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5:21-6:2절을 보겠습니다. (신 291쪽)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하나님께 열심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마찬가지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을 제외하고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다 같은 마음이라고 저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비록 그들이 영생을 얻지 못한다 해도 그들의 마음까지 폄하를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열심입니다
다 자기의 의를 세우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지식이 없어서 자기의 의를 세우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온갖 행위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실 인생의 철학으로 이 열심이 자기의 의를 세우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옳은 일입니다
그것이 인생의 철학으로는 아무리 옳은 일이라고 해도 하나님의 의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반드시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인생의 철학으로는 제가 이렇게 말씀을 해도 그것이 옳은 일이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열심을 버릴 수 없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의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행하신 옳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의 결과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깨달아야 합니다. 앞에서 말씀을 했지만 신명기에서 주님께서 율법을 다 행하심으로 해서 생명의 복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결과입니다
생명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저 인생들이 아는 그 생명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태초부터 있는 생명을 말씀을 하기 때문에 하나를 안다고 해도 역시 또 다시 생명에 대해서 인생의 철학으로는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말씀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의라는 단어를 그리고 생명이라는 단어를 다 인생의 철학으로만 보고 있기 때문에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그것이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입니다
사도 바울이 우리 이방인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입니다
반드시 그 의가 있어야 우리가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의의 한 행동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완전케 하시고 우리에게 생명을 얻게 하는 구속의 일을 이루신 일이 의라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의는 그리고 자기의 의는 대표성이라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이 대표성을 이해를 하지 못하고 성경을 보면 제가 아무리 이 말씀을 해도 깨달을 수 없습니다. 대표성을 말씀을 하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의를 이루심으로 해서 생명으로 부활을 하셨고 그럼으로 해서 우리 믿는 모든 자에게 의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로마서10장입니다
이 말씀을 대표성으로 보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을 수 없고 그런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믿음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이렇게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는 지식으로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는 말씀입니다.
인생의 철학입니다
그저 좋은 것이 좋다고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일이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 인생의 철학적 사상이 하나님의 의를 아는 지식을 막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설령 누군가 하나님의 의에 대해서 말씀을 해도 그 말씀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인식을 하고 있어야 합니다.
고린도후서입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죄를 모릅니다.
율법을 다 행하셨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인생들에게 죄인으로 정죄를 받아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그리고 생명으로 다시 사셔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심으로 해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셨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대표성입니다
우리로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는 일은 대표성으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의 믿음이 바로 이 의가 된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이 의를 믿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10장입니다
내가 증거 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히 있으나 지식을 쫒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 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이방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고 그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의입니다
그 의에 복종을 해야 합니다. 그 의를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대표가 되는 의를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믿는 믿음이 바로 하나님의 의가 우리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그 결과로 생명을 얻은 자 되고 그렇게 예수의 생명을 얻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은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은혜입니다
거저 주시는 것을 은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한 일이 하나도 없는데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의 의를 이루시고 우리의 믿음으로 우리 안에서 의가 되게 하심으로 해서 우리가 생명을 얻은 자 되어 구원을 받은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은혜입니다
사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의가 우리에게 어떻게 은혜가 되고 있는가를 우리 성도는 충분히 깨달을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지식이 없으면 그가 아무리 고린도후서6장1-2절의 말씀을 외운다고 해도 그리고 인생의 언어로 미사여구로 말을 한다고 해도 그것은 은혜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은혜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구원을 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하나님의 의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구원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인생의 언어로 아는 지식을 가지고 고린도후서6장의 말씀을 하고 있다고 해도 그것은 그저 공허한 외침밖에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대표성입니다
그래서 5장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일입니다
우리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 해서 대표로 구속의 일을 이루셨다는 말씀을 믿고 있습니다. 그럼으로 해서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장절입니다
다 끊어서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연결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의입니다 그 의를 먼저 알고 그 의에 복종을 해야 아니 믿음으로 역사를 해야 그것이 은혜가 되고 구원의 날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 말씀은 전혀 모르면서 그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라고 하면서 자기가 구원을 받았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심을 우리 성도는 믿고 있습니다. 이 기초부터가 안 되어 있으니까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을 수 없고 그런 그들이 은혜, 은혜를 말하고 있지만 그것은 인생의 언어적 수사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의의 한 행동입니다
구속의 일로 우리가 생명을 얻는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요한복음에서 내가 온 것은 양들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바로 그 일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이고 그럼으로 해서 우리 안에 생명이 거하심으로 해서 구원을 받았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생들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있습니다. 모르면 지혜라도 구해야 하는데 자기의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않으면서도 자기가 무엇을 하는지 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경계가 되게 하기 위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인생들은 성경을 보면서 자기 합리화를 시키는 일만 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6:33절을 보겠습니다. (신 9쪽)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하나님입니다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은 이것이니 영원한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포도원의 비유에서 한 데나리온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면서 하나님 나라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 바로 이 생명을 얻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인생들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께 열심이 있습니다. 인생이기 때문에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자기가 믿는 유일하신 하나님을 믿는데 열심이 없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더구나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생각하면 더 열심을 낼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 인생들입니다.
그러나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인생의 철학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철학에 대해서 잘못 알고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사도 바울을 통해서 내가 증거 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쫒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 하였다고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경계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의를 모른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인생이 하나님의 의를 모르기 때문에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그저 인생의 언어로 기록이 되어 있는 성경을 보면서 자기들이 하나님의 의를 아는 것과 같이 도리어 더욱 더 하나님께 열심을 내고 있고 그것이 자기의 의를 세운다는 말씀을 하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창조입니다
이미 다 이루셨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성경은 창조를 알아야 해석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인생들은 진화론적인 사고에서 보고 있고 그런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은 있지만 창조하신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그저 종교적인 열심으로 자기의 의를 세우는데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성경말씀입니다
우리의 언어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를 그저 인생의 언어로 보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인생들은 자기들의 종교적 행위를 보고 하나님의 의와 같이 생각을 하고 있고 거의 그렇게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입니다
그 의를 믿는 믿음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자기의 의를 율법의 행위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말씀을 보면서도 자기의 의가 무엇인지도 그리고 하나님의 의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그들이 종교 안에서 온갖 율법의 행위를 하면서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지식입니다
진리의 성령이 오셔야 이 지식으로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솔직히 말씀을 하면 하나님의 의와 자기의 의에 대해서 정확하게 정의를 해서 말씀을 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너무도 불행한 일이지만 이것이 현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래서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인생의 철학으로 이야기를 하다가 사망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입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태복음의 말씀을 보고도 그의 나라는 그래도 어느 정도 이해를 하고 있지만 그의 의는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구하라
성경에서 구하라고 말씀을 하면 우리는 반드시 구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 인생들이 그의 의를 구하지 않기 때문에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그의 의를 알고 구하는 사람이 있다면 절대 이 말씀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입니다
인생들이 너무 무심하게 보고 있습니다. 아니 자기들에게 하는 말씀으로 성경을 보려고 하지 않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인데도 그의 의를 구하지도 않는 그들이 이 말씀을 자기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으로 그저 무심한 듯이 보고 있습니다.
생명을 얻는 일입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또 말씀합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두 주인입니다
하나님과 재물로 비유를 해서 비교법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의를 하나님으로 자기의 의를 재물로 비교를 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이 둘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그러니까 하나님의 의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일과 자기의 의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일을 겸하여 할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할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하면 그런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무엇인지 그리고 재물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 마지막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입니다
그리고 자기의 의를 재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이 두 가지를 함께 할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함께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일이 아니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알아야 하는 말씀이기 때문에 마태복음에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인생들은 그저 자기는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모르면 죽습니다.
아니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이 모든 말씀들이 다 구원에 대한 말씀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인생들은 그저 철학으로 성경을 보고 있고 그런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쫒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생명을 얻는 일입니다
의의 한 행동으로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의 의를 이루심으로 해서 생명에 이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아무 감각이 없습니다. 아니 지식이 없어서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지 못하니까 이런 말씀들을 보면서도 아무 생각이 없습니다.
성경입니다
하나님의 의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의를 아는 지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이 의를 믿어야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의를 아니 자기의 의라는 단어와 같이 보면서 옳은 일이라고 생각을 하니까 종교가 되어 더욱 더 옳은 일을 하기 위해서 자기의 의를 세우면서도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내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으로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우리는 주님께서 말씀을 하신 그대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해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럼으로 해서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얻을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빌립보서3:9절을 보겠습니다. (신 321쪽)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하나님의 의입니다
그리고 자가의 의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증거 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의입니다
옳다는 의미로 성경을 보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이 그렇게 번역이 되어 있다는 것을 저 역시 부정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우리 인생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하나님에 대한 열심이 의지가 되어 자기의 의를 세우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기초입니다
아니 그냥 단어만 보아도 쉽게 깨달을 수 있는 말씀이라고 저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들의 종교성이 하나님에 대한 열심이 성경을 보는 눈을 소경이 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 열심도 죄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인생들은 그저 옳은 것은 다 옳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열심입니다
그것을 죄라고 말씀을 하면 이 시대 종교인들이 저를 도리어 이상하게 생각을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아니 그것이 영생을 얻을 수 없는 죄가 된다고 하면 더 이상 대화를 하지도 않으려고 하고 있고 복음의 말씀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알아야 합니다.
인생의 철학으로 그것이 아무리 옳다고 해도 영생을 얻는 일을 우리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영생이 있음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이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은 이것이니 영원한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철학이 아닙니다.
그 철학으로 영생이 있음을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니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생을 얻는 일을 믿는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인생들이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 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을 얻는 일에서 지금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의와 자기의 의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먼저 깨닫고 로마서의 말씀을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인생의 철학입니다
옳은 것은 다 옳습니다. 그러나 영생을 얻는 일에 있어서는 그 옳은 것이 옳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말씀을 하기 위해서 먼저 율법에 대해서 말씀을 했고 그 율법을 누가 행하셨는가를 신명기30장에서 말씀을 하고 있고 우리 성도는 주님께서 다 행하시고 생명의 복을 받으신 일을 믿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깨닫기 위해서는 반드시 대표성에 대해서 바로 알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아니 성경 자체가 아담을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대표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주님께서 율법을 다 행하시고 생명의 복을 받으신 일이 하나님의 의가 되고 우리 성도의 믿음이 역사를 해서 주님께서 다시 사실 때 우리도 함께 산다는 말씀이고 그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자기의 의입니다
사도 바울은 구원을 받는 일을 하나님의 의와 자기의 의를 비교를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생들은 하나님의 의도 모르고 있고 자기의 의도 모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분명히 자기의 의를 세우는 자는 하나님의 의를 믿지 않는 자라고 믿음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내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바리새인으로 하나님을 믿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가진 의입니다
그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바리새인으로 살았던 모든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정말 성경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 종교인들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고 그 안에서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사도 바울이 자기의 의라고 한 것과 같이 역시 그것도 자기의 의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이방의 종교가 있습니다. 그것이나 바리새인으로 하나님을 믿는 것과 무엇이 다르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바리새인으로 하나님을 믿으면서 율법의 행위를 한 것과 이방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율법의 행위를 한 것이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것을 자기의 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의입니다
이 단어조차 이해가 안 되고 있는 것이 인생들이 가지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열심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바리새인으로 산 것이 자기의 의라면 이 시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하고 있고 그 모든 행위 역시 자기의 의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마치 하나님의 의와 같이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너무도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빌립보서입니다
역시 로마서와 같이 비교를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율법에서 난 의를 내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그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바리새인으로 산 율법의 모든 행위가 자기의 의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이방인들 역시 종교인으로 살아가고 있고 그 안에서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것이 자기의 의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예배를 드립니다.
찬송가를 부르고 있습니다. 기도를 하고 있고 헌금을 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의라고 하는 사람은 정말 이상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것을 자기의 의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도 이 의를 깨닫지를 못하니까 아니 하나님에 대한 열심이 너무 강해서 자기가 행위를 하고서도 그것이 자기의 의라고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구원입니다
자기의 의를 행하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성도는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기 때문에 하나님의 의에 대해서 증거를 받고 있고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생명으로 다시 사시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신 일을 믿는다는 말씀입니다.
히브리서11:3절을 보겠습니다. (신 364쪽)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성경입니다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의 믿음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반드시 복음을 들어야 믿을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보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자기의 의는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의는 보이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의 마침이 되시고 생명으로 부활하시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신 일은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 믿고 있습니다.
자기의 의입니다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은 자기의 의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보이기 때문에 인생들은 종교성으로 의지를 불태우고 있고 그 의지가 욕망이 되어 자기의 의를 세우려고 하나님의 의를 힘써 복종치 아니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의입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우리 성도는 이 일을 보지 못하고 있지만 믿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으로 하나님의 의를 믿어 구원을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next 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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