의만이 우리가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세상 어느 종교도 국가도 이 복음을 이야기를 하지 않고 있고 불의를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성경을 보고 있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복음을 보는 것이 아니라 불의를 좇아가다가 하나님의 노와 분을 받고 있습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악한 일을 하는 모든 사람에게는, 먼저 유대 사람을 비롯하여 그리스 사람에게 이르기까지, 환난과 고통을 주실 것이요,”
진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일입니다 불의입니다 그것은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둘을 비교를 하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은 이 둘을 함께 가질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진리를 좇는 자는 불의를 하지 않고 있고 불의를 좇는 자는 진리에서 멀어져 있다는 말씀입니다
반드시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도 믿고 율법을 지키고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국어의 문법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은 깨달을 수 있습니다 진리를 좇는 성도는 율법을 안 지킵니다. 그러나 율법을 지키는 사람은 그가 아무리 교회 안에서 주여 주여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해도 그는 불의를 좇는 자라는 말씀입니다
불의를 좇는 사람입니다
누가 불의를 좇았습니까? 이스라엘이 불의를 좇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이 불의가 진리를 막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불의를 좇으면 진리를 믿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진리를 믿지 못하게 하는 것이 불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이 불의가 어떻게 됩니까?
사람들이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진리로 가는 것을 막고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성경이 두 가지를 비교로 해서 말씀을 할 때는 한 가지를 하면 한 가지는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진리를 좇으면 불의를 좇지 않고 불의를 좇으면 진리를 좇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진리를 좇아야 합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해서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불의가 진리를 막고 있습니다. 그렇게 불의가 진리를 막아서 의에 이르지 못하게 하면 그것이 악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악입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악을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악은 못되고 나빠서 인간의 도덕적 기준에 어긋나는 것을 악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 인간의 도덕적 기준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성경은 우리 인생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원을 받습니다.
그런데 그 구원을 방해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악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악을 말씀하기 위해서 사도 바울이 미리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아 하나님으로부터 노와 분노를 당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불의로 진리를 막아서 우리 인생들이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없게 하는 모든 것이 다 악이라는 말씀입니다
디모데전서 6:9-10절을 보겠습니다. (신 341쪽)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악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이 악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세상에서 말하는 사전적인 뜻만을 알고 있지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악이 무엇이라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악에 대해서 모르면 어떻게 되는가 하면 교회 안에서 평생을 악만 행하다가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으로 끝이 난다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노와 분으로 진노를 받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악에 대해서 문자적으로 명확하게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악에 대해서 어느 정도라도 문자적으로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다면 사람들이 악에 빠지는 것을 조금이라도 경계를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문자적으로 보아서는 이 악에 대해서 전혀 알 수 없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비유입니다
악에 대해서만은 모든 말씀이 다 비유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 악을 행하면서도 담대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악을 행하는 사람은 양심에 가책이라도 받고 자기가 악하다는 것을 어느 정도 인지를 하고 있지만 교회 안에 있는 악인은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악을 행하면서 도리어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고 담대하게 하고 있습니다.
악을 모르면 안 됩니다
우리는 진리를 아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악에 대해서 모르고 있다면 그가 알고 있는 진리라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진리를 알면 뭐 합니까? 그가 불의를 좇고 있다면 그가 알고 있다는 진리가 거짓으로 변하고 만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그것은 성도가 이 세상에서 선을 행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가 교회 안에서 행위로 악을 행하고 있다면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거짓이라는 말씀입니다 로마서에서 계속해서 사도 바울은 두 가지를 비교를 하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악을 행합니까?
그는 아무리 자기가 선을 행한다 해도 그가 하는 모든 것은 다 악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아니 그는 선이 무엇인지 악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는 사람입니다 솔직히 이 시대 목사들의 10%만 이 악에 대해서 바로 알고 있어도 한국 교회는 불의를 좇는 그런 교회가 되지 않았을 수 있고 아마도 이 선과 악에 대해서 치열한 싸움이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제까지의 신학자입니다
어느 누구도 이 악에 대해서 정의를 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물론 초대교회를 지나오면서 하나님께서 일부의 사람들에게 이 악에 대해서 깨닫게 해 주셨을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까지의 문서로 남겨져 있는 모든 책들을 보아도 악에 대해서 바로 전하고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여러분이 교회 안에서 아무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해도 악을 한 가지라도 행하고 있다면 그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는 아무 의미가 없고 그는 성경에서 말씀하는 악을 행하는 자가 되어서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에 환난과 곤고를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려서 지옥의 형벌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입니다
이 성경을 누가 보고 있습니까?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이미 벌써 초대 교회 안에 악을 행하는 자가 있었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니 이 시대 모든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악을 행할 것을 아시고 하나님께서 이 로마서를 기록하게 하셨지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과는 상관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악입니다
악을 행하는 사람은 그가 아무리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해도 환난과 곤고가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는 로마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 보낸 서신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악을 행한다는 말씀이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악을 행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부하려 하는 자들입니다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부자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교회 안에 들어오면 부자가 되고 싶어 합니다.
물질입니까?
우리가 사용하는 돈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성경은 영생에 대해서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꼭 집어서 비유라고 해야 비유가 아니라 거의 모든 말씀이 다 비유로 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부하려 하는 자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부자입니까?
주님께서 비유로 말씀을 하셨습니다. 한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를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한 부자는 어느 한 개인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를 대표하는 한 부자를 말씀을 하고 있고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대표해서 한 부자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이런 대표성을 모르면 풀어지지가 않게 되어 있습니다.
교회에 나옵니다.
누구나 부자가 되고 싶어 합니다. 이 시대는 바알까지 들어와서 물질의 축복까지 받고 싶어 하지만 그 이전에 누구라도 성경을 보면 부자가 되고 싶어 합니다. 무엇으로 부자가 되고 싶어 하는가 하면 율법으로 부자가 되고 싶어 합니다. 예수님 앞에 찾아온 부자 청년도 자기가 어려서부터 율법을 다 지켰다고 말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의 이성입니다
율법을 잘 지키는 사람이 하나님을 잘 믿는 것 같습니다. 아니 하나님을 잘 믿으려면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 사람의 이성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 이성을 가지고 성경을 보니까 사람들은 부자가 되고 싶어 합니다.
하나님을 잘 믿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믿음의 비밀을 모르니까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자기가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의 이성이 자리하고 고집을 부리니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돈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돈이 무엇입니까?
그것을 주님께서는 재물이라고 마태복음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재물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지키는 것을 돈을 사랑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돈입니다
그것은 재물입니다 그 재물이 무엇인가 하면 율법의 행위입니다 율법의 행위를 하는 사람은 그러니까 악을 행하는 사람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났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하지 말라고 사도 바울이 지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킵니까?
그는 돈을 사랑하는 자입니다 이스라엘이 어두움을 더 사랑해서 빛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믿음에서 떠나 돈을 사랑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아무리 그리스도편지를 통해서 말씀을 드려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비유입니다
이 시대는 성경의 비유를 받아들이지를 않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까 더욱 악이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전서에서 부하려 하는 자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악입니다
재물이 악이라는 말씀입니다 왜 재물이 악이 되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악이라고 하면 아마도 저를 이단이라고 공격할 사람도 많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을 지키는 행위가 악이 된다는 것을 모르면 여러분은 평생 교회 안에서 악만 행하다가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환난과 곤고를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부자가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일만 악의 뿌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됩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이 어떻게 부자가 되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십일조를 내고 있습니다. 그러면 십일조를 안 내는 사람에 비해서 그는 부자가 되어 있습니다. 아니 세상 사람에 비해서 부자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율법의 행위가 그렇습니다.
내가 식사를 할 때 기도를 합니다. 그러면 세상 사람들에 비해서 나는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과 같이 보입니다. 누가 부자입니까? 식사를 할 때 기도를 하는 사람과 기도를 하지 않는 사람 중에 누가 부자가 되겠습니까? 이 시대는 찬송과 기도에 거의 자기 혼을 빼앗기고 있다고 보아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찬송가를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렇지 않은 세상 사람과 비교를 해서 누가 부자가 되어 있습니까? 나는 믿음으로 한다는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이야기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믿음으로 했다는 것은 주님이 하셨다는 것과 같은 이야기입니다. 내가 하는 말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알고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지혜롭습니다.
악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지금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가 아니라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말씀하고 있는 악을 행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악을 행하면서도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3:2절을 보겠습니다. (신 304쪽)
“내가 너희에게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
비교입니다
두 가지를 가지고 말씀을 하고 있으면 비교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를 묻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지켜서 성령을 받았느냐 아니면 복음을 듣고 믿어서 받았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잘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성령을 받는 방법입니다 이 둘을 함께 해서는 절대로 성령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보아야 합니다. 비교를 할 때는 한 가지 방법은 받을 수 있고 한 가지 방법은 받을 수 없다는 말씀이며 이 두 가지를 함께 해서는 안 된다는 뜻도 포함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국어를 모르면서 성경을 본다는 것이 얼마나 무지한가를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성령이 내 안에 오시면 그리스도의 영이 탄생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구원을 받는 생명이 내 안에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 성령을 어떻게 받았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어떻게 받습니까?
복음을 듣고 믿어서 받습니다. 그러면 율법의 행위를 하면 절대로 성령을 받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성령을 받을 수 없게 해서 그리스도의 영이 탄생이 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악입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구원을 받아야 하는데 그것을 막고 있는 것이 있다면 그 모든 행위는 다 악이라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두 가지를 놓고 말씀하는 것은 비교입니다 두 가지를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말씀을 보아야 합니다. 율법도 지키고 듣고 믿을 수도 있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하나만 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시대 예수 그리스도도 믿고 율법도 지킨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습니까?
그 사람은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믿음이 있습니까? 그 사람은 율법을 지키지 않습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아서 성령으로 난 영이 있어야 구원을 받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를 묻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에 있는 성도들은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성령을 받아서 영이 탄생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율법을 지키면 어떻게 됩니까?
그는 믿음이 없는 사람이고 또 성령을 받지 못한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성령을 받지 못하게 하고 있고 또 그 성령으로 탄생이 되는 영이 있는 것을 못하게 하고 있는 것이 악이라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사람은 성령을 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할례 한 가지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할례는 율법 613가지의 대표성을 가지고 있는 율법입니다 할례를 행한다는 것은 율법을 지킨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주일을 지키고 있습니까? 예배를 종교적인 의식에 따라 드리고 있습니까? 다 할례를 받은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사람들과 같다는 말씀입니다
생명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내가 의로운 사람이 되어서 구원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아담인 내가 의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의 영이 거하게 되고 그 영이 의롭다는 말씀입니다 이 의는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의가 내게 임했습니다. 그런데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악입니까? 우리가 의롭다 함을 받지 못하게 하는 율법의 행위가 악이라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사람의 이성에는 이 율법의 행위가 의롭게 보여 지고 있습니다.
악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내가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이 선입니다 그러면 내가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없게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악이라는 말씀입니다 율법의 행위 아래 있는 자는 저주를 받습니다. 나를 저주 받게 하는 율법의 행위가 악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 시대 교회는 악을 행하는 자들로 넘쳐나고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를 하면서 복음을 믿지 못하게 하는 악을 행하고 있는 사람들로 넘쳐 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럼에도 자기가 악을 행하고 있는지 선을 행하고 있는지를 모르고 그저 종교라는 거대한 짐승에 포승으로 묶여 있습니다.
골로새서 2:14절을 보겠습니다. (신 326쪽)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악입니다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그대로 행하는 것이 악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해서 우리로 저주를 받게 하는 율법을 십자가에서 제하여 버리셨는데 이 시대는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악을 행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를 구원받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악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일이 어떠한 일이라는 것을 모르고 이 시대는 악을 행하고 있습니다. 이 율법의 문제가 해결이 안 되어 있는 사람은 결국 정도의 차이겠지만 평생 교회 안에서 악만 행하다가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에 맹렬한 진노를 받게 된다는 것을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대적입니다
의문에 쓴 증서가 대적입니다 그것을 에베소서에서는 의문에 쓴 계명의 율법을 십자가에서 폐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시대는 십자가에서 폐하신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일을 믿지 않고 율법을 지키는 일이 악한 행위라는 것을 모릅니다.
세상의 지식입니다
누가 악한 자입니까? 율법을 지키는 자가 악한 자입니까? 율법을 지키지 않은 자가 악한 자입니까? 세상의 이성으로는 백번 이야기를 해도 율법을 지키지 않는 자가 악한 자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일을 믿지 않겠다는 표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
아니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자가 아니면 이 믿음의 비밀을 모르게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악에 대해서는 정말 성경을 문자적으로 보아서는 도무지 알 수 없게 기록을 했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악을 행하다가 저주를 받았고 이 시대 역시 이스라엘과 같이 율법을 지키면서 성령을 받지 못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가장 악한 자가 누구인가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자기에게 은혜를 주었는데 그 은혜를 거절하는 자가 악한 자입니다 사람이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없어서 모두가 저주를 받아야 하는데 주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게 하셨는데 그것을 거절하고 저주를 받는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너무 모릅니다.
율법이 자기를 어떻게 하고 있는가를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일이 단지 성도가 조금 더 의롭게 사는 문제라면 사도 바울이 기록한 성경을 우리가 볼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율법은 그런 것이 아니라 의롭다 함을 받는 것과 연결이 되어 있고 율법을 지킬 때 의롭다 함을 받지 못하면 저주를 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폐하셨습니다.
왜 율법을 폐하셨는가 하면 율법으로는 의롭다 함을 받을 육체가 없어서 모두가 저주를 받아 죽어야 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완전케 하시고 십자가에서 율법을 폐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율법을 지키겠다고 하고 있고 그것이 악을 행하는 일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얼마나 악합니까?
자기에게 은혜를 주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의 모든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은혜를 거절하고 십자가에서 폐하신 율법을 지키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율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을 판단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가장 악한 자가 바로 은혜를 거절하고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전도서 5:1절을 보겠습니다. (구 952쪽)
“너는 하나님의 전에 들어갈 때에 네 발을 삼갈지어다 가까이 하여 말씀을 듣는 것이 우매자의 제사드리는 것보다 나으니 저희는 악을 행하면서도 깨닫지 못함이니라”
우매자의 제사입니다
제사가 무엇입니까? 사람이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모든 행위가 다 제사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예배를 드립니다. 찬송가를 부르고 있습니다.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헌금을 드리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다 제사라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전도서에서 그것을 우매자의 제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매자입니다
가까이 하여 말씀을 듣는 것보다 제사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이 시대도 우매자들은 가까이 하여 말씀을 듣는 것보다 제사를 드리는 것을 좋아하고 있습니다. 가까이 하여 말씀을 듣는다고 하니까 이 시대 교회 안에서 듣고 있는 설교를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가까이 하여 말씀을 듣는 것이 아니라 우상의 제물을 먹는 종교의식에 불과합니다.
교회 안에는 우매자가 많습니다.
가까이 하여 말씀을 듣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이 시대는 말씀이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라는 종교에서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그 설교를 듣는 것으로 마치 자기들이 가까이 하여 말씀을 듣는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서 듣고 있는 설교 역시도 제사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형식입니다
그리고 의식입니다 그것은 다 제사입니다 가까이 하여 말씀을 듣는 것이 무엇인가를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에서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가까이 하여 말씀을 들으면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야 하는데 이 시대는 도리어 악을 행하는 일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우매자는 제사를 드립니다.
예배를 드린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실상은 우매자의 제사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예배 시간을 맞추어서 그리고 주일이라는 날을 만들어서 드리고 있는 예배는 제사라는 말씀입니다 그 예배를 어떻게 드리고 있는가 하면 거의 모두가 율법에 의해서 드려지고 있습니다. 그런 예배에서는 말씀이 있을 수 없습니다.
악을 행하고 있습니다.
누가 악을 행하고 있다는 말씀입니까? 이스라엘이 악을 행하고 있고 이 시대 이방의 교회가 악을 행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문제는 악을 행하면서도 그것을 알지 못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악을 행하면서 그것이 악이라는 것을 깨달으면 악을 더 이상 행하지 않을 수 있는데 그것이 악이라는 것을 모르니까 계속해서 악을 행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일, 악을 행하는 일입니다
십일조를 내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서 너무도 감사해서 십일조를 드리고 있습니까? 그것이 악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들이 십일조가 악이라는 것을 안다면 과연 이렇게까지 열심을 내서 하겠습니까? 아마도 십일조를 악이라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율법이라고 하는 사람은 가끔 있어도 악이라고는 하지 않습니다.
주일을 지키고 있습니까?
그것이 악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안식일을 지키면서도 그것이 악이라는 것을 몰랐기 때문에 주님께서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시니까 대적을 하고 있습니다. 악을 행하면서도 그것이 악이라는 것을 모르니까 참 빛이신 주님을 대적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이 시대 수많은 율법을 교회 안에서 지키고 있습니다. 아니 자기들은 율법이라고도 하지 않고 믿음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나 삼가 지키고 있다면 아니 사람의 육체로 행하고 있다면 다 악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악이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주일이라는 날을 만들어서 지키고 있고 악이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외식을 하고 있습니다.
깨닫지를 못 합니다
누가 깨닫지를 못 합니까? 이스라엘이라는 교회가 깨닫지를 못 했습니다 그리고 이방의 교회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지키고 있는 율법을 악이라고 하면 아마도 저를 공격할 것이 분명합니다. 아니 제가 이상한 사람이 되고 말 것이 분명합니다.
율법을 지키는 일입니다
사람의 이성으로 그것이 어떻게 악이 됩니까? 그러나 저주를 받게 하기 때문에 악이라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우매자가 되어서 제사를 드리면서도 그것이 악이라는 것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나쁜 의미는 이 시대 절대 다수가 그렇게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레미야 4:22절을 보겠습니다. (구 1056쪽)
“내 백성은 나를 알지 못하는 우준한 자요 지각이 없는 미련한 자식이라 악을 행하기에는 지각이 있으나 선을 행하기에는 무지하도다”
내 백성입니다
이스라엘 전체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 어느 일부의 사람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가 우준한 자요 지각이 없는 미련한 자식이라 악을 행하기에는 지각이 있으나 선을 행하기에는 무지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무지해서 악만 행했습니다.
이 시대는 다릅니까?
구약에서의 일은 이 시대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런 말씀을 보면서 이스라엘은 지혜가 없어서 악을 행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이 내 백성입니다 그러면 이 시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기독교인들이 내 백성이라는 말씀입니다 세상 사람이 하나님의 백성입니까?
성경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알지 못하면 사망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내 백성이 지각이 없어 악만 행하고 있다면 이 시대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어느 한 사람이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성읍에서 진리를 찾고 공의를 구하는 자가 한 사람만 있어서 멸하시지 않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도 없습니다.
악을 행하지 않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는 말씀입니다 공의를 구하고 진리를 찾는 자가 한 사람도 없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백성이라고 하면서 바벨론이 쳐 들어오니까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지켜서 싸움에서 이기게 해 주신다고 굳게 믿고 있는 백성입니다 그런 백성 중에 공의를 구하고 진리를 찾는 사람이 한 사람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을 바로 보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 모두가 악만 행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제가 악만 행하고 있다면 심하게 반발을 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역시 마찬가지로 악만 행하고 있습니다. 공의를 구하고 진리를 찾아서 영혼이 구원을 받고자 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이스라엘이라는 교회 안에 한 사람도 없다고 예레미야5장1절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악을 행하기에는 지각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모두가 악만 행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의 지각으로는 다 악만 행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 역시 악만 행하고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른다고 해서 마치 악을 행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외식을 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다 악이라는 말씀입니다 아니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고 있는 모든 행위가 다 악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합니다. 이스라엘이 그랬던 것과 같이 이 시대 이방의 교회도 역시 악을 행하는 데는 지각이 있지만 선을 행하는 데는 무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니까 믿을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까?
그런 말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율법의 한 모양이라도 있고 외식의 한 모양이라도 있다면 그는 악만 행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스라엘만 율법을 지켰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 역시 교회 안에서 행하고 있는 모든 일들이 다 율법의 행위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십일조가 율법이 아닙니까?
주일이 율법이 아닙니까? 예배를 형식에 맞추어서 드리는 것이 율법이 아닙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니까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해서 내 백성이 악을 행하는 데는 지각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가지고 율법이 아니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이스라엘은 율법을 율법이라고 했지만 이 시대는 율법도 믿음이라고 하면 믿음이 되고 있습니다.
은혜입니다
거저 주시는 선물입니다 그것을 거절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율법의 행위입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서 지키고 있는 모든 율법의 행위가 다 악한 일이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이스라엘과 같이 악을 행하면서도 그것이 악이라는 것을 깨닫지를 못 합니다
누가 악이라고 합니까?
율법을 지키는 것을 누가 악이라고 합니까? 그러나 성령의 감동을 받아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비유를 바로 깨달으면 그것이 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의 이성으로는 절대 인정할 수 없지만 성령이 우리에게 오시면 율법의 행위가 악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고 있습니다.
묻고 있습니다.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냐를 묻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성령이 오시지 않으면 율법이 악이라는 것을 사람의 이성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율법을 지키게 되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실제 복음을 들은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사람들이 성령이 오시지 않아서 율법을 지키고 말았습니다.
전도서 8:11절을 보겠습니다. (구 956쪽)
“악한 일에 징벌이 속히 실행되지 않으므로 인생들이 악을 행하기에 마음이 담대하도다”
악을 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속히 징벌을 하시지 않고 있습니다. 왜 속히 징벌을 하시지 않은가 하면 만약에 악을 행하는 대로 징벌을 하시면 이 세상 모든 사람은 죽어야 합니다. 성경의 정의는 죄를 짓지 않고 선을 행하는 자가 하나도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악을 행하지 않고 선을 행하는 자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 성경의 정의입니다
그런데 징벌을 하시면 어떻게 됩니까?
우리는 벌써 종말을 맞이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하나님께서 악인을 징벌하시지 않습니다. 왜 징벌하시지 않는가 하면 이 세상에는 선을 행하는 자가 하나도 없는데 악한 일을 징벌을 하시면 우리는 더 이상 살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 최고의 악인이 누구입니까?
바로 욥입니다 그는 내가 악하면 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을 하고 있지만 자기가 얼마나 악한 자인가를 깨닫지를 못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고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는 사람은 악한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악한 자인 욥을 하나님께서는 구원해 주셨습니다. 자기 말 그대로 악한 일을 해서 화를 당했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 최고의 악인인 욥을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욥기를 통해서 악인이 어떻게 구원을 받았는가를 보았습니다. 성경이 욥기를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욥기를 보면서도 악을 행하기에 마음이 담대합니다.
악한 일을 했습니다.
욥은 악한 일을 하다가 징계를 받았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예표라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이제는 더 이상 악한 일을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징계를 하시지 않습니다. 왜 이스라엘이 율법주의가 되었고 또 이 시대 기독교가 율법주의에 빠져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악을 모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도 악한 일을 한 자를 속히 징벌을 하시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더 담대해져서 악한 일을 하는데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사람의 이성으로 그것이 악이라는 것을 알면 하지 않을 수 있고 또 징계를 하시면 하지 않을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징벌을 내리시지 않고 있어서 사람들이 담대하게 악을 행하고 있습니다.
누가 압니까?
율법의 행위가 악하다는 것을 누가 압니까? 그것을 악이라고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율법의 행위가 악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고 또 그 악에 대해서 징벌도 하지 않으니까 죽을 때까지 교회 안에서 악을 행하고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살아가고 있습니까?
전부가 죄 입니다 그런데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이제는 전부가 다 악입니다 이것을 모르고 있다면 그는 결국에는 악만 행하다가 하나님으로부터 환난과 곤고를 당하게 되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세상 사람은 죄인입니다 그러나 교회에 나오는 순간부터 악인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의 이성입니다
우리는 악을 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람의 이성으로는 이 악에서 빠져 나올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는 악이 되는 수많은 행위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사람의 지혜로는 깨달을 수 없습니다. 아니 악이라는 것도 모르고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4:18절을 보겠습니다. (신 347쪽)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 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사도 바울입니다
그가 복음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신약 성경의 거의 반 정도를 기록했습니다. 그런 그가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얼마나 쉽게 악에 빠지는 가를 알아야 합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악을 행하는 것이 사람의 이성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편지에서 아카데미 강의를 통해서 교제를 하고 있는 성도님들은 알고 있습니다. 저 역시도 모든 악을 처음부터 안 것은 아닙니다. 처음에는 율법을 가지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다가 식사 기도를 하는 것도 악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식사 기도입니다
제가 그것을 악이라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마도 저를 상종도 하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이 많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님들은 그것이 외식이라는 것을 알고 이제 악이라는 것을 알아서 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 역시도 그랬지만 수십 년간 해온 식사 기도를 하루아침에 하지 않는다는 것이 쉽지가 않았습니다.
성만찬입니다
아마 이것을 악이라고 하면 이단이라고까지 공격할 사람이 많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도 처음부터 이것이 악이라는 것은 몰랐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를 악에서 건져 주셔서 그의 천국으로 구원하시기 위해서 악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악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이 일까지도 악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을 알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악에서 구해 달라고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주기도문을 주문처럼 외우고는 있지만 악이 무엇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렇게 악도 모르면서 외우는 행위 자체가 악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은혜입니다
죄에서 우리를 건져 주셨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듣고 믿게 하심으로 이제 악에서 건져 주셔서 그의 천국으로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있습니다. 이 악을 알게 해 주신 것이 은혜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악을 전혀 모르고 있고 악을 행하는 자기들의 행위를 보면서 도리어 믿음이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악을 행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환난과 곤고가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유대인이 악을 행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이방인들이 악을 행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악을 행하면서도 악을 모르니까 담대하게 악을 행하고 있습니다.
악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성도만이 그의 천국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으면서 아무리 주여 주여 한다 할지라도 그가 악을 모르고 있다면 천국으로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천국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환난과 곤고가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모든 행위가 다 악이고 외식하는 사람의 모든 행위가 다 악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우리를 죄에서만 건져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죄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2000년 전에 모두 지고 가셨습니다. 이제는 그 죄의 문제가 아니라 악에서 건짐을 받아 그의 천국으로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악이 무엇이라는 것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로마서 2:10절을 보겠습니다. (신 241쪽)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선한 일을 하는 모든 사람에게는, 먼저 유대 사람을 비롯하여 그리스 사람에게 이르기까지, 영광과 존귀와 평강을 내리실 것입니다.”
비교입니다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선을 행하는 각 사람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는 반드시 이 두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누가 많은가 하면 악을 행하는 사람이 절대적으로 많이 있습니다. 이 시대 율법을 지키지 않는 교회가 거의 없는 것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악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그런 성도만이 선을 행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선을 행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고 악을 행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자기들이 행하고 있는 악을 보면서 선한 일을 하고 있다고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어서 천국에 들어간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청함을 받은 자는 많으나 택함을 입은 자는 적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지만 실상은 선을 행하는 사람은 아주 극소수이고 악을 행하는 사람이 절대적으로 많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시편 14:3절을 보겠습니다. (구 811쪽)
“다 치우쳤으며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성경의 정의입니다
선을 행하는 자가 하나도 없습니다. 아니 우리 인생들은 선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선과 악에 대해서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선과 악은 세상의 그런 선과 악이 아니라 구원과 연결이 되어 있는 선과 악입니다
우리가 선을 행할 수 있습니까?
우리 스스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선을 행할 수 있는 방법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선을 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선을 행하신 이를 믿을 수는 있게 하셨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선을 행하는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선을 행한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행하고 있는 모든 육체의 일은 다 악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합니다. 설령 내가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세상의 이성으로는 선이 될 수 있을지라도 그것으로는 내 영혼이 구원을 받을 수 없다면 악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선을 행하는 자는 없습니다.
그러나 선하신 일을 하신 분을 믿는 성도는 있습니다. 내가 하고 있는 육체적인 일을 가지고 선이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선이 아니라 선하신 이를 믿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선을 행하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선에 대해서 무지에 가깝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성경이 그렇다고 하면 그런 것입니다
내 이성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성도는 성경에서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가를 알고 믿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가라지들은 성경을 성경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이성을 가지고 보다가 스스로 자기 꾀에 넘어져 사망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기초입니다
성경의 모든 말씀이 다 기초가 아닙니다. 그 중에서 기초가 되는 말씀들이 있습니다. 그런 말씀들을 바로 알고 그 말씀을 기초로 세우면 믿음에서 흔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기초가 되는 말씀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 말씀이라고 하면 여기서 이 말을 해도 되고 저기서는 저 말을 해도 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선을 행하시기 바랍니다.
육체로 무엇을 하라고 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광과 존귀는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선을 행해서 구원을 받으라는 말씀입니다
시편 34:14절을 보겠습니다. (구 825쪽)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며 화평을 찾아 따를지어다”
베드로전서 3:11절을 보겠습니다. (신 380쪽)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
선을 행하는 조건입니다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악이 무엇인가를 말씀을 드렸습니다. 악에서 떠난 사람만이 그리고 악을 버린 성도만이 선을 행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악을 행하고 있습니까?
그 사람은 절대로 선을 행할 수 없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외식을 하고 있습니까? 그는 절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지키면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스스로 속고 있는 사람입니다 성경에서 안 된다고 하는데 된다고 하는 사람은 속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늘 말씀을 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에게서 율법의 한 모양이라도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외식을 하는 모양이 있어서도 안 됩니다 만약에 율법을 지키고 있다면 여러분은 속고 있는 사람이며 반드시 저주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반드시입니다.
악을 행하면서 선을 행한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지키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지키면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한 이스라엘이 어떻게 했는가를 보시기 바랍니다. 누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는가 하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율법을 지킨 이스라엘이 그렇게 했습니다.
그들은 악한 자입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는 자는 악한 자입니다 그가 아무리 예수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믿고 사랑한다고 해도 거짓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악에서 떠나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라고 하면 악이 무엇인가를 바로 알아야 악에서 떠나서 선을 행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습니다.
사람의 이성에는 율법을 지키는 것도 좋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율법을 지키는 일을 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악을 행하면서 선을 행할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악을 떠난 사람만이 그리고 악을 버린 사람만이 선을 행할 수 있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악에서 떠나시기 바랍니다.
아니 악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도 예수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서 자기 흠 없는 율법의 의를 배설물과 같이 버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버리지 않고는 예수 그리스도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바로 아시고 선을 행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육체의 일이 아닙니다.
내 육체로 선을 행하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우리는 선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우리가 선하신 이를 믿을 수 있게 하셨고 그것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게 해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 선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악만 행하고 있습니다.
선을 행하시기 바랍니다.
각 사람에게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2장7절의 말씀을 반복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교회 안에 선을 행하는 자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이방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있습니다. 왜 믿지를 못하고 있는가 하면 악을 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악을 버리지 못하고 악에서 떠나지 못하기 때문에 믿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요한삼서 1:11절을 보겠습니다. (신 396쪽)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였느니라”
악한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선한 것이 있습니다.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는 이렇게 악을 행하는 사람이 있고 선을 행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교회 밖에 있는 사람이 악을 행한다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이 악을 행하고 있고 그 사람은 하나님을 뵙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악한 것입니다
그것은 율법의 행위입니다 선한 것입니다 그것은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의 요구를 이루시고 율법 외에 나타난 한 의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진리+선=선이 됩니다. 불의+악=악이 됩니다. 그런데 선+악=악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악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시대도 역시 악을 행하면서도 담대하고 있고 자기들이 하나님을 볼 수 없다는 것을 꿈에도 모르고 있습니다.
정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누구에게 하고 있는 말씀인가 하면 교회 안에서 악을 행하고 있는 사람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지옥을 누가 가는가 하면 교회 안에서 악을 행하고 있는 사람들이 받을 형벌인데도 하나님께서 바로 징벌을 하지 않으니까 사람들은 악에 빠져서 나오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아시기 바랍니다.
악을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뵈옵지 못 합니다 누가 악을 행하고 있는가 하면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이 악을 행하고 있고 그 사람들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지만 전혀 두려워하고 있는 마음이 없습니다.
로마서 2:11절을 보겠습니다. (신 241쪽)
“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차별함이 없이 대하시기 때문입니다.”
악을 행합니까?
반드시 환난과 곤고가 있습니다. 선을 행합니까?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율법을 지키고 있느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그것을 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선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하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외모로 사람을 취하시지 않기 때문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면 어떻게 됩니까? 사람이 이성에 따르는 것과 같이 율법의 행위에 따라 사람을 구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외모로 사람을 취하시지 않습니다.
은혜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사람에게는 아주 불공평합니다. 그러나 율법을 지키지 않는 성도들에게는 이것이 은혜가 되고 있습니다. 솔직히 저 역시도 하나님께서 외모로 취하신다면 더 이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왜 하지 않는가 하면 저는 율법을 잘 지킬 자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율법주의자들에게 있어서는 이 말씀이 와 닫지가 않습니다.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사람을 외모로 취하시면 우리는 어느 누구도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누가 율법의 행위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율법으로는 어느 누구도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시지 않기 위해서 복음을 주시고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게 하셔서 우리에게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람을 외모로 취하면 우리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것을 아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선을 행할 수 있는 방법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 오셔서 선을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해서 우리가 선을 행하는 자가 되어서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게 하심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안 믿습니다.
아니 선을 행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을 사랑하셔서 은혜를 주시고 있지만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복음을 모르기 때문에 믿을 수가 없습니다. 선을 행하는 것이 얼마나 쉽습니까? 이 세상 누구라도 할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선을 어떻게 행해야 하는 줄을 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그들이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외모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행위입니다 그것으로 취하시면 우리는 구원을 받을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선을 행할 수 있는 방법을 주시고 그 방법에 따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받게 하셨습니다.
사람입니다
반드시 외모로 취하게 되어 있습니다. 율법은 반드시 외모로 취하게 되어 있습니다. 율법 613가지를 어떻게 지켰는가에 따라 외모로 사람을 취하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바로 알고 믿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안 믿고 있고 악을 행하는 일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지렁이 같은 야곱입니다
벌레 같은 나입니다 그리고 구더기 같은 인생입니다 외모로는 한 사람도 취할 수 없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만약에 외모로 한 사람이라도 취할 수 있었다면 주님은 절대로 이 세상에 오시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교회 안에만 들어오면 사람들은 율법의 행위에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혀온 여자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려 죽어가는 그 사람도 구원해 주셨습니다. 외모로 취할 것 같으면 이스라엘의 율법주의자들을 구원해 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사람의 이성에는 흠 없는 율법의 의를 가졌다고 해도 하나님의 눈에는 취할 수 없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죄인은 감사해 합니다.
그러나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불의하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누구라는 것을 아는 성도는 이 방법을 우리에게 주신 것이 은혜입니다 이 복음을 모르기 때문에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악을 행하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선을 행할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이 방법을 왜 주셨는가 하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외모로 취하시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외모로 사람을 취하시지 않기 위해서 선을 행할 수 있는 방법을 주셔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살게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예수 그리스도를 안 믿고 교회 안에서 악만 행하고 자기들의 외모를 가꾸려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1:17절을 보겠습니다. (신 378쪽)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자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의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외모가 무엇입니까?
사람이 지키고 있는 율법의 행위가 외모입니다 사람의 겉모습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교회 안에서 지키고 있는 율법의 행위를 외모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사람을 외모로 취하시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부자가 되기 위해서 교회 안에서 자기의 의에 옷을 입기를 좋아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외모입니다
그리고 믿음은 마음에 있습니다. 악을 행하는 것은 외모고 선을 행하는 것은 마음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외모로 사람을 취하시지 않는다는 말씀은 더 이상 율법을 지킬 이유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교회에만 나오면 자기 외모를 가꾸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외모를 가꾸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외모는 반드시 썩어 없어집니다. 여러분이 지킨 그 율법의 의를 천국에 가져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썩어 없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복음을 모르고 그것을 천국에 가져가는 것으로 생각하면서 주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아야 한다고 하면서 율법을 지키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구원입니다
외모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아니 우리 외모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 외모는 이미 아담이 범죄 했을 때 저주를 받아 흙으로 돌아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천국에 가져가지도 못한다는 것을 알면 외모를 가꾸지 않을 수 있는데 자기의 외모를 천국에 가지고 가서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을 듣고 싶어 합니다.
영의 구원입니다
우리 신체의 구원이 아닙니다. 구원 자체도 모르다 보니까 자꾸 외모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신체의 구원이라면 당연히 율법을 더 많이 지킨 것을 가지고 가게 됩니다. 그러나 성경은 신체의 구원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거듭나는 그리스도의 영이 내 안에 거하고 그 영이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에 구원을 받아 하늘에 신령한 몸을 입습니다.
구원을 모르니까 더 외모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외모를 생각하니까 율법을 지키게 되고 율법을 지킴으로 해서 점점 더 악한 일을 쌓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이 영의 신비로운 탄생을 모르는 데서부터 출발이 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 기독교는 이미 육체가 되어 있는 종교며 외모를 가꾸기 위해서 율법주의에 빠져 있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이 율법을 지킴으로 해서 악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방의 교회 역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외모로는 구원을 받을 사람이 없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셔서 율법 외에 한 의가 나타나게 하셨지만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율법으로 자기 의에 겉옷을 입으면서 외모를 가꾸고 있습니다.
선을 행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선을 행할 수 있는 방법을 주셨습니다. 율법으로는 구원을 받을 사람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복음을 주시고 우리가 선을 행함으로 해서 구원을 받게 하셨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선을 행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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