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11:24-26절을 보겠습니다. (신 166쪽)
“마르다가 가로되 마지막 날 부활에는 다시 살 줄을 내가 아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인생입니다
우리는 피조물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신 유일하신 참 하나님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인생들은 하나님께서 선지자들로 감동을 해서 기록하게 하신 성경을 자기들의 철학적 지식으로 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인생입니다
그리고 죽은 자라는 것을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편에서 사람은 헛것 같고 그의 날은 지나가는 그림자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에스겔서에서는 그러므로 너는 대언하여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서 나오게 하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라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서 나오게 한즉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실제 무덤에 있는 나사로를 나오게 하시는 표적으로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죽은 자입니다
다시 말씀을 하지만 주님께서 우리 인생을 죽은 자라고 하면 그렇게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그 말씀을 억지로 해석하려고 하지 마시고 왜 우리가 죽은 자인가에 대해서 지혜를 구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생명입니까?
성경은 수에 셀 가치도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아담에게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무릇 흙에 속한 자는 저 흙에 속한 자들과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는 저 하늘에 속한 자들과 같으니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신체의 구원입니까?
그것은 인생의 철학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종교가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죽은 자가 내세로 들어간다고 하면서 자기들의 만의 종교에서 행하는 의식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하고 성경은 인생의 철학적인 사고인 내세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 아닙니까? 그렇다면 성경에서 어떻게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정말 상고하시기 바랍니다. 인생의 철학으로 말을 하는 것을 마치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것으로 오해하지 말고 인생이 무엇인가를 먼저 바로 알고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생명입니다
저도 이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한다는 것이 너무도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생명을 얻어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성경을 근거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조금 이해가 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존재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억지로 해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인생의 철학으로 해석하지 말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종교에서 말을 하는 신체의 구원은 인생의 철학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신체의 구원을 말씀을 하지 않고 생명을 얻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혈과 육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선진들이 죽으면 성경은 그 열조에게로 돌아갔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열조에게 라는 말씀은 죽어서 흙으로 돌아가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래서 사람을 헛것 같고 지나가는 그림자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인생들의 철학으로 성경을 보고 억지로 풀고 있습니다.
단어입니다
생명이라는 단어는 우리 인생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적 표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을 하는데도 그 썩어 없어지는 신체가 구원을 받는다는 성경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면서 자기들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은 영원한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창조를 하시면서 우리 피조물을 지으시면서 약속하신 것이 바로 영원한 생명이라는 말씀이고 그 생명을 사도 바울은 예수의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말씀을 하면서 양들로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혼합이 아닙니다.
그리고 결합이 아닙니다. 성경에서는 그 어느 곳에서도 그런 말씀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존재를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사도 요한은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주님께서는 내가 온 것은 양들로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서 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왜 생명을 얻어야 하는가 하면 우리 사람은 생명이 없어서 죽으면 썩어 없어지기 때문이라는 말씀입니다.
요한복음11장입니다
마르다와 마리아의 오라비 나사로가 병이 들었다고 주님께 전하자 주님께서는 바로 가시지 않고 그가 죽은 후에 오셔서 에스겔 선지자의 말씀과 같이 무덤에 있는 우리 인생들을 나오게 하시는 표적으로 나타내시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비유로 해서 에스겔 선지자의 예언의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그 일을 이루신다는 것을 나타내시는 표적이라는 말씀입니다.
나사로가 죽었습니다.
그리고 장사 지내고 무덤에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오셔서 먼저 마르다를 만나시고 그녀에게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고 그러니까 에스겔 선지자의 예언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일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니까 마르다는 인생의 철학으로 그러니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알고 있는 그대로 마지막 날 부활에는 다시 살 줄을 내가 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마르다의 대답입니다
마르다가 안다고 하는 것과 이 시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안다고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생각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마지막 날 부활에는 그러니까 죽은 나사로가 다시 살 줄을 자기가 안다고 말을 하고 있고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모든 인생들이 알고 있는 부활을 마르다가 대표를 해서 말을 하고 있습니다.
마르다가 알고 있는 부활입니다
그것이 맞습니까? 정말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생명에 대해서 모르기 때문에 이 시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마르다와 같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 죽으면 천국에 갔다고 하고 있고 종교는 소천이라는 말까지 만들어서 사용을 하고 있습니다.
나사로가 부활을 합니까?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어느 누구도 죽어서 부활을 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갔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은 인생들의 철학으로 알고 있는 것으로 마르다와 같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마르다가 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죽은 나사로가 생명이 아니라 내가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오직 주님만이 생명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지만 성경을 보면서도 어느 누구도 이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주님만이 참 생명이심을 믿고 있습니다.
나사로가 부활을 합니까?
그러면 주님께서 마르다에게 그래 네 오라비 나사로가 마지막 날에 부활을 할 것이다. 라고 말씀을 하고 그 일을 믿으라고 하셨어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부활을 합니까?
주님께서 부활을 하신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주님께서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유월절의 곡물의 첫 이삭의 한 단으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내 생명을 얻어야 맥추절에 떡 두 개를 누룩을 넣어 구어 여호와께 요제로 드리는 것과 같이 예수에게 붙은 자 된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부활의 첫 열매라는 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저 성경에서 문자로만 알고 있습니다. 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시는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의 생명으로 부활을 하기 때문에 부활의 첫 열매고 예수의 생명을 얻은 자가 부활을 하는 것을 맥추절의 첫 요제라고 말씀을 하면서 마르다에게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누가 생명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만이 생명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참 빛 세상에 와서 비취는 빛이 있으되 사람들이 믿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나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을 하면서 나를 믿으면 생명의 빛을 얻으라고 말씀을 하지만 참 생명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의 생명입니다
나사로가 부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생명을 얻은 자가 부활을 한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일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마지막 날 죽은 나사로가 부활을 한다고 하는 마르다에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성경을 보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나사로가 마지막 날 부활을 하는 것은 인생들의 철학이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유대인들도 그렇게 알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이방인들도 그렇게 알고 있지만 주님께서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믿느냐고 우리에게 말씀을 하고 있지만 아무도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요한복음10장10절입니다.
그래서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얻어 그 생명으로 부활을 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을 이미 율법에서 유월절의 곡물의 첫 이삭의 한 단으로 그리고 맥추절에 누룩을 넣고 구운 떡 두 개로 여호와께 요제로 드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생명에 대해서 비췸을 받지도 않고 있고 그런 그들이 믿지도 않고 있습니다.
내가 생명이다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고 마르다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이방의 종교인들 역시 마르다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입니다
우리가 영원한 생명이 있습니까? 우리는 헛것이고 그림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인생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영원한 생명은 바로 예수의 생명이라는 것을 사도 바울이 고린도후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생명이 아닙니다.
물론 피조물의 육체의 생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제가 부정을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서는 우리는 생명이 아니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인생들의 철학으로는 도무지 믿을 수 없습니다.
죽으면 하나님 나라에 갑니까?
누가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주님께서 죽은 나사로는 생명이 아니라고 하는데 왜 인생들이 철학으로 생각을 하면서 마르다와 같은 말을 하고 있는지 저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 인생은 생명이 아니라 말씀 그대로 헛것입니다.
피조물입니다
생명이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물론 우리의 언어로 우리의 철학으로는 생명입니다. 그것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 인생을 잠간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안개를 보고 헛것을 보고 그림자를 보고 참이라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존재입니다
우리 피조물에게 생명이 있다고 하는 사람은 성경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그분 만에 태초부터 있는 생명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고 그래서 사도 요한이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생명이 아닙니다.
죽은 것은 생명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우리 인생에 대해서 죽은 자라고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죽은 자를 누가 생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창조가 다 끝이 나고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면 우리 피조물은 생명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그것을 말씀을 하는데 인생들은 자기 철학으로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런데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하는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하지만 사도 바울이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지금 주님께서 마르다에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어야 한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믿습니까?
저는 이제까지 이방의 종교인들 중에서 그 위대하다고 하는 신학자들 중에서도 주님의 말씀을 믿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물론 지금 이 시대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이 제가 이렇게 말씀을 해도 주님만이 생명이라고 말씀을 해도 그들은 믿지를 않는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믿을 수 없습니다.
받아들일 수 없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지난 시간에 대표성에 대해서 말씀을 했습니다. 로마서에서 사도 바울이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다고 말씀을 해도 인생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죽으면 신체와 영혼이 재 연합을 해서 부활을 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골로새서3:2-4절을 보겠습니다. (신 326쪽)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마르다와 같은 생각을 하면서 믿는다고 하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아니라 주님께서는 내가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내 생명을 얻어야 부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면서 네가 이 일을 믿느냐고 말씀을 하시는데 마르다와 같은 말을 하면서 그저 생명이라는 단어를 부활이라는 단어를 인생의 언어로 아는 것으로 나는 이 말씀대로 믿는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안 됩니다.
나사로는 절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가 사도행전에서 형제들아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노니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미리 보는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말하되 저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다윗입니다
이스라엘이 기다리는 왕입니다. 그 다윗도 죽어서 장사되어 그 묘가 아직까지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다윗도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믿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께서 부활의 첫 열매로 살리신 일을 믿고 증거를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선지자입니까?
믿음의 선진들입니까? 그들도 다 죽어서 썩어 없어졌다는 것을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마르다와 같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그것이 아니라고 가르쳐 주시는 말씀을 하고 있는데도 성경을 보아도 무슨 말씀인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무엇을 믿습니까?
가장 중요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생명을 얻는 일을 믿지 않으면서 아니 평생을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죽을 때가 되어도 이 생명이 무슨 생명인지도 모르면서 믿는다고 하는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라고 할 수 있는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오신 목적입니다
그 목적도 모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것은 믿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아니 믿음의 분명한 목적도 모르고 믿는다고 하는 그들을 보고 어떻게 믿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저 생명이라는 인생의 언어를 아는 것으로 이 생명이 무슨 생명인지도 모르면서 믿는다고 하고 있고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것과 전혀 다른 인생의 철학을 가지고 신체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입니까?
수에 셀 가치도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 인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참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생명을 얻어 그 생명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을 말씀을 하는데 마르다와 같이 죽은 나사로가 마지막 날 부활을 한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피조물입니다
우리는 거룩한 자가 아닙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양들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기 위해서 오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믿지를 않고 인생의 철학으로 주장을 하면서 자기들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골로새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언어적 표현입니다
예수의 생명에 대해서 인생의 언어적인 표현이라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는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다는 말씀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고 해석도 되지 않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땅엣 것입니다
그리고 위엣 것입니다. 성경은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땅엣 것이 무엇인지도 위엣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저 자기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것으로 위엣 것을 생각을 하고 있다고 하는 것은 정말 뜬금없는 주장을 하는 사람과 같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지금 사도 바울은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이미 초기 교회 안에서 위엣 것을 생각을 하지 않고 땅엣 것을 생각하면서 말을 하는 그러니까 인생의 철학으로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얻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생명에 대해서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영의 일입니다
2장은 교회 안에서 육체의 일이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3장 시작을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입니다
이 말씀을 하고 이제 우리가 영의 생명에 알아들을 수 있게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우리 육체의 생명에 대해서 죽었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죽었고
창조에서 이미 말씀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창조를 다 이루셨다는 것을 믿어야 하고 그럼 우리 인생은 다 죽은 자라는 것을 창조주 하나님을 믿으면서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그런 성도는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으면 우리 인생은 죽었다는 것을 충분히 깨달을 수 있습니다. 참 생명이 없고 헛것 같고 지나가는 그림자 같은 우리 인생은 이미 죽은 자라고 성경에서 말씀을 하면 그 지혜를 구해서 깨닫기를 바랍니다.
살아 있습니까?
그렇게 주장을 하면서 지금 사도 바울의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고 성경을 어떻게 볼 수 있는가를 스스로가 생각해 보시지 바랍니다. 내가 믿는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감동해서 기록하신 말씀에서는 너희는 죽었다고 말씀을 하는데 나는 살았다고 하면서 주장을 한다면 그 자체가 이미 하나님을 믿지 않는 생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우리는 죽었다고 말씀을 합니다. 우리 생명이 죽었다고도 하지 않고 너희는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철학으로 아는 생명을 가지고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생명을 아는 것으로 이야기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창조주 하나님에게 있어서 생명은 우리 생명이신 예수의 생명 밖에는 없다는 것을 알고 믿음으로 역사를 해야 합니다.
이해가 안 됩니까?
이 생명의 문제는 이해를 하려고 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들로 예수의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면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해야 합니다. 그렇게 않고 내 생명에 대해서 주장을 하고 내 생명이 살아 있다고 하면 지금 골로새서의 말씀은 볼 수도 없고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말씀이라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죽었습니다.
그리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상한 이야기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피조물은 죽었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구속의 일을 이루심으로 해서 우리 양들에게 얻게 하는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이 일이 창세 전에 있는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성도입니다
인생의 생명은 이미 죽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붙은 자 되어 그 생명을 얻은 자 되었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생명은 지금 인생으로는 느끼고 알고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이 아닙니다.
피조물이 죽어 그 영혼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도 다 인생들이 알고 있는 것을 언어적으로 표현하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 인생은 죽으면 모든 것이 다 끝이 난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지금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는 생명에 대해서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생명입니다
요한복음10장10절에서 주님께서 내가 온 것은 양들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은 영원에서는 생명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우리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르다가 자기 오라비 나사로가 마지막 날 부활에는 다시 살 줄을 내가 안다고 말을 하니까 주님께서 내가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시면서 이것을 네가 믿느냐고 말씀을 했고 사도 바울이 골로새서에서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나사로의 생명이 아닙니다.
그 육체는 비록 주님께서 다시 살리셨다고 해도 죽었습니다. 그러나 나사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생명을 얻은 자 되었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그렇게 믿음으로 얻은 생명을 사도 바울은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우리 생명을 얻는 자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입니다
사도 요한이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래서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이 어디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육체의 생명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그러니까 태초부터 있는 생명을 얻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생명으로 영생을 하는데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들이 있는 자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하는 자는 반드시 생명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에 대해서 증거를 받지 않고 믿음이 없는 사람은 생명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생명입니다
분명히 아들 안에 있는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생명이 아니라 우리는 죽었고 아들 안에 있는 생명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구속의 일을 이루신 일을 증거를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하는 성도는 생명을 얻는다는 말씀입니다. 이 생명이 창세 전에 있는 생명이라고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2:11절을 보겠습니다. (신 354쪽)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생명입니다
인생의 언어로 기록이 되어 있다고 해서 자기 철학으로 성경을 보아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성경은 존재를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창조에 속하지 않은 하나님 나라의 존재를 우리 인생의 언어로 말씀을 할 수 없어서 생명이라는 단어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생명입니다. 그 생명을 우리 인생에게는 설명조차 안 된다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로 우리가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게 말씀을 하고 있고 히브리서에서는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존재입니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이제 하나에서 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또 요한복음에서는 성령이 오시면 알게 되는 일을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창조 전에 있는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일을 믿으라고 말씀을 하는데도 이 말씀을 듣지를 못해서 인생의 철학으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의 생명입니다
이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셔야 하고 그럼으로 해서 그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를 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참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성경에서 증거를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예수의 생명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시기를 부탁드립니다. next 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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