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6:2)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라

성경의 기초 강해

16-1, 믿음에 대하여(3)

윤주만목사 2026. 2. 8. 20:43

베드로후서1:1절을 보겠습니다. (384)

예수 그리스도의 종과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같이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믿음입니다

믿음에 대해서 지난주에 한번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나 믿음에 대해서 한 시간의 말씀으로 믿음을 안다는 것은 사실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믿음에 대해서 그저 약간의 터치만 했다고 하는 것이 더 맞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한 번 더 말씀을 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을 해서 준비를 하게 되었습니다

 

믿음입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서에서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러야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 이미 말씀을 했지만 그저 믿는 마음이 아니고 헬라어에서 말을 하는 것과 같은 믿는 대상에 대해서 알고 신뢰하는 일이라고 저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믿음으로 산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히브리서11장에서는 믿음에 대해서 정말 자세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믿음과는 다르게 그저 종교인으로 사는 것으로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 믿음입니다

영생을 얻어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성경은 그런 믿는 마음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 않고 그래서 지난 시간에 믿음이라는 것은 반드시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인생들은 성령이 오시지도 않아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지 못하고 있으면서도 성경의 언어를 아는 것으로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과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같이 받은 자들에게 편지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는 마음과 동일한 믿음을 받은 자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사도 베드로의 말씀만 보아도 인생들이 철학으로 알고 있는 믿음이라는 것은 성경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동일합니다

헬라어를 보면 동일한 가치의, 동일한 종류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은 인생의 언어로 기록이 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 언어적 표현보다는 우리는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야 하고 그래서 반드시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셔야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입니다

지난 시간에도 말씀을 했지만 믿음이라는 것은 내 편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믿어야 하는 대상에 있다는 것을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 믿음이라는 단어를 오해를 하고 있고 그래서 자기가 잘 믿어야 하는 것으로 인생의 철학에 따라 계량적으로 믿음이 좋아야 하는 것으로 그렇게 생각을 하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인생들의 생각하는 믿음입니다.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성경적이지 않은 말이지만 믿음이라는 것을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는 인생들에게 있어서는 너무도 당연한 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종교 안에서도 이 믿음에 대해서 자기들의 철학에 따라 판단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입니다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같이 받은 자들에게 편지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미 사전에서 말을 하고 있는 믿음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내가 믿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라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도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사도 바울이 하박국 선지자의 말씀을 인용을 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이렇게 사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러면 믿음이 없으면 죽는다는 뜻이 포함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살고 죽는데 있어서 믿음에 따라 결정이 되고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같이 받은 자들에게 편지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저 믿는 마음입니까

그것이 아니라 의인은 믿음으로 사는데 그 믿음은 내가 믿는 마음을 갖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셔야 받을 수 있고 또 믿을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받는 믿음이기 때문에 사도 베드로는 동일한 믿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동일합니다

왜 동일한가 하면 우리 성도들은 받아서 믿음으로 살기 때문에 동일하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사는데 그 믿음이 받았기 때문에 동일하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들은 기본적으로 믿는 마음을 가진 것을 믿음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성경에서는 받은 믿음이고 그래서 우리 성도들의 믿음을 동일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믿습니다

그러면 그 믿음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사는데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사도 베드로는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게 그 받은 믿음이 무엇인가 하면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는 믿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동일한 믿음입니다

그 믿음은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는 믿음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을 내가 믿는 것이 아니라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가 가진 믿음이라는 것은 우리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는 믿음이기 때문에 동일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이 믿음은 주신 것이기 때문에 받은 믿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믿습니까

그 믿음은 사전적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믿을 수 있고 안 믿을 수도 있는 믿음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믿음이라는 것은 먼저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는 믿음이기 때문에 동일하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렇게 힘입는 믿음이기 때문에 내가 믿는 마음이 아니라 받는 믿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먼저는 동일해야 합니다

왜 동일한가 하면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사는데 그 사는 일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생명으로 부활을 하시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신 일을 믿는 일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일을 믿는데 있어서 성경은 같은 말씀을 하기 때문에 동일하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동일한 믿음입니다.

내가 믿는 일을 인생의 철학적 지식으로 성경을 보고 믿을 수 있다면 그 믿음은 받은 믿음이라고 할 수 없고 내가 지식으로 알아 믿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셔서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동일하게 증거를 하기 때문에 받은 믿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입니다 

반드시 성령이 오셔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인생의 언어로 유월절을 먹이셨지만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성령이 오시기 전에는 그들은 역시 인생의 철학에서 벗어나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성령이 오시고 난 후에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았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 후에 복음을 전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인의 삶입니다 

인생에 따라 천차만별로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외모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바리새인들에게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로 판단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나는 아무도 외모로 판단하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인으로서의 삶은 다 다르기 때문에 주님께서도 판단하시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입니다

사도 베드로가 우리의 믿음에 대해서 가장 정확하게 말씀을 하고 있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이 믿음이라는 단어 역시 자기들의 철학으로 생각을 하고 있고 그런 그들이 사도 베드로의 말씀을 이해를 하고 그 말씀을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우리가 이방의 종교인들을 보아서도 충분히 깨닫고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종과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같이 받은 자들에게 편지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성경말씀 그대로 믿음에 대해서 받아들이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를 우리는 생각해야 합니다

 

동일한 믿음입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의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들은 이 의를 자기들의 철학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의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우리가 지난 시간에 에베소서에서 사도 바울이 내리셨던 그가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라는 말씀을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이 태초부터 있는 생명으로 부활하시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신 일이 우리에게 의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들의 언어로 의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실상은 주님께서 생명으로 다시 사셔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신 일이 의고 우리 성도는 이 의를 힘입어서 그러니까 이 일을 동일하게 믿는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인생의 철학으로는 아무리 성경을 보아도 이 의를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로마서4:9절을 보겠습니다. (244)

그런즉 이 행복이 할례자에게뇨 혹 무할례자에게도뇨 대저 우리가 말하기를 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 하노라

 

믿음입니다

인생들은 그저 철학으로 아는 지식을 가지고 자기들이 종교 안에 있는 것으로 믿는 마음을 가진 것으로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고 이 사는 믿음을 가져야 그러니까 위로부터 있는 생명으로 거듭나야 믿음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을 먼저 비유와 예표로 해서 보여 주셨습니다. 그들은 육체적으로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할 수 있고 대대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백성이라는 것을 우리가 성경에서 증거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아서도 잘 알고 있지만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는 것을 선지자들을 통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우리에게 믿음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믿음을 말씀을 하고 있는가 하면 믿음이 아니고는 우리가 살 수 없기 때문에 믿음에 대해서 정말 많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을 보더라도 자기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것으로 마치 하나님을 믿는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실상은 하나님을 믿지 않아서 그들은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입니다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하면 인생들은 의를 율법의 행위를 잘 하는 것으로 성경을 보고 있는데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율법은 생명의 도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봅니다.

로마서의 말씀도 그렇습니다. 의롭다 하심이라고 하니까 그 결과는 생각을 하지 않고 그저 의롭다 하심이라는 단어를 보고 있습니다. 이미 앞에서 말씀을 한 것과 같이 그 의롭다 하심의 결과는 사는 것이고 그 사는 것은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을 믿는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그래서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철학이 아닙니다

패러다임의 변화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인생은 살기 위해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인생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행위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러나 그 행위를 잘하는 것이 의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지만 패러다임의 변화가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지 못하면 제가 아무리 말씀을 해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의입니다 

사도 바울이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그의 의로 정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어떤 행위를 해서 의롭다 하심을 얻은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까 이것을 그의 의로 정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의는 사도 베드로가 말씀을 하는 것과 같이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는 의라는 말씀입니다

 

의롭다 하심입니다.

그저 인생의 언어로 기록이 된 단어의 뜻을 아는 것으로 의롭다 하심이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의에 대해서는 이미 앞에서 충분히 말씀을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완전케 하시고 생명의 복을 받으심으로 다시 사셔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신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로마서4장에서 아브라함이 어떻게 믿었고 그의 의가 어떻게 의롭다 하심을 얻었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 일을 아니할찌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일입니다 

두 가지 의미가 있다는 것을 우리 성도는 알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행위도 일입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아 생명의 양식을 먹는 일도 일이라는 것을 이미 여러 가지 말씀을 인용을 해서 충분히 말씀을 했습니다

 

로마서의 말씀입니다 

일을 아니할찌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신다는 말씀에서 일을 아니한다는 말씀은 율법을 지키는 행위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어떻게 의롭다 하심을 얻었는가 하면 바로 율법을 지키지 않았지만 율법이 반포되기 전 400년 전에 사람이지만 하나님을 믿어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4장입니다 

의롭다 하심을 받는 일에 대해서 아브라함을 비유와 예표로 해서 우리가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말씀을 보면서도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같이 받는 일을 전혀 모르니까 성경을 보아도 인생들의 철학으로 보고 있고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인생입니다 

율법을 잘 지키는 것을 의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시편의 말씀을 인용을 해서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행복에 대하여 다윗의 말한 바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철학입니다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나는 죄인이라는 것을 누구나 인정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는 것과 같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바로 알아야 합니다.

실제 그 일로 복이 있다는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일을 아니할찌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이 더 행복하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로마서입니다 

성경을 보면서도 그 말씀의 의미를 전혀 깨닫지를 못하니까 인생의 철학으로만 보고 있습니다. 인생의 철학으로는 분명히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으므로 하나님은 이 믿음 때문에 그를 의롭다 여기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아브라함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믿음은 인생의 철학과는 다르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행복입니다 

사도 바울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바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의는 이미 앞에서 말씀을 했듯이 인생의 철학에 따르는 율법을 지키는 의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으로 부활하셔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신 일을 믿는다는 말씀입니다

 

이 의입니다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는 것과 같다는 말씀입니다. 인생들의 철학은 혹시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사해 주셔서 인정치 아니하시면 그것을 복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행복을 말씀을 하면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이 그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의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은 것은 지난 시간에 사도 바울이 에베소서에서 말씀을 하는 것과 같이 올라가셨다 하였은즉 땅 아랫 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케 하려 하시는 일을 믿었고 그 믿음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입니다 

 

9절입니다

그런즉 이 행복이 할례자에게뇨 혹 무할례자에게도뇨 대저 우리가 말하기를 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도 역시 일한 것이 없지만 율법이 반포가 되기 전이지만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까 그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할례자입니다 

이스라엘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할례자입니다 우리 이방인들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할례자냐 무할례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에게 그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는 하나님의 말씀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4장입니다 

사도 바울이 왜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우리도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아브라함이 어떻게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일을 하지 않을지라도, 율법을 지키지 않을지라도 그런즉 이 행복이 할례자에게뇨 혹 무할례자에게도뇨 대저 우리가 말하기를 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입니다.

인생들은 믿는다고 하면서 의롭다 하심을 받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의롭다 하심을 받아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생각을 하고 있어서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아브라함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는 율법이 반포가 되기 전 400년 전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고 사도 바울은 그래서 그가 의롭다 하심을 받는 것이 인생들의 철학으로 생각을 하는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을 믿어 의로 여기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우리에게 아브라함과 같이 믿어서 그 믿음이 의로 여기심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믿음에 대해서 말씀을 할 때는 바로 대표가 되는 사람이 아브라함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가 믿음으로 의로 여기심을 받은 것과 같이 우리 역시 같은 믿음으로 의로 여기심을 받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생들입니다 

자꾸 일을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려고 하고 있습니다. 설령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다고 해도 아브라함이 믿어 의로 여기심을 받은 행복과는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래서 사도 바울이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바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입니다.

우리가 믿는 목적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왜 믿음, 믿음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사도 바울이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후사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후사이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폐하여졌다고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이 아닙니다

만약에 율법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가 단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우리가 믿는다고 하는 것은 헛것이라고 명확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왜 믿어야 하는지를 모르고 그저 인생의 철학으로 믿음이라는 단어를 아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종교 안에서 온갖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문법입니다 

제가 이 문법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생들은 그 유명하다고 하는 신학자들까지도 성경을 보면서 문법에 대해서 아예 깡그리 무시를 하고 있습니다,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후사이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폐하여졌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일에 있어서 율법과 믿음을 비교를 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믿음입니다.

이 믿음의 의가 아니고는 약속의 후사가 될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의롭다 하심의 결과로 예수의 생명을 얻는 자가 될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는 사람들이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으려고 하지 않고 있고 그저 종교 안에서 믿는 마음을 가진 것으로 믿는다고 하면서 그 안에서 의를 위해서 온갖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믿음입니다.

사도 베드로가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같이 받은 자들에게 편지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믿음을 대표로 하는 아브라함을 말씀을 하면서 그가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그의 의로 정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과 사도 베드로의 믿음과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믿음이 동일하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종교인들은 이 믿음을 동일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자기 겸손의 모양을 나타내려고 어떻게 감히 그들과 같은 믿음을 말할 수 있느냐고 하고 있고 그것은 곧 자기는 믿음이 없다는 말이 되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 믿음의 결과입니다

저에게 의로 여기셨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 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입니다.

그 믿음의 결과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들은 이 의롭다 하심을 계량적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아브라함을 대표로 해서 사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정말 의에 대해서 패러다임의 변화가 있지 않으면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인생의 철학이 아니라 의롭다 하심의 결과는 사는 일이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대표입니다 

아브라함을 그래서 믿음의 조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우리는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서도 이 대표성을 모르니까 아브라함의 믿음과 내 믿음이 다른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의는 인생들이 생각을 하는 의가 아니라 사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 결과가 바로 생명이라는 말씀입니다

 

고린도후서4:13절을 보겠습니다. (290)

기록한바 내가 믿는 고로 말하였다 한 것같이 우리가 같은 믿음의 마음을 가졌으니 우리도 믿는 고로 또한 말하노라

 

믿음입니다.

성경은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저 내가 믿는 마음을 가졌다 해서 산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성도가 믿을 수 있는 근거가 바로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고 그렇게 의롭다 하심을 얻음으로 해서 내 안에 예수의 생명이 거하시는 역사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는 일입니다 

이 믿음에 대해서 다 말씀을 한다는 것이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편지에는 믿음에 대해서 많이 말씀을 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편지에서 강해나 설교 말씀을 보면 부족하지만 믿음으로 역사를 하는 성도가 될 수 있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일입니다 

그저 이 세상 어느 하나의 종교에서 믿음을 요구하는 일과 같이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유일하신 신이시고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창조하신 일을 다 이루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통해서 그 영광스러운 일을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게 하고 있고 그것을 근거로 해서 우리의 믿음이 역사를 하고 있고 영생을 얻는 자 된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아니 저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 모든 일을 믿음으로 역사를 하게하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오묘하신 일인가를 인생들로서는 도무지 깨달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시고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게 하심으로 해서 우리 안에서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그렇습니다

믿음이 아니고는 이 모든 일이 우리 안에서 역사를 할 수 없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인생들은 그저 종교 안에 들어가서 자기들이 믿는 마음을 가진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고 심지어는 인생의 철학에 따라 죽은 후에 자기들의 신체가 구원을 받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들이 생각하는 내세입니다 

그렇게 간단하다면 굳이 우리에게 믿음을 말씀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 거의 모든 종교와 그리고 인생들의 철학에서는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기 때문에 성경은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오직 믿음으로 역사를 하게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비밀입니다 

성경은 믿음을 말씀을 하면서 비밀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성도의 믿음에 대해서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최소한입니다 

비밀이라는 단어는 그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서 만 명 중에 한명 정도 알고 있는 것을 비밀이라고 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그 보다 더 적다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선지자들의 시대에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말씀을 보면서도 그저 남의 일로 치부를 하고 있는 것이 인생들입니다

 

믿습니까

누가 믿는다고 할 수 있는가를 냉정하게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은 조상 대대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지만 선지자들은 한 사람도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광야 교회만 보아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들어간 사람이 몇인가를 보면 쉽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장정만 60만 명이 애굽에서 나왔지만 단 두 사람이 들어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표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경계가 되게 하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 일이 광야 교회에만 해당이 되는 일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도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에서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뇨 곧 순종치 아니하던 자에게가 아니냐 이로 보건대 저희가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남의 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고린도후서에서 기록한바 내가 믿는 고로 말하였다 한 것같이 우리가 같은 믿음의 마음을 가졌으니 우리도 믿는 고로 또한 말하노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믿은 것과 같이 우리가 다 같은 믿음을 가졌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같은 믿음입니다.

그러니까 사도 바울의 믿음과 고린도교회 안에서 복음을 듣고 믿는 성도들의 믿음이 같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는 왜 같은 믿음을 가졌는지를 모르고 있고 인생의 철학에 따라 믿는 마음을 생각을 하니까 종교적인 행위를 보면서 믿음에 대해서도 마치 질량이 다른 것과 같이 성경과는 전혀 다르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입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의 믿음입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성도의 믿음입니다. 다 같은 믿음이라는 것을 성경에서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들은 같은 믿음이라는 말씀을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첫 번째는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지 못하고 있고 종교 안에서 인생의 철학에 따라는 종교적 행위를 보고 믿음이라고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그가 왜 고린도후서413절에서 기록한바 내가 믿는 고로 말하였다 한 것같이 우리가 같은 믿음의 마음을 가졌으니 우리도 믿는 고로 또한 말하노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저 13절만 보는 것이 아니라 전체 말씀을 보아야 합니다

 

6절입니다.

창조하신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창조하신 일을 깨달을 수 있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영광의 빛으로 나타내 주셨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빛입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고린도후서의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을 믿을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두운데서 빛이 있으라 하셨습니다

우리 인생은 어두움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 하셨고 그 빛이 우리와 같은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는데 그 빛이 생명의 빛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빛입니다 

생명의 빛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들에게는 이 영원한 생명이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에게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서 오셨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실제 주님께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심으로 해서 우리가 믿음으로 실상이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말씀입니다.

그러나 인생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지를 모르고 이 생명이 무슨 생명인지도 모르고 그저 언어를 아는 것으로 life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의 생명을 우리 언어로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life라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하는데 실제 단어를 보고 life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이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죽은 자입니다. 그런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목적은 바로 이 생명을 우리 죽은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입니다.

사도 바울이 예수의 생명을 얻는 일을 말씀을 하고 나서 우리 성도들에게 기록한바 내가 믿는 고로 말하였다 한 것같이 우리가 같은 믿음의 마음을 가졌으니 우리도 믿는 고로 또한 말하노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같은 믿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예수의 생명을 얻는 일을 증거를 받으면 쉽게 깨달을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생명을 얻는 믿음입니다.

사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우리 피조물이 태초부터 있는 생명을 얻는 일을 누가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인생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신체가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교리로 정해 놓고 있습니다. 그것이 인생의 철학의 한계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지만 그것은 믿음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말씀합니다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안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고 같은 믿음이 무엇인가도 모르면서 그저 종교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생명입니다 

반드시 예수의 생명이 있어야 합니다. 그분은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에 있어서 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안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생명을 모르니까 믿을 수 없고 그런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종교적 행위라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next 16-2

'성경의 기초 강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17-1, 하나님의 의와 자기의 의에 대하여  (0) 2026.02.22
16-2, 믿음에 대하여(4)  (1) 2026.02.08
15-2, 믿음에 대하여  (0) 2026.02.02
15-1, 믿음에 대하여 (1)  (0) 2026.02.02
14-2, 율법에 대하여(4)  (1) 2026.01.26